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내가 처음으로 유럽을 여행하면서 이른바 문화충격이라는 것을 받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벌써 20년 전쯤의 일이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이 글을 업로드 하는 오늘의 시점으로는 꼭 40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유럽의 두 나라를 여행하면서 두 번의 기차여행을 할 수 있었다. 한번은 네덜란드의 수도 헤이그에서 그로부터 기차로 약 한 시간쯤의 거리에 있는 유트레크트(Utrecht)라는 도시였다. 그리고 다른 한 번의 기차여행은 당시 서독의 수도였던 본으로부터 북쪽으로 200여 Km 떨어져 있는 카쎌(Kassel)이라는 지방 도시로의 여행이었다.
유럽에서는 무엇보다도 잘 발달 되어있는 것이 철도 교통망이다. 서울에서 천안쯤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네덜란드의 유트레크트를 헤이그로부터 오가는 기차는 우리로 보면 서울역을 출발하는 부산이나 목포행 열차와도 같았다. 운행 횟수도 적지 않은 듯했고 기차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아 보였다. 나의 일행이 그 기차를 탔을 때는 아침 출근과 저녁 퇴근 무렵의 시간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많은 시간이었던 것도 같다.
본에서 독일의 북부도시 카쎌로 가는 기차는 빠르고 정확하기로 유명한 유로 패스의 특급열차였다. 시속 100Km가 훨씬 넘는 속도로 달리는 기차는 프랑크푸르트 주변에 가깝게 연이어있는 도시들의 보통의 역들을 역사의 이름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며 지나쳐버리고는 했다. 카쎌로 가는 기차는 사람들이 그렇게 붐비지 않아 아주 쾌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카쎌이 가까워져 오면서는 전쟁 영화의 화면이나 소설 속의 장면을 통해서 음습한 느낌으로 내 머릿속에 그려 놓았던 검은 숲,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의 음침한 산림의 모습을 차창을 통해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기차여행을 하면서 하나의 충격으로 내게 다가온 건 그들의 기차 역사가 온전히 개방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를 설명하려면 먼저 우리의 시스템을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쉬울 듯싶다. 우리의 경우 기차역의 매표소와 기차의 승차장은 확실하게 차단되어 있다. 표를 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환영 환송객의 출입을 위해 승차장 출입권을 별도로 판매하기도 하지만 어떻든 표를 사야만 승차장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이에 비해 유럽의 기차역은 역사 전체가 활짝 열려있다. 표를 사지 않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승차장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승차장까지 사람들이 들어가서 자유롭게 손님을 보낼 수도 있고 손님들을 맞이할 수도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표를 사지 않고서도 쉽게 기차를 탈 수 있다. 하지만 기차를 탈 때 엄격한 표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대신 승차가 이루어진 뒤에 차량을 순회하는 차장에 의해 비교적 꼼꼼한 표 검사가 이루어진다. 차표를 사지 않고 기차를 탄 승객이 발각되는 날에는 그 무임 승차자에게 매우 엄한 페널티가 부여된다. 자유라는 가치와 자율이라는 선택권을 시민들에게 부여한 만큼,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이들에게는 무거운 책임이 되돌아온다.
우리와 그들의 시스템의 차이는 보기에 따라서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우리의 것이 태우기 전에 철저한 검사를 우선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것은 차를 탄 뒤 검사를 하는 정도의 차이라면 말이다. 오히려, 효율적인 관리라는 면에서 본다면 애초부터 정확한 사전 확인을 통해 승객을 통제하고 그들의 권리를 확보해주는 우리의 제도가 더 나을 수도 있다. 특히 우리와 같이 기차역과 같은 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몰려들고 매우 복잡하기에 안전의 유지와 사고의 예방을 위해서도 우리의 것과 같은 통제적인 방식의 시스템이 효과가 더 클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서로 다른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는 그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가짐의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개방적인 역사 시스템으로 기차를 굴리고 있는 유럽의 경영자들도 때로는 우리와 같이 편리한 방식을 선호할지도 모른다. 단순한 철도 관리라는 면에서 본다면 훨씬 더 손쉬운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 사회의 더 분방하고 자유로운 시민의식은 그와 같은 통제를 분명 거부할 것이다. 이른바 개찰구라는 작은 통로만을 남겨놓고 승차장으로 연결되는 모든 공간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은 그들에게 아마도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가는 사람과 가지 않는 사람의 경계를 개찰구라는 인위적인 통로 하나로 그렇게 손쉽게 갈라놓을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그들이 그들의 역사를 우리와 같이 매표소와 승차장이 서로 격리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기차에 대한 그들의 소박한 인식이나 애틋한 정서가 결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에게 승차장은 사람들이 단순히 길을 가기 위해 차를 타고 내리고 하는 기능만의 장소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증기기관차가 우람한 소리와 함께 흰 연기를 내뿜고 긴 경적을 울리면서 플랫폼으로 들어오고는 했던 오래전의 시절부터 그들은 그곳에서 반가운 가족이나 손님을 맞이하기도 하고, 서운함을 떨치며 손님을 보내기도 했던 삶의 소중한 추억들을 그 공간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지금도 여전히 그곳이 즐거운 재회의 기쁨에 환성을 지르기도 하고 긴 이별의 슬픈 눈물을 짓기도 하는 애환의 장소일 것이기 때문이다.
차장이 사라지고 승객만이 북적거리는 우리의 기차는 얼마나 숨 막히도록 복잡하면서도 단조로운가. 가고 오는 사람들은 많지만 진정한 여행을 즐기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누군가를 만날 마음 설렘을 안고 기차와 함께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하기야 우리라고 왜 기차나 정거장에 대한 우리 나름의 정서와 애정이 없지 않다. 어느 조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의 하나, 그 첫 번째가 ‘고향역’이라는 방송을 들은 적이 있다. 가고 싶은 고향,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기차가 멈추어서는 고향역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 기차를 타고 고향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고향 역은 그 규모가 아주 작은 곳도 개찰구라는 출입구로 막혀있다. 출발과 도착만이 있을 뿐 인간미가 풍기는 만남과 헤어짐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동과 운송이라는 형식과 기능만이 있을 뿐 떠남과 다다름이라는 삶과 낭만의 감성은 개찰구 바깥쪽 까지로 제한되어 있다.
더구나 우리의 가까운 이웃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가늠해보면 조금은 숨 막힐 듯 답답하고 안타까운 우리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과연 우리들의 이웃과 얼마나 열린 마음의 성숙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조금은 불편하고 성가시지만, 인간적 삶의 냄새가 나는 많은 것들이 능률과 효율이라는 경제 논리에 밀려 우리들의 곁을 떠나가는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경제적 가치와 이해타산에 밀려나서 메마를 대로 메말라가는 사람들 간의 관계와 거칠 대로 거칠어지고 있는 사회의 분위기를 느끼게도 된다. 우리의 주위에서 훈훈한 인정, 여유와 양보와 같은 따뜻한 것들은 점차 사라져 가는 것만 같다. 모두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 이익에만 급급해서 서로를 외면하는 서로의 모습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자유의 이상이나 열린 마음의 발현을 쉽게 펼칠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우리가 무척이나 치열한 생존경쟁의 사회 속에서 매우 각박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훈훈한 인간미와 따뜻한 정을 향해 샘물처럼 솟아나야 할 열린 마음의 자유와 용기, 열정과 사랑이 엉뚱한 곳으로 발산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지방 여행을 하면서 지나치게 되는 우리의 시골이나 소도시의 모습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그런 열림과 자유의 욕구가 마치 절제되지 못한 마을이나 도시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만 같다. 도시나 시골이나 할 것 없이 하루가 다르게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높다란 건물이나 아파트. 도시의 미관이나 그 도읍의 정취와 같은 것들은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우리들의 삶과 활동의 공간을 확대하기 위해서 무분별하게 세워지는 건축물들을 바라보면 특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넓고 편리하게 살겠다는 수요자의 현실적 요구와 최대한의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건축사업가들의 욕구가 결합하여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공간이 도시건 시골이건 무분별하게 창조된다. 우리 생활 최소한의 기준이 된다고 볼 수 있는 법령이라는 것의 최소한의 요건만을 갖추게 되면 받을 수 있는 건축허가가 내려지면 후다닥 뚝딱 건물이 지어지고 그곳에 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작은 도읍이나 마을에도 마치 거대한 공룡의 모습처럼 우뚝 솟아오른 아파트,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몇 대의 차량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면 들어서는 창고형 공장이나 대형 할인매장, 전망이나 위치가 괜찮다 싶으면 산기슭이 파이고 등성이 잘려나가면서 흉물스럽게 들어서는 모텔이나 카페, 너도나도 한 짝의 자투리 땅뙈기라도 있으면 개성미가 넘치다 못해 괴팍한 모습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전원주택... 출구를 찾지 못한 자유의 기상과 일탈의 욕구가 전국 곳곳의 어느 곳이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기형적인 조화와 매몰된 균형의 건축물들이 맹렬한 기세로 솟구쳐 오르고 있는 것만 같다.
역사는 막혀있는 것으로만 보아왔고 또 이를 당연한 것으로 쉽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각박한 현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과연 어떤 것일 수 있을까. 우리의 삶에 대한 여유가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진 얼마 후쯤 우리가 지금 만들어놓고 있는 우리 자신의 이 흉물스러운 모습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있게 될까. 힘겹더라도 마음을 열고, 좀 더 먼 앞을 내다보고, 다른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좀 더 눈여겨본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지속해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열린 시각으로 더 멀리 내다보며 우리가 지닌 문제를 좀 더 여유 있고 인간미 있게 풀어갈 수 있을까? (2003.9.22. 작성)
첫댓글 나훈아의 고향역이 들려오는 듯. 조그만 시골의 기차역은 슬픔과 기쁨의 정이 교차되는 곳이었지요. 우리의 선 개찰 문화는 일본에서 따온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분지로 만든 직사각형 기차표에 역무원이 천공해야만 철로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찰가닥 하며 내는 소리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천국과 헤어진다는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건축물도 많이 다양해졌습니다. 설 연휴...기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던 옛 추억이 떠오르네요.
진짜 선진국은 문화선진국이지요. 나는 해외여행할 때마다 항상 우리가 이 나라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 나라만의 고유성도 있었지만 공유해야 할 정보와 문화도 많이 배울 수 있었지요. 매년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수는 엄청난데 혹여 그냥 즐기고만 들어오는것은 아닌지,그곳에서 배운 선진문화를 실천하려는 국민은 얼마나 있었는지. 특히 국회의원과 공무원들 해외 벤치마킹을 많이 가는 것 같은데 결과보고나 성과에 대한 조사가 있었는가 모르겠네요.
동서양의 역사가 다르듯 다르지요. 어느 것이 옳고 효율적인지를 떠나서 어느 것이 인류 문화 발전에 더 좋은지ㅡ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군요.
내가 해외여행시 가장 큰 관심은 여행국
문화를 우리문화와 비교하는것이지요
1981년 미 보병학교에 위탁교육을
받을때 가장 놀라운것은 시험볼때
감독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달 15일 호주ㆍ뉴질랜드 여행시
새로운 문화를 익히도록 사전연구
요약했네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