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 곡성은!
내 고향 곡성 들녘은 동악산 정기를 받아 산자수명하고 섬진강이 흘러 청정한 고장이다. 백사장 은빛 세 모래는 모래 뜸질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아지랑이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보리밭에서는 종달새가 유난히도 노래했다. 또 한쪽에서는 고단한 듯 고양이가 하품하고 양지바른 언덕에서 새들이 졸고 있는 오후, 검정 고무신을 신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어깨에 책보를 둘러메고 양철 필통 딸그락거리며 찔레순을 따서 씹었다.
섬진강 버들개지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고, 잔디밭에서 빨갛게 내민 삘기를 뽑아 자근자근 씹어보기도 하고, 진달래랑 아카시아 꽃을 주저리 따먹었다. 그때 그렇게 해맑게 웃어대던 친구들과 어우러져 청보리가 익어갈 때면 모닥불을 피어 놓고 보리 이삭을 구워 먹었다. 때가 까맣게 탄 이삭 뜨거운 줄도 모르고 손으로 비비고 후후 불면 알알이 녹색 구슬 손바닥에 가득 입안에서 터졌다. 구수한 맛이…, 친구 입에도 얼굴에도 검정 화장을 했다. 친구들은 마주 보고 웃었다. 모닥불에 구운 서슬이 하얀 수미 감자 맛은 별미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저 즐겁기만 했었다.
이른 아침과 저녁이 되면 마당 전깃줄에 제비들이 수없이 앉아 합창하고, 감나무에는 참새들의 코러스다.
목이 아프도록 울어대는 매미 소리 요란해지는 한낮이면 섬진강에서 홀딱 벗고 물장구를 치며
피라미나 버들치를 잡아 고무신에 가두었다.
저녁이면 반딧불이가 춤을 추는 마당에서 멍석에 누워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등불 삼아 ‘팥죽 할멈과 호랑이’ 이야기를 듣다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일요일이면 원두막에서 개구리참외와 수박은 별미였고, 새 보러 가는 날 ‘새막’에서 먹던 옥수수와 보리 개떡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고추잠자리가 물결을 이루는 가을 들녘에는 벼 베기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구릿빛 팔뚝이 풍성한 수확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달콤한 오디와 떫은 감을 따기도 했고 밤을 따다 밤송이에 찔려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던 그때의 가을밤은 귀뚜라미 소리에 깊어만 갔다.
초가지붕 위로 하얀 박꽃이 피었다. 지붕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면 처녀들은 물 담은 항아리이고 분주히 저녁 밥상을 준비하는 시골 동네에서 때도 모르고 공터에서 시끄럽게 놀던 아이들은 “밥 먹어야지”하는 어머니의 성화, 그리고 겨울은 성큼 다가오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들녘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고 강아지는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녔으며 외양간 황소는 큰 눈을 더 키워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기개 높은 대나무도 고개를 숙여 겸손하기만 한 ‘호락산’ 소나무도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냈다. 방안에서는 고구마가 싹을 틔우고 사랑방 횃대에 메달은 메주가 익어갔다.
처마에는 고드름이 늘어지다 사라졌다. 아이들이 발갛게 익은 손을 호호 불며 눈사람을 만들었던, 눈이 내린 그 세상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팽이치기, 연 날리기, 자치기, 땅 따 먹기, 술래잡기, 말뚝 받기, 마을 회관 마당에다 줄 긋고 놀이하기, 줄다리기, 깡통에 불 돌리기, 화전놀이 등이 머리에 뱀 돈다.
세월이 흘러 변해 버린 지금, 어릴 적 친구는 호호백발이고. 검정 고무신은 하얀 운동화가 대신하고,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는 문명의 발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초가는 기와와 슬래브로 대체되고, 그 많이 오던 눈은 기후 변화로 잘 오지도 않는다. 동네 공터를 운동장 삼아 놀던 아이들은 산업화를 따라 도시로 떠났고, 벼베기하는 농부는 콤바인이 대신하는 세상으로 엄청나게 발전했다. 더 넉넉해진 이 땅에 살면서도 그 시절 그때가 눈물겹도록 그리운 건 삶에 치인 나이 탓이려나!
첫댓글 풀어낸 어릴적 추억들을 따라 읽자니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한시대를 공유해온 탓이겠지요.
어린 시절은 어찌도 놀 거리가 많았던지요.
집밖에만 나가면 친구들을 만날수 있어 산으로 돌로 쏘다니며 열매따먹고
칡캐먹던 생각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린 날을 함께했던 친구들은 이미 절반이 이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월이 참 무상합니다.
남은 여생을 잘 마무리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추억어린 정겨운 글 잘 읽었습니다.
산에서 캐 먹던 칡도 생각 남니다. 쌀칡과 나무칡, 행운으로 쌀칡을 캘 때면 어찌 그리 좋은지요!
쌀칡을 씹을 때면 어떤 간식보다도 저는 맛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릴 때 놀감도 풍부하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떼 몰려 친구집 방에서 함께 밤을 지내고,
닭설이 하여 닭 기름 마저 몸에 좋다고 싹 비운 그때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놀이도 무궁 무진 했습니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느껴집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그야말로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시절의 아련한 고향의 추억이군요 돌아보는 자욱마다 그리움이 머물러 쉽사리 해어날 수 없는 듯합니다 빈부와 행복지수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순수의 시대가 꿈이런가 싶습니다
인산님 잘 계셨죠! 지금 생각하면 고향이 그립고 옛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진달래 먹고, 떫은 감 물에 울어 먹고, 생쌀도 호주머니에 담아서 먹고 하던 때가
어렵게 살던 때가 오히려 그리워지네요.
친구들과 매일 만나서 놀고 하는 것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행복지수는 오히려 못살 때가 높은 것 같습니다.
순수시대, 소박한 시대, 농경 사회가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요!
댓글 고맙습니다. 한사코 건강 관리 잘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