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 내부구조의 주요부분은 아궁이와 고래입니다.온돌은 연료가 아궁이에서 타서 부넘기를 통해 열과 연기를 고래로 이끌어 들이는 구조로 방고래로 들어가면서 급경사를 이루어 높아지다가 다시 약간 낮아지는 부넘기가 있습니다.부넘기는 불길을 잘 넘어가게 하고 불을 거꾸로 내뱉지 않도록 합니다.고래는 열과 연기가 지나가는 통로로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불길이 고래에서 굴뚝으로 연결되기 전에 고래보다 깊이 파인 골이 있어 재나 연기를 머무르게 하는데 이를 개자리라고 합니다.여기에 열과 연기가 머물다가 굴뚝으로 빠져나가므로 구들의 온기를 더욱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온돌의 좋은 점
첫째 난방 효과온도가 큽니다.인체가 방바닥에서 나오는 열을 받을 때, 인체가 느끼는 온도가 실제온도보다 높기 때문입니다.따뜻한 아랫목에 있을 때 느끼는 온도가 실제 온도보다 높다는 얘기입니다.둘째 아랫목이 따스하기 때문에 머리는 차갑고 발은 따뜻한 구조로 혈액순환에 도움이 됩니다.셋째 과열되거나 불이 염려가 없습니다.넷째 실내에서 재나 먼지가 나오지 않습니다.장판과 온돌을 사용하면 먼지가 쌓이는 경우가 드물고 온돌이 열을 고루 발산해 실내 공기가 건조해져서 알레르기 환자도 덜합니다.
고래의 종류
고래의 이름은 모양에서 따온 것으로, 될수록 열이 분산되어 구들이 골고루 따뜻하도록 고안하였습니다.화살표는 열과 연기가 지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굴뚝의 종류
북방식 굴뚝
남방식 굴뚝
남쪽지방은 북쪽보다 따뜻하기 때문에 아궁이에서 온 열이 굴뚝으로 쉽게 빠져 나갈 수 있게 사진과 같이 아예 굴뚝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그러나 북쪽지방은 조금이라도 따뜻한 열을 지녀야 하기 때문에 사진과 같이 굴뚝을 높게 만들어 열도 보호하고 바람이 고래 안으로 들어 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남/북남 지역의 굴뚝이 다른 까닭은?
아궁이와 구들은 어느지방이나 거의 비슷한 형태지만 굴뚝은 지역에따라 큰차이를 보인다.
북방지역은 열도 뺏기지 않아야 하고 서북풍이 역류해도 안된다.그래서 굴뚝을 어디에 두느냐에 많은 고민을 하였다.굴뚝을 그냥 외기에 노출시키지 않게 두껍게 감싸 외기를 차단하고 개자리를 파서 열기가 더 머물뿐아니라 역풍이 들어와도 차단하는 기능을 발휘한다.
남방지역은 북방지역보다 훨신 따뜻한 기후로 굴뚝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가 없었다. 점차 위축이 되어간다.
심지어는 고래끝에 구멍날을 내어 개굴을 노출시키는 너무나도 다른 형태의 굴뚝이 나타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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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은 아궁이에서 장작이나 짚 등을 연소시켜, 그 연소공기를 바닥 밑으로 보내 연도와 굴뚝을 통해 외기로 배출시켜서 바닥 전체를 따뜻하게 하는 복사난방방식으로, 연소부분인 아궁이부, 채난부분인 고래부, 배연부분인 굴뚝부로 구성된다. 온돌은 아침, 저녁에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구들을 데워두고 그 축열에 의해 일정시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온돌아궁이를 이용, 취사를 하는 부뚜막은 부엌에 만들어지며, 안방과 접한 벽쪽에 만들어짐으로써 안방구들이 아궁이와 겸용으로 축조된다. 그러나 사대부가와 농가에서 건넌방과 같은 부엌과 따로 떨어진 아궁이에 부뚜막을 만들고 솥을 거는데, 이는 더운물을 끓이거나 소죽을 쑨다든가 하는 것으로 부엌간 부뚜막의 보조용으로 축조된 것이다. 그러나 대가에서 반빗간이 독립될 때는 안방의 아궁이에는 부뚜막을 만들지 않고 그 자리에는 아래층은 안방에 불때는 아궁이를 둔 함실로 하고 위층에는 누마루를 놓아 안방마님의 여름거처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부엌간의 부뚜막이 안방구들의 아궁이와 겸용으로 축조되었으므로 여름철의 조리를 위해서나 부엌의 보조용으로 한데부엌이 이용되기도 하였다.
[5-1-b] 방 전체 온돌의 구조
1) 연소부분
■ 아궁이(분구, 화구, 곡구락, 취구, 솥자리, 부넹기)
불을 피울때 공기와 연료를 공급하고, 불을 잘 타게 하기 위한 부지갱이의 사용통로로 연소상태 확인이 가능. 연소가 잘 되려면 산소의 공급이 잘 되어야 하므로 아궁이는 부엌바닥과 같게 낮추고, 앞이마도 낮춰 연기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
■ 부뚜막 후렁이(불주머니, 화상, 연소실)
아궁이에서 공급된 공기로 인해 연료가 연소된 후 급격히 체적이 팽창될 경우 이를 완화시켜 주고, 불꽃표면에 산소를 원활히 공급, 밑에서 위로 유체의 흐름이 좋게 유선형으로 되어 있고, 연소시의 팽창압력으로 부넹기로 유입.
■ 불고개(불넘개, 부넹기, 불목)
부뚜막 후렁이와 구들 개자리를 연결하는 통로. 양쪽의 압력차에 의해 열기의 흐름을 조절하며, 굴뚝에서 오는 역풍도 막아준다.
2) 채난부분
■ 구들개자리
연소시 흡입되는 재를 갈아 앉히며, 개자리를 공간의 크기에 따라 연소공기의 속도에 영향을 주어, 연소가스의 흐름을 조절한다.
■ 고래
굴뚝쪽은 높고 구들 개자리쪽은 낮아서 저온의 연소가스가 고래바닥으로 내려오고, 고온의 연소가스는 상부로 다시 올라가며 축열된다. 주로 돌(각석 혹은 편석)과 진흙을 섞어서 쌓는다.
■ 구들장(온돌석, 방장)
연소가스에 의해 가열되어 축열을 한다. 주로 화강암 판석을 사용하며 아궁이에서 가까운 부분은 낮게, 먼 부분은 높게 설치하여 아궁이 가까운 곳은 점토를 두껍게 바르고, 먼 곳은 얇게 발라 바닥온도를 균일하게 하도록 한다. 특히 구들 개자리를 덮는 큰 구들장을 이맛돌이라 한다.
■ 고래개자리(개고래, 가루고래, 언골, 도구, 회골, 머리골)
연소된 재를 갈아 앉히며 그 크기에 따라 연소공기의 속도에 영향을 주어 연소가스의 흐름을 조절한다.
■ 자갈, 세석
구들장 위에 진흙 반죽을 덮어 깔되, 구들장 사이의 구멍을 잔돌로 메워 진흙이 고래로 새서 빠져 나가지 않게 한다.
■ 부토
마른 진흙을 세석 위에 부어 부토 후 밟아 다지고 수평이 되도록 한후, 초새 및 재새를 한다.
■ 초새(초벌 바르기), 재새(재벌 바르기), 마감바르기
진흙 반죽을 흙손으로 초벌 바른 후, 완전 건조된 뒤 다시 중벌 바르기를 하며, 마지막으로 진흙을 물에 타서 진흙앙금을 만들거나 진흙을 채로 쳐서 세사를 써서 반죽하여 수평한 진흙 피막이 형성되도록 바른다.
3) 배연부분
■ 굴뚝개자리
연소된 재를 갈아 앉히며 그 크기에 따라 연소공기의 속도에 영향을 주어 연소가스의 흐름을 조절한다.
■ 연도
진흙을 두껍게 바르고 볏짚을 엮어 보온하여, 열을 뺏기지 않도록 하며, 연기의 배연통로로서 작용한다.
■ 구새(굴뚝, 연돌, 연통)
연기의 급속한 방출을 막고 비나 눈이 들지 않게 하며, 구들 안에 있는 열기의 최종배출구이다.
■ 소제구멍
[5-1-a] 방 전체 온돌의 평면 및 단면 구조와 명칭
[출처 :
http://bstech.kwangwoon.ac.kr]
굴뚝도 아주 중요하다.
또 중요한 것이 굴뚝인데, 굴뚝은 부엌 아궁이에서 불을 지필 때 생기는 연기를 뽑아내는 작용을 하였다. 그러므로 굴뚝 시설이 좋아야 아궁이에 불이 잘 들고 방이 따뜻했다. 굴뚝을 세울 때 우선 멍에골에서 밖으로 멍에골 깊이보다 좀 얕게 굴뚝골을 내고 그 끝에 좀더 깊게 개자리를 파며 그 위에 흙담 또는 돌담으로 원추형 혹은 사각주형에 가까운 형태로 굴뚝을 쌓았다. 이렇게 쌓은 굴뚝의 높이는 거의 처마 밑까지 이르게 하였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 축조한 굴뚝 위에 나무구새통과 같은 것을 세워 놓아 그 높이가 지붕마루 높이와 같게 하거나 그 이상 높게 하기도 하였다. 반대로 지면에서 몇 개의 돌을 이용하여 낮게 축조하거나 구새통만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지형조건을 고려한 것이다. 주로 산간지대에서는 굴뚝을 지붕마루보다 높게 세우고 야산지대에서는 굴뚝을 지붕 처마 높이와 비슷하게 하거나 그보다 약간 높게 하였다. 이것은 산이 높은 곳에서는 굴뚝이 높아야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아 불이 잘 들고 산이 낮은 지대에서는 굴뚝이 높지 않아도 불이 잘 들기 때문이다. 굴뚝의 형식과 재료 등에서 차이는 지방의 지형조건을 반영한 것이었다.
[펌]☞ http://blog.naver.com/goldagnes/6000236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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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6/26/2007062600044.html
미국 알래스카서 세계서 가장 오래된 온돌 발굴
미국 알래스카주 알류산열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온돌이 발굴됐다. 미국 고고학회가 발간하는 격월간지 ‘고고학(Archaeology)’ 5~6월호는 알래스카주 어날래스카(Unalaska)시 아막낙(Amaknak)섬에서 다리 건설을 위한 발굴을 하던 중 온돌을 갖춘 집터가 나왔다고 보고했다. 이번에 발굴을 맡았던 릭 크넥(Rick Knecht) 알래스카 페어뱅크스대 교수(고고학)는 25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지난 2003년 발굴했다”고 밝히고, “발굴된 유물을 방사성탄소연대법으로 측정한 결과 3000년 전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인류가 사용한 온돌은 2500여년 전쯤 만주·연해주 지역에 살던 북옥저인들 것이 가장 빠른 것으로 알려져 왔다. 미국 알래스카 것은 이보다 500년 빠르다. 또한 유라시아대륙 이외 지역에서 온돌이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 미국 알래스카주 어날래스카시 아막낙섬에서 발굴된 세계 최고(最古) 온돌. 발굴자인 릭 크넥 교수는“한국 온돌과의 비교 연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점선안이 온돌(고래시설)인데, 윗부분을 덮은 돌은 훼손돼 없어졌다. /릭 크넥 교수 제공
크넥 교수는 “모두 4개의 온돌 구조가 발굴됐다”며 “지난 97년에도 이 지역에서 온돌 구조가 발굴됐지만 그때는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보낸 자료에 따르면 집 바닥에 길이 2~4m 정도의 얕은 도랑을 파고 평편한 돌을 ‘V’자 형태로 여러 장 도랑 벽면에 세운 뒤, 그 위도 역시 평편한 돌로 덮어 방고래를 만들었다. 집 바깥으로는 연기가 나가는 굴뚝도 있다.
발굴 자료를 검토한 송기호 서울대교수(발해사)는 “고대의 온돌은 모두 방 한쪽에만 구들을 마련한 쪽구들 온돌인데, 아막낙섬 역시 쪽구들 온돌로 보인다”고 말했다.
입력 : 2007.06.26 00:46 / 수정 : 2007.06.2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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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sowoozee/80024423792
아자방(亞子房) 축조비법
'사단법인 한국 구들문화보전협회'와 '구들문화원'의 요청에 의해서 <구들박물관>에 전시할 아자(亞字)고래를 축조하기로 하다.
내가 어릴 때 부터 간직하고 있는 와혈비결(窩穴秘訣)이란 책에는 그동안 신비속에 숨어있는 아자고래의 비결의 자료가 있다.
그러므로 이번에 아자고래의 일부분을 공개하여 시공해 보기로 한다.
우선 와혈비결(窩穴秘訣)의 원문 일부를 싣는다.
圓寂子曰°所謂亞字房者°造外亞字防火柱築壁°內空十字炕面磚蓄熱°廻燃卍字潛熱坑°煙凹中集下向坑推°皆爲合型也°(後略)
[於 窩穴秘訣 券四 構造篇 亞字房二八圖說 拔萃 ]
'원적자' 말하기를,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아짜방이라하는 것은 밖의 벽은 아(亞)자 모양으로 되어 있고
안 속의 고래는 십(十)자 모양의 구들장을 축열하고,
불이 탈 때는 만(卍)자로 차례로 돌아 타는 구조요, 연기는 방 중간으로 모여 아래로 빠지는 방식이며
이러한 모두를 합친 구조가 아자방(亞字房)이다...(후략) 무운해석 ['와혈비결 권4 구조편 아자방28도설'에서 발췌]
圓寂子曰°亞炕始火之法中°第一之法°廚寵中供着卍十空亞字°齋信眞如將牌標也°(後略)
[於 窩穴秘訣 券三 修道篇 行功十二要 拔萃]
'원적자' 말하기를,
아자고래 불 지필 때 가장 중요한 마음 자세는 부뚜막 가운데 만(卍),십(十),공(空),아(亞), 의 글자를 써 붙혀
자기 본심을 깨닫기를 빌며 받드는 패를 두고 표준을 삼는다...(후략) 무운해석['와혈비결 권3 수도편 행공12요'에서 발췌]
圓寂子曰
°亞炕坑掃除之法°於煙筒入水°洗出一直炕坑煙道火口也°(後略) [於 窩穴秘訣 券六 運用篇 積氣開關十八傷拔萃]
'원적자' 말하기를,
아자고래 청소법은 굴뚝에 물을 부어 곧은고래와 연도와 아궁이를 씻어냈다..... (후략) 무운해석
['와혈비결 권6 운용편 적기개관18상'에서 발췌]
圓寂子曰
°亞炕火守之法°前後左右而中°爲嗇氣孔炕坑°火壽維持之法也°(後略) [於 窩穴秘訣 券五 煉炕篇 延引法 拔萃]
'원적자' 말하기를,
아짜방 불 지키는 법은 전 후 좌 우 그리고 중앙에 적은 구멍을 뚫어 고래속의 불 수명을 유지하게 했다...(후략) 무운해석
['와혈비결 권5 연항편 연인법'에서 발췌]
圓寂子曰
°亞炕秘器°造十字卍字同一機°本十字卍字之意°於無爲玄有爲玄有無爲玄°以爲無極法身太玄°異口同意°三家合而道德根源之意也°(後略) [於 窩穴秘訣 券三 歸源篇 大道論 拔萃]
'원적자' 말하기를,
아자고래의 비밀스런 모양이 십자형과 만자형으로 되었지만 같은 하나의 기능이다.
본래 십(十)자와 만(卍)자의 뜻은,
유가에서는 무극이라 하고, 불가에서는 법신이라 하고, 선가에서는 태현으로 달리 말하나,
모두 합하여 도덕의 근원을 밝힌 것이다...... (후략) 무운해석 ['와혈비결 권3 귀원편 대도론'에서 발췌]
<자료제공및 제작> 구들연구소 http://www.gudeul.net/
無耘(토수)sowooz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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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지리산 칠불사와 아자방
지리산 칠불사와 아자방
연곡사를 나와 하동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가수 조영남이 불러 히트한 화개장터가 나온다. 화개장터부터 쌍계사까지는 십리 벚꽃으로 유명한 벚꽃길이다. 길가의 가로수인 벚나무 단풍이 아름답다.
칠불사는 쌍계사 입구를 지나 8km쯤 더 올라가야한다. 칠불사를 오르는 길가엔 가을단풍이 절정이다. 피아골 단풍보다 더욱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길가의 다랑이논 또한 볼거리다.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오르다보면 엉덩이로 깔고 앉으면 뭉개져서 없어질 정도 작은 궁둥이배미논, 우산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우산배미논 등 작은 다랑이논들을 다 보게 된다.
우리 선조들은 좁은 산비탈의 이런 땅조차도 버리지 않고 이렇게까지 잘 일구어 목숨을 부지한 것이다. 단풍과 층층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다랑이논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하고 있다.
칠불사 은행나무
다랑논들을 지나고 나면 칠불사 일주문이 나타난다. 일주문을 지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칠불사의 위용이 나타난다. 잘 지어진 무협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의 절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물이 잘든 은행나무이다. 요즈음 노래방에 가면 맨 처음 부르는 노래가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이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라는 노랫말이 저절로 내 입에서 나오고 있다. 이 아름다운 가을단풍이 며칠만 더 지나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가슴 저 밑이 저미어 온다.
은행나무 단풍이 아름다운 칠불사는 한 풍수를 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풍수사들에게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 중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음택으로는 오대산 적멸보궁이 으뜸이고, 양택으로는 지리산 칠불암이 제일이다.’ 그런데 내 느낌에는 산세에 비해 절을 너무 크게 지었다. 암자로서의 기능은 몰라도 절로서는 너무 자연 훼손을 많이 한 것이다.
또한 칠불암 풍수에 대해 전해져 오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도선국사가 저술한 「옥룡자결」에 의하면 "하동 땅에서 북쪽으로 1백리 가면 와우형(臥牛形)의 명지가 있는데 이곳에 집을 지으면 부(富)는 중국의 석숭 못지않고, 백자천손이 번창할 것이며, 기도처로 삼으면 무수인(無數人)이 득도할 것" 이란 내용이 있다. 와우형, 즉 소가 누워 있는 명당이 칠불암이라고 주장한다.
칠불사 전경
칠불사의 풍수는, 지리산 반야봉(해발 1,732m)을 종산으로 삼고, 토끼봉을 주산으로 삼아 그 혈맥이 동남쪽으로 뻗어, 이곳 칠불사에 이르러 혈이 맺혀 있다. 동국제일선원이라고 적힌 현판 밑 입구에는 눈에 뛰는 전시물 세 점이 있다. 하나는 반석이라고 하는 불교 경전을 붙여 놓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자방(亞字房)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건너편 산에서 찍은 칠불사 전경이다.
동국제일선원 현판
이 사진에서 보면 반야봉을 종산으로 하고, 토끼봉이 주산이 되어 칠불사에 이르러 혈이 맺혀 있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마침 그때 창원에서 왔다는 답사객이 ‘아 진짜 명당이다’라고 제법 큰 소리로 중얼거리고 있길래 내가 ‘왜 명당인가?’ 하고 질문을 하니 ‘보면 모르느냐’라고 한다. 다시 ‘주산은 어느 산이며 종산은 어느 산으로 볼 것인가?’ 하고 물으니 ‘그런 용어는 몰라도 느낌이 명당이라’고 한다.
풍수책을 본 적이 있는가를 물어보니 풍수책은 보지 않아도 자기가 읽은 책들 속에는 풍수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어 어느 정도 기본적인 풍수는 안다고 한다. 이처럼 풍수에 관한 책을 단 한 권도 읽어 보지 못한 사람이 봐도 칠불사가 있는 곳은 명당인 것이다.
칠불사 대웅전
칠불사의 역사를 더듬어 보자.『삼국유사 가락국기』와『동국여지승람 하동지』등에 의하면 수로왕은 서기 42년에 태어났다. 수로왕은 인도 갠지스강 상류지방에 기원전 5세기부터 있었던 태양왕조 아유다국(Ayodhya)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아들인다. 자식은 10남 2녀를 두었는데 큰 아들 거등(巨登)은 왕위를 계승했다. 그리고 차남 석(錫)왕자와 삼남 명(明)왕자는 어머니 허황후의 성씨를 따라 김해 허(許)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일곱 왕자는 출가하여 허황후의 오빠인 인도스님 장유보옥선사를 따라 서기 101년 지리산 반야봉 아래 운상원을 짓고 정진하였다. 그 결과 2년 후인 수로왕 62년(서기 103년) 일곱 왕자 모두 성불하였다. 수로왕은 일곱 왕자의 성불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이곳에 절을 짓고 일곱 부처가 탄생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칠불사라 명명했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최초로 전해졌다고 알려진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 보다 약 270여 년 앞선 기록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을 통해 불교를 받아들인 데 반해 가야는 바다를 통해 인도로부터 직접 불교를 수용했음을 칠불사 창건 설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창건 설화를 지닌 칠불사는 종래의 북방 불교 전래설과는 또 다른 남방불교 전래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인도의 야요디아시에서는 김해에 있는 수로왕릉의 물고기 무늬를 아직도 그 지방의 문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칠불사 아자방
또한 칠불사가 유명한 것은 아자방(亞字房)이다. 신라 효공왕(897-911) 때 담공선사가 선방인 벽안당을 아자(亞字) 모양으로 구들을 놓았다. 이 아자방에 삼 일 동안 불을 때면 100일 가량 따뜻했다고 한다. 아자방은 이중 온돌구조로 되어 있는데 방안 네 모퉁이와 앞뒤 가장자리 쪽의 높은 곳은 좌선처(坐禪處)이며, 십자형(十字形)으로 된 낮은 곳은 좌선하다가 다리도 아프고 힘이 들면 걷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는 경행처(輕行處)다.
아자방은 중국 당나라에까지 널리 알려 졌다고 한다. 그리고 다성인 초의선사가 1828년 이곳에서 다신전을 초록하고 동다송의 기초를 정립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방 구조의 탁월한 과학성으로 인해 1979년 세계건축협회에서 펴낸 세계건축 사전에도 수록되어 있다. 칠불사는 통일신라 이후부터 동국제일선원이라 하여 금강산 마하연 선원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2대 참선도량으로 불려왔다.
대웅전과 부속 건물들
이러한 칠불사는 1800년 실화로 전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다시 복구되었다. 이 또한 1951년 지리산 공비토벌 때 우리 국군의 방화로 아자방을 비롯해 절 모두가 불타 버렸다. 너무나도 슬픈 역사다. 이때 불탄 것을 다시 복원한 것은 1982년이다. 일명 구들박사로 통하는 김용달씨가 지금과 같이 새로 구들을 놓았다. 온기의 보존기간은 설화와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한 번 불을 때면 일주일 정도는 간다고 한다.
칠불사는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도량으로도 알려져 있다. 문수보살에 대해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 내용은 이러하다.
새로 하동고을로 부임한 사또가 쌍계사를 방문했다. 쌍계사의 말사가 칠불암인지라, 신관 사또는 유명한 칠불암 아자방을 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동안거 중이라 외인의 출입을 금했다. 하지만 사또는 권력으로 칠불암에 가서 선방문을 열도록 하였다. 사또는 스님들이 용맹 정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아자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막상 아자방의 풍경을 본 사또는 실망했다. 계절적으로 늦봄인데다 마침 점심 공양을 마친 직후여서 스님들 모두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천장을 쳐다보고, 일부는 고개를 숙이고, 일부는 좌우로 몸을 흔들며, 일부는 방귀를 뀌면서 졸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사또는 스님들을 혼내 줄 심산으로 다음과 같이 요구 조건의 통문을 보냈다.
‘쌍계사에서 목마를 가지고 동헌이 있는 하동까지 와서 동헌 마당을 한 바퀴 돌면 후한 상을 내릴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준다' 통문을 받은 쌍계사에서는 대책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묘안이 있을 리 없었다. 그 때 한 사미승이 자신이 이 일을 맡겠다며 다른 스님들에게 목마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정해진 날짜가 되어 스님들이 만들어 준 목마를 둘러메고 하동 관아로 들어간 사미승은 자신이 그것을 타고 동헌을 돌아보겠다고 사또에게 말했다. 사또는 사미승의 당당한 태도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그 표정이 너무나 진지하기에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 "칠불암에 도인이 많다더니 내가 직접 보니 참선한다는 중들이 모두 졸기만 하니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사미승은 답하기를 "수도승이라고 해서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요"라며 담담하게 말을 했다.
그러자 사또는 두 번째 질문을 한다. 그럼 도대체 "천장을 쳐다보며 졸고 있는 것이 무슨 공부란 말이냐?"하고 힐책하듯 질문을 했다.
사미승 왈 “그런 행동은 앙천성수관(仰天星宿觀) 즉 하늘을 우러러보며 별을 관찰하는 공부로 상통천문(上通天文) 하여야 중생을 제도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수행이라”고 하였다.
사미승의 설명에 말문이 막힌 사또는 다시 세 번째 질문을 한다. "그럼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며 졸고 있는 자들은 어떤 수행을 하는 것이냐"하고 묻자,
사미승은 답하기를,"그런 행동은 지하망명관(地下亡命觀)을 수행하는 것으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게 되는데 그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사또가 질문을 하기를 "그렇다면 몸을 좌우로 흔들며 조는 것은 무엇이며 방귀는 무엇이란 말이냐?"라고 다그치듯 묻자,
사미승이 답하기를, "몸을 좌우로 흔들며 조는 것은 춘풍양류관(春風楊柳觀)이라 하는 수행법인데, 이는 있음과 없음에 집착해도 안 되며 전후좌우 어느 것에도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달관의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고, 방귀를 뀌는 것은 타파칠통관 (打破漆桶觀)이라고 하는 것으로 사또같이 우매한 관리들을 깨닫게 하는 공부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마치자마자 사미승은 보란 듯이 목마를 타고 동헌 마당을 한 바퀴 빙 돌더니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 사미승은 다름 아닌 문수동자였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썩은 관리들이 문제다.
앙천성수관(仰天星宿觀), 지하망명관(地下亡命觀), 춘풍양류관(春風楊柳觀), 타파칠통관 (打破漆桶觀)
누가 지어 만들었는지 몰라도 정말 잘 지은 내용이다. 조선조의 억불숭유정책으로 인해 스님들이 많은 고통을 받았다. 이러한 스님들의 한을 문수보살이 풀어준 것일 게다.
그런데 요즘 새로 잘 지은 절들을 보면 뭔가 기분이 찝찝하다. 돈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 타파칠통관의 방귀냄새가 일부 잘못된 스님들의 방귀냄새로 여겨진다. 시주를 많이 해야만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혹세무민해서 긁어 모은 방귀 같은 돈 냄새가 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인터넷 발췌]
첫댓글 지기님 번개입니까..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