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나는 ··· 크게 놀랐다.—계시록 17:6. 사도 요한은 무엇을 보고 놀랐습니까? 진홍색 짐승 위에 앉아 있는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큰 매춘부”이며 “큰 바빌론”이라고 불립니다. 그 여자는 “땅의 왕들”과 “성적 부도덕”을 저지릅니다. (계시록 17:1-5) “큰 바빌론”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그 여자는 정치 조직을 상징할 수 없는데, 그가 세상의 정치 지도자들과 부도덕을 범했다고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18:9) 사실 그 여자는 그 통치자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그들 위에 타고 있습니다. 또한 그 여자는 사탄의 세상의 탐욕적인 상업 제도를 상징할 수도 없습니다. 상업 제도는 별도로 “땅의 상인들”이라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18:11, 15, 16) 고대 바빌론은 거짓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따라서 큰 바빌론은 모든 형태의 거짓 숭배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 그 여자는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을 상징합니다.—계시록 17:5, 18. 「파22.05」 11면 14-16항 |
나는 ··· 크게 놀랐다. I wondered with great admiration. —계시록 17:6. Barnes' Notes on the Bible And I saw the woman drunken with the blood of the saints - A reeling, intoxicated harlot, for that is the image which is kept up all along. In regard to the phrase "drunken with blood," compare Jeremiah 46:10. "The phraseology is derived from the barbarous custom (still extant among many pagan nations) of drinking the blood of the enemies slain in the way of revenge. The effect of drinking blood is said to be to exasperate, and to intoxicate with passion and a desire of revenge" (Prof. Stuart, in loco). The meaning here is, that the persecuting power referred to had shed the blood of the saints; and that, in its fury, it had, as it were, drunk the blood of the slain, and had become, by drinking that blood, intoxicated and infuriated. No one need say how applicable this has been to the papacy. Compare, however, the Daniel 7:21, Daniel 7:25 notes; Revelation 12:13-14; Revelation 13:15 notes. And with the blood of the martyrs of Jesus - Especially with their blood. The meaning is, that the warfare, in which so much blood was shed, was directed against the saints as such, and that, in fact, it terminated particularly on those who, amidst cruel sufferings, were faithful witnesses for the Lord Jesus, and deserved to be called, by way of eminence, "martyrs." Compare the notes on Revelation 2:13; Revelation 6:9; Revelation 11:5, Revelation 11:7. How applicable this is to the papacy, let the blood shed in the valleys of Piedmont; the blood shed in the Low Countries by the Duke of Alva; the blood shed on Bartholomew's day; and the blood shed in the Inquisition, testify. And when I saw her, I wondered with great admiration - I was astonished at her appearance, at her apparel, and at the things which were so significantly symbolized by her. 반스의 성경 주석 그리고 나는 성도들의 피에 취한 여자를 보았습니다 - 휘청거리며 술에 취한 창녀, 그것이 계속 유지되는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피에 취한"이라는 문구와 관련하여 예레미야 46:10을 비교해 보세요. "이 문구는 복수의 수단으로 죽인 적의 피를 마시는 야만적인 관습(아직도 많은 이교도 국가에 남아 있음)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피를 마시면 격분하고 복수에 대한 열정과 욕망에 취하게 된다고 합니다."(스튜어트 교수, 로코에서). 여기서 말하는 박해 세력은 성도들의 피를 흘렸고, 그 분노로 인해 죽임당한 자들의 피를 마셨으며, 그 피를 마심으로써 취하고 격분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교황권에 얼마나 적용 가능한지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서 7:21, 다니엘서 7:25 주석, 요한계시록 12:13-14, 요한계시록 13:15 주석을 비교해 보세요. 그리고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로 - 특히 그들의 피로. 그 의미는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린 전쟁이 성도들을 향한 것이며, 실제로는 잔인한 고난 속에서도 주 예수를 위한 충실한 증인이었고, 명예롭게 "순교자"라고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종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3, 요한계시록 6:9, 요한계시록 11:5, 요한계시록 11:7의 주석을 비교해 보세요. 이것이 교황직에 얼마나 적용 가능한지, 피에몬테 계곡에서 흘린 피, 알바 공작이 저지대에서 흘린 피, 바르톨로메오의 날에 흘린 피, 종교재판에서 흘린 피가 증언하게 하소서. 그리고 나는 그녀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녀의 외모와 복장, 그리고 그녀를 상징하는 많은 것들에 놀랐습니다. |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에서 풍유법을 적용시키는 것은 오류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즉, 어떤 상징이나 비유에 사용되는 상황에 나오는 등장 요소들을 하나 하나 다른 의미를 가진 사건이나 사물에 1:1 대응시키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런 방식은 성서의 기자가 미리 그런 의도로 교묘하게 짜맞추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예를 들면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오는데 씨는 무엇이며 씨뿌리는 자는 누구이며 밭은 무엇이며 뿌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1:1 대응을 시키는 방법과 같은 것이다. 물론 이 비유에서는 직관적인 이해가 따르기 때문에 1:1대응에도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비유나 상징의 대부분의 경우는 이런 식으로 1:1 대응을 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작위적인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것으로서 바른 이해가 아니다. 하기사 이런 식으로 성서를 풀이하여 톡톡히 재미를 본 신흥교단이 있으니 바로 신천지 교단이다. 상징과 은유는 그것이 지적하는 핵심 한 가지만을 이해하는 것으로 족하다. 요한 계시록은 주제가 박해 받는 성도들이 인내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편지이다. 따라서 모든 문제는 이러한 잇슈와 관련되어 이해되어야 한다. 계시록에 언급되는 용, 일곱 산, 큰 바빌론, 음녀 이 모든 것은 모두 로마를 상징하는데, 그 제국의 특징적 요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것이다. 로마를 큰 바빌론이라 표현하는 것은 바빌론이 유대인의 포로 상태를 의미하듯이 성도들이 로마의 권세 아래 굴복되어 있음을 의미하면서 바빌론 보다 더 강대하고 세력의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일곱 산은 로마의 지형이 일곱 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며, 용은 그 권세가 엄청나게 크다는 의미를 부각시키는 것이고, 음녀라는 것은 그 나라의 경제 제도가 정경 유착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특정한 조직이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착 상태가 사이가 좋을 때, 즉 탐욕적 왕들에게 이익을 제공할 때는 사이가 좋지만, 그 이익이 사라지면 왕은 음녀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영화 투캅스에 나오는 유흥업소 사장과 같은 꼴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음녀는 종교 조직을 포함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을 겨냥해서 음녀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는 해석은 해석자가 자기가 속한 종교는 빛이고 그렇지 않은 종교 단체들을 싸잡아 악의 세력으로 보려는 전형적인 자기 중심주의적 해석이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의 모든 상징적 요소들은 모두 로마를 상징하지만 그 요소의 특징에 따라 다른 표현으로 묘사된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음녀에 속하지 않으려고 종교에 몸을 담그지 마라는 의미가 아니라, 탐욕에 눈이 어두워져 정경 유착과 같은 부도덕한 방식으로 재물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의 미래는 명약관화한 것이다. 그는 한때 쾌락과 흥에 겨웠으나 결말은 비참하게 된다는 사실이며 비록 현재 어렵더라도 다가오는 미래는 밝은 사회임을 확실히 인식하여 그에 걸맞는 성도의 처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질문:
1. 풍유적 해석이 오류를 일으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2. 요한 계시록에는 로마가 어떤 상징으로 등장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