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첩 반상이던 식탁은 밀키트로 대체되기 일쑤였고요. 덮밥류를 애정하게 되었습니다. 밥과 반찬 하나로만 커버되는 카레덮밥, 제육덮밥, 두부덮밥 같은 것들요. 누가 보면 베스트셀러 작가라도 되는 줄 알겠습니다. 쩝.
이럴 때 제일 난감한 것이 가족 생일입니다.
이번 주말 중딩 아들 생일이 있었는데요. 아이는 은근 엄마표 생일상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서프라이즈 생일파티도요.
새벽배송, 로켓배송 그리고 반조리식품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감사한 마음 듬뿍 담아 동참해 봅니다.
대신 신선함을 생각해서 정확히 하루 전 날 새벽 배송으로 주문합니다. 전자레인지 5분 완성 잡채와 반조리 동그랑땡을요. 양심은 있는지라 쇠고기 미역국은 직접 끓였습니다.
생일 아침, 아이와 남편이 배드민턴 클럽에 간 사이. 대략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해서 인지 아님 매뉴얼을 머릿속으로 무한 반복 그려봐서인지. 의외로 차분함 속에서 착착 준비했습니다.
잡채는 정성을 다하기 위해 전자레인지 대신 손수 프라이팬에 볶아줍니다. 동그랑땡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달걀물을 한 번 더 입혔고요. 이참에 냉동실도 파내봅니다. 블랙 타이거 새우를 발견. 바로 찜기에 올립니다. 닭갈비도 굽고요.
내내 잡곡밥만 하다가 잔칫날에만 먹는 흰쌀밥을 했어요. 제가 아닌 전기밥솥이요. 김치는 먹던 것은 집어치우고 새로 꺼내 가위로 잘랐습니다. 들쭉날쭉하게요. 친정 엄마가 보면 깜짝 놀랄 모양새입니다.
무튼 한 시간이 채 안 돼 생일상을 완성했습니다. 주부 9단이 다 된 느낌이었죠. 생일상 차리다 말고 제 자신을 마구 칭찬해 주었습니다.
음식도 준비 끝났겠다 아들 몰래 준비한 파티 용품을 꺼내 봅니다. 오랜만에 풍선 묶다 손가락 껍질 다 벗겨질 뻔했어요. 얼얼한 검지 손가락을 움찍거려 봅니다. 손가락에도 살이 쪄서 그런가 싶네요. 쩝쩝.
폭풍 검색 후 야심차게 준비한 건데, 유치하다 하면 어쩔까. 무척 조바심이 납니다.
참고로 설명서가 없어 한참을 헤맸습니다. 혹시 똑같은 제품 구입하시거든 꼭 기억하세요. 얼굴, 몸통, 팔과 다리 합체 후에 머리 쪽으로 공기를 불어넣어 줘야 합니다. 아이돌 비율을 반영한 것일까요. 얼굴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지는 건 저만 그런 건가요. 이 시점, 얼큰 어미는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쩝쩝쩝.
이 많은 풍선 내가 다 불은 거니? 해피 벌스데이 글자 꿰기까지? 그럴싸한 모습에 제 자신을 또 한 번 칭찬해 봅니다. 으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