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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어느 날 느림보와 함께 백담사에서 오세암을 경유하여 마등령을 넘었던 적이 있었다.
오세암 경내에 있는 야외 식탁에서 강 대장님, 곰순님, 유 금화님 그리고 손 희정님과 도란 도란 함께 했던
점심상을 생각하면 지꿈도 목에 생침이 고인다. 네분 모두 내 또래의 한가닥 하시는 여성분 이시다.
운무에 몸을 살짝 감춘 마등령에서 만난 다른 산악회 회원들을 상대로 곰순님은 열심히 사진을 찍어 주시며
우리 느림보 산악회 홍보에 정신이 없어, 잠시 기다리노라니 옆에 계시던 강 대장님께서 북쪽 어느 능선길을
가리키며 저쪽으로 가면 황철봉도 있어요 라며 뜬금없이 띄워 올렸던 화두가 여태도 생생하다.
황철봉? 산이름 치곤 참으로 묘하고 생소하다는 생각만을 잠시 했었는데 벌써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신선암에서 건너다 보이는 울산바위와 동해 바다 조망은 압권이라고들 한다. 혹여
운이 좋아 마등령에서 강 대장님으로 부터 선문답 처럼 비껴 들었던 황철봉을 멀리서 나마 볼 수가 있을까
해서 이번 산행길에 참으로 오랫만에, 일찌거니 방부를 디 밀어 두었다.
어린 시절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면서 많이 불렀던 동요가 바로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로 시작하는 금강산이다. 우리가
오늘 찾아 드는 금강산 화암사 뒷 울타리 능선길에 산재한 봉오리들은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맨 끝봉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곳은 설악이 아닌 금강산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올라 간 진부령 인근에 있는 건봉사란 고찰도 금강산 건봉사이고 화암사 또한 금강산
화암사라면 금강산과 설악산의 경계는 과연?
앞이마가 밀려 올라 간 대머리 총각에게 얼굴과 머리의 경계는 과연? 하고 물었다고 한다.
쉬워 보이지만 엄청 난해한 질문인데 이스라엘의 탈무드에서 찾은 해답은 참으로 간단 명료하다.
세수할 적에 손 닿는 부위 까지가 얼굴이라고 한다. 구럼
축 쳐진 가슴 밑으로 삼겹 아닌 두툼한 오겹살이 공룡능선을 이루고 있는 여성분의 배와 가슴의 경계는 과연?
으 으음 손이 닿았을 적에 신음 소리가 나는 부위 꺼증이 가슴이고 손이 들락거려도 아무런 느낌도 없는
부위가 바로 똥뱃살이라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산과 산의 경계는 령이나 재 혹은 치를 그 기준점으로 하였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북한산과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도봉산의 경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1968년에 김 신조를 비롯한 31명의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급습하기 위하여 침투한 루트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다 최근에 개방을 하여 사전 예약된 인원에 한해 탐방을 허용하고 있는
우이령이 바로 북한과 도봉산의 경계선이듯 금강과 설악의 경계는 건봉사와 화암사가 금강산의 범주에
든다면 그 경계점은 미시령이 틀림없어 보인다.
근자에 북괴놈들이 비열하게 설치해 둔 목함지뢰의 폭발로 국군 부사관 두 분이 다리를 절단하는 참사가
발생하여 남과 북이 극한 대치 상황을 이루다 다행스럽게도 놈들이 혼비백산 꽁지를 내리는 바람에
진정 국면을 맞게 된 불상사가 있었다. 지뢰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대별하면 탱크를 파괴하는 대전차지뢰와 인명을 살상하는 대인지뢰가 있고
폭발하는 방법과 만드는 재질에 따라서도 여러 부류의 지뢰가 있는데 이번에 놈들이 매설하였던 지뢰는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목함지뢰이고 폭발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보면 알 수가 있듯이 강한 바람으로
인명을 살상하기 때문에 폭풍지뢰라 불리우고 사람을 직접 죽이지는 않고 폭풍으로 단지 발목 이하 부위만을
절단하기 때문에 발목지뢰라고 불리운다. 놈들이
목함지뢰를 사용하는 이유는 첫째 제작단가가 싸고 둘째는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지뢰 탐지기로 탐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다리만을 절단하는 발목지뢰인 이유는 상대를 죽여 버리기 보다는 발목만을 절단하면
그 주위의 전투병 서너명이 부상자를 호송하느라 전력이 소비되는 효과를 크게 볼 수 있음이다.
1968년 김 신조를 비롯한 31명의 무장공비는 청와대를 급습키 위해 철책선을 넘어 남하하다 포천 인근의
야산에서 처음으로 나뭇꾼 형제를 만나게 된다. 이 나뭇꾼 형제 중 한 분은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쳤기 때문에 국군으로 위장하곤 훈련중이라고 하는 공비들의 정체를 쉽게 감지를 할 수가
있었다. 노출이 되면 위험하니 아무 것도 모르는 것 처럼 표정을 바꿀 즈음 후일 김 신조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 나뭇꾼 형제를 죽이느냐 살리느냐로 고심하던 지휘부에서 설마하는 심정으로 살려 두곤 우이령을 거쳐
북한산 비봉에서 비박을 하게 되는데 이 나뭇꾼 형제들은 하산을 하기 바쁘게 신고를 하게 되고 대한민국은
금새 경계태세에 돌입하게 된다.
자하문을 넘어 경복고등 인근을 돌파하던 무장공비들은 부하 직원을 대동하고 관내를 순찰하던 종로 경찰서
최 규식 총경의 검문을 받게 되고 급기야는 수류탄을 투척하면서 기관단총을 난사하게 된다.
뿔뿔이 흩어 지던 무장공비들은 인근의 경복고등을 지나면서 검은색 수위복을 입은 수위 아저씨를 군인으로
오인하고 총질을 해 버리는데 후일 김 신조씨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들이 당황해 하며 혼비백산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순간 청와대 인근에서 여러 발의 조명탄이 터지면서 주위를 대낮 처럼 환하게 밝혔던 일이라고
하는데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을 알았는지 유비무환의 일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또 다른 어떤 기록을 보면
그때 즈음 청와대를 경호하는 경비단 대대장으로 부임하였던 전 두환 전 대통령이 부대에서 수시로 박격포
훈련을 하면서 조명탄을 쏘아 올렸기 때문에 실제 상황이 벌어 졌을 때 즉각적인 대처가 이루어 질 수 있었
다고들 한다. 여담으로
당시 무장공비를 토벌하였던 어느 군인의 증언에 의하면 세검정에서 지금의 국민대학교를 거쳐 정릉 일대를
수색하는 임무를 수행하노라니 북한산 자락 이곳 저곳에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이 많은 무속인들이 토굴과
암자에서 기거를 하고 있더란 것이다.
신이 선택한 여자란 책을 펴낸 미모의 무속인 심 진송씨는 유명세 덕분에 꽤 큰 돈을 만졌으리라 헌데 연전에
속편을 펴 내어 읽어 본 적이 있는데 첫 장면이 어느 지인으로 부터 멀쩡한 남자를 소개 받아 종당엔 거금울
날려 버리는 내용이다. 난 이 분이
이런 글을 왜 써 올렸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릇된 종교는 아편 보다 더 무섭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에게, 이미 모든 것이 그 분 것인데 성전을 지어 올림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며
불가에선 우리네 세상을 속세라 하고 우리네들을 속인이라 한다. 그네들이 머무르는
절집은 극락세계에서 떨어 진 어떤 물건인가? 물론 아니다.
속세의 속인들이 비린내 나는 생선 판 돈으로 속인들의 땅에 속인들의 손으로 지은 건물이다.
교회다 절이다 부흥회다 법회다 가 보시면 알겠지만 처음부터 끝 꺼증 돈 얘기로 시종일관이다.
이미 며느리에 손주를 본 내 친구는 부인의 종교 문제로 황혼이혼을 목전에 두고 번민을 거듭하고 있다.
김 신조 일당의 1.21 사태 이후 대한민국은 예비군을 창설함과 동시에 강인한 장교 육성을 위해서 경북
영천에 제3사관학교를 세우게 되고 초대 사관학교 교장으로 정 봉욱 장군이 부임하게 되는데 아주 특이한
경력을 가지신 분이다.
6.25 전쟁 때 인민군 대대장으로 남침하였던 정 봉욱 장군은 영천 인근의 어느 과수원에 주둔하였던 인민군
1개 대대를 이끌고 투항을 하게 되고 국군 군복으로 갈아 있은 정 장군은 전방 사단장을 거쳐 마침내
제3사관학교 교장을 부임케 되는데 여러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참으로 혹독한 훈련을 시키게 되는데
제3사관학교를 졸업하였던 많은 장교분들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정 봉욱 교장을 진정한 은사로
깎듯이 예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들리는 일화에 의하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는 정 장군의 제3사관학교 교장 숙소에서 어느 날 여러 발의 총성이 울리게 되어 황급히
경비병들이 달려 가 보니 글쎄나 정 장군께서 바둑판에 권총을 난사해 버렸다는 것이다. 사유인즉
함께 바둑을 두었던 부인께서 한 수만 물려 달라는 정 장군의 애걸을 끝내 거부해 버리자 화를 참지 못한
정 장군이 바둑판에 총알을 퍼 부어 버린 것이다.
우리 어릴 적만 해도 여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해서 박에 물을 담느냐 아니면 술이나 향료를 담느냐에 따라
뒤웅박의 위상이 즉 어떤 남편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천태만상으로 바뀐다.
평범한 아줌마에서 사모님 꺼증인데 이럴 경우 여성들이 재가 즉 두번의 혼인을 하게 되면 팔자를 바꾼다는
표현을 쓴다. 원래 명리학에서 사주 팔자는
잘 아시다싶이 어떤 사람이 태여난 생년월시 네 기둥에서 각각 두 글자씩 도합 여덟글자를 뽑아 내서 그
사람의 운명을 점치기 때문에 팔자는 바꿀 수가 없는 불변의 숫자인데 과연 어떻게 여성이 재혼을 하면서
팔자를 바꿀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이때 여성이 바꾸는 팔자는 사주 팔자가 아니라 바로 비석 팔자를 말한다.
산행을 하다 보면 명산에 명당이 있을까 하여 여기 저기 써 놓은 많은 무덤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묘비에 보면
유인(孺人) 혹은 학생 김해 김씨 지묘 처럼 여덟 글자의 묘비명을 왕왕 만나게 된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인 혹은 학생이라고 하면 돌아 가신 분이 변변한 벼슬을 하지 못한 무지랭이 였기 때문에 적당히
듣기 좋은 소리를 하기 위해서 신분을 업그레이드 하는 걸로 착각을 하는데 물론 일정 부분 업그레이드
하는 건 사실이다. 유인의 어원을 우선 살펴 보면
조선시대 벼슬은 고위직인 당상관과 당하관으로 나누고 그 벼슬 중에서 가장 말단 벼슬이 종9품 참봉이다.
제 아무리 못 배우고 미천한 신분이라도 장가를 가는 날에는 특별 예우를 해 주는데 머리엔 사모를 쓰고
허리에는 관대를 두르는 복식을 갖춘다. 이 복식이 바로 참봉의 관복이고 그날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는
가마를 타게 되는데 참봉의 예폔네를 유인이라 부른다.
참봉의 마누라로 일생을 마치게 되면 당근 묘비명이 유인 안동 권씨 지묘로 결정되겠지만 이 참봉의 마누라가
재가를 한 남편이 출세를 하여 정승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정승의 예폔네는 정경 부인이 되므로 사후엔
묘비명이 당근 정경부인 안동 권씨 지묘로 바뀐다. 여덟 글자의 팔자가 열 글자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구럼 요즘도 여자 팔자가 뒤웅박 팔자에 비석 팔자 일까요? 그전에 우선 숫놈 팔자는 무슨 팔자인지
먼저 알아 보는 것이 우선 순위일 것 가타여. 숫놈 팔자는 사마귀 팔자 입니다.
사마귀는 우선 등치가 암컷이 월등하게 큽니다. 이리 저리 암컷의 눈치를 보던
숫놈이 잽싸게 암컷의 등 뒤에 붙어서 교미에 성공하게 되면 피스톤 운동이 끝나기 바쁘게 언능 가운데
토막을 뽑아 들고 줄행랑을 쳐야 되는데 전희도 없었던 놈이 후희를 즐기면서 암컷의 등 뒤에서 오래
머물다 보면 장래 태여 날 새끼들의 영양을 고려한 암컷이 훽 허니 고개를 돌려선 여태도 피스톤 운동을
하고 있는 숫놈의 대가리를 버석 버석 깨물어 뜯어 먹는다. 숫놈은
대가리가 날아 간 상태에서도 아랫도리 피스톤 운동은 계속해서 진행된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고사 성어가
바로 숫놈이란 문찌방 넘을 아니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우선 그일 부터 드리대고 본다고 것인데 여기서
참으로 재미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호모 사피엔스 즉 인류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은 사마귀처럼 대가리를 뜯어 먹히지 않을려고 암컷의
등뒤에서 공격을 하는 후배위라는 체위를 선호한다.
남성 위주의 비석 팔자 시절에는 남자가 짝짓기를 하다가 대가리를 뜯어 먹힐 염려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지구의 생명체 중에서 유일하게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다정히 사랑을 나누는 정상위를 고집했었지만
냠냠 쪕쪕 극렬 여성들이 사회와 가정을 장악한 요즘에는 집집 마다 밤이면 밤 마다 뒷통수 슬슬 긁으며
대가리를 후라이팬으로 얻어 맞지 않을려고 사모님 눈치 살살 보시며 개 처럼 뒤에서 후배위만 고집하는
숫넘들이 태반이라고 합띠다. 흐 흐.
보령제약의 창업주 김 승호 회장은 종로 5가에서 1957년 보령약국을 개업하였는데 사람들은 그 약국터를
도깨비터라고 한다. 재산이 불같이 일어 나서 당대에 제약 그룹을 이루게 되었는데 슬하엔 따님만 네 분을
두셨다. 오래 전 부터
경영 수업을 받은 장녀분이 이미 경영권을 인수 받아서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엔 조선 시대
혹은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차기 대권은 사위의 성씨를 받은 외손주에게로 가기 때문에 김 승호 회장의
김씨 성에서 사위의 유씨 성씨로 바뀌는 역성 혁명이 일어 나는 것이 당연지사일 터이지만 흐 흐.
세상 마니 바뀌었슴다.
외손주의 유씨 성씨를 김 승호 회장의 김씨로 바꾸어 버린지가 이미 오래된 일이라고 하네여.
미시령 터널을 지나기 바쁘게 우리의 느림보 리무진은 오래지 않아 금강산 화암사 일주문을 통과하더니만
수암이 올려다 보이는 산행 들머리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철철 넘치는 계곡물과 쾌청한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보노라니 가을 걷이를 마친 농부가 이밥에 고깃국을
먹은 것 처럼 절로 배가 불러 오르는 듯 하다.
수암에서 부터 시작한 우리 느림보 모델학교 학생들의 사진 촬영은 성인봉에 올라 서도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삐이팀 후미 최선봉 돌격대장이란 중책을 맡은 나로선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여서
안부삼거리를 지나 암릉으로 산행을 계속하라고 소리도 쳐 보고 인상도 북북 긁어 보았지만 백약이 무효다.
신선암에 올라 보시라.
상봉과 암릉, 미시령 옛길, 황철봉, 울산바위, 달마봉 그리고 끝간데를 보이지 않는 동해바다 푸른물결과
쾌청하게 온 몸을 스킨십 하듯 불어 오는 가을바람이 지친 나그네의 혼을 빼앗는다.
이룬 날에 산행은 무신 말라 비틀어진 개 뼊따귀 산행이냐며 함께 산행을 했던 몇 몇 대원들과 함께 신선암
너른 바위 위에 펄석 주져 앉아 점심상을 펼쳤다.
함께 점심을 먹었던 철암님을 뵈니 몇 번 산행을 같이 산행을 같이 하며 철암님으로 부터 얻어 먹었던
진미의 희귀 점심상이 주마등 처럼 떠 오른다.
내장 꺼증 알뜰하게 챙긴 싱싱한 전복회를 산중에서 뱃때지가 터지게 얻어 먹었다면 과연 믿으실 분이
있으시겠습니까? 그뿐이 아니라 두툼하게 썰은 혼마구로 참치회를 물경 세번이나 얻어 먹었는데
어느 해 겨울 남덕유산 눈산행을 하면서 천지가 눈으로 덮힌 어느 봉오리에서 철암님,참소리님 그리고 오늘
맛난 약밥을 한소쿠리나 싸 오신 이편님과 함께 쐐주 한잔 곁 드려서 먹었던 그 참치회를 차마 잊기야
하겠습니껴? 그리고 우연히 내 옆에 앉아
점심을 먹는 참소리님은 철암님과 초등핵교 동기생이신데 등산모 밑에서 찰랑 찰랑 거리는 머리카락의 윤기가
장난이 아닐 뿐 아니라 전복 속살 처럼 뽀사시한 피부를 보노라니 보령제약에서 베이비 크림 광고를 할 적에
나온 어린아이를 연상 시킨다. 뿐만이 아니다
개미허리 보다 더 잘록한 허리엔 삼겹살은 고사하고 안창살이나 부채살 마져도 한줌 보이질 않는다.
쐐주 한잔 먹은 객기가 잠시 용틀임을 하면서 내가 일주일만 젊었어도 하는 생각이 움찔하는 것과 동시
팻션으로 허옇게 시어 버린 내 대가빠리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뱃때지가 떠 오르면서 먼데 달마봉과
울산바위를 건너다 보면서 한숨만 여러차례 내 시어본다. 남편 되시는 분이
내 고댜꾜 딱 일년 후배이면 참소리님 나이도 결코 만만치가 않으실 터인데...
돌아 오는 느림보 리무진에서 잠시 잠깐 내가 걸어 왔던 인생길을 반추해 본다. 가을탓인가?
웬지 모를 서글품에 잠시 비 맞은 초상집 개 처럼 몸을 부르르 떨어 본다.
종당엔 주린 하이에나의 한끼 식사로 전락할 늙은 숫사자의 말로처럼 우리네 영장류 또한 어쩜 이리도
귀뚜리 구슬피 울어 대는 가을밤 처럼 서글푸기만 할까? 오늘 따라
아더 밀러가 쓴 쎄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늙은 쎄일즈맨이 갑작스레 생각 난다. 기분도 꿀꾸리한데
시나 한수 읊으며 다음 다음 불갑산 꽃무릇 산행기에서 만나 뵙기를 기약하십시다.
천년고찰 금강산 화암사를 필마로 돌아 드니
후배위는 의구한데 정상위는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분당 탄천변에서 당랑거철 체위 연구가 돌삐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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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경복고등을 지나면서 검은색 수위복을 입은 수위 아저씨를 군인으로 오인하고 총질을 해 버리는데 -----> 정정 무장공비들은 인근의 경복고등에서 검은색 수위복을 입은 임시경비에게 수류탄을 투척하여 큰 부상(얼마 후에 사망하였읍니다)을 입히게 하는데
후미 최선두 돌삐대장님~~!철 지나면 또 추진해 주셔요...단풍이 진하게 물들면 꼭 가고싶어요~~북설악산에~~어찌 잊을 수가 없네요~~후미 최후미~~ㅎ
오랫만에 돌삐님 산행기를 읽습니다.
북설악이라 불리우는 신선대에 올라 별의별 생각을 다 하셨군요.
어쨌거나 여름내 방학을 하신 돌삐님을 뵐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오래된 사람들의 두터운 情이라고나 할까..
이 가을에는 자주 좀 나오셔서 재미있는 산행기 많이 올려주셔요.
꽃무릇 가득한 함평 용천사 길 같이 걸어요..ㅎ
와~~~돌삐님! 대단하신 분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돌삐님 함께여서 즐거웠습니다^^
돌삐님의 지식은 어디까지인가요?
해도 해도 끝이없고 아마도 돌삐님의 불룩나온 배속에서 나오는건지요~^^
산행이야기를 읽을때마다 느끼는건
돌삐님의 체격만큼이나 돌삐님이 크게보입니다.신선대에서 함께하며 일렬로서시오!
업드려서,
누워서,
뒷모습까지 모두 잘따라주셔서 재미있었 습니다.
뭐가바빠 이제서야 산행일기보고 글올립니다.
잘읽고 공부많이했습니다.
돌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