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시민문예대전 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
총 25명 응모
대상 수상자 : 김선희
(인천시 연수구 청학동 )
소설「별꽃 아재비를 위한 노래」외 1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2월 9일 송년회에서 시상을 하고, 상패와 상금 100만원이 수여되며, 아울러 인천문인협회 정회원 입회 자격이 주어집니다.
앞으로 훌륭한 소설가로 성장하시기를 바라며, 아울러 인천문학 발전의 밑거름이 되시길 바랍니다.
<시민문예대전 소설 부문 심사평>
글은 고뇌와 사고의 산물, 곧 자기 자신의 완성인 것
심사를 할 때마다 매번 하는 말이지만, 문학의 최고 가치는 어떤 사물에게 나를 바쳐 제2의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 작품 속에 자기의 영혼이 어떻게 존재해 있는가, 하는 문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좋은 글은 언제나, 한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 누구에게나 공통된 깊은 진리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 먼저 그 인격의 성숙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무릇 예술 작품은 오랜 고뇌와 사고의 산물이며, 글의 완성은 곧 자기 자신의 완성인 것이다. 글 쓴 이의 어떤 인격이 배제되어 버리면 그것은 기껏 저질스런 넋두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 아무리 도둑놈의 이야기를 써도 결국은 그것이 자기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가 되기 전에 먼저 자기 수양부터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번에 응모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너무도 안이하게 생각하고 접근을 한 것 같아 아쉽다. 소설이 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소설이 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므로 소설이 될 수 없는 스토리는 아무리 매달려 노력을 해도 성공하기 어렵다.
다행히 그 가운데 김선희 님의 「별꽃 아재비를 위한 노래」는 충분한 소설의 골격을 갖추고 있는 정적인 작품이다.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재가를 하는 바람에 동생과 함께 외가에서 어렵게 성장하게 된 한 여인의 애잔한 삶을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들려주고 있다.
사회적 통념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인간적으로는 아주 성공한 인생을 보여주는 따뜻한 소설이다. 우선 문장마다 은근히 사람 사는 인정이 꿈틀거리고 있는 게 보기 좋았다. 이 정도의 글을 쓰기까지, 이 정도의 성실한 삶을 살기까지 고생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그 인생을 ‘별꽃 아재비’로 연결시킨 솜씨가 돋보여 그 점을 높이 샀다. 거기다가 월미도의 한 모텔에서 일어난 일들을 정감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문체로 쓴 이 분의 다른 작품 「시체꽃」도 1등을 정하는 데 있어 한몫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김완수 님의 「기억의 고집」은 상당한 수준의 작품이다. 자기 아내에 의해 정신병원에 구속하게 된 전직 고교야구 감독인 화자의 ‘기억에 대한 단상’을 여러 각도에서 나름대로의 성찰을 시도해본 소설이다. 참으로 황당하고 기발한 발상이지만, 무엇보다 문장이 정확하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신선하다. 지적이면서, 아주 샤프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인간의 심리를 진지하고 매력 있게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꾼의 기질이 뛰어난 사람이다. 또한 아이러니하고 설득력 있는 장면도 몇 군데 눈길을 끈다.
하지만 같이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동료 환자의 기억을 찾아주기 위해 결국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얘기인데, 글쎄 과연 그렇게까지 무모하게 결행해야 할 가치가 있었을까?
……장갑裝甲처럼 둔중한 차들이 제 신호를 받으며 거침없이 오가고 있었다.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사람이 끼어들 수 없는 차도를 마주했다. 한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곧 신호가 바뀔 것 같은 불안을 껴안고서 붉은 표적을 향해 돌진하는 소처럼 앞만 보고 내달렸다. 아무도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 기억의 고집을 위해 나는 내 한 몸의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며 피안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역시 너무 무리였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거기에 어떻게 피안의 세계란 말이 나올 수 있겠는가.
김영덕 님의 「캐리어」는 모처럼 제주도 여행을 떠나게 된 학원 청소부 여자의 얘기를 안정감 있게 전개하고 있는 비교적 무난한 작품이다. 가난 때문에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장에서 주워온 한쪽 바퀴가 깨진 남루한 캐리어에 얽힌 애환을 섬세하게 그린 것이었다. 그 캐리어가 제주 공항에서 어떤 젊은 남자의 캐리어와 부딪치는 바람에 그나마 깨진 바퀴가 잘못 되어 일어난 작은 소동이 무리 없이 어떤 진한 인생을 느끼게 하는 다감한 소설이다. 다만 군데군데 문장이 조금 부정확한 것이 흠이다. 이 분도 앞으로 자기 몫을 다할 훌륭한 작가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글을 쓰는 행위는 자기의 소리를 내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글 속에는 주제 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야 한다. 그것의 정확성을 잃으면, 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도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그냥 무의미하게 흩어져 버리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감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실로 오랫동안 사물 하나하나와의 영적 교류를 시도하는 것이다.
심사위원 김진초(소설가)
강인봉(소설가)
<수상작>
별꽃 아재비를 위한 노래
김선희
휴대폰 벨 소리에 잠이 깼다. 전화를 건 사람은 이모부였다. 이모가 숨을 못 쉰다고 했다. 잠든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술이 덜 깬 남편은 눈도 뜨지 못하고 고개만 주억거렸다. 택시를 타고 나서야 휴대폰을 두고 나온 것을 알았다. 손에 쥐고 있던 지갑이 자꾸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택시 기사가 룸 미러를 흘낏 거리며 괜찮은지 물었다. 아저씨 좀 더 빨리 가주세요. 재촉하는 말에 기사가 입을 다물었다.
새벽의 응급실은 분주했다. 지나치게 밝은 불빛과 소란함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모는 교통사고 환자 옆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작은 소리로 이모부를 불렀다. 이모부가 고개를 들었다. 축 처진 어깨와 헝클어진 머리칼이 이모보다 더 환자처럼 보였다. 이모가 응급실에 실려 온 것이 벌써 두 번째다. 이모의 야윈 팔뚝으로 스며드는 투명한 액체는 진통제일 것이다. 이모의 체력은 항암 치료를 견뎌내지 못했고 진통제 양은 점점 늘어갔다. 이젠 약발도 안 받네. 이모부가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위급한 상황은 넘긴 거죠. 가서 조금이라도 주무시고 출근하셔요. 여기는 제가 있을 게요. 가시는 길에 진영 아빠한데 저 여기 있다고 문자나 해주세요. 이모부를 보내고 나는 이모 얼굴 맡에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살가죽만 남은 얼굴이 새까맸다. 암 덩어리가 자라던 자궁을 들어냈지만 질기게 남은 암세포가 이모의 몸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나는 절대 자식들한테 병수발 안 시킬 거야. 병 걸리면 콱 죽어버릴 거야. 외할머니에게 두들겨 맞고 훌쩍거리던 이모는 다짐하듯 말했었다. 이모 말처럼 자식에게 병수발을 시킬 일은 없었다. 이모의 자궁은 아이를 품어보지도 못하고 버려졌다.
외할아버지가 쓰러지고 외할머니는 근처 공사장 인부들을 상대로 하는 함바집에 취직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많은 자식을 낳았지만 살아남은 건 엄마와 외삼촌 그리고 늦둥이로 낳은 이모뿐이었다. 엄마와 이모의 나이 차이는 15년이나 된다. 엄마는 아버지가 죽고 나와 남동생을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재혼했다. 엄마의 남자에게 나와 남동생은 없는 존재였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인 외삼촌은 도시로 보내졌고 나와 남동생은 집안 허드렛일을 하며 밥값을 해야 했다. 외할아버지는 자연스레 이모의 차지가 되었다. 10살짜리 아이 몸에서는 항상 구린내가 났다. 외할아버지의 똥 기저귀를 빨다 보면 옷에 똥물이 튀기도 하고 채 씻기지 않은 오물이 손등이나 손목에 말라붙었다. 오줌 지린내와 무언가가 썩는 냄새도 이모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병적인 결벽증을 가진 외할머니는 금세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냈고 손끝이 야무지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모를 때렸다. 이모는 외할머니가 치켜든 빗자루만 봐도 다리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쏟아지는 매를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이모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눈에서 불꽃이 일렁이는 외할머니 서슬에 남동생은 오줌을 싸고 나는 불똥이 내게도 튈까 두려워 이모가 우리의 잘못까지 모두 떠안고 맞아주기를 바랐다.
외할머니의 독기에 질식한 이모는 몸도 마음도 자라지 못했다. 키도 또래보다 작고 정신연령도 남동생 수준에 머물렀다. 나와 동생이 집을 나설 때면 이모는 문 앞까지 따라 나와 등에 맨 내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공부는 남자의 전유물이라고 믿는 외할머니가 나를 고등학교까지 보낸 것은 엄마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 새 아버지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기반을 잡은 엄마가 매달 학비를 보내준다는 사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서야 알게 되었다.
갑자기 나타난 의사와 간호사가 옆 침대를 둘러쌌다. 사람들 틈으로 환자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심장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누군가 울음을 터뜨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은 고역이다. 타인의 죽음 앞에서도 가슴이 옥죄는 데 가족의 죽음은 고통의 질량을 측정할 수 없을 거였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물 한 잔을 마시고 왔다. 이모는 주변의 소동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이모 눈꺼풀이 천천히 들렸다.
-이모 괜찮아?
-네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니. 이모부는?
-들어가시라고 했어.
-아침까지 기다리면 될 걸. 이 비싼 데는 뭐 하러 왔다니.
-이모는 별소릴 다한다. 지금 비싼 거 따질 때야.
나도 모르게 말투에 신경질이 묻어 나왔다.
-미안해.
이모가 바보 같이 웃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흘러내린 이불을 이모 목까지 끌어올려주었다. 얼굴을 마주 하면 모진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진통제를 다 맞고도 이모는 여러 검사를 해야 했다. 이모는 며칠 입원을 하자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응급실을 나왔다. 억지로 이모를 택시에 태워 집까지 데려왔다. 남편과 아이들이 빠져 나간 집안은 어수선했다. 딸 아이 방에 이모를 누이고 죽을 쑤었다. 식탁에 이모와 마주 앉아 죽을 먹었다.
-옛날에 나한테 죽 끓여줬던 거 기억나니? 그때처럼 맛있다.
-흰 쌀죽이 맛있어봐야 얼마나 맛있다고. 이건 전복이랑 양배추도 넣어서 훨씬 맛있을 걸.
이모가 베시시 웃으며 죽을 먹었다. 죽을 때가 되면 옛날 일만 새록새록 떠오른다더니 케케묵은 그 일을 꺼내보고 싶었나보다. 이모를 위해 처음 만들었던 흰죽 맛을 나도 잊은 적은 없었다. 이모가 잘못될까봐 가슴앓이를 하던 나는 손이 데이는 것도 모르고 온 정성을 다해 죽을 쑤었었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동생을 챙겨 바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친구들과 한가롭게 노는 일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이모를 도와 텃밭에서 고추와 깻잎을 따고 외할머니와 우리가 자는 방을 치워야 했다. 그날은 집안일을 팽개치고 이모를 꼬여내 들과 산을 쏘다닌 벌로 학교를 가지 못했다. 동생만 아니었어도 우리의 일탈은 들키지 않았을 것이다. 입을 다물기로 한 녀석이 놀다 냇물에 빠진 걸 핑계 삼아 외할머니에게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다리가 얼얼하도록 회초리를 맞았다. 같이 놀았던 동생은 아무 일 없이 학교를 가고 나는 외할머니가 시킨 일들을 해놓아야 했다.
종일 텃밭에서 일을 하던 나는 이모 부탁으로 외할아버지 점심을 먹였다. 똥만 퍼질러 싸는 외할아버지에게 꼬박꼬박 밥을 먹이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쓸데없는 짓이었다. 말도 못하고 매일매일을 방에 누워 이모를 괴롭히는 외할아버지가 사라진다면. 외할아버지를 향한 미움이 점점 몸집을 불렸고 계집애라고 구박하는 외할머니에 대한 증오가 고개를 쳐들어 나를 부추겼다. 외할머니가 벌벌 떠는 유일한 존재를 없애버리는 것 이상의 앙갚음은 없을 거였다. 나는 무거운 돌덩어리를 들어 올리듯 외할아버지의 몸을 뒤집었다. 방바닥에 코가 박힌 외할아버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침이 바닥으로 흐르고 피가 몰린 얼굴이 붉게 부풀었다. 수건으로 등을 닦아주는 척 하다 그대로 방을 나왔다.
나는 쟁반과 그릇을 부뚜막에 올려두었다. 아궁이를 청소하느라 엉덩이를 치켜 올린 이모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외할아버지가 다 드셨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도 않고 부엌을 나왔다. 가슴이 쉴 새 없이 콩닥거리는 중에도 외할아버지 방에 다시 들어갈 마음은 들지 않았다. 외할머니 말처럼 밥값도 못하는 외할아버지가 죽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지금쯤이면 외할아버지가 죽었을까. 언제 들어가서 다시 몸을 눕혀야 할까. 나는 뒷간 근처를 배회하며 외할아버지의 숨이 넘어가기만 기다렸다.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다. 이모의 목소리보다는 더 우렁차고 새된 목소리가 집안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러댔다. 평소와 달리 낮에 외할머니가 집에 들른 걸 보면 외할아버지는 질긴 목숨을 타고 난 게 틀림없었다. 외할아버지가 안정되게 숨을 쉬는 걸 확인한 외할머니는 나와 이모를 마당에 꿇어앉히고 빗자루를 휘둘렀다.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를 뒤집어 놓은 년이 누구냐고 소리소리 질렀다. 맞아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벌린 입에서 침이 질질 흘렀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 내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깨달았다. 어머니 용서해 주셔요. 불에 올려놓은 거 때문에 급히 나오느라 아버지를 제대로 눕혀 드리지 못했어요.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셔요. 이모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빌었다. 나는 내가 한 짓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매질에 입 안의 혀까지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외할머니의 빗자루는 이모를 향했다. 외할머니는 빗자루가 부러지자 두툼한 손으로 이모의 등짝을 내리쳤다. 외할머니의 손에 이모 몸이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매질은 이모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계속 되었고 겁에 질린 나는 그 자리에서 오줌을 쌌다.
이모는 꼬박 이틀을 앓아누웠다. 외할머니는 함바집을 오가며 외할아버지 수발을 들었고 나는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왜 그랬어. 하지도 않은 일을 왜 했다고 거짓말을 했어. 죽을 뻔 했잖아. 나는 죽을 떠먹이며 울먹였다. 너보다는 내가 맞는 게 낫잖아. 너는 나보다 어린데. 몇 살이나 차이난다고. 내가 이모보다 덩치도 크잖아. 나는 엉엉 울었다. 남동생은 심심하다고 징징대다 나와 이모가 우는 통에 같이 훌쩍거렸다. 이모가 기력을 찾고 나서 외할머니는 이모 몸에 약을 발라주었다. 피가 삭는 약이라고 했다. 이모는 눈물을 들킬까봐 고개를 숙였고 외할머니는 평소와 다르게 나무라지 않았다. 화난 사람처럼 잔뜩 얼굴을 구기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약을 바르는 일에만 집중했다. 이모가 누워 있는 며칠 간 할 일이 쌓였지만 힘든 줄 몰랐다. 나는 이모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평생 빚을 갚겠다는 의지는 어른이 되어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번호 키 누르는 소리에 이어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모를 본 남편이 말없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모가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일어섰다.
-왜, 먹던 것 마저 비우고 가.
-아니다. 강 서방 쉬어야지.
그릇에 새 죽을 담아 이모를 따라 나섰다.
-강 서방 혼자 있는 거 싫어하잖아. 얼른 들어가.
이모가 내 등을 밀었다. 이모는 어두운 방에 혼자 누워 있을 것이다. 곁에 있지도 못하고 더 붙잡을 수도 없는 상황에 힘이 쭉 빠졌다.
남편은 소주를 꺼내 식탁 앞에 앉았다. 안주로 찌개를 끓여 맞은편에 앉았다. 남편이 내게도 소주잔을 내밀었다. 마지못해 한 잔을 비우고 손사래를 쳤다. 남편이 이모가 응급실에 실려 갈 만큼 위급한 거냐고 물었다. 진통제도 별 소용이 없는 거 같아. 남편이 말없이 잔을 비웠다. 남편이 다음에 그런 일이 있으면 꼭 깨우라고 당부했다. 나는 남편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빈 소주병을 치우고 새 소주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남편이 손을 내저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잠이 들 만큼 취기가 오르지 않은 상태가 불안했다. 남편이 컴퓨터를 켰다. 설거지를 하는 내내 방 안의 남편에게 온 신경이 쏠렸다. 남편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물소리에 못 들은 척 반응하지 않았다. 문이 벌컥 열리며 남편이 나와 내 팔을 낚아챘다. 침대에 나를 누인 남편이 다짜고짜 바지를 벗겼다. 눈을 감았다. 침대가 한동안 들썩이다 남편의 몸이 내 몸 위로 쓰러졌다. 조심스레 남편의 몸을 밀치고 욕실로 들어갔다. 남편은 심심하다는 이유로 포르노를 본다. 거칠게 살아온 남편의 유일한 취미를 막을 수는 없다. 거부라는 단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살아오면서 사무치게 느끼고 있다. 남편이 작게 코를 골았다. 싱크대 앞에 섰다. 불쑥 불쑥 화기가 얼굴로 몰려드는 것은 갱년기 탓일 것이다.
남편을 만난 것은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였다. 외삼촌 소개로 취직한 용역회사에는 노총각이 많았다. 그 중 한 남자가 유독 내게 관심을 보였다. 남동생이 타지로 떠난 집에는 이모와 병든 외할머니와 나까지 세 여자가 살았다. 외삼촌은 결혼을 하고 어쩌다 한 번씩 외할머니를 보러 왔고 외할아버지 병수발에서 놓여 난 지 얼마 안 된 이모에게 당연하다는 듯 병든 외할머니를 맡겼다. 결혼이라는 것이 나 좋다는 사람 있을 때 하는 거라고 외삼촌은 말했다. 강씨는 시댁 식구라고는 시골 사는 아버지뿐이야. 배운 기술이 있어서 처자식 굶길 일 없는 사람이고. 부모도 없는 너에게는 그만하면 괜찮은 혼처야. 외할머니를 이모에게 맡기고 혼자 그 집을 떠나왔다. 남편은 무뚝뚝하고 외골수지만 성실했고 중장비 자격증도 여러 개여서 오라는 현장도 많았다. 술을 달고 살았지만 타고난 건강체질 덕에 병원 신세를 진적도 없었다. 아직까지 결혼생활이 유지되는 것은 두 아이 때문만은 아니다. 남편은 지방 현장에서 잡은 거라며 가지고 온 한우 고기와 시골 친구가 보내 준 해산물 등을 이모에게 군소리 없이 퍼주었다. 가끔 자식이 없는 이모를 측은하게 여겨 용돈을 챙겨줄 때면 남편이 미덥고 고마웠다.
소파 위에 휴대폰이 살짝 떨렸다. 액정에 아들 이름이 떴다. 나는 남편이 깰까 소리를 죽이며 아들과 통화를 했다. 아들은 지방 산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고 있어 서너 달에 한 번씩 집에 들렀다. 서로의 안부를 간단하게 묻고 전화를 끊었다. 아들이 취직을 해서 지방으로 내려가고 딸아이가 취업반이라 집에는 거의 남편과 둘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은 나의 관심사가 모두 남편에게 향하기를 바랐다. 나이가 들수록 남편의 집착은 더 강해지고 있다.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는 이모부가 와서 저녁을 먹고 약도 챙겨 먹었다고 했다. 죽은 낼 아침에 꼭 먹을 거라며 아프면 연락도 하겠다고 말했다. 바뀐 진통제가 좋다는 말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첫 아이를 가지고 만삭이 될 무렵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숙모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세상물정에도 어두운 이모가 골치 덩어리였다. 이모는 밥벌이를 하겠다며 공장에 취직을 했고 그곳에서 이모부를 만났다. 이모부와 연애를 한 이 년의 시간이 이모의 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모부는 유치원 버스를 몰고 있다. 이모부는 공장에서 받은 퇴직금으로 장사를 시작했지만 온 나라를 뒤흔든 IMF에 육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헐값에 가게를 처분하고 이모부에게 남은 것은 빚과 12인승 버스뿐이었다. 유치원생과 입시생들을 태워주며 받는 돈은 기름 값에 차량유지비를 빼면 겨우 생활비만 남았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 빠듯한 살림에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살아야 했다. 이모가 제 한 몸 추스르기도 버겁게 되고 이모의 시어머니는 다른 자식 집으로 옮겨갔다. 늘 쪼들리는 이모가 안쓰러워 같이 장을 볼 때면 갈치나 국거리를 사서 들려 보냈다. 마늘장아찌나 오이지를 해서 아이들 편에 보내면 이모는 맨날 이래서 어쩌니라며 미안해했다. 몸 둘 바를 모르는 이모는 백치 같기도 하고 아이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모는 나를 친구처럼 의지했고 나는 옆에 이모가 있다는 것만으로 족했다.
남편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된장을 끓이고 나물을 무쳤다. 남편은 텔레비전을 보며 남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거실에 이불을 펴고 누웠다. 팔다리가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눈꺼풀을 들어올리기가 힘겹다. 깊은 잠에 빠져 남편이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기를 속으로 빌었다.
엄마가 이모네 와 있다는 전화를 받고도 바로 집을 나서지 못했다. 엄마는 며칠 전 응급실에 실려 간 이모가 걱정되어 왔을 것이다. 외삼촌에게 등을 떠밀려 시집을 갈 때도 엄마는 친척처럼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 이후에는 첫 아이의 돌과 외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엄마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여섯 살, 남동생이 네 살 무렵 엄마와 헤어졌다. 우리는 외할머니의 동거인으로 기록되었고 성인이 되기까지 엄마의 주변 인물로 밀려나 있었다. 엄마와 나는 닮은 구석이 없다. 죽은 아버지를 닮아 공유할 부분이 없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나이가 든 내 얼굴을 마주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거였다. 엄마는 이모 앞에서 많이 울었다. 왜 하필 너한테 이런 일이 있는 거니. 말끝마다 보채는 아이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모는 어쩔 줄 몰라 허둥댔고 나는 지루한 상황을 말없이 버티고 있었다. 엄마가 갑작스레 내 손을 잡았다. 나에게는 할 말이 없는지 손등을 매만지기만 했다. 나는 슬쩍 손을 뺐다. 늙어가는 처지에 새삼 모녀의 정 운운하는 신파는 질색이었다. 어색한 시간을 견디는 사이 식탁 위에 사과가 푸석푸석하게 말라갔다.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한참을 통화하던 엄마가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내 앞에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엉거주춤 서서 인사를 했고 현관까지 따라 간 이모에게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막내딸이 애 낳은 지 얼마 안 됐거든. 산후통이 심해서. 주위가 너무 조용한 탓이었을 것이다. 속삭이는 목소리가 굳이 내 귀에까지 전해진 것은. 첫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해 준 사람은 이모였다. 엄마가 자연산이라며 보내준 비싼 미역은 산후조리가 끝나고 허옇게 바래 버려졌다. 커가며 정드는 시간을 생략한 모녀 사이에 서운한 감정은 없었다. 첫 생리가 터져 피가 묻은 내 팬티를, 외할머니가 볼 세라 쪼그려 앉아 빨아준 사람은 이모였다. 내가 외할머니에게 바락바락 대들다 뺨을 맞을 때도 몸으로 막아서 준 사람은 이모였다. 나는 이모 하나로 충분했다.
이모가 봉투를 내 손에 쥐어주려 했다. 나는 받을 이유가 없다고 거절했다. 공돈이라 여기며 주머니에 넣은 들 상관없었지만 나는 기어이 돈을 이모에게 주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불편한 사이에는 새삼 보상의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 고등학교까지 학교를 다닌 것도 모르는 이에게 장학금을 받았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이모를 보살펴온 것에 대한 대가라 이름 붙일 수도 있지만 이모 앞에서 그런 돈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이모가 답답하다며 산책을 가자고 말했다. 5월인데도 초여름처럼 날이 더웠다.
저층 주공 아파트는 지은 지 이십 년이 넘었다. 주차 공간이 부족해 불편하지만 녹지가 많아 쾌적했다. 동과 동 사이 굵직한 나무들은 이파리를 가득 달고 서서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아파트 화단에는 키우기 쉬운 꽃나무가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다. 이모가 사는 동은 뒷마당처럼 넓은 공간에 잔디가 깔려 있다. 햇볕도 잘 들어서 구석구석 야생화 천지였다. 올해도 보랏빛 엉겅퀴와 파란 개불알 풀이 잊지 않고 무리지어 피었다. 이모와 나는 하늘빛을 닮은 작은 풀 앞에 쪼그려 앉았다.
-개불알 풀은 억울하겠어. 생긴 건 이렇게 이쁘게 생겼는데 사람들이 자기들 맘대로 상스럽게 이름을 붙여주고. 어머 그런데 이 꽃은 숨어 있네.
이모가 가리키는 꽃은 별꽃아재비였다. 꽃의 크기가 꽃마리처럼 작고 다섯 꽃잎이 금색으로 반짝였다. 금색은 천박하게 번쩍이지 않았다. 작지만 기품 있는 꽃은 워낙 이파리가 길고 커서 얼핏 보면 이름 없는 잡풀처럼 보였다. 잎의 뿌리 가까이 벌레처럼 붙어 있는 꽃송이는 몸을 한껏 낮추고 눈을 바짝 들이대야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바닥에 붙어 핀 꽃을 보려하지 않았다. 수많은 잡초 사이에 섞인 꽃은 화단을 정리한다는 이유로 한데 휩쓸려 잘려 나가곤 했다.
-별꽃아재비야. 이모.
-세상에 이름도 예쁘다. 나는 이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네. 그런데 얘는 참 힘들겠다. 이렇게 큰 몸뚱이에 치여서.
이모는 별꽃아재비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꽃잎이 떨어질까 스치듯 조심스레 꽃잎을 쓸어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모가 꽃을 가리고 있는 이파리를 뜯어냈다.
-이래야 여기 꽃이 있는 줄 알지. 이제야 잘 보인다.
이모의 야윈 어깨가 더 쪼그라든 것 같았다. 나도 이모를 따라 별꽃아재비를 덮고 있는 이파리들을 뜯었다. 이파리가 사라진 자리에 조그맣고 앙증맞은 꽃잎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모 김치 담갔어. 이모 겉절이 좋아하잖아. 허둥대느라 잊고 왔네. 저녁에 가져갈게.
-요새 금치라던데 뭐 하려고 그 비싼 걸.
-금치라도 먹어야 살지.
-강 서방 미안하게 스리.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앙칼진 목소리에 이모가 움찔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이모는 더는 묻지 않았다. 자기 몸 건사하기도 힘든 마당에 내 얘기까지 얹으면 이모의 걱정거리만 늘어난다.
의사는 보름 동안 부부관계를 피하라고 말했다. 도살장에 끌려간 가축처럼 다리를 벌리고 누워 제 살인 냥 박혀 있는 루프를 제거했다. 살점이 뜯기는 아픔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댔다. 금술이 좋으신가봅니다. 그래도 이제 기구는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처방해드린 약 드시고 이틀 후에 다시 나오시죠. 병원을 다녀온 후 침대 위에 축 쳐져 있었다. 남편은 콘돔을 쓰는 것을 싫어했다. 수술을 한다는 것은 남편에게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달려드는 남편 때문에 중절 수술도 두 번이나 했었다. 그때마다 남편 대신 이모를 보호자로 대동하고 뱃속에 아이를 지웠다. 임신한 사실을 알렸을 때 남편은 알아서 하라는 말만 했다. 뜻밖의 임신이 내키지 않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두 아이만으로도 버거웠다. 사랑보다는 책임감으로 아이들을 대해왔다. 사랑을 주는 것도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엄마라는 자리가 두려웠다.
현장 일을 마친 남편이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달려 집에 왔다. 저녁을 먹기에도 이른 시간 남편은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까무룩 잠이 든 사이 아랫도리가 서늘해지는 불쾌감에 눈을 떴다. 잠깐 일어나 봐. 낮은 남편의 목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내가 오늘 어딜 다녀 온 지나 알고 이러는 거야? 산부인과에 다녀왔어. 너무 오랜 시간 내 몸에 박혀 있어서 그거 빼는 데도 애를 먹었어. 그만 좀 해. 차라리 다른 여자를 만나.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고 방을 나왔다. 급습을 당한 남편은 뒤따라 나오지 못했다. 나는 입은 옷 그대로 아파트 단지를 서성거렸다. 차마 이모에게 갈 수 없었다. 남편의 배설물을 받아내는 행위는 시간이 지나도 견디기 힘들다.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인내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고 주체할 수 없이 화가 치밀면 이모 앞에 누워 소리 죽여 울곤 했다.
폭언과 손찌검에 시달리던 두 여자 아이는 서로의 눈물에 익숙했다. 자신의 눈물을 닦기도 지친 우리는 상대방의 눈물이 마를 때까지 지켜보았다. 이모와 나의 오랜 습관은 나이가 먹어서도 진행 중이다. 햇살이 드는 거실 창가에 누워 각자의 아픔이 삭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 이상의 치유 방법은 없었다.
구석진 공원 벤치에 기대 앉아 시간을 죽였다. 아이를 지우고 누워있는 내게 이모는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애 낳는 거랑 똑같단다. 허기진 뱃속에 미역국을 들이밀 때처럼 헤집어진 상처를 어루만져 줄 따스한 온기가 그리웠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하나 둘 아파트로 들어섰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거리에 가로등이 켜지는 걸 지켜보다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침대에서 코를 골아대고 아이는 냉장고를 뒤지고 있었다. 어디를 다녀 오냐는 아이의 물음에 이모 집에 다녀왔다고 둘러댔다.
이른 새벽 집을 나가는 남편이 지방 현장에 가게 되어서 당분간 오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나와 남편은 얼굴을 붉혔던 일 따위는 잊은 듯 덤덤하게 인사를 나눴다. 지방에 머무는 사이 남편은 내가 병원에 다녀온 사실을 잊을 거였다.
-엄마한테 곰살 맞게 굴어.
이모가 눈은 꽃에 둔 채 화제를 돌렸다.
-넌 나보다 훨씬 똑똑하잖어. 느이 엄마를 닮아서 그런 거야. 나처럼 미련한 인간이 어디 있겠니. 도망도 안 가고 아둔하게 맞는 내가 엄마는 꼴도 보기 싫었나봐. 덜 떨어졌다고 맞은 적도 있었거든.
-이모는 외할머니가 원망스럽지도 않아?
-저기 좀 봐.
이모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나뭇잎 하나가 그네를 타듯 천천히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원래 씨앗 품은 잎들은 저렇게 떨어진다고 하더라. 저렇게 가로로 왔다갔다 하면서 떨어지면 바닥에 떨어져도 씨앗이 멀쩡하대.
-이모 똑똑하네. 난 그런 거 몰라.
-실은 어떤 할머니가 알려 준거야. 너 학교 가고 나면 나도 뒷산에 가서 꽃 따고 나무 올라가서 학교 바라보고 그랬어. 그때 할머니랑 본 건 나뭇잎 두 장이 날개처럼 펼쳐진 건데 사뿐히 내려앉는 게 뭔지 직접 봤다니까.
-그런 얘기는 왜 하는데.
-자식 아끼는 건 나무고 사람이고 같다고. 우리 엄마 누워있을 때 엄마가 나를 미워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는 거 알았어. 너도 자식 키우는 사람이잖아. 조금만 네 엄마한테 품을 내줘 봐. 저기 저거 할미꽃 아니니?
이모가 오리걸음으로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나가는 말처럼 불쑥 꺼내놓고 흐지부지 꼬리를 감추는 것이 이모의 오랜 말투였다. 나도 이모 옆으로 다가갔다.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선 것은 야생 할미꽃이었다. 누군가 산에서 캐와 심은 모양이었다.
-요새 어릴 적 너랑 동네 어떤 여자 아이랑 놀던 산이 자꾸 생각 나.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가 천국이었어. 도시 나와서는 볼 수 없는 것들 거기서 다 본 거 같애. 이름은 잊었어도 색깔이며 모양은 또렷하거든.
도시의 꽃은 비슷비슷했다. 아파트 화단마다 비비추가 흔했고 봄이면 경쟁하듯 빨간 철쭉이 단지를 채웠다. 도로가에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도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시골에서 보았던 야생화는 눈을 씻고 찾아봐야 겨우 한두 가지 종류가 보였다. 동과 동 사이 빈 공터에는 민들레를 캐 가는 여자들이 간혹 눈에 띄었고 클로버가 지천으로 깔린 사이로 붓꽃이나 제비꽃이 무리지어 피어있었다. 간혹 수줍게 얼굴을 들어 보인 봄맞이와 별꽃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에게 죽을 만큼 맞고 난 이후에도 나와 이모는 외할아버지가 잠든 걸 확인하고 뒷산으로 놀러갔다. 우리는 숨 막히는 집안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날아갈 듯 행복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에 올라가 멀리로 보이는 능선에 시선을 빼앗기고 토끼풀을 치마 가득 담아 냇가 근처에 앉아 반지며 왕관을 만드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도 재미났다. 동네 아이들이 모르는 야생화의 이름을 학교에 있는 낡은 식물도감에서 발견했을 때는 연습장 귀퉁이에 그려 가 자랑하기도 했었다.
-너도바람꽃, 금낭화, 자운영, 용담꽃이랑 야생 잔대꽃, 구절초, 고들빼기, 무릇, 노루오줌......
이모는 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처럼 손가락을 접으며 꽃 이름을 외워댔다. 풀숲을 뛰어다닐 때는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귀한 줄 몰랐었다. 어딘가 숨어 찾기 힘든 꽃들은 이모와 나의 지난 시간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우리 시어머니 동서들이 서로 안 모시겠다고 싸우나보더라.
-지금 이모가 그 노인네 사정 생각해줄 때야.
-사람이 미련해서 그러지. 그래도 안 된 거는 안 된 거잖아. 난 꽃으로 태어날란다. 이꼴 저꼴 안 보고 걱정거리도 없이 저 꽃처럼 조용하게 왔다 사라지게.
난 말없이 이모의 손을 잡았다. 짓무른 눈이 반달을 그리며 웃었다. 바람이 꽃잎 위를 스쳐가고 이모의 힘없는 머리칼도 따라 하늘거렸다. 이모의 생일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육십 해를 사는 동안 이모의 맘이 편했던 날들은 얼마나 될까. 코끝이 아려 괜스레 클로버를 헤집었다.
-이모 내가 네잎 클로버 찾아줄까.
-난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는데.
이모가 나를 따라 머리를 처박을 듯 숙이고 무성한 이파리를 뒤적였다. 네잎 클로버를 찾듯 기적이 오리라 믿지 않는다. 이모에게 허락된 나머지 시간이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듬섬듬성 머리가 빠진 이모의 머리를 스쳐 옅게 붉어진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이모와 있게 해주세요. 내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이모가 머리를 들어 나를 보고 웃었다. 수줍고 천진한 웃음이었다. (끝)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송년회에서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이름이 낯설지 않네요.ㅎㅎ
왕 축하드립니다.
송년회 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