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1집을 맞는 가람시조문학회지 {가람시조} 간행 역시 이런 일련의 가람 사업과 긴밀하다.
이에 이르러 {가람시조}는 파격이 난무하는 이 시기의 시조계에
가람의 시조 정형을 더욱 지키고 이어가는 데 힘을 쏟고자 한다.
그게 정지용이 말했듯 시조의 맛깔스러움이 시조 삼장에 있음을 들추는 일이다.
시조는 맞춤 정형이며 갖춤 시조가 아니다.
- 박영학 가람시조문학회장의 '책머리에' <가람사업을 기리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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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時調}는 3행 배행을 정형으로 세운 잡지입니다.
- 판권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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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 강성효
하늘만 바라던 벼 고개를 숙였구나
건들건들 과목들도 허리를 굽혔구나
가을의 아름다움은 엎드림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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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 김준
적막 속 숨어있는 도봉산 골짜기에
바람은 전보다도 넘치지 아니하고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물소리만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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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되면/ 김태자
팔십의 이웃 노인 비틀대는 발걸음
반짝이던 두 눈은 갈 길을 마냥 잊고
자식들 먼 거리 두고 노을 속에 외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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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 박영숙
들에는 벼포기들 휑하니 잘려나고
뺄셈공부 마친 나목 옷 벗어 추운 겨울
으스스 우는 바람에 움츠려진 내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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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오르며/ 박영학
하늘로 가는 길을 지금 곧 알려줘요
알았어 그렇지만 지름길은 생각 않니
글쎄요 옛날 한때는 지상에서 찾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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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눈이콩/ 심성보
눈알만 남겨놓고 어디로 달아났나
그 많던 쥐란 놈은 외톨이 쥐눈이콩
배고파 곡식을 찾아 때굴때굴 깜장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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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와 아바타/ 이정원
가만히 눈 감으면 영사기가 돌아갔다
한 생애 영화 한 편 주인공은 나였으니
흔들면 꽃으로 피는 젊은 날의 내 아바타
수런대던 발자취를 눈금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내리막길 슬금슬금 겁이 나고
오르막 그때가 좋았지 막걸리 들이키던
거울을 마주하고 비로소 나를 본다
더러 맺은 열매 속에 희뿌연 씨앗들이
미완의 종장 한 줄로 잔 속에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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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소묘/ 이준구
노상 깨어나서 맨살로 살고 있다
발길에 짓밟혀도 곧바로 일어선다
슬픔을 말하지 않지만 피가 도는 목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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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란시대(龍卵時代)/ 허일
어머니! 그 이름을 파는 자 누구더뇨
유방 망가질라 옥문이 헐거울라
대리모 태반을 빌어 쑥 뽑아낸 금자동이
둥개둥개 천하 없는 용의 알 떠받들 듯
내 새끼 기 죽인다 선생님 뺨 후리고
이민 가 시민권 코에 걸고 병역 기피 비웃다
줄줄이 낙하산 타고내린 용의 알들
천지개벽! 기염 토하며 여의주를 굴리다가
북핵이 천둥치는 속 기상도를 살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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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소리/ 황다연
도포 입은 유생(儒生)들 한자리 모이는 소리
풀 먹인 모시옷 널어서 말리는 소리
명상의 누각 스치는 하현달 옷자락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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