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지 힘든데 일단 의식 수준에 대한 것을 가닥 잡아갈 건데 나머지 더 부연할 것이나 다른 의견이 있으면 질문해주면 더 설명해가 보도록 하죠 그리고 이 글은 날 모르거나 부정적인 인간으로 보는 분은 읽지 마시길 바랍니다. 서로 불편해질 뿐이니까요
쓰다 보니 내 자랑만 한 거 같은데 잘 걸러서 읽으시고요 오해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 조심하시길...
의식에 수준이 있다고 이해한게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대강 20대인데 몇 살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 수준이라는 것은 개인들의 격이 다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가 다르고 역사가 달라서 가지는 가치관의 차이라고 해야 합니다.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이 가지는 관심과 가치판단기준이 있고 선진국이나 잘 사는 나라들의 사람이 가지는 가치관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회가 어떠하냐로 형성된 의식의 다름을 말하는 것이지 개인의 수준이 있다고 해서 인간 자체의 격을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철학책을 읽어가면서 일종의 독심술 같은 것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 사물에 대한 지식이 따지기 시작하면 혼자 나불대는 것이 끝없이 할 수 있었을 때라서 이러저런 것이 쌓이다 보니 이런 것도 알게 된 것이거나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말해야겠죠
어떤 사실이나 지식이나 사건에서 맘먹고 생각하면 다각적인 관점에서 중층적이고 섬세한 지식을 나열할 수가 있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합리성이나 논리적인 그거를 대어가며 장편의 이론서를 만들기도 했죠 물론 머릿속에서 만요 가끔 동생과 대화하면 그것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한번 시작하면 반나절인데 그럴수록 공허해집니다. 떠들지만 못 알아듣는 것을 알면서도 말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 참담하거든요
이럴당시 만들어진 세계구상이 지금도 내 바람의 기틀(도)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고 했죠 원하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하는 것이고 세상이 어떻게 될지 미래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난 바라는 것이 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바라는 것 중에 사람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판단하는 그러한 개체가 되길 바라죠 그러기 위해선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이건 우리 역사가 지식이 대중화하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고대엔 지들끼리 지식을 만들고 독점하는데 그러던 것이 더 많은 사람이 알고 또 알게 되니 의견을 내고 비판하고 그런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동양엔 그 과정이 더디었는데 서양이 인쇄술이나 과학이나 지식에 대한 눈을 뜨게 되면서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는데 이건 인류의 진화 방향이 맞아서 그렇다고 봅니다.
보수적인 카톨릭이나 유교나 이들은 그런 것을 원지 않는다고 보는데 그건 그들이 신의 의지를 오해한 것이거나 학문에 대한 불철저함이 있거나 인간에 대한 성찰이 미비해서라고 생각했죠
동양은 이러한 역사에 별거 없었냐고 하면 그런 건 아닙니다. 서양이 확실하게 문을 연거고 그것을 열게 하기 위한 암중모색은 동양에서 이루어진 거라고 봅니다만 이런 건 역사가 연구할 문제고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인쇄든 과학이나 수학도 동양이 먼저한건 사실이니까요
상고시대로 가면 또 다른데 이건 증거 하기 어려우니 2 천년을 전후로 한 역사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민주주의를 그리스인들이 먼저 한 것처럼 하지만 그 원형은 동양에서 이미 있었고 정치적으로 그러고 있었고 그걸 베낀 건 그리스인데 지금에서야 이걸 말하는 서양 학자가 있죠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는 그리스가 먼저 했는지 알고 있죠 이런 건 서양인의 한계가 됩니다. 자기들이 이룩한 지금의 문명의 정당화를 자기들의 과거에서 근거를 찾아야 하는 것이라서 그것이 자기들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라면 인정하기 싫겠죠 그리고 이 문명이 역사적인 시간으로 말하면 늦은 거고 고대의 문명들이 먼저이면 그러한 순서로 보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겠죠 늦은 것이 잘난 체인 거죠
하지만 우리나라가 뭔가 이룬다면 우리가 젤 늦은 것이기도 하죠 2천 년 전후에서 우리가 이 세계에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한 것이 없었으니까요 역시 젤 더딘 것이 젤 잘난척하는 모습을 보게 되겠죠
내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그것이 스스로 판단하며 사는 것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정치를 하던 상관없는데 이것이 더 수월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제하고 억압하고 독점하고 하는 것에 반기를 들어야 하는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식을 누가 독점하거나 비밀리 하거나 뭔가 음흉한 의도를 품고 속이는 것은 결단코 반대입니다. 이건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서 난 이것을 위해서 오직 이것을 위해서라고 할 정도로 신경 쓴 것입니다. 그래서 난 지식소유권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내 글을 아무렇게나 이용해도 된다고 한 것은 그래서입니다. 내가 소유권이 있다고 말할 생각 없습니다.
내가 말한다고 내 것이 아니고 그 말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판단에 이롭다면 제발 가져가라고 하고 싶습니다. 목적이 사람들의 판단력에 이롭냐가 되지 돈이나 뭐나 이런 것이 판단기준이 아닙니다. 소유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오직 자기 도만이 소유되는 것이지 그 외는 전혀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걸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차이나가 불법으로 넷플릭스를 보는 것에 난 찬성입니다.
나도 보거든요 불법으로, 문제 삼으면 대가를 치르겠지만 이것이 잘못이라고 보진 않아요 그들이 사람이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이득을 위해서 하는 짓이라서 그다지 찬성할 수 없습니다. 뭐 그들이 우리 문화를 보는 것이 중요하지 어딜 통해서 보는 것은 그다음이라서도 그렇긴 합니다만 어찌 되었든 어떤 것이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단 경제적인 논리이고 그 외에선 통할 수 없다고 보니 난 경제적인 논리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과거엔 자기 이름이 아니라 남의 이름으로 출판하고 더 유명한 사람을 이용해 출판하는데 이런 건 내 것이라는 소유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그러한 지식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것이 서구인들이 만든 경제논리 이상은 아니라서 그런 것이 아니면 그따위는 욕먹을 짓일 뿐입니다.
즉 내 소유와 이로움이 목적이 아니라 세상의 소유와 이로움이 목적인 세상이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정유년에 사건이(카페내의 사건) 일어난 내 판단기준입니다. 그걸 투명성이라고 하지만 뒤에서 논의하지 말고 여기서 함께 다 같이 하자는 것인데 그건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서 정보를 숨기거나 따돌리는 것이 아니라 공개하고 다 함께 판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누구나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판단이 되기 때문인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항상 우린 신경쓰고 있는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누군 아는데 난 모르고 어디는 아는데 우린 모르고 어디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난 한가하고 이렇게 될 수 없으며 이세상에 사는 이상 이세상의 변화와 발전에 참여하기 위해선 어디에서 무슨일이 있는지 알고 사고하며 준비하고 행동을 해야 해서입니다. 판단하는 것은 행동하기 위해서이고 그 행동은 더 발전하고 이롭고 함께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 처음에 해당하는 정보가 중요하고 정보를 바탕으로 사고하며 판단하면서 함께 소통하고 결과를 도출하니 이 시작을 하기 위한 순서가 있게 됩니다.
물론 말한다고 모두가 듣지는 않습니다. 듣는 사람은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의식성장이 된사람인데 이건 그래서 의식에 대한 고민을 한 이유이기도 하고 내 말을 듣지 않음으로 인해 내가 외로움이 아니라 이걸 듣지 않음으로인해 앞으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서 또 이 살아가는 사회와 세상에 대해서 소외되어갈 사람들을 위해서 입니다. 사람은 자기에만 빠져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함께 사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세상과 함께하려면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윗사람이나 권력자나 정보나 지식을 가진자들이 이런 기회마저 주지 않는다면 그건 독재입니다. 그걸 바꾸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말하는 입장에선 듣는 사람도 없는데 말하는 그 공허함이나 무익함을 느끼는데 그러함에도 해야한다고 한 것이고 항상 아래로 내려가야 하고 말하고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의 순서를 위해 수년을 수십 년을 그리고 수백 년을 또 수천 년을 기다리고 준비한 것이며 역사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 문제의식이 없다면 내가 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는 것이 되어 어려움이 있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상 공개하고 말해주는 것을 이해한 정부는 이번의 정권이 최초입니다. 이후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이젠 후퇴이거나 더 발전이 되거나 그런 경계선이 되었습니다. 이걸 아시나요? 최초입니다. 이 위대한 한 걸음을 위해 그렇게 힘들게 해온 것인데, 마구를 하면서도 인지하지 못하면 스스로의 결과를 알아보지 못할 것인데요
아무튼 이걸 이해할 수 있을 정도까지 지식을 공부해야 하고 세상을 살피며 개념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내가 지금 또 앞으로 하는 일을 모를 것이고 역시나 역시나가 되겠죠
그런데 어제 카페 이름 고치면서 내가 실수해서 이렇게 힘든 글을 쓰게 된 것이지만요 ㅠㅠㅠ 아 이 실수를 누가 용서해주나 ㅠㅠㅠㅠㅠㅠ또 유행어로 말하면 "넌 더 말해주어야 한다.!!!"
말하고 있잖아요 ㅠㅠㅠ
그래서 정보공개 누구나 알게 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하다 보면 여러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라는 단어는 힘든 단어입니다. 그러니 모든이 아니라도 악의적인 숨김은 없어야 하고 요령적인 것이나 일의 성취상 어쩔 수 없거나 대강의 것은 말하거나 분명 다양한 방법이 있는 것은 인정하게 됩니다. 다만 정말 이 누구나 판단하는 세상이나 알려주어야 할 건 알려주어야 하고 함께 할 건 함께이며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이 본심이냐는 것이죠 이것이 본심이면 즉 동기가 이러하다면 그 사람의 행동상의 여러 전략전술은 인정됩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 내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입니다. 정말 민감합니다.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날 이해하려면요 내가 글을 쓰고 이거 저거 말을 많이 떠들고 있습니다. 알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과거에 천기누설이라고 절대 공개 불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안숨기고 다 떠드니 별거 아닌지 알기도 하고 그다지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난 내가 아는 것은 말합니다. 질문이 없어서 말 안 한 것은 있어도 숨긴 건 없습니다. 도에 대한 지식을 알면 아는 것을 어떻게든 말하려고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죠 너무 아는 척을 해서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런 비난과는 상관없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엿 되는 상황이 되어도 내가 바라는 것을 지켜야 하거든요 왜냐하면 이런 것을 도라고 해서요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 어떤 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닦는 사람으로서 도를 저버리면 끝인 거죠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도를 버릴 수 없습니다. 이것이 도닦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도는 어느 한순간에 득도되는 것이 아니라 그 도를 얼마나 오래 견뎌내는가, 일관성 있게 견지해가는가로 되어서 항상 지금 이 순간 도에 맞는가이지 한번 도를 좀 알거나 엿보거나 한 것으로 도를 알거나 득도했거나 말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견디어야 합니다. 그리고 관철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나 사소한 일상에서 이러한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이러한 것을 위해서 마구를 해온 것입니다. 처음엔 고단자에게만 지식을 말했는데 저단자에겐 차별이 되죠 숨긴 게 되니까요 이러면 모순이 되는데 꼭 그렇지 않아요 공개합니다. 다만 그 방법상에선 다름이 있습니다. 공개한다고 하는 것에 순서가 있고 방법상의 전략이 있다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글로 쓰는 것은 비밀 없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열심히 쓰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어떤 것을 목적으로 그 순서와 전략이 있고 방법상의 다양한 요령들이 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중에서 글로 못쓰고 고단자부터 공개해준 건, 같이 일해야 해서입니다. 뭔가 하는데 그게 뭔지 말해주어야 하는 의무감이 있어서이고 내가 가르치는 것이 지식이 아니라 어떻게 세상을 도로 이끄는지를 가르치는 것인데 그러려면 봐야 합니다. 뭘 어떻게 하는지를요
글로 저번에 쓴 것처럼(제목: 각성하는데 말이지) 도를 세상에 접속시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아니면 도가 아니고 인정되지 않죠 그러려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직접 보여 줄 수밖에 없는데 이게 말로 설명하기 참 어려워서입니다. 그래도 고단자 정도 되면 이해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상대가 알아듣는 게 있으면 그만큼 내가 말해주는 거라서 이건 중요합니다.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면 나도 말문이 막혀서 말해주지 못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고역도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고단자에게 말한 것이고 그 말 하면서 나도 말로 형성해가는 것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짐작하거나 느끼거나 뭔가 아련하게 보이는데 그것을 말로 재구성을 하는 것이 참 버거운 작업이었습니다.
내가 글재주가 있던 것도 아니고 머리가 이런 것에 남다른 것도 아닌 거라서 이걸 지속적으로 연마하면서 해야 하니 실수도 있고 논리적인 오류도 있고 하는데 아무튼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단 고단자와 함께 우리나라를 준비시켜야 해서 인데 이게 시일이 급해서 갑자기 계제 올리고 같이 다니면서 일 시키고 일 끝나면서 버린 것처럼 된 것입니다.
그만큼 그 사건은 중요했습니다. 그 사건만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앞으로 이룩할 업적에 기반을 닦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복잡하고 거대한 힘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천천히 할 수도 있지만 천천히 하려고도 한 것인데 그러지 못한 건 그만한 업이 부족한 것도 되고 저항하는 세력이 힘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 오고 그 세력을 감당하기 버거워서입니다. 그 세력이 서서히 방향이 틀어지고 변화가 일어날 틈을 이용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세계의 변화에 시간을 맞추어야 해서 입니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그만큼의 다른 희생을 치러가면서 메꾸어야 합니다. 아니면 포기던가요
그러면서 그렇게 진행한 것이 어떤 문턱을 넘으면서 고단자에게 말하던 것을 일반회원에게도 말하기 시작한 것이죠 시간이 차등이 생기지만 방법상의 일이 었던 것이죠 지금은 누구에게도 말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질문한 것에 한해서입니다. 내가 알아서 다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유는 상대가 원하지 않는 말은 안 한다입니다. 왜냐하면 듣지 않는 말은 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건 넓게는 마구의 방법이었습니다.
내가 하려던 도는 일반인이나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논의나 대화나 소통인데 그건 모든 사람의 의식을 대상으로 하니까요 일단 우리나라부터 의식적인 성장과 준비시키고 그와 함께 세계의 어떤 것이 준비되면 그때 세계로 나아갈 준비시키고 의식을 다루려고 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이건 수신제가치국평천하처럼 서서히 공간을 넓혀가는 것이고 일에선 순서가 분명히 있어서입니다. 내 도는 한순간에 말해줄 수 있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것에서는 순서가 있는데 그 순서는 시간이 상당히 길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순서가 누구에겐 차별로 보이고 손해로 보이고 억울해지고 힘든 기다림이나 처우를 당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일일이 언제 된다 언제 차례가 온다 언제 어떻게 된다 언제 뭘 할 것이다라면서 다 말해줄 순 없습니다.
이건 마구 하는 방법이 일단 내가 20대에 나름의 세계구상을 한 것인데 그리고 잊었다고 할까 그것을 기억하거나 적어놔서 살피며 확인하고 일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심층이 한 것인데 그건 심층이라고 한 것은 내 다양한 원신들이나(상식적인 의미론 무의식) 전생들이나 고위 신관들이 한다고 해야 합니다.
내 심층과 연관해서 활동하는 신관은 현부 쪽인데 이유는 내 내부의 심층을 느끼는 것은 그 정도가 아니면 안 되는데 심층이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는 것이고 그 외부라는 것이 깊이라는 것이고 이런 것을 아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걸 모르면 어렵죠 솔직히 어렵습니다. 현문이 이걸 오해해서 서로 어려움이 있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내 심층을 아는 것은 그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요구됩니다. 알면 같이 일하는 것이고 아니면 이용되겠죠 그것이 고위 신이든 다른 사람들이든 무엇이든요
이걸 아는 것을 도력이나 초월능력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인데 전혀 그런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내가 하는 일엔 그런식의 접근은 없습니다. 안목이고 지적인 성취가 있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심층을 안다는 것은 내 심층의 발현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발현은 이 사회에 드러나고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죠
사회의 변화나 사건을 보고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이나 안목이 있는 것은 그만한 고위신관들이나 고단자거나 그럴만한 지적 성취를 이룬 분이겠죠
의식이 일일이 알거나 활동하지 않는 것은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내 의식이 지금 어느 곳곳을 다 알고 뭔 일을 하고 뭔 일을 모의하고 뭐가 일어나고 뭐가 진행 중이고 이런 것을 다 알려고 하다가는 의식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내 의식은 그렇게까지 대단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면 의식이 뭘 하느냐고 하면 의식은 도를 설정했습니다.
거대한 흐름의 대강을 정하고 뭘 해야 한다는 그것을 정했으며 왜 그래야 하는지 알려주었고 무엇이 우선인지 판단기준이나 결정할 것의 합리성과 근거와 논리를 알고 있습니다.
즉 의식은 미리 설계한 자이고 지도자인 것이고 그것을 구현하고 실제로 정보를 취합하고 뭘 할지 정하는 세세한 것은 일선에서 할 일입니다. 이건 심층이 하죠 그래서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이기도 같은 것을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걸 가능하게 한 것은 마군입니다. 알아서 내가 설정한 것을 구현되게 하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군을 자기 신체정도를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으로 아는 것인데 그건 그정도의 경지이룸이고 나같은 경우엔 이렇게까지 마군으로 하게 한 것입니다. 아무나 다 된다가 아니라 그만한 오랜 시간의 애씀과 노력과 깨우침으로 할 수 있게 구현한 것입니다.
인생이나 운명이나 마구나 모든 것을 심층이 하지 의식이 일일이 머리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가까운 것이나 그리고 광대한 지구나 우주나 뭐든 심층이 일일이 합니다. 의식은 그럴 능력이 없죠
선장은 어딜 가는지 목적을 정해주면 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해야죠 선장 혼자서 다하면 그 배는 한치도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심층에서 올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뭐가 될 거 같다 뭔가 일어난다 이런 일이 있을 거다 이런 일이 있었다. 이건 이래서이고 저건 저래서이고 하면서 알아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사건이 가까워져서 알게 되거나 그것이 해결되어서 알게 되거나입니다.
그리고 의식이 알아야 일이 진행되는 것과 알면 안 되는 것이 있는 것인데 그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의식이 뭔가 인지하게 됩니다. 그 인지는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구요
자전거 타기로 많이들 말합니다. 의식은 목적지를 정하고 좌로 우로 어디로 가고 뭘 피하고 어디서 멈추고 하는 것들 대강의 것들을 하고 심층은 자전거를 운행합니다. 난 세상의 어떤 것에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가게 하는 세세한 것들은 심층이 합니다.
그리고 의식을 향상시키면서 신경 쓴 것 중에 보편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때의 보편성은 세계 다른 나라들과의 소통에 있었습니다. 전 세계와 서로 대화하고 같은 의제로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수준입니다.
이건 커다란 세계인류와도 그렇지만 가까운 우리 사람들끼리도 그렇습니다.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위해선 들을 수 있어야 하고 하나의 주제를 놓고 그것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고 이러기 위해선 오로지 하면 안 되고 상대가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하고 내가 감정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해서는 안되고 이런 당연한 대화이지만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
이런 강조는 수없이 했습니다. 그건 이러한 세계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저 이게 맞거나 이게 좋아서가 아닙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이것을 내 도로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도의 이끔을 위해 하는 말입니다. 그 크고 작은 성글고 정밀한 일관성을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전 인류가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며 삶에 어떤 의미를 두고 어떤 삶이 바람직한지를 고민하며 다양한 세사의 사건과 의미와 지식에서 스스로를 찾아가면서 선택하는 삶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시작하는 것이고 그것이 커다란 세계로의 울림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도 난 그 너머의 보편적인 세계에 대한 대화와 소통을 생각하면서 대화하고 논의하며 행동하게 됩니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만 하고 감정 토로만 하며 남을 듣기보다 할 이야기만 하는 것이며 주제가 있는데 자꾸 주제가 아닌 것으로 넘어가며 주제에 대한 것을 결정 내리지 못합니다. 듣는 사람도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것은 같습니다. 침묵은 듣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참여되지 않는다면 존재가치가 사라지는 것이라서 표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그래서입니다.
도공부하면서 대화를 못하면 그건 도와 무관한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주제에 집중할 수 있고 서로가 소통할 수 있고 결론 낼 수 있고 결론은 행동으로 옮겨갈 수 있는 이런 것이 우리가 대화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며 이건 도닦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이 되게 하려고 하는 것이 나의 도이고 마구이며 이게 전부입니다.
도에 대한 환상을 그래서 깨려고 많이 했습니다. 이걸 이해못하는 분도 많지만 항상 이게 기준입니다.
판단력이고 사고력이 난 도를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서이며 그래서 판단력을 기르고 사고력을 기르고 판단하기 위해 정보가 있어야 하며 그래서 말해주어야 하고 알려 주어야 하고 기회를 주어야 하고 비난하지 말고 기분 상하게 하지 말고 소통하는 것이어야 하며 대화하고 나아가 협력하고 결론 내면서 행동하고 그렇지만 결론은 그 당시의 결론이라서 다음엔 다시 해야 합니다. 정해진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해 가는 것에 참여되는 것이고 정해가면서 사는 것이고 정해가는 그 과정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참여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홀로가 아니라 세상과 함께 어울리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울려야 하니 세상에 무슨일이 있는지 알아야 하고 뭔지 알아야 해서 사고하고 공부해야 하며 비판하고 대화하고 행동하면서 이리저리 흔들림은 있어도 안보고 외면하며 자기만의 세상에 빠지면 안됩니다. 언제나 세상에 관심가지고 보고 함께하며 같이 고민하고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때론 잘못된 길로 갈 순 있어도 그것이 최선도 아니고 끝도 아닙니다. 비판이 있고 정의를 고민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스스로 세상은 옳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행동하고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입니다. 그것에 난 아니라고 외면하거나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참여하고 나도 함께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순서입니다. 이런 사회가 되어야 해서 이런 사회가 되는 것을 바란다고 하고 있습니다. 내 도이고 그 도를 세상에 구현해가는 것이고 엄밀히는 여기까지를 도라고 해야 합니다. 머릿속에서의 도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의 도입니다.
그것을 병신년에서 정유년 사회에서의 사건으로 보인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보고 무엇이 되려고 하는지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엇이 바른 것인지 뭘 해야 하는지 내가 어디 있는지 뭘 행동해야하는지 고민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못하면 참여하고 있지 않는게 됩니다. 참여해야 합니다. 세상참여는 과거엔 고단자나 특이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의 위대한 역사의 사건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중용에도 세상참여에 대한 말이 있고 과거에도 세상의 상황을 판단하고 그것을 다루려는 현자들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누구나 아무나 모든 사람이 하게 하려고 하는 이 세상입니다. 그걸 위해 정보를 알려주고 모두가 공부하고 모두가 지식인이 되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 세상이 되었는지 그것을 인지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이걸 위해 오직 이걸위해라고 할 정도로 신경쓰고 집착해온 것입니다.
동학의 최제우도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려고 유람을 합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뭘해야하는지 뭔 세상이 되었는지 알려는 노력을 오래합니다.
상제의 계시가 아니라 뭘해야 할 것인데 어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해결을 보는 것입니다. 그전에 세상에 대한 판단이 있습니다. 이거 없이 계시가 이루어지면 무뇌아에 빙의되는 것이 될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방안에서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지식인들이나 또 현자들이나 고민하는 것이고 알 수 있던 것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세상이고 이런 세상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니 더욱 활성화해야 합니다. 여기에 문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세상이 돌아가는데 그 세상에 내 위치는 뭔가, 난 뭘 해야 하는가, 뭘 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미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해결될때까지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해결이 되어야 비로소 도가 됩니다. 그건 세상에 바라는 뭔가를 정한 것이니까요 그 정한 뭔가가 뜻이고 도가 되겠죠
이러한 세[상이 되게 하기위해 하나하나 마구를 해나간 것입니다.
거기에 사회의 대화도 있습니다. 사회에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에 대한 의견이 갈립니다. 그러면서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 하면서 싸울 수도 있고 비난할 수도 있고 이런 것인데 이건 사회가 건강한 면이기도 합니다.
어떤 의견도 사회에서 나와야 하고 억압되어선 안되며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만 말하고 남은 틀리니 억압하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감정이 상하고 기분이 나쁘고 더럽더라도 말을 막아선 안됩니다. 그리고 남을 힘들게 할 말은 스스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것 역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단 말하게 한 다이고 그다음 잘 말하면 좋겠고 그다음 말하면서 남이 말하는 것도 인정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순서적으로 진행되어가야 합니다.
작년이나 올해 아직 우리나라에서만 이 지구상에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사회대 화가 일어나고 있죠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이나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그로 인한 세계는 논의를 안 할 수 없죠 그걸 보고 불편함이나 감정적인 묘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이 의식이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못한 것이 됩니다.
우리나라는 그러한 것을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세상에 하소연하고 질문하며 자극하고 함께 논의해야 하지 않느냐고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참여가 되면 비슷한 의식이고 보편입니다. 참여가 안되면 아직 미달된 것이기도 하고요
여기까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까지 오게 하기 위한 그 오랜 노심초사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고 의식의 수준이 중요한 건 그래서입니다. 이걸 말할 수 있는 사회이고 이걸 말할 사람이 있어야 하고 잘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보편성 있게 말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들어주는 사람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우리의 수준이어야 합니다.
일본이나 차이나를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들 나라에선 왜 이런 것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영화는 그들의 당면한 감정이나 사고의 결과입니다. 홍콩 강시가 유행한 적이 있는데 이건 차이나에 다시 복속되는 두려움의 표현이었다고 말하는 게 있습니다. 그 사회가 가지는 감정의 방향이 영화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그 나라만의 것이지요 그렇게 한때 지나간 유행이 되었고요 그러면 우리나라에선 지금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 것일까요 무엇을 말하고 싶을 까요 무엇을 논의하고 싶을까요? 그것이 영화로 문화로 예술로 나오겠지요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감정의 표현이 다른 나라와 세계에 공감대를 만들고 함께 어울려주는 것은 그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비슷한 것을 인식하고 있어서입니다. 그것이 보편이 됩니다. 이러한 보편적인 문화를 만들지 못하는 차이나나 일본이 있는 것이고 이렇게 되지 않게 하려고 한 내 마구가 있고 그들은 그렇게 될 거라는 내 전망이 있었고 우린 할 수 있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너무 다른 의견을 가지면 서로 대화도 안되고 이상한 상황이 됩니다. 이런 것도 예를 들면 일본이나 차이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과 세계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느냐 어떤 것에 서로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상반된 의견이 있으면 그것이 합당한 것인가입니다. 자기만의 이유는 자기 안에서 해결할 것이지 외부와 남과 다른 세상과의 대화에선 보편성이 중요하고 객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걸 모르면 자기에 빠진 사람이 됩니다. 비판을 하려고 해도 상대가 이러한 비판을 이해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면 비판이 비판이 아니라 욕이 됩니다.
이것은 그 당시나 카페 초창기에 설명하기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오겜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여기에서 부의 불평등을 말하는 면이 있다고 한다면 기생충도 그렇죠 일본의 반응이 뭔가를 보고 차이나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기생충만 해도 일본처럼 한국이 반지하에서 살면서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건 보편적인 주제를 말하는 것인데 그것을 그 나라만의 현실이라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별거 아닌 것으로 안다면 결코 내 말을 이해 못 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의 다름이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지만 이건 죽어도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초창기에 말했듯이 하나의 명제를 이해해도 이번 생은 잘한 거라고 한 것을 기억하시나요? 하나의 개념을 알기만 해도 인생은 복된 것입니다. 그만큼 우린 개념적인 성장을 하기가 힘겹습니다.
하나의 발상을 하고 못하고가 천지를 가르는 요점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편을 기준으로 사고하지 못하게 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 견해와 안목을 가지지 못했는가 왜 그런 안목을 가지게 되었는가 그건 사회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 사회가 그 사회 구성원에게 가치관을 형성시켜 줍니다.
오겜감독이 우리나라가 독재를 거치고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게 되는 인생관을 가지게 한 것이 됩니다. 만약 차이나에 태어났으면 비슷한 비판의식이 있을 것이지만 방향은 다를 것이고 그것을 내보이려고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크게는 그 개인의 성향이 자기 것이기도 하지만 그 구성요소와 방법이나 독특한 점은 그 사회가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부의 불평등은 다 비슷하게 인지하는데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있죠 그리고 그 시기를 갖추게 하는 것이 또 내가 할 일이죠 세계와의 시간을 맞추려고 했다고 말했으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 생각을 어떻게 하면 표출하게 하는가입니다.
이걸 세상이 준비되었는가가 됩니다. 이게 내가 어려서부터 한이 맺힌 개념입니다. 난 준비된 거 같은데 왜 안 되는가는 세상이 준비되지 않아서입니다. 오겜으로 말하면 인터넷이 있어야 하고 넷플릭스가 있어야 하고 거기에 코로나라는 또 한국의 위상이 적절한 때가 와야 하는 시의적절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국조신을 처음 대면하면서 논의한 주제가 인터넷입니다. 어떻게 세상에 퍼지게 할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을 통합할 것인가 어떻게 서로 간의 대화를 할 수 있게 할 것인가입니다.
그들은 방사라는 능력을 말하더군요 내가 그랬습니다. 그딴 건 과거에서나 통하는 것이고 지금은 인터넷이 있으니 다르게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능력으로 사람을 암시 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건 판단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 문화가 퍼지는데 결정적인 것이 네트워크라면 그것으로 지금과 같은 것이 되게 하려는 준비는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진보한다가 아니라 어떻게 진보할 것인데 그것에 우리가 할 그것을 어떻게 기입해서 성취할 것이냐입니다.
이런 준비를 내가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왜요? 이런 것을 미리 알고 그래야 한다고 그래야 저런 사람이 나온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작년 계룡산에 요성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선데이 카페를 갔죠
요성이 중요한 건 요성이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이라서 인데 그러한 사람이 나와서 일을 저지르라고 한 것입니다.
준비된 게 있다 그러니 한번 해보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 장르를 창조하고 자기만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그 시기가 왔다는 것입니다.
뭔가를 준비시킨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너무도 중요해서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 있다면 이면에서 어떤 것이 나오고 사건이 되고 사회현상이 되게 하기 위한 준비를 해주는 것입니다. 세상이 준비되면 사람이 거기서 뭔가 해낼 겁니다.
그래서 나에게 뭔 일이 일어나냐고 미래에 어떻게 되냐고 누가 뭐 되냐고 물으면 난 모릅니다.
사람을 보고서 일하지 않아서 인데 이게 아니면 다른 사람과 내가 사람 보는 방식이 달라서라고 해야 합니다.
물론 사람보고 일합니다. 그러나 사람보고 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누가 대통령이 될지 물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사람을 그렇게 보지 않아서 누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다양한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일단 우리나라나 세계에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다음을 위한 것이냐 지금을 위한 것이냐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단기적 장기적 다양한 시간적 시점에서 봐야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원하는 다양한 이해집단의 목적이 있습니다.
여기엔 신관들도 포함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고단자를 말하면서 서서히 할 수 있었다고도 말했습니다.
내가 대학 떨어지고 컴퓨터 학원엘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에 왜 이걸 배우나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직업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왜 이걸 배워야 하는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이었는데 이건 나중에 알게 되죠
내가 인터넷 같은 네트워크로 뭔가 해야 해서 그것을 빨리 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인데 맘대로 되지는 않겠죠 즉 아까 말한 대로 난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세상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이 당시엔 인터넷도 없었고 나라들 간의 이권들도 지금과 다르며 경제적 사회적 모든 것들이 준비되지 않은 게 있죠 그런데 초창기에 만난 고단자들이나 여러 사람들이 내가 사는 이 양천구 근처 지역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좀 더 일찍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일찍 만났으면 도를 빨리 배워서 깊이 있게 성취하면 저렇게 쉽게 꺾이진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건 만약에라는 것이지 애초 그럴 수는 없었겠죠 이것도 다 정해진 수순이라고 봅니다. 다만 정해진 건 정해진 거지만 그것에 저항하고 다르게 해보려는 그 의지는 정해진게 아니라 우리가 마구 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정해진건 대강이고 그 대강도 어느 시간대에서 정한 것이니 모든 것은 누군가가 정한 것이지 저절로 정해진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 건 이렇게 되게 하기 위한 누군가의 의지가 있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때 아시아의 용이라고 불리는 나라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 용들 중에 오직 우리나라만 이렇게 되었습니다. 선진국에 들어간 건 오직 우리나라뿐입니다. 역사상 처음이며 개도국이 그리 된 것이 처음입니다.
내가 20대에 한참 사고할 때 짜증 난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선진국이 아닌 나라가 선진국이 된 건 없었습니다.
선진국은 처음부터 선진국이고 그들이 지들을 그렇게 부를 뿐입니다.
남미를 비롯해 다른 나라가 그 지위를 얻으려고 하는 것을 선진국은 밟아버리면서 꺾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면서 imf가 옵니다.
드디어 이것들이 시작하는구나 하는 거죠
화폐전쟁이라는 책을 보니 차이나에도 이런 미국의 제제가 올 거라고 쓰여있더군요 다 아는 짓거리입니다. 일본이 당할 땐 좋았는데 자국이 당하면 그렇죠
앞으로 이걸 차이나가 극복하고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그책에선 오직 유일하게 한국만이 그걸 이겨낸 나라라고 써있더군요
98년에 돈 벌러 갔습니다. 왜요? 나라가 망해가니까요 돈 때문에 ㅠㅠ
하지만 이것이 기회인 것이기도 했죠 그 거대한 세력이 드디어 틈을 벌리고 있었죠 그러면서 정권이 교체가 됩니다.
이것이 내가 세상에 득도했으니 조심하라고 사자후를 날린 시점입니다. 그러면서 바로 후회를 ㅠㅠㅠㅠ
이게 내가 여기 있다고 알리는 것이 되어서 '누가 있다고? '하면서 별별 것이 다 와서 귀찮게 하고 덤비고 대들고 하면서 힘겨운 일이 시작된 계기가 됩니다. 정말 죽다 살았고 동생은 빙의돼서 눈이 히번덕거리는데 정말 미쳐버리는지 알았습니다 엄마가 집구석에 귀신만 들락거린다고 나에게 뭐라 하시는데 아이고 ㅠㅠ
내가 72년에 태어납니다. 72라는 숫자도 의미 있고 그래서인지 2년에 대통령 선거를 합니다. 2년과 7년이죠 탄핵 후에 변경이 되었는데 선거일이 그래도 년 수는 안 바뀌었습니다. 2017년 2022년식이죠 7과 2죠
태어난 이후의 우리나라 사건들을 다 말하면서 의미를 설명할 수도 있고 내가 마구 하면서 일어난 사회사건들과 연관해서 말할 수도 있는데 그러기엔 지금의 눈으론 너무 힘듭니다. 그런 자료 조사하고 글쓰기엔 ㅠㅠㅠ
그중에 하나를 설명하면 우리 집은 아버지 있을때도 시골에서 산 집이 우리 집이 아니라 가문집이고 거기서 제사하는 사당을 지키는 집이었습니다. 논밭도 제사지내는 곡물 기르는 것을 아버지가 관리하는 조건으로 그냥 쓰던거죠 그렇게 집한채 없는 거지집안인데 엄마가 겨우겨우 하루 벌이로 사는데 내가 어릴때 생각하기로 우리집은 이후에 우리나라가 세계에 드날릴 때쯤 생길 거라고 봤습니다.
그게 정유년입니다. 2017년 지금의 집을 엄마는 평생의 번 돈을 때려 모아 샀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나라는 한 단계 달라지겠구나 했죠 왜요? 집이 있잖아요 기반이 있고 저력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집을 사서가 아니라 우리가 집을 사는 거 같은 뭔가가 우리나라에 있어서 거기에 동조하면서 우리도 집을 사는 것이 됩니다.
세상이 허락해주는 그만큼 나에게 뭔가 일어나니까요 내가 이렇게 세상과 함께 동조하게 만든 것이니까요
이건 난 하루도 한순간도 세상과 끊어져서 살지를 못합니다. 오직 그것만이 머리에서 돌고 돌며 생각이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소한 하나도 그런 것에 따라 이어지고 이어가고 성취되고 잃어가니까요 그렇게 만든 거죠 그렇게 만들려고 한시도 딴 정신 먹은 적이 없습니다. 긴장을 놓치면 바로 나락이니까요 멀어지면 끝입니다.
그때 이런 집사는 것과 우리나라와의 연관을 알아낸 건 그냥 짐작이나 영감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나와 우리나라 또 세상과의 연관을 따지는 것을 한참 하던 때라 그걸 기본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지 논리적인 전개를 말해야 하는데 그게 기억이 안 나는데 아까 말한 데로 태어난 이후의 전개와 사회와의 연관을 다 따져야 해서 그게 어렵슴 ㅠㅠ 음 우리 집의 경제사정과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연관 지은 건데요
내가 우리나라 문화예술이 세계를 지배해갈 거라고 20대에 생각했는데 일본과 차이나가 못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우리가 할 거라고 본 것이 있는데 그때 본 판단기준이 보편성입니다. 일본을 알기 위해서 국화와 칼이나 이어령이나 그 나라의 유학자들의 책도 보고 했습니다. 다산도 참고한 일본유학자도 있거든요 그런걸 보면서 그나라 사람들의 성향을 알려고 한 것인데 그 결론이 일본은 내부적으로 시선이 침잠해서 다른 나라와 보편적인 소통이 안될 거라고 결론 낸 것입니다.
일본의 유학자가 쓴 것을 보면 또 그것을 연구하는 현대 학자들의 이론들을 보면 별거 아닌 것을 별거 인양 집요하게 떠드는데 그 담론의 협소함이 있습니다.
차이나는 십삼경을 비롯해 고대 경전이나 여러 서적을 참고해서 판단해 본 결과 그들은 황제국이 될 것이라서 과거로의 회귀할 거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안된다고 판단한 거죠
차이나는 과거부터 허풍쟁이로 말해왔는데 경전 자체가 다 허풍이고 과장입니다. 논어나 뭐나 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뻥튀기를 모르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헛소리하는 자가 됩니다.
아까 말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대학에 있는 말을 썼는데 이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천하라고 합니다. 천하가 어딘가요? 지가 사는 곳을 천하라고 하는 것이지 거대한 대륙이나 바다나 그 너머를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삼국지를 보면서 느낀건 그들의 세계관의 협소함과 잔인함입니다. 딱한번 읽었는데 그이후엔 다시는 읽을 염두를 내지 못한 지랄같은 소설입니다.
그럴걸 읽으면서 뭘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쟁을 보면서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지 않는 무지랭이들은 뭐고 전쟁에서 되도록 사람들을 덜 죽이고 덜 희생하고를 고민하지 않는 잔혹함은 뭐고 더 죽이고 더 공포를 주고 더 살육을 해서 이기려는 것만을 추구하는 무식한 것들을 좋아라 하는 것이 참담할 뿐입니다.
나도 병서를 읽었지만 병서 읽으면서 더 효율적으로 죽이는 것을 연구한다는 것을 인지는 하는지 모를겠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보편적인 사상을 만든 적이 없죠 도교는 혼자 신선되겠다는 것이고 유교는 보수적인 자폐를 만듭니다. 도교나 유교나 자기만을 위하는 방법을 씁니다. 한심한 안목입니다. 성리학이 우주의 리의 이치를 말한다지만 그래서 대륙을 벗어나 광대한 사고를 하던가요? 어느 정도의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사고를 하던가요 사대부와 양반을 위한 사고 정도인데 그게 우주의 이치를 논한다고요? 누굴 바보로 아나 ㅜㅜ
그런데 이런 거에 속더군요 우리 과거분들이요
내가 30살 즈음에 증산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그분이 썼다고 알려진 중화경을 보고서 유학적인 것들을 이리저리 짜집기 한 것을 보고서 놀렸죠 이런 것도 책이라고 쓰냐고요 그분이야 지식을 탐구할 시간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상식적인 논의를 한 것인데 그냥 때려 쓴 거라서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당신 나도 젊어서 비꼬는 버릇이 좀 있어놔서 그랬습니다.
이런 판단을 하게 한 것이 그들의 책을 보고 판단한 것도 되지만 그래야 한다는 요구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때쯤 되어서 세계에 드날릴 거라서 말이죠 이들이 해서는 안되니 안되어야 하는 이유가 이럴 것이다라고 추측한 것이기도 하고 이런 결론이 그런 책을 본다고 낼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내 성향이 그런 결론으로 이끈 것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답정너와 비슷합니다. 답을 내기 전에 이미 답의 방향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예가 육임을 하는 사람의 강의를 보았는데 일본의 화이트 리스크 보복 당시 육임 강사가 보수 쪽이라서 문정부가 잘못한 거라고 말하고 싶어 했고 우리 경제가 파산 난다고 하려는 것인데 이건 육임을 해석한 게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자기감정에 따라 해석한 것이기도 하고 육임은 그것을 보는 시간이 중요한데 자기가 원하는 해석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한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발표가 있는 시간에 그것을 정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시간에 다른 점을 봐서 차객을 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점을 쳐보는 연구를 해보면 알지만 그 점을 보고 싶어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본다 본다 하면서 미루다가 보거든요 아니면 굳이 그 시간에 보고 싶다고 할까요? 그런 것이 있죠
시간을 정하는 건 그 사건이 아니라 보는 사람입니다. 이건 아직 연구가 안된 분야라 잘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흉한 시간에 안될 만한 사안을 들고 손님이 옵니다. 즉 손님이 그 사건에 대한 시간을 무의식적으로 정하면서 오는 것이죠 이건 육임을 공부하면 선봉문이라고 중요시 한 분야입니다. 손님 오는 시간만 보고 선빵 날리는 것입니다. 너 안돼!!! 묻지도 않고 말할 수도 있죠 즉 시간이란 신묘해서 그 시간에 묻는다는 것이 일의 성패가 그러하다는 것이 됩니다. 그건 그시간에 육임을 펼치고 보려는 시도역시 같습니다.
어떻게 손님은 그 시간에 굳이 오는가 다른 시간에 약속했으면서도 왜 그시간에 안 오고 지금 오는가
우리 심층은 이미 아는 것이 됩니다. 그럴 시간에 그럴 짓을 합니다. 이걸 바꾸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과거엔 택일을 엄청 연구했습니다. 책만 해도 천기대요나 협기변방서나 엄청난 양의 이론이 있습니다. 그만큼 언제냐는 그 시간이 중요한 것이 됩니다. 난 이걸 마구에 쓰긴 하는데 일부러 시간을 안 봅니다. 일진이나 뭐나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마구 날자를 정하는데 이유는 내가 그전에 뭔가 하려고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되는 제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그날에 가죠
그런다고 길하게 되느냐면 그건 아닙니다. 길흉이 내 판단기준이 아니라서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일이 되는 날이 중요합니다. 난 길하고 흉한 것은 관심 없습니다. 일이 되고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겜감독을 예로 들면 이가 6개 빠집니다. 흉하죠 그럴만한 고통이 있으니까요 그 과정이 힘겨운 게 한두 개가 아닐 텐데 그것만 보면 그딴 거 왜 하냐고 할지 모릅니다. 시나리오 스고 안될거 같아 책상 서랍에 처박아둔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만큼 오랜 힘든시간이 있던거죠
그런데 안할 건가요? 어떤 괴로움이 있어도 할건 해야 합니다. 잘되어서가 아니라 그래야 하는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했잖아요 해야 할 건 해야 한다고 말이죠
그래서 점을 보는 당사자가 그날을 그 시간을 정하고 보는 것이 그 사람이 그러한 것을 바라는 심층의 누적과 요구가 있어서입니다. 즉 정해진 감정의 방향이 이미 있었고 그것에 따라 그 시간에 육임을 봅니다.
그런데 이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마구 할 때 느끼거나 보거나 영적인 것이든 아니든 뭔가 감잡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관이 시키든 영상으로 보든 현몽을 하든 그건 모두 내 감정이나 내적으로 진행된 그 방향을 따른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맞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이건 맞고 아니고 가 아니라 그렇게 심층이 이루어졌다가 됩니다.
그래서 누가 자기가 이런 마구 했다고 나에게 말하면 넌 그런 마구 하는 것으로 감정이 정해진 이유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게 마구가 되었다 그래서 뭐가 된다. 사회가 이렇게 되었다 라고 하는 것 이전에 그 사람의 감정 방향을 보게 됩니다. 그걸 바라니 그걸 하는 것에 응해지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자천하는 것에 공을 강조합니다. 이런 감정의 방향을 해체하기 위해서입니다. 백지에 하나하나 그려져 가야 하는데 이미 정해져 있고 오염되어 있는 것에 그걸 도라고 하면서 뭔가 하겠다고 나서면 곤란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관찰을 잘 못하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점칠 때 내가 원하는 해석을 하는 시간을 선택할 만큼 우리 심층은 영험합니다. 또는 무섭습니다. 또는 그만큼 의식보다 뛰어나서 의식이 속게 됩니다. 신관이 왔다. 뭔가 보인다 황홀하다 각성한다. 뭐든 심층이 보내는 속임수가 됩니다. 왜요? 그걸 바랐으니까 그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뭐든 오직 심층이 해준 거고 그건 자기가 원해서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점이 나오게도 할 수 있습니다. 육효는 동전을 던지는데 이런 무작위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도 원하는 점괘가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염력도 아니고 이상한 초능력이 아니라 그 심층이 그런 것을 하게 합니다.
내가 이런 원리를 모를 때 공자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주역을 많이 공부했다길래 한번 물었죠 점이 그리 대단한 거냐고 하니 "맘먹은 대로 조작이 가능한 것인데 뭐 그럴 것이겠소" 했습니다. 거기에 적이나 상대의 점까지도 조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걸 듣고 주역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 수년을 역학을 공부 안 했죠 힝 그러다가 또 던진 책을 집어 들고 내가 직접 알아내야 해서 지금 공부 중인데 알 거 같더군요 남이 말해준 것을 내가 직접 그 원리를 알아내야 내 것이니까요 그런데 내가 해보니 그렇습니다.
이건 심각한 것입니다. 신관도 신뢰가 안되고 점조차도 그러하다면 느낌 영적인 것이나 신비로운 모든 것이나 그 어떤 것도 신뢰가 없습니다.
그런데 현몽을 봤다. 신이 와서 알려주었다. 영안으로 봤다. 내가 직접 느꼈다. 뭔가 체험을 했다. 식의 다양한 변명은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보게 되었습니다. 원리를 말해주지 않으면 당사자의 심층의 행위입니다.
그 심층을 해체하고 다시 정립해서 건전하고 정확하게 만들지 않은 것이면 그 사람의 인생관에서 나오는 가치판단이 그렇게 하게 만든 것이 되죠
이건 마구가 아닙니다.
왜? 심층 해체를 안 했으니까요
그런데 나도 내 성향이 그런 결론을 낸다고 말했습니다.
이러면 난 왜 가능하냐고 하면 그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했느냐 아니면 어떻게든 해결했느냐가 있어야 합니다. 난 해결하고 있어서 인데 다른 분들도 알아서 해결해야죠
근데 그걸 말해주어야 주장한다면
자천하라고 하겠습니다.
우선 심리학에서 처럼 자신의 마음의 상처나 억압이나 그런 것을 해소하고 건전하고 건강한 감정이 되어야 하고 중맥을 열어 사고체계가 일관적이고 굽히지 않을 것을 가져야 하고 그 이상의 상달한 뜻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마구 하는 것에 기초적인 것이고 이후에 10년 이상 마구라는 것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 이하에서나 십 년이 넘었는데도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에서 이해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또는 곡해하고 있다면 다시 십생이 필요할 것입니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된다고 단정 짓지 못하는 괴로움과 불안함은 항상입니다.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는 것이라 잠도 제대로 못합니다. 그래서 매일 얼굴이 부어있는......
바라는 것이지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고 이건 내 주관적인 것이니 나와 다른 의견이나 바람 도가 있는 사람은 있을 것이고 또 있어야 합니다. 나 혼자만이고 또 독단적이기만 하면 판단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반하는 것입니다. 이런 정합성은 중요합니다. 내가 강조한 것에 정합성 합리성 일이관지는 무조건 강조합니다. 이건 단정하기까지 하겠습니다. 이거 안되면 가!!!!!
말 안 되는 것 논리 없는 건 일이관지 없는 것은 둘째고 사실 이게 뭔지도 모르고 알려주어도 납득 못하는 것까지 하면 이런 대화하다가 내가 상을 엎을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닌,,,,,, 성질 죽여야지 이럼 안되는데 ㅠㅠㅠ
그래서 세상엔 항상 저항이 있고 있어야 하고 그러니 언제나 노심초사 전전긍긍이게 됩니다.
긴장은 필수입니다.
누가 우리나라가 된다고 하던가요? 종교나 어설픈 신앙이나 맹목이나 예언이나 뭐 영적인 뭐로 말하는 것은 제외하고입니다. 이런 것들은 하등의 도와는 무관한 곳입니다. 이유는 아시겠죠? 정신의 미숙을 사고의 결과처럼 말하면 안 됩니다.
나도 사고가 미숙할 때 신관에게 의지 했습니다.
어디 가라고 하거나 이게 뭐라고 알려주거나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고 하라는 대로 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그 이유와 원리를 알려고 밤새며 연구했고 경험이 쌓이고 원리를 알 수 있을 즈음 신관들과는 만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말했죠 난 신관 안 만난다고요
왜요? 안 만나도 혼자 할 수 있습니다. 만나도 신경전이 있을 뿐이고요 이걸 한다고? 지금? 누가 책임지고?
그럼 그들은 "니가!" 입니다.
그랬죠 언제나 창피함과 명예의 더럽힘은 내 몫이었습니다.
도통 철수나 이후에 여러 망신들은 이전에 사인을 한 것인데 그때도 물었습니다. "누가 책임지는데?" 그러니 하는 말이 '니가요" 하더군요 존칭으로요 난 존칭 해주니 기분 좋아서 "아 그래?" 이런 미친 ㅠㅠ
엄밀히는 도통 철수는 내 의지입니다. 다만 신관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전환이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회원이 나가고 이런 식의 것인데 뭘 해서?라는 항목은 없습니다. 그 항목에 대한 것은 내 의지이고 내 도의 판단에서 또 하려는 바람을 이루기 위한 결정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입니다. 이렇게 내 의지와 신관의 행동이 일치되어 있는데 굳이 내가 신관에게 허락받거나 물어볼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내가 뭘 할지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뭔가 해서 이러저러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아는 것이더군요
그 뭔가에 대한 것은 나름 추측할 수도 또는 정말 알 수도 있는 거지만 그건 내 문제라서 건드리지 않고 확신이 들고 그리고 자기들이 해야 하는 분야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라서 자기 것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않아서도 그렇습니다.
또 내가 바라는 그 도! 그건 나만 아니까요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는 나만의 도라서 난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라서 그걸 그들은 모르는 거죠 즉 그건 내 판단입니다. 내 의지라는 거죠
이런 것을 고위 신관들은 알죠
즉 내 경험으로 말하면 난 사람들의 심층의 깊은 곳을 느낍니다. 잠을 자든 기절을 하든 죽어서 혼백이든 신관이든 그들의 감정 흐름을 느끼는데 하루 한 달 후에 있을 것을 느낍니다. 미래의 감정이 지금에 있는 거죠 그 감정의 깊은 곳에서 그들의 의식이 알정도로 나오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그전에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단 난 관심이 없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마구 하기 바빠서 일반 사람은 관심이 없고 나도 신관들의 내적인 심층의 흐름을 봅니다. 그리고 사회와 세상의 그 집단 무의식을 보죠 이런 것이 마구에 소용되니까요
근데 이것도 실수가 있습니다. 현문에서 내 심층의 의도를 오판해서 서로 불편하게 된 것인데 그런 것을 보면 공부의 불철저함이나 사고체계의 상이함이 이런 결과를 줍니다. 언제나 느껴지고 보여지는 것에 대한 원리나 원인을 모르면 실수할 수 있고 마음이 공이 아니거나 감정이 뒤따르면 역시나 실수하죠
나 역시도 이런 것에 자유롭지 않아서 나름 해결법이 다양하게 마련해 좋고 긴장하고 있죠 그렇지만 수시로 올라오는 쉽고 안 힘들고 고통 없이 할 방법 없나 고민하는 나태가 있습니다. ㅋㅋㅋ 그 마지막이 죽임이죠 언제나 죽음을 갈망합니다.
말이 옆으로 많이 나갔는데 나중에 우리가 뭔가 의미 있는 선을 넘을 때 즉 출사표를 던질 때 그 방법으로 정한 것이 강남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본 것인데 강남은 양자강 이남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강남이 발전한 건 얼마 안 된 거라서 역사적으로 강남은 제비가 날아다니는 거기입니다. 그런데 강남을 우리나라가 세계에 유행시키면 세계인들은 우리나라의 강남으로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난 강남을 출사표로 쓸 거라고 동생에게 20대에 말합니다. 우리가 내세울 것이 별로 없거든요 우리나라만의 것이나 우리가 창조한 것이나 그런 것이 별로 없습니다. 철학도 없고 뭐도 없고 그래서 인간밖에 없어서 의식 수준을 향상해야 한다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화예술에 하나하나 창조하고 발전시키면서 유행되고 유명해지면 그것이 우리 것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과거 유물이나 골동품이나 이런 거 없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고려청자고 뭐고 그런 것은 과거의 것이고 그런 것이 비싸거나 뭐거나 아무런 상관이 없고 그런 것을 우리가 만든 것이면 그런 것을 지금이나 미래에 못 만들 것이 뭐 있냐는 것이라서 그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니 청자가 깨지거나 뭐가 어찌 되거나 그런 건 부차적이라고 생각했죠 우린 앞으로 명품을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죠 언제나 앞을 봐야지 과거에 우린 이런 걸 만들었다면서 자랑하는 것은 열등감입니다. 과거에 뭘 하고 뭘 만들고 와 지금의 나와는 상관없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그것이 중요하죠 지금 우리가 뭘 할 수 있는가입니다.
즉 요즘 말로 왕년에 과거에 라떼는 불필요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떠한데가 있죠
과거에 그런 걸 만든 게 사실이라면 앞으로 그런 것을 또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러니 앞으로 우린 명품에 해당하는 다양한 문화를 창출할 것인데 그때 세상은 그것을 우리나라 것으로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강남을 주장한 것입니다. 아이러니죠 이상한 비꼼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서 내가 이러한 것을 한 것에 일본이나 차이나가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화가 난 건지 아니면 그 대가인지 뭐든 지들 거라고 말하니 요즘 켕기는 이상한 감정도 있습니다.
일본은 갈라파고스화 되어가니 그들이 만든 문화가 보편성이 덜합니다.
내가 생각할 당시에 갈라파고스화라는 말이 없어서 일본이 자기들의 안으로 침잠하거나 외부를 모르거나 쇄국적이 될 거라고만 말했는데 저 말을 듣고 얼마나 속이 후련한 간단한 비유라 참 좋더군요
그래서 그들 문화는 세계적으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차이나는 황제국이니 지들만 잘났다고 해서 거북해서 세계화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우리가 해야 하는데 왜 우리가 할 수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할 수 있다고 보지는 못했는데 우리의 성향이 뭔지 한참을 찾았습니다. 왜 우리가 가능한가라는 근거를 확신하지 못했거든요
어딘가에 내가 우리나라 과거는 거세된 것이라고 한 것이 있습니다.
우린 더 열정적이고 더 활발하며 더 역동적인 성격인데 그것을 억누르고 못하게 해온 것이 과거 역사입니다.
그 이유가 왕권강화 때문인지 소수의 지배층의 음모인지 차이나의 영향으로 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우리의 성격과는 다른 방향으로 억압된 과거 역사라는 전제를 가집니다. 이게 그 세력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제거하고 해소하면 분출해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갈 려면 세상을 봐야 하고 남을 봐야하고 뭐가 먹히나 뭐가 즐거워하나 뭘 좋아하나 하면서 남이 가진 거 하는 거 입는 거 보는 거 원하는 걸 생각하며 그전에 없던 욕망 분출을 할 것이라고 본거죠
그래서 욕망을 참지 말고 자꾸 분출하라고 그것이 부정적이든 비윤리든 부도덕이든 불법적이든 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일단 시작은 앞뒤 가릴 수가 없어서 그랬죠 그러면서 러브모텔이 유행이 되고 그전에 난 나라면서 개인주의적인 광고가 나와서 그 이후에 웰빙이라고 하면서 자기를 위해 뭘 할지 고민하며 참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하면서 억압하지 말라는 것이 유행이 됩니다. 그게 힐링이라고 하는 것으로 가면서 상처를 위로받고 그러면서 더욱 강력하게 욕망을 분출해도 된다는 허락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이걸 내가 다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본 것이죠 거기에 더욱 부채질을 했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억압된 것을 일단 나오게 하려면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해서입니다.
그것이 되면 그 후엔 어떻게 분출할까 하는 그 방법을 고민하고 그것을 더 미적으로 더 흥미롭게 더 아름답게 더 다 함께 더 잘하려고 할 것이니까요
이 욕망 분출의 방향을 거국적이고 의미 있게 하기 위한 거대한 설정을 하게 됩니다.
그건 정치적인 것이죠 왜냐하면 정치가 어떠냐가 뭘 욕망하게 할 수 있는가를 말하게 되니까요
박통 때에 블랙리스크가 있었다고 하고 그중에 있던 사람들이 이후에 세계적인 히트를 치는 것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예처럼 정치를 누가 하느냐로 뭘 하게 되는가를 정하게 하는 큰 틀이 됩니다.
일본이나 차이나를 봐도 누가 정치하느냐로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이나 차이나가 내가 설정한 나라가 되는데 그저 기다리기만 한 건 아닙니다.
그런 나라가 되는 것에 일조할 사람이 나와서 정치하라고 마구 한 것이 됩니다.
98년도에 우린 imf 때문에 힘들 때 박ㅇㅇ이 정치하겠다고 나오고 나도 사북으로 일하러 갑니다. 사북은 자미원 근처라 거기서 일의 시작을 하는 것이라 중요하는 곳입니다. 한 달 정도 일한 거라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일본은 일본회의라는 조직이 단체가 조직됩니다. 2006년 놀다가 난 독천이라는 곳으로 다시 8여 년 만에 일하러 갑니다.
이해에 아베가 당선되나 건강악화로 다시 내려갑니다. 아직 시기가 아닌데 나와서 일 겁니다.
그 후에 2012년에 시진핑도 그리고 아베도 당선됩니다. 우린 마구를 단체로 시작하고 해외를 처음 가면서 본격적인 시동을 건 해이기도 합니다. 뭘 하려고? 들고일어나려고요
차니아에서도 나와 함께 뭔가 진행되어 시진핑이 나왔을 것인데 일일이 다 모르겠습니다.
하나만 말하면 내가 영등포 교보 갔다가 그 위층 카페에서 어떤 일로 화가 나서 차이나 여기저기 정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이건 거기에 뭔가 사건이 터지게 한 것인데 그게 고속열차 추락입니다. 어떤 미국의 저자가 차이나에 대해서 쓰면서 이 사건도 시진핑이 당선되는 것에 일조한 것 중에 하나라고 한 것이 있습니다.
즉 내가 바라는 또는 내가 생각한 주위 나라가 되어가는 것에 그냥 두고 보기만 한 게 아니라 일일이 조작을 해온 것입니다.
심하게는 일본에 아베가 당선될 때 도쿄 호텔에서 티브이로 봤습니다. 아주 집요한 마구입니다.
이 두 사람이 우리가 잘 나가는 것에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30년 전에 동생에게 농담처럼 하는 말 중에 차이나의 동북공정 같은 것을 보면서 "잘한다" 일본의 역사왜곡하는 것을 보면서 "잘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한다고요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해야 한다고 했죠 그 나라 정치 잘하네!!! 이런식의 말을 했습니다. 비아냥이죠 왜냐하면 그들이 그런 멍청하고 자기 나라 사람들을 다른 나라사람들과 격리해서 세상의 역사나 사회흐름이나 문화와 가치에 다르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나라 젊은 사람들이 어린 사람들이 거대한 보편적인 문화와 지식과 흐름을 함께하지 못할 것이고 그로 인해 더 나은 창조를 못할 거니까요 바보로 길러야 바보 같은 것을 만들죠
우리가 오겜을 만들때 차이나는 장진호 전투을 만들었고 일본은 오겜을 야동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그 나라의 의식의 수준이며 그건 그렇게 교육해서 이고 그런 정치를 해주어서입니다.
그래서 난 그들의 그러한 뻘짓에 찬성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현타가 오거나 각성해서 이게 아니다 이러면 안 되다고 반성할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릅니다.
차이나가 잘 나가는 것은 위협적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신경 쓴 건 그들이 도덕적인 나라가 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도덕이 더 무섭습니다. 그렇지 않고 정반대로 돼먹지 못한 짓을 저렇게 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금융위기는 미국이 저러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비도덕적으로 경제발전을 해서입니다. 그들이 돈 벌기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린 것이 동기의 불순이 그 정체성이 된다가 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고 하는데 이건 잘못입니다.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개같이 벌면 그냥 개입니다. 정승이 되지 못합니다. 이건 돈으로 권력을 샀다는 것인가요? 돈 쓸 땐 인격적으로 한다는 건가요? 벌 때 정당하고 정의롭지 못하면 쓸 때 역시 마찬가지 인간입니다.
그래서 나도 이런 것을 할 때 후원해줄 기회들이 있지만 그것이 하나같이 안 되는 것은 일단 정의로운 돈이냐입니다. 정의롭지는 않아도 정상적으로 번것이냐죠 그리고 부자는 안됩니다. 내가 그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을 엎을 건데 그들 돈을 쓰면 안되죠 그리고 도를 아느냐 입니다. 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그런 사람의 돈을 내가 쓸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돈은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광룡정이 커지지 못한 이유입니다. 내가 망하든 죽든 어떠한 고통이 있든 안되는 것은 안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도가 그런 것이라서입니다. 다만 말하지 않았죠 그런 기회가 있다고 가져오면 하라고 했죠 왜냐하면 마구라서입니다. 되고 안되고는 그다음입니다. 뭔가 시도하고 뭔가 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그건 자유로운 발상과 욕망을 위해서입니다.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가면서 배우고 알고 규칙을 세우는 것입니다.
내가 제일 싫어하거나 꺼리는 것이 훈계입니다.
이미 안다는 듯이 이미 정해진 거라고 하는 듯이 규칙이고 정의이고 예의이고 하면서 말하는 것인데 그런 것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것이고 억압이고 통제입니다. 이런 것은 정말 증오합니다. 결코 훈계하지 마세요
아래에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하기 전에 된다 안된다가 아니라 해보고 시도하고 저질러보고 하는 것입니다.
예의나 규칙은 우리가 만들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이미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우리가 새롭게 윤리를 만들어가는 세상이지 이미 정해진 윤리를 익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걸 제발 좀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미리 정해진 것이 있어서 안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건 해야 하고 하면서 알아가야 합니다. 다 말해주지 않았다고 하면 이런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내가 정해주면 안 됩니다. 내가 하라고 시키면 안됩니다. 내가 시키는 거 봤어요? 허락을 구하면 그것도 짜증 내는 데 하라고 하겠어요? 결코 안 합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해서 해야 한다고 하는데 내가 그걸 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내성적이고 부끄럼 타고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성향자 체도 설정입니다. 모든 것이 계획인 거죠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라 이런 모습 이런 성향 이런 재능으로 이생에서 뭔가 하려고 그린 그림입니다. 연출인 거죠
아무튼 어릴 땐 그들이 일본이나 차이나나 그렇게 까지 멍청할까? 하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후면 어린애들이 세상을 놀라게 할 시대가 되는데 그런 애들을 키우지 않는 것이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멍청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지금은 인간이 그 정도 더군요 ㅎㅎㅎ
그리고 요즘은 유툽에서도 그렇게 비아냥되는 분들이 많더군요 일본을 보면서 누굴 지지한다 누굴 지지한다면서 그들이 계속 그렇게만 하라고 하는 비아냥요 그들의 헛발질이 계속되는 사람이 수장이 되라는 그 ㅎㅎㅎ
이런 건 훈수 두는 위치나 감정이 없이 보거나 다른 관점에선 보입니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되면 안 보이는 것입니다.
남 욕하기 전에 나부터 봐야 합니다. 남이 보기엔 당연하거나 뻔히 아는 길을 내가 지금 모르거나 외면하거나 잘못 판단하고 있는진 말이죠 왜냐고요? 일본이 더 멍청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의 지능 수준이 원래 그런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들이 반은 됩니다. 나머지 반도 뭔가 알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운이 그래서 아는 것처럼 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런 안목은 이런 것을 알고 기르기 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어쩌다가 맞았다고 그걸 알아서가 아니죠
아니면 메타적인 사고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이런 사회가 되는 시대가 되면 더 많은 사람이 이런 것을 알겠죠
이런 충고해주는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좋죠 난 그런 사람이 없어서 신관에게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들은 내가 잘하든 못하든 관심이 없고 어찌하든 그들은 그들이 할 것을 하는 것이고 난 내가 할 것을 하는 것이라서 참견하지 않고 도울 필요도 없어합니다. 그래서 난 내가 해야 하는 것이죠 스스로 이걸 해야 하니 참 답답합니다. 홀로 결정하고 홀로 책임지는 것이니까요
매일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좀 아는 사람 없나 하는 생각은 하는데 언제나 없네 ㅠㅠㅠ
그래서 요즘은 세상에 벌어지는 것들을 봅니다. 어떤 사건이 나오거나 뭔가 이슈가 나오거나 하면 거기에 내가 생각하고 내가 기다린 거 내가 의도한 게 나온 것을 보면서 그랬구나 내가 맞았구나 내가 하는 것이 되고 있구나 하는 것이 되죠
이때 하나의 사건을 두고 내가 저 사건을 의도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 향상이고 의식이 상승해야 하는 이유는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 서로 대화하는 소통이 가능해야 하며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정해가면서 항상 최선의 길을 찾으려는 그 끝나지 않는 역사가 우리가 가야 할 가야할 길인데 이러한 것이 되기 위한 하나하나의 포석이 되어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판단하려면 정보가 있어야 하고 그러니 공개되어야 하고 알려주어야 하고 막아서는 안 되고 판단해야하니 강요하면 안되고 억압하면 안되고 생각할 시간을 주고 생각하게 해야 하고 자꾸 정신 차리게 자극해주어야 하고 그런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하려고 하고 하고 있고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하고 이런 것과 상반된 것은 그것이 왜 잘못인지 알게 해야 하며 이걸 그냥 막거나 억압하는 것은 안되는데 그건 폭력이 싫어서 폭력을 하는 것과 같아서 안되죠
아 여기서 신관에 대해서 말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신관은 날 돕는 것도 아니고 방해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난 제라울이 아니라 여러분들입니다.
서로 견제하거나 경쟁하거나
또는 같은 의지가 있거나 단기적으로 같은 의지이거나 장기적으론 다른 길을 가거나 하는 식으로 인 거지 신관이라고 무조건 맞는 것도 그렇다고 틀린 것도 아닙니다.
그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말을 안 해주니까요
나나 이렇게 뭘 할 건지 말하는 거지 원래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마구 한다면 그것을 누구에게 말하면서 떠들 것이 아니라 자기 책임으로 해나갈 것이지 이러쿵저러쿵 말해야 할게 아닙니다.
그리고 여긴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말은 의도를 가지는데 내가 하는 것에 도움되면 말하고 아니면 안 하고 내가 하는 것에 도움되게 하려는 방향으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나 마구 하는 사람이나 신관이 하는 말은 다 믿을 것도 아닐 것도 아닙니다. 자기들이 하는 것에 도움되게 어떤 떡밥을 던지는 거지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걸 정말 명심해야 합니다. 고위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사실을 말하는 신은 저급한 거죠 조상신이 그래서 무당들에게 갑니다. 사실로 밥 벌어먹잖아요 고위 신일 수록 사실을 말하지 않아서 접신하지 않습니다.
선종에 언어나 말에 대한 것들이 있습니다. 언어를 넘어야 하죠 겨우 언어를 넘어야 대화할 수 있을 뿐인 건데도 이거 하나 힘듭니다.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니까요 사실이 없어요 사실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있어요 그게 아니면 결코 신관들을 만나지 마세요 그들은 말과 달라요 사실과 다른 것을 해가요
이런 것도 모르면 각성이라고 안 합니다.
왜냐하면 각성하게 되면 사람들의 의식이나 감정이나 사고체계가 보이는데 그것에 대한 말을 하는 거지 내 생각이나 감정을 말하는 게 아니거든요 나쁘게 말하면 상대를 가지고 노는 거고 좋게 말하면 상대를 위해주는 말을 하거나 도움 되는 것을 말하려고 하거나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내 말을 안 한다는 각성 초기에도 압니다. 내가 20살 때 각성하면서 안게 이겁니다. 말이란 상대에 따라 만들어지는 거지 내가 할 말은 없다입니다. 왜요? 무아잖아요 무아요 자아가 없어요 그래서 내 말이라는 것이 성립이 안돼요 내가 없잖아요 그런데 뭘 말해요? 상대가 있으면 관계하니 관계하는 말을 하죠
난 질문하면 말합니다. 질문 안 하면 안 해요 알죠? 질문이라는 관계가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성립되면 말이 됩니다. 아니면 손님과 종업원 커피 살 때 ㅋ 아니면 자식과 부모 엄마와, 어떤 관계가 만들어지면 그 관계의 한계 내에서만 말이 됩니다.
이건 언제나 한 순간도 없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상에서도 의도가 있어서 말하는 거라서 이걸 모르면 언제나 각성한 사람을 오해할 것입니다.
나하고 말해보셨죠?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한 의도를 모르면 내가 뭐라고 말했다고 해봐야 곡해입니다.
뭔가 의도하는데 이건 의도해본 사람만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대화를 안 하는 사람은 도가 전혀 없는 사람이니 잘 보셔야 합니다.
그래서 신관 역시 어떤 것을 의도하는데 그것을 내가 알 수가 없을 것이니 대화하거나 뭔가 의지해봐야 득 될 게 없습니다.
내 도를 성취해서 나아가는 것이지 누군가를 의지해봐야 나중에 힘들 뿐이죠
또 말이지만 난 그대가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난 아직 나를 보여준 적이 아직 없고 시작도 안 했어요 우히히히 ^^
그런데 신이 계시한다?
뭔가 사실을 알려준다? 진리를 가르쳐준다?
그런 수준에서 머물겠다면 그만이지만 마구를 한다거나 도를 배우려는 사람은 정신 차려야 합니다.
계시를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자천이지 그걸 듣거나 숭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요
그래서 최제우는 일 년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서양과 다른 것입니다. 계시 준다고 납작 엎드려서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게 뭔데 그렇다는 거냐고 자기가 스스로 깨우쳐야 합니다. 그게 안되면 안 합니다. 이 분명한 차이를 모르면 여기선 글렀습니다. 다음 생을 기다리시도록.....
이런다고 알았습니다 하면 증말 ㅠㅠㅠㅠㅠ 흐흐흐흐
그리고 의식을 성장시켜서 세계화해야 하는 것엔
한때 유행했던 "우리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 때문입니다.
이게 잘못하면 일본처럼 우리 것이 세계적인 거라고 하면서 자기들은 재미있는데 왜 세상은 알아주지 않느냐고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고민하는 것이나 흥미로워하는 것이나 관심 있는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이나 비판하고 싶은 것이나 바꾸어야 하는 것을 세계도 그러해야 하는 것이 됩니다.
우린 비판하는데 다른 나라는 그것을 왜 비판하는지 모르고 또 그들은 왜 문제가 되는지 남들이 모르는 것을 비판하고 있으면 이건 이상한 것이 됩니다.
그럼 세상의 눈치나 보면서 그들이 비판하는 것만을 비판하느냐고 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직 비판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면 그럴 경우 세상 사람들에게 주위를 환기시켜야 하는 분야가 됩니다. 아직 발견되지 못한 개념이 되는데 아직 세상이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을 모른다면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납득할 수 있는 논리와 근거와 증명해 보이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걸 학술로 하든 영화로 하든 예술로 하든 다양한 것들 동원해서 하는 그것이 곧 문화입니다.
그 방법이 세계적인 것입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 논리에 근거하는 방법, 실천해 보이는 방법, 비판하며 차이점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방법, 그렇게 다양한 것을 고려해야 하고 그러는 것이 보편적인 것입니다. 함께 어떤 의제를 논의하고 대화하는 것이니까요
어떤 것이 세계적인 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고 다루는 방법이 세계적인 기준에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영화로 말하면 그 주제가 심오해야 하지만 그보다 그것을 연출해내는 것이 흥미를 끌 수 있어야 하고 재미있어야 하며 유행할 수 있고 접근하기 쉬워야 합니다. 아니면 좋은 영화인데 좋은 영화로만 남습니다.
그러한데 그 주제나 동기조차도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하려고 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 곤란하겠죠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일본이나 차이나에서 본 것이고 우리나라에선 그러면 안되고 안되게 하기 위해 방향을 설정해주는데 억지로 한 것이라기보다 자연스럽게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려고 했습니다.
하고 싶고 이기고 싶고 즐기고 싶고 더 잘할 수 있고 다양하게 할 수 있고 다르게 할 수 있고 그렇게 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욕망 분출을 신경 쓴 것입니다. 물론 그로 인한 부정적인 사회문제도 동반되는 것은 각오한 것이고 구더기 무서워 장못담그는 것이기도 해서 보기 나름입니다.
글이 길어지는데
그래서 간단히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한다면
우선 의도를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과정을 보려고 해야 합니다.
과정을 봐야 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이 무엇이냐를 자꾸 따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결과가 나오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겠죠
그냥 벌어지는 사건은 일단 우리나라에서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다 의도를 집어넣었습니다.
이제는 세계 어디에도 우연처럼 벌어지는 것은 없게 됩니다. 이젠 세계조차도 일일이 다 의도적인 사건의 연쇄를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의도가 있고 뭔가의 과정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이 무엇의 과정인가 하는 의문을 품고 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것을 말하면
박ㅇㅇ은 분명 국조신중에 어떤 분의 지지가 있던 분입니다.
처음에 그분이 올 때 속옷을 입고 오는데 이분의 성향인가 이분을 지지하는 저분의 날 이용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어서 그렇게 시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 당시는 아직 여자 경험이 그닦 없던 시절이었는데 말이죠 집에 칩거해서 불쌍해서 여자 경험시켜준 건가 ㅋㅋㅋ 농담입니다.
그리고 이후의 정치 행보를 알 수 있었습니다.
꿈에 따귀를 맞았는데 그날 이분이 얼굴에 상처가 납니다. 이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분이 얼굴이 금형에 가까워서 턱이 살찌면 반골이 됩니다. 반골은 배신자가 되거나 나라 말아먹겠죠
그런데 그곳에 상처를 남기니 분명 부정적인 방향으로 반골이 드러날 운명을 만든 겁니다.
그렇게 예정된 사건을 정해간 것이죠
2012년 운명의 해이죠
우리나라나 차이나나 일본이나
그해 소백산을 마구 하러 다 같이 가는데 같이 간 분이 지금 남아 있는지 모르겠는데 다들 이후 날 원망하며 떠났는데 ㅋㅋㅋ
이날 청주에서 누군가가 가져온 양주에 이 술 저술 섞어마시다가 취해서 그만 무엇할 건지 불어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안되는데 말이죠 ㅠㅠㅠㅠ
"박ㅇㅇ을 당선시킬 거다 그러려고 지금 마구 하는 거다 왜냐하면 그래야 들고 일어나게 될 것이니까"
이건 이후 병신년까지 마구하는 성격을 다 말해준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고단자들이 같이 다니면서 한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이 한 줄의 말을 위해 수년을 다닌 것입니다. 고통과 힘겨움이 오직 이것 때문이죠 왜요? 이건 하나의 사건이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그다음의 것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고 그다음의 것은 봐와서 알겠죠 우리가 이때와 지금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말이죠
내가 작년 초에 어떤 보수성향의 회원분께 물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냐고요 그분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라고 여기저기 떠들고 남의 나라에서도 그렇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인정하든 아니든 이미 그렇게 우리나라는 정해지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물은 것이고 일부러 대답을 그렇게 할 거라서 그걸 유도한 것이며 그로 인해 달라져가는 상황을 끌어당기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이런 것을 안 해도 그런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이걸 끌어당긴다고 했습니다. 끌어당긴다는 것은 내가 거기에 숟가락을 얹은 건데 이전에 내가 한 마구에 지금 일어나는 구현된 결과를 다시 확인하고 거기에 또 연결해서 다음 것을 유도하기 위해 매듭 짓기 위해서며 그래서 이후에 저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에 내 의도가 들어가는 것이고 심층이 그런 일에 살피며 그것이 어떻게 변해가며 달라지는지 일일이 체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와 대화할 때 대답을 잘하세요 말했잖아요 난 그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대와 함께 온 보편을 본다고요
그 보편에 내가 손을 넣고 있습니다. 그대의 대답에 따라 세상은 다른 갈림을 갑니다.
이건 정말 오래도록 신경 쓰고 계획한 것입니다.
아까 말한 대로 강남의 예와 같은데 상당히 의도적으로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건 민주주의인데 그러한 정치적인 사건과 변화들을 의도했죠
독재나 군사정권이나 어설픈 문민정권이나 보수나 진보나 이런 것을 상당히 공들여서 해온 것입니다.
그래서 학습효과라는 말까지 해가면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사건을 일으키고 뒤엎기도 하고 문제를 만들고 부정과 부패를 만들고 터트리고 각종 국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좋게도 하며 희망을 가지게도 무너지게도 하면서 엄청 혼란하고 복잡하며 다양한 것들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마지막이 박통의 탄핵이지만 이것은 지옥이라는 드라마의 시연과 같이 의도해서 만들어 온 국민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긴 서사이고 연출입니다.
정치에 대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 서민들 시민들의 각성을 유도하는 것이고 그렇게 성숙되어가면서 의식도 함께 성장할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이 주변국에게서 우위를 점하는 가장 강한 힘이 될 것이라서입니다.
이 동양에서는 오직 우리나라만 민주주의입니다. 일본은 괴상하고 차이나는 아니고 동남아도 민주주의라 하지만 정말 그런지 애매하고 이슬람이 있는 곳은 더욱 애매한 것입니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성장함에 따라 이 주변국은 우리를 따라오게 되는데 그것이 우리가 앞선다는 것이고
리더국이 되는 그 시발점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인데 내가 정한 지배는 앞서가니 뒤에선 따라 해야 한다는 의미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배하는 것도 아니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며 핍박하는 것도 아니며 빼앗을 것도 아닙니다.
그런 건 우리가 하도 당해서 그 아픔을 남에게 줄 수 없습니다.
그저 우린 먼저 가는 것이고 앞에 있을 뿐입니다. 좋아 보이면 따라 하겠죠
그리고 우린 좋아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문화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좋아보여야 하는 매력을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친 듯이 문화 예술에 내가 신경 쓴 것입니다.
그러면서 홍콩이 데모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앞에 있다는 확신을 가진 사건이 됩니다. 난 그것을 보면서 얼마나 북받친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이제 적어도 이 주변에서 우리가 제일이라는 그 인정입니다.
그다음이 전지구에서 제일 앞이라는 목표가 세워지는 것이죠 지배하자는 것이 아니고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따라 하고 싶어지는 그 아름다운 나라가 되고 그것이 그냥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교육적 다양한 것이 결합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결정체라는 것을 말합니다.
뭔가 그럴듯하게 보이려면 공포나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린 공포가 아니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자극을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한 과정을 온 것입니다.
이걸 정말 신경 많이 쓴 것입니다. 20대에 그 좁은 방에서 동생 붙들고 얼마나 떠든 주제인지 모릅니다.
일일이 정치가 어떻게 되어가고 그리고 다른 나라가 어떻게 우리를 모방하려고 하고 하는 것을 그때 이미 다 떠들었습니다. 정말 미친 듯이 떠들었습니다. 좀 알아달라고요 쫌!!! 하지만 동생은 무시하더군요 우리나라는 결코 그렇게 안된답니다.
왜 이것을 알 수 있었는가 하면 우리가 일등국가 되어야 하니까요
일등이고 제국이고 지배적인 자리 지도국이 되어야 하겠는데 그 방법이 뭐냐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저거입니다. 앞에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다그치고 빠르게 몰아세운 것입니다. 이 부작용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것입니다.
그 시간인데 먼저 해야 한다는 다급함 빨리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평생을 짓누른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합니다. 그냥 되지 않아요 또 시간을 압축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럴만한 대가를 치르면서 하나하나 자라나며 성장합니다. 그걸 일일이 지켜보면서 밀어붙이는 심정은 좀 많이 서글펐습니다.
이제 우리가 남보다 앞에 있는 것이 보이는 가요? 거기엔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피와 눈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차이나와 일본 그리고 다른 민주주의를 원하는 나라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 길은 그냥 되지 않아요 피와 눈물이 꼭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 나라의 앞날은 그러합니다.
미국의 어떤 교수는 우리가 문화 제국을 이루었다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제국이 될 거라고 내가 현통기 끝에 말했잖아요 도덕 제국이지만 그것은 아직 멀었지만 제국이 될 것입니다.
상상해보셨나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제국이 되었다고 말하는 소릴 듣게 될지를요
우리 역사상 어떤 나라도 그런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차이나는 그렇게 잘 나가는데 우린 전혀 그런 제국을 꿈도 꾸지 못하면서 작은 소중화에 만족하는 조촐한 민족이었죠 이건 우리의 본심이 아닙니다.
차이나에 제국이라는 칭호를 듣게 해 준 나라는 우리와 같은 부족입니다. 함께 고구려를 구성했던 민족들이 나누어지면서 차례대로 차이나를 먹고서 제국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제국이 되어보는 거죠 다만 남것을 침략 하거나 뺏거나 강압이 아니라 매력으로겠죠 ㅎㅎㅎㅎ
왜 제국이 되냐고요
그건 더 많은 사람 전 인류를 대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되고 사고력을 길러주기 위해서입니다.
더 나은 효용을 가진 정치체제를 가져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한 체계입니다.
지배가 목적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되어가는 과정으로서 하나의 방법입니다.
제국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것이 아니라도 다른 방법이 더 좋으면 언제든 취소하고 그것을 따를 것이죠
중요한 건 제국이 아니니까요 바로 사람입니다.
그래서 들고일어나게 하려고 당선시킨다고 말했죠?
이 들고일어나는 게 탄핵으로 이어지는데 탄핵한다고 딱잘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단어는 수년동안 난 한번도 떠올리지 못했어요 들고 일어난다는 말만 반복했죠 그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을 경험하고나서 알게 된건 단어까지도 심층이 제어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개념에서부터 단어까지 알아야 하는 때가 되지 않으면 모르게 됩니다.
하지만 탄핵과 들고일어나는 것은 다릅니다. 언제나 과정이라고 했으니 과정이 중요한거지 탄핵은 법적인 결과일 뿐입니다. 사실은 탄핵이라는 운명이 정해진건 아닐 겁니다. 탄핵이 아니라도 가능한 것이니까요 탄핵 같은 이라고 말하면 좀더 어림입니다. 그런 효과만 나면 되지 꼭 그것이라고 정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들고 일어난다 입니다. 이게 더 중요한 개념입니다.
내가 하는 것은 탄핵이 아니라 들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폭력이 없어야 하고 강압적인 억압을 하지 않아야 하는 거라서 그 과정 역시 신경 써야 했습니다.
그래서 백남기의 희생 같은 것이나 그것을 빌미로 물고 늘어지면서 압박을 가하는 것이나 모든 과정은 그것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난 언제나 데모하는 그 현장의 주변에 있었습니다.
광화문 근처에서 데모를 많이 하는데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데모를 합니다. 그런데 그 근처엔 언제나 난 있었습니다.
누굴 만나려고 책을 사려고 이런저런 이유로 거기에 가게 됩니다. 가면 언제나 데모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얼마 전의 토요일 보수들의 데모에도 자주 갔습니다. 물론 그 이후엔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는 것이구요
언제나 있어야 할 그 자리엔 그 근처 어디에 난 있었습니다.
왜 인지는 알겠죠?
그냥 생각만으로 뭘 하고 집안에서만 뭘 한건 아닙니다. 내가 바라는 그것이 되기 위한 모든 것을 합니다.
수단 방법안 가리고 해야 하면 그래야 다음 것이 된다면 갑니다.
그러한 것이 과정으로 완비되면 드디어 그것이 일어나게 되죠
이때 일어나게 되는 것을 위해 난 사자산을 찾아다니죠 사자가 일어나라고 하는 것인데 사자인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원해서입니다. 사자같이 스스로 서라는 것이죠
판단하라는 것의 다른 버전입니다.
난 이것을 위해 파마를 잘못해서 사자처럼 아줌마 파마를 하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되기만 한다면 뭐든 합니다. ㅠㅠ 힝(주변분들이 많이 놀렸습니다. 흑)
이건 약한 것이고 사회엔 이래도 안 일어날 것인가 하는 사건들이 자꾸 터지게 됩니다. 이 사건들은 당연히 슬픈 일들이죠 일어나라 이러하니 일어나라 이러하니 이래도 안일어날 것이냐 하면서요
근데 재미있는 건 일본도 그러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있는데도 일어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같은 사건이 있다고 같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그러한 것이 되게 하는 뭔가 다른 힘이 있는 것이죠
그건 진화와 창조와도 같습니다. 우린 진화한 걸까요 창조한 걸까요?
그건 둘 다입니다. 분명 진화하지만 그것에 무언가의 손길이 있습니다.
난 그것을 하는 방법을 가르치려는 것이었고요
그것이 현실엔 시민의 각성이라고 하기도 하죠 시민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이 여기까지 온 거죠
우리나라에서 시민의 정상적인 탄생이 일본에 의해 좌절된 후에 드디어 이제야 나타나게 됩니다.
이때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라는 것도 나옵니다. 항상 영화는 묘하게 뭔가 아는 듯이 나옵니다.
언제나 기미는 사회에 있죠
할리우드에선 R.I.P.D 영혼을 잡아들이는 영화가 나오는데 거기 보면 저승과 이승이 합쳐지는 것이 나오죠 내가 현실계와 천원계가 합쳐진다고 했는데 저 영화를 그 당시보고 그렇게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2013년 나온 거죠
천원계와 합쳐지는 것이 뭔가 신비한 것과 합쳐지거나 영계식으로 이해할지도 모르는데 난 그런 거 모릅니다.
언제나 개념은 상위이고 메타이고 추상입니다.
현실로 말하면 계급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 위와 아래가 합쳐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아래로 내려가라고 했죠 고단자에서 저단자로 내려가서 그들을 설득하고 설명하고 납득시킬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아래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래서 기생충이 또 올해의 드라마가 계급과 연관된 것입니다. 이건 보편적인 주제이니까요
우리도 그것에 자유롭지 않으니 이것을 위해 그러한 노력과 공을 들이고 마구 해 온 것입니다.
왜요? 언제나 위에서 억압하고 말해주지 않으며 불투명하게 결정하고 정보를 통제하며 부를 이득을 취해온 것이니까요
그런 것을 뒤엎어야 하는 것이고 그 상징으로 그런 사건을 보인 것입니다.
이제는 아래에서 일을 시작할 것이고 아래에서 알려줄 것이고 아래에서 아는 것이 위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라는 순서의 뒤바꿈입니다.
위에서 벌어진 것을 아래가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벌어진 것을 위에서 알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걸 뒤집는 과정입니다. 그것을 위한 들고일어남이고요 이걸 그렇게나 신경 쓰고 애쓴 이유는 그러함이 있습니다.
첫댓글 고생많으셨습니다. ㅠ
유튭보니까 K-양심이라는 말도 나오던데 점점 도덕의 제국으로 한발한발 나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합니다~^^
앞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현상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좀더 의도를 추측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들었습니다..다수의 시민이 주도하면 정치가 이를 수용하고 시민이 주도한 결정을 시민이 책임지고 다시 이를 보완해가는 정반합의 발전과 성숙한 시민의식..도덕의 제국에대해서도 생각이들었습니다. 글이 긴 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새롭게 알아가게 되는 계기가된것 같습니다..인류사에 우리나라가 기여할수있는 길로 나아가기위한 자천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감에대해서도 생각해보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긴글을 읽어주시어 힘들텐데 고맙.........다고 쓸줄 알았소? ㅎㅎㅎ자꾸 읽으시오 뭔가 아쉬운거나 듣고 싶은것이 있으면 말하시고요 음 더쓸게 있는데 아니 많지 세월이 있는데 근데 음 음
아니 그보다 쓰다보니 주제를 빗겨간게 있나 다시 보고 편집을 할라해도 너무 길어서 뭐가뭔지 나도 모르는 ㅠㅠㅠㅠ
그래서 혹 빠진거나 이상한건 말해주어야 ...
눈도 좋지 못하신데...
한꺼번에 긴 글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더 많이 생각하겠습니다🙏
ㅎㅎ 자꾸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40년의 역사(力史)를 요약해 주시다니 ㅎ
앞으로 20년도 보게될 볼수있는 이해력이라도 가지게 되길 개인적으로 바랍니다 ㅎ
같은 시기, 혹은 비슷한 시기에 R.I.P.D.를 봤는데도 전혀 다른 것을 봤었구나 싶습니다. 많은 양을 적어 주셔서 대충 이런건가 보다 하고 다가오기도 하고 반대로 이렇게 적어 주셔도 잘 모르겠다 싶기도 합니다. 혼자 해야 하는 것인가 싶고 같이 해야 하는 것인가 싶고 이렇게 할 수 있겠구나 싶고 이게 할 수 있는건가 싶기도 합니다. 언제나 마구라고 해야 할지 현실로 이루는 것이라고 해야 할지 그것에 관해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고, 또 이게 되긴 되는건가 싶은 것은 사람 간에 대화 부분이 그렇습니다.
오늘은 자기 전에 좀 더 고민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항상 말이, 그리고 대화가 너무 어렵습니다.
아...긴 글을 보는 순간 깜놀랬는데 이제 1회 정독했습니다~~ㅠ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깨우칠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될수 있게...
인간이라는 존재의 삶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하나~~!
우리들이 지향하는 미래의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에 대해
이생에서 제라울의 반평생의 마구의 목적,마구 방향,마구의 흐름에 대해 설명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늘 긴장하고 성찰하여 중의의 행동으로 지금 내가 이곳에서 뭘 할수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실천할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간을 들여 다시 글을 읽어보고 질문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글 올리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글이 긴데 짧다고 느껴지긴 처음이에요..
흠 ㅜㅜ
감사합니다. 아이고 읽느라 힘들었습니다 ㅠㅠㅠㅠㅠ
이글 또 읽어야 되는데 후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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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의도를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과정을 보려고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