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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5일 (일),19일(목),국립중앙박물관 촬영
도자기란 무엇인가?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를 합친 말이다. 도기와 자기를 나누는 기준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도기는 주로 1,200도C 아래의 온도에서 굽는 그릇을 의미하며,
자기는 유약을 입혀 1,200도C를 넘는 높은 온도에서 굽는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을 가리킨다.
18세기 백자 제작에 처음 성공한 서양에서는 도자기의 종류를 토기, 도기, 석기, 자기, 골회자기의 5단계로 나눈다.
그중 1,300도C 이상 고온에서 구운 것을 자기로 분류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청자는 석기에 해당하지만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자기에 속한다.
고려청자, 자기의 시대를 열다.
유약을 입혀 1,200도C가 넘는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는 자기는 수준 높은 제작 기술과 첨단 설비가 필요한 정교한 예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자기를 사용해 왔다. 특히 통일신라 때 당나라와 활발한 교류로 차 문화가 유행하면서
중국 청자와 백자 찻그릇 등을 수입해 썼다. 고려(918~1392)는 삼국시대 이래 쌓아 온 도기 생산 체계를 기반으로 중국의
자기 제작 기술을 적극 받아들여 10세기에 청자와 백자를 만들어냈다. 자기 제작의 성공은 고려인의 끊임없는 노력과 뛰어난
기술력이 빚어낸 결과로서 역사,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이었다.
현재까지 조사된 가장 이른 시기의 가마들은 경기도 시흥 방산동과 용인 서리 등 수도 개경(지금의 개성)에서 가까운
중서부지역에 주로 있었다. 처음에는 중국의 기술을 들여와 벽돌로 가마를 짓고 청자와 백자를 같이 만들다가 곧 청자
중심의 생산 체계로 바뀌었다. 11세기 이후 국가 문물과 제도가 갖춰짐에 따라 전라남도 강진과 해남 등 남서부 지역에서는
왕실과 중앙 관청 등에서 사용할 청자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도기 가마 기술이 합쳐진 진흙 가마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고려는 청자 제작 기술을 거듭 발전시켜 예술적 경지를 높였다. 12세기에 은은한 비취색을 띠는 비색청자를 완성했고
다양한 동식물 모양의 상형청자를 제작했다. 바탕흙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 흙을 메워 장식하는 상감청자는 13세기에
크게 꽃을 피웠으며 전라북도 부안 유천리 가마에서 주로 만들어졌다.
13세기 후반 이래 원나라와 문화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고려청자 제작에도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형태의 그릇이 등장했고,그릇에 상감 무늬가 가득 채워지며 복잡하고 화려해졌다.
14세기 후반에는 밖으로는 중국에서 원,명 교체 등의 복잡한 변화가 있었고, 안으로는 고려의 정치, 사회적 혼란이 더욱 커졌다.
왕실과 조정의 주도 아래 고급 청자를 생산했던 전라남도 강진과 전라북도 부안의 가마들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청자의 품질이 낮아지는 변화가 나타났다. 고려 말의 이와 같은 청자 제작 환경은 조선 초 분청사기로 이어졌다.
청자 제작의 시작.
통일신라 9세기 무렵 차 문화의 유행과 함께 중국 자기가 들어오면서 자기 소비가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
자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수요가 확대되면서 자기를 직접 제작하려는 의지도 강해졌다.
고려는 삼국시대부터 쌓아온 도기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중국의 자기 제작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10세기에 청자와 백자
생산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조사된 가장 이른 시기의 가마들은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가까운 경기도 시흥 방산동, 용인 서리 등
한반도 중서부 지역에 주로 있다. 이 시기에는 중국 월주요(越州窯)의 기술을 받아들여 벽돌로 지은 가마를 만들었다.
11세기 초반에는 벽돌 가마가 사라지며 전라남도 강진 용운리와 삼흥리 등에서 고려의 자기 제작 환경에 적합한 진흙 가마로
새롭게 발전했고, 백자보다 청자를 위주로 자기 제작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는 차도구를 비롯하여 왕실과 국가 의례용 제기를 제작했다.
청자 조각 갑발 / 고려 10세기,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 출토.
방산동 가마터는 초기 자기 제작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발굴조사 결과 도기에서 자기 제작으로
기술 전환이 곧바로 이루어진 것이 밝혀졌다. 중국 월주요 자기와 유사한 그릇이 확인되었다. 고급 자기를
구울 때 사용하는 갑발에 절강성(浙江省) 영파(寧波) 인근인 '봉화(奉化)'등 중국 지명이 새겨져 있어 중국
장인과 직접적인 기술 교류의 흔적으로 여겨진다.
청자병 / 고려 12세기.
두 귀 달린 금속제 병을 본떠 청자로 만들었다. 뛰어난 조형성과 비색이 어우러져 단아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의례용 그릇으로 추정되지만 꽃병이나 감상을 위한 장식용 병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비색청자의 완성
고려청자의 비색은 11세기 후반부터 완성도가 높아져서 12세기에 가장 세련된 색을 띠었다.
반투명한 유약과 차분한 광택이 특징인 비색은
유리질로 변한 얇은 유약층에 가득 들어차 있는 미세한 기포들 속으로 빛이 퍼지면서 나타난다.
비색청자는 전라남도 강진 사당리 일대에서 주로 만들어졌다.
고려인은 고려청자의 은은한 녹색을 스스로"비색"이라고 부르며 중국청자의 비색과 구분하였다.
1123년(인종1) 개경을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에 기록한
'도기의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이라고 한다'라는 표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내용은 우수한 고려 비색청자에 대한 고려인의 자부심으로 볼 수 있다.
청자 네 귀 달린 항아리 / 고려 11-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고려청자의 시작과 발전.
우리나라는 고려 1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청자와 백자를 제작했다. 전통적인 경질 도기의 제작 기반 위에 중국의 기술을
받아들여 자기를 만들 수 있었다. 수도 개경(지금의 개성)을 중심으로 한반도 중서부 지역에 주로 분포하던 초기 가마는
중국 오대(五代907-960) 월주요 가마와 비슷한 형태로 벽돌을 쌓아 지은 대형 가마였다. 처음에는 중국 자기의 양식을
따른 청자와 백자를 함께 만들었지만 곧 청자를 중심으로 한 생산 체계로 바뀌었다.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에 국가 운영 체계의 기틀이 마련되면서 전라남도 강진과 해남, 전라북도 고창 등 남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자기 가마가 운영되었다. 당시 고려 왕실과 중앙 관청은 인력이 많이 필요한 수공업 물품이나
특정 지역에서만 나오는 광물, 수산물 등을 '소所'라는 지역에서 세금으로 받았다.
그중 자기소磁器所는 강진에 두고 왕실과 중앙 관청에서 쓸 최고급 청자를 만들었다.
11세기 무렵 벽돌 가마가 점차 사라지고 전통적인 도기 가마 기술을 결합하여 고려의 자기 제작 환경에 맞는
진흙 가마를 새롭게 발전시켰다. 또한 좋은 원료를 확보하는 방법과 가마 온도를 조절하는 기술 등이 향상되면서
고려청자의 빛깔이 급격히 좋아졌다.
12세기 전반에는 은은한 비취색을 머금은 비색청자翡色靑磁를 완성했고 세련된 형태로 발전시켰다.
청자 양각 물가풍경무늬 정병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보물.
정병은 깨끗한 물을 담는 물병이라는 뜻으로, 부처님 앞에 정수를 바치는데 쓰이거나 여러 불교 의식에 사용되었다.
서긍의 <고려도경,1123>에는 민가에서도 정병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정병의 한쪽 면에는 갈대 밑에서 노니는 기러기 한 쌍이, 다른 면에는 수양버들 아래 쉬고 있는 원앙 한 쌍이 새겨져 있다.
청자 음각 연꽃 넝쿨무늬 매병 / 고려 12세기. 국보.
고려는 불교국가로서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을 귀하게 여겼다. <고려도경,1123>에는 고려인들이 연꽃을 비롯하여
연근, 연밥까지도 신성하게 여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 매병의 연꽃은 비췻빛 비색과 조화를 이루며 12세기 고려인이 추구한 미감을 보여 준다.
인종 장릉에서 나온 비색청자와 공예품.
고려 제17대 임금 인종(재위 1122 - 1146)의 무덤인 장릉(長陵)에서 나왔다고 전하는 국보 <청자 참외모양 병>은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최고의 예술품이다. 중국 도자의 영향에서 벗어나 고려 특유의 세련된 미감으로 새롭게 창조되었다.
1123(인종 1) 개경을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극찬한 고려 비색청자는 바로 이 <청자 참외모양 병> 같은 예술품을
가리키는 것을로 여겨진다. 인종이 묻힌 장릉의 위치는 개성 일대로 추정될 뿐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황통皇統년(1146)'의 연대가 있는 인종 시책諡冊을 포함한
각종 청자와 공예품은 12세기 전반 고려 왕실의 수준 높은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인종 장릉에서 나온 청자 / 고려 12세기, 傳 인종장릉 출토.
단정한 기형과 비색 유약, 잔금 없는 깔끔한 표면이 특징이다. 청자 받침대는 전라남도 영암 월출산 제사 유적에서
향로, 향완, 받침 등과 함께 나온 사례가 있다. 모서리에 단이 있어 포갤 수 있다는 점,
윗면 중앙이 오목하여 음식물 등을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포개어 쌓는 의례용기 추정된다.
청동 도장 / 고려 12세기, 傳 인종 장릉 출토.
불교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상징적 동물인 사자 두 마리가 앞발로 보배 구슬을 받치고 서 있다.
도장 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구불구불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
국보로 지정된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의 뚜껑에도 같은 형태의 보배구슬이 장식되었다.
청자 참외모양 병 / 고려 12세기, 傳 인종 장릉 출토. 국보.
고려 왕실 청자의 품격을 보여 주는 비색청자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용도는 꽃을 꽂는 꽃병으로 추정된다.
중국 산서성山西省 평양현平陽縣의 금대金代(1115-1234) 무렵 벽면에는
참외모양 병에 연꽃을 풍성하게 꽂아 놓은 장식이 조각되어 있다.
은제 숟가락과 젓가락 / 고려 12세기, 傳인종 장릉 출토.
숟가락은 구리가 약간 포함된 은으로 만들어졌다. 자루의 단면은 납작하고 길게 휘어진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자루 끝에는 장식이 없다. 젓가락 역시 은으로 만들어졌다. 단면이 둥글고 끝 마디에 두 개의 홈이 있다.
함 石製 函 , 金屬製 函 / 고려 12세기, 傳 인종 장릉 출토
외함은 모래 성분으로 된 이암泥巖이며, 이 석재는 경상북도 포항 일대에서 많이 난다. 외함의 표면에서
분장토와 진사辰砂 등이 확인되어, 원래는 장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시대에 뼈 항아리를 넣어둔 석제 함과 비교할 수 있다. 고려시대 왕실 묘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고려 왕실과 의례용 청자.
고려 왕조는 성종(재위 981-997) 때부터 본격적으로 예제禮制를 정비하면서 의례용 자기를 제작했다.
고려는 <상정고금례> 등 예제에 관한 책을 간행하고 제기도감, 도제고 등의 관청을 설치하여 왕실과 국가 의례용
기물을 체계적으로 만들고 관리했다. 의례용 그릇에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철, 용, 이룡 등의 무늬를 장식했다.
고려 왕실은 상상 속 동물인 도철무늬를 장식한 청자 향로에 향을 피웠다.
용은 태조(재위 918- 943)가 후대의 왕들에게 전하는 당부를 담은
<훈요십조>에 국가 주요 행사인 팔관회가 열릴 때 꼭 기려야 할 대상으로 언급되었다.
뿔 없는 용을 뜻하는 이룡은 상서로운 존재로서 왕실의 존엄함을 상징했다.
청자 압출양각 도철무늬 향로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고려는 각종 의례제도를 정립하면서 중국 송나라 제도를 참고하였다.
이때 들여왔던 <선화박고도> 등 의례와 관련된 책에 수록된 중국 고대 청동기를 고려청자로도 만들었다.
도철은 고대 신화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로, 의례와 관련된 각종 공예품에 무늬로 등장한다.
청자 압출양각 연꽃모양 향로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동물 모양의 뚜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향로의 몸체만 남았다. 중국 하남성 청량사 여요에서 발견된
청자 향로와 조형적으로 매우 비슷하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 1123>에서 언급했던 여요 자기와 고려청자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청자 음각 용무늬 매병 / 고려 12세기 , 전라남도 강진 사당리 가마터 출토.
용무늬를 새긴 매병의 일부이다. 당시 용은 최고 권력자의 위엄을 상징했기 때문에 의복이나 기물에 용무늬 장식을
금지할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했다. 용무늬 청자는 완전한 형태로 전하는 예가 드물다,
네 마리의 용이 장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매병은 최고 수준의 용무늬와 비색을 보여준다.
청자 양각 용무늬 참외모양 매병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조각칼을 옆으로 뉘여서 새긴 용무늬와 모란무늬의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고려시대에 용무늬 매병은 왕실의 의례나 행사 때 사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최고급 고려청자를 제작했던 전라남도 강진 사당리 가마터에서 이와 같은 매병 조각이 확인되었다.
청자 압출양각 이룡무늬 대접 / 고려 12세기, 1981년 이홍근 기증.
이룡무늬는 대접, 완, 잔, 접시, 잔 받침과 국자 등 일부 청자에만 장식되어 있어서 의례 등 특정한 목적과 용도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늬는 중국 북송 휘종(재위 1100-1125)의 각종 용품에서 확인되므로
고려에서도 왕실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청자 음각 이룡무늬 꽃모양 접시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청자 음각 이룡무늬 잔 받침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도마뱀처럼 길쭉한 모습에 뿔이 없는 용을 이룡이라고 하는데, 주로 고급 청자에 등장한다.
이룡무늬가 장식된 청자는 왕실과 국가 의례에서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청자 사자모양 향로 / 고려 12세기 국보
사자의 입에서 향이 뿜어져 나오는 구조이다. 서긍의 <고려도경, 1123>에 '산예출향狻猊出香 역시 비색이다.
위에는 사자가 웅크리고 있고 아래에는 연꽃이 떠받치고 있다'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청자이다.
훌륭한 조형미와 아름다운 비색이 어우러진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하늘의 솜씨로 빚은 상형청자
비색청자는 아름다운 비취색을 띤 절정기 고려청자를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뛰어난 조형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상형청자는 비색청자의 으뜸이다. 상형청자란 각종 식물, 동물, 인물 등의 모양을 본떠 만든 청자를 말한다.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은 <고려도경>에서 <청자 사자모양 향로>를 가리켜
"산예출향 역시 비색이다. 위에는 사자가 웅크리고 있고 아래에는 연꽃이 떠받치고 있다. 가장 정교하고 빼어나다"
라고 하여 고려 상형청자의 조형미와 아름다운 비색을 극찬했다. 고려 상형청자의 소재는 다양하다.
식물은 죽순과 석류, 조롱박, 참외 등을 즐겨 표현했다.
동물은 용과 귀룡, 어룡과 같은 상상의 동물을 비롯하여 사자, 원앙과 오리, 원숭이 형태 등으로 만들어졌다.
상형청자는 고려의 우수한 청자 제작 기술과 조형성이 결합하여 완성된 최고의 예술품이다.
청자 사람모양 주자 / 고려 12-13세기 대구광역시 달성군 내동 출토, 국보
인물의 형상을 정교하게 본떠 만들었다. 의복의 생김새와 봉황이 장식된 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받쳐 든
복숭아로 보아 도교의 도사道士나 전설 속 서왕모西王母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왕모는 곤륜산 정상에 있는 궁에 살면서 불로불사不老不死와 신선 세계를 주관한다고 전해진다.
비색청자의 비밀
고려청자의 비색을 내기 위해서는 좋은 원료를 확보하고 높은 온도로 청자를 구울 수 있는 기술력이 필요하다.
가마에서 불 때는 시간, 온도를 올리는 속도, 고온을 유지하는 시간, 불을 빼고 식히는 속도 조절 능력 등
축척된 기술과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비색청자는 고려인이 구현했던 수준 높은 청자 제작 기술과 독창적인 미감의 결정체이다.
고려 비색청자의 독창적인 아름다움은 중국 청자와 비교한 유약 성분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고려 비색청자 유약에는 산화망간(MnO)이, 중국 비색청자에는 산화 티타늄(TiO2)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흙과 유약의 성분 분석 등으로 고려청자의 기술이 밝혀지고 있지만, 고려청자의 비색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청자 귀룡모양 주자 / 고려 12세기, 보물
고려에서는 12세기부터 13세기까지 뛰어난 상형청자를 많이 만들었다. 이 주자는 연꽃 위에 거북이 앉아 있는
형태이다. 고려시대 비석의 받침돌에서도 거북의 얼굴과 앞가슴 조각을 볼 수 있다.
청자 귀룡모양 주자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국보
등에 새겨진 육각형 무늬 안에 '왕王'자를 하나하나 새겨 넣었고, 발가락에도 주름을 세밀하게 장식했다.
비취색 유약도 두껍게 입혔다. 생동감 넘치는 전성기 상형청자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청자 어룡모양 주자 / 고려 12세기, 국보
용머리로 된 주자의 주구注口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터질 듯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둥근 몸체에 조각된 비늘은
안쪽에 유약이 몰리도록 각도를 조절하여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상상 속 동물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조형미가 돋보인다.
청자 투각 칠보 향로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국보
음각, 양각, 투각, 철화, 상감, 첩화, 상형 등 청자의 모든 장식 기법을 구사하여 완성했다.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이 향로의 몸체로 만들어져서 불교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향로의 백미는 향로를 등에 지고 있는 토끼 세 마리이다. 크기는 작지만 토끼의 특징을 담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향로를 지고 있는 토끼.
청자 용모양 향로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하늘로 올라가려는 역동적인 용을 장식한 향로이다. 몸체에서 향을 피우면 용의 입에서
향이 나오도록 몸통을 파내어 만들었다. 용의 형태가 중국 하남성 청량사 여요에서 확인된
자기 조각과 매우 유사하여 12세기 고려와 중국 송나라의 문화교류를 엿볼 수 있다
청자 새모양 주자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청자 원앙모양 향로 뚜껑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향로의 뚜껑이다. 향 연기가 뚜껑의 구멍을 통해 원앙의 입에서 빠져 나가도록 만들었다.
원앙 깃털 세부를 예리한 음각과 반양각 기법으로 묘사했다. 눈은 산화철 안료로 검게 찍어 생동감을 더하였다.
청자 석류모양 주자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석류 세 개를 모아 놓고 그 위에 한 개를 더 쌓아올린 형태의 주자이다.
손잡이는 잎이 달린 석류 가지를 구부린 모양으로 만들었고, 물이 나오는 주구는 석류 꽃처럼 장식했다.
잘 익은 석류가 벌어져 씨알갱이가 드러난 모습을 백토로 점을 찍어 표현했다.
주자의 기능에 맞추어 자연물을 재구성한 조형감이 뛰어나다.
청자 죽순모양 주자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대나무의 새싹인 죽순모양으로 만든 상형청자이다. 조형과 장식, 유색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몸체의 알맞는 비례로 죽순의 모습이 더욱 우아해 보인다.
대나무 모양으로 표현된 손잡이와 주구는 사실적이면서도 창의적이다.
청자 음각 풀꽃무늬 조롱박모양 주자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조롱박을 본떠 만든 뒤 몸통에 세로로 여섯 줄의 골을 넣어 참외의 특징을 함께 표현했다.
조롱박 형태의 유려한 곡선에 주구注口가 탄력적인 곡선을 그리며 길게 뻗어있어 전체적으로 시원하면서
아름다운 곡선미를 보인다. 각종 꽃무늬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청자 문방구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출토
시와 문장 짓기를 즐겼던 고려의 문인들은 종이와 붓, 먹과 벼루 등 다양한 문방구를 곁에 두고 아꼈다.
붓꽂이, 먹물담는 항아리, 벼루, 도장 등 청자 문방구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청자 문방구 중 벼루에 물을 공급하는 연적이 가장 많다.
청자 용머리 장식 붓꽂이 / 고려 12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보물
붓을 꽂아 놓는 붓꽃이 이다. 용머리 장식과 연꽃 넝쿨무늬가 인상적인 작품으로
상형과 투각 기법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밀도 있는 장식을 완성했다.
푸른빛 유색이 마치 옥을 깍아 만든 듯하다. 고려 왕실에서 사용한 문방구로 여겨진다.
백자 상감 모란, 버들, 갈대무늬 매병 / 고려 12-13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보물
고려백자는 고려청자와 형태, 무늬, 장식 기법이 같으며 같은 가마에서 함께 구워졌다.
마름모 모양으로 백자 매병의 바탕면을 파낸 뒤 이 부분을 청자의 바탕흙으로 메우고
모란, 갈대, 버들 등을 상감했다.
고려백자와 청자가 섞여 있는 보기 드문 예로, 창의성이 돋보인다.
고려자기의 종류와 장식기법.
고려자기는 청자가 중심이었으나, 그 밖에도 백자와 흑유자, 철유자, 연리문 자기 등 여러 종류의 자기가 있었다.
특히 백자는 바탕흙 성분만 다르고 기형, 무늬, 제작 기법 등은 청자와 같았다.
전라북도 부안 유천리 가마를 중심으로 뛰어난 백자가 생산되었다.
청자는 다양한 기법으로 장식되었다. 그릇 표면에 무늬를 파내는 음각 기법,
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양각 기법, 틀로 무늬를 찍어 내는 압출양각 기법이 있다.
또 무늬 바깥 부분을 도려내어 구멍을 뚫는 투각 기법, 붓을 써서 흰 흙으로 무늬를 그리는 퇴화 기법,
상감청자 표면에 금으로 무늬를 장식하는 금채 기법이 있다.
산화철 안료를 사용해 바탕흙의 표면에 붓으로 무늬를 그린 철화 기법과
전체를 칠해서 검게 장식한 철채 기법도 있다.
구리 안료를 써서 무늬를 그리거나 그릇 전면을 칠하여 장식한 동화와 동채 기법은 적갈색을 낸다.
고려인은 이처럼 다양한 자기 종류와 장식 기법으로 독창적인 미감을 구현해 냈다.
청자 상감 소나무 인물무늬 매병 / 고려 12-13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과 학, 소나무로 꾸민 장식은 고려의 문학작품에서 자연을 벗 삼아 신선 세계에
들기를 갈망하는 내용과 닮은 부분이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과 곡조에 맞춰 춤추는 학은
중국 당나라 은제 향합이나 원나라 회화에도 등장할 만큼 인기 있는 소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청자 상감모란무늬 항아리 / 고려 12-13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국보
선상감으로 외곽선을 만들고 그 안에 모란꽃잎을 상감했다. 고려시대 왕과 신하들은 모란을 대상으로
시 짓기를 즐겨했다. 이규보도 궁궐 안 산호정에 모란이 피면 시를 읊는 사람이 많다고 기록을 남겼다.
모란을 애호했던 분위기가 담겨 있다.
청자 철채. 퇴화 풀잎무늬 매병 / 고려 12-13세기. 보물
매병은 청자뿐만 아니라 백자, 도기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다채로운 장식 기법이 쓰인 기종이다.
표면 전체에 산화철 안료를 발라서 검은색을 띠는 철채매병은 전하는 예가 드물다.
검은 바탕과 하얀색 무늬가 대비되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철유 상감 항아리 / 고려 12-13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철유자鐵釉磁는 산화철 성분의 유약을 입혀서 구워 낸 자기로, 전하는 작품이 많지 랂다.
표면에 무늬를 새긴 뒤 흰 흙으로 메워 넣고 그 부분을 제외한 그릇 전체에 철유를 발라 구웠다.
적갈색의 유색과 흰 흙이 선명한 대도를 이루어 장식 효과가 크다.
청자 상감, 동화, 포도, 동자무늬 주자와 받침 / 고려 13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동화 기법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구리 안료로 채색하는 장식 기법이다.
그릇 전체를 구리 안료로 칠하는 동채 기법과는 차이가 있다.
일부 포도송이에 점을 찍듯이 구리 안료를 칠하여 농익은 포도를 표현했다.
청자 상감 매화, 대나무, 학무늬 매병 / 고려 12-13세기, 경상남도 하동군 출토. 보물
추위를 견뎌내고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매화와 사계절 내내 푸른 대나무는
군자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무늬가 인상적인 이 매병은 고려인이 동경했던 이상 세계를 펼쳐낸 듯하다.
청자 상감 매화, 대나무, 학무늬 매병 / 고려 12-13세기, 보물
서정적이고 우아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여유로운 공간 배치와 붓으로 그린 듯 섬세한 상감무늬가 뛰어나다.
전라북도 부안 유천리 가마에서 주로 만들어졌다.
상감청자에 보이는 고려인의 자연관
전라북도 부안 유천리 가마에서는 전라남도 강진 사당리 가마와 함께 고려 왕실과 중앙 관청용 고급 자기를 만들었다.
유천리 가마에서 만든 상감청자에는 구름 사이를 날아다니는 학, 물가풍경을 배경으로 새가 노니는 장면,
파초잎에서 쉬는 두꺼비 등을 표현하여 서정적인 분위기가 돋보인다.
자연을 사랑하고 동경했던 고려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청자 상감 국화. 모란무늬 병 / 고려 12-13세기.
청자 상감 보자기무늬 매병 / 고려 12-13세기. 보물
매병의 어깨 윗면에 화려한 조각보 장식이 상감되었다. 이 무늬는 뚜껑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파손을 막고
장식이 돋보이도록 부드러운 비단 조각보를 올려 놓았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위 사진인 청자 상감 보자기무늬 매병보물의 어깨 부분의 사진. 비단조각보를 올려 놓았던 모습을 표현한 무늬를 넣었다.
청자 철화 버드나무무늬 병 / 고려 12세기, 국보
넓은 여백에 단순하게 표현한 버드나무 무늬가 운치 있다. 버드나무 줄기의 굵고 얆은 마디와
몇 가닥의 늘어진 잎을 간략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묘사한 수준 높은 솜씨를 보여준다.
상감청자의 아름다움
상감청자는 그릇 표면에 무늬를 새기고 그 부분을 흰 흙이나 붉은 흙으로 메워서 청자 유약을 입혀 구우면
흰 흙을 넣은 부분은 백색 무늬로, 붉은 흙을 넣은 부분은 검은색 무늬로 장식되는 청자이다.
고려 상감청자는 경기도 시흥 방산동과 용인 서리, 전라남도 해남 진산리 가마터 등에서 10-11세기 무렵부터
초보적인 기법이 확인되다가 13세기에 꽃을 피웠다.
본 바탕에 다른 재료를 넣어 무늬를 장식하는 상감청자의 공예 기법은 같은 시대 나전칠기나 입사공예와 기술적으로
통한다.비색청자가 깊고 푸른색의 아름다움이 특징이라면, 상감청자는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다채로운
무늬가 매력이다.
버드나무가 있는 서정적인 물가풍경무늬, 구름과 학무늬처럼 상감청자에는 고려인이 꿈꾸었던 이상 세계와
자연관이 투영되어 있다. 서로 다른 재료를 융합하는 고도의 기술과 섬세한 미적 감성까지 갖춘
고려 상감청자는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공예사에서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매병 / 고려 12-13세기 보물
유려한 곡선미와 비색 하늘을 배경으로 무늬들이 베풀어졌다.
고려 청자에 자주 등장하는 구름과 학무늬는 중국청자에서는 보기 힘든 고려청자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학은 높은 기상과 장수를 상징한다.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항아리 / 고려 12-13세기
청자 상감 모란 넝쿨무늬 조롱박모양 주자 / 고려 12-13세기 국보
상감 기법의 종류에는 가는 선을 상감하는 선상감과 넓은 면적을 상감하는 면상감, 무늬의 바탕면만 상감하는
역상감이 있다. 이 주자는 세 종류의 기법을 모두 활용하여 상감청자의 화려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유려한 곡선의 몸체와 역상감된 모란 넝쿨무늬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화려하다.
청자 상감 국화 넝쿨무늬 완(찻그릇) / 고려 12-13세기, 傳 문공유(?~1159) 묘 출토 국보
1159년에 사망한 문신 문공유의 무덤에서 묘지와 함께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그동안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상감청자로 알려져 왔다. 최근에는 명종의 지릉이나
원덕태후(?~1239)의 곤릉에서 나온 청자와 비교하여 13세기에 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청자 상감 국화, 모란무늬 참외모양 병 / 고려 12-13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국보
고려 왕실과 귀족은 정원을 만들어 꽃과 나무를 키우고 감상하는 취미를 즐겼다.
왕실과 종교 의례에서도 꽃을 바쳐 정성을 표현했다.
모란과 국화가 상감된 참외모양 병은 꽃을 꽂았던 꽃병으로 여겨 진다.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주자 / 고려 13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베개 / 고려 13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양쪽 끝에 구멍이 나 있는 청자 베개는 중국 당대 소설 <침중기>의
"자기로 된 베개의 양 끝에 뚫려 있는 구멍은 꿈을 꾸기 위해 들어가는 통로"라는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려 문인 이규보(1168-1241)의 시에서도 청자 베개가 이상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매개체로 묘사되었다.
상감청자와 금속기 / 고려, 경기도 개성 출토.
고려청자와 금속기의 영향 관계를 보여주는 예이다.
은잔에 음각한 꽃이 청자 잔에서는각각 음각과 상감 기법으로 표현되었다.
금속기와 청자에 음각된 꽃은 섬세하면서도 은은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상감청자의 꽃은 흑백이 대비되면서 화려한 장식 효과가 있다.
상감청자와 장식 기법의 공유 / 고려, 경기도 개성 출토
금속기 표면에 은선銀線을 끼워 넣어 무늬를 장식하는 것을 '입사入絲'기법이라고 한다.
상감청자와 나전칠기, 입사공예는 재질만 다를 뿐 기법 자체는 비슷하다. 물가풍경무늬나 국화무늬처럼
같은 무늬가 각각 다른 재질의 공예품에 등장하기도 한다.
고려 관청의 장인 체계에는 공예품 도안을 담당하는 '화업畵業'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화업이 공예품마다 기법과 무늬를 공유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좌) 청자 철채, 퇴화 구름, 학무늬 매병 / 고려 12-13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철채鐵彩 청자는 그릇 전체에 산화철 안료를 바르고 청자 유약을 입힌 것으로, 검은빛이 나서
흑유자黑釉磁럼 보인다. 그러나 청자의 바탕흙과 유약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릇은 검은색이어도
청자로 분류한다. 어깨 부분에 학과 구름을 퇴화 기법으로 그려 넣었다.
바탕과 무늬의 흑백 대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청자 상감, 동화 모란무늬 매병 / 고려 12-13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보물
매듭이 달린 보자기를 덮은 것처럼 어깨를 장식했다. 모란무늬의 꽃잎에 구리 안료를 덧칠하여
마치 꽃잎이 붉게 피어나는 듯 화려한 느낌을 더했다. 매병의 부드러운 형태와 장식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화려하면서도 품격 있는 고려청자가 완성되었다.
청자 상감, 금채 원숭이무늬 항아리 / 고려 13세가 후반 - 14세기, 경기도 개성 고려 궁궐 터 출토.
금채 기법은 완성된 도자기의 유약 표면에 붓으로 금을 그리고 약 700 -800도C로 다시 굽는 장식 기법이다.
<고려사>에는 1297년 원나라에 금으로 채색한 옹기를 보냈다는 기록과 사신 조인규(1237~1308)가
원나라 세조(재위 1260~1294)에게 '화금자기畵金磁器'를 선물했다는 내용이 있다.
청자 퇴화 주자와 병 / 고려 12-13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보물
퇴화 기법은 흰 흙과 붉은 흙을 물에 개어 붓으로 무늬를 표현한 장식 기법이다.
붓질 흔적이 남아있어서 회화성이 돋보인다. 중심 무늬를 대담하게 그려서 흑백의 대비를
극대화하거나 둥근 점을 찍어서 보조 장식만 하는 경우도 있다.
고려청자로 꽃피운 도자 문화
12세기 중반에는 청자 제작 기술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다양한 도자 문화를 일구었다.
<고려사>에는 1157년 의종(재위 1146~1170)이 궁궐 정원에 양이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청자 기와를 올렸다고 하여
당시 화려한 도자 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바탕흙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 흙을 메워 넣는 상감 기법은 13세기에 크게 꽃을 피웠다.
1170년(의종 24)부터 시작된 무신집권기에는 전라북도 부안과 전라남도 강진을 비롯하여 해남 등에서
도자 생산이 이루어지면서 청자의 화려함과 정교함이 절정에 달했다.
1231년(고종 18) 몽골의 침략을 받은 고려 조정은 1232년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상감청자와 같은 고급 청자를 사용한 정황이 강화도의 여러 유적에서 확인된다.
이 시기에는 청자뿐만 아니라 백자와 검은색을 띠는 흑유자, 적갈색을 띠는 철유자, 연리문자기練理文磁器 등
다양한 종류의 자기를 제작했다. 고려백자는 전라북도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주로 확인된다.
장식 기법으로는 산화철 안료를 사용한 철화와 철채를 비롯하여
구리 안료로 장식한 동화와 동채, 유약 위에 금을 칠한 금채 등 여러 방법을 활용했다.
상감청자의 아름다움
상감청자는 그릇 표면에 무늬를 새기고 그 부분을 흰 흙이나 붉은 흙으로 메워서 청자 유약을 입혀 구우면
흰 흙을 넣은 부분은 백색 무늬로, 붉은 흙을 넣은 부분은 검은색 무늬로 장식되는 청자이다. 고려 상감청자는
경기도 시흥 방산동과 용인 서리, 전라남도 해남 진산리 가마터 등에서 10-11세기 무렵부터 초보적인 기법이
확인되다가 13세기에 꽃을 피웠다.
본바탕에 다른 재료를 넣어 무늬를 장식하는 상감청자의 공예 기법은 같은 시대 나전칠기나 입사공예와 기술적으로 통한다.
비색청자가 깊고 푸른색의 아름다움이 특징이라면,
상감청자는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다채로운 무늬가 매력이다.
버드나무가 있는 서정적인 물가풍경무늬, 구름과 학무늬처럼 상감청자에는 고려인이 꿈꾸었던 이상 세계와
자연관이 투영되어 있다. 서로 다른 재료를 융합하는 고도의 기술과 섬세한 미적 감성까지 갖춘 고려 상감청자는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공예사에서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고려청자의 변모
13세기 후반 고려와 원나라의 무역 및 문화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고려청자 제작에도 변화가 생겼다.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앞뒤가 납작한 항아리, 굽이 높은 잔, 입구가 밖으로 벌어진 대접, 뚜껑 있는 발과 받침 등
새로운 형태의 그릇이 등장했고, 그릇 전체에 상감 무늬가 가득 채워지며 복잡하고 화려해졌다.
14세기에는 나라의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청자에 '기사己巳(1329)', '경오庚午(1330)', '임신壬申(1332),' 등
제작연대를 뜻하는 간지干支를 새겨서 관리하고자 했다. 또 술을 관리하는 '양온良醞',
왕실 물품을 담당하는 '준비색准備色' 등 해당 관청의 이름을 그릇에 새겼다.
14세기 후반 조준(1346~1405)의 상소문에는 전국에서 세금으로 바친 자기들이 운반 도중 유출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전국 각지의 가마에서 왕실과 조정에 바치는 자기를 생산하던 정황을 보여준다.
고급 청자 생산의 중심지였던 전라남도 강진과 전라북도 부안의 가마는 고려 사회 질서가 혼란한 와중에 전국으로
흩어졌고 자기의 품질은 더욱 떨어졌다. 이와 같은 고려 말 자기 제작 환경은 조선 초 분청사기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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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위솔님 덕분에 도자기에 대한 역사 공부 잘하고 갑니다 좋은 공부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