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내가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줍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요한 13:34. 예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밤에 제자들을 위해 긴 기도를 드리면서 아버지께 “악한 자로부터 그들을 지켜”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요한 17:15) 제자들에 대한 예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분은 자신에게 힘든 시련이 곧 닥칠 것임을 아셨지만 사도들을 염려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본받아 자신만이 아니라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도 자주 기도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며, 우리가 형제 자매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여호와께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실제로 형제 자매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성경에서 알려 주듯이 “의로운 사람의 간구는 큰 효과가 있습니다.” (야고보 5:16) 우리의 형제 자매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파22.07」 23-24면 13-15항 |
내가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줍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요한 13:34. A new commandment I give unto you, That ye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that ye also love one another. Barnes' Notes on the Bible A new commandment - This command he gave them as he was about to leave them, to be a badge of discipleship, by which they might be known as his friends and followers, and by which they might be distinguished from all others. It is called new, not because there was no command before which required people to love their fellow-man, for one great precept of the law was that they should love their neighbor as themselves Leviticus 19:18; but it was new because it had never before been made that by which any class or body of people had been known and distinguished. The Jew was known by his external rites, by his uniqueness of dress, etc.; the philosopher by some other mark of distinction; the military man by another, etc. In none of these cases had love for each other been the distinguishing and special badge by which they were known. But in the case of Christians they were not to be known by distinctions of wealth, or learning, or fame; they were not to aspire to earthly honors; they were not to adopt any special style of dress or badge, but they were to be distinguished by tender and constant attachment to each other. This was to surmount all distinction of country, of color, of rank, of office, of sect. Here they were to feel that they were on a level, that they had common wants, were redeemed by the same sacred blood, and were going to the same heaven. They were to befriend each other in trials; be careful of each other's feelings and reputation; deny themselves to promote each other's welfare. See 1 John 3:23; 1 Thessalonians 4:9; 1 Peter 1:22; 2 Thessalonians 1:3; Galatians 6:2; 2 Peter 1:7. In all these places the command of Jesus is repeated or referred to, and it shows that the first disciples considered this indeed as the special law of Christ. This command or law was, moreover, new in regard to the extent to which this love was to be carried; for he immediately adds, "As I have loved you, that ye also love one another." His love for them was strong, continued, unremitting, and he was now about to show his love for them in death. John 15:13; "greater love hath no man than this, that a man lay down his life for his friends." So in 1 John 3:16 it is said that "we ought also to lay down our lives for the brethren." This was a new expression of love; and it showed the strength of attachment which we ought to have for Christians, and how ready we should be to endure hardships, to encounter dangers, and to practice self-denial, to benefit those for whom the Son of God laid down his life. 반스의 성경 주석 새 계명 - 예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그들에게 주신 이 계명은 제자됨의 증표로서, 제자들이 친구이자 추종자로 알려지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신 계명입니다. 율법의 위대한 교훈 중 하나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에(레위기 19:18), 이전에는 사람들에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아니라, 어떤 계층이나 단체가 알려지고 구별되는 것이 이전에 만들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새롭다고 불렀습니다. 유대인은 외형적인 의식, 독특한 복장 등으로, 철학자는 다른 구별되는 표식으로, 군인은 다른 표식 등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모든 경우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이 그들을 구별하는 특별한 증표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경우, 그들은 부나 학식, 명성으로 구별되어서는 안 되었고, 지상의 명예를 갈망해서도 안 되었으며, 특별한 복장이나 배지를 채택해서도 안 되었지만, 서로에 대한 부드럽고 지속적인 애착으로 구별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것은 국가, 피부색, 계급, 직책, 종파의 모든 구별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동등한 위치에 있고, 공통의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같은 성혈로 구속을 받았으며, 같은 천국에 간다는 것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들은 시련 속에서 서로 친구가 되어야 했고, 서로의 감정과 평판을 조심해야 했으며, 서로의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자신을 부인합니다. 요한일서 3:23, 데살로니가전서 4:9, 베드로전서 1:22, 데살로니가후서 1:3, 갈라디아서 6:2, 벧후 1:7을 참조하세요. 이 모든 곳에서 예수님의 명령이 반복되거나 언급되고 있으며, 첫 제자들이 이 명령을 그리스도의 특별한 율법으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이 명령 또는 율법은 이 사랑을 실천하는 정도와 관련하여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덧붙이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강하고, 지속적이며, 변함없었고, 이제 죽음으로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그래서 요한일서 3장 16절에서는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랑의 새로운 표현이었으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애착의 힘과 하나님의 아들이 목숨을 버린 사람들을 위해 고난을 견디고 위험에 직면하고 자기 부정을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
티비 광고나 인터넷 화면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이를 돕자는 캠페인을 흔히 볼 수 있다. 즉 주체자는 사랑의 동기에서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권유이다. 그러한 광고를 보고 마음에 동정심이 유발되어 그 운동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사랑의 행위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언의 압박이나 강요에 의해서 또는 그러한 캠패인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불이익을 받는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면 그것은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 사랑을 위장한 주체단체의 사업인 것이다. 워치타워 법인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서 군복무 거부운동을 전세계적으로 벌여 왔다. 또 어떤 단체들은 동물을 보호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운동으로 모피 옷을 사입지 않는 캠패인을 벌이기도 한다. 이러한 캠패인은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모든 사람이 군복무를 하지 않는다면 큰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아무도 모피를 사입지 않는다면, 동물 가죽을 얻기 위해서 동물을 사냥하는 일은 없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에 의미를 동질감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이어야만 사랑의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부담감을 주거나 불이익을 준다면 그 운동은 여전히 사랑의 동기가 아니라 그들 단체의 운동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운동이 비록 대의명분을 가진다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사랑의 동기로써 개인의 마음이 순수하게 움직여져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인간 조직에 대한 어떤 의무감으로도 아니요, 그 운동에 참여했다고 해서 "난 이런 사람이요" 라고 자랑할 거리가 되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과거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야훼숭배를 회복하기 위해서 성전을 재건하고 안식일과 같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한 캠패인을 벌였다. 그러한 운동의 대의명분은 분명히 좋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어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율법 주위에 울타리를 만들었다. 즉, 율법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근처에도 가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안식일에 모기를 잡아서도 안된다 또는 집에서 몇 킬로미터 반경 내를 벗어나서도 안된다는 등의 규정이었다. 이처럼 어떤 운동을 자발적으로 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강요에 의해 이루어지게 할 때 반드시 부작용이 생기게 되며 그 부작용은 오히려 하나님을 가리워 버리는 역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비슷하게도 워치타워 운동은 이와 같은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동물의 고기를 먹을 때, 피를 빼고 먹음으로써 동물과 인간의 평화관계를 근원적으로 깨지 않겠다는 약속의 의미를 인간이 수혈에까지 확대 적용함으로써 워치타워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무리한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쟁과 같은 평화를 깨는 일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대 적용하여 다른 일로 대체하는 것까지 못하게 규정하였다. 이러한 행위들은 결코 사랑의 동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워치타워 운동을 옹호하기 위한 조치들일 뿐이다. |
질문:
1. 사랑의 실천은 강제성을 부여하는가?
2. 강제성을 지닌 워치타워의 율법의 예 중 대표적인 두 가지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