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라 10기] 6차시 과제_230411
답을 찾는 중
무제
1.
얼마 전 오픈한 사내 카페는 장애인 바리스타와 비장애인 바리스타가 함께 근무한다. 아메리카노 800원, 카페라떼 1,3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도 텀블러를 가지고 가면 100원을 할인해준다. 일회용 컵을 쓸 때 마다 쌓이는 죄책감에도 외출시 무거운 가방으로 어깨 결림이 더 즉각적이었기에 가방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텀블러를 빼곤 했다. 출퇴근시 가방에 챙길 필요 없이 사무실에서 텀블러를 챙겨 같은 층의 카페로 몇 걸음만 가면 되니 여러 모로 부담이 적다.
출근한지 30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정신이 덜 깬 상태에서 커피를 사러 갔던 어느 날 아침. 텀블러 할인적용 됐다고 직원이 말했지만 계산대 모니터에는 어찌된 일인지 ‘텀블러’란 품명에도 금액이 -100원이 아닌 0원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결제가 이미 된 것도 같고, 무표정하고 무뚝뚝한 내가 할인 적용이 안됐다고 말하면 따지는 투로 전달되어 직원이 당황할 것 같고, 어차피 100원이니까 아무 말 하지 않고 돌아서는데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차별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비장애인 직원이었대도 내가 아무 말을 안했을까? 상대를 배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시한 것은 아닐까? 마음이 복잡해졌다.
다른 카페에서도 2~300원 텀블러 할인 적용이 안됐지만 넘겼던 경우가 있지 않았나? 과거의 내 행적을 빠르게 뒤지기 시작했다.
‘있었던 것 같은데...난 차별은 아니고 그냥 오늘 내가 기분도 별로라서 말하기가 귀찮았던 거고, 100원 갖고 연연해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서 그랬던 것 아닐까?’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확한 걸 좋아하는 내가 넘어간 것은 배려로 포장한 무시 아닐까?’
‘그 직원이 좀 당황스럽더라도 이번 기회를 통해 제대로 일을 처리하는 연습을 할 수 있게 알려줬어야 하는 것 아닐까?’
평등하게 대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은근한 무시와 차별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연 나는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2.
저녁이 되면 잠실역 지하 상가와 역사를 연결하는 내부계단에 노숙인들이 자리를 잡고 잘 준비를 한다. 어두운 천이나 박스로 몸을 덮고,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자고 있는 모습은 사람과 사물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큰 물체처럼 보인다.
그 많던 사람들이 아침 출근길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다. 길 위의 생활이래도 가방과 이불 등 짐이 있던데 계단 한 구석에 짐이 놓여있긴 하지만 밤에 보았던 전부는 아니다. 출근시간대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때문일까? 그들은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는 것 같다.
잠실역에 있는 회사에 다니게 되면서 아침 저녁으로 마주치는 그들이 처음엔 무서웠다. 행여 해코지라도 할까봐 초점 없는 눈동자를 하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두려움은 낯설음에서 온다고 했던가. 비슷한 시간 정해진 자리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반복되자 차츰 그들의 얼굴도 익숙해졌다.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처럼 그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가끔은 노숙인 둘 셋이 모여 컵라면을 먹거나 소주를 마시며 서로 이야기를 하는 모습도 본다. 시선은 던지지 않으면서 그들의 대화에 귀기울여보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다. 즐거워하는 것도 같고 싸우는 것도 같고. 서로 주고 받는 듯 하지만 어쩌면 각자 발화하는 것 일수도.
집에서도 보일러 온도가 조금만 낮아지면 추위를 느끼는데 옷을 껴입고 박스를 깔고 덮는들 추위가 가실까,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까 걱정도 된다. 한번은 한 노숙인이 붙이는 핫팩 2개를 배에 붙이고도 한 개를 더 뜯는 모습을 보았다. 2개면 칼바람 불어도 속은 뜨끈뜨끈할 만큼 온도가 높은데 한겨울 맨바닥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그에게 2개로는 부족했으리라.
도로가 안 막혀 평소보다 이른 시간인 8시쯤 잠실 지하상가를 지나던 어느 날.
잠실역 6번 출구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식당 세 개가 나란히 있다. 저 김밥들이 과연 다 팔릴까 싶을 정도로 피라미드로 쌓아두고도 가게마다 아주머니들이 한 명씩 문밖에 나와 계속 김밥을 말고 있다. 자주 보던 남자 노숙인이 평소 머물던 곳과 다른 구역에 나타났다. 마치 누군가가 앞에서 그의 몸을 줄로 묶어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발을 끌며 몸을 옮기다 한 식당 앞에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위치에 선다. 아주머니는 호일에 싼 김밥을 하나 건네며 “맛있게 드세요.” 하고 뒤돌아선다. 노숙인은 한 손으로 받아들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매일의 일과일까?
파리바게뜨 옆에 있는 계단을 오르는데 오른편에 검은 롱패딩을 입은 사람이 국방색 백팩을 메고 계단에 웅크려 앉아있다. 패딩에 달린 모자를 덮어쓴 고개는 푹 숙이고 두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피부나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여기서 누굴 기다리는걸까? 이 추운 날바닥에서?
그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여행용 백팩이라 꽤 크지만 빈 가방으로 보일만큼 부피는 작다.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그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또한 나의 해석이고, 동정이리라. 그러나 매서운 추위에 찬 돌계단에서 밤을 지새는 사람을 보고 생각이 일어나기도 전에 가슴 한 가운데 욱신거리는 걸 어쩌겠는가.
내가 따뜻한 집에서 배부른 식사를 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온전히 나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부모님의 헌신만으로 된 것도 아니며, 어느 하나 당연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이 마음을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불쌍하다는 생각과는 다른 차원이다. 언젠가 부터는 ‘불쌍’이란 단어도 잘 떠오르지 않고, 그러다보니 잘 말하지도 않는다. 의식적인 배제가 아니라.
의식해야 하지만 동시에 의식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첫댓글 의식해야 하지만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는 표현 적절하네요. 어떤 마음인지 잘 전달됐어요..^^
여정, 피드백 고맙습니다. 🙏 🙂
무제의 사람에 대한 관심, 관찰력이 돋보이는 글이었어요.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는 배려, 의식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유주,,피드백 고맙습니다.🙏 🙂
잠실 지하도 풍경이 생생합니다. 저도을지로,서울역 노숙인을 볼때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적은 돈이라도 드리고 싶다가도. 불편해 할까봐, 동정일까봐, 무서워서, 돈이 아까워서. 그냥 지나칩니다. 함께 잘 살면 .. 최소한 잘 자고 배고프지만 안아도 좋을텐데. 더불어 삶 . 이건 정말 어려운 걸까요. 글 잘 읽었습니다. 내일 만나요 ~
팬,, 고맙습니다. 오후에 봘게요. 🙏 🙂
무제의 지난 글도 기억이 납니다. '의식해야 하지만 동시에 의식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고민이 느껴지고 공감되어 몇 번을 다시 읽게 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눈썹달,,피드백 고맙습니다. 🙏 🙂
어떤 사람은 무심하게 지나갈 일인데도 무제는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이 본 걸 관찰하고 골똘히 생각했던 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글 잘 읽었어요. 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