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경상도 어느 고을에서 내기가 벌어졌습니다. 장정 셋이서 두부를 누가 제일 많이 먹는지 겨루는 먹기 내기였습니다. 우승자에게는 쌀 세 가마니가 주어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열 모쯤은 문제가 없다고 큰 소리쳤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신만만해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체구도 크거니와 본래 식성이 좋아서 무슨 음식을 먹을 때에는 다른 사람보다 몇 갑절이나 더 먹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맘속으로 ‘이제 곧 쌀 세 가마니가 내게로 굴러온다. 이번 내기는 하나마나 한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우승을 자신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세 사람 앞에는 네모반듯한 두부가 열 모씩 놓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내기가 시작되자, 다른 두 사람은 잽싸게 네 모를 먹어치우는데, 우승하리라 생각했던 그 사람은 세 모만 간신히 먹고서는 나가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여섯 모를 먹은 사람이 1등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우승할 것으로 여겨졌던 그 사람은 배를 움켜쥐고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내가 조금 전까지는 열 모를 먹고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참 이상도 하다.”
그는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제 서야 구경꾼들은 그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그 사람이 내기를 하기 바로 전에 자신이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두부를 먹어봤던 것입니다. 그는 두부 열 모를 거뜬히 다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일등을 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열 모를 먹어놨으니 어떻게 그가 일등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 채 `정말 이 세상에는 모를 일이 참 많다’고 계속 한탄하면서 살다가 한 세상을 마쳤다고 합니다.
우스운 이야기지요?
겨울을 듣는 계절이라고 한다면 봄은 보는 계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봄이라는 말 자체가 ‘보다’라는 동사(動詞)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겨울에는 문을 닫잖아요. 밖을 향한 시선을 두꺼운 벽으로 차단을 하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눈은 닫고 귀가 열립니다.
그러나 봄이 되면 창문을 엽니다. 피어나는 꽃을 보기 위해서 눈도 창문처럼 열립니다.
마른 풀잎 속에서 움트는 아주 작은 싹이라 할지라도, 개미 하나가 모래알 사이를 지난다 할지라도, 봄의 눈은 그것을 놓치지 않습니다. 본다는 것은 방향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인가를 찾고, 선택하고, 분석하는 능동적인 힘인 것입니다.
그러나 ‘비움’ 만큼 큰 능동성의 꽃은 없습니다. 처음 이야기가 우스운 것은 '채움'이기 때문이고, 봄이 아름다운 것은 겨울이라는 '비움'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허태수(목사·춘천성암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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