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산행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함께 추억하고
2019년 다시 다가올 산행을 다 같이 기약하다.
“푸른오솔길 송년의 밤”
1.
아침에 일어나니 머릿속이 칠흑입니다.
“면도를 하지 않은 탓일까?”
얼굴이 어둡고 수척해 보입니다. 뱃속도 난리법석입니다.
라면 하나 끓여 허기진 뱃속을 해장국이라 생각하며 달랩니다.
글고 송년의 밤 후기를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머릿속이 뒤죽박죽입니다.
산악회에서 일 년 행사 중에서 시산제와 송년회가 크나큰 양대 산맥인데
이런 자리를 스켓치 하지 않으면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취하는 격이니
산행후기 고까이거가 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입니까?
“그래도 하던 짓은 해야지. 하던 짓을 안 하면 죽는다던데....
안 하던 짓을 하면 그렇다고 했던가?”
근데 내일은 또 서울에서 군향우회 송년의 밤이 있으니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오거나 아님 서울에서 하룻밤을 유해야 할 터이니
오늘 다 마감을 하지 않으면 물 건너 갈 상황이니 서둘러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산행후기나 긁적거리고 송년회 후기는 생전 처음인데
머시라고 이바구를 나불거려야 하나 난감합니다.
2.
세월의 빠름을 탓하는
옛 문인들의 글귀를 굳이 반추하지 않더라도
지난 1년을 뒤돌아보면 한 것도 별로 없어 보이는데
벌써 한 해를 보내며 2018년 송년을 맞았습니다.
시간을 거스를 수만 있다면
아니 멈출 수만 있어도 좋으련만
눈 떴다가 눈 깜박하면 하루가 갈 정도입니다.
원도 한도 없이 살아온 한해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뭔가 한 구석에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일 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이렇게 또 올 한 해도 저물어갑니다.
올해 들어 하필이면 가장 추운 날씨에 지하철에서 내리니 찬바람이 씽~~
내일부터 예상기온이 영하 8~10도로 떨어진다고 하니
이건 숫제 온 도시가 냉동고가 된다는 애기가 아닌가요?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송구영신(送舊迎新)은
늘 겨울 한복판에 있으니
누군가의 글처럼
칼날 같은 날씨가 지난 고통과 남루하고 낡은 것들을
가차 없이 잘라버리기를~~
그러고 보니 오늘이 절기상으로 대설이네요.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임자”하며
다정함을 녹여 부르던 할머니의 또 다른 이름.
눈깔사탕처럼 달달했던 기억속의 그 목소리가 가슴 시리도록 그립고
어머니가 끓여준 사랑의 된장찌개가 더욱 그리운 겨울입니다.
추운 날씨에 많은 분이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서
약간 걱정이 되었는데 정말 기우였습니다.
아자씨 아지매들이 바글바글(아니 쫑파티쯤으로 아셨을까요?)....
12월은 송년회가 많아서 분주한 달이기도 합니다.
송년회의 뜻은 지나온 한 해를 마무리하고 묵은 감정을 떨쳐버리는 둥
한 해를 보내면서 반성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제목은 거창하게 송년의 밤이라고 하지만
올해 함께 했던 분들과 좋은 시간 나누는 자리입니다.
한 해 함께 만들었던 추억과 행복을 만들고자 마련한 자리.
저에게 2018년은 뜻깊은 해입니다.
우연히 푸른 오솔길에 발을 들여놓고 몇 번의 산행을 하는 동안
좋은 친구들과 예쁜 여인네들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달마다 찍었던 점들이 어떤 선이 되고, 그림이 되어
이제 산행을 갈 때면 아직도 이렇게 아름다운 산이 있었구나하며 감탄하고,
산행에서 돌아올 때면 정말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구나하며 자각합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많은 걸 보고 느끼려고 하니
남은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얼마 전에 지리산 종주를 한답시고
친구 놈과 길을 나섰다가 오른 발이 통통 부어오르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하여 며칠 간 치료를 받으라고 했는데
입원했다가 한 잔 하자고 밖으로 나오라는 귓속을 간질이는 달콤한 유혹에
병원 탈출을 밤마다 감행하다가 간호사에게 들켜 한마디 들었습니다.
“양심 불량하게 그러지 마세욧!”
젠장마즐~~~ 김 팍새게 내 뒷통수를 강타합니다.
제 잘못이 아닙니다. 주인 잘못 만난 제 오른 발이 죄입니다.
지리산행도, 병원탈출도 내 발이 한 짓이니까요.
이 대지에서 받은 선물 같은 오늘
바깥 날씨는 춥지만 함께하고자 모인 열망으로
가슴은 훈훈하고 몸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마음속의 선풍기를 돌릴 시간입니다.
아직도 올해 눈꽃 산행을 한번 남기고 있지만
지난 산행을 돌이켜보면 누군가는 산행이 힘들고 어려웠겠지만
오르는 길이 어디 산행에서만 있던가요?
세상살이에서의 만난 굴곡진 삶은 더 힘이 들지는 않았던가요?
하지만 동행이었기에 잘 이겨낸 산행 길이었습니다.
"오름의 코스가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좋은 분들하고 함께라면 어딘들 어떠하리!“
힘든 현실에서 푸른 오솔길의 쉼터에 나와
지친 몸과 마음을 자연에서 씻기고 나면
닫혀 있던 마음도 조금씩 열리게 되고
이 산, 저 산 함께 깔깔거리며 오르고 나면
어느 사이 지친 일상은 잊고 마음의 짐이 날아가 버리기도 했습니다.
산봉우리가 홀로 서 있으면 무슨 멋대가리가 있겠습니까?
서로가 어깨동무하여 너울로 일렁일 때 멋진 산수화로 보입니다.
산은 늘 그렇게 어깨 맞대어 가며 살라고 우리에게 말했는데
손을 다잡고 마음 나누는 그런 마음을 가지라고 했는데....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서로를 지지대로 의지 삼아
봉우리를 이루고, 능선을 이루고, 산을 이루듯....
올라오는 산우에게 손을 내밀어 이끌어 주고
오르는 이의 엉덩이를 받쳐주고 밀어주며
우리 그렇게 살 부비며(?) 어우러져 갑시다.
아기자기하게, 때론 늠름하게
그런 돌멩이가 되어 우리 발길을 옮겨갑시다.
문득‘하느님이 만든 이 대지는 슬퍼하는 곳이 아니다’란
어느 소설 문구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미 지난 과거가 된 날들과 다가올 미래인 새해보다
오늘 현재의 모습을 새삼 새겨봅니다.
20~30대에 마음껏 여행을 하지 못했다는 후회보다는,
그런 후회를 한 40~50대에도 역시 여행을 못 했다는 자책을
60대 이후에는 하지 않도록 기회가 닿는 대로 떠나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새해를 제 삶의 큰 터닝 포인트로 삼으려고 하는데
사는 것이 아직도 어설픈 내가 가능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못해 사는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 가는 삶이 힘들어도
아름답고 소중하게 가꾸어 갈 줄 아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들의 모임“푸른오솔길 산악회”.
더욱 가까이서 함께 하고 싶은 그런 산행 인들의 모임....
그나마 서둘러 오지 않았다면 후회하며 행복은 내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내밀어주는 손을 잡지 못했다면
아마도 지금쯤은 시든 꽃이 된 퇴기가 되어 골방으로 물러나 있었겠지요.
언제인지 모를 또 다른 오늘이 오면
저도 오늘의 글을 다시 적고 있을지 모르고
버거운 삶의 연속에서
다시 오늘을 그리워하고
다시 오늘을 눈물겨워 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이나 우리네의 오늘이 다가오는 미래의 자화상입니다.
인생의 시간은 우리네 마음과는 달리 기다려주는 법이 없습니다.
오늘이 즐거워야 내일이 즐거운 법입니다.
나이 더 들어 그 시절의 안락함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의 가장 청춘인 이 시간을 헛되이, 무심히 흘러 보낸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나쁜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제가 살아온 60년의 시간 속에
기쁨과 그리움 그리고 눈물겨움으로
내 가슴에 깊이 각인된
사람냄새 나는 사람들과 함께
또 그렇게 부지런히 살아가리라고 다짐해 봅니다.
"역경이 있다면 봄을 기다리며 인내하고,
기쁘고 많은 열매가 있다면 겨울을 예측하며 겸손히 준비하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K시에 거주하는 한 아버지가 4남매를 잘 키워 모두 대학을 졸업시키고
시집. 장가 다 보내고 한 시름 놓자 그만 중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
하루는 자식과 며느리, 딸과 사위를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키우고, 대학 보내고, 시집장가 보내고
사업을 하느라 7억 정도 빚을 좀 졌다
알다시피 내 건강이 안 좋고 이제 능력도 없으니
너희들이 얼마씩 좀 갚아다오.
이 종이에 얼마씩 갚겠다고 좀 적어라”했습니다.
아버지 재산이 좀 있는 줄 알았던 자식들은
서로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고 아무 말이 없는데....
형제 중 그리 잘 살지 못하는 둘째 아들이 종이에 5천만 원을 적었습니다.
그러자 마지못해 나머지 자식들은 경매가격을 매기듯
큰 아들 2천만 원, 셋째 아들 1천5백만 원, 딸 1천만 원을 적었습니다.
수개월 후,
문병 한 번 없고, 그 흔한 휴대폰으로 안부전화 한 번 없는 자식들을
다시 모두 불러 모았는데,
이번에는 며느리. 사위는 오지 않고 4남매만 왔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너희들이 얼마 되지 않는 유산으로
싸움질하고 형제간 반목할까보아 전 재산을 정리하고 공증까지 마쳤다.
지난번에 너희가 적어준 액수의 5배를 지금 준다.
이것으로 너희들에게 내가 줄 재산상속은 끝이다.”
장남 1억 원, 둘째 2억5천만 원, 셋째 7천5백만 원, 딸 5천만 원
상속을 적게 받은 자식들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내 치료비와 너희 엄마와 앞으로 살아갈 우리 내외 생활비다.”
자식들을 불효자식으로 키운 것은
어리석은 부모님들의 탓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 것도 내꺼, 부모님 것도 내 것이란 욕심쟁이 자식들입니다.
그러니 가지고 갈 생각마시고 다 쓰고 가십시오.
너무 많아서 다 쓰지 못하시겠다는 여인네가 계시면(수컷은 사절)
제가, 제가 좀 도와드리면 안 될까요?
환갑이 지났는데도 요 모양입니다.
혹시 당신은 철이 드는 방법을 알고 있나요?
우리도 언젠가
그렇게 작고 볼품없어질 것을
가늘고 서러워질 것을
지는 석양도 아까워하며 어쩌면 인색해 질 것을....
드넓었던 우주가 좁아지고
사람이 많은 거리도 쓸쓸해지며
자꾸만 보고픈 것이 많아질 것을....
무서운 것들이 늘어나고
입은 자주 마르고 귀는 더욱 예민해져
바람 한 잎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을....
언제인가, 누군가가 내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었었습니다.
그때 산을 제대로 알지도 모르면서 등산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물음이 있다면 그렇게는 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등산은 취미가 아닌 일상이 되었으니까요.
여행의 단편인 등산은 이제 삶의 목적도, 단순한 취미도 아닙니다.
회사에 출퇴근하고, 때 되면 밥 먹고,
친구들과 커피나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주말이면 춤을 추고,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처럼 산행도 일상입니다.
산행을 뭘 그리 많이 다니느냐는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도,
안타까운 시선도 이제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책이나 신문기사 혹은 다른 사람들의 산행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음 목적지를 정할 때부터 그 설레는 마음은
익숙해지기는커녕 자꾸만 커져 갑니다.
함께 떠날 동반자를 모집하고, 그들과 일정을 짜고,
드디어 그 날이 되어 산행을 떠나면
그 짜릿한 맛은 강태공이 낚아 올린 월척의 손맛 못지않습니다.
여행은 다니면 다닐수록 중독이며, 쉽게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제 건강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곳곳을 다니려고 합니다.
혼자 떠난 여행도 특유의 매력이 있지만,
이왕이면 마음이 통하는 좋은 사람들과 멋있는 풍경, 맛있는 음식,
그리고 그 순간의 소중한 시간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친구든 연인이든....
그 누군가와 추억을 공유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뭐가 있을까요?
간다, 간다 하면서 아이 셋 낳고 간다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마음이 어디 나 뿐이겠습니까?
네가, 우리가,
또강또강 언 독을 깨고 치솟는 돌을 감당 못했음을....
또한 그 차오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음을....
그 돌 부스러기만 모아도 부석사(浮石寺) 뜬 돌쯤 되었을 것입니다.
부석사 뜬 돌 아래로 한 타래의 실이 풀려 내려가고 또 거둬들여지고
시간이 또 그렇게 풀려지고 감겨지고 했을 것입니다.
사연이요?
그거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살아갈수록 자꾸만 늘어납니다.
시간이야 마음만 있다면 한 달에 하루, 이틀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꼭 산행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왕이면 건강과 풍경 그리고 즐거움으로
자기만의 브랜드를 쌓아가는 것은 어떨까요?
행복은 자기 암시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한 번 주문을 걸어보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이 스산한 연말에
탐스런 산행의 추억과 기억을 송이송이 피우면
좀 괜찮지 않을까요?
‘버나드 쇼’라는 어느 미국인은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새겼다고 합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리 될 줄 알았다.”고
살았을 때에 많은 날들을 다음만을 강조하며 차일피일 뒤로 미루다 보니
깨알처럼 많은 날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즐겁게 살날과 건강조차도 뒤로 제쳐둔 자신을 탓했던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게으름을 모르는 이른 봄의 바람이
잠들었던 꽃을 깨운다는 것을....
우리들의 이글거리는 혼이
한 여름의 태양을 부른다는 것을....
열꽃 오른 가을이 뜨거워 진 몸으로 불을 질러
소낙비로는 끄지 못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는 것을....
하얀 눈사람 아저씨는 사계가 바뀌어도
영원히 녹지 않는다는 것을....
산기슭에 걸터앉아 내가 피운 담배연기가
저 파란 하늘을 떠도는 하얀 구름이 되었다는 것을....
3.
혹, 노시다가 내 아픈 발을 밟아도 좋으니
오늘 밤은~~ 뜨겁게, 몸으로 태워버리고
2018년 때 묻고, 멍들고 묵은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보자고요.
그래서 그 빈 공간에 새로운 희망과 밝은 새 기운을
소중히 간직한 추억과 지혜 위에 가득 채워보시자고요.
오늘 우리가 부딪치는 이 술잔에 어찌 술만 들어있겠습니까?
사랑과 우정과 아름다움이 함께 들어있을 것입니다.
산에서 만나 땀 흘린 얼굴에
서로를 위해 손수건을 건네어 준 것 같은 그런 맘이 아닐까요?
그 모습 그대로 오래도록 그 우정 나눠 갖기를 바래봅니다.
송년의 밤 식장에 들어설 때 각자 받은 번호표를 기반으로
경품을 추첨하는 시간이 돌아오니 모두들 귀를 쫑긋 세웁니다.
특히 선물은 그 값의 고하를 떠나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기분을 즐겁게 합니다.
주는 고운 마음과 받는 기쁜 마음이 합해져
이 시간의 행사는 더할 나위 없이 화기애애합니다.
그러나 저는 박복한 탓인지 도로아미가 되었습니다.
튀어 나온 조동이를 가위로 자르면,
두 근은 될 만하게 나온 입을 빨면서 돌아섰습니다.
못 받은 사람이 어디 저 뿐이겠습니까?
그래도 참석한 사람 모두에게 하나씩 쥐어준 스카프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모두 소래산이 허물어질 때까지 매고 다니십시오.
잠시 뒷켠으로 물리고
오늘 행사장으로 가는 길에 도원역 앞 지하도에서
몸을 추위에 떨며 낡은 이불로 감싸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았습니다.
어느 여학생이 따끈한 오뎅 국물과 오뎅을 건네어 주고 있습니다.
그 아주머니를 보고 밖으로 나가 사가지고 온 듯 보였습니다.
세상엔 희미하더라도 끝끝내 꺼지지 않는 빛이 있습니다.
그 작은 빛들은 세상 어두운 곳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일어서는 그 여학생의 웃음이 하얀 치자꽃처럼 밝았습니다.
몸소 자기 몸을 태워 세상을 밝혀주는 촛불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오늘까지 내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조용히 생각해봅니다.
난 거룩하고 고요한 밤은 성탄절에만 있는 줄 알고 있었던
무식한 놈이었습니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어 주는 것" 이라는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이 차가운 세밑도 준비된 따뜻한 마음으로 출발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어제 제가 손길을 더하는‘작은 나눔회’라는
조그마한 봉사단체의 송년의 밤에 갔다가 과음을 하여
새벽에 돌아와 창자까지 뱉어낼 듯 토(吐)를 하여
오늘은 술을 조금만 마시고 조신 모드로 가려고 했는데
건네 오는 우정과 사랑(?)의 술잔이 곤혹스럽습니다.
글타고 배를 갈라 창자를 내보이듯 보일 수도 읍꼬....
무르익어가는 분위기는 딱입니다.
“혹시 평소에 하던 지랄도 명석 깔아 놓으니 안한다고 하려나?
에라~~ 놈은 놈다울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고 어떤 놈이 말했는가?
이미지야 벌써 구겨졌는데
도마 위의 고기가 어찌 칼을 무서워하리....”
“까짓 거 참깨 들깨 다 노는데 아주까리 못 놀까?
한량은 죽어도 기생 집 울타리 밑에서 죽는다고 했는데
철판이 얇으니 망태, 망태 고주망태가 되어 놀아보자.”
음악이 있는 곳엔 악(惡)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갈치가 갈치의 꼬리를 물듯이 노래와 춤이 이어져
밤이 야심한 시간으로 흐르는데도 좀처럼 식을 줄 모르니
우리 오솔길 송년의 밤은 오늘도 열대야입니다.
내 얼굴도 우듬지에 매달린 홍시처럼 붉으레합니다.
땀을 흘릴수록 당신은 청춘입니다.
멋들어지게 낡아간다면
어찌 청춘이 부럽기만 하겠습니까?
다만 그리울 따름입니다.
육신은 비록 낡아가고 있지만
우리 안에는 아직도 20살 청춘이 살고 있습니다.
근디....
가만 봉께
무대로 올라와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니 죄다 여인네입니다.
마치 여인궁에 온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남자들은 행세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앞에 나갔다가 주눅이 들어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혹시 혼자 앉아 계시는 여인네가 있나하고 동태 눈깔로 둘러보았으나
울 산악회 여인네들 인기가 많으셔서 통 옆 자리가 비지를 않더군요,
울 오솔길의 여인네들이 더욱 그리워지는 시간이
‘언제나’라고 말한다면
내가 너무 불쌍해 보일까요?
굳이 화려한 치장을 하지 않아도 좋으리.
그대 고운 입을 통해
내게 걸어오는 진심의 언어라면....
일반적으로 송년회하면 밤 문화의 일환(?)으로
버얼건 대낮이 아닌 껌껌할 때 해서
시간 개념이 상실될 때까지 달려줘야 제 맛입니다.
저물어가는 내 젊음이 아쉬워서 슬퍼할 사이 없이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 가야 합니다.
아니! 그런데 벌써 가자고요?
나는 이제 막 발동이 걸리려고 하는데....
새벽이 밝아오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술과 여자에 호박이 넝쿨째로 떨어졌는데....
2차라고요? 2차?
좋지요! 근데 거그가‘나이아가라’‘나이야 가라’라고 했던가?
‘로스얀젤래스’라고 했던가?
하지만 저는 다른 모임이 있어 살째기 빠져나왔습니다.
‘갈 때는 말없이 떠나가세요.’라는 노랫말처럼....
가을을 몰아낸 겨울바람이 차갑게 함성을 지르며 거리를 활보합니다.
그 찬바람을 들이키니 뱃속의 술기운이‘욱’하고 올라옵니다.
한 쪽 모퉁이로 가서 조금 전에 마신 즐거움을 다 토해냈습니다.
어제도 토하고, 오늘도 토하고 다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내 몸에는 토할 것이 많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편견, 아집, 질투, 자랑.... 등 등 등
그나저나 지금 나가면
“원님 덕분에 나발은 불었는데
오늘도 또 친구들 모임에 가서 밤새 마실 것 같습니다,”
4.
저로서는 놀란 것이 많았던 행사였습니다.
하나. 아직도 울 산악회에 제가 성함을 모르는 산우님들이 많다는 것
한 잔 한 잔 비워지는 잔을 세면서 이름을 외웠다가 까먹고....
담에는 여러분들의 성함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둘, 참석한 여성 산우님들이 죄다 예쁜 미인이다. 라는 것
근데 케이비에쑤는 탈렌트로 픽업하지 않고 뭣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이렇게 예쁜 여인네들이 많으니
고독하고 추운 겨울 한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셋, 죄다 너어어어무 너무 잘 논다는 것
글쎄 열광의 도가니탕입니다.
오늘 노는 것을 보니 내년에는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대접 받고자하는 만큼 대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가 다 좋아하는 친절은 우리 푸른 오솔길의 달란트입니다.
흘러가는 물도 떠 주면 공이라 했으며
깊던 물이 얕아지면 오던 고기도 아니 온다고 했습니다.
또한 화분에 심어놓으면 잡초도 화초라 한다고 했으니
우리 오솔길 산악회는 자양분 좋은 토양을 담은 화분이 되어야합니다.
우리 오솔길 산악회는 회원 모두의 공간이기에
여러분 모두의 관심과 노력도 필요로 합니다.
닭벼슬도 없지만....
난 그냥 푸른오솔길이 좋습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얼 만큼 좋으냐고 묻지 말아주세요. 나도 모르니까요....
카메라의 줌을 당겨보십시오.
어떤 것을 더 크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아주 다른 모습을 갖게 됩니다.
세상을 살다보니
아이스크림 같은 행복이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녹기 전에 우리가 잘 찾을 수만 있다면
큰 기쁨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추억을 쌓아가는 것도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시종알관 진두지휘하여 자리를 마련한 집행부에 감사를 드립니다.
어찌 산악회의 얼굴마담인 집행부의 그 노고를 모르오리까?
큰 희생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작은 희생을 줄곧 계속하는 것은 힘이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수고로 편안하게 깔아준 멍석 위에
신나고 즐거운 한 해를 보낼 수 있었고
또한 그렇기에 혼쾌히 응해 이런 자리에 선뜻 앉아 있습니다.
산우들이여!
그대들이 있어 삶의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이
오늘처럼 즐거울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개인 한분, 한분에게 모든 분께 일일이 감사와 고마움을 표해야 하나
지면 관계상 이렇게 뭉퉁거려 인사드림이 송구스럽고 미안합니다.
다들 이해하여 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내년에는
여인네들이 좀 더 즐겁고 신명나게 놀 수 있는
송년회가 되길 바라면서
다시 한 번 종이학을 접어봅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때론 참고, 때론 겸손하며
함께 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끼는 2019년이 되면 좋겠습니다.
새해보다 더 가까이 있는 성탄절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아닌
가족들 모두 모인 왁자하고 즐거운 밤이 되시고요.
우리들의 우정 오래 오래 꽃 피우길 소망하면서
남은 2018년 뜻있게 마무리하시길 빌면서 후기를 마치며
천상병 시인의 시‘귀천’의 한 구절을 올립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 하리라....”
2018. 12. 7.
ㅇ ㅖ 소 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