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과환(名門科宦)의 고장 우금(友琴)의 유래(由來)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우금에는 수령(樹齡)이 약600년 느티나무 두주(株)가 있으며 410년 역사를 증명할 수 있는 두암고택(斗巖古宅)과 민간만 고택(晩看만 古宅)이 있는 곳이 선김(宣金) 집성촌이다.
마을 뒤편에는 낮은 봉우리 동산이 있고 동편에는 거문고 모양의 금산(琴山)이 있으며 남쪽에는 문전옥답이 펼쳐 있으며 서편에는 내성천이 흐르면서 넓은 평야를 이루고 멀리 바라보이는 소백산 정산 봉우리가 한 눈에 바라보이는 곳이다.
이곳에 처음시거(始卜居斗巖 友琴村)하신 휘 우익(友益:서기1571~1639) 선조는 문절공(文節公) 휘 담(淡)의 오세손(五世孫)이며 민절공(敏節公) 휘 륵(玏)의 재종질(再從姪:7촌)이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에게 부탁하여 비문(碑文)을 받아서 문절공묘에 신도비(神道碑)를 세웠으며 영주시 삼판서 고택(三判書 古宅)에서 태어나서 이십세(二十歲)에 분가 하시면서 어느날 영주시 숫골이란 곳에서 학(鶴)이 알을 물고 날아가는 것을 보고 따라와 알을 품었다하는 명당(明堂)에 그 자리에서 베어낸 싸리나무 목재가 사용된 두암 고택을 지으셨다는 일화(逸話)도 있다. 현대에 와서는 서기1975년 12월 30일에 유형문화재 제81호로 지정되었으며 서기 2004년에는 순흥 선비촌에 옛날 건축방식 그대로 원형건물이 세워졌다.
공의 자는 택지(擇之)요, 호는 두암(斗巖), 또 다른 호는 금학헌(琴鶴軒)이며 벼슬이 한성부 서윤(漢城俯 庶尹)이라서 서윤공 또는 두암공 그리고 서윤할배 라고도 칭한다.
우금은 처음에 공의 호를 따서 두암이라고 부르다가 나중에는 공의 휘 우익에서 우(友)자와 또 다른 호가 금학헌 이라서 금(琴)자를 따서 우금이라고 오늘까지 부르고 있다.
공은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에 유학하여 문과급제후
황해도 도사겸 춘추관 기주관(黃海道 都事兼 春秋舘 記注官)
호조 좌랑(戶曹 佐郞)
영원 군수(寧遠 郡守)
형조,병조정랑 (刑曹,兵曹 正郞)
안동 진주 제독 제수 (安東 晋州 提督 除受)
봉상시 주부 제수 (奉常寺 主簿 除受)
한성부 서윤(漢城府 庶尹)벼슬을 하셨다.
공은 삼자(三子)를 두었는데 찬(鑽),옥(鈺),첨(첨)이며 각 한명의 아들이 있다.
공의 차자(次子) 인 휘 옥은 외아들 휘 종미(宗渼)를 큰집으로 양자 올려 문절공 선조의 종사(宗嗣)를 이어서 지금까지 불천위 봉사(不遷位 奉祀)를 하고 있으며 그 후손이 영주시와 황조동 그리고 무섬(水島)에서 집성 반촌(班村)을 이루니 오늘날 민속관광지로 오염되지 않은 전통가옥 마을로 지정 복원 하고 있다. 공의 오세손(五世孫) 치유정(峙流亭) 휘 대(臺)는 무섬의 입향조(入鄕祖)이며 8세손 휘 락풍(樂豊)은 의금부 도사(義禁俯 都事)로서 해우당(海愚堂:도민속자료 제92호 순흥선비촌)의 주인이다. 9세손 휘 휘병(輝柄)은 문과 급제후 승문원 정자(承文院 正字)이다
공의 장자(長子)인 휘 찬(鑽)은 김학사(金鶴沙) 응조(應祖)의 따님과 혼인하여 함집당(咸集堂) 휘 종호(宗湖)를 낳으셨다.
함집당은 외할아버지(外王考) 학사(鶴沙) 문하(門下)에 수학(受學)하여,
성균관 생원(生員)이며 삼자(三子)를 두었는데 가주(可柱),만주(萬柱),동주(東柱)이며 삼형제(三兄弟)가 동시에 사마(司馬:생원,진사)에 오르고 차자(次子)인 휘 만주는 문과급제하여 강원도사(江原都事)이며 이어서 대과(大科)에 오르신 공의 오세손(五世孫) 휘 방(埅)은 자인현감(慈仁縣監)이며 7세손 휘 영범(永範)은 사간원 정언(司諫阮 正言)이며 8세손 휘 락주(樂周)는 랑천현감(郞川縣監)이다.
함집당 삼자(三子)인 휘 동주(東柱)는 번계공(樊溪公) 휘 지선(止善)의 손(孫) 휘 종보(宗보)에게 양자드니 이른바 목화밭 양자이다. 그 후세에 많은 분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니, 백암(栢巖) 휘 륵(玏)의 후손으로서 가문을 한층 더 빛나게 하였으며
문과 급제한 공의 오세손(五世孫) 갈수헌(渴睡軒) 휘 위(瑋)는 사헌부 지평(司憲俯 持平)이며, 6세손 인수공(忍叟公) 휘 약련(若鍊)은 승정원 좌부승지(承政院 左副承旨)요 8세손 휘 락연(樂淵)은 돈령부 도정(敦寧俯 都正)이다.
함집당께서는 당시 두암고택에 현판을 걸면서 과환이 왕성하여 재력이 풍요로우니 차자(次子)인 만주에게 서편옆에 집을 지어 분가 하였으나, 그후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삼자(三子)인 동주에게 동편옆에 집을 지어 분가하였는데 손자인 만간암(晩看庵) 휘 지(墀)께서 현판을 걸었다. 그 후 우금에는 계파(系派)를 서파(西派)와 동파(東派)로 분류되었다.
※김학사 응조 : 봉화군 물야면 오록에 있는 풍산 김문 (豊山 金門)의 유연당 김대현의
아들이며, 사간원(司諫院)의 대사간(大司諫)으로 당시 영주고을에서,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과 함께, 유명한 분의 한사람이며,
영주지(榮州誌)를 쓰신 분이며, 우리 서윤할배와는 사돈(査頓)지간이 된다.
(유연당의 아들 8형제가 사마(司馬:생원진사)에 오르고, 5형제가 문과
급제하여 이른바 8연(八蓮) 5계(五桂)라 일컫는 명문대가의 응조,영조,
봉조, 등등... 8형제집)
공의 삼자(三子)인 휘 첨의 후손은 학가산과 부석 도탄(桃灘)에 거주하면서 학문에 열중하여 선비로서 가문을 빛나게 하였고 공의 증손인 운학제(雲鶴齊) 휘 한주(漢柱)와 공의 10세손 가암(稼巖) 휘 호규(浩奎)는 향중에서 뛰어난 선비다.
이와 같이 우금의 원조(元祖)이신 서윤공의 후손이 영주, 황조동, 무섬, 우금, 도탄에서 명문대성으로 자손이 번성하니 영남세보 3권(嶺南世譜三卷)에서 상권(上卷)을 거의 메울수 있는 숫자이다.
후손의 한 사람으로서 보첩(譜牒)에 기록된 과환을 발췌(拔萃)하여 다음과 같이 알아보기 쉽게 정리하여 모아보고 또 세계도(世系圖)를 만들어 보면서 나의 고장 우금을 선경회 까페에 조심스럽게 올려 봅니다.
후손 漢杰이 삼가 씀
※ 두암 고택에는 서윤공의 불천위(不遷位) 사당(柌堂)이 있으며 매년 기일(忌日)이면 각처(황조동,무섬,우금,영주,도탄)에서 많은 제관(祭官)이 참석하였으나, 근세(近世)에 와서는 극소수의 관심있는 어른분만 참석하니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걱정스러운 일이다.
첫댓글 잘 보고 다시한번 정리가 돼네요. 두암공의 혈손들이 당대를 풍미하셨군요.
조상님의 큰업적을 깊이 새기시고요...기일이면 많은 자손이 참여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감사 드림니다 .
이렇게 상세하고도 깔끔이 정리된 자료가!!!......수고하셨네요.
형님 오랬만이네요. 우금의 유래에 대한 자세한 정리 감사합니다. 잘배웠습니다.
형님, 수고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자료부탁드릴께요. 감사합니다.
컴이 고장이 나서 이재야 보았읍니다. 많은 수고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