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어머니
3장 '어린양 혼인잔치'는 세계를 구원하는 등불
4. 오로지 나만이 하늘신부인 것을
얼마 후 믿음이 충실한 '오 집사'라는 식구가 낙원상가 2층의 옷가게에 바느질을 도와주러 갔습니다. 옷가게 주인은 '기도 할머니'라 불리는 원로 식구였는데, 남자 옷 한 벌을 짓고 있었습니다. 오 집사는 그 옆에 앉아 재봉틀을 돌리며 무심히 물었습니다.
"누구 옷을 짓는 거예요?"
"문 선생님 옷을 짓고 있어요. 약혼식 때 입을 옷이예요."
오 집사는 깜짝 놀라 다시 물었습니다
"신부가 정해졌나요?"
"날짜는 정해졌는데 신부는 아직 안 정해졌어요. 어쨌든 조만간 식을 올려야 하니까."
오 집사는 '과연 신부는 누구일까?' 이리저리 짚어 보았으나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과 계시를 자주 받는 분이었습니다. 그날도 기도를 하다가 계시를 받았습니다.
"하와가 16세에 타락했기 때문에 하늘신부는 20세 전이어야 한다."
그때가 1959년 가을이었습니다. 오 집사는 참어머니를 맞이하기 위해 7년이나 정성을 들였는데 그제야 하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하늘신부는 정말 20세 전이어야 합니까?"
끊임없이 되묻자 한 줄기 섬광처럼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대략 16세 전후의 한학자가 있었는데······· 나는 왜 옆에 두고도 알지 못했을까!"
그날 밤 10시가 넘어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노량진행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오는데, 하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학자가 된다!"
"학자가 된다!"
하늘의 계시가 연이어 가을 밤하늘에 파장으로 밀려왔습니다. 오 집사는 밤 11시가 넘어 어머니가 거처하는 노량진 집에 들렀습니다.
"순애야 자니?"
"아직 안 자, 들어와!"
"네 딸이 몇 살이지?"
거두절미한 질문에 어머니는 아닌 밤중에 무슨 홍두깬가 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습니다.
"밤중에 갑자기 와서 내딸 나이는 왜 묻니?"
"다른 말 하지 말고 어서 말해 봐."
"올해 열일곱 살이지, 만으로 열여섯!"
"생일은?"
"음력 1월 6일, 43년생이야. 생일은 선생님과 한날이고 시는 인시.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인데?"
오 집사는 어머니와 북한 고향에서부터 오랫동안 같이 신앙생활을 해온 동지이자 나이가 같은 친구였습니다. 게다가 두분의 어머니 역시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교회에서 일하다 몸이 쇠약해졌을 때도 노량진 자신이 살고 있는 곳 맞은편에 어머니의 거처를 손수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튿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오 집사는 다시 낙원상가를 갔습니다. 일하는 동안 마음은 온통 콩밭에 가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자마자 곧장 장안에서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명성이 난 역술인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주를 보더니 그만 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이분들 나이 차이는 많으나 천생배필입니다. 천하에 둘도 없는 배필로, 좀처럼 보기 드문 하늘의 사주입니다."
오 집사는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곧바로 교회로 달려가 문 총재에게 말씀을 올렸습니다.
"홍순애 식구의 딸 한학자가 하늘신부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문 총재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이미 문 총재 주변에 제자들에 의해 추천된 신부 후보자들이 많았기에 나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독생자는 하늘의 독생녀와 성혼을 해야 하고, 독생녀를 알아보고 찾는 것은 독생자의 사명이자 본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집안이 좋고 학벌이 좋다 하더라도 하늘이 예비한 독생녀가 아니면 독생자와 성혼할 수 없습니다. 세속적인 나이로는 어렸지만 하늘의 대한 내마음은 이미 확고했습니다. 나는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나는 창가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소리를 듣고 반가운 소식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즈음 밤에 몽시는 물론이고 청명한 하늘에서도 파도의 물결처럼 쉼 없이 계시가 내렸습니다.
"때가 가까웠느니라."
어릴 적부터 자주 듣던 하늘의 음성이었습니다. 나는 귀인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리듯 책을 덮고 기숙사를 나섰습니다. 아침에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전갈을 받았던 터이기도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널 때면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을 건넌다는 것은 이제까지와는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아닐까?' '저렇듯 도도하게 흐르는 강의 표면과는 달리, 강의 내면은 얼마나 수많은 사연을 끌어안고 소용돌이치고 있을까?' '저 내면이 바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심중과도 같지 않을까?'
어느새 버스에서 내려 발걸음은 노량진 언덕 위의 집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비탈길을 오르자 한강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이마를 스쳤지만, 겨울답지 않게 화사한 햇살이 나의 발걸음을 이끌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 당신의 편찮은 건강은 안중에도 없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여셨습니다.
"교회에서 기별이 왔다. 급히 들르라는 전갈이다."
나는 그 소식이 이미 하늘에서 예비하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내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처음 문 총재를 만났을 때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문 총재가 유난히 젊고 온화한 모습으로 꿈에 나타났습니다. 하늘의 계시 또한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그날이 가까워졌으니 준비하라."
그것은 하늘의 엄한 훈령이었습니다. 나는 완전한 무아(無我)의 심정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왔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지, 섭리가 무엇이든지, 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당신이 원하시는 소명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소명을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하늘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았기에 내게 주신 사명을 감사히 받아들였습니다.
'어린양 혼인잔치'라는 예감과 함께 또다시 하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어릴 적부터 길 가던 스님이나 도인들이 나를 보고 증거했던 것처럼 "우주의 어머니, 때가 이르렀다"는 음성이 마치 징소리처럼 허공에 파문을 일으키며 들려왔습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니, 창세 전부터 우주의 어머니를 기다려 왔음이라."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앞으로 전개될 앞날을 깨닫고 담담한 심정으로 기다렸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귀로 들었습니다.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과 수시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려움에 봉착하거나 결단을 내려야 할 때마다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셨습니다.
1960년 2월 26일, 겨울이 물러가고 봄기운이 감싸던 날, 나는 청파동 교회로 갔습니다. 그 만남은 하늘의 신부를 결정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문 총재와 나는 아홉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림도 그려 보여 드렸습니다. 나는 대담하면서도 또박또박하게 나의 소망과 포부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야곱이 요단강가에서 받은 축복을 떠올리면서 "하늘의 자녀를 많이 두겠다"는 말도 당당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축복한 하늘의 뭇 별과 바다의 모래알같이 지상의 모든 인류를 선한 자녀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리아 산상에 오를 때,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제물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셨다면서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어린 나이임에도 처해진 상황을 판단하고 자신이 하늘에 바쳐질 제물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삭이 장작더미에 누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순종했듯이, 하나님께서 나를 하늘신부를 준비해 오셨던 것은 하늘의 섭리요 예정임을 깨닫고 의문을 갖지 않았습니다. 단지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하늘의 음성을 나는 무아의 경지에서 받아들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놀랍다는 듯 말했습니다.
"평소에 늘 유순하고 침착한 너에게 그런 담대함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그러나 성혼은 담대함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혈통을 번성하기 위해 참어머니는 선의 자녀를 많이 낳아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20대를 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충신의 가문이어야 하고, 3대가 헌신하는 깊은 신앙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일찌기 문 총재가 40세를 앞둔 3년 전부터 몇몇 미혼 여성 신도들은 저마다 좋은 조건을 내세워 본인이 신부로서 적임자임을 자처했습니다. 특히 30세 전후 여성들의 꿈이 높았습니다. 문 총재는 성혼 날짜를 미리 정해 놓았음에도 신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독생녀만이 우주의 어머니가 되기 위한 어린양 혼인잔치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세계를 구원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결심해야 문 총재도 참부모가 되기 위한 자리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나는 문 총재를 독생자로 맞이하여 하늘부모님의 뜻을 이뤄 드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신부, 우주의 어머니로서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소명이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전개될 그 노정이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험난한 가시밭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 사명을 반드시 이루겠노라 다짐했습니다.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 당내에서 복귀 섭리를 끝내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다짐했습니다.
"하늘부모님이 이루시려는 뜻을 반드시 이뤄 드리겠습니다."
그날 이후 나의 모든 삶을 그 다짐 하나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16세 한학자'가 신부로 택정되었다는 소식이 교회에 전해지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았고, 당황스러워하는 이도 많았습니다.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기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나는 4년전 문 총재가 말했던 '희생'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내게 주어진 길을 가겠다고 마음의 각오를 다졌습니다.
외할머니의 선조 조한준은 나라를 위해 헌신했을 때 "하늘의 공주를 보내겠다"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하늘은 그 정성에 보답해 우리 집안이 충정의 가문으로 이어지도록 택정했습니다. 신앙심 깊은 외할머니로부터 어머니가 태어났고, 어머니를 통해 내가 태어났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독생녀를 보내기 위한 하늘의 뜻이 조한준 선조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되어 나에게서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외동딸 독생녀로서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굳은 신념과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장벽을 뛰어넘어 민족과 인종을 화해시킬 수 있는, 마치 크고 작은 강물을 조건 없이 포용하는 바다와 같은 인자함을 지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모시고 부모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갈 곳 잃은 인류를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가슴 깊이 간직한 채 하늘이 뜻하신 소명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 길만이 참다운 하늘신부요, 참어머니가 되는 노정입니다. 나아가 하늘의 섭리를 이끌어갈 수 있는 우주의 어머니이자 평화의 어머니가 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