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비바람 몰아치던 천둥 번개가 무섭던 전날 밤의 기운이 행사 날 아침까지도 여운의 꼬리를 흐느적이며 차창으로 비를 뿌려놓으며 가슴을 졸였지만 남쪽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는 습기를 날리고 서서히 밝아지며 안동하회마을로 진입하자 오히려 청정한 햇살이 눈부시다.
2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08시 20분경 서울을 출발한 버스와 08시 부산을 출발한
버스는 우리의 첫 만남의 장소 안동 하회마을 병산서원에 동시에 접속한다.
2005년 문경새재 때 보다 많은 인원이 다시 만나는 반가움으로 두 손을 마주 잡고 건강함에 감사하며 뜨거운 우정을 확인하며 고즈넉한 전통의 한옥 마을 안에 들어선다.
작년엔 서울 62명. 부산 52명으로 총원 114명이 참가하였으나 올해는 16%증가한 총 132명의 인원이다.
처음 보는 반가움도 있지만 나와 있어야 할 동기들을 볼 수 없는 서운함도 있다.
포사랑회장 이주형은 제사로 불참하고, 초목회 회장 이창훈과 전 총장 박상용은 부인땜에
불참한 것인가.
서울의 이신우, 임철수군과 부산의 김윤철과 손영수, 마창지역의 임영재, 김기성군은 불가피한 개인사정이 있나. 명단에 올려놓고 보이지 않는다. 사하지구의 골프멤버 김상현, 성재일, 이규용, 신재호선생과 박권병 변호사도 안 보여 서운하지만 최수일 교수, 유봉식, 차갑성군을 볼 수 있어 반갑다. 섹스폰 이병옥과 설광룡군도 나타나지 않았다.
좁아진 비포장도로에서 버스와 승용차가 교행하기 어려운 좁은길에 잠시 지체하다
주차장에 정차하고 병산서원에 우선 들린다.
병산서원(屛山書院 )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적 건축물로서, 류성룡(柳成龍)과 그의 셋째아들 류진(柳袗)을 배향한 서원이다.
류성룡(柳成龍)선생이 살아계실 때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선생의 문집을 비롯해 각종 문헌 1000여종 3000여책이 소장 되어 있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선생의 제자들과 유림이 뜻을 같이 하여, 서원 안에 사당(존덕사)을
세우고 위패를 모셔서 선생의 학덕을 이어받고 추모하며 향사(제사)를 올리던
서원인데, 앞의 병산(안산)이 너무 높고 급하여 강물은 빨리 흐르고, 땅의 기운이 쌓일 틈이 없이 계속 밀려 내려가므로 이런 터에서는 재물이 쌓일 틈이 없어 살림집의 입지로는 부적합하지만 교육시설로는 안성맞춤인 터가 된다. 인적이 드물어 학문수양에 방해가 없으며 뛰어난 경관을 앞에 하여 꽉 짜인 서원의 규율과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숨구멍이 트여있는 그런 곳이기에 서원의 터로는 안성맞춤이다. -네이버검색에서 인용편집.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옛 선비들이 공부하기엔 그지없이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이다.
만대루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은 자연그대로의 멋이고 자연에 순응하는 맛이다.
동양의 3국이 나름대로의 독특함을 연출하여 비교되지만 중국은 웅장함과 장대함의 멋이라면 , 일본은 인위적으로 자연을 내 것으로 끌어드리려 하지만, 우리나라의 건축과 조경은 자연을 그대로 두고 자연의 일부로서 건축되어 지므로 자연스럽다.
앞에 펼쳐져 있는 병산(屛山)은 이름 그대로 병풍을 펼쳐놓은 듯 아늑하고 고요해서 바람에도 움직임이 없고 강물은 흐르는데 병산의 녹음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니 강물의 푸르럼과 산의 녹음이 일체를 이루어 그 시원함이 유월의 공기를 타고 만대루로 전해져와 머리를 맑게 할 것이 틀림없다. 환경이 인간의 심성을 지배한다면 이런 좋은 풍광에서 걸출한 인물이 배출되지 않는 것이 이상할 노릇이다. 이곳에 3가지가 들어오지 못하였다하니 그것은 여자, 술. 광대 등이었다 한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 부자가 방한했을 때 기념 촬영했던 입교당 마루에 걸터앉아 안내원의 설명을 한참 듣는다. 시원한 한줄기 바람을 맞으며 우리 단체인원들이 한 군데서 기념 촬영한 장소는 마땅치 않다.
병산서원을 나와 우리는 화회마을로 이동한다.
8년 전 아내와 둘이서 한옥에서 민박을 하며 느꼈던 그 전통의 냄새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풍산 유씨가 600년간 살아온 마을. 한국의 유교. 민속마을 대표하는 마을이고 109세대가 살고 있으며 기와집 162동을 포함하여 458동의 가옥이 있다. 국보 2점을 포함한 문화재 18점이 있으며 주민이 살고 있는 사유재산이 많으므로 붐비는 관람객들로 인해 사생활도 곤란할 점이 있을 것이다.
안동 화회마을의 독특함은 전통이 이어지는 한옥마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물줄기와 만 그루의 소나무가 서있는 만송정. 강둑길과 모래사장 . 직벽바위가 아름다워 보이는 부용대( 芙蓉臺 ) 등이 어우러진 자연에 있음을 금방 눈치 챌 것이다.
강가에 마을이 생긴 것이 아니라. 마을이 강가를 끌어들인 것 같기도 하고, 강이 마을을 돌아 감아 나가는 모양이라 물하河. 돌아갈 회回. 하회마을이라 하는 것이나 그것은 강이 먼저 인 것 같기도 하고 마을이 먼저 같기도 하나 어찌보면 같이 어우러져 당기고 미는 음과 양의 조화인 극히 자연스러움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것을 두고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봉황포란형 (鳳凰抱卵形)이라 일컬으니 일리가 있는 해석이다. 또는 낙동강이 S자형으로 감싸 돌아가므로, 하회마을을「山太極 水太極 - 산과 물이 태극 모양」또는「蓮花浮水形-물에 떠있는 연꽃 모양」이라 부른다. 풍수지리에 따른 마을의 주산(主山)을 화산(花山)이라 부르고, 부용대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화천(花川)이라 함은 연화(蓮花)에서 비롯한 이름이라 한다.
부용대 정상에서 하회마을 주위의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산하(山河)와 마을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택지와는 달리, 집들이 태극형의 강줄기를 향하여 남서북으로 각기 향하여 있는 특수한 마을형태를 볼 수 있으며, 아래로는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겸암정사, 옥연정사, 화천서원이 있다 하나 시간관계로 부용대까지 갈 수 없었음이 아쉽다.
마을중앙 혈(穴)에 해당하는 곳에 600년 된 느티나무가 위용(威容)있게 버티고 있다.
정월대보름이면 마을 동제洞祭가 열리는 곳인데 나무주위의 밧줄에는 관광객들의 나름대로의 소원을 비는 흰 종이에 온갖 바람들이 다 적혀 펄럭거리고 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하는 기도는 잘 들어주시지 않은 하느님이듯이 로또번호를 꿈속에서 가르쳐 달라는 바람은 이루어지질 않을 것이다. 마음으로 여기 모인 26동기들 뿐 만 아니라 오지 못한 동기들과 해외에 있는 친구들의 평안과 안녕을 바라는 소원을 한 가닥 걸어 올려놓았다.
마을에 들어가서 고택들을 둘러보는 우정의 길은 행복한 공간이 된다.
입암(立巖) 류중영 선생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 부르는 양진당(養眞堂)이라고 은 사랑채는 고려건축양식이며 안채는 이조건축양식으로서 고려양식과 이조양식이 공존하는 고택이며, 풍산류씨 겸암파 대종택(大宗宅)이다. 유봉식군은 풍산류씨는 아닌 듯 보인다.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이 별도로 건립되어 서애선생의 귀중한 저서와 유품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바깥마당에 엘리자베스2세의 방문 기념식수가 있다.
고택들을 뒤로하고 빠져 나오면 강을 마주하고 우회 전 길로 접어들면, 울창한 만 그루의 소나무가 깊은 그늘을 이루는 만송정을 지나, 우리 만남의 장소 솔밭민속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함께 한다.
안동 특산물 간 고등어와 두부 막걸리. 소주 .맥주와 더불어 지나간 추억 되새김에 웃음꽃이 만발하고 부산 회장단과 서울 집행부의 인사말에 이어 오랜만에 나온 친구들의 소개가 이어진다. 서울 현동우회장과 부산 김태년 회장의 폭탄주에 이어 김정곤 부회장과 전상섭 서울수석 부회장이 잔을 부딪치고 최영수 전임회장은 소폭(燒爆) 여러 잔에 깊이 취한다.
춘천강원대학교 구재오 건축과교수가 오랜만에 참석하였고, 대전의 장원표 . 박오옥 . 박성주 교수도 합류되었다. 의사모임을 주도하는 방홍기, 이재학, 최낙준 원장도 반갑다.
김경용군 얼굴이 오랜만이고, 부산의 회장단을 비롯한 착실 멤버외 경북일보 편집국장으로 내정된 장 진군이 반가운 얼굴이고 명부에 누락되었던 차갑성군도 나타났다.
이철학사장은 건설업과 더불어 가공축산물공급회사의 특판본부장까지 겸하여 더블잡으로 활동중이다. 동아대학의 배흥규 교수도 동부인하여 참석하였고, 마창지역(馬昌地域)의 이양춘은 건강하고, 하주곤은 거대한 몸무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전기연구원의 김호용본부장과 통영에서 건설업하는 한원우군은 동부인하여 행복해 보인다.
이용희원장은 여전히 좋게 보이고 포항의 김철원군이 올라와 주었고, 이동수울산대학교수도 자리를 함께 했다. 진주 삼현여고 우종덕군은 전혀 몰라보게 달라져 버렸다. 양준영군이나 이상배군 보다 더 하얀 백발에 흰색으로 염색한 것처럼 깊은 白色이 내려 앉아있었다.
카츄사 켐프케이시 출신인 하성봉군도 여전히 활발하고 박재창군은 오히려 젊어져 있었다.
서울로 연고지를 옮긴 유봉식군은 서울 지리가 어두어 집 찾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미국으로 건너가 십 수년 만에 귀국한 짱궤 김정권군도 너무도 그리운 얼굴이다.
3시로 향해갈 때, 일박이일로 먼저 출발한 배기호 백두대간 팀들이 밝은얼굴로
뒤늦게 나타난다. 1년 계획으로 조선의 백두대간 산행을 실천해 오고 있는 배기호군은 대단한 의지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이제 백두대간 전체구간의 반을 넘어 정상을 향해 일박이일야간산행을 주말마다 계속하고 있는데 이번 대동제에 맞추어 서울 산악회 대원 3명의 대원들이 배기호와 합류되어 원정 산행을 함께 한 것이다. 정종화 원장. 장만옥 센타포드.
그리고 박봉희 1호수사관이 의지의 한국인들이다. 모두들 전날의 천둥번개를 동반한 악천후로 걱정했는 데 무사 귀환하니 누구보다도 김일상 산악회장은 안심하며 이병호 전임회장을 비롯한 대원들은 한시름 놓게 된다.
안동찜닭이 맛있는 건 음식이 맛으로 맛있는 것이 아닌 것이 친구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음식은 누구와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식사는 향과 색으로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할 때 맛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낮술에 취해 얼굴이 붉은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노을처럼 붉은색이기 때문에 붉게 물들어지는 것이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와서 인생의 반백을 넘어
친구들과 한 잔술에 붉은 얼굴이 아닌 친구는 비겁한 친구인지도 모른다. 좋은 친구는 그냥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같이 보냈던 토성동의 추억과 덕형관 원형교사에서의 젊은 시간들- 그 많은 힘듦과 괴로운 시간, 어긋남과 화해 . 마음의 격동과 파도,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지냈던 세월들을 공유한 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앞으로의 삶이 얼마이든간에 우리가 함께한 시간의 깊이만큼 보다 더 깊은 우정으로 우리는 손잡을 것이다.
비가 멎고, 천년의 햇살이 비추었던 하회마을의 지나간 시간 끝에 다시 다가올 또 천년의 시작점에 우리는 만나 지난 40년 세월을 말하고 앞으로 지나온 세월만큼의 우정의 깊이를 다시 쌓으려 만나는 것이다.
아쉬워하는 시간이 흘러
이젠 이별이지만.
차창 밖에서 차 안에서 서로 흔드는 손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가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시 쌓아
오년 후 십년 후 라도
비록 백발이 내리더라도
다시 건강하게 만날 것을
서로에게 하는 무언의 약속
들이다.
2006년 6월 12일. 대동제를 하루 지나고 삼성동에서
이 유 상 기록
- 끝-
-註 : 사진을 다 올리지 못함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 사진은 06경부대동제나 06행사관련
첫댓글 정말 즐거운 시간들이 되었겠다. 나이 들어 친구와 함께하는 것 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 안동서 찍은 사진 중에 얼굴들을 좀 자세히 볼수 있는 조금 더 큰 사진들이 있으면 올려주라!!
주필의 글을 대하며 그 모습들을 머리속에 그려본다.창현이 얘기대로 자세한 모습 볼수 없어 아쉬움은 있지만...
창현 군, 재경 카페의 '06대동제'를 열어보시게. 다양한 사진들이 즐비하게 게시되어 있다네. 보고 몸살 앓을까 걱정이네.
창현, 영녕의 마음과도 함께한 좋은 시간이었소.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또...
이 주필님!! 정말 고생 마이 했습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유사이! 해박하고 좋은 내용에 존경심이 앞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