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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자료실 스크랩 눈꽃 속의 불씨 삼척 육백산 너와마을
비단길 추천 0 조회 34 10.02.20 00: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산마을그림순례]

 

 눈꽃 속의 불씨 삼척 육백산 너와마을
 

▲ 현재 너와집에서 살고 있는 이상연,상창(왼쪽) 형제.


산을 향해 떠남은 일상에서의 일탈과 휴식이다. 그 조건 없는 큰 가슴(자연)에 안기는 일이다. 한편 스스로를 내맡겨 잃어버린 것에 대한, 잊고 지내온 생명의 경이와 존엄, 생사(生死)의 무상(無常), 공생과 순리, 열정과 비움 따위의 거울을 지니게 한다.

하지만 산에서 태어나 오직 산에서만 자란 이들의 삶은 산과의 거리가 없다. 그 운명이 시간과 현실 속에서 생계의 방편으로 삼아 온 경우, 다만 해는 앞산에서 뜨고 뒷산으로 짐을 바라볼 뿐이다.

‘거리는 우리를 구원하고 사랑하게 만든다. 모든 것은 거리를 두면 아름답게 보인다. 거리는 모든 걸 해소한다. 시간적 세월과 공간적 거리는 같은 차원이다’(강우방)는 말이 산마을로 가는 내게는 왜 진정이 되지 않을까.

어느 때부터인가 여행에서 답사로, 나아가 순례의 여정으로 화첩기행의 의미를 되새기니 그 길은 자꾸 꿈결에 보챈다. 함께한 이웃과 현실의 삶을 통감할수록 가슴 시리고 때론 뜨거운 사연에 발목 잡혀야만 했으니…. 그래서일까, 나의 거리는 여태 생존의 울타리를 벗어나 있지 못하다.

▲ 내리는 눈속에서 그린 대이리 너와집. 33×24.5cm.


예전 오롯이 산을 생계의 조건으로 화전민이 살던 곳. 삼척 신기면 대이리의 겨울 밤, 추위와 지루한 적막 속에서 갑자기 환호성이 터졌다. 근 일주일째 눈 속의 너와집을 찍기 위해 침투한 방송스탭(YTN)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시간, 그토록 기다리던 눈발은 쉼 없이 내려 새벽녘에는 십수 년만의 폭설로 이어졌다.

‘나무이야기’ 특집으로 겨울 소나무 사생 장면을 담고 싶어하는 방송단과 함께 온 나는 11년 전(1994년)의 이곳 겨울을 떠올렸다. 당시 생태기행으로 굽이굽이 눈 쌓인 험한 길을 겨우 밤에 찾아와 몇 대의 자동차 불빛으로 주변을 밝히고 너와집에서 언 손을 녹이던 일. 그 인연은 이듬해 개인전 출품작(‘삼척 대이리’)으로 확인된다. 그 때의 자상한 할아버지(이종옥씨)는 불과 몇 달 전 84세를 일기로 돌아가시고 며느리(이연학?60)와 손자 상연(37), 상창(34) 형제가 너와집에서 살고 있다.

▲ 신리 너와마을 부녀회.


너와집은 화전민이 살던 집으로, 논농사를 짓지 않아 초가지붕의 볏짚 대신 두꺼운 나무껍질이나 널조각으로 지붕을 이은 집이다. 주로 소나무와 전나무가 많이 쓰였다. 수명은 10~20년 정도이나 부식된 너와는 2, 3년마다 갈아 끼우며 벽면 또한 판자로 두르고, 방바닥은 온돌이다.

길손들을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자 너와집 내부의 궁핍한 살림살이가 세월의 잔영과 함께 드러났다. 지붕을 쳐다보니 어둠 속 눈발이 희끗한데 밖에서는 너와 위로 연기가 나풀나풀 피어오른다. 이처럼 너와의 틈새는 굴뚝 역할을 하고 비가 오면 나무가 팽창해 빗물이 새들지 않는단다. 한편 여름엔 통풍으로 시원하고, 겨울눈이 덮여서는 찬 공기를 차단해 준다니 척박한 환경에서 슬기롭게 대처해온 산골집이다.

눈보라가 쏟아지는 뜰에서 화첩을 펴자 붓길 따라 먹물이 피고 번지는 희한한 눈꽃현상이 조우한다. 그리고 하늘과 산, 마을과 나무가 경계 없는 설중무아경(雪中無我境) 속에 연기는 솟고 눈은 내리고….


▲ 마을이장 홍순만씨(51).


마침내 날이 밝아 은빛 세상.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에서 길을 내는 이는 일행이 머문 민박 주인 이종대씨(李鍾大·71). 알고 보니 돌아가신 이종옥씨의 사촌동생이다. 이곳 대이리에 둥지를 튼 지 11대에 이른다는 이씨는 바로 코앞의 너와집에서 태어났고, 하장면에서 시집 온 김인옥 할머니(73)와 7남매를 낳아 키우셨다. 주변 환선굴이 관광지로 개발되고부터 민박과 약초(장뇌)로 그 곤고한 세월의 가난을 벗어나게 되었다니 이게 다 조상의 음덕인가, 개발 인연 복인가. 노부부는 연신 밝은 모습이다.

차는 이제 며칠 전에 먼저 묵었던 또 다른 너와마을 도계읍 신리로 체인을 치고 달리는데 거북이 걸음이다. 도계 고개로 넘어가는 길이 막혀 태백으로 돌아내려와 통리로 넘어가는 길이 무려 5시간. 오전에 떠난 일행의 차는 저물녘에야 신리 너와마을에 닿아 나를 내려주고 그대로 눈길 속으로 사라져 갔다.

다시 온 길손을 반겨주는 마을이장 홍순만씨(洪淳晩·51). 부녀자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식당엔 삼삼오오 모여 부녀회를 열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의 민박 소득 결산과 앞으로의 대책 마련, 즉 단체숙박에 대한 손님맞이 행사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2002년 강원도의 ‘새해 농어촌 건설 최우수마을’로 선정된 부상(5억 원)으로 마을 주민들이 합세해 손수 지었다는 7동의 너와지붕 황토집은 ‘너와마을’ 지명을 낳은 명분에 기초한다.

지난 날 화전촌은 ‘화철동’, ‘부쇳골’ 등 불(火)과의 인연으로 불렸는데, 산불이 자주 난다하여 신리(新里)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화전이 끝장난 터에 자연 새 이름을 원한 것이라 하겠다. 그 신리가 또 ‘너와마을’로 변신했으니 화전은 사라지고 ‘너와’가 이젠 마을의 상징이요 심벌이다.


▲ (左) 겨울 양말과 커피를 끓여 내주신 박영남 할머니.(右) 물레방아 너와집에 태어나 평생을 산 김분옥 할머니.


며칠 전 정보화 시범마을(2002년 농림부 지정)로 지정된 이곳 너와집 펜션을 살피기 위해 앞산으로 올라가자 육백산(六百山·1244m) 능선을 타고 내린 산자락 품으로 펜션과 대교분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산골학교 운동장을 걸어보는 감회는 언제나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아슴푸레하다. 일제 때 개교한 이후 이곳 마을사람 거의가 동문, 동창인 배움의 요람. 그 운동장엔 어김없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문구를 새긴 이승복 어린이상과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서양 소녀의 독서상이 세워져 있다. 미술에 있어 시대별 양식사가 있듯 학교 또한 오늘의 사정이 훗날 근대교육의 양식사로서 분명 기록될 모델의 현장인 셈이다.

이제 남은 학생은 6명. 곧 폐교에 처할 운명의 학교를 나온 홍 이장이 18회 졸업생이라는 말을 듣고 한 마디 했다.

“저 뜻 깊은 학교는 꼭 마을 사람들이 구입해서 문화공간으로 활용해 보세요. 너와펜션과 바로 연결돼 있으니 산골 체험장이나 민속 박물관으로 활용하면 마을 이미지도 살아나고 주변의 반응도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만….”

길손의 말을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장을 따라 마을회관이 있는 삼거리를 지난다. 이제 옛 너와집으로 가는 길. 현재 63가구(185명)가 농업으로 살아가는 각성받이 마을 중심터에 이르렀다. 집들이 산을 등지고 가곡천 앞으로 줄지어 있는 곳에서 만난 방앗간 너와집은 태풍 루사(2002년)와 매미(2003년)로 피해를 입은 뒤 복구했다는데, 주인 잃은 방아와 소 없는 외양간은 휑하니 을씨년스럽다.

너와지붕으로 이은 정보센터 건너편 언덕에 드러난 또 하나의 너와집. 그곳엔 예전에 사용하던 피나무로 만든 김치통, 싸리로 만든 낡은 채독이 있는데, 독이 새지 않게 쇠똥을 발라 사용한 흔적이 살펴졌다. 실내 공간은 의외로 넓은데 방 4개와 마루, 다락, 부엌과 외양간이 딸린 이곳에서 불씨를 저장하던 ‘화터’와 어둠을 밝힌 ‘코클’이 있었다 한다.

▲ 너와마을 노인회장 홍정남씨(70)


자연에 의지한 원시적 삶은 지역에 따라 각별한 느낌이다. 2000년 여름,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여정에서 만난 마사이 부락 쇠똥마을에서 온통 쇠똥으로 만든 동굴 같은 어둠 속의 집을 기어들어가 만난 호롱불의 기억. 그 날의 빛이 시간과 거리를 잃고 잠시 부유한다. 이어서 깔때기 모양의 지붕을 지닌 통방아와 산중턱의 고즈넉한 너와집. 소나무 산 아래 잠든 빈집은 이미 산촌 삶의 역사가 되었다.

그 날 저녁, 마침 식당에서 홍 이장과 마을 개발위원장인 김종하씨(金鍾河·59)로부터 듣는 마을이야기는 절박하고 진지했다. 옥수수, 둥굴레, 메주콩(흰콩), 산머루 재배가 고작인 척박한 산골에서 자원이 빈약한 터전을 일신해 보려는 마을사람들의 노력과 단합은 실로 끈끈한 것이기에.

2,700평 규모의 대지에 조성한 너와집 민박은 팜스테이 사업으로 도시민 산골체험(송이 따기, 산나물 캐기, 밭 갈기, 물장구치고 고기 잡기, 두메산골 겨울나기 등) 센터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너와집을 보유한 마을(중요민속자료 제33호)로서 그 이미지를 선양하기 위해 펜션 중 한 집은 옛 너와집을 그대로 재현해 당시의 생활상과 집기들을 언제고 볼 수 있도록 꾸몄다. 무쇠솥을 부엌 아궁이에 걸고 불꽃이 살아 있도록 하였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

이제 잠을 청하러 식당을 나선 눈 속의 밤. 길손을 위해 불을 지펴준 육백산 이름 외에 사금산, 물레방아, 디딜방아, 통방아집의 너와가 하얀 이불처럼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다시 잠이 깬 다음날 아침, 마을 사람들이 손수 땀 흘려 지은 황토 너와집 기운이 여독을 풀어준 것일까. 모처럼 상쾌한 기분으로 문밖을 나서자 온통 눈세상에 쾌청한 날씨다.


▲ 눈속에 파묻힌 통방아.


부녀회에서 2인조로 운영하는 오늘 당번은 이장 부인인데, 아침 식사 후 남편 홍 이장이 눈길을 뚫고 왔기로 마을 전경을 살피러 그의 트럭에 올랐다. 그런데 젖소목장 입구에 눈이 쌓여 차가 들어가지 못해 눈을 치워야 한다며 며칠 전 미리 보아둔 곳으로 안내할테니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내려오란다.

비닐을 끌고 눈삽을 등에 진 그를 따라 오르는 산언덕의 눈길. 십수 년만에 내린 폭설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무릎 위로 빠지는 눈길은 한 발 한 발 떼 놓기에 숨이 차고 힘이 부친다. 그렇게 눈밭을 걷다가 송신철탑 언덕에서 돌아보는 설경의 세계. 육백산(서)과 사금산(동)을 큰 울타리로 삼은 삼거리의 너와마을이 한눈에 펼쳐졌다.

산속 설송(雪松)들은 크리스머스트리처럼 눈을 인 채 모두 아래로 처져 있고, 더없이 청명한 쪽빛 하늘은 청량한 기운으로 충만하다. 마을 뒷산 너머로 육백산이 아스라하고 정상인 응봉산도 고개를 내민다. 그 아래로 마을과 도로, 그리고 개천이 펼쳐지는데 사람들이 눈을 치우는 광경이다.

원거리를 두고 보는 풍경은 왜 이다지도 아름다운가. 이는 마치 카메라 줌과 접의 분별처럼 마음 거리도 대상에 따라 ‘거리’를 가진다고나 할까. 여기 인적 없는 빈집도 눈 속 풍경에서는 모두 그림이 되고 있으니.

이장이 건네주고 간 비닐을 깔판으로 몇 곳을 이동하며 마을 전경을 화첩에 담은  후 마을길로 내려오자 양말이 모두 눈에 젖어 이내 발이 얼 것만 같다.  하여, 눈을 쓴 평상에서 해바라기하는 할머니(박영남?70)에게 사정을 청하자 바로 두터운 양말을 꺼내 오고 뜨거운 커피마저 내놓으시지 않는가. 실로 산골 인심에 뭉클하다. 그리고 옆 자리의 지팡이를 든 할머니(김분옥·75)는 물레방아 너와집의 옛주인으로 그곳에서 태어나 일생을 보낸 분이라고 소개한다.

한편 “조카, 날이 풀리면 내  도 좀 살펴주오”하며 청하는 할머니 말에 웃음으로 화답하는 김종훈씨(51). 그는 삼척시 지정 너와집을 복원한 이로 마을 너와집 개수를 도맡아 한 일꾼이다. 짐작컨대 마을 너와펜션도 김씨의 경험이 매우 컸으리라 그이는 마을을 그리는 내 사정을 알고나서 트럭을 몰고와 눈  인 너와집과 통방아를 안내해 주는데,산언덕에서 아이들이 고함을 지른다. 비닐 포대를 깔고 눈속을 미끄러지는 유쾌한 모습인데 손을 흔들어 화답하는 아이 중에는 어제 만난 김하솔(10)과 이보름(14) 학생도 눈에 띄어 반갑다.

▲ 물레방아 너와집. 33×24.5cm.


김씨는 결국 펜션식당까지 편의를 제공하고는 눈인사로 핸들을 돌렸으며, 마침  마을 부녀들이 베푼 점심을 함께 나누게 된 이는 홍정남(洪正南·70) 회장이다. 연세에 비해 매우 건장한 모습인데, 조상이 화전민으로 입산한 이후 3대째 마을에 산단다. 그는 예전 너와를 이을 때 대마속대(껍질)로 지붕을 엮던 추억과 궁벽했던 마을 유래를 길손에게 들려주니 이곳의 산 증인이다.

▲ 눈속에 파묻힌 너와집.
이제 눈길이 뚫렸으므로 태백으로 가 열차를 타고 돌아가야 한다. 홍 이장은 버스 시각을 묻는 길손을 마을 봉고차에 태우고 고개를 넘는다.며칠 후면 이장 임기가 완료되어 곧 차기 이장이 선출될 것이라는 그의 입장을 아쉬워하자 “정말 후회는 없어요. 다만 후배들에게 좋은 뒷모습을 보이고 싶어 노력했을 뿐입니다”고 한다. 사실인즉 그 어느 때 보다 산마을의 변천 속에서 새 생활터전을 가꾸었고 주민들과 함께해온 그의 의지가 현실로 드러나기를 나 또한 기원한다고 말했다.

봉고차가 태백역에 이를 즈음 ‘태백 눈꽃 축제 관광열차’에서 버스로 갈아탄 관광객들이 열을 지어 지나친다. 한겨울 눈꽃 산행을 고대하던 도시인들이 산을 향해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며 가득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순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이 눈꽃천지에 휩싸인 산마을, 너와마을이 새 불씨를 일구는 시간 속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너와지붕, 무쇠솥 아궁이의 불씨를 새롭게 되살리는 일이 마을의 운명과 내일을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눈꽃’과 ‘불씨’의 거리는 얼마인가. 아니 ‘눈꽃 속의 불씨’가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은 무엇인가. 나그네는 홀로 되뇌이며 열차 속에 흔들린다.


그림·글 이호신 한국화가 lhs1957@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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