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가 되니 포클레인 소리와 땅 다지기를 하느라고 수십 톤이나 되는 맷돌 모양의 돌 바퀴를 굴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리고 세륜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다시 요란스러웠다. 대단위 주택건설공사장 풍경은 새로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이렇게 요란하게 움직이는 세상을 모르고 살아온 영구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하고 맘속으로 되뇐다.
전반장이 식사를 하고 오는 모양이다.
“반장님, 식사했습니까?” “예, 식사하고 오는 중입니다. 강샘님, 식사를 어떻게 했습니까?” “밖에 중국집에서 수타 자장면 묵었습니다.” “그 집에 자장면 맛있다고 소문난 집입니다. 커피는 했습니까? 커피만큼은 책임져 줄 테니깐 커피 걱정은 마십시오.” 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나갔다.
“형님, 우리가 언제 날 받아서 반장하고 술 한잔합시다.” “그러세, 그런데 우리 경비원들은 시간 맞추기가 정말 어렵다네. 나는 내일 쉬는 날이지만 자네는 낮으로만 근무하니 시간 내기가 어려울 것이네. 그리고 반장하고 술 먹자 소리도 말소. 반장이 참말로 깐깐한 사람이네.” “왜요? 전 반장은 술도 좋아하지 않습니까?”
“술을 먹기는 하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고 술자리를 잘 피하더라고.” “반장은 월급이 얼마나 된대요?” “반장도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이네. 반장수당이 5만 원 더 붙는다 하던가. 모르겠네.” “반장도 우리하고 똑같은 입장이라고요? 나는 여태껏 시공회사 직원인 줄 알았네요.” “이 사람아, 반장도 우리처럼 용역회사에서 팔려 온 거여.”
전창진반장은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몰라도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들어오기도 하고 가끔 승용차를 타고 나가기도 했다.
4월 초의 봄날이지만 햇볕은 뜨거웠다. 오후가 되면서 공사장 곳곳에서 회오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영식은 목부터 눈까지 올라오는 얼굴보호마스크를 착용하고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회오리바람이 모래흙먼지를 일으키며 공사장 입구 문 쪽에서부터 소용돌이치면서 올라왔다.
모래알들이 영구의 얼굴을 그대로 때려댔다. 세륜기에서 솟는 물보라 안개도 영구의 얼굴까지 날아와 덮친다.
“어이, 바람이 불 때는 세륜기에서 떨어져 있어야 하네. 세륜기에서 약품을 뿌리면 흙탕물이 정화가 되어서 나오는데 이때 바람에 날리는 물방울이 인체에는 말도 못하게 해롭다네.” “형님, 처음이라서 아무것도 준비를 못 했더니 일을 하려면 완전하게 준비를 해야겠네요.” “오늘 하루, 자네와 일을 하니 시간이 빨리 간 것 같네. 해보니 어떤가? 일할 수 있겠는가?” “이왕에 왔으니 해 봐야 안 되겠습니까?”
영구가 일 마치는 시간은 오후 6시에 마치지만, 현장 근로자들은 5시에 작업을 마친다. 공사장을 빠져나오는 차량들로 계속 꼬리를 물고 있다. 바닥과 주변에 어질러진 작업 도구들을 정리하고 이영식은 분사기로 물을 뿌려 길바닥에 떨어진 흙덩이와 오물들을 씻어냈다.
일 마칠 때가 되니 전 반장이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면서 영구를 컨테이너박스 안으로 들어오라고 불렀다.
“강샘님, 오늘 수고 하셨습니다. 힘들지 않으셨나요? 일할 수 있겠습니까?” “예, 할 수 있습니다. 일하기가 재미있는데요.” “옷 갈아입으세요. 커피나 한잔하고 정각 6시가 되면 퇴근하십시오. 오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한 평 넓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컨테이너박스 안에는 앞쪽으로 책상이 놓여 있고, 책상 우측 공간에는 요즘에는 필요 없는 선풍기 모양의 전기난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뒤쪽 벽면을 따라서 접이의자 3개가 줄을 지어 있었다. 공간이 딱 맞았다. 뒤쪽만 빼고는 사이즈가 규격이 다 같은 창문이 있고, 벽마다 경비원 작업복들이 걸려 있다.
영구가 경비작업복을 일상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전반장은 어느새 종이컵 3개에 커피를 타 놓고 있었다. 책상 한편에는 200개 들이 1회용 믹스커피 박스가 두 개나 놓여 있다.
“반장님, 커피까지 타 놓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웬 커피가 이렇게 많습니까? 그리고 장갑뭉치도 많고 구석구석 물건들이 많네요.” 전반장이 웃으면서 말한다.
“내가 하는 일이 뭐입니까? 우리 반원들이 쓰는 소모품이라도 풍족하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제도 현장사무실에 가서 커피가 떨어졌다고 한 박스 달라고 안 했습니까? 그랬더니 담당경리가 말하기를 며칠 전에 커피 가져갔는데 벌써 떨어졌습니까? 하잖아요. 그래서 정문 앞으로는 온갖 잡놈들이 들어가면서 나오면서 한 잔씩 타 먹는데 그런 걸 보면 오래 묵은 거라 했지요.” 영식이 거든다.
영구는 결혼하고 난 후 줄곧 40여 여년을 자영업만 하며 살았다. 직장생활을 했다거나 남에게 구속받는다거나, 시간에 구애를 받는 일이 없이 살아오다, 아파트 건설현장 경비직으로 일하고 있으니 완연한 직장인이 된 것이다. 스마트폰 알람을 맞춰 놓고 새벽 5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아직 훈련되지 않은 상태라서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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