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영농조합법인> 김영교(54) 대표는 육묘에 관한 한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현장 전문가다. 30년 이상 농업의 한 우물만 판 ‘외길 인생’이 그를 육묘 박사로, 성공한 농업 경영인으로 만들었다.
<호반영농조합법인>이 길러내는 육묘는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각광받는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인들조차 <호반영농조합법인>의 육묘라면 그 우수성을 인정해 줄 정도다. 육묘 장에는 외부 견학 행렬이 줄을 잇고 연중 주문 전화가 쇄도해 농한기가 따로 없을 정도다. 육묘로 일가를 이룬 김 대표의 옹골찬 농업 인생은 농촌이 어느 때보다 어렵다고 하는 요즘, 젊은 농업인들 에게 도전의식과 희망을 불어넣는 교본이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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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내 보석 같은 존재로 성장
수익을 농민들에게 환원하는 게 보람 <호반영농조합법인>은 동양 최대의 사력댐인 소양강댐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춘천시 동면 지내리 일원에서 1998년부터 육묘 생산을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 농업은 농업인 개개인이 직접 모종을 생산하던 전통적 구조에서 벗어나 대량 생산이 가능한 육묘장에서 필요한 모종을 공급받아 기르는 선진형 농법으로 바뀌는 중이다. 최첨단 컴퓨터 복합 환경제어 시스템을 갖추고 소양강댐에서 방류되는 냉수를 이용
하기 때문에 <호반영농조합법인>에서 생산하는 모종은 뿌리의 발육상태가 좋고 병해충에 강하다. 춘천 지역에서 오이, 토마토 재배의 베테랑으로 손꼽히는 김 대표가 신품종과 기술을 꾸준히 개발해 육묘 생산에 접목시켰기 때문에 한번 인연을 맺으면 <호반영농조합법인>의 모종을 찾지 않을 수 없다.
1996년 법인 등록 후 1998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 지 불과 1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우량 종묘 생산에다 수출시간 개척까지 성공하고, 웬만한 중소기업을 뛰어넘는 규모의 고용창출 효과까지 유발해내니 지역 내에서 ‘보석’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수출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일본 내 수출시장을 개척하면서 작은 이물질 하나라도 나오면 통관이 안 되는 까다로운 검역 절차 때문에 애로를 겪은 적도 있지만, 이제는 일본 내 통관관계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수출 육묘 관리가 완벽하다. 지난해 주문생산을 통해 일본에 수출한 육묘만 23만 달러에 달한다.
<호반영농조합법인>의 묘는 어디에 내와도 손색없는 품질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 대표 자신이 30여 년간 농업 현장에서 직접 땀 흘린‘농사꾼’이므로 수익이 생기면 조금이라도 더 농민들에게 환원하는 것이 보람이고, 농민들에 대한 도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본인의 성공 노하우를 묻자 김 대표는‘농촌 사랑’이라는 짧지만,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다.
“농업경영은 농촌에 대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특히 육묘사업은 한해 농사의 시작이면서 밑천이라고 할 수 있는 모종을 공급하는 주춧돌 산업이기 때문에 농촌에 대해 더욱 큰 사랑이 요구됩니다.”
병해충에 강하고 잘 크는 우량 모종은 훌륭한 결실의 밑거름이 되지만, 불량 육묘는 농민의 한해 농사를 망치게 할 수도 있기에 정성이 없으면 결코 안된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모종 공급망을 구축, 농촌을 지키는 각지의 사람들과 만나 고민을 공유하고 부농(富農)의 꿈을 함께 키우는 자체가 큰 즐거움입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green.daum.net%2Fimg%2Finfo%2F081205_08.jpg) ▲김 대표는 육모사업은 농촌에 대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사업이라고 잘라 말한다
모든 것을 돌려주는 자연
시련과 도전이 나를 키웠다 김영교 대표가 농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부터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춘천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병역 의무를 마친 뒤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곧 귀농(歸農)으로 인생 목표를 바꿨다. 직장생활을 할 경우 매달 나오는 월급으로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할 수는 있겠지만, 세상을 향한 꿈을 이루는 데는 부족한 게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 귀농의 계기가 됐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흙과 가까이 했기에 농업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었다. 6년간 독농가로 홀로 농사를 지은 뒤 1984년에 농업경영인(당시 농업후계자) 지정을 받으면서 전문‘농사꾼’으로서 본격적인 성장에 밑거름을 다졌다.
“흙과 땀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것을 농사를 지으면서 절감했습니다.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정말 모든 것을 돌려주는 게 자연입니다.”
춘천의 독농가에서 출발해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농조합법인의 대표로, 한국 육묘산업연합회 회장으로 역할을 수행하기까지 시련도 적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납품일이 촉박한데 모종이 제대로 크기 않아 어려움을 겪었던 일도 있었고 부산에서 선적한 일본 수출 모종이 통관 검역과정에서 이물질이 일부 발견되는 바람에 차질을 빚은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정말 큰 시련이 닥쳤다. 본격적으로 육묘 사업을 시작한 지 2년만인 2000년 1월 엄동설한 한겨울에 육묘장에 불이 난 것이다. 화마가 육묘장을 덮치던 날을 김 대표는 잊을 수 없다. 육묘장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 얼마나 불길이 셌던지 온실 등 모든 시설이 남김없이 재로 변하고 차량까지 모두 불에 타 버렸다. 온실을 받치던 철제 빔도 열기에 녹아버렸으니 김 대표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을 원망할 힘도 없었던 혹독한 시련의 겨울. 그러나 김 대표는 그대로 주저앉을 수가 없었다. 육모에 관한한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빌 언덕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었다. 주위 분들의 격려에 힘을 내정부 지원금을 받아 다시 엄동설한에 재기의 삽질을 했다. 눈물조차 얼어붙는 혹한이었지만, 김 대표는 밤낮없이 땀으로 혹한을 녹였다. 종사자들과 함께 그렇게 재기에 나선지 50일 뒤 육묘장은 다시 불 탄 자리에 새롭게 재건됐다. 육묘장이 다시 세워진 것을 보고서야 김 대표는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재건 작업 와중에도 주문 신청을 받은 모종을 생산하기 위해 한겨울에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온풍기를 돌려가며 모종을 키워 농가에 공급했으니 법인 직원들 모두가 철인 같은 열정을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봄과 함께 세워진 육묘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김 대표의 땀에 보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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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green.daum.net%2Fimg%2Finfo%2F081205_10.jpg) ▲웬만한 중소기업 정도의 고용창출효과까지 내고 있는 <호반영농조합법인>은 지역 내에서 ‘보석’ 같은 존재다
농업으로 성공하는 첫 번째는 농촌에 대한 사랑
육모사업은 국가 농업경쟁력에 기여하는 사업이라 보람도 커 농업으로 성공하는 방안으로 김 대표가 첫 손에 꼽는 것은 역시 농촌에 대한 사랑이다. 흙을 갈고 작물을 키우는 일은 사람이 자식을 낳아 키우는 일과 무척이나 닮아서 사랑 없이는 좋은 결실을 거두기가 어렵다는 것. 그래서 억지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다면 단연코 하루라도 빨리 농촌을 떠나라고 김대표는 말한다.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것도 김 대표가 강조하는 대목이다. 김 대표 자신이 자수성가로 농촌에 정착하고, 오늘날 국내에서 손꼽히는 육묘 사업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것도 전문성 덕분이다.
“모종을 키우는 일에 전문가적 자신감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육묘사업을 할 엄두를 냈겠습니까. 저는 누가 뭐래도 육묘에 관한 한 전문가라고 자부합니다.
평생 농업인으로 살아온 김대표는‘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점도 성공의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요즘에는 이 일을 해봤다, 저 일을 해봤다 하는 식으로 직종을 옮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전문성을 갖추고 자신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겠냐는 게 김 대표의 지론이다. 김 대표 본인도 지난 30년간 농업을 일구면서 힘든 역경을 헤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왕 내가 농촌에서 꿈을 일구기로 한 이상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
“어려움이 있으면 예전에 그보다 더 힘들었던 때를 많이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육묘사업은 국가 농업경쟁력에 기여하는 사업이기에 보람도 큽니다.”
농업에 대한 사랑과 보람, 전문성으로 똘똘 뭉친 <호반영농조합법인>의 사무실에는 거의 하루 종일 주문 전화가 전국 각지에서 쇄도해 전화벨 소리가 그칠 새 없다.
육모는 농사의 시작이자 밑천 – 김영교 대표 천천 호반영농조합법인
대표자: 김 영 교(석탑산업훈장) 주소: 강원도 춘천시 동면 지내리 주요작목: 육묘(토마토, 오이, 고추, 가지, 수박, 참외 등 과채류 약12종) 매출 및 시설 규모: 시설 1500평, 비닐하우스 5000평, 연매출 약 60억원 특징: 대규모의 육묘 생산을 통해 농민들의 안정적 생산 기반 마련.일본 수출시장 개척.
출처 : 농촌정보문화센터(농업경영혁신시리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