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겟세마네, 거기가면 해결됩니다.
(마태복음 26 : 36-46)
예수님은 문제만 생기면 찾아가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시는 것을 습관을 좇아 가셨습니다.
가룟 유다도 예수님의 습관을 알았기에 은(銀) 30에 팔고 제사장의 종들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만큼 겟세마네 동산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습관처럼 찾던 곳입니다. 예수님에게 겟세마네 동산은 문제를 해결하는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하소연하지 않고 같이 싸우지 않고 온유하신 마음으로 모두를 수용하면서 겟세마네를 찾아 치유와 회복을 얻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거기만 가면 문제가 해결되는 습관적인 곳이 있어야 합니다.
친정입니까? 친정 가서 실컷 울고 오면 시원합니까?
어떤 분은 속상만 하면 카드를 긁는답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점을 보러 갑니까?
문제가 있으면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받는 장소에 내가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어려운 문제만 있으면 모리아산에서 죽을 뻔한 바위를 찾아서 기도하며 매달렸다고 합니다. 이삭에게 모리아산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여호와 이레!
이삭을 위해 숫양을 준비해 놓으셨던 예비해 놓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삭은 모리아산에 올라가서 자기 대신에 희생될 제물을 손수 준비해 두셨던 하나님을 생각하며 어려움을 아뢰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문제만 생기면 뽕나무로 가서 뽕나무를 붙들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울었다지요?
삭개오에게 뽕나무는 어떤 의미입니까? 삭개오는 키가 작아서 제대로 대접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뽕나무에서“삭개오야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네 집에서 유숙하겠다”최고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우면 뽕나무로 달려가 그 아래에 앉아 울며 예수님을 회상했다는 것입니다. 모두 전설이지만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겟세마네가 있습니까? 문제만 생기면 가고 싶은 모리아산이 있습니까? 아프면 찾는 뽕나무가 있습니까?
나의 겟세마네,교회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교회를 욕하고 비난해도 교회는 내가 주님을 만난 곳이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한 곳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던 곳입니다. 그러기에 이 자리가 신앙의 친정집, 겟세마네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를 습관적으로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건강을 위해 등산하려고…감람나무 그늘에서 힐링하려고 가신게 아닙니다.
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만나러 습관적으로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문제를 해결하거나 극복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시편 18편 2-3절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그래서 다윗은 여러 번의 위경에서 목숨을 구했고 왕위에 오릅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찾아서 이룩한 인생역전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찾은 대신에 신접한 여인을 찾았습니다. 무당 점쟁이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전쟁에서 세 아들과 함께 비참하게 전사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은 사람은 문제가 해결되고 점쟁이를 찾았던 사람은 자기만 죽은 것이 아니라 일가족이 몰살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울어도 못 하고 힘써도 못 하는 문제는 오직 하나님을 만나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 안에 문제 해결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만나러 습관적으로 겟세마네를 찾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고 시간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됩니다. 오늘 못 만나면 내일에도 나오고 이 달에 못 만나면 다음 달에도 나오고…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 5장 4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길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예레미야 29장 13절에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2.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되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에게 내 문제를 아뢰고 처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문제를 내놓고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해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해답은 세 가지 중의 하나입니다.
-내 문제를 가볍게 해 주십니다.
-내 문제를 같이 져 주십니다.
-내 문제를 내려주십니다.
우리는 3번만 기도응답이라고 생각하는데 1번 2번이 모두 기도 응답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받은 응답은 2번, 같이 져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실 때에 하나님께서 겹쳐서 같이 달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달리시니 견디는 힘이 다르고 고통의 강도가 다운됩니다. 그래서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기도제목이 생겼다는 것이고 그만큼 기도응답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큰 문제는 큰 응답! 작은 문제는 작은 응답! 이런 긍정적인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다른 종교에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기도를 송두리째 바꾸신 예수그리스도”라는 책에서
1) 모든 기도는 목적도 목표도 방법도 예수그리스도 그분이어야 한다.
--> 오직 예수그리스도께 초점을 두고 나아가면 초점이 달라지니 기도가 달라진다.
2) 구원이 전적인 은혜인 것처럼 기도도 전적인 은혜이다.
--> 모든 것이 주님이 친히 이루시는 것이라면 기도도 주님이 친히
이루는 것이다. 기도하는 과정속에서 기도의 수고가 있다.
3) 나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복음이라면 기도는 하나님나라와 의를
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기쁨이 된다.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이 명확하게 보인다.
"예"와 "아멘"으로 산다.
그래서 기독교는 능력의 종교가 됩니다.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능력의 하나님을 찾고 능력의 장소에서 예배하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힘들을 누릴 수 있어야 제대로 믿음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로마서 12장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3.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응답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십자가를 벗으려 기도했지만 응답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러 그 곳에 갔는데 하나님께서는 대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라는 기도응답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문제해결이 없다! 내가 십자가를 져야만 하고 하나님의 일시적인 외면을 받아야 하는구나… 십자가 밖에 없다! 이것을 응답으로 받아들이고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예수님께서는 기도 시작 전에는 고민하셨습니다. 심히 슬퍼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나서는 당당하셨습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그래요! 기도하신 예수님에게는 고민이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일어나 십자가를 지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기도 후에 일어난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입곱 마디의 유언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 한마디가 "다 이루었다"입니다.
누가 이런 임종어를 남길 수 있겠습니까?
"다 이루었다"라는 말은 승전가입니다. 그 의미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절망의 눈으로 실의의 눈으로 십자가를 쳐다보아서는 안됩니다.
"다 이루었다"라는 의미를 아는 자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전도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 나가서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을 만나 시험을 당하시고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리고 병을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가난을 이기고, 오해를 이기고,
배신을 이기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까지 승리하셨습니다.
그는 승리를 위해서 처절한 인생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고 승리를 집행하며 승리를 실현하며 계속 승리하고 끝까지 승리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승리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요한1서 5장 4절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시편 20편 5절에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닛시가 있는 곳에 승리가 있고 감사가 있고 믿음이 있습니다.
인도의 스탠리존스 선교사님은 미국 감리교회 감독으로 선임되셨던 분입니다. 목사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 입니다. 그러나 존스 목사님은 24시간 후에 감독직을 사퇴하고 인도로 복음을 전하러 떠났습니다.
그가 평생 동안 붙잡고 살았던 성경 구절이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씀인데, 이 말씀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구원과 은혜와 축복과 영생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이 약속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현실은 암담하고, 숱한 문제와 죄 가운데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갑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편이든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아멘!” 하고 나아간다면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과 사람들과 나 자신조차도 이제 끝장 났다고 말할 때에도, 예수님은 이제 시작이라고 하십니다. 세상이 No! 라고 소리 높일 때라도, 예수님은 Yes!라고 말씀하십니다.
스텐리존스 선교사님께서 이 말씀을 너무나 놀랍게 경험한 사건이 69세 은퇴하신 이후에 일어났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것입니다. 새벽 2시부터 사람들에 의해서 발견된 아침 7시까지 다섯 시간 동안, 전신이 마비되어 꼼짝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이 눈 앞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고 자신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말은 할 수 없었지만 그는 마음으로 아멘!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아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자신이 믿음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자신을 붙잡고 있음에 감격하였습니다. 보스턴 병원에 입원하고 중풍으로 누워 있으면서도 간호원에게 부탁했답니다.
“내가 잠에서 깰 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렇게 나에게 명해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는 그렇게 듣고 일어났습니다.
그때 깨닫게 된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예’만 하면 되는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다시 인도로 가서 89세까지 사역하다가 인도에 묻혔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영혼의 구원만 아닙니다. 육신의 치유도 예수님께서 이루십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다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항상 예입니다. 우리는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