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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위논문
Koreanisches Christentum in Begegnung mit den einheimischen Religionen, dargestellt an der Konzeption "Koreanische Theologie" bei Byunghun Choi (1858-1927) und Tonshik Ryu (1922-) (한국 전통 종교와의 만남 속에 나타난 한국기독교(타종교에 대한 기독교 신학적 인식에 대한 학문 이론적 연구 - 최병헌과 유동식을 중심으로)
2. 번역
2.1. 논문
1) G. Sauter, “신학에는 새로운 것이 아무 것도 없는가”, 새누리신문 289호 (1996, 8..17)
2) -, “마르틴 루터의 칭의론”, 새누리 신문 297호 (1996, 10. 26), 298호 (1996. 11. 2)
3) -, “양심의 소리와 성령의 사역” (Geistesverantwortung und das Wirken des Heiligen Geistes), 「목회와 신학」, 1998년 8월, 177-181.
4) -, “기도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공간입니다”, 「그말씀」, 1999년 11월, 94-99.
5) -, “교회는 소망의 표식이다”, 「목회와 신학」, 2004년 1월 115-120.
2.2. 단행본
1) G. Sauter, 『종말론 입문. 소망의 이유를 묻는 이를 위하여』(Einführung in die Eschatologie, Darmstadt 1995, 한들 출판사, 1999).
2) (편역) G. Sauter, 『소망을 위하여. 자우터 교수 은퇴 기념 논문집』 (Ermutigung zur Hoffnung, 한들출판사, 2000).
3) (편역), 판넨베르크와 자우터, 『신학은 어떤 의미에서 학문인가?』(한들 출판사, 2004. 수정재출간; 한국학술정보, 2010).
3. 저서
3.1. 단독저서
1) Koreanisches Christentum in Begegnung mit den einheimischen Religionen, Beiträge zur Theologischen Urteilsbildung Bd. 7, Peter Lang Verl. Frankfurt a.M./Berlin/Bern /Bruxell/New York/Wien 1999.
2) 『신학과 목회, 그 뗄 수 없는 관계』(서울: 씨․엠, 2001).
3) 『계명은 복음이다』(씨․엠, 2002. 개정증보판, 대전: 한남대학교 출판부 글누리, 2008).
4) 『제3의 설교론-영상시대에 필요한 설교론』(씨․엠, 2003. 개정판, 파주: 한국학술정보사, 2008).
5) 『영화관에서 만나는 하나님』(대전: 이화출판사, 2005).
6) 『영화 속 장애인 이야기』(대전: 이화출판사, 2006).
7) 『영화 속 기독교』(대전: 한남대출판부 글누리, 2007).
8) 『판넨베르크 신학연구』(파주: 한국학술정보사, 2007).
9) 『지혜는 섬기는 자를 위한 선물』(대전: 이화출판사, 2009).
10) 『소명은 계시사건이다』(대전: 이화출판사, 2009).
11) 『제자의 역할』(대전: 이화출판사, 2009).
12) 『대중문화 영성과 기독교 영성』(대전: 한남대출판부 글누리, 2010).
13) 『영화를 통한 성찰과 인식 그리고 +α』(파주: 이담, 2011).
14) 시집: 『하나님과 신나게 놀던 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파주: 이담, 2012).
15) 『기독교와 영화』(고양: 도서출판 자우터, 2012).
16) 『신학적 미학과 기독교 영화 미학』(고양: 도서출판 자우터, 2012).
17) 시집: 『오늘 아침 너를 보고 싶은 까닭』(고양: 도서출판 자우터, 2013).
18) 『목사, 술을 권하다』(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14).
19) 시집: 『가을이 초경할 무렵』(대전: 이화, 2014).
20) 『신학문화』(고양: 도서출판 자우터, 2014).
3.2. 공저
1) 최성수/정의석,『쾰른한인중앙교회 20년사』(Hund Druck, Köln 1999).
2) 성염/이태하/최성수,『종교다원주의 시대의 기독교와 종교적 관용』(서울: 민지사, 2001)-학술진흥재단 지원에 따른 연구결과.
3) 정기철/강성렬/김정주/최성수, 『시간과 종말』(서울: 쿰란출판사, 2003)-학술진흥재단 지원에 따른 연구결과.
4) 임성빈 외, 『기독교 문화와 상상력』(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06).
5) 김세광 외, 『팝 게릴라 레이디 가가』 (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12).
4. 논문
1) “교회와 민족과의 관계”, 「목회와 신학」, 1996년 8월, 186-192.
2) “신학이 설 땅은 어디인가?” - 신학은 하나님을 고백하는 길로 이끄는 길잡이, 「기독교 사상」(458), 1997년 2월, 244-254.
3) “칭의론으로 접근한 한국적 신학”, 「목회와 신학」, 1998년 2월 (144-150), 3월 (154-163쪽), 4월 (174-181).
4) “신학은 학문인가?”, 「기독교 사상」(477), 1998년 9월, 137-153.
5) “`조상제사'가 갖는 신학적인 문제”, 「기독교 사상」(478), 1998년 10월, 118-130. 이 글은 『신학과 목회, 그 뗄 수 없는 관계』(씨․엠, 2001), 137-165에 수록.
6) “한국신학의 ‘신학적 과제 인식’에 대한 신학적 성찰”, 『한국문화와 예배』, 한국문화신학회 편, 한들, 1999, 216-249.
7) “Das dritte Gebot und die Frage nach dem richtigen Reden von Gott”, Korea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Vol. 3, 1999, 283-298.
8) “치병현상, 제사문화, 그리고 기독교”, 『기독교 문화연구』 제 4 집, 1999, 한남대 기독교 문화연구소. 122-151. 이 글은 『신학과 목회, 그 뗄 수 없는 관계』(씨․엠, 2001), 167-199에 수록.
9) “기독교 신학에서의 단군신화 연구에 대한 비판적 고찰”, 『기독교사상 논단 1』(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창간호), 151-182. 이 글은 『신학과 목회, 그 뗄 수 없는 관계』(씨․엠, 2001), 321-360에 수록.
10) “교회 공동체성의 근거로서의 삼위일체적 행위”, 「목회와 신학」(136), 2000년 10월 214-221. 이 글은 『신학과 목회, 그 뗄 수 없는 관계』(씨․엠, 2001), 201-223에 수록.
11) “Reden von Gott, eine geschichtliche Darstellung und theologische Problematik”, Yonsei Journal of Theology, Vol. 5. 2000, 281-308.
12) “예배의 본질로서 ‘열려있음’의 신학적 근거”, 『기독교사상 논단 2』,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223-254. 이 글은 『신학과 목회, 그 뗄 수 없는 관계』(씨․엠, 2001), 89-135에 수록.
13)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교회론”, 「조직신학논총」 6집, 2001, 150-184.
14) “Pannenbergs Reden von Gott”, Korea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Vol. 4, 2001, 189-205.
15). “김재준과 박형룡의 논쟁에서 나타난 신학적 배타성과 한국신학의 과제로서 비판신학”, 「기독교사상」(510), 2001년 6월 200-220.
16) “슐라이에르마허의 대화이론”에 대한 논평-동의적 의미에서의 진리개념을 중심으로, 퇴계 남명 선생 탄생 500주년 기념 제 14회 한국철학자대회, 『생명공학시대의 철학적 성찰』, 2001, 125-131.
17) “판넨베르크 신학의 주제로서 종교”, 「신학이해」, 호신대출판부, 2002, 84-116.
18) “Kurzer Überblick über die Pungryu-Theologie Tong-Shik Ryus”, in: Theology of Korean Culture, The Christian Literature Society of Korea, 2002, 46-77.
19) “8.15광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기독교사상」 2002년 8월, 144-155.
20) “신학과 목회의 관계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상호보완적 관계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남은 자」(호신대신대원원우회 학술지, 제4호 2003년), 89-106.
21) “신학은 어떤 의미에서 학문인가”, 「목회와 신학」 2005년 1월, 184-190.
22)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의 학문 이론”, 「목회와 신학」 2005년 2월, 190-195.
23) “게르하르트 자우터의 학문 이론”, 「목회와 신학」 2005년 3월, 191-197.
24) “이성적 합리성과 종말론적 합리성”, 「목회와 신학」 2005년 4월, 188-195.
25) “학문으로서 한국 신학을 위하여 1”, 「목회와 신학」 2005년 7월, 187-193.
26) “학문으로서 한국 신학을 위하여 2-신학과 목회의 상호보완 관계를 위하여”, 「목회와 신학」 2005년 8월, 171-179.
27)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문화”, 「신앙세계」 2006년 1월, 44-46.
28) “영화는 기독교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목회와 신학」 2006년 9월, 192-196.
29) “한국영화 속에 재현된 기독교 이미지에 대한 비판적 읽기”, 「목회와 신학」 2006년 11월, 210-215.
30) “뉴에이지 문화의 상상력과 한국교회의 대응”, 한국문화선교원 엮음, 『사랑의 상상력』, 서울: 예영, 2006, 111-140.
31) “청년문화와 기독교교육”, 「현대문화와 기독교교육」 Vol. 17, No. 1, 2006, 54-85.
32) “기독교 예술관”, 한남대학교 기독교문화연구원 편, 『기독교 세계관』, 대전: 글누리, 2007, 325-357.
33) “기독교적 영화보기의 강적, 폭력에 대해”, 「목회와 신학」 2007년 1월, 226-231.
34) “기독교적 영화보기의 강적, 섹스에 대해”, 「목회와 신학」 2007년 2월, 234-239.
35) “교회가 기독교 영화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 「목회와 신학」 2007년 12월, 224-233.
36) “영화 ‘밀양’, 다양한 모습 속의 진실”, 「기독교문화 연구」(12집), 한남대 기독교문화연구원 편, 2007, 109-122.
37) “하나님의 선교와 생명목회”, 『하나님나라와 생명목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생명살리기운동10년위원회 편,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7, 431-461.
38) “‘한국교회의 전통문화 수용에 관한 연구’에 대한 논찬“, 『기독교 문화와 한국문화』, 임성빈 엮음, 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08, 165-178.
39) “대중매체 속의 기독교”, 「기독교문화연구」(13집), 한남대 기독교문화연구원 편, 2008년, 249-269.
40) “교회소통의 과제로서 웹2.0”, 「기독문화연구」(13집), 한남대 기독교문화연구원 편, 2008, 45-98. 이글은 「목회와 신학」(2008년 12월)에 요약되어 게재되어 있다.
41) “변화하는 가정, 변화를 기대하는 가정”(대중문화 속 가정2), 「목회와 신학」, 2009년 11월, 146-159. 다음의 책에도 수록: 『가정사역』(목회와 신학 총서 1), 서울: 두란노, 2010, 40-56.
42) “삼일정신과 삼일영성, 그것의 현대적 의미”, 기독교문화연구원편, 『국가기념주일설교』, 서울: 한들출판사, 2009, 182-204.
43) “종말론에 대한 비판으로서 기독교 종말론”, 「목회와 신학」, 2010년 1월, 182-191.
44) “내적인 문화이해에 기초한 문화선교”, 한국문화신학학회 편, 『문화와 신학』 제5집, 2010, 365-398.
45) “사회 영화 속 교회의 모습”, 「목회와 신학」, 2010년 8월, 82-95.
46) “칼 바르트의 신론적 진술에 대한 연구”, 한국조직신학회, 『조직신학논총』 제27집 2010년, 7-42.
47) “영화 속의 미래사회와 기독교”, 한국문화신학회, 『문화와 신학』 제8집 2011년, 299-342.
48) “영화의 공공신학적인 함의와 기독교 영화의 과제”, 대전신학대학교, 「신학과 문화」 제20집 2011년, 263-295.
49) “인간이해와 내러티브 그리고 영화-포괄적인 인간 이해의 필요성과 가능성으로서 영화 내러티브”, 「長神論壇」 제43집(2011), 157-182.
50) “신학함의 한 방식으로서 미학을 위한 예비적 고찰: 미학의 필요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중심으로”, 「신학논단」 vol. 68(2012. 6), 221-254. 이 논문은 『신학적 미학과 기독교 영화 미학』(도서출판 자우터, 2012), 33-66에 “신학적 미학을 위한 예비적 고찰”이란 제목으로 바뀌어 게재되어 있음.
51) “한병철의 ‘피로사회’ 이론에 대한 기독교 신학적 고찰과 대응방안 모색으로서 안식일 개념에 대한 연구”, 「신학논단」 vol. 71(2013. 12), 195-222.
5. 신문 기고
5-1. 일반
1) “종교다원주의 논쟁에 대한 새로운 제언”, 「새누리신문」 79호 (1992. 1. 18.).
2) “목회자는 속죄양인가?” 「새누리신문」 288호 (1996. 8. 10.).
3) “날치기 통과에 대한 신학적 단상”, 「새누리신문」 311호 (1997. 2. 22.).
4) “요담설화”, 「크리스찬연합신문」, 17호 (2000. 11. 24.), 7면.
5) “마음에서 또 마음”, 「크리스찬연합신문」, 18호 (2000. 12. 19.), 7면.
6) “참여정부의 한계와 프로테스탄트 원리”, 「기독공보」(2003. 3. 15.).
7) “하나님의 전능에 대한 오해”, 「기독공보」(2003. 8. 17.).
8) “‘경계에 선 자, 중계자 역할 감당해야”, 「기독공보」(2003. 10. 25.).
9) “기독교 관점에서 본 뉴에이지”, 「국민일보」(2005. 11. 28.).
10) “현대사 거장들의 뒷면을 보다”, 「기독신문」(2012. 10. 31), 18면.
5-2. 영화칼럼
1)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 「기독공보」(2004. 6. 27.).
2)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 「크리스찬 투데이」 310호(2007. 11. 7.).
3) “대선과 <베오울프>…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 「크리스찬 투데이」 314호(2007. 12. 7.)
4) “고무줄 영성”, 「호신대 학보」 136호 (2008. 8. 26.), 5면.
5) “이미지와 현실에 대한 영화적 성찰(상)”(<영화는 영화다>), 「호신대 학보」 137호 (2008. 10. 1.), 7면.
6) “이미지와 현실에 대한 영화적 성찰(하)”(<영화는 영화다>), 「호신대 학보」 138호 (2008. 11. 5.), 7면.
7) “끝까지 지켜주는 사랑”(<사랑>), 「호신대 학보」 139호 (2008. 12.), 7면.
8) <불신지옥>, 「기독공보」(2009. 9. 6.), 26면.
9)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의 이유”(<신과 인간>), 「기독공보」(2010. 11. 6.), 26면.
10) “낯선 자와의 만남”(<만추>), 「기독공보」(2011. 3. 5.), 24면.
11) “평화의 길”(<평양성>), 「기독공보」(2011. 3. 12.), 24면.
12) “완벽을 향한 예술, 은혜를 통한 예술”(<블랙 스완>), 「기독공보」(2011. 3. 19.), 22면.
13) “말의 힘은 어디에 있는가?”(<킹스 스피치>), 「기독공보」(2011. 3. 26.), 24면.
14) “편하게 살다보면”(<달빛 길어 올리기>), 「기독공보」(2011. 4. 3.), 24면.
15) “그래도 가족이다”(<파이터>), 「기독공보」(2011. 4. 10.), 24면.
16) “사랑하는 자를 보내놓고 우리는 평안하게 살 수 있을까”(<로맨틱 헤븐>), 「기독공보」(2011. 4. 16.), 24면.
17) “부활공동체”(<Hereafter>), 「기독공보」(2011. 4. 23.), 24면.
18)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그랜토리노>), 「기독공보」(2011. 4. 30.), 24면.
19) “어린이의 양면성”(<한나>), 「기독공보」(2011. 5. 7.), 22면.
20) “무한경쟁 시대의 교회”(<체포왕>), 「기독공보」(2011. 5. 21.), 24면.
21) “5.18에 대한 기억과 교회”(<오월애>), 「기독공보」(2011. 5. 28.), 22면.
22) “우리 안의 타자와 교회의 과제”(<무산일기>), 「기독공보」(2011. 6. 4.), 24면.
23) “노인은 문제가 아니라 주제”(<그대를 사랑합니다>), 「기독공보」(2011. 6. 11.), 24면.
24) “남과 북, 그리고 삶의 진정성에 대한 기대”(<타인의 삶>), 「기독공보」(2011. 6. 18.), 22면.
25) “불신 사회와 미디어 폭력”(<모비딕>), 「기독공보」(2011. 6. 25.), 22면.
26) “용기 있는 행위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듀오>), 「기독공보」(2011. 7. 2.), 22면.
27) “모든 것이 사라져도 남아있는 것”(<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기독공보」(2011. 7. 9.), 22면.
28)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풍산개>), 「기독공보」(2011. 7. 16.), 22면.
29) “법치주의의 양면성”(<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기독공보」(2011. 7. 23.), 22면.
30) “상처에 대한 성찰”(<인 어 베러 월드>), 「기독공보」(2011. 7. 30.), 24면.
31) “절망과 희망의 이중주, 그리고 교회의 공적 책임”(<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기독공보」(2011. 8. 13.), 24면.
32)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고지전>), 「기독공보」(2011. 8. 20.), 24면.
33) “비극의 탄생, 그리고....”(<그을린 사랑>), 「기독공보」(2011. 8. 27.), 24면.
34)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시의 아픔”(<사라의 열쇠>), 「기독공보」(2011. 9. 3.), 24면.
35) “보는 자와 보지 못하는 자”(<블라인드>), 「기독공보」(2011. 9. 10.), 24면.
3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푸른 소금>), 「기독공보」(2011. 10. 1.), 28면.
37) “도가니”(<도가니>), 「기독공보」(2011. 10. 8.), 24면.
38)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진정성”(<로맨틱 크라운>), 「기독공보」(2011. 10. 15.), 24면.
39) “미디어 세상과 현실”(<트루먼 쇼>), 「기독공보」(2011. 10. 22.), 24면.
40) “역사의 주인공으로 산다는 것”(<써니>), 「기독공보」(2011. 10. 29.), 24면.
41) “로봇시대와 타자를 향한 인간의 욕망”(<리얼 스틸>), 「기독공보」(2011. 11. 5.), 24면.
42) “이런 교회가 있다”(<완득이>), 「기독공보」(2011. 11. 12.), 24면.
43) “미디어 폭력”(<아무도 지켜주지 않아>), 「기독공보」(2011. 11. 19.), 24면.
44) “은혜의 삶”(<트리 오브 라이프>), 「기독공보」(2011. 11. 26.), 24면.
45) “보는 맛의 허구”(<트루맛 쇼>), 「기독공보」(2011. 12. 3.), 24면.
46) “미디어의 관심 끌기 전략”(<네트워크>), 「기독공보」(2011. 12. 10.), 24면.
47) “소명자는 변질되지 않는다”(<특수본>), 「기독공보」(2011. 12. 17.), 24면.
48)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하얀 정글>), 「기독공보」(2011. 12. 24.), 24면.
49)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르 아브르>), 「기독공보」(2011. 12. 31.), 24면.
50) “인간은 돕는 자”(<헬프>), 「기독공보」(2012. 1. 7.).
51) “약한 자로 시작하는 삶”(<낮은 데로 임하소서>), 「기독공보」(2012. 1. 14.).
52) “진화된 거짓말인가?”(<부러진 화살>), 「기독공보」(2012. 2. 4.).
53) “소통하지 않은 확신이 직면하는 딜레마”(<밍크코트>), 「기독공보」(2012. 2. 11.).
54) “두개의 현실을 사는 그리스도인”(<뷰티플 마인드>), 「기독공보」(2012. 2. 18.).
55) “숭고함과 아름다움의 변주”(<워 호스>), 「기독공보」(2012. 2. 25.).
56) “장전되지 않은 총”(<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기독공보」(2012. 3. 3).
57) “군도와 같은 가족?”(<디센던트>), 「기독공보」(2012. 3. 10).
58) “정체성과 소명”(<사이먼 버치>), 「기독공보」(2012. 3. 24).
59) “힘과 인간 본질의 상관관계”(<크로니클>), 「기독공보」(23012. 3. 31).
60) “오늘, 우리가 살아갈 이유”(<버킷 리스트>), 「기독공보」(2012. 4. 7).
61) “자전거에 실린 희망”(<자전거를 탄 소년>), 「기독공보」(2012. 4. 14).
62) “진정한 동반자”(<언터처블>), 「기독공보」(2012. 4. 21).
63) “삶과 죽음의 댄스”(<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기독공보」(2012. 4. 28).
64) “사랑과 가족 사이에서”(<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기독공보」(2012. 5. 5).
65) “종교와 여성 인권”(<그녀가 떠날 때>), 「기독공보」(2012. 5. 12).
66) “목적이 같다면 가능하다”(<코리아>), 「기독공보」(2012. 5. 19).
67) “더 나은 삶을 위한 모험에 침을 뱉지 마라”(<이민자>), 「기독공보」(2012. 5. 26).
68) “우리는 언제 빛과 소금일까”(<토토의 모험>), 「기독공보」(2012. 6. 9).
69) “의미에 근거한 신앙과 약속에 기초한 신앙”(<순교자>), 「기독공보」(2012. 6. 16).
70) “진실한 기도와 응답의 힘”(<야곱 신부의 편지>), 「기독공보」(2012. 6. 23).
71) “평안한 신앙생활과 일사각오의 신앙”(<저 높은 곳을 향하여>), 「기독공보」(2012. 6. 30).
72) “인간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희망”(<프로메테우스>),「기독공보」(2012. 7. 7).
73) “인간의 욕망과 종교 그리고 정의”(<더 스토닝>), 「기독공보」(2012. 7. 14).
74) “무관용의 정치와 그 결과”(<두개의 문>), 「기독공보」(2012. 7. 21).
75) “돈은 인간을 숙주로 삼는 기생충이다”(<연가시>), 「기독공보」(2012. 7. 28), 12면.
76) “과거와 현실이 맞닿아 있는 곳”(<미드나잇 인 파리>), 「기독공보」(2012. 8. 4), 10면.
77) “십자가 옆의 도둑”(<도둑들>), 「기독공보」(2012. 8. 18), 10면.
78) “민생행보의 진정성”(<나는 왕이로소이다>), 「기독공보」(2012. 8. 25), 10면.
79) “이성에 대한 두려움”(<장미의 이름으로>) 「기독공보」(2012. 9. 1).
80) “현대사회에서 이웃은 누구인가”(<이웃사람>), 「기독공보」(2012. 9. 8).
81) “하나님 안에 감춰진 존재”(<미운 오리 새끼>), 「기독공보」(2012. 9. 15).
83)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상실의 시대>), 「기독공보」(2012. 9. 22), 10면.
83) “진정한 리더”(<광해, 왕이 된 남자>), 「기독공보」(2012. 9. 29).
84) “아, 한경직 목사님”(<한경직>), 「기독공보」(2012. 10. 13).
85)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간첩보다 더 무서운 것”(<간첩>), 「기독공보」(2012. 10. 20).
86) “싱글맘으로서 성공적인 육아의 세 가지 이유”(<늑대아이>), 「기독공보」(2012. 10. 27).
87) “밝은 미래를 위한 현재”(<루퍼>), 「기독공보」(2012. 11. 3).
88) “교회 개혁의 단초는 무엇일까?”(<용의자X>) , 「기독공보」(2012. 11. 10).
89) “기다림의 미학”(<늑대소년>), 「기독공보」(2012. 11. 17).
90) “사랑의 힘에 관한 판타지”(<업사이드 다운>), 「기독공보」(2012. 11. 25).
91) “작은 자가 작은 자를 돕는다”(<철가방 우수씨>), 「기독공보」(2012. 12. 2).
92) “속고 또 속는 유권자”(<MB의 추억>), 「기독공보」(2012. 12. 9).
93) “뜨거운 기억의 단편”(<남영동 1985>), 「기독공보」(2012. 12. 16).
94) “예술의 구원론적인 의미”(<피아니스트>), 「기독공보」(2012. 12. 23).
95) “마음이 가고 싶은 대로 놓아둘 때”(<우리도 사랑일까>), 「기독공보」(2012. 12. 30).
96) “가난한 자의 하나님”(<레미제라블>), 「기독공보」(2013. 1. 5).
97) “사랑을 말하는 또 하나의 방식”(<아무르>), 「기독공보」(2013. 1. 12).
98) “이성과 믿음, 삶의 이야기에 대한 두 개의 반응”(<라이프 오브 파이>), 「기독공보」(2013. 1. 19).
99)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인지부조화”(<12인의 성난 사람들>), 「기독공보」(2013. 1. 26).
100) “다문화 가정에 대한 시선과 그 한계”(<마이 리틀 히어로>), 「기독공보」(2013. 2. 2).
101) “기적을 만나는 방법”(<더 임파서블>), 「기독공보」(2013. 2. 9).
102) “작은 자에게 오히려 감사할 이유”(<7번방의 선물>), 「기독공보」(2013. 2. 23).
103) “조직과 인간”(<베를린>), 「기독공보」(2013. 3. 2).
104) “신세계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좌절”(<신세계>), 「기독공보」(2013. 3. 9).
105) “인간 본성의 마중물”(<스토커>), 「기독공보」(2013. 3. 16).
106) “중독과 거짓말의 상관관계”(<플라이트>), 「기독공보」(2013. 3. 23).
107) “도전하기까지 모든 것은 제로상태”(<터치 오브 라이트>), 「기독공보」(2013. 3. 30)
108)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파파로티>), 「기독공보」(2013. 4. 6).
109) “그리스도인 대통령”(<링컨>), 「기독공보」(2013. 4. 13).
110) “인권침해의 한 사례”(<섀도우 댄서>), 「기독공보」(2013. 4. 20).
111) “자존감”(<월 플라워>), 「기독공보」(2013. 4. 27).
112) “노인의 가능성”(<송 포 유>), 「기독공보」(2013. 5. 4).
113) “대지 위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위한 레퀴엠”(<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 「기독공보」(2013. 5. 11).
114) “욕망의 먹이사슬에서 벗어나자”(<노리개>), 「기독공보」(2013. 5. 18).
115) “서민의 삶과 꿈”(<전국노래자랑>), 「기독공보」(2013. 5. 25).
116) “식구”(<고령화 가족>), 「기독공보」(2013. 6. 8).
117) “사랑을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사랑은 타이핑 중>), 「기독공보」(2013. 6. 15).
118)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뜨거운 안녕>), 「기독공보」(2013. 6. 22).
119) “한국의 호모 사케르와 교회”(<마이 라띠마>), 「기독공보」(2013. 6. 29).
120) “대중문화 속 좀비 현상이 주는 교훈”(<월드워Z>), 「기독공보」(2013. 7. 6).
121) “백악관이 무너져야 세계가 산다”(<화이트 하우스 다운>), 「기독공보」(2013. 7. 13).
122) “현대인의 상처와 힐링”(<아이 애나>), 「기독공보」(2013. 7. 20).
123) “이야기에 대한 욕망”(<인 더 하우스>), 「기독공보」(2013. 7. 27).
124) “영원에 대한 욕망”(<더 울버린>), 「기독공보」(2013. 8. 10).
125) “또 다른 현실을 향한 용기”(<설국열차>), 「기독공보」(2013. 8. 17).
126) “미디어 비평 교육이 필요하다”(<더 테러 라이브>), 「기독공보」(2013. 8. 24).
127) “인간의 원초적인 그리움”(<그랑 블루>), 「기독공보」(2013. 8. 31).
128) “만일 우리를 감시한다면....”(<감시자들>), 「기독공보」(2013. 9. 7).
129)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일대종사>), 「기독공보」(2013. 9. 14).
130) “양극화의 비극”(<엘리시엄>), 「기독공보」(2013. 9. 21).
131) “혁신”(<잡스>), 「기독공보」(2013. 9. 28).
132) “성폭행 피해자의 고통”(<가시꽃>), 「기독공보」(2013. 10. 5).
133) “망각의 은혜?”(<소원>), 「기독공보」(2013. 10. 12).
134) “우리 안에 있는 괴물”(<화이>), 「기독공보」(2013. 10. 19).
135) “그래도 살만한 곳은 지구다”(<그래비티>), 「기독공보」(2013. 10. 26).
136) “화려한 미디어 산업의 이면”(<러브레이스>), 「기독공보」(2013. 11. 2).
137) “막을 수 없는 꿈 향한 열정”(<노 브레싱>), 「기독공보」(2013. 11. 16).
138) “스타와 괴물은 종이 한 장 차이”(<톱스타>), 「기독공보」(2013. 11. 23).
139) “SNS와 친밀함 그리고 기독교의 책임”(<디스커넥트>), 「기독공보」(2013. 11. 30).
140) “신앙의 이중성”(<사이비>), 「기독공보」(2013. 12. 7).
141) “모두가 웃는 세상을 위해”(<괜찮아 3반>), 「기독공보」(2013. 12. 14).
142) “천국 가는 길”(<집으로 가는 길>), 「기독공보」(2013. 12. 21).
143) “생각하는 삶”(<창수>), 「기독공보」(2013.12.28).
144) “돈의 가치와 땅의 가치”(<프라미스드 랜드>), 「기독공보」(2014.1.4).
145) “국가와 국민”(<변호인>), 「기독공보」(2014.1.11).
146) “남북관계는 우리에게 무엇인가”(<용의자>), 「기독공보」(2014.1.18).
147) “인간의 한계와 희망”(<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기독공보」(2014.1.25).
148) “돈은 욕망만 키울 뿐이다”(<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기독공보」(2014.2.1).
149)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겨울왕국>), 「기독공보」(2014.2.15).
150) “사랑할 때 나타나는 변화”(<남자가 사랑할 때>), 「기독공보」(2014. 2. 22).
151) “신앙을 지키기 위해 탈북한 사람들의 애환”(<신이 보낸 사람>), 「기독공보」(2014.3.1).
152) “우리는 모두 누구에게는 진짜이고 누구에게는 가짜이다”(<아메리칸 허슬>), 「기독공보」(2014.3.8).
153) “노예제는 현재 진행형인가”(<노예12년>), 「기독공보」(2014.3.15).
154) “인생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방식”(<인사이드 르윈>), 「기독공보」(2014.3.22).
155) “왜 지금 노아를 말하는가”(<노아>), 「기독공보」(2014.3.29).
156) “장르적 재미”(<세이프 헤이븐>), 「기독공보」(2014.4.5).
157) “다시 보는 ‘그리스도의 수난’”(<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기독공보」(2014.4.12).
158) “‘가족’ 유전자의 공유인가, 함께함인가”(<어거스트 가족의 초상>)「기독공보」(2014.4.19)
159) “요한이 본 예수”(<선 오브 갓>), 「기독공보」(2014.4.26).
160) “가봤자 벽인 세상”(<한공주>), 「기독공보」(2014.5.3).
161)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지도자”(<역린>), 「기독공보」(2014.5.17).
162) “악은 어떻게 태어나는가”(<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기독공보」(2014.5.24).
163) “아버지다움에 대해”(<어떻게 아버지가 되는가>), 「기독공보」(2014.5.31).
164) “악의 평범성”(<도희야>), 「기독공보」(2014.6.7).
165) “욕망의 극대화는 작은 일탈에서 시작된다”(<에너미>), 「기독공보」(2014.6.14).
166) “욕망의 대가, 노예 계약”(<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기독공보」(2014.6.21).
167 “공감, 관계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출발점”(<그녀>), 「기독공보」(2014.6.28).
168) “날마다 죽고 사는 경험”(<엣지 오브 투모로우>), 「기독공보」(2014.7.5).
169)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지기까지”(<시절인연>), 「기독공보」(2014.7.12).
170) “여성의 홀로서기”(<와즈다>), 「기독공보」(2014.7.19).
171)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해”(<리멤버>), 「기독공보」(2014.7.26).
172) “온전한 내 이름을 갖기까지의 여정”(<프랜시스 하>), 「기독공보」(2014.8.2).
173) “생명을 구하는 자는 세상을 구하는 자이다”(<어둠 속의 빛>), 「기독공보」(2014.8.9).
174) “노년의 의미”(<동경가족>), 「기독공보」(2014.8.16.).
175) “12척의 진실”(<명량>), 「기독공보」(2014.8.23.).
176) “죽음과 더불어 사는 삶의 필요성”(<안녕, 헤이즐>), 「기독공보」(2014.9.7.).
177) “존재냐 소유냐”(<루시>), 「기독공보」(2014.9.14.).
178) “열정적인 삶”(<두근두근 내 인생>), 「기독공보」(2014.9.21).
179) “한국에서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메이즈 러너>), 「기독공보」(2014.9.28).
180) “신앙의 난독증”(<지상의 별처럼>), 「기독공보」(2014.10.4).
181) “새로운 미래를 위한 길”(<쓰리 시즌>), 「기독공보」(2014.10.11).
182) “모래 위에 집을 지을 것인가”(<제보자>), 「기독공보」(2014.10.18).
183)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이 ‘정치’”(<태양은 밝게 빛난다>), 「기독공보」(2014.11.1).
184) “대중매체와 CCTV”(<슬로우 비디오>), 「기독공보」(2014.11.8).
185) “교회성장에 대한 기대와 인간 욕망의 결속”(<쿼바디스>), 「기독공보」(2014.11.15).
186) “재앙의 시대에 인간 생존의 비밀”(<인터스텔라>), 「기독공보」(2014.11.22).
187) “억울함을 풀어주소서!”(<카트>), 「기독공보」(2014.11.29.).
188) “한국교회 지도자를 향한 비판과 경고”(<제자, 옥한흠>), 「기독공보」(2014.12.6).
188) “악은 평범한 옷을 입는다”(<한나 아렌트>), 「기독공보」(2014.12.13).
189) “삶의 무게와 종교 그리고...”(<>), 「기독공보」(2014.12.20.).
190) “엄마의 의미를 탐구하다”(<우리는 형제입니다>), 「기독공보」(2014.12.27.).
191) “행복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주어지는 선물”(<꾸뻬 씨의 행복 여행>), 「기독공보」(2015.1.4.).
192) “아버지 세대를 위한 변호?”(<국제시장>), 「기독공보」(2015.1.11).
6. 서평
1) “신학방법론”, 「기독교 사상」 (489) 1999. 9, 143-155.
2) “베리 테일러의 ‘예능신학’”, 「목회와 신학」, 2008년 9월, 216-221.
7. 잡지기고
7-1. 일반
1) “황석환님께 드리는 글”, 「기독교 사상」(493), 2000년 1월, 264-273.
2) “신학함으로서의 비평”, 「기독교 사상」(495), 2000년 3월, 110-116.
3) “목회자를 위한 우정의 신학”, 「목회와 신학」 2002년 7월, 104-115.
4) “신앙과 신학의 회복과 예배”, 「목회와 신학」 2002년 10월, 104-113.
5) “생명, 그 신비에 대하여”, 「신앙세계」(415), 2003년 2월, 16-17.
6) “우리 시대 영향력 있는 영성 문학가들”, 「신앙세계」(417), 2003년 4월, 46-50.
7) “복음 안에서 바라본 웰빙문화”, 「목회와 신학」 2004년 3월, 240-243.
8) “‘두려움’이라는 문제와 그 해법으로서 ‘소망’”, 「목회와 신학」 2003년 6월, 100-109. 다음의 책에 다소 수정되어 수록: 『기독교윤리』(목회와 신학 총서 신학01), 서울: 두란노, 2010, 241-255.
9) “복음의 눈으로 본 교회의 소명”, 「목회와 신학」 2003년 9월, 76-85. 다음의 책에 다소 수정되어 수록: 『교회론』(목회와신학 총서 09), 서울: 두란노, 2012, 10-24.
10) “입술이 부정한 자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거하는 교회와 신학”, 「목회와 신학」2003년 11월, 63-73.
11) “교회는 소망 가운데 있습니다”, 「목회와 신학」 2004년 1월, 121-149.
12) “광장문화, 한국사회의 변화, 그리고 기독교”, 「목회와 신학」 2004년 6월, 230-236.
13) “성도들의 예기치 못한 죽음,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목회와 신학」 2004년 8월, 204-209.
14) “이종격투기에 대한 목양적 관심”, 「목회와 신학」 2005년 4월, 100-104.
15) “그래,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 「목회와 신학」 2005년 4월, 50-55.
16) “대중문화 속의 가족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목회와 신학」 2005년 5월, 64-71.
17) “문화선별력과 교육”, 「신앙세계」 2007년 6월, 34-36.
18) “웹2.0시대의 과제로서 ‘복음과 문화’”, 「교회와 신학」 2008년 가을호, 130-138.
19) “교회소통의 과제로서 웹2.0”, 「목회와 신학」 2008년 12월, 238-245.
20) “문화목회-토크쇼의 목회적 활용에 대해”, 「목회와 신학」 2009년 2월, 78-85.
21) “‘상상력의 시대’ 여는 기독교 영화”, 「신앙세계」 2009년 10월, 30-34.
22) “아이티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신앙세계」 2010년 2월, 64-70.
23) “TGIF시대의 선교, 그 가능성과 한계”, 「신앙세계」 2010년 10월, 64-67.
24) “한국 교회의 기독교 문화 콘텐츠 개발을 통한 선교와 목회”, 「신앙세계」 2010년 11월, 58-62.
25) “영화의 기독교적 가치”, 「기도하는 사람들」(국회기도회 30주년 기념지), 2010년 12월, 109-111.
26) “한국의 대중문화 속 동성애”, 「목회와 신학」 2011년 1월, 166-174.
27) “영상문화의 미래”, 「신앙세계」 2011년 2월, 53-57.
28) “한국 기독교 영화, 그 역사를 말하다”, 문화선교연구원, 「오늘」, 2011년 8-9월호, 34-37.
29) “추수감사절을 위한 교회교육”, 장신대기독교교육연구원, 「교회교육」, 2011년 10월, 21-26.
30) “한국 기독교 영화의 현주소와 과제”, 「신앙세계」 2011년 10월, 56-60.
31) “영화 속 남북관계와 교회의 과제”, 「목회와 신학」, 2011년 7월, 134-141.
이 글은 『기독교외 영화』, 277-289에 수정되어 게재되어 있음.
32) 지상강좌: “영화로 본 인간학(1) SF 영화의 ‘과학적 인간’ 탐구”, 「목회와 신학」, 2011년 9월, 180-189.
33) 지상강좌: “영화로 본 인간학(2) 로봇을 통해 본 인간 이해와 경고”, 「목회와 신학」, 2011년 10월, 178-185.
34) 지상강좌: “영화로 본 인간학(3) 낙태 영화에 나타난 의학기술적 인간이해”, 「목회와 신학」, 2011년 11월, 170-177.
35) 지상강좌: “영화로 본 인간학(4) 안락사 행위에 함의된 인간 이해”, 「목회와 신학」, 2011년 12월, 176-185.
36) 지상강좌: “영화로 본 인간학(5) “영화로 사람읽기”, 「목회와 신학」, 2012년 1월, 196-202.
37) 지상강좌: “영화로 본 인간학(6) “성경, 메타 내러티브의 원형”, 「목회와 신학」, 2012년 2월, 194-200.
38) “영화 속에서 보이는 이 시대의 자화상”, 「빛과 소금」 2012년 4월, 106-109.
이 글은 『기독교외 영화』, 152-161에 수정되어 게재되어 있음.
39) “레이디 가가 공연을 통해 본 기독교의 대중문화 대응법”, 「목회와 신학」, 2012년 6월, 142-149.
40) “영화를 통해 본 2012년 한국 사회”, 「목회와 신학」, 2012년 12월, 170-175.
41) “소진사회를 사는 크리스천의 철학이 있는 삶”, 「신앙세계」, 2013년 1월, 34-37.
42) “복음의 소통과 문화변혁-웹3.0시대 문화의 기본성격과 복음”, 2014년 9월, 46-49.
7-2. 영화비평
1) “<반지의 제왕>, 참여정부, 그리고 기독교”, 「목회와 신학」, 2003년 4월. 244-245.
2)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와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오해”, 「목회와 신학」, 2003년 10월, 228-231.
3) “영화 <매트릭스>, 그 기독교적 의미”, 「목회와 신학」, 2003년 12월, 228-233.
4) 문화기획 <반지의 제왕> 읽기: “<반지의 제왕>으로부터 배우는 교훈”, 「목회와 신학」 2004년 2월, 237-239.
5) “신학적 관점에서 본 <그리스도의 수난>”, 「목회와 신학」 2004년 4월, 242-245.
6) “에머리히의 <투모로우>를 보고”, 「목회와 신학」 2004년 7월, 238-241.
7) “의미 없는 기다림?”-영화 <터미널>을 보고, 「목회와 신학」 2004년 11월, 220-223.
8) “추억하며 희망하기”, 「목회와 신학」 2004년 12월, 228-231.
9) “혈연 중심적 희생과 이타주의적 희생”, 「교육목회」 2004년 가을호, 123-135.
10) “기억 속의 하나님은 소망의 능력”, 「교육목회」 Vol. 24, 겨울/봄 합본, 105-114.
11) “천국과 지옥”, 「목회와 신학」 2005년 6월, 204-207.
12) “선한 의지와 재능, 그리고 참다운 우정”, 「교육목회」 Vol. 25, 여름, 84-89.
13) “영화 속의 기독교”, 「목회와 신학」 2005년 8월, 208-213.
14) “클론도 인간이듯이”, 「목회와 신학」 2005년 9월, 198-203.
15) “모두에게 열려 있는 교회를 꿈꾸다”, 「목회와 신학」 2005년 9월, 204-207.
16) “공존의 조건”, 「교육목회」 Vol. 26, 가을, 86-91.
17) “영화 속의 장애인 1”, 「목회와 신학」 2005년 10월, 220-223.
18) “영화 속의 장애인 2”, 「목회와 신학」 2005년 12월, 218-221.
19) “영화 속의 장애인 3”, 「목회와 신학」 2006년 1월, 214-219.
20) “영화 속의 상상력, 어떻게 볼까”, 「오늘 매거진」(문화선교원) 2006년 1월, 28-31.
21) “전통과 개혁”, 「교육목회」 Vol. 27, 겨울, 68-73.
22) “종과 자유인의 차이”(<왕의 남자>), 「목회와 신학」 2006년 2월, 208-211.
23) “공권력이 추락하고 있다”, 「목회와 신학」 2006년 3월, 192-199.
24) “쌍둥이 빌딩이 여전히 서있기 위한 조건”(<뮌헨>), 「목회와 신학」 2006년 4월, 194-199.
25) “<다빈치 코드>, 무엇이 문제인가”, 「신앙세계」 2006년 5월, 106-110.
26) “진실을 은폐하는 두 개의 장애물”, 「목회와 신학」 2006년 6월, 218-223.
27) “허상을 좇는 사람들”, 「목회와 신학」 2006년 8월, 188-191.
28) “심상치 않은 ‘괴물’의 출현”(<괴물>), 「신앙세계」 2006년 9월, 100-105.
29) “성형과 인간의 욕심”(<신데렐라>), 「목회와 신학」 2006년 10월, 208-211.
30) “용서의 힘”(<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신앙세계」 2006년 11월, 72-77.
31) “지금 살아있음이 고맙게 여겨지는 삶(고난의 미학)”(<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교육목회」 Vol. 27, 겨울, 116-121.
32) “삶의 원동력, 그 이름은 욕망?”(<타짜>), 「목회와 신학」 2006년 12월, 228-231.
33)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의 진실”(<미녀는 괴로워>), 「기독교세계」 2007년 3월, 114-116.
34) “삶의 기본은 높은 학식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목회와 신학」 2007년 4월, 230-235.
35) “하고 싶은 대로 살았을 때”(<클릭>), 「기독교세계」 2007년 4월, 112-113.
36) “엄마를 위해 달리는 사람”, 「기독교세계」 2007년 5월, 114-115.
37) “기독교적인 정체성을 회복하자”, 「기독교세계」 2007년 6월, 114-115.
38) “우아한 세계, 희생의 면류관”(<우아한 세계>), 「목회와 신학」 2007년 6월, 234-239.
39) “숨겨진 햇빛”(<밀양>), 「기독교세계」 2007년 7-8월 합본, 122-123.
40) “가족의 ‘위대한’ 탄생”(<가족의 탄생>), 「목회와 신학」 2007년 8월, 224-229.
41) “‘디워’에 ‘희생’의 의미를 묻는다”(<디워>), 「목회와 신학」 2007년 10월, 230-236.
42) “영화비평의 과제와 한계”(<디워>), 「기독교세계」 2007년 10월, 104-105.
43) <에반 올마이티>, 「신앙세계」 2007년 10월, 78-82.
44) <두 얼굴의 여친>, 「기독교세계」 2007년 11월, 106-107.
45) “사람은 계획하지만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 「기독교세계」 2007년 12월, 108-109.
46)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베오울프>), 「기독교세계」 2008년 1월, 108-109.
47) “진짜 보물은 무엇인가?”, 「기독교세계」 2008년 2월, 96-97.
48) “또 하나의 기적”, 「목회와 신학」 2008년 3월, 222-228.
49)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일까?”, 「기독교세계」 2008년 3월, 90-91.
50) “돈, 일만 악의 근원”, 「기독교세계」 2008년 5월, 86-87.
51) “권력 앞에 선 인간 루터”(<루터>), 「목회와 신학」 2008년 5월, 244-249.
52) “소망의 이유”(<나니아 연대기-캐스피언 왕자>), 「목회와 신학」 2008년 6월, 229-236.
53)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시간을 달리는 소녀>), 「기독교세계」 2008년 6월, 86-87.
54) “보는 자에게 주어진 과제”(<크로싱>), 「목회와 신학」 2008년 7월, 218-224.
55) “좌절, 희망, 그리고 가족공동체”, 「기독교세계」 2008년 7-8월 합본, 90-91.
56) “전쟁의 원인들과 평화의 뿌리”(<적벽대전>), 「기독교세계」 2008년 9월, 114-115.
57)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 「기독교세계」 2008년 10월, 106-107.
58) “거룩한 무기(<신기전>)”, 「기독교세계」 2008년 11월, 86-87.
59) “양미숙론-의미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미쓰 홍당무>), 「기독교세계」 2008년 12월, 84-85.
60) “소통, 그 거룩한 이름을 위한 희생”(<블랙>), 「목회와 신학」 2009년 9월, 162-167.
61) “세상에 있으나 천국에 속한 사람”(<아바타>), 「목회와 신학」 2010년 2월, 146-154.
62) “종말 이후 남은 자들에게 희망할 것이 있다면”(<더 로드>), 「신앙세계」 2010년 2월, 100-105.
63) “근원에로의 회귀, 그리고 회복”(<위대한 침묵>), 「목회와 신학」 2010년 3월, 126-133.
64) “무엇을 회복할 것인가?”(<회복>), 「신앙세계」 2010년 3월, 132-137.
65) “두개의 시선에 대한 성찰”(<포화 속으로>), 「신앙세계」 2010년 7월, 106-113.
66) “사건을 보는 다양한 시선들, 그리고 ...”(<아이들>), 「신앙세계」 2011년 5월, 86-92.
67) “이별은 또 하나의 시작”(<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목회와 신학」 2011년 6월, 158-161.
68)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있는 십자가”(<언피니시드>), 「신앙세계」 2011년 11월, 96-101.
69) “용서”(<오늘>), 「신앙세계」 2011년 12월, 102-107.
70) “은혜의 삶”(<트리 오브 라이프>), 「신앙세계」 2012년 1월, 98-103.
71) “나의 소중한 비밀”(<마루 밑 아리에티>), 「신앙세계」 2012년 2월, 104-109.
72) “용기 있는 행위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듀오>), 「교육목회」 vol. 40(2012), 150-153.
73) “소통하지 않는 확신이 직면하는 딜레마”(<밍크코트>), 「신앙세계」 2012년 3월, 94-99.
74) “나뭇가지와 새: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신과 인간>), 「신앙세계」 2012년 4월, 102-107.
75) “너와 나, 오늘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다”(<달팽이의 별>), 「목회와 신학」 2012년 4월, 176-180.
76) “일상에서 만나는 기적”(<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신앙세계」 2012년 5월, 100-105.
77) “여성으로서 이방인이 된다는 것”(<그녀가 떠날 때>), 「신앙세계」 2012년 6월, 100-105.
78) “희망의 이유를 물을 때”(<멜랑콜리아>), 「신앙세계」 2012년 7월, 94-99.
79) “의미에 근거한 신앙과 약속에 기초한 신앙”(<순교자>), 「신앙세계」 2012년 8월, 96-101.
80)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상실의 시대>), 「신앙세계」 2012년 9월, 88-93.
81) “현대사회에서 이웃은 누구인가”(<이웃 사람>), 「신앙세계」 2012년 10월, 94-99.
82) “밝은 미래를 위해 현재는 어떠해야 하는가”(<루퍼>), 「신앙세계」 2012년 11월, 92-97.
83) “비참한 인간을 위한 애가”(<피에타>), 「신앙세계」 2012년 12월, 106-111.
84) “작은 자가 작은 자를 돕는다”(<철가방 우수씨>, <심플 라이프>), 「신앙세계」 2013년 1월, 98-103.
85) “가난한 자의 하나님”(<레미제라블>), 「신앙세계」 2013년 2월, 92-97.
86) “집단 따돌림의 역학”(<더 헌트>), 「신앙세계」 2013년 3월, 94-99.
87) “하나님 안에 감춰진 존재”(<미운 오리새끼>), 「신앙세계」 2013년 4월, 90-95.
88) “어떤 모성애”(<케빈에 대하여>), 「신앙세계」 2013년 5월, 98-103.
89) “실패한 사랑으로부터 얻는 교훈”(<위대한 개츠비>), 「신앙세계」 2013년 6월, 86-91.
90) “상처가 상처를 치유한다”(<라자르 선생님>), 「신앙세계」 2013년 7월, 98-103.
91) “어떤 가족의 일상”(<에브리데이>), 「신앙세계」 2013년 8월, 86-91.
92) “시대의 위기와 올바른 가치관”(<설국열차>), 「신앙세계」 2013년 9월, 90-95.
93) “마스터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더 마스터>), 「목회와 신학」 2013년 9월, 145-151.
94) “예술과 사랑”(<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 <마리 크뢰이어>), 「신앙세계」 2013년 10월, 76-83.
95) “<설국열차>가 말하는 위험한 세계관”(<설국열차>), 「목회와 신학」 2013년 10월, 210-215.
96) “파도와 바람”(<관상>), 「신앙세계」 2013년 11월, 88-93.
97) “선택하는 인간과 삶의 진정성”(<미스터 노바디>), 「신앙세계」 2013년 12월, 98-103.
98) “‘버니’같은 사람의 이중적인 의미”(<버니>), 「신앙세계」 2014년 1월, 82-87.
99) “신앙의 이중성”(<사이비>), 「신앙세계」 2014년 2월, 90-95.
100)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겨울왕국>), 「신앙세계」 2014년 3월, 80-85.
101) “노예제는 현재 진행형인가”(<노예 12년>), 「신앙세계」 2014년 4월, 88-93.
102) “요한이 본 예수”(<선 오브 갓>), 「신앙세계」 2014년 5월, 104-109.
103) “악은 어떻게 태어나는가”(<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신앙세계」 2014년 6월, 96-101.
104) “공감: 관계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출발점”(<그녀>), 「신앙세계」 2014년 7월, 100-105.
105) “생명을 구하는 자는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어둠 속의 빛>), 「신앙세계」 2014년 8월, 88-91.
106) “재앙의 시대에 인간생존의 비밀”(<인터스텔라>), 「신앙세계」 2014년 12월, 96-99.
8. 기타(대담, 인터뷰)
1) 대담: “위르겐 몰트만 교수와의 인터뷰”, 「목회와 신학」(133), 2000년 7월, 200-206.
2) 인터뷰: “책과 사람”(『신학과 목회 그 뗄 수 없는 관계』), 「그 말씀」(2001. 3월호), 6-7.
3) 인터뷰: “책과 사람”(『계명은 복음이다』), 「그 말씀」(2002. 5월호), 6-7.
4) 인터뷰: “이달의 프리칭 인터뷰”(『제3의 설교론』), 「그 말씀」(2004. 10월호), 8-15.
5) 인터뷰: “최성수 박사의 기독교적 영화보기”, 호신대학보, 2006년 4월 25일 제121호, 5면.
6) 인터뷰: “최성수 박사의 기독교적 영화보기”, 호신대학보, 2006년 5월 25일 제122호, 5면.
7) 인터뷰: “영화 통해 하나님과 접촉점 넓힌다”, 기독신문, 2011년 1월 19일 20면.
8) 인터뷰: “영화를 사랑한 신학자 최성수 박사 -스크린 속에서 ‘신’을 만나다”, 한국기독공보 2011년 2월 12일, 제2789호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