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폭풍 속의 평화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허레이쇼 스패퍼드(1828~88)는 시카고의 성공한 변호사이자 부동산 업계에서 큰손이었다.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도시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을 때 스패퍼드도 큰 타격을 입었다. 1873년에 스패퍼드는 아내 애나와 네 딸과 유럽 휴가를 계획했다. 하지만 사업상 급하게 처리할 문제가 생겨 그는 가족을 먼저 프랑스 증기선 ‘빌뒤아브르’호에 태워 보냈다. 그런데 “1873년 11월 22일 오전 2시, 대서양 북동부에서 빌뒤아브르호와 영국 철갑선 라크언호가 정면충돌했다. 그 사고로 빌뒤아브르호는 12분 만에 침몰했다.” 탑승객 316명 중 애나를 포함한 90명만 살아남았고 네 딸은 배와 함께 가라앉고 말았다.
1873년 12월 1일, 생존자들은 웨일스 카디프에 도착했고 거기서 애나 스패퍼드는 남편에게 전보를 쳤다. “혼자 살아남았으니 어쩌면 좋아요.” 그 소식을 들은 스패퍼드는 “바로 다음 배편으로 곧장 아내에게 향했다.” 항해 도중 “선장은…그를 조타실로 불러냈다. 그러고는 ‘자세히 보니 지금 지나는 곳이 빌뒤아브르호가 침몰한 곳이며 수심은 5km쯤 된다.’고 말해 주었다.” 그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스패퍼드는 놀라운 찬미 <내 평생에 가는 길>의 가사를 써 내려갔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두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일설에 따르면 허레이쇼는 딸들이 숨진 현장 근처를 지나던 당일에 이 찬양을 작사했다고 한다. 물론 나중에 지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무엇이 진실이든 이 찬양에는 인생의 가장 악몽 같은 시기를 지나던 허레이쇼에게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평안이 놀랍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가 삶의 모진 풍파를 겪을 때도 하나님은 똑같은 평안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2024년도 세계선교 사업을 위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계획들이 세워지기를
12월 2일
재능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2~4)
프랭클린 E. 벨든(1858~1945)은 뛰어난 기량으로 왕성하게 활동한 재림교인 작곡가였다. 엘렌 화잇의 큰언니의 아들인 그는 프랭크라는 이름으로 자주 불렸고 설교를 듣는 와중에도 설교 주제를 활용해 작사·작곡을 모두 할 수 있었다. 예배가 마칠 즈음이면 벨든 부부는 새로이 지은 찬양을 부르고 설교자에게 악보의 사본을 건네주었다.
영문 찬미가에는 그의 영감적인 찬양이 여러 곡 수록되어 있다. <주의 것이 되려 하오니>는 온전히 헌신하는 내용을 담은 찬양이다. 가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주의 것이 되려 하오니 가르쳐 주소서. 주의 뜻을 행키 원하니 도와주소서.’ <그 삶이 나를 덮었네(Cover With His Life)>라는 찬양의 마지막 절은 다음과 같다.
‘주님의 죽음이 내 죄 사했네.
흠 없고 정결한 그 삶이 나를 덮었네.
그 말씀 따르며 거룩함 입었네.
내 주님 다시 오실 때 영화롭게 되리.’
찬미 <폭풍 속의 피난처(A Shelter in the Time of Storm)>는 많은 이에게 위로와 확신을 주었다. 찬미 <큰 심판을 열고>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중대한 사건인지 잘 묘사하며 <주 오실 때를>이라는 찬미는 재림을 ‘살피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주 맡기신 일을 마치고>에서는 ‘일을 마치고’ ‘모든 무리 예루살렘으로 가겠네’라며 기쁨을 노래한다.
벨든은 1945년 12월 2일에 수많은 찬송을 남기고 숨을 거뒀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삶은 찬송만큼 영적이지 못했다. 1895년 호주에서 엘렌 화잇은 이미 그에게 “인간은 노아의 목수들처럼 하나님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도 그분의 거룩한 손길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편지 15, 1895.)라고 편지했다. 1897년에는 이렇게 덧붙였다. “프랭크,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통하여 네가 집에서는 기도하지 않고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구나. 이 땅의 삶은 순간에 불과하단다. 너는 스스로 하나님께 자신을 맡겼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에 대한 감정의 응어리를 완전히 떨쳐 버린 적이 한 번도 없다”(편지 29, 1897.).
참된 선지자가 여러분에게 개인적인 편지를 보낸다면 그것은 어떤 내용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자신에게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고쳐 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태영/전주은 선교사 부부(서인도네시아)
1000명선교사 훈련원에 아직 남아 있는 건축 사업을 위한 자원이 준비되도록
12월 3일
새 마음
“너희 안에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을 넣어 주겠다. 돌처럼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그 대신 살과 같은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겔 36:26, 쉬운)
1967년 12월 3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심장외과 전문의 크리스천 N. 버나드(1922~2001)가 세계 최초의 대인 심장 이식 수술을 집도했다. 심장 이식 자체로는 두 번째였던 이 수술은 케이프타운의 그루트슈어 병원에서 이루어졌고 환자 루이스 워시칸스키는 심장 이식 18일 만에 숨을 거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거부 반응 억제제가 눈에 띄게 발전을 이루었고 여러 임상 경험이 더해지며 오늘날 심장 이식은 일반적인 수술이 되었다.
영적인 면에서 모든 인간은 일종의 이식 수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꺼이 집도의를 자청하신다. 에스겔 36장 26절에서 그분은 “너희 안에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을 넣어 주겠다. 돌처럼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그 대신 살과 같은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고 하신다. 27절에서는 “너희 안에 내 영을 두어 내 법을 잘 지키도록 하겠다”라며 이식 수술의 목적을 설명하신다.
예레미야 31장 33절에서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속에 두고 그들의 가슴에 새겨 두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쉬운).
실제로 “우리의 마음은 죄에 물들어 있으며 우리 스스로 이를 바꿀 수가 없다. …교육, 바른 예절, 의지력은 모두 옳은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제각기 적절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고, 우리의 생애를 순결하게 할 수도 없다. 오직 위로부터 온 새 생명, 곧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능력이 우리를 죄 있는 상태에서 거룩한 상태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 힘은 그리스도시다. 그분의 은혜만이 우리의 죽은 영혼에 새 생명을 가져다줄 수 있고 우리를 하나님과 거룩함으로 이끌 수 있다”(생애, 18).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겉으로만 종교를 지녔을 뿐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많다(마 23:1~36). 우리 또한 그중 하나일지 모른다.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며 그분에게 새 마음을 구해 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해성/백관희 선교사 부부(네팔)
직업훈련센터에서 훈련받은 재림 청년들의 취업과 시험 합격을 위해
12월 4일
한계가 없는 삶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호주 멜버른에서 조산사이자 소아과 간호사로 일하던 두시카는 수백 명의 출산을 돕고 수많은 신생아를 보살폈다. 그리고 나이 스물다섯에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 그는 너무나도 신이 났다. 여러 의사를 만나고 두 번의 초음파 검사를 거치면서 모든 것이 순조로우며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1982년 12월 4일, 니콜라스가 태어났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의사는 두시카가 아이를 보지 못하도록 옮겼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두시카는 아이가 괜찮은지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해표지증(바다표범 손발증)입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겼고 산모는 무너져 내렸다. 왜 하나님께서 팔다리 없는 아이를 주셨는지 두시카와 남편 보리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부부에게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닉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니콜라스 본인에게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닉을 위한 특별한 계획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그들은 결국 깨달았다. 고심 끝에 닉은 학교로 향했고 열심히 운동했다. 그리고 영향력 있는 복음 사역자이자 동기 부여 전문가가 되었다. 2012년 2월 12일 닉은 미야하라 가나에와 결혼했고 네 자녀를 낳았다.
자신의 저서 『한계를 껴안다』에서 닉 부이치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께 벌어지는 일을 언제나 마음대로 조절할 수는 없습니다. 가끔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닌 일도, 여러분이 멈출 수 없는 일도 벌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여러분께 주어진 불가능보다 가능성의 축복이 더 크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불평을 멈추고 자기 연민에서 헤어나려면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이 필요할 때가 가끔 있다. “신발이 없다고 불평했다가 발이 없는 사람을 보고 불평을 그만두었다.”라는 오랜 격언이 있다. 어려움을 만나 불만이 터져 나오려 할 때는 부족함과 약점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님을 잊지 말자. 포기하고 싶을 때는 하나님이 닉에게 그러하셨듯 나를 단련해 사용하실 것임을 기억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권순범/강지희 선교사 부부(대만)
대만 선교의 오랜 숙원 사업인 대학생 선교센터 설립의 꿈을 이루어 주시기를
12월 5일
강권하시는 사랑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행 10:38)
아프리카의 유명한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1813~73)은 일찍이 “하나님이 하나뿐인 아들을 선교사로 보내셨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다”고 증언한다(요 3:16, 쉬운). 나아가 예수께서는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요 10:18, 새번역)고 말씀하셨다. 한마디로 그리스도는 전무후무한 최고의 선교 자원봉사자이시다. 때가 이르자 그분은 하늘을 떠나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한 이들에게 선을 베풀고 마침내 인류를 위해 목숨까지 내주는 놀라운 과업을 이루셨다.
그리스도의 자발적인 선교를 본받아 전 세계에서 각자의 역량을 발휘해 봉사하는 재림교인이 많다. 1968년 대총회 추계 회의에서는 재림교회 자원봉사대(Adventist Volunteer Service Corps)를 창설해 해외 자급 선교사 파송을 맡겼다. 본 조직체는 나중에 재림교회 자원봉사단(Adventist Volunteer Service)이 되었고 재림교회의 장단기 선교 프로젝트와 이를 위한 자원봉사자 파견을 맡고 있다.
자원봉사는 세상을 한결 나은 곳으로 만든다. 이 사실을 잘 알던 UN 총회는 1985년 12월 17일 정기 총회에서 12월 5일을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세계 자원봉사의 날로 지정했다. “봉사 활동의 중요성에 대한 의식을 고취하고 가정과 해외에서 봉사하도록 독려”하라고 각국 정부에 촉구한 것이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서는 그리스도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라고 기록한다. 12월 5일에는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지역 사회봉사에 힘쓰는 시간을 마련해 보자.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하고 그분의 사랑을 주변에 나누어야 한다. 오늘 시간을 내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한 계획을 짜 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운성/조선희 선교사 부부(대만)
섬기는 교회의 성도들이 전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도록
12월 6일
최초의 기도주일
“예수께서 한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눅 11:1)
기도주일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적이 있는가? 오늘날의 기도주일은 대부분 하나님과 관계를 강화하는 영적 부흥을 목적으로 삼는다. 하지만 재림교회 최초의 기도주일은 깊은 회심과 후한 마음 두 가지를 모두 강조했다. 그 당시 기도주일은 청지기 주간이라고도 불렸다.
1880년대 중반에 재림교회는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루었지만 교인들은 점점 불어나는 사역의 재정을 충당할 만큼 후하지 못했다. 수많은 지역 합회가 부채에 허덕이며 도시 선교사들은 인력과 재정난을 겪었고 이른바 세계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and Treaties Society)에도 돈이 없었다. 해외 선교는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에 크게 의존했고 재림교회 학교들은 전부 적자인데다 더 큰 시설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역전시킬 수 있었을까?
1885년 12월 6일 일요일에 대총회는 1885년 12월 25일부터 1886년 1월 2일까지 재림교회 최초의 기도주일을 개최하기로 결의했다. 총회 대표들은 각 합회장과 목사가 이 문제에 즉각적이고 충실한 관심을 기울여 모든 교회와 개인이 기도주일의 본질과 목적에 관한 정보를 얻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와 더불어 기도주일은 하나님 앞에 교인 모두가 겸손히 모여 더 깊이 회심하며 이미 시작된 사업에 복을 더하고, 재정이 있는 이들이 마음을 열어 주님께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고 세상 나라들에 기별을 전하며 그분의 이름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의 기도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어려움과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참 많다. 심지어 남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그들을 직접 돕지는 않는다. 우리는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호소하면서도 직접 발 벗고 나서지는 않는다. 이런 일을 비롯한 여러 프로젝트를 추구하는 동시에 우리는 자신의 감화력과 자원을 활용해 교회의 선교를 유지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성/김종숙 선교사 부부(북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지역 선교를 위해 함께 동역할 일꾼을 보내 주시기를
12월 7일
하나님의 말씀을 위한 봉사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성경은 가장 사랑받으면서도 가장 미움받는 책이다. H. L. 헤이스팅스의 말마따나 “불신자들은 항상 망치를 들고 성경을 쪼아 댔지만 망치만 닳았을 뿐 성경은 쇠모루처럼 건재했다.” 그와 반대로 성경을 공부하고 보급하기 위해 삶을 희생한 사람도 많다. 중세 발도파(왈덴스인)가 그러했고 오늘날 종교적으로 억압받는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렇다.
웨일스 소녀 메리 존스(1784~1864)는 성경에 대한 사랑을 잘 보여 주는 인물이다. 그는 자기만의 웨일스어 성경을 갖고 싶었다. 그 당시 성경은 귀하고 값비쌌다. 아홉 살 때부터 메리는 성경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6년이 지난 1800년, 메리는 토머스 찰스 목사를 만나고자 웨일스 발라에서 42km나 되는 거리를 맨발로 걸어갔다. 토머스 찰스 목사는 인근에서 성경을 판매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찰스는 메리에게 성경 1권 가격으로 3권을 주었고 그 이야기는 온 교회에 퍼졌다.
웨일스에는 저렴한 성경이 절실했다. 1802년 12월 7일, 메리의 이야기에 감명받은 조지프 휴이 목사는 종교책자협회에 묵직한 질문을 남겼다. “웨일스가 할 수 있다면 영국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세계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말은 협회 지도자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고 1804년 3월 7일, 영국성서공회가 조직됐다. 이것은 전 세계 수많은 성서공회의 초석이 되었다.
오늘날 성경은 약 600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성경의 일부 책은 거의 2,400가지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경의 보급이 더 많은 성경 읽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할 시간을 방해하는 요소가 지금처럼 많은 때가 없다. 이러한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오늘 우리의 우선순위를 재정비하자.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우리 삶이 한결 나아질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1000명선교사 운동
훈련 중인 62기 선교사들이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으로 거듭나도록
12월 8일
‘하늘에서 만나요’
“나는 이미 부어 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딤후 4:6, 새번역)
제임스, 엘렌 화잇 부부는 뉴햄프셔, 버몬트, 뉴욕의 재림교인을 방문하기로 계획했다. 부부의 세 자녀 헨리, 에드슨, 윌리는 메인주 톱셤의 하울런드 가족에게 맡겼다. 그런데 여행 도중 제임스가 아이들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꿈을 꾸었다. 톱셤으로 돌아가 보니 16세인 장남 헨리가 심한 감기에 걸려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지 나흘 만에 감기가 폐렴으로 발전했고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자신이 얼마 살지 못하리라고 직감한 헨리는 부모와 두 형제와 매우 감동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을 간호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헨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머니, 부탁이 있어요. 제가 죽으면 배틀크리크에 있는 동생 존 허버트(생후 3개월 만에 사망했다.) 곁에 묻어 줄 수 있나요? 구원의 아침에 함께 일어나고 싶어요”(자서, 346).
죽기 이틀 전 헨리는 두 동생을 곁으로 불렀다. 에드슨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에디, 내가 더 이상 형 노릇을 하기는 어렵겠구나. 언제나 옳은 선택을 위해 노력해 주겠니? 임종을 앞두고 회개하는 건 최악이거든.” 그러고는 윌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윌리, 좋은 아이가 되고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렴. 하늘에서 만나자. 내가 죽더라도 울지 마.” 그리고 헨리는 아버지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시겠군요. 제가 많이 보고 싶으시겠지만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이게 더 좋아요. (남북 전쟁에) 징집될 일도 없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겪을 일도 없으니까요. 행복하게 죽는 것도 특권이라고 생각해요”(앞의 책, 347~348).
1863년 12월 8일에는 어머니를 불러 말했다. “어머니, 구원의 아침에 하늘에서 만나요. 어머니도 반드시 그곳에 가실 테니까요.” 말을 마친 헨리는 “형제와 부모 그리고 친구를 불렀다. 그리고 모두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하고는 위를 가리키며 이렇게 속삭였다. ‘하늘은 좋은 곳이야’”(앞의 책, 349). 그리고 오후 1시 30분, 헨리는 숨을 거두었다.
죽기 이틀 전에 헨리는 젊은이를 위한 특별한 메시지를 남겼다. “나의 젊은 친구들에게 부탁합니다. 세상의 성공과 세상이 주는 기쁨을 위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뒷전으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인생 최고의 순간을 하나님을 위해 일하며 보냅시다. 이만 안녕”(앞의 책, 347). 우리 모두 이 메시지를 곰곰이 되새겨 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민섭/김순임 선교사 부부(대만)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며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12월 9일
사역을 다시 시작하다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9)
낙담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조금씩 멀어진다. 1856년 12월 9일, 일리노이 라운드그로브에 머물던 엘렌 화잇은 안식일 준수 재림주의자 가운데 동부에서 아이오와 와우콘으로 이주한 몇 가정이 심각한 영적 위기에 빠졌다는 계시를 보았다. 진눈깨비가 쏟아지는 고약한 날씨였고 이동하는 도중 엘렌은 “이렇게 추운 날씨는 생전 처음”이라고 기록했다. 제임스 화잇은 와우콘으로 향하는 긴 여행을 망설였지만 화잇은 말했다. “우리는 가는 거예요.”
때는 초겨울이었고 아이오와에 가려면 미시시피강을 건너야 했다. 그 큰 강에는 다리가 없었고 얼음으로 뒤덮인 강을 배로 건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두텁고 단단한 얼음이 얼어 있지 않는 한 안전하게 강을 건널 방법은 없었다. 썰매를 타고 강가에 이르자 조사이어 하트가 엘렌에게 “홍해에 도착했네요. 건너갈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화잇은 이렇게 답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전진해야지요.” 믿음으로 그들은 위험천만한 강을 건넜고 와우콘에 가서 재림교인들을 격려할 수 있었다. 또 거기서 영향력 있는 두 재림교인 지도자가 낙심하지 않도록 믿음을 북돋아 주었다.
와우콘에서 화잇 부부는 한 가게를 방문했다. 뉴햄프셔 워싱턴에서 온 재림교인 호지어 미드와 재림교회 목사였던 J. N. 러프버러가 목공으로 일하던 곳이었다. 썰매에 앉아 있는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러프버러를 보고 엘렌 화잇이 물었다. “엘리야 형제여, 여기서 뭐하십니까?” 그러자 그가 깜짝 놀라며 답했다. “미드 형제와 목공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화잇은 다시 물었다. “엘리야 형제여, 여기서 뭐하십니까?” 세 번째로 또 물었다. “엘리야 형제여, 여기서 뭐하십니까?”
화잇 부부의 방문으로 러프버러는 목공을 그만두었고 J. N. 앤드루스는 농사를 그만두었다. 두 사람 모두 목회 사역을 다시 시작했고 영향력 있는 설교가와 작가가 되었다. 그대가 만약 하나님께서 맡긴 사역을 떠나 ‘휴가 중’이라면 바로 지금이 다시 돌아갈 때이다. 그 결정을 미루지 말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정태/김성진 선교사 부부(베트남)
새롭게 시작된 삼육 신학교를 통해 준비된 주의 일꾼들이 양성되도록
12월 10일
종교 자유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자유란 잃어버렸을 때 더욱 소중하게 와닿는 인간의 권리이다. 2차 세계 대전(1939~45)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이러한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중요한 대책이 마련됐다. 1945년 10월 24일, 세계 각국 정부의 협력을 목적으로 유엔(UN, The United Nations)이 설립됐다.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는 30가지 조항으로 이루어진 ‘세계 인권 선언’을 채택했다. 존엄성과 타고난 권리를 이해하고 인권, 기본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내용이 그 핵심이다.
그 가운데 18조는 종교의 자유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에는 자신의 종교 또는 신앙을 바꿀 자유도 포함된다. 또 이러한 권리에는 혼자 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자신의 종교나 신앙을 가르치고 실천하고 예배하며 준수할 자유가 포함된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에는 이 기본적인 원칙을 무시한 채 자기 무리에서 이탈한 이들이나 이탈을 독려하는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려 하는 근본주의자가 너무나 많다.
종교적 무관용의 징후를 우려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전통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장려했고 더욱 최근에는 대규모 종교 자유 행사를 세계 곳곳에서 개최하고 있다. 양심과 종교의 자유는 권력자뿐 아니라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이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섬기는” 데 전념했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도록 장려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자유 의지를 주셨으며 비록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지라도 우리에게는 선택할 자유가 있음을 여호수아는 인정했다(수 24:15).
여호와 하나님과 종교 자유의 기초를 다진 수많은 사람에게 우리는 크게 감사해야 한다. 그 덕분에 현재 세계 여러 나라가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종교 자유의 깃발이 손에 쥐어져 있는 지금, 우리는 아직 이런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지역을 위해 기도하고 도움을 베풀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송해섭 선교사(네팔)
답차 선교센터에서 진행 중인 평신도 훈련 프로그램을 위해
12월 11일
재림교회의 선조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마 2:1~2)
마태복음에는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동방에서 찾아온 현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정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었지만 히브리어 성경을 연구했고 메시아가 나타날 때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신비로운 별을 따라 베들레헴에 찾아가 예수를 만났다. 그와 비슷하게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고 의미 깊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또 있다.
프란시스코 에르모헤네스 라모스 멕시아(1773~1828)는 1773년 12월 1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유하고 유명한 지주이자 아메리카 원주민 수호자였던 그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나 성경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칠레의 예수회 일원인 마누엘 라쿤사(1731~1801)의 영향으로 예언에 관심이 많았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그의 이해는 라쿤사보다 훨씬 탁월했다.
라모스 멕시아는 성경을 믿음과 교리의 유일한 근원으로 강조했고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만이 기독교 교회의 참된 기초라고 생각했다. 또 제칠일 안식일을 지켰고 그날에는 자신의 부동산 회사를 열지 않았다. 임박한 재림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고 죽은 자는 무덤에서 재림 날의 구원을 기다린다고 이해했다. 또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고 물에 잠기는 침례를 인정했다. 그는 화체설을 부정하고 만인 제사장설을 받아들이고 우상 숭배도 반대했다.
라모스 멕시아는 그 당시 교계와 정계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때때로 근대 최초의 재림교인으로 그의 이름이 언급되기도 한다. 혼자서도 그는 진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성경의 가르침을 지지했다. 라모스 멕시아처럼 어떠한 상황에도 우리 믿음이 별처럼 빛나기를 바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세담/박유진 선교사 부부(대만)
하나님 사업에 필요한 일꾼 10명을 보내 주시도록
12월 12일
열정적인 자선가
“주님께서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하셔서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듯 서로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살전 3:12, 쉬운).
모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가까운 한 사람의 인생에 변화를 줄 수는 있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세상을 바꾼다.’는 재림교회 개발 구호 기구(ADRA)의 표어는 이것을 잘 담아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나를 위해서는 무엇을 쓰고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서는 무엇을 써야 할까?
1921년 12월 12일,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의 노바리마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밀톤 S. 아폰수는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해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폰수의 주요 기업 가운데 골든크로스사는 브라질에서 네 번째로 큰 건강 보험 회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아폰수는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폈고 십 대 시절 받아들인 재림 기별을 열정적으로 전파했다. 또 수많은 자선 사업을 이끌어 여러 학교와 대학의 기초를 놓았고 학생 수천 명을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여러 곳에 보육원을 세웠다. 아폰수는 남미지회에서 가장 큰 재림교회 라디오·TV 방송사를 설립하고 유지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선행의 동기에 대해 아폰수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은 우리 재능을 갈고닦아 번성하라고 가르칩니다. …저는 자기만족만을 위해 돈을 번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고아와 버려진 아이들이 살 곳을 마련하고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도록 돕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개인적인 만족감을 안겨 줍니다. 제가 자랑하고 싶어서 베푼다고 비난하는 이도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누군가를 도우며 뽐낸 적이 결코 없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은 이웃에게 베풀고 살라는 가장 강력한 호소이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에서 “내 이웃”(눅 10:29)은 누구일까?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동정과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 모두 우리 이웃이다. 고통받고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모두가 우리 이웃이다. 그들의 결핍을 발견하고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의무이다”(4증언, 226~227).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경원/조효정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파키스탄 1000명선교사 운동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를(선교사 급여, 여선교사 훈련)
12월 13일
생각의 드레스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마 12:34, 새번역)
‘드레스’, ‘정장’ 하면 사람들은 패션업계를 흔히 떠올린다. 그러나 1784년 12월 13일에 작고한 영국의 유명 작가이자 사전 편찬자인 새뮤얼 존슨(1709~84)은 “언어란 생각의 드레스”라는 통찰력 있는 말을 남겼다. 언어가 우리 생각을 치장하는 일종의 장식이라는 의미로 말한 듯하다. 세상에 수많은 옷이 존재하듯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중에는 남다르게 매력적이고 정확한 표현도 존재한다.
보통 언어는 가장 효과적인 표현 방법이다.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라고 선언하신 예수님은 결국 우리가 말하는 내용과 방식에서 당사자의 됨됨이가 드러난다고 암시하신다. 언어는 마음속의 느낌과 감정, 우선순위와 욕망을 반영한다.
그러나 말로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화려한 언변과 숨은 부도덕을 대조적으로 드러내신다. 독일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남겼다고 알려진 명언에 따르면 “사냥 후, 전쟁 중, 선거 전만큼 거짓말을 많이 하는 때도 없다.” 만약 지도자들이 말과 약속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틀림없이 세상은 훨씬 나은 곳이 될 것이다.
반복된 거짓말은 남들에게도 좋지 못하지만 자신에게 특히 더 해롭다. “말은 그 사람의 성품을 드러낼 뿐 아니라 성품에 반응을 일으킨다. 인간은 스스로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 …한번 내비친 의견이나 결정을 자존심 때문에 철회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증명하려 하다가 결국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지경에 이른다”(소망, 323).
자신에 대해 남들이 말하는 내용보다 남들에 대해 자신이 말하는 내용에 더 주의를 기울이면 얼마나 좋을까? 인터넷에 떠도는 유명한 말마따나 “남에게 가하는 비판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비판하는 당사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 준다.” 우리의 말에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깎아내리기도 하고 추켜세우기도 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주님,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만큼의 친절을 담아 말하게 하소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하지홍/황고은 선교사 부부(튀르키예)
튀르키예의 경제 상황이 안정되어 섬기는 사람들의 삶이 평안하게 되도록
12월 14일
점성술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 4:1)
포스트모던과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시대에는 별 사람이 다 선지자라고 주장하고 다녔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프랑스의 점성술사인 미셸 드 노스트라다무스(1503~66)이다. 1503년 12월 14일 프랑스 생레미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약초를 연구하는 약제상이었다. 그러다가 주술에 빠졌고 6,000년 넘는 미래를 담아냈다고 추정되는 연감을 여러 권 썼다. 가장 유명한 것은 1555년에 쓴 『예언집(Les Propheties)』이다. 시적인 문체가 특징이었던 그 책은 1672년 영어로 출간됐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추종자들은 그가 두 차례의 세계 대전, 9·11 테러, 나폴레옹과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 심지어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까지 수많은 사건을 예언했다고 주장한다. 예언이라고 주장하는 그 내용을 사람들이 어떻게 현대에 적용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X-72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999년 일곱 번째 달, 하늘에서 무섭고 강한 대왕이 내려오리라.
자크리의 왕을 부활시키려고 그 전후의 기간에 마르스는 행복의 이름으로 지배하고자 하리라.”
1999년이 지났건만 그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런 다음 예언 I-48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별점을 쳤다.
“달이 통치하는 20년이 지나고 다른 것이 등장하여 7,000년을 통치하리라.
다시 태양의 시기가 도래하고 마침내 끝이 나면 그제야 나의 예언이 모두 끝나리라.”
대체 이 ‘7,000년’은 언제 시작하는 것일까? 성경의 종말론에 따르면 그렇게 긴 시간이 주어질 일은 없다.
그 예언이 실현됐다는 주장에 상관없이 성경은 점성술을 활용한 예언과 마법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사 47:12~15). 또 거짓 선지자와 성취되지 않을 예언을 멀리하라고 경고한다(신 18:21~22; 렘 28:8~9). 진짜 선지자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만 거짓 선지자는 막연하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다. 자기의 예언을 사람들이 잘못 해석했다는 식으로 탈출구를 만드는 것이다.
세상이 끝으로 치닫고 있다. 거짓 선지자의 수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우리는 성경에 단단히 뿌리박고 그들의 도발에 맞서도록 대비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파키스탄 간호대학 설립을 통해 선교의 문이 확장되도록
12월 15일
수정 헌법 제1조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세상의 수많은 종교 탄압이 세속적인 세력과 종교의 결탁 때문에 발생한다. 종교 지도자가 세속적 권력을 잡도록 정부가 용인하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공인된 종교가 아닌 다른 신앙을 따르는 사람은 박해의 대상이 된다.
미합중국 건국의 주역들은 정교분리의 중요성을 잘 알았고 수정 헌법 제1조에 그 사실을 명시해 놓았다. 수정 헌법 제1조는 1791년 12월 15일 승인되었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 이 조항은 다양한 신앙과 종교적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 한 나라 안에서 평화로이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충분한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이르면 미국 의회는 종교 문제에 관한 법을 제정하고 종교의 자유를 제한할 것이다. 엘렌 화잇은 이렇게 “이 나라의 입법부가 종교적 권리에 관한 인간의 양심을 구속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면서 제칠일 안식일 준수자들을 힘으로 억압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은 사실상 이 땅에서 효력을 잃고 국가적인 배도에 이어 국가적인 파멸이 뒤따를 것”(사건, 133)이라고 경고한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운 교회는 세속적 권력을 힘입지 않은 조직체이다. 또 그분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라”(마 22:21, 공동)라고 하셨다. 정교분리는 분명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드높이고 증진해야 할 신약의 가르침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석희/전은경 선교사 부부(몽골)
몽골 대회에 속해 있는 수익성 기관들의 자립과 발전을 위하여
12월 16일
오리온자리의 열린 공간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복음주의 기독교인 중에는 종말론적 소망과 관련해 이스라엘이라는 정치적 국가와 고대 예루살렘 도성에 초점을 맞추는 이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손으로 지은 지상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새 예루살렘을 기다리고 있다. 새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온다(계 21:2).
1848년 12월 16일, 엘렌 화잇은 하늘의 권능들이 떨리는 계시를 보았다.
“하늘의 권능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흔들릴 것이다. 그러면 해, 달, 별들이 제자리에서 떠나갈 것이다.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으나 하나님의 음성에 흔들릴 것이다.
짙은 먹구름이 나타나 서로 부딪혔다. 대기층이 분열되어 둘둘 말렸다. 그런 다음 우리는 오리온자리의 열린 공간을 볼 수 있었고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거룩한 도성은 그 열린 공간을 통해 내려올 것이다”(초기, 41).
이 진술은 숱한 추측을 자아냈다. ‘오리온자리에 빈 공간은 없다.’면서 이 진술의 신빙성을 부인하는 비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망원경으로 본 오리온성운의 흥미로운 모습과 예수의 재림 묘사가 서로 비슷하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오리온자리에 이미 빈 공간이 생겼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화잇에 따르면 “해, 달, 별들이 제자리에서 떠나갈 것”이며 그러면 “거룩한 도성은 그 열린 공간을 통해 내려올 것이다.”
추측성 이론과 성경의 왜곡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마지막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계 22:18~19). 하지만 단순히 미래 사건의 이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영원히 살기 위해 지금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시 24:3~4; 요일 3:1~3). 그때가 되면 우리가 탐구할 수 있도록 우주의 모든 신비가 공개될 것이다. 죄로 물든 이 세상의 어떤 것도 하늘과 비교할 수 없다. 나는 그곳에 갈 생각이다. 여러분도 그러기를 바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신영천/김혜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캄보디아 삼육대학교 건축을 위해
12월 17일
성경의 조화
“베뢰아의 유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사람들이어서, 아주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행 17:11, 새번역)
성경에서 가장 들어맞지 않는 부분은 열왕기상·하와 역대상·하에 등장하는 히브리 왕들의 연대기이다. 학자들은 수 세기에 걸쳐 연구를 거듭한 끝에 몇 가지 연대적 불일치를 단순히 성경 기록상의 실수로 결론지었다. 예를 들면 열왕기하 9장 29절에서 유다 왕 아하시야는 이스라엘 왕 요람 11년에 즉위했다고 기록했지만 열왕기하 8장 25절에서는 12년이라고 적혀 있다.
시카고 대학에서 동양학을 공부하던 에드윈 R. 틸레는 성경의 불일치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려고 했다. 지도 교수 W. A. 어윈은 그런 “해결 불가능한” 주제를 새삼 논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틸레가 논쟁적인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기로 했을 때는 어윈도 허락했다. 성경 자체는 모순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틸레는 복잡한 연대기를 풀어내고자 했다.
틸레는 공동 섭정, 중복되는 통치 기간과 더불어 즉위한 연도의 달까지도 계산했다. 더 깊은 조사를 벌이면서 틸레는 연대적 불일치가 자꾸 나타나는 이유는 ‘이중적인 연대 계산 방식’ 때문임을 찾아냈다. 즉 왕이 통치를 시작한 해를 ‘즉위년’이라고 별도로 떼어 계산한 기록이 있는가 하면 즉위년 없이 곧바로 통치 제1년으로 계산한 기록도 있었던 것이다.
1943년 12월 17일, 틸레는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의 논문은 성경 연대기 연구의 표준이 되었다. 이 저명한 재림교인 학자의 연구는 『근동 연구 저널(Journal of Near Eastern Studies)』에 처음 실렸고 나중에는 『히브리 왕들의 연대기(The Mysterious Numbers of the Hebrew King)』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회의론자들은 성경의 난제들을 근거로 성경을 공격하지만 그 난제들은 오히려 성경이 하나님께 영감받은 책임을 강력하게 입증한다”(정로, 107). 문제는 성경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한 이해력 때문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조금만 더 깊이 연구하라.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고 의심도 사라질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윤권/나영주 선교사 부부(방글라데시)
BASC 삼육대학 학생들의 신체적·정신적·영적 건강을 위해
12월 18일
말의 힘
“찬송과 저주가 한 입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약 3:10, 쉬운)
칼턴은 막대한 문학적 유산을 남기고 1912년 12월 18일에 작고한 미국의 시인이다. 그의 유명한 시 <첫 정착민 이야기>에서는 사랑스러운 젊은 아내를 데리고 아무도 살지 않는 서부의 시골로 찾아간 용감한 남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적적한 생활 속에서도 젊은 아내는 흔쾌히 남편을 도와 초라한 오두막을 유쾌한 삶의 터전으로 탈바꿈시켰다. 세월이 흘러 남자는 고립된 삶, 궂은 날씨, 흉작, 가난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느 날 밤, 그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목장에서 풀을 뜯던 소들이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아내가 소들을 안 돌보고 빈둥거리기만 하며 일은 자기 혼자 다 한다면서 30분이나 핀잔을 주었다.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가슴이 미어졌다. 이튿날 오후, 다가오는 폭풍을 감지한 남자는 일터에서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에는 아내가 연필로 적어 놓은 메모가 남아 있었다. 애써 살폈지만 소들이 또 달아났다며 밖에 나가 다시 찾아올 테니 자신을 타박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메모는 다음과 같은 글로 끝맺었다. “여보, 나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워 주세요. 그리고 내가 다시 올 때는 따뜻한 말을 부탁해요.”
메모를 다 읽고 나자 천둥소리와 함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남자는 개를 끌고 정신없이 집 밖으로 나가 사랑하는 아내를 밤새 찾아 헤맸다. 아내가 와 있기를 바라며 세 번이나 집으로 돌아와 봤지만 아내는 없었다. 이른 아침 동이 틀 무렵 남자는 집으로 돌아왔고 소들이 제자리에 있었다. 아내가 마침내 소들을 찾아온 것이다! 그는 서둘러 오두막집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바닥에 지쳐 쓰러져 있는 아내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그의 “집은 활기를 잃었다.” 남자의 뇌리에는 아내가 남긴 메모가 계속 떠올랐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요.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요!”
말, 그는 단지 말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말이라는 것은 얼마나 파괴적인가! 윌 칼턴은 자신의 시에 다음과 같은 글을 덧붙였다. “연날리기하는 아이들은 흰 날개 달린 자신의 새들을 다시 끌어당길 수 있지만 당신이 날린 말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주님, 저의 말이 다른 이에게, 특히 소중한 이에게 복의 근원이 되게 하소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조기형/곽현주 선교사 부부(필리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젊은 선교사들을 위해
12월 19일
영감적인 지도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4~5)
지도자가 되면 오만해지고 귀를 막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영감적인 방식으로 능력과 겸손을 둘 다 갖춘 지도자도 있다. 윌리엄 A. 스파이서(1865~1952)도 그중 한 사람이다. 1865년 12월 19일 미네소타 프리본에서 태어난 스파이서는 선교지에 대한 깊은 열정으로 영국과 인도에 가서 선교사로 활동했다. 또 대총회 선교부 서기(1901~3), 대총회 총무(1903~22), 대총회장(1922~30)을 역임했다.
사람들에게 인기 있던 스파이서는 유명세를 탔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검소하게 생활했고 기차표나 호텔도 가장 저렴한 것을 찾았다. 가족과 친구들이 더 좋고 안전한 곳에 묵으라고 하면 그는 “충분히 좋아. 침대도 있고 주님께서 돌봐 주실 테니 말이야.”라고 말했다. 식사에 관해서는 ”땅콩 한 봉지면 하루도 버틸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파이서는 옷도 몇 벌 없었고 그마저도 투숙한 호텔의 욕실에서 직접 빨았다. 자신이 아끼는 한 푼 한 푼이 모여 교회의 선교를 돕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스파이서는 명확한 신념을 지녔으나 자신의 견해를 뽐낸 적이 없었다고 후임 대총회장 J. L. 매켈허니는 평가했다. “그는 한 번도 관료주의적인 모습, 거만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독단적으로 권력을 휘두른 적도 없다. …직임을 받은 순간부터 그는 언제든 그 직임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후임자에게는 상냥하고 유익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늘 힘닿는 대로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설교가이자 작가인 스파이서는 교인들의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는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는 재림 운동이 승리할 것이라는 흔들림 없는 믿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여러분이 어떤 분야의 지도자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든 우리는 타인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일터, 학교, 교회, 기타 사회 집단과 가정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느냐이다.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말을 하든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빌 4:5).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병섭/이세주 선교사 부부(대만)
타이동 대학 한국어 동아리에 참석 중인 학생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도록
12월 20일
그대의 면류관을 지키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수많은 사람이 생전에 그 영광스런 사건이 일어나기를 고대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중에서도 입지전적인 인물은 윌리엄 밀러(1782~1849)이다. 자신이 예상했던 날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지 않자 밀러는 큰 시련을 겪었다. 앞서 밀러는 스스로 성경을 연구한 뒤 그리스도가 1843년경에 재림하신다고 확신했고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1844년 10월 22일이 그날이라고 동의했다. 그날은 그냥 지나가 버렸고 밀러는 근거 없는 기대를 부추겼다고 엄청난 비판과 조롱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믿음과 소망을 버리지 않았다.
1844년 11월 10일에 밀러는 친한 친구 조슈아 하임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 관하여 말씀하신 영광스러운 사건이 실현되리라 기대하며 나는 복된 소망을 기다리고 바라보았다네. 그래. 나는 두 번이나 실망을 겪었지. 하지만 아직 좌절하지도 낙심하지도 않았다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나와 함께하셨고 위로해 주셨어. 이제 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더 많은 증거가 있다네. 대적들과 조롱꾼들이 나를 에워싸도 내 마음은 완벽하게 평온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소망은 변함없이 강렬하다네.
…형제여, 굳게 붙들게나. 그 누구에게도 자네의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게나. 나는 또 다른 시간에 마음을 고정했고 하나님께서 더 많은 빛을 주실 때까지 버틸 작정이네. 그 시간이란 바로 오늘 그리고 또 오늘이라네.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마음으로 간절히 사모하는 그분을 보게 될 때까지 말일세.”
남은 생애 동안 밀러는 이 확신을 고이 간직했다. 1844년 12월 3일에 밀러는 조슈아 하임스와 실베스터 블리스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이 편지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앉아서 글을 쓰네. 계속해서 내 자리를 지킬 생각이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1848년 9월, 밀러는 시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에서 하임스에게 편지했다. “예수님을 곧 보게 되리라는 ‘복된 소망’이 없었다면 오늘은 참 슬프고 우울한 날이었을 게야. …내 육신의 눈은 캄캄해졌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찬란하고 눈부신 미래의 장면으로 밝게 빛나고 있다네.”
밀러는 1849년 12월 20일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고 재림의 소망을 향한 절대적인 헌신이라는 놀라운 모본을 남겼다. 우리 모두 주님의 도움으로 그와 똑같은 소망을 품고서 필요한 경우 목숨까지 내걸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전재송/장혜순 선교사 부부(필리핀)
훈련원에서 함께 봉사하는 직원들이 하나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12월 21일
하나님은 지금도 돌보신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 91:11)
유럽에서 공부한 지 3개월이 된 마이클 하젤에게 아버지 게르하르트 하젤이 그럴듯한 제안을 하며 그를 미시간으로 불렀다. 미국에 돌아와 플로리다에서 가족과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자는 것이었다. 마이클은 친구 몇 명과 기도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3시간 뒤 아버지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마이클, 이것 좀 봐라.” 아버지는 신이 나서 말했다. “내가 마지막 항공편을 구했단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런던을 경유해 뉴욕으로 간 다음 거기서 다시 마이애미로 오면 된다. 우리가 마이애미에서 너를 태워 갈 거다.”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마이클은 편안한 마음으로 다른 결정을 내렸다. 독일 남부에 있는 삼촌을 비롯한 친척들과 연휴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아버지도 마이클을 이해해 주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마이클은 친척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복음을 읽고 크리스마스트리에 둘러앉아 선물 상자를 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미국의 가족에게서 온 전화였다. 어머니, 두 누이와 통화를 마친 뒤 아버지가 수화기를 건네받아 말했다. “마이클, 말할 게 있다. 올해 네가 플로리다에 오지 않아 참 다행이다. 아빠가 예매했던 팬암 103편이 지난주 스코틀랜드 로커비에 추락했단다.”
“1988년 12월 21일, 런던에서 뉴욕으로 향하던 팬아메리칸 항공 103편이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폭발했다.” 이륙 1시간 뒤에 벌어진 일이다. “카세트 플레이어에 감추어진 폭발물이 화물칸에서 폭발”한 것이다. 탑승객 259명은 전원 사망했고 로커비 주민 11명이 파편에 목숨을 잃었다.
왜 하나님은 마이클을 살리고 270명은 목숨을 잃게 놔두셨을까? 우리는 선악 간의 대쟁투가 벌어지는 죄악 세상에 여전히 살고 있으며 너무나 무지하기에 그 질문에 답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를 내다보고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자신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뜻을 성취하고 있는지를 분별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들이 인도받기 원하는 길로만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다”(소망, 234).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북한선교부
북한에 있었던 106개의 소중한 재림교회가 재건될 수 있도록
12월 22일
현대의 순교자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요 15:20)
유명 설교가 중에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떠벌리는 이가 많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어떤 그리스도인은 박해와 죽음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도록 부름받는다. 최근 사례로 지파이바 선교사 가족의 이야기를 들 수 있다. 브라질에서 온 그들은 앤드루스 대학교에서 몇 년을 지낸 뒤 2002년 8월, 미크로네시아의 팔라우 제도에 선교사로 갔다. 루이마르 지파이바는 코로르 재림교회의 목회자였고 아내 마르가레트는 지역 교회 학교의 교사를 맡았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2003년 12월 22일 평화가 깨지고 말았다. 괴한이 집에 침입한 것이다. 침입자는 지파이바 부부와 11세 아들 라리손을 살해하고 10세 딸 멜리사를 폭행했다. 멜리사가 죽었다고 생각한 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한적한 도로에 시신을 유기했다. 천만다행으로 길을 지나던 부부가 멜리사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다. 팔라우에서는 세 명을 위한 특별 추모 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행사에서 루이마르의 어머니 루트 지파이바는 공식적으로 괴한을 용서했다. 그가 베푼 자비는 팔라우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대체 하나님은 왜 그런 비극이 벌어지도록 가만히 계셨을까? 몇 년 뒤 멜리사는 이렇게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모님과 오빠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분들이 생존해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이 성취된 것 같아요. 모든 것이 끝장난 듯한 그 사건으로 사실 많은 복을 누렸어요. 저는 더 강인한 사람이 될 수 있었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더욱 풍요로워졌지요. 그런 일이 없었다면 주어지지 않았을 다양한 기회도 활용할 수 있었고요. …팔라우를 떠나기 전에 저는 선교사가 되어 다시 돌아오겠다고 그들에게 말했어요.”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베드로의 순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표현했다(요 21:19). 테르툴리아누스는 자신의 유명한 저서 『호교론』에서 “박해가 심해질수록 우리의 숫자는 더욱더 늘어난다. 그리스도인의 피는 씨앗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 중에는 자신의 건강으로, 자신의 병으로, 자신의 죽음으로 하나님을 증언하는 이도 있다. 우리를 위해 또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는 그분이 가장 잘 아신다는 사실을 신뢰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전경수/길명자 선교사 부부(아프리카)
계속해서 세계 선교를 이어 갈 다음 세대들을 양육해 낼 수 있도록
12월 23일
지켜 주시는 은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여러분의 주변 혹은 여러분 중에도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틀어진 관계, 심각한 건강 문제, 금전적인 문제 등 이유도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이든 언제나 하나님께서 은혜로 지키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호주에 도착한 엘렌 화잇은 “태어나서 가장 끔찍한 고통”과 맞닥뜨렸다. 그럼에도 1892년 12월 23일, 그는 대총회의 형제들에게 영감적인 편지를 썼다.
“오랜 투병 내내 저는 하나님께 가장 뚜렷하게 복을 받았습니다. 극심한 통증과 처절하게 싸우면서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보증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고통을 견딜 수 없겠다 싶을 때마다, 잠들지 못할 때마다 저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그분께서 저의 곁에 계셨고, 어둠의 그늘이 모두 걷히고 신성한 빛이 저를 감쌌습니다. 방 전체가 그분의 거룩한 임재의 빛으로 가득했습니다.
이토록 귀한 은혜가 함께한다면 얼마든지 아파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은 선하시고 은혜로우시며 자비와 동정과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이 가득한 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력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저의 영혼과 입술에는 그분을 향한 찬양이 넘쳐흘렀습니다. 나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내 상태가 얼마나 악화되었을까 생각하면서 묵상할 때마다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저는 여전히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기억력도 그대로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맑고 활기찬 정신으로 진리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발견하고 있습니다”(자서, 339).
우리는 기대했던 ‘복’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께 매일 받고 있는 복까지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힘들 때도 감사하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만사가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의 충성스런 자녀에게 늘 베푸시는 두 가지 중요한 복이 있다. 바로 은혜와 소망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현규/최선아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가족의 건강과 자녀들의 성장을 위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기념행사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6~7)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는 수많은 추억이 깃든 날이다. 이날을 생각하면 반짝이는 도시, 잘 꾸며진 집, 크리스마스트리, 가족이 다시 모이는 시간, 선물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이들이 떠오를 것이다. 반면 어떤 이들에게 이날은 그저 텅 빈 식탁 위에 변변찮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또 다른 하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크리스마스를 그리스도인이 결코 기념해서는 안 될 고대 이교도의 축제라고까지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12월 25일에 탄생했다는 역사적, 성경적 근거는 없다. 만약 예수께서 겨울에 탄생했다면 목자들이 밤중에 나와 양을 지키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눅 2:8~20). 이 전통적인 날짜의 유래는 조로아스터교의 분파인 고대 페르시아의 미트라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트라교는 일요일마다 태양의 신 미트라를 찬양했고 12월 25일을 그의 생일로 정하여 기념했다. 그리고 페르시아에서 전쟁을 벌였던 로마 병사들이 그 축제 문화를 로마로 들여온 것이다. 서기 270년, 황제 아우렐리아누스는 ‘솔 인빅투스’ 즉 ‘무적의 태양’에 대한 예배를 시행했고 이것은 그레코-로마 제국 최초의 보편적 종교가 되었다. 훗날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무적의 태양을 “의의 태양”(말 4:2, 우리말)이신 그리스도와 연관 지어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고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시작했다.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기억하는 날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 자체는 금지할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날을 성일로 떠받드는 것이다. 엘렌 화잇은 『재림 신도의 가정』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정확한 탄생일을 숨기신 이유는 사람들이 세상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가 아닌 그날을 추앙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477)라고 진술했다. 화잇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트리를 세우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저 선물 받기만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서로 유익한 선물을 나누며 가난한 이에게 도움을 베풀도록 교육받아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이기적인 기대를 내려놓고 이타적으로 자선을 베풀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임을 기억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영식/조효정 선교사 부부(몽골)
몽골 대회의 재정적 안정화를 이루며 선교 사명을 다하도록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이야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폴 하비 오런트(1918~2009)는 폴 하비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미국의 라디오 방송가이다. ABC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던 그는 매년 12월 25일 정오에 <새와 남자>라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신비를 믿지 않는 어느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며 크리스마스 철이면 자주 듣는 내용이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위선자가 되고 싶지 않았으므로 가족들이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교회에 갈 때도 집에 혼자 남아 있었다.
어느 크리스마스이브에 가족들은 교회로 떠났고 곧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홀로 신문을 읽던 그는 쿵쿵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누군가 거실 창으로 눈뭉치를 던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새들이 눈을 피해 절박하게 창문으로 날아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 남자는 새들에게 따뜻한 피난처를 마련해 주려고 마구간 문을 활짝 열고 불을 켰다. 하지만 새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집으로 급히 들어가 빵 부스러기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불이 켜진 마구간까지 빵 부스러기를 흩뿌렸다. 그러고 나서 새를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역시 효과가 없었다.
자신이 새를 불러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새에게 겁만 주고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닫고 그는 생각했다. ‘내가 직접 새가 되어 저 사이에 섞여 저들의 언어로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된다면 겁먹을 필요 없다고 새들을 안심시키고 따뜻한 마구간으로 가는 길을 알려 줄 텐데. 저 새들이 내 말을 듣고 이해하려면 내가 새가 되는 수밖에는 없어.’ 바로 그 순간 교회의 종이 울렸다. 종소리가 크게 울리며 기쁜 성탄을 알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깨달았다.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것이다(요 1:14).
성육신의 신비는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신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내주면서 “하나의 선물에 온 하늘을 담아 우리에게 쏟아부으셨다. 구주의 생애와 죽음과 중보, 천사들의 활동, 성령의 탄원, 우리 위에서 또 만물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하늘 거민들의 끝없는 관심, 이 모두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 동원된 것이다”(정로, 21). 온 하늘을 한 선물에 담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우리의 온 생애를 바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원상/김수경 선교사 부부(방글라데시)
413개 교회의 영적 부흥과 모슬렘 선교를 위한 역량 강화를 위해
12월 26일
깨어 기다리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1944년 12월 26일, 오노다 히로는 일본군 제8사단인 암호명 ‘스기(삼나무)’ 사단에 배정되어 필리핀 루방섬으로 떠났다. 그들이 떠나기 전 부대 지휘관 다니구치 요시미 소좌는 이렇게 명령했다. “자결은 안 된다. 3년이 지나든 5년이 지나든 무슨 일이 생기든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 그때까지 한 사람의 병사라도 남아 있는 한 그들을 인솔하라. 야자수 열매라도 먹으면서 버티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자결은 허락하지 않는다.”
1945년 10월, 오노다와 동료 병사 세 명은 일본의 패전을 알리는 전단을 보았다. “8월 15일부로 종전되었으니 산에서 내려오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얼마 후에도 사진이 포함된 전단지가 공중에서 배포되었지만 그들은 무시했다. 1949년, 동료 한 명이 그들을 버리고 투항했다. 이후 1954년, 1972년 각각 나머지 동료가 총에 맞아 숨지며 오노다는 홀로 남았다. 1974년 2월, 일본의 한 탐험가가 그를 발견했다. 하지만 오노다는 상관에게 투항 명령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버텼다. 결국 옛 지휘관 다니구치 요시미가 섭외를 받아 루방으로 찾아왔다. 1974년 3월 9일, 다니구치는 오노다를 만나 임무를 종결시켰고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은 그렇게 29년 만에 지켜졌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오래전에 끝났지만 대쟁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머지않아 그리스도가 돌아와 충성스런 병사들을 다시 데려가실 것이다(엡 6:10~20).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나 지금껏 약속을 모두 지키신 분께서 이 약속 또한 지키실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하박국 2장 3절에서는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고 말한다. 재림의 지연을 불평하지 말고, 언제라도 오실 수 있는 그분을 늘 깨어 기다려야 한다(마 24:36~51). 결코 포기하지 말라. 그분의 말씀만큼이나 믿음직한 것도 없다. 그분은 반드시 오실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갑숙 선교사(말라위)
극빈 가정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한 보호 시설 건축이 잘 마무리되도록
12월 27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고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52)
1985년 12월 27일 금요일은 우리 가족에게 매우 슬픈 날이었다. 나흘간 혼수상태였던 나의 누이 엘레다가 숨을 거둬 장례식을 치른 것이다. 장례 예배에 앞서 우리는 엘레다가 살았던 집으로 갔다. 집에서는 3년 6개월 된 그의 아들 엔히크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었다. 엔히크는 곧 내게 다가와 물었다. “호날드 삼촌, 우리 엄마 죽은 거 알아?”
그 질문을 듣고 깜작 놀라 내가 말했다. “정말이야? 그럼 엄마는 지금 어디 있어?” “엄마는 교회에 있어!” 조카아이가 대답했다.
“앞으로 엄마는 어떻게 될까?” 내가 물었다.
아이는 기특하게도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교회 묘지에 묻히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어날 거야.”
당시 상황에 대해 누군가에게 들은 설명을 아이는 그대로 따라 말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라는 아이의 말에는 의심할 나위 없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수 세기 동안 간직해 온 이 희망은 재림교회의 두드러진 설교 주제이기도 하다. <놀라운 소식일세>, <주의 사랑 찬양하세>, <우리의 소망 불타오르네>와 같이 희망으로 가득한 찬미를 들으면 고통, 슬픔, 절망의 짙은 먹구름이 사라지는 것만 같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은 상상이나 단순한 ‘희망 고문’이 아니다. 이것은 확고한 예언적 근거, 분명한 그리스도 중심적 사상, 심오한 실존적 연관성에 바탕을 둔 신약의 핵심 주제이다. 우리에게 값진 유산으로 전해지는 이 소망의 가치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엔히크가 이 감동적인 말을 했을 때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더욱 가깝다. 그러니 다음과 같은 바울의 권면을 진지하게 마음에 새기자.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도 알고 있다시피 벌써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밤이 거의 다 지나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롬 13:11~12, 쉬운). 이 희망은 곧 실현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오정훈/강유영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선교지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안정되어 선교에 집중할 수 있도록
12월 28일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2005년 11월, 나는 영국 런던의 어느 기도주일 강사로 초빙되어 그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을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이 놀라운 교회당은 원래 사도 베드로를 기념해 세운 것이며 1065년 12월 28일에 봉헌됐다. 거기서 나는 조지 F. 헨델, 아이작 뉴턴 경, 찰스 다윈,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무덤을 보았다. 그런데 특별히 내가 보고 싶은 묘비가 있었다. 몇 년 전에 나는 ‘자신부터 시작하라’는 제목의 인쇄물을 구입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인용문이 소개되어 있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인용구 밑에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있는 11세기 영국 성공회 주교의 무덤에 적힌 글”이라고 쓰여 있었다. 웨스트민스터까지 간 김에 나는 그 묘비를 직접 보고 싶었고 여행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위층에 있는 도서관 사서에게 문의해 보라고 했다. 사서에게 똑같이 질문했더니 그는 “이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덧붙여 “이것은 유명한 책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 나온 글이지만 여기에는 그런 비문이 없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 인용구는 매우 의미 있는 말이지만 ‘반짝이는 것이 전부 황금은 아니다.’라는 교훈을 새삼 되새기게 했다. 성경에서 따온 것이라고 잘못 소개된 인용구도 많다. 진실을 가려내려면 자신이 직접 성경을 탐구해야만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동혁/김아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학교 내 영어 교육과 학생 신앙 교육을 담당할 외국인 선교사를 보내 주시도록
12월 29일
잔치가 끝났을 때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욘 4:8)
레이서, 운동선수, 배우, 예술가들의 명성과 과업은 오래도록 보존될지 모르나 그들은 여전히 인간이다. 승자는 단상에 올라 트로피를 받으면 곧 내려온다. 뛰어난 공연도 모두 끝이 있다. 박수가 그치고, 막이 내리고, 배우와 연주자들은 무대를 떠나고, 불은 꺼지고, 사람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독일의 카레이서 미하엘 슈마허는 1969년 1월 3일에 태어났다. 그는 포뮬러 1 경주에서 일곱 번이나 우승했고(1994, 1995, 2000, 2001, 2002, 2003, 2004) 가장 뛰어난 카레이서 중 한 사람으로 널리 인정받는다. 매우 위험한 경주에서 모두 살아남은 슈마허의 삶은 휴가를 보내던 어느 날 급격하게 변했다. 2013년 12월 29일, 그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14세 아들 믹과 프랑스령 알프스에 있는 메리벨에서 스키를 타다가 넘어져 바위에 머리가 부딪혔고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는데도 외상성 뇌손상을 입었다. 한동안 그는 인위적 혼수상태를 겪었고 안타깝게도 신체적·정신적으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엘렌 화잇은 “가장 혁혁한 승리와 가장 두려운 실패는 몇 분의 차이”(3증언, 497)에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포뮬러 1 시상대에 오른 슈마허와 스키 슬로프에서 건강이 심각하게 손상된 슈마허의 모습은 얼마나 대조적인가! 시상대와 군중의 박수갈채를 뒤로하고 그는 고립과 고독에 맞서야 했다.
사람은 축하받는 순간을 즐긴 다음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다. 선지자 엘리야와 요나 모두 성공 후 우울증을 겪었다(왕상 19:1~18; 욘 4장).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아무도 나를 칭찬하지 않을 때 혹은 내가 받았던 영예를 이제는 다른 사람이 받을 때 나는 어떤 기분이 드는가?’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멈추고 홀로 남았을 때는 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안정을 가져다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함영식/김지은 선교사 부부(오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오만 현지인들을 전도할 수 있는 문이 속히 열리도록
12월 30일
자기 백성에게 거절당하시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요 1:11, 새번역)
빈 대학의 아돌프 로렌츠(1854~1946) 박사는 당대 가장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 중 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비수술 요법 덕분에 그는 빈의 무혈 의사로 알려졌다. 1902년 10월, 그는 미국 정육업계의 거물인 J. 오그던 아머와 그의 아내 롤라에게 초대받아 시카고에서 그들의 딸을 수술했다. 딸의 이름은 엄마와 똑같은 롤라(롤리타)였는데 선천적인 장애가 있었다. 10월 13일에 실시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다른 여러 부모도 로렌츠에게 편지를 보내며 면담을 요청했지만 그는 그중 몇 사람에게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시카고 동부의 어느 부자 여인은 비용에 상관없이 자기 딸을 꼭 치료해 달라고 편지하기도 했다. 그 여인은 편지를 보낸 뒤 로렌츠 박사를 보내 달라고 자신과 친구들이 하나님께 매일 기도하는 중이라고 담임목사에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로렌츠 박사는 점심 식사 후 산책을 자주 했다. 1902년 12월 30일 오후에 산책 도중 비가 내리자 그는 근처의 어느 집으로 몸을 피했다. 그 집의 안주인에게 로렌츠는 모자를 벗고 외국 억양으로 부탁했다. “부인, 비가 그칠 때까지 현관 앞에 앉아 있어도 되겠습니까?” 그 여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처마 밑의 의자를 가리킨 다음 집으로 들어가 문과 창문을 닫았다. 잠시 뒤 밖에 자동차 한 대가 서더니 로렌츠를 태우고 갔지만 그 여인은 관심이 없었다.
이튿날 지역 신문에는 로렌츠 박사가 3개월간의 방문을 마치고 시카고를 떠나 뉴욕을 들른 뒤 유럽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이 그의 사진과 함께 소개됐다. 그 여인은 사진 속의 남자 얼굴이 비를 피할 공간을 자기에게 부탁했던 사람과 똑같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여인은 절망적으로 탄식했다. “아, 그분을 알아보았어야 했는데.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으로 그분을 나에게 보내 주셨건만 내가 그분을 문전박대하다니!”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다고 복음서는 말한다(요 1:11). 자신들이 기대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무시하고 거절했다. 세월이 지나도 양상은 똑같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찾아오셨지만 우리는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맞지 않는다며 그분과 그분의 가르침을 무시할 때가 많다.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늘 주님을 알아보고 늘 주님께 충성하게 하소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송을섭/이옥진 선교사 부부(일본)
선교적 도전을 경험하고 있는 일본에 또 다른 부흥의 물결이 일어나기를
12월 31일
그리스도 안에 남아 있으라
“마지막으로 말하노니…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1, 13)
12월 31일, 또다시 한 해의 마지막이 되었다. 지난 1년의 일들을 되돌아보며 하나님께 받은 복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새해의 영적 목표를 정해 보자.
1890년 엘렌 화잇은 영적인 열기를 잃은 어느 부부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그중 다음의 내용을 우리에게 보내는 글이라고 생각하며 읽어 보자.
“두 사람 모두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그대들이 원한다면 품성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지금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부르심과 선택을 확인하기에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유다를 위한 샘이 예루살렘에 개방되어 있습니다. 그대들은 거기서 씻고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면 예수께서 모든 죄를 씻어 주실 것입니다. 인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보조를 맞추어야 할 필요성을 그대들이 스스로 느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를 드높이고 자아를 부인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그대들은 사탄의 덫에서 지금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대들의 삶과 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십시오. 품성으로 예수님을 드러내십시오. 하나님의 사업을 감당하려면 두 사람 모두 이런 변화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주님의 성령 안에서 걷고 일한다면 그대들의 삶은 지금이라도 빛나는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지금 목적을 품고 일하고자 한다면 주님께서 그대들과 가족들에게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들은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를 위해 하늘에 마련된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편지 23, 1890.).
여러분은 어쩌면 영원한 가치가 없는 것들에 시간을 너무 허비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경험 없이 올해가 그냥 지나가게 하지 말기 바란다. 알다시피 놀라운 하늘과 빛나는 면류관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우리의 희망이 실현되는 복된 날이 이르러 하늘 가족과 함께하게 될 때까지 믿음을 굳게 지키라.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되게 지켜 주시기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석곤 선교사(몽골)
몽골 삼육 전문대 교직원들의 신앙 성장과 선교 사명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