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王 여불위 31회
함양궁-7
“또 학문을 좋아하고 어진 선비를 존경하며, 빈객들과 널리 사귀고 있기 때문에 친한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 유명한 평원군, 맹상군, 신릉군, 춘신군이 다투어 초빙하려고 하나 몸이 묶여 있어 대신 빈객들을 보내 필담을 나누시고, 또 조나라 조정의 반 이상이 왕손과 교유를 트려고 줄을 선 형편이지요. 그러므로 왕손의 효성에 감동한 조나라 신하와 백성들이 왕손을 죽이지 말라고 이구동성으로 탄원하는 것입니다.”
여불위는 거짓말은 그쯤 해두고 또 함 하나를 바쳤다. 이건 목양부인에게 준 것보다 몇 배 더 값진 선물이다.
“왕손께선 어머니 화양부인께 효도를 다하지 못하는 게 한이라면서, 어머니께 이 물건을 전해 불효 자식의 괴로운 심정을 아뢰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또 저더러 진나라에 가거든 어머니 화양부인의 언니이신 이모님을 찾아가 부탁하면 잘 대해주실 것이라고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감격한 화양부인의 언니 목양부인은 부랴부랴 강남산 차를 내놓으며 여불위를 극진히 대접했다.
“그럼 숙소에서 기다리시구려. 내가 당장이라도 동생을 만나 이 예물을 전하리다.”
‘반은 성공이다.’
거기서부터는 뜻밖의 속도로 일이 술술 풀려나갔다. 기름 먹인 가죽이 부드럽고, 쇠 먹은 똥은 삭지 않는 법이다.
목양부인은 여불위와 헤어지는 대로 곧 궁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동생이지만 그 동생은 대국 진나라의 태자비, 잘 보여야만 한다.
“태자비, 왕손 이인이 예물을 보내왔습니다.”
“이인? 조나라에 인질로 가 있는 애 말이에요? 그애가 무슨 예물을 보내요?”
인연이 무르익기 전에는 누구나 다 심심한 사이인 법이다. 하물며 제 핏줄이 아닌 이인이 뭐가 좋아 애틋한 마음을 가질 것인가. 그저 수많은 첩들이 낳아놓은 보기 싫은 이물질일 뿐이다. 원수가 될 확률이 더 높다.
태자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목양부인은 함을 전하고 그 간곡한 효성에 살을 붙여 전했다. 눈물도 찔끔 흘렸다. 그래도 태자비는 감동하지 않았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게 치켜세우면 듣는 이의 속이 거북하다. 그래서 태자비는 듣는 둥 마는 둥 함 뚜껑부터 열어젖혔다.
“응?”
“세상에나!”
평생 한번밖에 쓰지 못할 기회라면 상대가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걸 쾌척해야 비로소 뇌물이 된다. 그야말로 단박에 오르가슴을 느끼도록 해줘야 한다.
과연 예물을 바라보는 태자비와 목양부인의 눈은 단전 깊숙이 뚫고 들어오는 오르가슴 그 이상을 느끼는 듯했다.
태자비에게 바친 예물함에서는 어마어마한 황금과 옥으로 만든 패물이 눈이 부시도록 번쩍거렸다. 물목을 읽는 태자비의 눈빛이 붉게 충혈될 정도였다.
―주나라 유왕의 비 포사가 즐겨쓰던 귀고리 1점, 주나라 왕비들이 대대로 쓰던 옥비녀 1점, 주왕실에서 쓰는 최고급 도기 5점, 오나라의 서시가 애용하던 은장도와 목걸이와 팔찌 각각 1점, 주나라에서 왕후들이 왕을 차지하려고 다툴 때 쓰는 춘약(春藥) 열 근(교접하기 반 시진 전에 술에 타 마시도록 하십시오), 황금 1백근.
태자비 화양은 입을 떡 벌렸다. 볼모살이를 하면서 무슨 돈이 있어 이런 선물을 보냈을까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사람의 이성이란 이렇게 덧없다.
商王 여불위 32회
함양궁-8
“이인이 이렇듯 나를 생각한단 말인가? 아아, 참으로 고마운 아이로구나. 언니, 여불위란 사람에게 내가 이인의 효성에 몹시 감복하더라고 전해줘요. 곧 한번 뵙자고도 하고요.”
“얘야, 그뿐인 줄 아니? 나도 이모라고 글쎄 선물을 보냈더라니까. 걔가 그렇게 착한 아이인 줄 정말 몰랐다. 왕손 스무 명 중에 그 아이가 최고다, 최고.”
목양부인은 엄지손가락을 몇 번이나 치켜들었다.
여불위는 목양부인이 태자비를 만나고 왔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지만 오로지 장사에만 열중했다. 아니, 그러는 척했다. 목양부인의 호출이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호출이 오기도 전에 태자비가 예물을 받고 좋아하더냐, 왕손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하더냐 등등 좀스럽게 캐물으면 김이 빠져버리는 것이다.
여불위가 모른 척하고 있자 예상한 대로 목양부인 쪽에서 사람을 보내와 먼저 만나자고 했다. 그렇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목양부인으로부터 태자비를 만나고 온 이야기를 자세히 들은 여불위는 검은 담비가죽옷 한 벌을 내어놓으면서 슬며시 작업에 들어갔다.
“연나라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여성용 가죽옷입니다. 부인께 썩 어울릴 것 같아 일부러 팔지 않고 준비해 왔습니다. 저희 옷을 입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왕이나 왕후는 돼야 입을 수 있는 최고급 모피다. 목양부인은 여불위가 내민 검은 담비가죽옷을 받고는 어찌나 흥분했는지 그 자리에서 입어보고는 맵시를 살폈다. 아랫사람들은 옷이 멋있다며 이구동성으로 칭찬했다. 옷이 좋기도 하지만, 그들 역시 여불위의 뇌물을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다.
“부인,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런데 부인의 동생께선 슬하에 몇이나 두셨습니까?”
목양부인이 내미는 말젖술을 한 모금 받아마시던 여불위가 마치 지나가듯이 질문을 슬쩍 던졌다. 그러나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목양부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우리 동생이 안국군의 총애를 받고는 있지만, 웬일인지 아직 아이가 없다오. 그 일로 우리 자매도 노심초사하고 있지요.”
그러라고 한 얘기이긴 하다.
여불위는 장사꾼이다. 곧 흥정에 들어갔다.
“옛말에 색(色)으로 남자를 섬기는 여자는 그 색이 쇠하면 사랑을 잃는다고 하였습니다. 더욱이 대왕이 되실 분을 섬기는 여자들로서는 더더욱 경쟁이 심하지요. 미색으로 치자면 더 젊고 예쁜 여자로 백 수레인들 왜 실어오지 못하겠습니까? 천하를 뒤져보면 말희, 달기, 서시, 하희, 포사 같은 여자가 수두룩합니다. 아니, 당장은 태자비께서 그 아름다운 몸으로 태자를 뱀처럼 휘감아 희열을 줄 수 있다고 쳐도 옥근이 늘어진 십년 뒤에도 과연 그럴 수 있습니까? 태자의 정욕은 날이갈수록 뻗쳐오를 텐데 얼굴이 주름 잡힌 이십 년 뒤에는 무슨 재주로 왕을 유혹하고, 몸에서 늙은 냄새가 나는 삼십 년 뒤에는 어떻게 이 권력을 유지합니까? 안그렇습니까?”
“그야…, 당연하지요.”
“태자비께선 아직은 태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지만 중요한 건 아들은커녕 딸조차 낳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안심할 수 없는 누란지세지요. 나중에 태자께서 다른 여자에게서 난 자식을 적자로 받아들이는 날이면 날벼락이 떨어지는 겁니다. 태자비는 왕후 자리에 오르지도 못하고 구중궁궐 저 그늘진 방으로 쫓겨나 환관고자의 아랫도리나 훔쳐보며 한숨으로 일생을 마쳐야 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식이 있고 없고가 그렇게 중요하니 말입니다.”
목양부인은 여불위가 돋운 목청에 절절이 감동했다.
商王 여불위 33회
함양궁-9
“그러게 말이오. 용한 의원을 수없이 들여 명약을 먹어보지만 번번이 허탕이라오. 요즘 들어 소양왕의 건강이 의심스러워지자 첩들이 더 난리들이라오. 어떻게든 자식을 내세워 빼앗긴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거지요. 어떤 자식이든 안국군의 눈에 들어버리는 날이면 우리 동생 태자비도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다오.”
여불위는 목양부인이 제 입으로 거기까지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다음 대사는 양책을 떠날 때부터 준비해온 것이니 풀기만 하면 된다.
“부인, 그렇다면 동생이신 태자비께서 아들을 두시면 되잖습니까? 그럼 아무 걱정이 없는 것 아닙니까?”
“아이 참, 여대인도 답답하시구려. 우리 동생이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니 문제 아니오? 여태 그 얘기를 했건만.”
답답하긴, 여불위는 대책을 다 세워두고 하는 말이다.
“낳으면 되지요. 그게 뭐 어려워요?”
여불위는 그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툭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요? 아이만 낳게 해준다면 천금인들 마다하겠소, 만금인들 마다하겠소?”
여불위는 목양부인에게 가까이 다가앉으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쓰디쓴 약 따위는 먹지 않아도 저절로 해결됩니다. 무당도 부르지 말고 점도 칠 필요가 없습니다.”
목양부인은 여불위가 아이 낳는 비방이라도 알고 있는가 싶어 바짝 귀를 세웠다.
이제 여불위가 어렵게 마련한 비책을 내놓을 차례다. 이것이 통하면 성공하는 것이고, 통하지 않으면 실패하는 것이다.
“태자 안국군의 아들 중에서 양자를 들이십시오.”
“양자요? 그러면 좋지만 어떤 년이 제 자식을 내줍니까?”
“생모가 없는 왕손도 있잖습니까?”
여불위는 은근히 이인을 찍어 가리켰다. 스무 명이나 되는 왕손 중에서 이인만이 생모가 죽고 없다.
목양부인은 금세 말귀를 알아들었다.
“아, 조나라에 인질로 가 있는 우리 이인이가 있지요?”
“그렇습니다. 이인을 적자로 삼으신다면 반대할 사람이 아무도 없지요. 이인이 적자가 된다면 태자비는 안국군의 총애를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차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왕후의 자리를 굳건히 보존할 수 있고, 또 그 아들이 왕이 된다면 태후가 되어 늙어죽도록 권세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친정일가들까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 그렇겠지요? 정말 그렇겠지요?”
“만일 적자를 세우지 못한 채 나이만 먹었다가는 나중에 안국군이 왕이 되어도 왕후가 될 수 없고, 처진 가슴과 쭈그러든 옥근으로는 왕의 사랑도 잃을 테니 그때 가서 얼마나 고적해지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이 아름다운 함양궁도 감옥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듣고보니 일이 몹시 급하구려.”
“급하고말고요. 부인, 왕손 이인이 단순히 생모가 없다고 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인은 어질고 효성스러운 사람으로 적국인 조나라에서도 도리어 큰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더구나 어머니 없이 외롭게 자란 이인은 태자비이신 화양부인을 친어머니로 생각하고 따르는 자식입니다. 태자비께서 이인을 적자로 삼기만 한다면 앞으로 무슨 고민이 있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목양부인은 손뼉을 쳤다. 장사꾼하고 귀신은 꼭 아픈 자리만 찌르고 들어온다.
商王 여불위 34회
함양궁 - 10
이튿날, 목양부인은 다시 태자비 화양부인을 찾아가 여불위의 말에 두 겹 세 겹으로 살을 붙여 전했다. 설명을 들은 태자비는 본인의 미래가 걸린 일인 만큼 목양부인보다도 더 감동했다.
“얘야, 화양아. 그 장사꾼의 말이 구구절절 옳지 않니? 네가 끝내 아이를 낳지 못하면 우리 집안까지 망하는 거야.”
“휴~. 백번 맞는 말이지, 언니. 그렇지 않아도 난 늘 앞날이 근심이라오. 지금도 엉덩이가 탱탱한 년들이 하나둘 기어들어오는데, 나중에 태자가 왕이 되면 더할 것 아니오? 내 영화도 얼마 남지 않았다우.”
자매는 뒷날을 고민하면서 의기투합했다. 동병상련으로 길은 저절로 열렸다.
“얘야, 우리 자매가 초나라에서 멀고 먼 진나라까지 시집 와 부귀영화라도 누리지 않는다면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이냐? 너나 나나 자식도 없이 늙고나면 대체 우리가 무슨 존재란 말이냐? 여불위의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급하고도 급하다.”
태자비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길밖에 없다. 여불위가 무슨 속셈으로 찾아왔는지, 이인이 정말로 여불위를 함양으로 보낸 것인지 의심할 새가 없었다. 실제로 자신의 처지가 그런 바에는 여불위든 이인이든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처지가 곧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뿐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태자비 화양부인은 태자 안국군이 찾아온 기회를 물고 늘어졌다. 아무리 총애를 받고 있다지만 안국군은 이따금 다른 첩의 처소로 들어가 색다른 맛을 즐기곤 했다. 첩마다 생긴 것이 다르고, 옥근의 위치며 입구 모양이며 깊이가 다르고, 애교가 다르고, 방술이 다르다보니 어느 한 여자가 안국군을 독차지할 수는 없다.
태자비는 대사를 앞둔 만큼 여불위가 바친 춘약(春藥)을 탄 술을 안국군더러 마시게 했다. 물론 태자비 자신은 미리 한 모금 마셔 피를 뜨겁게 달궈 놓았다. 그러고는 안국군의 안색이 붉어오르도록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면서 때를 기다렸다.
이윽고 안국군이 손을 뻗어 태자비의 가슴을 헤집고, 치마 속으로 부지런히 손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태자비는 안국군이 애가 타도록 요리조리 손길을 피했다. 그럴수록 안국군은 숨을 거칠게 쉬면서 태자비의 입술을 빨고, 엉덩이를 힘차게 끌어당겨 마구 비벼댔다. 그래도 태자비는 옷을 벗지 않았다. 도리어 안국군의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퉁퉁 부어오른 남근을 힘차게 당기고 밀고 주물렀다.
“헛, 그러다가 터질라. 어서, 어서 이리 오시오.”
안국군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리는 듯했다. 거기다가 안국군은 입술이 마르는지 몇 번이나 침을 묻혔다.
‘됐다.’
태자비는 춘약이 몸에 오르면서 자신의 몸까지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치렁치렁 걸쳤던 옷을 한 꺼풀씩 벗어던졌다. 목적이 있으면 의지도 굳어지는 법, 당장이라도 태자의 아랫도리를 물어뜯고 싶을 만큼 욕정이 솟구쳤지만 꾹 참았다. 예열이 길어야 태자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태자비 화양부인이 태자 안국군을 몸으로 받아낸 것을 헤아리자면 손가락을 폈다 오므렸다 수도 없지만, 그래도 안국군은 첩만 스물이 넘는 최강대국 진나라의 왕위 계승권자다. 게눈 감추듯 해치울 수 있는 궁녀는 손만 뻗으면 백이고 천이다. 언제고 작은 틈 하나만 벌어져도 화양부인이 쌓아놓은 색성(色城)쯤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양이 넘치도록 든든하게 먹어도 서너 시간 지나면 배고픈 것처럼 오늘 아무리 만족시켜 주어도 안국군은 내일이면 또 다른 욕망을 가질 것이다.
商王 여불위 35회
함양궁 - 11
게다가 태자의 환심을 사려는 작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미인을 수배 중이니 어느 날 갑자기 바라보기만 해도 저절로 사정이 되는 서시 같은 년이 나타나 둘 사이를 찢어놓을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오늘, 그 성을 튼튼히 쌓는 공사를 마무리해야 했다.
“어서 어서!”
애가 탄 안국군이 매미날개 같은 껍질을 살금살금 벗고 있는 화양부인을 재촉했다.
태자비는 마침내 안국군에게 몸을 던졌다. 그 역시 춘약이 오를 만큼 오른지라 도저히 더 참아낼 길이 없었다. 안국군은 온몸의 피가 하단전으로 집결한 듯 그쪽이 시뻘개졌고, 태자비 역시 가슴께에 마치 붉은 매화가 무수히 피어난 듯 여기저기 반점이 일어나고 있었다.
막아두었던 강물이 터져나오듯 안국군은 태자비를 덮치고 들었다. 그러고는 벼락이 싯누런 불칼을 내리꽂듯 내리찍는 바람에 화양부인은 그만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자지러졌다. 오늘밤 기어이 안국군을 쓰러뜨리고 이인을 적자로 세우겠다는 확약을 받고야 말겠다던 계획조차 잊어버렸다.
동궁이 떠나가도록 대사를 치르는 동안 문 밖에 대기 중이던 시녀들은 침을 꿀꺽꿀꺽 삼키면서 일어났다 앉았다 부산을 피웠다. 안국군이 “욱!” 하면서 기합이라도 주면 시녀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허리를 비틀어댔고, 태자비가 “어우” 하고 외마디라도 지를라치면 저희들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목덜미를 비비곤 했다. 하도 답답해 대기 중인 환관들이라도 훔쳐보며 양기를 느껴보려 하지만 수염 빠진 턱을 보고는 머리를 털어 저희들 스스로 진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태자와 태자비가 죽을힘을 다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나서야 시녀들은 뜨거운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아직 아직, 조금만 더.”
태자비는 몸을 일으키려는 태자를 꼭 붙들고 늘어진 양근을 옥근으로 부드럽게 죄어주었다. 흥건해진 땀을 훔치고 싶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 태자비는 냅다 울기 시작했다.
“아니, 이렇게 좋은데 왜 우시나?”
태자비는 대답 대신 울어대기만 했다. 그러다가 살그머니 태자를 밀어냈다. 한숨을 어찌나 세게 쉬었는지 태자의 양근이 그만 복숭이씨만큼 줄어들었다.
“부인! 왜 갑자기 우는 거요? 무슨 일이 있소?”
화양부인은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마음 속으로 대사를 한번 더 외워보았다. 그쯤 하고 나서 살짝 기침을 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머나먼 초나라에서 오직 태자 한 분 뵙기만 소원하면서 달려온 게 엊그제 같습니다. 하늘의 도움으로 태자를 모시고는 있지만 저는 아직 소생을 두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밤도 태자께서 훌쩍 떠나시면 저는 머나먼 고향 생각, 친정 생각으로 눈물만 흘려댄답니다.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태자께서 늘 제 곁에 계신 것도 아니고.”
“미안하오. 자주 찾으리다.”
“자주 찾아주신다 한들 열흘에 두세 번이요, 나머지는 독수공방이지요. 태자 전하, 소원 하나가 있사온데 들어주시렵니까?”
“뭐, 말만 하시오. 태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주리다.”
“어려운 건 아니지요. 매일매일 태자께서 와주시기만 학수고대하면서 방안에만 박혀 있자니 어찌나 고적한지 정말 힘이 듭니다. 다른 후궁들이야 저마다 자식을 낳아 태자께서 찾아주지 않으셔도 재미나게 웃음소리 흩날리면서 산다는데…. 그네들을 보면 볼수록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商王 여불위 36회
함양궁-12
“저도 평소에 의지가지할 자식 하나 갖고 싶은데 생모들이 내줄 리가 없지요.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니 어려서 제 어미를 잃은 왕손 이인이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이인을 친자식처럼 여기고 예뻐했더니 그나마 조나라 인질로 훌쩍 떠나가버렸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인이 인질로 떠날 때는 불쌍하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이인이? 아, 그렇지. 그 아이가 인질로 갔군.”
그래, 제 일이 아니면 자식일이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법이다.
“이인, 그 아이는 비록 인질로 조나라에 잡혀갔지만 열국의 선비들과 친분을 쌓아 지금 천하에 칭찬이 자자합니다. 하물며 우리나라가 조나라 포로 40만명을 죽였는데도 조나라 왕은 감히 이인을 죽이지 못할 정도였답니다. 태자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면 이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유달리 저를 잘 따르던 이인을 제 자식으로 삼고 싶습니다. 어미 없이 자란 이인에게 따뜻한 어미의 정을 나눠주고 싶고, 저 또한 그 아이의 효성을 받으며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태자 전하, 그러니 이인을 저의 친아들로 정해 주십시오. 그러면 한결 외로움이 가시겠습니다.”
어미 없는 이인을 친자식으로 입양하겠다는 말이니 안국군으로서야 반대할 이유가 별로 없다.
태자는 무슨 소원을 말하려고 이렇게 사설이 길까 긴장하다가 태자비의 소원이 겨우 그 정도인 걸 알고는 껄껄 웃으면서 부인을 위로했다.
“소원대로 이인을 당신 소생으로 올립시다. 그래, 이인이 당신 아들이오. 이제 외로워하지 않을 거지요?”
지금은 화양부인이 태자의 정식 비이니 그 아들은 곧 적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이인이 나중에 꼭 태자가 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것만은 틀림없다.
기왕지사 한 고지를 점령했으니 한번 더 다짐받을 말이 있다.
화양부인은 안국군의 속곳을 찾아 애들처럼 하나둘 입혀주면서 대사를 읊었다.
“저한테 그래 놓고 나중에 다른 후궁이 그 자식을 적자로 정해달라고 하면 마음이 흔들리시지 않을까요? 두렵고 두렵습니다.”
그러다가 쪼그라든 안국군의 양근을 아프도록 톡 쳤다.
“너, 날 배신하지 않을 거지? 배신하면 확 물어뜯을 거야.”
안국군은 그러는 화양부인을 끌어당겨 엉덩이를 푸짐하게 껴안았다.
화양부인도 맹랑하고 빈틈이 없는 여인이다. 뒷날까지 보장을 받으려는 것이다.
“내 말을 믿기 어렵다면 부신(符信)의 맹서(盟誓)를 새겨 주리다. 그럼 안심이겠지요?”
태자 안국군은 ‘적사이인(嫡嗣異人 ; 왕손 이인을 적자로 삼는다)’ 넉 자를 목판에 새기고 그걸 반으로 쪼개어 둘이 나눠가졌다. 어느 맹서에나 들어가듯이 ‘적사이인’ 부신에는 ‘하늘이여, 제가 이 약속을 지키지 않거든 천벌을 내려주소서’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화양부인은 이 부신을 받아들고도 한술 더 떴다.
“우리 아들 이인이 아직도 조나라에 볼모로 있잖아요. 그런데 날마다 전쟁은 그치질 않으니 겁이 나서 죽겠어요. 그 아이나마 죽으면 난 어떻게 해요?”
하긴 그렇다. 아무리 이인을 적자로 세운들 화가 난 조나라 왕이 인질을 죽여버리는 날이면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진나라의 소양왕은 오로지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하지 인질 하나쯤 죽는 건 일절 고려하지 않는 냉혈한이다.
“전황을 보아가며 부왕께 청하리다.”
이쯤 해서 이날 태자비 화양부인의 작전은 마무리되었다.
태자비 화양부인은 이 사실을 즉시 언니인 목양부인에게 알리고, 목양부인은 그 밤으로 사람을 놓아 여불위에게 통지해 주었다.
商王 여불위 37회
함양궁-13
여불위는 궁중 작업이 대략 끝나자 식객 이사를 불러 밀지를 내렸다.
“최소한 밑지는 장사는 면했네.”
“본전 장사는 손해라고 늘 말씀하셨잖습니까? 이익이 나긴 나는 건가요?”
“안국군이 곧 연회를 열어 나를 초대할 걸세. 그때 나는 양책의 명의 화독을 데려가 태자 부부의 안색을 살필 거라네. 그러는 한편으로 이사 자네는 낙양에서 영입한 궁녀 취한선과 환관 요진을 데리고 함양을 떠나게. 취한선은 양책으로 보내 거기 머물고 있는 불덩이, 소나기, 여름무지개, 푸른물결 등 미인 넷을 훈련시키도록 하게.”
“방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방술은 기본이고 황실의 예법을 배워 익히라는 말일세. 우리가 가거하고 있는 미인들을 갈고 다듬는 건 물론이요, 전국(戰國) 최상품으로 팔 수 있도록 그에 맞는 학습을 시키란 말일세. 예법은 유가(儒家)들이 밝으니 유가 출신 식객 하나를 붙여 빈틈없이 가르치도록 하고, 시경이나 율려를 가르쳐 궁중 연회에서도 돋보이도록 연습시켜야 하네. 앞으로 궁중에 팔 수 없는 여자는 결코 가거하지 않을 참이네.”
태자를 팔고, 왕을 팔고, 나라를 파는 장사를 하는 만큼 그가 취급하는 물목은 모두 다 그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어용(御用) 어물(御物)이 될 수 없다면 이젠 거들떠볼 필요도 없다.
“또 환관 요진은?”
“아, 그 환관은 한단성 총대궁으로 보내 영이인에게 궁중 법도가 몸에 배도록 가르치라고 하게. 이인은 궁에서 떠난 지 오래되어 예를 잃었을 것이고, 혹 기억이 난다 해도 함양궁의 예법에는 오랑캐 습속이 많이 남아 천하를 아우르기에는 모자람이 있지. 그리고 자네는 한단까지 가서 전에 우리 연환옥을 산 대부 조획을 찾아가 영이인이 진나라 태자 안국군의 적자가 되었다고 귀띔하게. 그러면 소문이 퍼지고, 조나라의 대접도 달라지겠지.”
“그럼 곧 떠나지요.”
“시세를 보아가며 알아서 할 일은 알아서 처리하게.”
여불위는 이사에게 비용으로 백금을 건넸다. 말하자면 공작금이다.
이사는 곧 낙양성 주 왕실 출신의 환관 요진과 궁녀 취한선을 데리고 함양성을 떠났다.
이제 여불위가 할 일은 안국군의 초대에 응해 친선을 도모하는 것뿐이다.
‘다 잘 되어가고 있어. 이 장사의 끝이 어디일까? 영이인이 태자가 되는 것? 언젠가는 그가 왕이 되는 것?’
여불위의 생각은 일단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영이인이 왕이 되는 그 이상을 상상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세상 일은 인력으로 되지 않는 일도 있거니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법이다. 상상 가능한 것이란 어디까지나 현재일 뿐이지 미래는 인간의 상상 밖에 있는 것이다. 개인의 미래조차.
며칠 뒤 과연 태자궁에서 연락이 왔다. 동궁으로 와서 함께 저녁을 먹자는 전갈이었다. 여불위는 채비를 차렸다. 화양부인과 목양부인에게는 그럴 듯한 뇌물을 바쳐 마음을 돌려놓았지만, 안국군에게는 좀더 색다른 선물을 준비했다.
여불위가 일행을 이끌고 동궁에 이르니 태자 안국군과 태자비 화양부인은 문밖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여불위를 맞았다.
“여 선생, 어서 오십시오.”
“전하,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여불위는 태자와 태자비를 따라 연회장으로 들어가 주빈석에 앉았고, 그 옆으로 화독이 앉았고, 또 그 옆으로 여불위의 함양 집사가 자리했다. 태자는 궁중음악을 잠시 멈추게 하고 좌중을 향해 여불위를 기리는 찬사를 큰 소리로 읊었다.
商王 여불위 38회
함양궁 - 14
“여불위 선생은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우리 아들 영이인을 가르치고 길러 주신 귀인이십니다. 지금까지는 진나라 왕손 중 한 명을 거두신 것이지만 오늘 이 시각 이후부터 여 선생은 진나라 태자의 적자를 가르치는 분입니다. 하여 이 자리를 빌려 여 선생을 태부(太傅)로 모시고자 합니다. 장차 나를 이어 이 나라의 왕이 될 것이니 모쪼록 성심성의껏 제 아들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여불위는 태자의 입에서 태부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장사의 반은 성공했다고 확신했다. 태부란 자리는 예사 자리가 아니다. 저 유명한 관중과 포숙의 일화도 차기 제후가 될 사람을 서로 옹립한 데서 출발한다. 포숙은 제나라 양공의 동생 규의 스승이 되고 관중은 소백의 스승이 되었는데, 나중에 규가 왕이 되자 포숙은 관중을 불러 재상을 맡겼고, 그 덕분에 규는 춘추시대의 패자인 제환공이 되었던 것이다.
‘아, 나도 언젠가는 관중 같은 재상이 될 수 있단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번 장사는 대박이 나는 것이다.
여불위가 화답할 차례다.
“태자 전하 내외분께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태자 전하께서는 그간 타국에 인질로 잡혀 외로이 지내는 왕손을 보살펴온 제게 태부라는 무거운 직책을 내려주셨습니다. 이에 저는 태자 전하께 세상에 둘도 없는 예물을 드림으로써 신하의 도리를 다하고자 합니다.”
양책의 집사는 미리 준비한 큰 상자 두 개를 여불위 앞으로 옮겨다 주었다.
여불위는 먼저 큰 상자 한 개를 열어 그 안에 든 물건을 꺼내들었다.
“태자 전하, 진나라는 장차 어지러운 전국(戰國)을 통일하여 천자의 나라로 재건국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하늘의 징표를 바치고자 합니다. 여기 이 물건은 황제가 탁록에서 치우와 싸울 때 썼던 지남거로 낙양성에서 어렵게 구한 것입니다. 수천년간 수장고에 잠들어 있던 이 지남거가 바깥세상으로 나온 까닭은 이 천기(天機)의 주인인 하늘만이 아실 것입니다. 탁록의 들판에서 전쟁의 신 치우가 먼지 폭풍을 일으키면서 공격해올 때 황제는 이 지남거를 이용해 방향을 잃지 않고 적과 싸워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 지남거는 적의 어떠한 공격에도 중심을 잃지 않고 꿋꿋이 나라를 지켜낼 수 있는 것으로, 천자가 남면(南面)하듯이 언제나 천하만민의 북두성이 될 것입니다.”
여불위가 지남거를 높이 들어 올리자 태자 안국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예로부터 천자의 징표는 하늘이 낸다고 하여 매우 소중히 여기는 법이다. 기린이나 봉황이 나타나는 등 조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주나라의 아득한 시조요, 중원 모든 나라의 전설적인 아버지인 황제가 쓰던 지남거가 자신에게 돌아오다니, 안국군은 너무나 감격해서 감사의 말조차 하지 못하고 연신 지남거만 들여다보고 매만졌다.
‘뇌물이란 기왕 쓸 바에야 받는 이가 까무러치도록 써야 한다. 받는 이가 상상할 수 있는 물건은 뇌물이 될 수 없다.’
여불위는 또 한 상자를 열면서 다시 안국군을 향해 말했다.
“여기 이 물건은 황제의 적으로서 한때 천하를 진동시켰던 전쟁의 신 치우가 썼던 동두철액(銅頭鐵額)입니다. 동두철액을 한 치우가 말을 타고 나타나면 적은 물론이요, 귀신들까지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이 진귀한 신물은 천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하늘의 물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어 감히 비장하고 있다가 태자께 바치니 부디 천자의 위세를 천하에 떨쳐 주십시오.”
안국군은 입이 떡 벌어져 도무지 다물 줄을 몰랐다. 천자라니. 비록 주나라가 쇠하긴 했으나 천자국은 주나라요, 진나라가 비록 강성하긴 하나 주나라의 제후국일 뿐이다. 그런데 여불위는 천자를 운운하고 있고, 그것도 그의 아버지 소양왕이 아닌 태자 자신을 향해 말하고 있잖은가. 자신이 장차 전국을 통일하고 주나라를 잇는 대제국을 건설한단 말 아닌가.
商王 여불위 39회
사랑하므로 팔 수 있다 - 1
안국군은 동두철액을 받고는 좌중을 향해 건배를 하자고 일어섰다.
“자, 전국칠웅을 통합하여 진 제국을 세우는 그날까지 함께 달려갑시다! 진 제국 만세!”
너무 앞서가는 말이긴 하나 태자 안국군은 이미 흥분한 상태였다. 이어서 태자비 화양부인도 여불위를 위해 장황한 덕담을 토해냈다. 여불위를 부르는 말도 이제는 여 대인이니 거상이니 하는 재야의 용어가 아니고 진나라의 어엿한 관직인 태부가 되었다.
“태부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건배하십시다.”
태자비 화양부인이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었다. 어쩌다가 강대국 진나라의 태자가 일개 장사꾼 여불위를 가리켜 적자의 태부로 삼고, 태자비까지 나서서 그의 건강을 축원한단 말인가. 불과 반 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이다.
‘내게 대운이 몰려오고 있다.’
여불위는 기세를 몰아 안국군과 화양부인에게 꼭 필요한 말 한 마디를 숙제처럼 던져주었다.
“태자 전하, 사신을 속히 조나라로 보내어 인질로 잡혀 있는 아드님을 구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무리 잘 모신들 왕손은 적에게 매인 인질일 뿐입니다.”
여불위의 청원에 안국군은 그쯤은 일도 아니라는 듯 호탕하게 대답해주었다.
“걱정마시오. 멀어도 이 달 안에 부왕께 주청하여 사신을 내겠소. 부인, 안그렇소?”
태자가 나서서 인질로 잡혀 있는 영이인을 데려오겠다고 장담하자 화양부인도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좋아했다.
이날 연회 끝에 여불위는 대취해서 숙소로 돌아갔다.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 영이인은 이미 태자의 적자가 되었고, 이사가 한단으로 떠났으니 그의 기화 영이인을 잘 간수할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시간만 적당히 흘러주면 저 늙은 소양왕이 알아서 죽어줄 것이고, 태자가 왕이 되면 영이인은 저절로 태자가 된다. 뭐, 도전이 없지야 않겠지만 천하의 여불위가 지키는데 누가 엿보랴 싶었다. 태자가 된 영이인을 앞세우면 여불위의 장사는 끝없이 번창할 것이고, 이따금 전쟁터에 식객들을 내보내면 그 이익을 어찌 다 계산하랴.
“핫핫핫!”
잠을 자면서도 여불위는 몇 번이나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튿날 여불위는 함양성에서 벌인 일을 모두 정리해놓고, 어제 동궁에 같이 들어갔던 의원 화독을 불러들였다.
“자네가 보니 안국군은 성군이 될 만하시던가?”
“충분히 그럴 만한 상호이나 건강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습니다.”
“건강이?”
그러고는 웃음을 참지 못해 조금 흘리고 말았다.
‘이런, 속마음을 들켜서는 안되는데.’
“그건 자네가 잘못 본 거야. 일국의 왕이 되실 분인데 천하의 명의가 주변에 득실거릴 것 아닌가. 괜한 걱정 말게나. 태자비는 어떠시던가?”
“태자비는 아주 건강해 보이십니다.”
화독이 의원으로서 안국군의 얼굴을 보았으니 그리 크게 잘못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건강이 걱정된다고 했으면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이인이 내 예상보다 더 빨리 왕이 될 수 있겠군. 영이인이 왕이 된다? 흠, 따분할 때마다 그 이익을 계산이나 해봐야겠군.’
여불위는 화독에게 마음을 들키기 싫어 그 정도로 얘기를 마무리짓고 짐을 챙겼다.
구매자의 의사가 확인됐으니 물건만 확실히 다듬어 전달하면 장사는 끝나는 것이다.
商王 여불위 40회
사랑하므로 팔 수 있다 - 2
여불위는 그간 함양성에서 안면을 닦은 사람들을 두루두루 살펴보고, 또 함양 집사에게 세작을 몇 붙여 왕실의 동정을 살피게 하고는 마침내 본점이 있는 한나라 서울 양책으로 돌아왔다.
여불위는 아버지께 경위를 보고하고 따로 천금을 챙겼다.
“아버님, 소자는 진나라 왕손의 태부가 되었습니다. 장차 이 왕손은 태자가 될 것이고, 더 기다리면 왕이 될 것입니다.”
그러고나니 아버지는 두말없이 천금을 쓰라고 권했다. 여불위는 이 돈에 수천금을 더 합쳐 가지고 한단으로 가 영이인을 확실히 잡아둘 셈이었다. 물건을 확실한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장사가 안되기 때문이다. 영이인의 주인은 여불위다, 이 사실을 천하 사람들이 다 알도록 해야 한다.
“아들아, 이곳 식객들을 모두 한단으로 옮겨라. 거기서 세를 불렸다가 왕손과 함께 함양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양책은 이제 네가 살 땅이 아니다.”
그 말이 옳다. 큰 장사가 걸렸으니 본점도 옮겨야 한다.
여불위는 양책 본점을 한단으로 옮기고 양책에는 아버지를 머물게 하여 지점으로 관리하도록 안팎으로 단속을 해놓았다.
대략 양책의 일을 정리하고 나서 여불위는 그가 특별히 아끼는 불덩이와 소나기, 여름무지개, 푸른물결 네 미인을 불러 그간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낙양 출신의 주나라 왕실 궁녀 취한선이 어지간히 닦달을 해대는지 미인들은 몹시 지쳐 있었다.
“취한선, 오늘부터는 내가 직접 살펴볼 테니 그리 알고 쉬엄쉬엄 가르쳐주구려.”
“그렇다면 오늘은 여름무지개를 살펴주십시오.”
“난 불덩이를 먼저 보고 싶소. 가장 아끼는 아이요.”
“불덩이는 안됩니다. 원로에 여독이 있으실 텐데 불덩이하고 교접을 하셨다가는 자칫 복상사를 하실 우려가 있으십니다. 오늘 같은 날은 여름무지개가 적합합니다.”
여름무지개며 푸른물결은 그야말로 가거하기 위해 처음 살펴볼 때 접해보고는 지금까지 구경도 하지 못한 미인들이다.
“그건 왜 그렇소?”
“태부께서 맡긴 여자들은 저마다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덩이는 열이 많아서 겨울이나 한밤중에 취하면 약이 되나 그렇지 않으면 독이 됩니다. 이 아이의 옥근을 열어보면 그 입구가 마치 토라진 입술처럼 좁고 안의 근육은 마치 소라처럼 굽이굽이 꿈틀거립니다. 질의 신축성과 유연성이 뛰어나 상대하는 양기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조리 빨아들입니다. 불덩이에게 옥근으로 술을 빨이들이는 훈련을 시켰더니 어제는 한 말을 먹었습니다. 저는 불덩이의 특이한 옥근 구조를 보고는 그 옛날 상나라를 망하게 한 경국지색 달기가 환생한 것이 아닌가 놀랐습니다. 즉 달기는 양근을 꼭 물고 놓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 속살로 남성의 뿌리를 부드럽게 핥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도 저절로 사정을 유도했다는데, 불덩이는 불과 대여섯 번 연습으로 그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뭣이? 나없는 동안 불덩이한테 태운 놈이 있어?”
불덩이는 여불위가 아끼고 아끼는 미인으로 팔아보겠다는 마음조차 먹어본 적이 없다.
“아, 아닙니다. 불덩이가 나무로 깎은 남근을 한번 물면 웬만한 장정이 나서서 뽑으려 해도 잘 뽑히지 않을 정도로 힘이 좋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고도 불덩이는 옥근 속이 어찌나 뜨거운지 그 열꽃이 남성의 얼굴에까지 퍼진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곤란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며칠 기다리소서.”
여불위는 ‘그럼, 그렇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름무지개는 왜 오늘 같은 날 적합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