나의 지인들
내가 살아오면서 내 생애 첫 번째로 나를 괴롭힌 자가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내가 3학년 때였다. 나를 못살게 한 녀석은 R1이라는 애였다. 1학년생 이었다. 학년은 나보다 2년이나 후배지만 나이가 많았다. 한 마을에 살았다. 그의 부친은 우리 조부님과 나이가 비슷했다. 음흉하게 생겨 그를 조심했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와서는 나를 무시했다. 나는 R1의 학교 2년 선배인데 학교에 입학 후 나를 쥐락펴락 했다. 등•하교 시 나를 귀찮게 했다. 다른 마을에 사는 동급생 보기에 아주 창피했다. ‘제아무리 못났으면 2년 후배에게 당하느냐!’ 하는 창피함 말이다. 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막내라 그런지 교활하고 악착같았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도 그는 나를 때리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했다. 나는 매번 당하기만 했다. 마음속으로 증오의 씨앗이 생겼다. 최선을 다하여 상대해야 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막다른 골목에 있을 때 쥐도 고양이에게 덤벼드는데 나는 쥐만큼도 못했다.
나는 중학교까지 시골 농촌에서 초 • 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는 농사가 싫어 도시로 나갔다. 1학년 때 내가 공부만 하니 시기하는 옆자리 앉은 짝이 나를 때린 적이 있었다. 그는 건달과 다를 바 없는 R2였다. 당시 그는 복싱 도장을 다닌 애였다. 객관적인 전력은 그가 월등 우세했다. 나의 승리란 10%도 예상 못 했다. 나는 지난날의 억울함을 한이라도 풀 듯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 죽으려고 하면 살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각오였다. 교실에서 싸웠다. R2의 나를 향한 주먹은 마치 망치 같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몇 대 맞고 입이 찌어지고 피가 났다. 주먹으로는 도저히 해 볼 수 없어 의자를 들어 머리를 쳐 버렸다. 그는 "아이고"하면서 푹 쓰러졌다. 싸움은 멈췄다. 싸움 이후 학급(60명)에서 주먹 깨나 쓰는 학우들도 나를 대단한 학생으로 달리 봤다. 그 이후 누구도 나를 괴롭히는 자가 없게 되었다. 당시 1960년대 시골에서 도시로 진학한 꾀 많은 학생들은 자기 호신술로 권투도장을 다녔으나 나는 그렇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일인데, 또 다른 R3라는 자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크게 실망했다. 나는 그의 부•모가 죽었을 때 두 번 다 문상하고 조의금을 성의껏 줬는데 그는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단 한 번도 안 오고 위로 말도 없었다.
정년퇴직 후 노인복지관을 다니는데, R4라는 자를 상대하게 되었다. 그를 보면 뱀을 보듯 징그럽고 섬쩍지끈했다. 이 자는 자기 마음에 안 맞는다 생각하면 학교 선배, 연장자, 여성도 가리지 않고 욕하고 싸움을 밥 먹듯 한다. 나와 싸움을 안 했어도 그자를 보면 밥맛이 뚝 떨어졌다. 나와 악연을 가진 자들은 하나 같이 R 성 가진 자들이었다.
대학을 다닐 때는 Y1 유찬홍, Y2 유태익, Y3 유채우 삼 Y가 있었다. 세 유 친구와는 매일 만나 다정하게 보냈다. 매일 함께 도서관에 가고 휴일과 명절 때 그리고 크리스 마스 이브 때는 술잔을 앞에 두고 미래를 노래했다. 유찬홍 친구에게는 유검사, 나에게는 김의원 호칭하면서 지냈다. 나는 학생 대표를 지내면서 언제나 심부름 꾼이었다. 재학 중 군에 입대하여 제대하고 복학하여 학교 다닐 때 가장 친한 친구는 Y4 유영만이었다. 그는 매일 만났고. 우리 집도 자주 왕래하며 친하게 지냈다.
중등학교 교장과 연수원장을 지낸 유채우 친구와는 지금까지 60여 년을 교제하고 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마음이다. 친구는 서울에 살고 나는 여수에 살고 있지만 부모님 상을 당했을 때도 제일 먼저 찾아와 애도를 표해 주었다.
R 넷은 상극 악인이고, Y 넷은 상생 선인들이다. 인간관계를 볼 때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으면 주변 사람들을 살피라는 말이 있다. 끼리끼리 놀기 때문이다. 힘들 때 내 곁을 떠난 사람은 찾을 필요가 없다. 한 번 아닌 사람은 평생 아니다. 사람은 절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도 기대하지도 말아야 한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 내가 R 성을 가진 지인들에게 기대 안 했다면 실망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경우에 어긋나지 안했으니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내 곁에 끝까지 남는 건 나뿐이다. 나 자신이 내 절친이니 제일 사랑해 줘야 한다.
첫댓글 새롭게 깨달으신 말씀이 명언이 아닌가 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나에게 불편한 사람이 있고, 그를 만나면 엔돌핀이
도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는 사람 붙잡지 말고 오는 인연 막지마라'라는
말이 있는데 자기 편한대로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 아닌가 합니다.
임선생님 그간도 잘 계셨지요. 곰곰이 생각하니 어릴 때 잘못도 없이 무시 당하고 맞은 기억이 떠 오릅니다. 왜 당시 제가 잘못이 없는데, 때려서 맞는다면 당시 길 옆에 천지로 굴러 다니는 돌을 들어서도 대항했어야 했는데 억울하게 맞았던 것을 생각하니 분통이 터집니다. 늦게 라도 고교 다닐 때는 힘이 부족하다 느껴 의자를 던져서 머리를 쳐 버렸더니 통쾌하게 굴복하여 고교 3년 한 놈도 구찮게 하는 놈들이 없어 무사히 대학을 갔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에밀 싱클레어에게는 데미안이라는 듬직한 선배가 있어 그를 괴롭히던 크로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는데 선생님은 의자 하나로 해결해 버리셨군요
악연과 선연은 어쩌면 운명처럼 찾아드는 것 같습니다 뒤돌아보면 생각이 어지러워질 때도 있고 절로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선생님께선 복잡다단했던 인연의 물결을 슬기롭게 헤쳐오셨군요 이제는 평화로운 백사장에서 유유자적 지나온 노정을 관조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인산님 고맙습니다. 초등학교 때 저학년이지만 나이가 많은 동네 애가 나를 귀찮게 하고 모멸감을 준 것이 한이 되었습니다.
왜 병신 같이 힘이 부족하면 돌을 들어서도 대항 할 것을 죄없이 당해야 했느냐 두고두고 가슴에 응어리가 되는 차에
맘 먹고 공부하러 도시에 나왔는데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힘으로는 부족하여 의자를 들어 피를 보여 줬습니다.
그 이후 힘이 센 녀석들도 나중에는 나를 건들지 않아 무사히 고교생활을 마쳤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R라면 혹시 노씨인가요? 우리집에도 있는 성씨....
노씨는 아닙니다. 잘 계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