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삼방회 10월29일 9시
충주 유람선 선착장 집합
장소는 단양으로 변경 될수도 있음
단양8경
제1경 도담삼봉(島潭三峰) 문화재청 지정 명승 제44호 제2경 석문(石門) 〃 제45호 제3경 구담봉(龜潭峰) 〃 제46호 제4경 사인암(舍人巖) 〃 제47호 제5경 옥순봉(玉筍峰) 〃 제48호 제6경 상선암(上仙岩) 제7경 중선암(中仙岩) 제8경 하선암(下仙岩)
* 단양8경 배열순서는 위키 백과를 인용함. 2014.8.14 (목) 13:08 최종 수정.
1. 도담삼봉(島潭三峰) 맑으료 남한강에 세 송이 붉은 수련 남편 봉 바람났지 앵돌아진 아내 봉 애증(愛憎)은 악마의 장난 포용으로 풀어라
* 충북 단양군 매포읍 도담마을에 위치. 둘레의 수심은 약 7m, 강폭은 150m가량인데, 푸른 남한강에 핀 세 송이 수련처럼 아름답다. 세 봉우리는 남편이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들이자, 심통이 난 아내가 새침하게 돌아앉은 모습이라고 한다. 가운데 봉우리가 남편봉우리로 일명 장군봉이라 부르며, 정자가 있다. 북쪽이 처봉, 남쪽이 첩봉인데, 처봉이 남편봉우리와 등을 지고 있다. 삼봉은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의 호이기도 하다. 명승 제44호
2. 석문(石門) 산신(山神)만 들랑대나 강가의 백옥 돌문 청풍이 불어오니 오묘한 측백숲향 저 절경 액자에 넣어 안방에다 걸리라
* 가운데 뻥 뚫린 바위모양이 마치 구름다리 밑 돌대문처럼 멋지게 자리하고 있고, 그 속을 통해 보이는 남한강과 건너편 마을의 모습이 강가에 걸린 액자 같다. 절벽 위에는 측백나무가 자생한다. 도담삼봉에서 약 200 m 거리에 있다. 명승 제45호. * 2016. 6. 19 시조 종장 앞 구 수정.
3. 구담봉(龜潭峰) 잔잔한 수면 위로 흔들린 청솔가지 만 마리 돌거북이 일거에 몰려오기 단숨에 대빗자루로 강변에다 쓸었지
* 구담봉(龜潭峯 335m)은 단양읍 단성면 장회리에 있으며, 절벽 위의 돌이 거북 모양이라 하여, 이런 명칭이 붙었다. 봄의 꽃도 좋지만, 가을의 단풍이 더 아름답다. 명승 제46호.
4. 사인암(舍人巖) 해금강 담아왔니 반듯한 단애(斷崖)병풍 틈새엔 청송 가득 드문드문 오색단풍 앞면만 정(釘)으로 떼어 석판화(石版畵)로 찍으리
* 대강면 사인암리에 있는 예각(銳角) 진 바위절벽은 소백산맥에서 발원하는 운계천을 따라 굽이굽이 열리는 운선구곡 일곱 번째 계곡에 있으며, 단양에서 8㎞쯤 남으로 떨어져 있다. 고려 말 우탁(禹倬, 1263~1342)이 사인 벼슬에 있을 때, 이곳에 와 휴양한 까닭에 이와 같이 불렀다. 기암괴석이 마치 꽃병풍을 두른 듯 하늘에 치솟고, 계류의 유유한 자태는 해금강(海金剛)을 연상케 한다. 특히 가을단풍이 좋다. 명승 제47호.
5. 옥순봉(玉筍峰) 비온 뒤 대밭일까 탐스런 죽순바위 고사목 뒤틀리고 등(藤)넝쿨 얽혔으니 비취검 불쑥 뽑아내 강심에다 꽂으리
* 단양 서쪽 9㎞ 지점, 남한강 본류 남안에 자리 잡은 옥순봉(玉荀峯 286m)은 행정상으로는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있다. 절벽에는 청송이 곁들여 있고, 산봉우리는 죽순처럼 깎아 세운 듯하며, 고목과 등덩굴이 얽혀 한 폭의 동양화 같다. 경치가 빼어나 예로부터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렀다 (출처 위키 백과). 명승 제48호.
6. 상선암(上仙岩) 도락산 불러놓고 담론을 즐기다가 누운 용 꼬집고는 시치미 뗀 얌체바위 맨 위쪽 주걱턱 신선 골계미(滑稽美)가 넘치네
* 골계미. 익살스러움이나 풍자가 주는 아름다움. 해학미나 익살미와 뜻이 비슷. * 한강 지류 우화천을 따라 단양 남쪽 12㎞ 지점 단양읍 단성면 벌천리에 하선암(下仙巖)·중선암(中仙巖)· 상선암(上仙巖) 등이 차례로 있다. 특히 상선암 일대에는 조그만 폭포가 많고 노송이 우거졌으며, 좌우로 가까운 용두산(994.4m), 도락산(964m)과 이어진다. 크고 널찍한 바위는 없으나, 작고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서로 모여 있는 모습은 소박하고 정겨운 우리의 이웃을 연상케 한다. 맑은 물이 용출하여 반석사이를 평평히 흐르다가, 좁은 골에 이르러 폭포가 되어 구름다리 아래로 떨어진다. 그 소리가 우레와 같고, 튀는 물방울이 탐승객의 옷깃을 적신다. 조선 명종 때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가 명명했다고 전한다. 근처에 경천벽, 와룡암, 일선대, 차일암 .학주봉, 광영담 등이 있다.
7. 중선암(中仙岩) 구슬발 가려두고 책 읽는 가짜 도사 폭포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데 가운데 난쟁이 바위 앵벌이로 변했군
* 중선암은 가산리에서 벌천리로 가는 숲 왼쪽 송림과 계곡 사이에 있는 바위인데, 여름철 휴양지로 최적지이다. 조선 효종 때의 문신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이 명명한 것으로 전해지며, 삼선구곡의 중심지이다. 계류에서 쌍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쌍용폭(雙龍瀑)이라 부른다. 개천 가운데 바위 옥렴대 (玉簾臺)에 ‘四郡江山 三仙水石’의 각자(刻字)가 있는데, 이는 관찰사 윤헌주가 1717년 숙종 43년에 쓴 것이다 (사군이란 단양·영춘·제천·청풍을 말한다). 백색의 웅장한 2개의 바위가 있으니, 옥렴대, 명경대(明鏡臺)라 한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8. 하선암(下仙岩) 일백 척(尺) 너럭바위 미륵불 돗자리지 소(沼)에 인 물거품을 곡차(穀茶) 익는 개미로 아랫녘 대머리 선인(仙人) 착시(錯視) 한번 멋져요
* 하선암은 선유동 상류에 있으며, 물속에 비친 바위가 무지개 같다 하여, 홍암(虹巖)이라고도 하는데, 봄철의 진달래와 철쭉, 가을철의 단풍이 아름답다. 삼층으로 된 넓은 바위 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얹혀있다. 그기에 기댄 조그만 바위에 조귀하(趙龜夏), 조봉하(趙鳳夏) 형제 이름이 새겨져 있다. 미륵부처를 닮아 불암(佛巖) 또는, 그냥 선암(仙巖)이라고도 한다. 이곳 소(沼)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맑고 푸른 물이 흐른다. 옛 선비의 풍류가 넘치는 곳이다. * 부의(浮蟻); 술이 다 익으면 밥알이 떠오르는데, 그 모양이 개미의 유충과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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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여행] 단양8중 제1경인 도담삼봉........2
도담삼봉은 충주호의 끝자락에 있다. 남한강 물줄기가 돌고돌아 흐르다 힘겨워 잠시 머물다가간 자
언제나 그 자리에 나름 전설을 품고 있는 바위, 비록 미물이긴 하지만 그 나름의 운명적인 태생으로
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있는 돌이기도 하다. 왼쪽에 보이는 세 돌이 삼봉이라는 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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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있는 봉우리가 남편 봉, 우측에 있는 작은 봉우리가 애처봉,좌측에 있는 봉우리는 본처봉이다
가만히 바라보면 본처 봉우리라는 돌은 뭔가 못마땅한지 토라져 있는듯이 보인다. 남편은 본처를 바
라보는 것이 아니라 애첩을 바라보고 역시 애첩봉도 남편봉을 바라보며 서로 사랑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듯한 모습이기에 여러 설화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 선비가 장가를 갔는데,본처가 계속 딸만 낳고 아들을 낳지 못하였단다.
조선시대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이 칠거지악에 위반되었던 때라 아들을 낳기 위해 첩을 두었는데
그 첩이 아들을 낳아주자 애첩을 더욱 사랑하게 되어 서로 바라보는 모습이라고도 한다. 뭐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암튼 이렇게 세 돌은 조선시대 여인네들의 애환이 담겨있다는 설화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일곱까지 중에서 3번과 7번은 사회 일반의 범죄행위로 인정되나 3번을 제외한 1번에서 6번까
지는 봉건적 가족제도의 소위 말하는 사대부라 일컷는 양반들의 요구 사항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단양은 석회암이 많은 지역으로 이 돌은 자연 풍화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이
것지만 사람들은 갖은 이유와 설화를 붙혀 오늘에 이르기 까지 그 설들이 사실인양 믿고싶어 한다.
다른곳도 그렇지만 이곳 단양역시 단양8경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의 입소문에 오르내린다. 그중에서
이 도담삼봉은 단양 군에서 자랑하는 단양 8경중에 제1경이 올려놓고 있다.
그래서 일까 단양팔경 중 제1경인 도담삼봉은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지 44호와 국가를 홍보하는 대표
적인 CF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진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여기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이야기는 삼봉 정도전에 대한 이야기인데.
조선시대 당시 이 깊고깊은 소백산 자락의 산골짜기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삼봉(三峰) 정도전(1342∼1398) 대한 이야기다.
먼저 정도전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지만 경기도 양주, 경상북도 영주와 봉화, 그리고 충
청북도 단양이라는 설이 있으나 아직 확실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
뭐 단양이든 영주든 어떠리, 다 접어두고 도담 삼봉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참고로 그의 호 삼
봉은 정도전이 도담 삼봉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의 호를 삼봉으로 지었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정도전
을 보고 삼각산(북한산)과 같이 학문과 경술에 우뚝하라는 뜻으로 이존오,박의중,이집,김구용 등이
1369년 가을 삼각산 그의 집을 찾아와 지어준 것이 정설이다.
암튼 어린 정도전은 성품이 강하고 학문과 독서를 즐기면서 도담삼봉을 너무 좋아해 자기 호도 삼봉
으로 정하고 유년기를 보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정몽주와 함께 유학을 하면서 1360년(공민왕) 성
균시1362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충주사록· 전교주부· 통례문지후 등을 지내기도 했다.
.
가운데가 남편봉우리 북쪽이 아내, 남쪽이 애처라고해요. 재미있는건 아내봉우리가 남편 봉우리
에 등을 지고있어서 웃음짓게 한다고하네요.
1374년 공민왕이 죽자 이인임의 미움을 받아 유배. 유랑기간 중 1383년 함주 막사 동북면도지휘사로
있던 이성계를 찾아가 세상을 논하면서 그와 인연이 되어 훗날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
자 역사의 중심에서 사회모순을 해결하고 각종제도와 개혁을 통해 고려에서 새로운 조선 왕조를 설
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정도전은 민본정치와 이념 그리고 군주와 재상의 협치로 왕조를 지탱한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시대
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순 없지만 난세 라는 점에서 정도전의 꿈과 희망은 컷던것으로 역사는 이야
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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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삼봉에 정도전의 이야기가 얽힌 재미있는 유래를 소개하자면 그 또한 재미있다.태초에 하느님이
세상 만물을 창조했고 또 이를 조화시키기 위해 각처의 명산을 끌어 모아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꾸몄
다 하니 무한한 신의 힘을 인간이 의지하지 않을 수 없을 수밖에, 그러나 여기 전하여지는 전설이 있다.
도담삼봉의 원 고향으로 돌아 가자면 과거 강원도 정선읍 봉양 7리 속칭 적거리(원명:덕거리)라는 자
연부락이 있었다. 지금은 산천이 변해 이 마을의 옛 초가집은 간데 없고 상수도 수원지와 주택이 개량
된 현대식 건물이지만 옛날에는 정선읍내에서도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이름난 곳이었으며 또한 마을
앞에는 가지런히 세(三)봉우리의 아담한 산이 있었으니 이 산이 바로 삼봉산이란 유명한 명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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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 산 중턱에는 이 고을 향교가 위치했고 산새소리와 함께 절벽 밑으로는 조양강 맑은 물이 구비
쳐 흘렀으니 보는 사람마다 그 아름다움을 감탄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있은지 13년 후 을사년 에
큰 홍수가나 하루밤 사이에 이 삼봉산은 홍수에 밀려 떠내려가 자취를 감추었다.
졸지에 삼봉산을 잃어버린 이 마을 사람들은 홍수가 멎어들자 유실된 삼봉산을 찾고자 의논한 끝에
기골이 장대한 장정 다섯 사람을 뽑아 강물을 따라 삼봉산을 찾으러 떠났다. 그러나 보름이 넘도록
고생을 무릎 쓰고 헤매였으나 삼봉산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어느 날 숲속에서 밤을 지새고 아
침해가 떠오를 때였다.
.
한 장정이 갑자기 산을 찾았다고 소리쳐 일행이 눈을 모아 바라보니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곳에 세
봉우리의 산이 있지 않은가? 모두가 기뻐서 숨가쁘게 달려가 보니 도담(충북 단양군 매포면)강 물
가운데 떠내려오다 자리잡힌 봉우리들이 흙은 홍수에 씻겨 떠내려가 버리고 바위만 남았으니 산세로
미루어 보아 삼봉산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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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산을 찾은 이 마을 사람들은 그로부터 수 십년 동안 해마다 가을이면 단양군 매포면 도담에
가 삼봉산의 산세를 꼬박꼬박 받아왔다. 그러던 어느해 예년대로 산세를 받으러 갔는데 마침 산세를
줄 돈 준비가 안돼서 "돈내라" "좀 기다려라"하며 서로간의 언쟁이 벌어져 떠들썩한 판인데 그때 겨우
대여섯살 남짓한 동자가 앞에 나서며 삼봉 산은 오라 한 것이 아니고 큰 홍수로 인해 떠내려 왔기 때
문에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만 주고 있으니 가져가라 안 가져가면 산세를 줄 수 없다 단호하게 말을
하니 산세를 받으러 왔던 정선마을 사람들은 당황하고 말문이 막혀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고 다음해부
터는 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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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세월이 흘러 지금은 정선의 옛 삼봉산 자리에는 봉양초등학교와 정선역이 자리잡고 있어 상전벽
해란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암튼 천재의 조화로 도담삼봉이 된 3개의 봉우리는 자연과 함께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으며 가운데는
남편 봉, 왼쪽에 처 봉, 오른쪽은 첩봉이라 부르고 있다. 남편 봉(장군봉)이 첩봉을 보고 있는 것과 처
봉이 등을 돌려 있는 묘한 형상은 웅장하고 신비할 정도로 해학적이다.
옛날 남봉과 처봉은 금실이 좋았으나 불행히도 아이가 없었다. 그러자 남봉은 첩봉을 얻어 아이를 가
졌고, 첩봉은 불룩해진 배를 남봉 쪽으로 내밀면서 뽐냈다. 이에 처봉은 시기심에 불타 남봉에게서 등
을 돌려 앉았다. 이를 본 소백산 신령이 영원히 움직일 수 없도록 벌을 내렸다는 전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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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남편 봉(장군봉)에 육각 정자(삼도 정)가 있는데, 그 당시 퇴계 이황 단양군수가 자연의 아름다
움을 감탄하여 산과 강을 소재로 한 시가 있어 한번 소개해 본다.
단양군수로도 있었던 퇴계 이황은 ,,,,,
山明楓葉水明沙 (산명풍엽수명사)
三島斜陽帶晩霞 (삼도사양대만하)
爲泊仙楂橫翠壁 (위박선사횡취벽)
待看星月湧金波(대간성월용금파)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어 잘적에 별빛 달빛 어우러져 금빛 파도 너울지네...” 이시를 읽다가 보
면 이황선생의 풍류에대한 감각을 읽을수가 있는데 ....가히 도담삼봉을 보고 한눈에 반했을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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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이 도담삼봉을 품에 끼고 있는 남한강의 충주호는 1985년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의 계곡
을 막아서 만든 충주댐으로 인해 조성된 인공 호수이다. 육지 속의 바다로 불릴 만큼 소양호(29억t) 다
음으로 담수량이 큰 호수이다. 충주댐은 남한강 수계에 확보되어 있는 수자원을 다목적으로 개발하여
발전, 홍수 조절 및 각종 용수 공급을 위해 1980년 1월에 착공하여 1985년 12월에 준공된 다목적 댐이
다. 충주댐은 면적 67.5㎢, 댐 높이 97.5m, 댐 길이 464m, 저수량 27억 5,000t의 규모를 지닌다.
1984년 11월 담수를 시작하였으며, 1985년 12월 20일 광주사태의 주범 전두환이 참석한 가운데 다목
적댐 준공기념식을 거행하였다
.
충주호에는 충주댐 본 댐의 충주나루, 월악산 비경 아래의 월악나루, 청풍문화재단지 인근의 청풍나
루, 단양팔경의 구담봉, 옥순봉이 있는 장회나루, 단양읍의 단양나루 등 총 5개의 유람선 선착장이 설
치되어 있어 충주호 관광선을 이용하여 호반의 정취를 즐길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충주댐 나루에서 장회나루까지의 뱃길은 대략 1시간 30여분 다시말해서 130리 길이다. 하여 장거리
코스이며, 수려한 선상 관광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관광 코스이다. 충주호와 월악산 영봉
이 한 눈에 들어오는 월악나루 주변의 풍경뿐만 아니라, 청풍나루~장회나루 구간에 있는 기암절벽의
암봉들과 어우러진 단양팔경(구담봉, 옥순봉) 선상 관광은 충주호 뱃길 여행 중 가장 빼어난 곳이라
또한 청풍나루 근처에 오면 동양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사 분수를 배를 타고 감상하는 또 다른 즐거
움이 있다. 다들 잘 알겠지만 충주호는 충주 계명산 아래에 건설된 충주댐 본 댐에서부터 시작하여 멀
리 단양 도담삼봉까지 이르는 총 6,600㎡에 이르는 광활한 호수이다. 동쪽의 구단양에서 서쪽의 충주
댐에 이르기까지 크게 ‘W' 자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는 남한강 유로가 전체적으로는 동에서 서로 흐
르지만, 각 구간마다 북동~남서 구조선의 간섭으로 하천 발달 과정에서 유로가 굴곡·변형되었기 때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유람선 가슴에 와닫는 시원함은 그야말로 말
료 표현하기 힘들다. 내륙 깊은 곳에서 이러한 물과산을 마음껏 가를수 있다는것은 얼마나 큰 기뿜이
요 행복인가. 구비구비 돌아갈때 마다 곁들여지는 설명과 음악소리, 그리고 시원한 바람소리 ......
아~~ 정말 좋다. 그기분 그대로 들떠있는 칭구들의 웃음 소리도 바람과 물과산을 마음껏 가를수 있다는것은 얼마나 큰 기뿜이
이곳 충주호는 다른 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골짜기의 규모도 넓은 편이다. 살미면 소재지에서 한천
리~명오리~제천시 오산리에 이르는 지대가 대표적이다. 반면 충주호에서 가장 좁은 협곡을 이루는
지점으로는 제천 청풍문화재단지가 있는 청풍나루이며, 마지막 충주댐 지점이 가장 좁은 지대를 형
성한다. 충주호는 주변 경관이 뛰어나고, 풍부한 수량과 넓은 수면, 심한 굴곡과 경사도로 인해 붕어·
잉어·향어·백연·떡붕어·송어 등의 어종이 풍부해 사시사철 낚시꾼들도 붐빈다.
주변에 월악산 국립공원·청풍문화재단지·단양팔경·고수동굴·구인사·수안보온천·노동동굴·충주호리
조트 등 관광 명소가 많다. 하여 내국인들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관광지로 외국인을 포함, 해마다 수
답답한 콘크리트 숲 속 도심에서 몸과 마음이 찌들어 살다가 이렇게 바다가 아닌 내륙 깊은곳서 아
름다운 호반의 풍광에 젖어 하루를 보낼수 있다는 이 큰 행복은 그냥 얻어지는것은 아니다.
그것도 누구와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기분은 반감된다. 마지못해 하는 여행은 독이된다. 그러나 오늘
처럼 좋은 벗들과 하는 여행은 힐링이된다. 그렇다고 누구나다 이런 호사를 누리는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누릴려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반듯이 힐링을 할수 있다는 것이다.
유랑자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충주호! 사랑하는 불알 친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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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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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삼봉
충북 단양군 매포읍 하괴리 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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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버스터미널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