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월 맑음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1시에 출발했다. 의정부에서 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 유진이네를 만났다. 요르단 여행에 다녀온 것을 마일리지에 올리려고 아시아나 항공사에 갔더니 카드를 만들기 전에 것은 올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실망. 미국 달라스 행 비행기를 탄다. 오후 6시 출발이다. 아메리카 에어라인으로 비행기 종류는 777기다 아마 기종 중에서 가장 큰 비행기가 아닐까? 12시간을 날아가 오후 4시 경에 달라스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1월 12일 오후4시다. 입국 심사를 받는데 거의 1시간이 걸리다니 엄청 짜증이 난다. 짐을 다시 찾아서 마이애미 행 비행기에 다시 부쳤다. 저녁 7시 출발이다. 마이애미에 밤 10시 30분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밤을 샌다. 힘든 시간이다. 아내와 둘이 여행할 때는 그러려니 하고 밤을 새곤 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가는데 좀 미안하다. 밖에 호텔에서 잠을 자고 출발해야 하는 눈치다. subway에서 커다란 샌드위치를 사서 함께 저녁을 해결한다. 공항 안을 둘러본다. 달라스 공항은 모자이크 바닥이 인상적인데 이곳 공항 바닥은 해산물들이 잔뜩 금빛으로 빛난다. 시간이 참 더디 간다. 카페트가 깔려있는 곳에서 자리를 잡고 누워보지만 춥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는데 그래도 아내만은 잘 잔다. 새벽에는 모두 모여 카드놀이를 했다. 한서방과 유진이 그리고 상희와 함께 훌라 게임을 했다. 상희가 많이 져서 아침 샌드위치를 사게 되었다. 놀이를 하니 시간이 좀 빨리 간다.
1월 13일 화요일 비.
여기 플로리다 주에는 비가 내린다. 금빛 바닥 모양이 인상적인 공항은 밤을 새는데 어려움이 없다. 약간 추운 것이 탈이다. 이제 출국 준비를 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다. 출국 때는 비자가 필요 없다. 컴퓨터를 이용해 항공권을 뺀다. 한글로 서비스가 되어 수월하다. 11시 40분에 비행기에 탔는데 거의 한 시간이 지연되어 짜증이 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항의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별로 반응이 없다. 입국하는데 필요한 서류 3가지를 작성했다. 아메리칸 에어라인 747 기종의 여객기다. 음료수 한 잔이 전부다. 기내식은 사 먹어야 한다. 승무원들도 나이든 좀 과장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다. 오후 2시 30 분경에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 마나과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하려고 줄을 서려는데 낯익은 한글 표지판이 보인다. 상희를 찾는 공항 직원이 팻말을 들고 있다. 이때부터 우리는 특별 vip 고객이 되었다. 우리는 다른 루트를 통해 귀빈실로 안내 되었다. 우리를 맞으러 사랑이 가족과 교회 식구들이 나온 것이다. 직원에게 여권과 입국신고서 그리고 짐표와 입국세 10$씩을 건네주니 처리를 대신해 준다. 입국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귀빈실에서 마중 나온 식구들과 인사를 하게 되었다. 사랑이 와 사랑이 부모님 그리고 박 장로님과 교회 여 집사님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놀랄 뿐이었다. 주문해준 음료수를 마신 후 공항을 빠져나왔다. 공항에 주차된 차로 이동한다. 먼저 ‘summer’ 라는 고급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는다. 학교에 다녀온 사랑이 동생 종원이도 합류했다. 해물 모둠으로 식탁이 가득 채워졌다. 랍스타, 생선, 조개, 오징어, 새우 등의 해산물이 대형 접시에 올려 졌고 밥과 음료수가 다라서 올려졌다. 식사를 하고 숙소로 이동하는 갑자기 아내가 지갑이 든 작은 가방을 놓고 왔다고 품위 있게 비명을 지른다. 운전하시던 박 장로는 차분하게 차를 돌려 식당으로 돌아간다. 별 상상이 다 된다. 그 가방에 여권과 큰돈이 모두 들어있는데,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맘이 무겁고 조급해진다. 다행히도 식당 그 자리가 가방이 얌전히 있다. 안을 점검해 보니 그대로다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박 장로님의 차에는 모링가 라는 열매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용한 식물 중에, 모링가 나무는 고대 기록의 AD 150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B.C 2000년에 그 약효 성분에 대해 그리스인, 로마인 그리고 이집트인들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모링가는 82 개국 그리고 200개 이상의 서로 다른 이름을 통해 알려져 있으며, 어쩌면 그것은 구약성경 시편 114에 설명된 질병에 대한 마법의 치료법으로 주술이 포함되어 언급 된 에덴동산에 있던 그 나무가 확실하며, 원주민들은 "기적의 나무"로 부르고 있다. 또한 "기적의 나무"로 불리는, 모링가 올레이 페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아유르베다" (인도 전통 의약 서적 Ayurveda)에서 300 개 이상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식물의 모든 부분; 씨앗, 꽃, 잎, 열매, 나무껍질, 뿌리는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모링가 나무는 세계의 반 건조 및 아열대 지역에서 자생하며, 인도 북서부의 히말라야 남쪽 기슭이 원산지로 아프리카, 남미, 스리랑카, 인도, 멕시코,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필리핀 등에서 재배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잎은 가축 용 사료로 그리고 요리용 기름(올리브 오일 과 유사)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나무는 최상의 목재는 아니지만,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많은 문화, 특히 인도, 태국과 필리핀은 요리에 나무의 다양한 부분을 사용해왔으며, 인도에서 모링가 잎은 흔히 카레, sambars, kormas 및 dals 같은 요리의 주요 재료로 사용하며 태국과 필리핀에서는, 잎은 여러 수프에 사용되며 심지어 사탕을 만들기도 한다. 모링가는 BC 2000 쯤에 처음으로 약초로 말했으며, 몰약 그리고 올리브 잎 같은 고대 허브 중 하나로 스킨로션과 향수를 사용 했던 로마, 그리스 그리고 이집트에서 전반에 걸쳐 가치를 인정했다. 모링가 잎에 들어 있는 믿기 어려운 영양소의 단백질과 철분 또한, 중요한 모든 아미노산 등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인도는, 허브와 영양을 통해 예방 의학에 사용된다. 아프리카 같은 나라에서 기아 종식을 도우는 프로젝트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니카라과 공화국은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나라이다. 중앙아메리카에서는 가장 넓다. 북동쪽은 온두라스, 남쪽은 코스타리카이고 동쪽은 카리브 해에 접하고, 남서쪽은 태평양에 접하고 있다. 주식으로는 '팥'을 주로 먹는다.]
원래 메소아메리카 계통의 니카라오 족, 초로테가 족, 미스키토 족 등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16세기 에스파냐의 침략으로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이웃나라처럼 대농장주들이 원주민을 부려먹어 그 생산물을 수출하는 형태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에스파냐가 니카라과와 제3국의 무역을 금지하자 농장주들은 이에 반발해 독립 운동을 일으켰다.
1821년 니카라과는 타 중미 국가처럼 보수주의자들의 멕시코 제국의 한 부분으로 에스파냐에서 독립했다. 그러다 1823년 멕시코에서 떨어져 나와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등과 함께 중미 연방을 구성하다 혼란 끝에 1838년 니카라과는 중미 연방에서 독립한다. 영국은 이 무렵 니카라과 동해안을 장악했으며,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영국이 니카라과호를 거쳐 2대 해양을 연결하는 운하건설 후보지로서의 지리적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끼리 내전을 벌이던 상황에서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고용한 미국인 백인 용병 윌리엄 워커(William Walker)가 황제 노릇을 한 적이 있었지만 군벌들에게 쫓겨났고 보수주의자들이 집권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니카라과에서 커피 산업과 바나나 산업이 나타났는데, 이들 신흥 소지주들이 감히 대지주들 땅을 뺏을 순 없었으니 원주민 땅을 뜯어갔다. 그러자 염료와 목축을 하던 대지주들도 커피와 바나나 재배를 시작했다. 1890년대 자유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후에 정부는 교회의 땅을 뺏어 커피 농장으로 만들었으나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보수주의자들은 20세기 들어 다시 집권해 자유주의자들을 누르고자 미국의 지원을 요청해 니카라과는 19년간 미국의 간섭을 받았다. 세사르 산디노가 이에 저항해 게릴라 활동을 했으나 1934년 잡혀 처형되었지만, 이는 나중에 나올 산디니스타의 어원이 되었다. 한편 이 무렵 국방군의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가 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았으며 그가 암살당한 후에도 아들 루이스 소모사 데바일레와 그의 동생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가 연달아 니카라과의 권력을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1960년대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rente Sandinista de Liberación Nacional)이 결성되었다. 소모사 족벌의 영향력이 강해지자 기존의 기득권층은 위협을 느꼈고 소모사가 1972년 대지진 때 받은 지원금을 횡령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자 소모사에 대한 불만은 더 높아졌다. 그리고 1978년 소모사가 자신에 반대하던 유력지 «라 프렌사»의 페드로 차모로를 살해하자 반 소모사 운동은 더욱 강해졌고, 1979년 마침내 소모사 일당은 쫓겨났다.
산디니스타 혁명정권은 국방군을 해체하고 토지 개혁과 국유화 등을 시도하였다. GDP의 41%에 달했던 소모사 일당의 소유 재산을 빼앗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산디니스타 정권에 반발해 1982년 제재 조치를 취해 세계 최대 바나나 회사가 니카라과를 떠나 큰 타격을 주었다. 내전과 경제 제재로 니카라과의 경제는 막장이 되어 1989년 1인당 GDP는 1960년 수준까지 추락했고 초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환율이 1달러당 25,000,000 코르도바까지 갔다.
1990년 선거에서 막장이 된 국가 상황에서 인기를 잃은 산디니스타는 패배했고, 우파가 집권해 산디니스타가 몰수한 재산을 돌려주고 산디니스타 장교 몇 명이 체포되었다. 그래도 민주화 등이 진행되었으며, 2006년 산디니스타가 선거를 통해 다시 집권하기도 했다.
2007년에 다니엘 오르테가가 대통령으로 재선되었다. 다니엘 오르테가는 1985년부터 5년간 대통령을 역임한 바 있다. 대한민국과는 1962년 수교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국내 사정으로 불참했으나 1993년 대전 세계박람회에는 참가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1978년 외교관계를 맺었으나 단교되었다가 2007년에 복교되었다. 현재 중국과 친밀한 외교 관계를 가지고 있다. 국토의 면적은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넓으나, 인구밀도는 가장 낮다. 니카라과의 지역은 카리브해 쪽의 저지, 태평양쪽의 저지, 그리고 중앙산지 등으로 대별된다. 카리브해쪽 평야는 일 년 내내 비가 많고 무더운 불건강지로서, 늪지와 열대우림이 뻗어 있고, 산림에는 마호가니가 산출된다. 카리브해 쪽의 저지는 인구가 희박하고, 해안의 일부에 바나나 대농원이 점재(點在)한다. 중앙산지는 주로 화산성 고원으로 이루어지며, 기후도 시원하여 목축과 금·은 등의 광산지대이다. 태평양 연안과 2개의 큰 호수) 사이가 이 나라의 심장부로서 총인구의 약 80% 및 산업도 이 지역에 집중해 있다. 수도 마나과(Managua, 약 백만명)도 이 지역의 마나과 호반에 자리하고 있다. 건계(乾季)와 우계(雨季)로 나뉘고 덥기는 하나 살 만하다. 태평양쪽 해안을 따라 화산이 분출하며 토양도 비옥하다. 니카라과의 계절은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 인종 구성은 메스티소 69%, 백인 17%, 흑인 9%, 인디오 5%,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 85%이며, 개신교(17.31%)와 인디오 고유의 종교들도 존재한다. 언어는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다. 그 외에는 영어와 대서양 해안의 크리올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니카라과는 스페인과 쿠바의 영향을 받아 스페인, 쿠바 문화가 많이 발달되어 있다. 니카라과 사람들은 야구를 매우 즐기며 국기(國畿)라고 불릴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하다.
야구 인기가 많은 나라로 1891년에 Managua Base-Ball Club이란 야구팀이 창단될 정도이다. 인구 600만이 안 되는 나라에 야구팀이 4500개, 야구선수로는 7만 명 가까운 이들이 등록되어 있다.1905년 Boer란 팀이 창단되었는데 2012년에도 활동 중이다. 68년에는 자국 리그를 창설했으며 72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 하는 등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이 때 나타난 선수들이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데이빗 그린, 알 윌리엄스, 포피리오 알타미라노 그리고 '엘 프레지덴테' 가카 데니스 마르티네즈다. 80년대에 들어선 윈터리그 형식으로 시즌이 끝난 메이저리거나 마이너리거들을 끌어들여 리그의 인기를 높였다.
니카라과가 낳은 최고의 선수는 바로 데니스 마르티네즈다. 데니스는 74년에 데뷔하여 97년까지 23시즌 동안 커터와 싱커를 앞세워 통산 245승을 올렸고 올스타 4회에 선정되었으며, 1981년 다승 1위, 1991년 방어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마운드의 대통령으로 군림하였다. 마르티네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인 1991년 7월 28일 LA 다저스를 상대로 역사상 13번째의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여 니카라과의 전설이 되었으며 1996년에는 실제로 니카라과의 국민들에 의해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으나 자신이 거절하였다. 데니스는 "El Presidente"라는 닉네임을 얻었으며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던 해에는 임시 공휴일이 선포되고 동상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로베르토 클레멘테다. 클레멘테는 푸에르토리코 태생으로 니카라과와 무관하지만 72년 11월 니카라과 대지진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고 이재민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자신의 돈으로 각종 구호물품을 싣고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인생을 마무리하였다. 이로 인해 클레멘테는 니카라과에서도 영웅이 되어 그의 이름을 딴 야구장도 생겼다.
19세기 후반까지 적막하였던 이 나라의 문학도 불세출의 시인 루벤 다리오(후에리쿠스루벤 가르시아 사르먼트. 1867-1916)가 출현하여 일약 각광을 받았다. 소년시절부터 천재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던 그는, 당시 유럽 시(詩)의 새로운 경향이었던 고답파(高踏派)나 상징주의와 잘 동화되어 크게 도약(跳躍)하여 갔다. 그의 저작 <청(靑)> <속된 속창(續唱)>을 통하여 감상적인 낭만파 시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예술주의를 지향하는 문학운동인 소위 '근대파' 시인의 제1인자가 되었고, 다시 더 나아가서는 한층 내면적 경향을 심화시킨 걸작 <생명과 희망의 노래>를 발표하였다. 참으로 유례가 드문 시적 감각, 그 시가 풍기는 리듬과 조화, 주제 선택의 묘(妙) 등으로 해서 현대 서정시의 최고 시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다리오는, 라틴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당시 에스파냐에서 일어난 신문학 세대(新文學世代) '1898년대(代)'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끼쳤다.
니카라과는 전형적인 저개발국형으로, 주요수출품은 면화(25%), 쇠고기(7%), 커피(13%) 등이다. 면화와 커피는 플랜테이션에 의해 재배되는 일이 많다. 또한 이들 농작물은 대체로 태평양 연안과 2대 호수 사이의 지역에서 생산된다. 행정구역은 15개의 주 (departamento)와 2개의 자치구 (region autonomista)가 있다. 통화, 화폐단위는 코르도바. 수도는 마나과(Managua) 이다.
본래 이 나라에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운하가 파질 예정이었지만 파나마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2013년 6월 13일, 니카라과 의회가 중국 회사에 의한 운하 건설 프로젝트를 승인함에 따라 니카라과에도 운하가 건설될 것으로 보인다. 11년간 400억 달러(45조 원)를 투입해 길이 286㎞에 달하는 수로를 뚫는다는 계획.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중미 지역의 반미감정, 니카라과 자신의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신속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물론 여기에 대해 찬반여론이 비등하고 있긴 하다. 운하 건설과 운영권 유지 기간이 백 년이라, 운하만 완공된다면 미국이 파나마에 대해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하듯이, 중국도 합법적으로 니카라과에 군대를 주둔시킬 명분이 세워져 미국의 턱밑에 갑자기 중국군 기지가 건설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국이 군 기지 건설까지 내다보고 이 사업을 추진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설령 군사기지가 세워지지 않더라도 미국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지 못한 상황일 듯.
2014년 1월 11월,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이 중국 기업인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투자공사(HKND)과 12월 니카라과 운하를 착공하기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전년 6월 운하 건설에 대한 잠정 합의 후 뚜렷한 움직임이 없어 연내 착공이 불투명하다는 기존 예상을 깨트리는 것이다. 이 운하의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은 중남미에 자국에 유리한 경제적, 정치적 거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12월 22일, 마침내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HKND)의 주도하에 니카라과 대통령도 참석한 착공식을 시작으로 500억 달러(약 55조 원)을 투자한 초대형 프로젝트가 개시됐다. 총 길이는 약 280㎞. 컨테이너 25,000개를 실은 대형 화물선 한 척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수로 폭이 넓고 수심이 깊다. 예상 공사기간은 5년으로 2019년 말 완공, 2020년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운하가 완공되면 HKND는 니카라과 정부에 매년 1,000만 달러(약 110억 원)를 내는 조건으로 100년 동안 운하 건설·관리·개발 권리를 갖게 된다. 본격 미국 따라 하기. HKND는 운하 인근에 도로, 항구뿐 아니라 공항, 철도를 건설할 계획이다. 이름을 거론할 수 없는 그 분이 끝내 못다 이룬 대운하 계획이 지구 반대편에서 마침내 실현된다! GDP가 고작 4,500달러(약 496만 원)에 불과한 니카라과 정부는 운하 건설로 중국 자본의 대규모 투자에 의한 경제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현지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 여론은 거세다. 환경단체들은 운하가 지나는 니카라과 호수의 오염을 경고하고 있다. 니카라과 호(湖)는 국민들의 주요 식수원이다. 또 운하가 통과하게 되는 지역 주민 3만여 명도 운하 건설 및 개발의 여파로 삶의 터전을 잃을까 우려하고 있다.
대다수 북중미 나라가 그러듯이 가난과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1988 서울 올림픽 때도 이런 사정으로 불참한 6개국 중 하나이다. 또한, 주변의 남아메리카 국가들에 비해 커피산업이 매우 영세한 편이다. 그래서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커피 농가들을 서포트하여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니카라과 커피는 수세식 커피로서 다른 나라 것보다 커피콩의 크기가 크고 독특한 맛과 신맛이 어우러져 고유의 풍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상기했듯이 2014년 말 드디어 운하 건설이 시작되어 앙골라나 잠비아 같은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니카라과도 운하 건설을 계기로 중국 자본의 대규모 투자에 의한 경제 발전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숙소에 들어와서 짐을 풀었다. 숙소는 니카라과 한인교회 선교 센터. 깨끗하고 편리하고 넓다. 교회 내에 있어 경비가 대문을 24시간 지키고 있어 더욱 안전해 보인다. 경비는 두 명이 교체하는데 경비업체에서 보낸 사람들이란다. 교회는 넓은 주차장과 체육 공간(농구장)과 본당 건물을 갖고 있다.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본당에 올라가 보니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이곳 교민들은 주로 봉제공장을 운영하거나 종사하고 있단다. 미국 정부와 니카라과 정부의 TPL(봉제가 이루어진 경우에 한해 특별관세 혜택을 제공하는 협정) 연장이 안 되고 있다는 것. 니카라과 교민들 중 70%가 봉제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벌써 몇몇 봉제공장은 동남아시아로 이전하고, 인력들도 이동하고 있단다. 이곳의 평균 임금은 15만 원 정도란다. 나라가 경제적으로는 빈곤하지만 행복지수는 높은 나라란다. 나라의 첫 인상이 거리 가득 초록의 나무들로 가득해 편안해 보인다. 선교는 다양한 교단에서 파송된 20여분의 선교사님들이 사역을 하고 있다. 학교는 5월 졸업이다. 새벽 기도회는 새벽 5시 30분에 있다고 박 장로님이 귀 뜸을 해준다. 날씨는 무척 덥다. 지금은 건기다.
숙소에는 물과 빵, 과자, 파파야, 바나나, 사과, 오렌지 등이 냉장고에 넣어져 있고, 세면도구 일체가 준비되어 있었다. 사랑이 부모님이 미리 준비해 놓으신 것이다. 정말 완벽하게 되어있어 감사할 뿐이다. 그냥 니카라과가 좋아진다. 내일 아침 8시 30분에 온다고 알려주시고 박 장로님이 가신다. 이렇게 첫 날 밤을 드디어 다리 뻗고 눕게 되었다.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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