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비엔티엔
도착하자마자 렌즈를 깨트리다니...
인천에서 5시간 30분만에 도착한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태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곳이라 태국과 비슷한 느낌도 든다. 하늘에서 바라본 비엔티엔은 정말 작고 소소한 도시였다. 높은 건물도 많지 않은데다 정비되지 않은 황톳빛 비포장 도로가 눈에 띄었다.
:: 라오스의 독립 기념문, 빠뚜사이
[ 빠뚜사이 ː Patuxai ]
높게 솟은 건축물을 굳이 꼽아보라면 빠뚜사이 정도.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이곳은 사실 비엔티엔의 독립 기념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프랑스와의 독립 전쟁 때 희생된 라오스 군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62년에 완공되었다고.
이런 역사 깊은 곳에서 필자 또한 (개인적으로) 새로운 역사를 썼으니. 여행 사진가라는 과분한 타이틀 아래 큰 오점을 남기는 대형 참사를 이곳에서 맞이했다.
불미스러운 사고로 인해 가지고 있던 카메라 렌즈가 두 동강 나버렸다. 오른손은 망원, 왼손은 광각이라는 필자의 루틴이 깨져버렸으니 이제 한 손을 잃은 것과 같았다. 참담했다. 여행의 시작점에서 맞이한 일 치고는 멘탈 붕괴의 파급력이 강력했던 것 같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네.'라는 여행 동반자의 위로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직도 원숭이가 되려면 먼 길을 가야 할 각이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슬슬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전날 마신 라오 맥주가 큰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비엔티엔에서의 사건사고로 인해 이제 가방 무게는 반으로 가벼워졌고 한 손도 자유로워졌다.
카메라를 내려놓은 뒤부터 진짜 라오스 여행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건대 필자에게 비엔티엔은 그렇게 여행의 변화를 만들어 준 도시로 기억된다.
EP.2 루앙프라방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폰카 등장!
아! 이 도시는 정말 사랑스럽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던가. 주머니 속 핸드폰이 본격적으로 활약하던 순간이다. S사에서 만든 핸드폰 뒷면에 렌즈를 3~4개나 박아 넣더니 그 궁합이 이곳 라오스와 진정 찰떡이다.
루앙프라방은 1995년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라오스 관광도시 1위에 등극한 곳이다.
[ 꽝 시 폭포 ː Kuang Si Falls ]
에메랄드빛 천연 워터파크인 꽝 시 폭포는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 잠시나마 천상의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다. 시내에서 차로 약 40분, 라오스의 시골 정취를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꽝 씨 폭포 국립공원에 도착한다.
입구를 지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만난 폭포의 절경에 여기저기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젊은 청춘들이 과감하게 뛰어드는 폭포는 바로 이 아래서부터 시작된다.
물 색상 자체가 예술이다. 푹푹 찌는 무더위에 폭포수를 보고 있자면 물속으로 뛰어들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이지 라오스 여행에서는 무거운 카메라가 불필요한 곳이다. 그저 가벼운 옷차림으로 홀가분하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유유자적 자연을 느끼기에도 바쁜 여행지다.
[ 푸시 산 ː Mount Phousi ]
루앙프라방에서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명소는 바로 푸시 산이다. 구시가지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산이라서 360도, 사방이 모두 절경이다. '신성한 산'이라는 뜻의 이름이 말해 주듯 이곳 사람들은 이 산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긴다.
그래서 산 위에 황금색 탑을 세워 놓고 때마다 소원을 빌거나 신을 영접하는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루앙프라방을 여행하는 이들이라면 해가지는 일몰 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자!
: 비엔티엔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이동할 때 이용했던 라오항공 국내선.
EP.3 방비엥
방비엥에서는 액션캠과 폰카마저도 사치!?
라오스 여행이 무르익어 갈수록 등짝에 달린 짐들은 점점 줄어든다. 이제 오른손이고 왼손이고 카메라는 버린 지 오래. 진정한 라오스의 매력, 방비엥 액티비티에 도전할 시간이다.
방비엥에 도착하면 또 다른 라오스를 만나게 된다. 여기가 대한민국인지 라오스인지 잠깐씩 잊게 만드는 친숙한 물건들과 한글이 눈에 띈다. 방비엥은 라오스의 계림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로 액티비티의 천국이란다.
[ 블루라군 버기카 ]
이곳에서는 그동안 누려보고 싶었던 각종 액티비티를 원 없이 누릴 수 있다. 우선 블루라군으로 향하는 길에 버기 카를 타고 스트레스를 날려본다. 비가 내려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 또한 하늘이 도왔다.
마른 땅에 비포장도로를 30분이나 달려야 하는 버기 카를 탔다면 아마도 기관지 약한 필자로서는 몰아치는 흙먼지에 내내 고통스러워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더위를 날려주는 시원한 빗줄기와 비록 흙탕물이긴 해도 진정한 방비엥 액티비티의 화룡점정을 찍어주는 듯한 연출은 다시 봐도 최고의 순간이었다. 심장 뛰는 버기 카는 꼭 추천하고 싶은 방비엥의 필수 코스다.
[ 남쏭강 카약킹 ]
그렇게 잔뜩 뒤집어쓴 흙탕물은 남쏭강물로 깨끗이 씻어 낸다. 방비엥이 액티비티의 천국으로 군림하게 된 일등공신은 사실 강변에서 즐기는 튜빙과 카약킹에 있다. 라오스의 무더움을 날려주는 강변의 시원함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유속 덕분에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강변 주위에 있는 오픈형 상점에서 시원한 맥주도 한잔하며 시간을 거꾸로 흐르는 듯한 방비엥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일몰 시간 방비엥 남쏭강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해 줄 롱보트가 있다. 가늘고 긴 모터보트를 2명이 함께 타고 달린다. 긴 남쏭강의 상류와 하류를 왕복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
튜빙과 카약킹처럼 물놀이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롱보트가 그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낮 시간보다는 역시 일몰 시간대가 제격이다.
정말이지 방비엥에서는 방수 케이스에 넣은 핸드폰과 손바닥만 한 액션캠도 사치다. 가끔씩 펼쳐지는 이국적인 아름다움과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들이 눈에 밟혀도 그저 마음속으로 간직해야 할 것만 같은 곳. 방비엥은 내겐 그런 곳이었다.
EPILOGUE...
라오스에서 유일하게 각 잡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새벽 5시 긴 탁발 행렬들 사이로 발 빠르게 움직이며 이런저런 사진을 찍어봤지만 어딘지 양에 차지 않는다.
일찌감치 카메라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라오스에 흠뻑 빠졌던 탓일까? 이번 여행은 사진보다는 동행했던 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만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