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8일 목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1-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1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안회당(安懷堂)
내 고향 충남 홍성은 유명한 순교 성지입니다. 홍성은 옛날부터 교통, 체신, 행정의 중심지요. 국방의 요새지로 내포의 사도 이존창에 의해 복음의 씨앗이 전해지고, 많은 교우들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비교적 높은 직계의 홍주목사(洪州牧使)가 관장하던 곳이어서 기록상 충청도에서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곳입니다. 그래서 지난 번 교황님이 오셔서 순교복자로 4분이나 시복되셨고, 많은 분들이 신앙의 뿌리를 내리신 곳입니다.
홍주 지방에 박해가 시작된 것은 기록상으로는 1791년 신해박해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홍주에 살고 있던 박취득 라우렌시오가 면천 감옥에 많은 신자들이 갇혀 있는 것을 보고 신자들을 격려하고, 무고하게 감옥에 가둔 것을 관장에게 항의하다가 체포되어 고문당한 후 해미 진영으로 이송되어 순교했습니다. 또한 주문모 신부를 도와 교회의 기반을 튼튼히 구축하는데 기여한 강완숙 골롬바도 잡혀왔다가 풀려난 곳이기도 합니다. 홍주 지방에서 처음으로 순교한 분은 1793년 원시장 베드로입니다. 그는 홍주 원정리에 살았는데 관아에서 모진 혹형을 받고 성 밖에 버려져 얼어 죽었다고 합니다. 이후로 80여 년간 잡혀온 수많은 교우들이 처형되어 죽어갔던 순교의 현장입니다.
지금도 잘 보존된 동문인 조양문(朝陽門)으로 끌려 들어온 많은 교우들은 관청 뜰 안에 있는 나무에 묶여 있다가 동헌인 안회당에 끌려가 심한 문초를 받아 죽기도 했고, 옥에서 굶어 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죽은 시체는 성 밖으로 내다 버려서 서문밖에는 순교한 신자들의 피비린내가 진동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한꺼번에 구덩이에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전교구 성지 소개 참조)
홍주성 중심에 홍성 군청이 자리 잡고 있고 군청 청사의 뒤편에 홍주목의 동헌(東軒)인 안회당(安懷堂)이 있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동헌 중에 이곳만이 유일하게 명칭이 있는 곳입니다. 안회(安懷)란 논어에서 유래된 말로 ‘노인을 평안히 모시고 벗을 믿음으로 대하며 아랫사람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안회당은 홍주목의 동헌(東軒)입니다. 동헌은 현감(縣監) ·수사(水使) ·병사(兵使) ·목사(牧使) ·감사(監司)가 주재하는 관청의 본 건물로, 수령이 사무를 집행하던 건물의 일곽, 즉 대청을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평안함을 품는다는 안회당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죽음으로 이끌어서 하느님 품안에 안식(安息)을 누릴 수 있게 하였으니 그 뜻이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으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고 간 현장이 되었습니다.
동헌을 글자 그대로 풀이한다면 동쪽으로 향하여 있다는 뜻입니다. 관청이 동쪽으로 향하여 있는 것은 태양의 밝은 빛을 받아들이고, 백성을 밝게 바라보며,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고, 백성을 사랑하며, 광명정대(光明正大)한 정사를 편다는 뜻으로 동헌(東軒)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뜻으로 세운 동헌에서 백성을 사랑하고, 바른 정사를 펴지 않고,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처형하고, 박해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헌의 뜻을 무색하게 하였습니다. 광명전(光明殿)에서 비리를 밝혀 온 천하에 떳떳하게 할 수도 있고, 떳떳한 것을 더러운 것으로 뒤집어씌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양보다도 더 밝은 분입니다. 등불에 비길 수 없는 분입니다. 그 빛을 받은 사람은 함지박으로 덮어두거나 침상 밑에 넣어둘 수 없습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 빛을 바르고 밝게 전해야 합니다. 박해가 무서워서 침상 밑에 숨거나 함지박으로 뒤집어써서 어둠 속에 있을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숨겨진 것도 밝혀질 것이고, 감춰진 것도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에 따라서 등불을 등경위에 얹어놓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함지박으로 덮어놓거나 침상 밑에 넣어놓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동헌에 앉은 수령방백(守令方伯)이 빛을 받아 잘 편다면 동헌에 앉아 있을 만하고, 길이길이 칭송을 받을 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밝은 빛을 무색하게 만들 탐관오리(貪官汚吏)라면, 백성을 모질게 대할 것이며, 선정을 펴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동헌에 앉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도 동헌에 앉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늘의 뜻을 헤아리고, 백성의 어려움을 잘 파악해서 선정을 펴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동헌이나 안회당이라는 이름이 명실허전(名實虛傳)이 되지 않도록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되어 준대로 다시 돌려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한 행실대로 되돌려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확고한 믿음으로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하고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9-25
19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0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21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사제가 계십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겼습니다.
23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
약속해 주신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24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25 어떤 이들이 습관적으로 그러듯이
우리의 모임을 소홀히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합시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으니 더욱더 그렇게 합시다.
축일 : 1월 28일 성 토마스 데 아퀴나스 사제 학자
St. Thomas Aquinas
San Tommaso d’Aquino Sacerdote e dottore della Chiesa
Also known as
Doctor Angelicus; Doctor Communis; Great Synthesizer;
The Dumb Ox; The Universal Teacher c.1225 at Roccasecca, Aquino, Naples, Italy
c.1225 at Roccasecca, Aquino, Naples, Italy -
7 March 1274 at Fossanuova near Terracina of apparent natural causes;
relics at Saint-Servin, Toulouse, France
Canonized :1323
이탈리아 아퀴노 교외 로까세까(城)에서 태어난 성 토마스는 아퀴노의 란둘프 백작의 아들이며, 로마 황제와 프랑스의 왕 그리고 태오도라와 친척이었다. 그는 불과 다섯 살의 나이로 몬떼 까시노의 베네딕또 수도원으로 보내져서 교육을 받았고, 1239년경에는 그의 교육을 마무리 짓기 위하여 나폴리 대학교를 다녔고, 1244년에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도미니칸이 되었다.
이때 가족들은 그를 강제로 데려다가 15개월 동안이나 로까세까성에 감금시킨 적도 있었다.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으므로, 1245년에 다시 수도회로 돌아갈 수 있었고, 1245년부터 3년 동안을 파리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파리와 쾰른에서 성 알베르또(대)의 문하생으로 공부하여, 1256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250년과 51년 사이의 어느 대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그 후에는 주로 나폴리, 아나니, 오르비에또, 로마 그리고 비떼르보에서 가르쳤으며,
1259년~68년 사이에 "숨마 꼰뜨라 젠띨레스"를 마루리 지으면서,
저 유명한 "숨마 테올리지까((Summa Theologica.신학대전)"저작에 착수하였다.
파리로 돌아온 1269년에는 수도사제와 교구사제간의 논쟁에 말려들었고,
시제르 브라반트와 요한 펙캄 그리고 파리의 탕피에르 주교의 철학적인 가르침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리용 공의회에도 참석하여 희랍과 라틴 교회의 재일치 가능성을 토의하라는 부름을 받았으나,
리용으로 가는 중에 테라치나 교외 포사 누오바에 있는 시토 수도원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323년에 요한 22세에 의하여 시성되었고, 1567년에는 비오 5세에 의하여 교회박사로 선언되었고, 1880년에는 레오 13세에 의하여 모든 대학교와 대학 그리고 학교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그의 칭호는 "보편적인 박사"(Doctor Communis)이다.
레오 13세는 모든 신학생들이 그의 사상을 연구해야 한다는 "에떼르 빠뜨리"칙서까지 반포하였다.
그의 주요 사상은 곧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 되었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교 최대의 신학지이며, 그의 사상은 그의 사후부터 현재까지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지배하고 있고, 그의 저서들은 신앙과 이성 간의 예리한 구분으로 특징지어지는 탁월한 저작들이다.
그의 "마늄 오뿌스"와 미완성의 대작인 "신학 대전"은 현대 가톨릭 신학의 뿌리로 받아질 만큼 위대한 신학 사상을 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지적 능력 이외에도, 아퀴나스는 지극히 겸손하고 거룩한 사람이다. 그는 환시, 탈혼 그리고 계시를 체험하였으며, "그리스도의 몸"축일 성무일도를 집필했고, 지금의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찬미가, 예컨데 "빤제 린과, 베르붐 수뻬르눔, 라우다 시온, 아도로 떼 데보떼. Devoutly I Adore Thee (Adoro te devote)" 등을 썼다.
또한 그는 주의 기도, 사도신경 그리고 성서 일부에 대한 주해서를 썼다.
한마디로 그는 지성과 성덕의 금자탑이었다.(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오늘 축일을 맞는 토마스 아퀴나스 형제님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축일:1월28일 성 베드로 놀라스코
St. Pedro Nolascus
Saint Peter Nolasco
1182 at Mas-des-Saintes-Puelles, near Castelnaudary, Languedoc, France
- 25 December 1258
Canonized: 30 September 1628 by Pope Urban VIII
Founder : Order of Our Lady of Mercy
프랑스의 귀족 가문 태생으로서, 15세 때에 부친과 사별하면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그 후 그는 바르셀로나로 가서 막대한 그의 재산들을 무어인들에게 잡힌 크리스천 포로 석방 대속금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던 중에 그는 어떤 환시를 보고, 그 지시에 따라 크리스천 노예 해방을 위한 수도회 창설을 결정하였다.
그는 성 페냐포르트의 라이몬드의 도움으로 "속량의 성모회" (Order of Our Lady of Mercy.메르세다리오회)를 창설한 것이다.
이 수도회는 아라곤의 왕 야고보의 지지와 더불어, 1235년에는 그리고리오 9세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이 회원들은 노예 석방을 위한 일은 무엇이든 서슴치 않았다.
그런 과감한 행동을 하던 베드로도 한때 포로생활을 하였는데 1628년에 시성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오늘 축일을 맞는 베드로 놀라스코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