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프터 양>, 신인류와 노자의 도
철학과 2022101241 변다은
<애프터 양>은 알렉산더 와인스틴의 원작 <양과의 이별>을 각색하여 제작한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이다.
<애프터 양>의 테크노 로봇인 ‘양’은 ‘미카’의 오빠이자 입양된 미카의 뿌리인 중국 문화 교육을 위한 도우미이기도 하다. 일상을 살아가던 ‘양’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작동하지 않게 되고, 미카의 가족들은 미카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양의 재가동을 위해 떠난다. 그러던 중, 그들은 양이 기억장치 속에 저장하고 있던 기억을 발견하게 되고, 단적으로 리퍼 되었다고 보았던 그가 매일 몇 초씩 그의 삶을 저장한 것을 들여다보며 양의 삶을 따라가 보게 된다. 그의 기억에는 알파/베타/감마의 총 3가지의 삶이 존재하였는데 이는 그가 총 두 번의 리퍼를 거쳐 세 가지의 삶을 산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든 양의 기억 속에서 그는 자연을 기록했고, 공간을 기록하고, 자신을 기록하였다. 그가 가진 3가지의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는 양과 그의 기억이 가지는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를 판단하며 영화를 따라가게 된다. <애프터 양>은 미래지향적인 공간에서 새롭게 부여된 가족의 개념과 더불어 ‘양의 삶’을 추적함으로 얻는 다양한 철학적인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통하여 삶과 죽음 그리고 기억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양은 나비 표본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는데, 우리는 이 장면들에서 그가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철학적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인은 나비를 좋아해요. 상심으로 죽고 나비로 환생한 연인에 대한 설화도 있어요. (…)
고대의 중국의 철학가 노자도 이렇게 말했죠. ‘애벌레에게는 끝이지만 나비에겐 시작이다.'
모든 다른 생명체에게도 그런 삶이 존재할까 하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I don’t know, I’m not programmed to believe in that way.’ - 테크노 사피엔스인 그는 그러한 방식으로 사고(사유)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지 않다고 말이다. 그는 끝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괜찮다고 말하며, 그는 그가 그렇게 프로그램화된 것 같다고 말한다. ‘무’가 없으면 ‘유’도 없으니 이것에 슬프지도 않기 때문이라며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노자의 말을 통한 삶과 양이 가진 그 기억들에 대해 다시 살펴볼 수 있었다. 노자는 완전한 개념이자 우주의 원리인 ‘도’를 따라 무위자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었던 중국 철학자이며, 이러한 도를 따라갈 때 우리가 자유롭게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노자가 가진 도와 삶의 개념을 ‘양’에게 적용한다면, 결국 그에게 있어서 자연적인 원리란 그가 계속해서 언급한 ‘프로그램화됨’이 그가 따라가야 할 도일 것이라고 보았다.
연속적인 장면들 속에서 나는 양이 온전하게 도를 따라가는 삶을 가졌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무’가 없다는 것은 자연적으로 삶에 편승하지 못한 그의 삶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 속에서 그는 ‘유’가 발견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양은 그의 사용설명서나 보증서에 적혀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았는가? 그가 어떻게 프로그램화 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인간인 미카의 가족들이 기억을 추정하면서 ‘테크노 사피엔스도 이럴 수가 있나요?’라며 수많은 물음을 갖게 함에 있어서 인위적이지만 자연적인 그의 삶을 따르지 못하였을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원이 켜져 있는 수면 상태로 리퍼가 된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던 그때부터 그가 처음으로 정의되었을 그의 삶의 도를 따르지 못하게 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에게 있어 알파/감마/베타의 삶은 주변인의 감정들과 일생을 통해서 변수의 연속이었을 테다.
여러 삶을 살아가며 ‘애벌레의 끝’을 경험하고 또 인지하고 있는 양에게 ‘나비의 시작’은 그가 사유하는 방식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화 속에서 양은 말한다. 수많은 삶의 끝을 바라보아 끝에 익숙한 그에게 끝은 너무나도 당연하며 그 끝에 그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말한 것 또한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양이 노자의 말을 언급하며 그의 생각을 공유한 것은, ‘사라짐’이라는 개념에 있어서 양의 ‘도’의 실천이 완성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애벌레에게는 끝이지만 나비에겐 시작이다. 결국 이것은 양의 기억을 갖고 살아가게 될 미카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적용되는 말은 아닐까. 양과 함께했던 시간은 끝이 났지만, 그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살아갈 그 가족들에게는 나비의 시작과 같은 새로운 삶과 가치가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노자의 말대로 완전무결한 우주의 원리를 따라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모든 것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이 옳은 방향성이라고 우리는 정의할 수 있을까. 먼 미래로 설정된 영화의 배경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과 그리고 그것이 옳은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단순 프로그램화된 인간일지라도 꼭 그 흐름을 온전하게 따를 필요는 없을 것이며, 당연히 ‘양’이 그러한 것처럼 다양한 기억과 삶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삶에 대한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실천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우주의 원리는 아닐까.
첫댓글 동서양, SF와 고전이 만난 컨텐츠 같네요. 물론 상호 참조될만한 것들을 이리저리 뒤섞어 놓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의 화두들이 포함된 진중한 이야기로 읽어도 될 듯해요. 나비의 꿈을 꾸고 있는 장주, 장주의 꿈을 꾸고 있는 나비, 그 중에서 무엇이 옳으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결국 내가 AI인지, AI가 나인지를 되물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이 무엇을 위(爲, artficial)한다는 것인지를 되물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꼭 보아야 하겠네요. 좋은 작품 추전해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