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자취
십여 년 전에 퇴직했다. 젊었을 때는 더디게 간다고 느꼈던 세월이 요즘은 쏜 화살처럼 빠르다. 어떻게 그 세월을 보내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느낌이 다른가 보다. 빠름을 느끼는 것은 삶이 기쁘고 즐겁기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 살아온 삶의 자취를 더듬어본다.
Ⅰ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학훈 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 군 생활이 결코 헛된 삶이 아니었다. 또래의 젊은이들이 생사고락을 함께하면서 인내와 끈기, 화합, 조화로 인생을 배우는 수련의 도장이었다.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배우고 터득하며 익혔다.
’78년 삼 월에 초임 발령이 났다. 예천의 시골 중학교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교통이 원활하여 쉽사리 오가지만 당시에는 대구에서 그곳까지 다섯 시간이 걸렸다. 1년을 근무하고 근무지를 옮겼다. 읍 지역의 학교로 대구가톨릭 선목학원 산하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 학교가 신설 학교이며 학생들의 학구열이 뒤떨어져 있었다. 학업에 대한 의욕을 가진 학생은 손꼽을 정도였다. 일 년에 퇴학으로 물러가는 학생이 많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교장 신부님은 학생들의 퇴학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노력하여 점차로 학습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서울대학교를 비롯하여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학생이 늘어났다. 교장 신부님은 경향신문에서 교육 발전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제1회 사도대상을 받았으며 우리나라 100대 명문 학교로 부상(浮上)했다.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전국에서 모델을 답습하러 몰려들기도 했다. 이에 교구는 대구가톨릭대학교 부속학교로 승격하여 개명했다.
그렇게 일취월장으로 발전한 계기는 교장 신부님의 교육 철학과 선생님의 한결같은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교장 신부님은 교실 모퉁이에 칸막이하여 반 칸에 숙소를 정하시고 불철주야 학교를 키우는 데에만 전념하셨다. 당시에 대학이나 있을 법한 기숙사를 지어 멀리 경북의 시골 학생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 선생님은 대가 없이 반과 전후에 학생들의 학업을 돌보았다.
Ⅱ
어느덧 세월은 흘러 그만 쉬라며 나를 밀어내었다. 그 세월이 벌써 십 년이 지났다. 이제 매일 가던 곳에 그만두었으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지? 막막했다. 새로운 삶에 적응되지 않았다. 퇴직하면 늦잠이라도 마음껏 자고 싶었는데 습관이 되어서인지 일찍 일어나곤 했다. 하루하루가 덧없이 흘렀고 무료(無聊)했다.
삶의 궤도를 바꾸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글을 습작해 왔는데 체계적으로 배우기로 결심하고 찾았다. 수필창작반에 들어갔다. 지도 교수의 강의가 눈을 뜨게 했다. 내 멋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게 수필이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형식이 없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정형의 틀이 있었다. 열심히 배우고 써 놓은 글을 다시금 다듬었다. 교수님의 추천으로 ‘고양이’라는 작품이 선정되어 ‘수필과 비평’ 문학지에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하였다.
글 쓰는 습작 활동이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어느 정도 수필의 형식을 갖추지만 내 뜻대로 생활과 신앙, 여행과 순례의 글을 쓰고 있다. 처음에는 한 편을 쓰는데 킁킁거리며 힘이 들었다. 또 어떤 소재로 어떻게 써야 하며 주제와 제목을 정함에 힘이 들었다. 글을 쓰는 것도 밥을 먹듯 습관화되어야 한다. 이제 이십 년을 넘겼더니 때가 되면 뇌리에서 글감이 떠오른다.
Ⅲ
내 생활의 한 방면은 신앙이다. 퇴직 전에는 데면데면 주일 미사를 지키는 무덤덤한 생활이었다. 영성 생활인 ‘레지오 마리애’ 활동도 습관적으로 참여했다. 그러하니 신앙생활이 즐겁지 않고 오히려 부담되었으며 내가 믿는 절대자가 두렵기만 하고 그분의 말씀을 멀리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믿음의 줄을 다잡았다.
말씀을 배우러 성경학교에 들어갔다. 처음 2년은 도무지 공부가 어렵고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3학년이 되어 귀가 열렸으며, 멀리 느껴졌던 성경책이 가까이 왔다. 4년 졸업을 하고 심화반 2년을 거쳤다. 그 뒤 교구 신학원에 등록하여 신부님 강의를 2년 동안 배웠다. 그제야 말씀이 태산의 티끌만큼 다가왔다.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교수 신부께서 신학 대학원을 소개받았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2년 동안 야간 수업을 하며 열심히 갈고 닦아 학위를 받았다. 비로소 성경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고 내가 믿는 신에게 바투 다가설 수 있었다.
Ⅳ
더불어 몸의 건강도 중요하다. 모든 것 다 얻어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한때는 마라톤으로 무릎 수술을 받았으며 재활에 성공했다. 의사께서 일상생활에는 지장 없겠지만, 운동은 못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나의 집요한 노력으로 등산도 하고 테니스도 하고 있다.
수술 후 재활의 노력은 걷기와 자전거 타기였다. 매일 1시간을 걸었으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여 무릎 근육을 강화시켰다. 꾸준히 2년 동안 했더니 본래 상태로 돌아갔다. 그 노력이 습관화 되어 지금도 걷는 것과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일상에서 걷고 자전거 타기가 교통수단이 되었다.
전에는 가끔 등산을 즐겼는데 몇 년 전부터 테니스 동호회에 들어가 운동을 즐기고 있다. 공을 쫓아 뛰어다니며 되받아치는 묘미는 짜릿한 쾌감을 준다. 전력 질주할 때는 숨을 몰아쉬기도 하지만, 심폐기능을 강화하면서 유산소운동이라 전신의 운동 효과가 있다.
Ⅴ
나는 어느 한 곳에 몰두하는 습성이 있다. 일이든 운동이든 집요하게 집중한다. 글을 쓸 때도 그렇고, 공부할 때도 그러하며, 운동할 때도 그렇다. 기대치에 미칠 때까지 한 곳에 집중하여 노력한다. 무엇이든 하다 말다 하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며 나를 무디게 하므로 싫어한다.
하루가 빠름을 느끼는 것은 잘살고 있다는 행복의 징표이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즐기며 사는 게 행복한 삶이다. 다시 못 올 이날을 아낌없이 아름답게 누리는 것이 추억의 곳간에 간직하는 것이다. 먼 훗날에 그동안 지상 순례에서 곳간에 쌓았던 보람된 추억만 간직하고 떠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