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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명 : 휘련[徽蓮]
E-mail : kimyeonji_@naver.com / god_no1-_-@daum.net
출처 : 유머나라 (http://cafe.daum.net/humornara)
매력만점하늘팸☜ (http://cafe.daum.net/gksmfvoadlqsl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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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명 [宿 命] - 71
@ 준수
점심시간.
식당은 더워서 밥먹기도 귀찮고해서 학교 앞 연습실로 왔다.
여기서 동후와 짜장면이나 시켜먹기로하곤 말이다.
"짜장둘이요."
동후는 주문전화를 끝내곤 내 옆에 다가오더니 드러누워버린다.
"이제 내일이면 대회네."
중얼거리듯 말하는 동후.
동후의 말에 예다가 떠올랐다.
예다, 내일 와줄까?
바람쐬러 간다는건, 자퇴한다는 건 다 무슨말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예다가 학교를 나오지않고 온지유가 외박을 하는 걸 봐선
둘 사이에 무슨일이 있는게 분명하다.
어쩌면 나에게 기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RRRRRR-'
'RRRRRR-'
"야. 한준수 네거야."
"아."
동후의 말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가방속에 있던 휴대폰을 찾았다.
휴대폰 액정에는 '예다'라는 두글자가 찍혀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시작한다.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오빠. 나 예다."
"예다야. 너.."
"아무것도 묻지마. 오빠."
예다의 가느다란 목소리에 힘겨운 숨소리가 들려온다.
"오빠, 밥 먹었어?"
"아니, 연습실에서 짜장면이나 먹으려구."
"나 배고프다."
"아직 밥 안먹었어?"
내 통화소리를 들은건지 동후가 내앞에서 온 몸으로 제스춰를 해댄다.
대충 봐선 이쪽으로 오라는듯 한데,
"어디 밖에 나가서 먹을까?"
내 말에 동후가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밖에까지 나가긴 좀 그렇구.
나도 오빠연습실에서 같이 먹으면 안될까?"
"아, 그럼 이쪽으로 와. 오빠랑 전에 왔던 데, 알지?"
"응. 5분이면 도착할거같아."
'딸칵-'
예다와의 통화가 끝나고 동후가 씨익, 하고 웃는다.
"짜장면 하나 더 주문해야겠다."
"응! 할게할게!"
동후는 신이 났다. 뭐가 그리 좋은건지.
"와. 드디어 한준수의 여자를 보게되는구나."
그런 동후의 어깨를 툭, 가볍게 치곤 예다를 마중하기위해 나갔다.
나간 뒤 몇 분안되서 저기 길 끝자락에 예다의 모습이 보였다.
예다의 낯선, 모습이랄까.
조금 진한 화장에 하이힐, 짧은 쉬폰원피스차림이다.
예다와 조금 가까워지자, 예다 특유의 웃음이 보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 웃음이 왠지 힘들어보였다.
"오빠. 미안.."
"미안하긴, 오빠가 너 밥도 제대로 못사줬는데
이런데 와서 먹이려니까 부끄럽다."
내 말에 예다는 또다시 힘들게 웃는다.
"들어가자."
며칠 새 더 야위어진 예다를 바라보다가
가슴이 아파왔다.
많이 힘들어보인다. 뭘 먹고다닌건지.
온지유가 널 그렇게 힘들게 만드는 거니?
"안에 내 친구 한놈있어. 괜찮은 놈이야."
"응."
연습실 문을 열자마자 드러누워있던 동후가 벌떡 일어난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예다가 동후를 향해 손가락질한다.
"어? 그때 옥상에서."
"얼라? 그 때 봤던 예쁜아가씨네. 안녕! 더 예뻐졌네"
동후는 반가운 표정으로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어?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준수 네가 말한 그 아가씨가 이 아가씨?"
"응. 근데 동후 너랑 예다랑은 어떻게 아는거야?"
"아! 그때 나 옥상에서 낮잠잔다고 연습늦은날,
옥상에서 은혜랑 이 아가씨랑 만났거든. 이거 굉장한 인연인걸."
"우연이겠죠."
동후의 넉살좋은 말에 예다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동후야 탕수육도 시켜야겠다."
"왜?"
"응 뭐, 손님도 왔고. 예다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없어. 탕수육 안시켜두돼. 난 그냥 짜장면만.."
"거기 중국집이죠? 아까 짜장 셋 했던 연습실인데요 탕수육 추가요! 군만두도 주세요"
예다가 말할 새도 없이 동후는 전활 걸어 주문하고있다.
오랜만에 고맙다, 강동후.
동후가 날 보고 찡긋 웃는다.
그런 동후를 향해 예다는 어이없다는 듯 픽 웃는다.
나는 방석과 담요를 가져와 예다가 앉을만한 자리에 놓았다.
"고마워, 오빠."
예다는 생긋 웃더니 담요를 덮고 앉는다.
아직도 힘들어보인다. 많이 피곤해보이기도 하고.
이런 예다에게 내일 대회에 오라는 건, 무리겠지?
"이름이?"
"이예다. 오빠는요?"
"난 강동후야! 준수의 베스트지"
동후는 뿌듯한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나는 그런 동후를 쳐다보며 웃어버렸다.
"예다야. 너 내일 올거지?
너한테 보여준다구 준수 연습 완전 열심히했거든."
동후의 갑작스런 말에 나는 놀랐다.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자식 도움 안된다.
"아, 당연히 가야지."
예다는 날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기분이,
좋아진다.
숙 명 [宿 命] - 72
@ 지유
얉게 잠들었나보다.
방문 밖에서 들리는 발걸음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천천히 에메랄드색 천장이 보이기시작했다.
"후.."
눈뜨자마자 다시생각나는건
여전히 이예다다.
손을 뻗어 옆에 있던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번호를 찍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소리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여전히 휴대폰은 꺼져있다.
답답하다 정말.
이렇게 무작정 피해버리면 어떡하냐
나한테 변명할 기횐 줬어야지
바보.
멋대로 생각하며 상처받을거면서
혼자있는거 싫어하면서
[이예다.바람쐬러갔다고만생각할게.
더이상아무생각도안할게.그냥기다릴게]
문자를 한 통 보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똑-똑-'
방문노크소리에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려던
발걸음이 멈춰졌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방문으로 향했다.
"들어가도되?"
한은혜의 목소리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한은혜는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내 방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용건이뭐야."
자다일어나 처음 내뱉는 말이라
목소리가 많이 허스키하다.
"전화로 말했잖아. 줄거있다구"
"뭔데?"
나의 차가운 대답에도 한은혜가 별다른 표정변화없이
내게로 다가와 하얀색 봉투를 내게 건내준다.
"이게 뭐야?"
"예다언니가 오빠한테 주랬어."
"... 알았어."
"저녁먹으러 내려와, 지금.
외박하고 학교빠진거 만회하려거든."
한은혜는 나를 향해 무미건조하게 말하곤 방문을 열고나갔다.
기분이 좋지않다.
이게 뭘까,
봉투속에 든 묵직한 것을 꺼냈다.
.... 젠장. 정말이지 이예다.
날 미치게 하고 싶은거야?
푸른색 돈다발이었다.
.... 하,
숨이 탁 막혀온다.
가슴이 답답해.
그 돈다발을 묶은 띠에 하얀 종이가 함께 묶여있다.
그것을 빼서 펼쳤다.
[빚이니까 당연히 네가 받아야 할 돈이야. 난 다 갚았고 그걸로 끝이야]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우선은 만나서 얘銖瞞煞渼?
그게, 좋을 것 같다.
샤워를 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분주히 접시를 나르시던 어머니께서
날 향해 웃으며 손짓하신다.
"여기 앉으렴."
어머니의 옆자리.
나는 천천히 걸어 그 곳에 앉았다.
내 앞엔 이미 한은혜와 한준수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새아버지께서 식당으로 들어오는게 보였다.
가족이랑 밥먹는다는게 이런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느낌이 묘했다.
"잘먹겠습니다."
"잘먹겠습니다."
한은혜의 맑은 목소리가 식당가득 채워지고,
뒤따라 한준수도 웃으며 말한다.
모두들 식사를 시작한다.
익숙하지 않은 광경에 밥을 먹으면서도 속이 아팠다.
체할 것 같은 느낌.
밥공기를 다 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먹었습니다."
"더먹지않구."
아쉬움이 묻어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식당을 걸어나갔다.
내 뒤통수에 여러시선이 꽂혀있다는 게 느껴졌다.
2층으로 올라왔는데 뒤에서 한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맛이없는건가?"
"신경끄자."
내 대답에 한준수는 주머니에서 노란종이를 한 장 꺼내
나에게 건내준다.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한준수는 빙긋 웃는다.
"초대하는거야."
"어째서?"
내 물음에 한준수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뀐다.
"페어플레이가 좋겠다고 생각했을뿐야."
"무슨뜻이야?"
"말그대로야."
한준수는 그렇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페어플레이?
내가 대체 한준수와 하고 있는 게임이 뭐지?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준수가 준 노란 종이를 빤히 쳐다봤다.
내일을 가르키는 숫자가 검정색으로 인쇄되어있었다.
숙 명 [宿 命] - 73
@ 현민
엠피쓰리를 듣고 앉아있는 내 곁에 누군가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내가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쳐다보자 그 사람이 손을 뻗어 내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빼낸다.
"데이트."
"뭐?"
"데이트하자고. 우리 연인이잖아?"
은혜였다.
오랜만에 보는 은혜의 미소.
심장이 뛰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빠르게
"언제?"
"오늘."
은혜의 말에 오늘 아침 누나의 말이 생각났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자 데이트."
내 말에 은혜가 환하게 웃는다.
"누나 미안해.
나오늘 약속못지키겠어."
"왜? 지민이 들떴단 말야.
오랜만에 우리 셋이 만나는거라구."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잖아.
오늘하루만 나 빼줘라."
내 말에 전화기 속에서 누나의 얉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알았어. 내가 억지로 가자고 그런거니까.
너한테 강요할 순 없지."
"미안."
저기 멀리서 은혜의 이쪽으로 걸어오는게 보였다.
"끊는다, 전화."
"그래."
툭-..
전화를 끊고 앞을 쳐다보자 어느새 은혜가 코앞에 있다.
"아 깜짝이야."
"놀랐어 자기?"
은혜는 놀라 굳어있는 내 팔에 그대로 팔짱을 꼈다.
"오늘 데이트 코스는 내가 정했어. 괜찮지 자기?"
"그래."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서 웃음섞인 대답이 나왔다.
내 대답에 은혜는 더 방긋 웃는다.
나는 참 무서운 사람인 것 같다.
한사람을 웃게만들고 울게만들 수 있으니까.
그건 너무 두렵다.
그애가 나로인해 충분히 상처받을수있다는 뜻이니까.
버스안
"어디 가는거야?"
"자긴 나한테 납치당한거야. 그러니까 몰라야해."
그렇게 대답하곤 방긋 웃으며 날 쳐다보는데 그 모습이 예쁘게 느껴진다.
"그럼 넌 납치범이네?"
내 말에 혼자서 킥킥거리던 은혜가 갑자기 무표정한 얼굴로 날 쳐다본다.
그리고 중얼거리듯 내 이름을 조용히 부른다.
"현민아. 이현민."
"왜?"
"사랑한다 말해줘."
아무표정없이 이 말을 내뱉은 은혜.
나는 그런 은혜를 계속 쳐다봤다.
은혜도 날 쳐다보고있었다.
사랑.. 해,
나는 우물쭈물하고있었다.
마음은 이미 외친 상태다.
아무생각도 나지 않는다.
지민이 생각조차.
내가 망설이는 사이 은혜는 다른 곳을 쳐다본다.
"말하면 납치안하려했는데. 에이 안되겠다.
역시 기다려야겠어."
알수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은혜를 나는 여전히 쳐다보고있다.
은혜는 눈을 감더니 내 어깨에 기댄다.
"고작 납치범이 바랄것바래야지."
내 어깨에 기댄채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애의 말 하나하나가
내 심장에 박힌다.
미안하단 말이, 튀어나오려는걸 애써막았다.
내가 그 말을 하는 순간.
그애는 상처받을테니까.
"다왔다! 내리자."
눈을 감고 있는 줄 알았던 은혜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손을 잡아끈다.
정신없이 버스에서 내린 내가 정신을 차리고 처음 본것은
[LET's DANCING]이라는 노란바탕의 검정색 영어.
여긴, 안되는데.
내옆에 선 은혜가 신난듯 방방뛴다.
"재밌겠지? 그치?"
"어. 그러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은혜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내 손을 잡아끌고 들어간다.
저기가면 누나랑 지민이가 있을텐데.
아. 상황 정말 엿같다.
충분히 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은혜를 설득한다던지 그냥 그대로 혼자나온다던지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머리는 나와야한다고, 외치지만
마음이 차마 그러질 못하고있다.
이건 분명 은혜에 대한 연민, 미안함 따위가 아니다.
그 애의 웃고있는 저 모습을 계속보고싶어서
난 지금 그애와 두손을 꼭잡은채 걸어들어가고있다.
[LET's DANCING] 이라는 글귀가 인쇄된 종이들이
바닥과 벽에 잔뜩 붙어있고 축구장만한 거대한 공간속에
꽤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고있었다.
무대위의 사람들과 무대아래 사람들 구분없이 모두 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있다.
그 옆 전광판에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주며 팀 순서나 시간같은 공지들이 올라와있다.
이 다음 순서가 우리학교 댄스부[calf]였다.
무대와 가까운 쪽에는 콘서트의 스탠딩식으로
사람들이 서서 춤을 추고 있었고
무대에서 멀리떨어진 쪽에는 테이블이 있었다
나와 은혜는 우선 좀 앉기로하고 빈 테이블로 향했다.
클럽 콘서트 대회개념이 믹스된 특이한 대회인것같다.
자리에 앉아서 무대쪽을 쳐다보고 있던 은혜는 나를 불렀다
"이제 우리학교 댄스부 무대야!"
은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음악이 멈추고
무대위에 서있던 사람들이 나가는게 보였다.
"MC블랙입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무대중앙에 나와서 무어라 말하고있다.
"이 다음 순서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번 대회의 유력한 우승후보 [calf]입니다"
숙 명 [宿 命] - 74
@ 은혜
"이 다음 순서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번 대회의 유력한 우승후보 [calf]입니다"
자신을 MC블랙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calf를 소개했다.
오빠가 나오겠구나.
남자친구와 놀러오라며 내손에 쥐어주던 초대장과 오빠의 웃음이 생각났다.
빠르고 강한 느낌의 비트가 울리기 시작하고
무대위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사람들은 모두 숨죽여 무대위로 시선을 집중했다.
무대위엔 여섯명의 사람이 똑같은차림으로 똑같이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너무 똑같아서 모두가 같은사람같은 느낌이든다.
사람들의 감탄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두명의 사람이 뒤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더니 음악이바뀐다.
두 명 중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준수오빠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동후오빠였다.
아까보다 더 빠른 비트.
몸놀림 하나하나가 세세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춤춘다.
사람들이 모두 함성을 지르며 몸을 흔든다.
정말 멋져, 오빠.
쾅, 하고 총소리 같은게 나더니 음악이 끊긴다.
춤추던 사람들이 의아한듯 무대를 쳐다본다.
조명이 꺼졌다가 켜진 무대위에는 한 사람만 서있었다.
올화이트의상이 색색의 조명을 받아 화려해졌다.
오빠였다.
아무런 음악이 없다가 바이올린 독주가 흘러나오고
그 독주를 따라 오빠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전광판에는
정말 예상치못한, 엄청 놀라운 화면이 떠올랐다.
예다언니의 얼굴이었다.
여전히 진한 화장에 웨이브진 긴머리.
조금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웃고있는 언니.
내 옆에 있던 현민이도 놀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대위의 오빠가 예다언니를 이끌었고
언니가 무대위로 올라갔다.
여전히 까랑까랑하게 바이올린 독주가 이어졌고
오빠는 언니를 세워두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전혀 리듬이 없음에도 언니는 오빠를 따라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초후 다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두사람은 무대위에서 사라졌고
일곱명의 사람이 강한비트에 맞춰 춤을 추고있다.
사람들도 덩달아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음악과 조명이꺼지고 calf의 무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MC블랙의 목소리 울렸다.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져나왔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될만큼의 엄청난.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내 옆에서 조금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있는 현민이를 보고있으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예다언니.
바람쐬러간다며 대체 어디있었던거구
어째서 준수오빠와 함께 있는거야.
또다시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현민이가 내 귓가에 대고 전화하러다녀온단 말을 남기고 일어났다.
현민이가 빠르게 걸어나가고 잠시앉아있다가 나도 따라나갔다.
음악이, 소음으로 느껴졌기때문이다.
밖에 나가자 전화를 하고 있는 현민이가 보였다.
나는 아무말없이 그 애의 옆에 다가가 섰다.
현민이가 나를 한번 쳐다보곤 전화에 열중한다.
몇 초 뒤 현민이는 힘없이 전화를 끊는다.
"왜?"
"지유형한테 전화했는데, 안받네.
예다 누날 만나야겠어."
현민이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현민이는 내 손을 잡고 다시 들어가려는듯 발걸음을 옮겼다.
기분이 좋다.
현민이는 무의식중에 내 손을 잡았겠지만
나는 그게 너무 좋다.
"현민아."
"응?"
웃고있던 현민이가 날 향해 고개를 돌리고 난 후
얼굴이 빠르게 굳어지는게 보였다.
내가 아닌 내 뒤에 무엇인가를 보고말이다.
현민이가 쳐다보는 곳으로 내 시선을 옮겼을 때
나는 두 여자를 볼 수 있었다.
이현정 선생님과 하얀얼굴의 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어떤 여자를.
숙 명 [宿 命] - 75
@ 준수
"하아, 하아."
숨이 거칠게 쏟아져 나왔다.
내 옆에서 예다도 약간 상기된 얼굴로 가쁜숨을 내쉬고있었다.
"오빠, 나 놀랐잖아."
예다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요즘들어 잘 웃지않던 예다다.
그러니까, 진심으로 웃지않았단 거다.
"재밌었지?"
"응. 그치만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어."
예다의 말이 끝나자 마자 뒤에서 [calf] 멤버들이 거친숨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모두들 나와 예다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우와 예다 너 짱이었어. 춤 안추고 가만히 서있을 것 같아서 걱정했더니."
동후가 환하게 웃으며 예다를 향해 말했다.
그 애의 말에 예다가 웃는다.
"내가 춤도 좀 추거든."
후배들이 뻥진 표정으로 서있다.
소개를 시켜달라는 눈빛으로.
동후가 그걸 눈치채곤 후배들을 우르르 데리고 나갔다.
"나가자!! 놀러가자고!!"
후배들은 아쉬운표정으로 동후에게 이끌려나갔다.
"자 이거 마셔."
무대 올라가기 전에 사두었던 이온음료를 건냈다.
"고마워. 안그래도 목탔었는데."
예다가 음료수를 마시는 걸 확인하고 난 다음에야
나도 음료를 꺼내들었다.
갈증때문에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는데.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오빠 ..... 고마워."
예다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음료수를 마시다 말고 예다를 쳐다봤다.
"응?"
"고맙다구."
"뭐가?"
"그냥 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는 들고있던 음료수를 내려놓고
예다의 손을 잡았다.
"놀러나가자. 밖에 가면 정말 신날거야."
대기실 문을 열고 나가자 문 옆의 벽에 기대서있던 한 남자가 보였다.
.. 온지유다.
지유가 고개를 들어 우리 둘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그리고 잡은 두 손도.
예다의 얼굴엔 당황함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애의 손에 힘이 빠지는게 느껴졌다.
나는 그 애의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힘주어 꽉 잡았다.
그 애가 그걸 느꼈는지 놀란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후.. 이예다, 얘기좀하자."
깊은 한숨과 미세하게 떨리는 낮은 톤의 목소리.
온지유는 화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천천히 얘기했다.
예다, 지유와 얘기하길 원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 씁쓸해진다.
나는 예다 손을 놓아주기 위해 손에 힘을 풀었다.
하지만 예다가 내 손을 꽉 잡는게 느껴졌다.
뭐지?
나는 조금 놀라서 예다를 쳐다보았다.
예다의 얼굴에는 아무표정도 없었다.
"별로 듣고싶진않아."
예다의 차가운 말투.
예다는 날 쳐다보더니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오빠, 가자."
"어."
나는 아무생각도 들지않았다.
그대로 예다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지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말 좀 들어 이예다!!!"
내 손을 잡고있던 예다의 손을 놓쳤다.
예다가 강한 어떤 힘에 의해 몸이 돌려졌기 때문이다.
온지유가 화난 표정으로 예다의 양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예다는 여전히 아무 표정이 없었다.
분명 그래보였지만, 사실 예다는 떨고있었다.
"....... 너 뭘 잘못 알고 왔구나?"
예다의 조용한 목소리에 지유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무슨 뜻이야."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다시 너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거라는 착.각."
지유의 표정이 멍해졌다. 혼이라도 빠져나간듯이.
"네가 이러는 이유가 뭔데.
내가 여자랑 있어서야? 그게 화나서야?"
"아니."
"그럼 뭐냐고!!"
"널 사랑하지 않아서."
"......뭐?"
"그게 이유야."
"....."
"너도 나 사랑하지 않잖아."
"거짓말이야."
"아냐 거짓말."
"거짓말이야 너."
"... 말이 안통하는구나?"
거짓말이야, 라고 몇번이고 중얼거리던 지유가
힘이 빠졌을때 예다는 그 애를 밀어냈다.
"거짓말... 아냐."
예다는 그렇게 서 있더니 빠르게 걸어 내 옆으로 왔다.
"빨리 가자."
내 손을 잡아 끌며 빠르게 걷는 예다.
예다의 두 눈으로부터 뜨거운 액체가 흘러나왔다.
예다 너.. 정말 지유 사랑하는구나.
온 몸에 기운이 빠진다.
숙 명 [宿 命] - 76
@ 예다
처음에 무대에 올라갔을 땐 당황스럽고 놀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 곁을 맴돌며 춤추는 오빠의 모습을 보니
옛날이 생각났다.
중학교다닐땐가, 축제였던 것 같은데.
그때 오빠가 무대에서 춤추던 모습. 아직도 기억난다.
나를 향해 웃어주는 준수오빠.
그런 오빠에게 너무 고마워서.
난 많이 변해버렸는데 오빤 너무 그대로라서
그게 미안해서
나는 준수오빠를 거절할 수 없다.
"오빠 ..... 고마워."
내 뜬금없는 말에 오빠는 당황한듯
음료수를 마시다 말고 날 쳐다본다.
"응?"
"고맙다구."
"뭐가?"
"그냥 다."
그냥 다다.
다 고맙다.
오빠는 들고있던 음료수를 내려놓고 내 옆으로 와서 손을 잡았다.
"놀러나가자. 밖에 가면 정말 신날거야."
그리고 대기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내 눈앞에는 한 남자가 보였다.
방금 내가 너무 보고싶다고 생각한 그 남자.
하지만 볼 수 없는 남자.
그런 그로부터 도망 치는 나.
지유가 바닥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날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애의 눈 속에 있는 저 아픔과 고통.
그애의 시선은 곧 나와 준수오빠가 서로 잡고있는 손으로 떨어졌다.
오해할거야.
손을 놔야 해. 하지만 준수오빠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 나는 오빠를 거절 할 수 없었다.
"후.."
지유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이예다, 얘기좀하자."
낮은 목소리. 그 애는 화가 난 것 같다.
떨고있었다. 흥분하지않으려는 듯 천천히 말하고 있었다.
그 다음순간, 준수오빠의 손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런 오빠의 손을 내가 꽉 잡았다.
... 미안해 오빠 정말 많이 미안해.
나 용기가 없어서. 두려워서. 겁쟁이라서
오빠 조금만 이용할게. 미안해 정말.
오빠의 놀란표정을 나는 모른체했다.
그리고 최대한 아무표정없이 지유를 쳐다봤다.
... 나는 무서웠다. 그애의 그 상처받은 눈이.
"별로 듣고싶진않아."
최대한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오빠를 향해 말했다.
"오빠, 가자."
"어."
오빠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걸어갔다.
뒤에 지유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내 말 좀 들어 이예다!!!"
나는 거칠게 뒤로 몸이 틀어졌고
덕분에 잡고있던 준수오빠의 손을 놓쳐버렸다.
화가 나 있었다.
지유가 무서운 얼굴로 날 쳐다보고있었다.
내 두 어깨를 잡은 그 애의 손이 무겁게 느껴졌다.
아프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그대로 그애에게 말할 것만 같았다.
보고싶었다고. 보고싶었다고. 또 보고싶었다고.
냉정해져야지.
"....... 너 뭘 잘못 알고 왔구나?"
"무슨 뜻이야."
지유의 표정이 웃는듯 찡그리는듯 변했다.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다시 너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거라는 착.각."
내가 내뱉은 말에 지유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저 멍하게 날 쳐다보고있었다.
"네가 이러는 이유가 뭔데.
내가 여자랑 있어서야? 그게 화나서야?"
"아니."
"그럼 뭐냐고!!"
지유의 고함소리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더이상 지유에게 상처주고 싶지않다.
이걸로 끝내자
질질 끌지말자
안그럼 나 지금이라도 고백해버릴지도 모르니까.
사실은 두려운거라고.
너에게 버림받을까봐 그게 두려워서
너무 행복해서 그게 두려워서 너한테 이러는거라고.
그리고 내 뒤에서 지금 날 쳐다보고있는 준수오빠를
거절할 수 없어서, 놓칠 수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말할순없기에.
지유는 연인이었다. 그래서 언제든 날 떠날 수 있었다.
나는 그게 싫고 두려웠다.
그 애가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있다는 것도 두려웠다.
그 사람때문에 날 버릴수도 있으니까.
미리 미리.
더 아프기전에 마음이 더 깊어지기전에
이번일 핑계로 나 덜아플려구.
이기적이게도 난 그런 여자였다.
"널 사랑하지 않아서."
"......뭐?"
지유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게 이유야."
"....."
지유의 눈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
"너도 나 사랑하지 않잖아."
나는 그애의 눈을 쳐다보고 말했다.
난 그냥 한번 스쳐지나간 바람같은거라고 생각해줘.
이렇게 생각하지만 곧 내 심장은 아프다.
이 애가 날 정말 그렇게 생각해버릴까봐.
"거짓말이야."
"아냐 거짓말."
"거짓말이야 너."
"... 말이 안통하는구나?"
바보같아. 온지유
너 잘난새끼잖아. 나같은거 때문에
그렇게 바보같이 있을 필요없잖아.
나는 내 어깨에 올라와 있던 그 애의 손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나는 그애를 쳐다보지 못하고 밀어냈다.
바로 돌아서서 말했다.
"거짓말... 아냐."
최대한 빠르게 걸었다.
다시 그 애가 날 잡으면 안되니까.
지금 내 눈이 뜨거워져 있으니까.
준수오빠의 손을 잡았다.
"빨리 가자."
그곳을 빠르게 벗어났다.
내 뒤에 그대로 서 있을 지유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생각하지말자. 더이상
숙 명 [宿 命] - 77
@ 은혜
"아."
당황한 표정의 현민이가 한참동안의 침묵끝에
신음비슷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 소리와 동시에 그 애의 앞에 서있던 이현정 선생님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이현민."
딱딱한 선생님의 음성이 끝나기 무섭게
선생님 옆에 서 있던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또르르.
너무 맑아서, 그런 소리가 들릴 것 만 같다.
"왜 울어 공지민. 네가 왜울어. 화를 내 이 바보야."
공지민?
............ 어디서 많이 들은 익숙한 이름.
그래. 그 여자구나
현민이의.
이현정선생님은 더이상 현민이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 여자를 쳐다보고 안타까운듯 쓴목소리로 다그쳤다.
여자는 아무말도 하지못하고 있었다.
현민이는 스르르, 유령처럼 내 곁에서 사라졌다.
앞으로 한걸음, 두걸음.
그리고 그 여자를 끌어안았다.
"울지마 지민아."
.... 따뜻함이었다. 그런게 묻어나왔다.
하하, 제길
비참하네.
이런분위기속에서의 나란 존재는.
나는 나를 쳐다보는 이현정 선생님의 눈길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그리고 바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곳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탓ㅡ..'
아.
손목이 아린다. 너무 아파.
뒤를 돌아봤다.
현민이가, 서있었다.
"은혜야.."
현민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앞이 뿌옇게 흐려져있었다.
현민이의 긴 손가락이 내 눈가에 닿았다
나, 울고 있었나?
"나 급한일 생겨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현민이가 잡은 내 손목에 더 힘이 들어갔다.
"거짓말"
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더이상.
"현민아."
현민이는 아무 미동없이 날 쳐다보고 있다.
나, 역시 욕심이었나?
저 여자 보는 순간 미칠 것 같은 이 마음.
저 여자 안는 널 보는 순간 비참한 이 마음.
"헤어지자. 그러자. 우리."
내 말에 현민이 표정이 굳어진다.
"아니. 뭐 우리라고 할 것도 없네.
나 혼자 정리하면되니까.
아, 뭐 예다언닌 걱정마.
그러니까 너 나한테 이러지않아도되."
한마디, 한마디 꼭꼭 힘주어말했다.
그런 날 쳐다보던 현민이가 힘없이 픽- 하고 웃었다.
"갈게."
나는 아주 환하게 웃었다.
여전히 현민이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애가 뭐라고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너..."
"그만!"
"....."
"아무말도하지마.
듣고싶지않으니까."
나는 더이상 웃지않았다.
....... 웃음가면도 이젠 지겨우니까.
그대로 뒤돌아서서 달려갔다.
놓아줄게
그럴게
내 두눈으로 확인하고 나니까
내가 끼어든거라는거 확실해져버렸어.
아주 비참하게도
숙 명 [宿 命] - 78
@ 현민
"현민아.."
갔어.
하하. 그냥 그대로 가버렸어.
멋대로 말하곤
나는 한마디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곤
바보
한은혜 바보야 너.
"현민아.."
뒤에서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게 느껴졌다.
뒤돌아 섰을 땐 지민이가 서있었다.
그녀는 더이상 울고있지 않았다.
... 그냥 습관이었다.
그애가 울때 달래주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걸
지민이를 껴안고나서야 깨달았다.
은혜가 있었는데.
이현민은 정말 멍청하다.
바보같이 생각만 하고있다가 문득 떠올랐다.
잡아야겠어. 그애
이상하게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마음이 시키니까
그애한테 어서 달려가보라고.
내가 한걸음 내딛었을때
뒤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지민이었다.
".... 가지마. 현민아."
제발............
제발.......
"미안해 지민아 나 지금.."
"너 가면 나 죽어."
지민이의 반짝이던 두 눈이 파르르떨렸다.
나는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그대로 내딛은 발을 다시 옮겼다. 내가 서있던 곳으로.
".. 그런 말 하지말랬잖아. 나 안가."
지민이가 내 품을 파고들었다.
심장이 텅 비는 듯 몸이 나른해졌다.
모든 생각들도 일시정지. 그대로 멈췄다.
눈을 감았다.
이 모든 게 나 때문이야.
바보같이 마음같은거 가져버린.
그리고 그걸 지금 깨달아 버린.
... 그냥 미쳐버리고 싶다
정말 병신이다. 이현민.
한참을 그러고 서있는데
지민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 저기 들어가서 구경하자. 응?"
".. 그래."
나는 지민이 손을 잡고 걸어나갔다.
천천히 걷고있는데 뒤에서 누나 목소리가 들렸다.
"이현민."
뒤를 돌아보았다.
.... 처음이다
누나의 그런 모습.
누나는 사시나무 떨듯 떨고있었다.
그리고 머리가 아픈듯 인상을 찡그렸다.
"왜."
나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누나의 얼굴이 굳어졌다.
"내가, 내가 잘못하고 있는거니?"
누나는 항상 내게 말했다.
지민이를 지켜줄 수 있는건 '우리'뿐이라고.
그것에 대해서는 철저했다.
나는 누나를 향해 '응'이라고 대답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정말 지유형 말이 맞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한사람 마음안에 두사람이 들어가긴 너무 벅찰것 같다.
내 마음은 안그래도 좁은데.
결론은 그거다. 한은혜였다는거.
물론 과거형이다.
난 한은혜라는걸 깨달은 동시에 또 한가지를 깨달았다.
난, 한은혜에게 갈 수 없다.
올가미같이.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
하하.
"누나 탓 아냐. 내 탓이야."
누나마음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다.
언제나 누난 그게 옳은 일이라고만 생각해왔으니까.
그런 누나의 착한 마음을 지켜주고싶을 뿐이다.
이 더러운 세상에 우릴 내버리듯 외국으로
가버리신 부모님을 대신 해주던 누나였으니까.
그런 것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었다.
누나가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 사람 몫을 억지로 두 사람 몫으로 나눌 필욘 없는거니까.
하나의 아픔이 두개가 되는 순간이니까.
나는 그런 불필요한 일은 하지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의 지민이의 손을 꼭 잡고 건물로 들어갔다.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내겐 그저 왕왕거릴뿐이었다.
지민이를 테이블에 앉혀놓곤 바(bar)로 보이는 곳으로 걸었다.
웨이터에서 맥주를 주문해 바로 입술을 갖다댔다.
복잡해진 머릿속으로 단순화시켜버리기 위해서
술을 부어넣는다.
....... 빨리 취하길 간절히 바라며.
숙 명 [宿 命] - 79
@ 준수
"오빠. 나 좀 피곤한데."
지친표정의 예다가 나를 향해 미안한 듯 말한다.
"집에 가려구?"
"응 그러고 싶어서.
아, 나 곧 집 옮길 생각이야"
"언제?"
"그건 모르겠어. 집주인 아저씨가 계약기간남았다구
계약위반이니뭐니 그래서 생각만 하고있어."
예다의 웃음이 텅 비어버린 것을 느낀 순간이다.
이 애, 많이 아파보인다.
그 자리, 그 아픔, 그 비어버린 곳에 내가 있을 순 없는걸까.
원랜 나였잖아. 처음은 나였으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욕심을 부려본다.
"도망은 안갈거야. 도망가면 지는거니까."
"그래."
"나, 갈게. 오빠.
마지막에 상 받는것도 못보고 가서 미안해."
"아냐. 아무생각하지말고 집에가서 푹쉬어.
지쳐보인다."
예다에게 택시잡아주겠다고 했지만
예다는 끝까지 거부했다.
혼자있고싶다고.
그렇게 예다를 혼자 보내고
마음이 편치않았다.
그 애가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
"정말 뜨거운 열기군요.
이제 마지막, 대상 시상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남자MC는 흥분된 얼굴로 열변을 토하고 있다.
사실 귀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예다가 신경쓰여서이다.
"대상은..........!!!"
귀가 막힌듯 웅웅거리다가
내 뒤에서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뒤돌아보니 동후가 씨익 웃고있었다.
그제서야 귀가 뚫렸다.
엄청난 환호성이 귓속을 후벼팠다.
"우리가 해냈다고!!! 리더!
달려가서 어서 상받아오라고!!!"
댄스부팀원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내가 MC를 쳐다보자 MC가 신난표정으로 트로피를 든 손을 뻗고있었다.
나와, 우리 팀을 향해.
우리가 해냈구나. 드디어!
"상은 트로피와 댄스장려금입니다."
스피커를 통해 MC의 설명이 이어지고 나는 트로피를 받아들었다.
"소감 한 말씀하시죠 리더!"
MC가 마이크를 내게 가져다대고 환호성으로 가득찼던 곳이 금세 조용해졌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감사합니다. 저희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축하인사가 쉴새없이 들어왔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 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도 예다는 여전히 신경쓰였다.
대회 시상 후, 파티가 벌어졌다.
그래도 명색이 리더라고 빠질 수 없었다.
지금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예다에게 달려가고싶었다.
가서 실컷자랑도하고 말도 해주고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겠지.
"임마. 이제 유학갈텐데, 가서 내 몫까지 열심히해라."
동후의 장난끼섞인 말소리가 들린다.
"무슨말이야?"
"에이. 모르는 척은! 그 대회 심사위원중에 뉴욕에서 온 안무가가 너 캐스팅했대."
"뭐?"
"뭐야. 정말 몰랐던거야? 너 빼고 다 알고있었는걸?"
동후의 눈을 보니 장난으로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전혀 듣지못한얘기다.
'RRRRRRRRRRR-'
'RRRRRRRRRRR-'
"어이 한준수 네거다."
동후는 그렇게 내 어깨를 가볍게 툭 치더니
주변을 한번 둘러본 후 어딘가로 바쁘게 걸어갔다.
나는 그런 동후의 뒷모습을 끝까지 좇지않고
휴대폰을 찾아 폴더를 열었다.
"여보세요?"
"한준수씨 휴대폰입니까?"
"네, 그런데요."
"네. 저는 이미연입니다.
이미 들으셨을거라고 생각됩니다만,
한준수씨를 캐스팅하려는 분이 계십니다.
모레쯤 만나보고 싶어하시는데요.
괜찮으신가요?"
낯선여자의 목소리에 익숙한 내용이 들려왔다.
아,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동후자식이 장난으로 한 말이 아니였다는거.
"네. 모레 괜찮습니다."
"시간은 언제로?"
"그 쪽에서 좋을대로 정하시죠."
"그럼 오후 7시경으로 하죠.
그 때 뵈요."
통화가 끝나고 나는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캐스팅.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것 아니었나.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보면
내가 춤을 추기 시작한 것도 예다때문인데
내가 춤을 추면서 원한것도 예다인데,
이대로 예다를 두고 훌쩍 떠날 순 없다.
.... 어떻게해야하나,
숙 명 [宿 命] - 80
@ 현정
"선생님! 오셨네요."
저기 뒤에서부터 큰소리로 나를 부르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녀석.
"아, 응. 왔지 누구 초댄데."
나의 말에 그 아이는 넉살좋게 웃었다.
"제 무대 보셨어요?"
"응. 봤어. 굉장했어. 수상 축하해."
"뭘요. 샘 오늘 예쁘시네요."
얼라, 이자식봐라.
그래도 귀엽게만 보인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여간 넉살 좋은 게 아니다.
"나야 뭐 늘 예뻤지?"
내 말에 그 아이가 피식, 하고 웃는다.
"뭐야. 그웃음은? 비웃는거야?"
"아뇨. 샘 귀여워서요."
"뭐?"
아무리 그래도 학생한테 그런 말 들을 정도로 나 만만한 건아닌데.
이녀석 상대좀해줬더니 그런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거지?
"너 그런 말 하지마. 샘 화낸다? 어느정도 선은 지켜야지."
"선이요? 전 샘하고 그딴거 그을 생각 없는데."
배실배실웃는게 모르고 막 말하는 것 같기도하고
그 말을 가만히 듣고있으면 또 다른식으로 해석도 되고.
아무튼 미스테리한 녀석이다.
"네가 무슨 선을 말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샘은 사제간의 선을 말한거라구."
내 말에 그 아이는 아, 하고 웃어댔다.
"그런데요 샘 어쩌죠?"
"응?"
"저 선생님 사랑하는데요."
아까 웃음가득하던 그 애의 얼굴엔 웃음의 흔적이 전혀없었다.
믿을뻔했다.
정말 저 애가 날 사랑하는 것 같다고.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 녀석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여있다는 것을.
"그런말은 여자친구한테나 해."
"저 진심인데요?"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석.
나도 그 녀석을 쳐다보다가 정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린다.
"샘 갖고 놀면 재밌니?"
"전혀요. 전 진심입니다. 거짓말안해요."
그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아찔해져버렸다.
드라마속에서만 외치던 대사를 내가 외쳐야하는건가?
넌 학생이고, 난 선생님이야 라는 유치한 대사를.
헛웃음이 나왔다.
그녀석은 미동도않고 나를 그대로 쳐다보고서있다.
"무슨 대답을 원하니?"
"대답같은거 필요없어요. 그냥 받아들이시면 되요. 저를."
그애의 입가에 씨익, 하고 웃음이 떠올랐다.
두근.
순간 그래버렸다.
칵테일을 너무 많이마셔서 지금 정신이 없는거야.
그래, 그런걸거야.
나는 나보다 키가 큰 그녀석의 머리를 꾸욱 눌러 밀어냈다.
"학생은 학생답게 사랑하는거야."
내 말에 그 녀석은 빙글, 웃더니 능청스럽게 대답한다.
"학생답게 당신 사랑하죠 뭐,"
... 이거 뭔가 잘못되어간다고 느꼈을때
이미 늦어버렸다.
그애가 진심인것이다.
학창시절에 교생선생님한테나 가지는 그런 일시적인 감정이아니라는거
내가 느껴버렸다.
젠장.
나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내가 당황해하고 있는 순간 그녀석이 빙긋 웃으며 돌아선다.
"샘 제가 지금 좀 바빠서말이죠. 나중에 전화드릴게요."
전화라니.
내 번호를 안다는 뜻인가?
의아하다는 내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아이는 자기 또래 무리로 달려가버린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는 나.
대체 뭐야 이현정. 꼬맹이 따위에 이런 생각이나 하고말야.
아무래도 칵테일이 독했나보다.
첫댓글 으... 속상해 솔직하지 못한것들...
헤. 사람은 늘 솔직하지 못한 법이죠(웃음) 댓글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