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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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눈빛, 귀한 관계로 아이들을 만나세요
지하철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경사가 완만한 언덕을 넘어가자 저 멀리 희망교회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희망교회 간판보다 ‘희망오름’센터 차일이 더 눈에 띠게 잘 보였습니다. 봉천동의 상가와 주택가가 밀집된 지역에 위치한 이곳 청소년을 위한 센터는 그 장소가 필요한 아이들의 접근이 용이한 곳에 있었습니다.
‘희망오름’차일이 펼쳐진 공간으로 들어가 봅니다. 좁게 앉으면 50명 정도까지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한쪽에 있는 주방에선 미리 식사준비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늘 메뉴는 닭죽인 모양입니다. 곧이어 자원봉사자 선생님들도 한두 명씩 들어와 인사를 합니다. 아직 아이들은 오지 않은 시간입니다. 초등학생들은 3~4시 정도, 중고등학생들은 5~6시 정도 되면 이곳을 찾을 것입니다.
현재 희망 ‘신나는집 문화학교’와 ‘희망오름’을 함께 하고 있는 이는 희망교회의 담임목회자인 장남수 전도사입니다. 그는 올해부터 희망교회의 담임과 시설의 시설장을 맡고 있습니다. 장 전도사는 신학생 시절부터 이곳과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벌써 10여 년이 훨씬 지났습니다.
1975년 사당동, 당시 도시빈민들이 많았던 그곳에 희망교회가 문을 열었습니다. 당연히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이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다 사당동이 재개발지역이 되면서 그곳에서조차 살지 못하는 빈민들은 더 외진 지역을 찾아 떠나갔습니다. 희망교회는 자신의 집이 재개발되면서 더 이상 그곳에서 살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값이 싼 봉천동으로 이사를 갔고, 희망교회도 그들을 따라 봉천동으로 향했습니다.
신림동과 더불어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봉천동에는 고향을 잃고 집을 잃은 채 시련의 시간들을 보낸 가난한 이웃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자 이곳 봉천동도 재개발의 광풍이 불어왔습니다. 92년 신림 10동, 93년 봉천 2동과 6동, 94년 봉천 5동…등으로 점차 재개발의 삽날은 이웃들의 삶을 조여 왔고, 그들은 또다시 철거민이 되어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떠나지 못하는, 아니 떠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 희망교회의 전춘우 목사는 봉천동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철거반원과 싸우기도 하고, 그들과 같은 애환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90년대 말 IMF 위기가 터졌습니다. 구제금융시기가 되자, 그 폐해는 고스란히 밑바닥층의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어 서서히 다른 계층으로 옮겨 갔습니다. 봉천동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당연합니다. 일거리를 잃은 가장은 대낮부터 술에 찌들어 있고, 어머니들은 한 푼이라도 벌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들어갑니다. 견디다 못해 이혼하는 가정도 크게 늘어갔습니다. 이 와중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볼 기력조차 갖지 못하는 가정들이 많아졌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나가지 않았고, 거리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하루 한 끼도 얻어 먹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희망교회는 우선 이들을 위해 밥을 했습니다. 배고파하는 아이들을 우선 먹여야 했습니다. 밥 주는 교회로 소문이 나자 식사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교회주변을 서성거렸습니다. 교회는 좁고 낡았지만 아이들은 미어터졌습니다.
몇 년 동안 아이들에게 밥을 제공하다가 점차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밥뿐만이 아니라 문화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뜻있는 자원봉사자들도 찾아왔습니다. 지역이 대학교 근처라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많았습니다.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그림을 가르치고, 놀이를 가르치고 그들이 원하는 댄스를 가르쳤습니다. 그때는 지역아동센터가 없었을 무렵입니다. 지금은 관악구에만도 여러 지역아동센터가 있는데, 희망교회에서 하던 일들이 지역아동센터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을 기반으로 1998년 ‘희망 신나는집 문화학교’가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아이들의 시각에서 출발하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의 내용을 고민하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급식이나, 안전을 지원하는 보호활동, 공부방선생님을 통해 함께 학습할 수 있는 학습지원, 아이들의 이미용이나, 목욕, 의료지원 등을 위한 생활지도, 문화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지원,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밤늦게 배회하는 아이들을 위한 야간보호 등의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신나는집 문화학교가 주로 초등학생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희망오름’은 중고등학생이나 탈학교 학생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신나는집 문화학교는 아무래도 손이 더 가는 초등학생들을 위주로 활동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청소년들이 또 소외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점점 커나가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따로 공간이 만들어질 필요가 생겨났습니다.
‘희망오름’은 봉천동 지역 청소년 전용 지역아동센터인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학습과 정보, 문화와 건강 안전 등의 프로그램을 지역적 특성을 담아 시행하고 있습니다. 희망오름은 따로 지원을 받았습니다. SK로부터 전세자금을 지원받아 조그만 전셋집을 얻어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사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SK는 이러한 희망오름의 프로그램을 보고 자체적으로 해피존이라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어 시행하기도 합니다.
2000년 신학생 시절부터 선배의 권유로 자원봉사자에 합류한 장남수 전도사는 희망오름이 여러 군데로 전셋집을 옮겨가면서도 활동을 계속해 왔다고 전합니다.
그러다 지금의 건물이 있는 곳으로 옮겨왔는데, 지금 이 건물은 자가임대를 하여 희망교회와 신나는집 문화학교, 희망오름이 모두 입주해 있습니다. 이사할 불편은 없어졌지만 빚이 많은 상태라 늘 힘겹게 시설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장 전도사는 희망센터의 ‘정보의 바다’로 알려져 있습니다. 각각의 아이들의 신상부터 시작해서 집안대소사까지 훤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 중에서도 기억나는 학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수지(가명)는 장 전도사가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부터 그를 잘 따르며 살갑게 대했습니다. 수지는 가정으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무능력한 아버지는 인생을 포기한 듯 하루하루를 살아가셨고, 어머니는 술집을 나갔습니다. 그러다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지요. 그들 부모는 수지를 돌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수지는 여자애였지만 완전히 섬머슴아처럼 거리를 휘젓고 다니던 아이였습니다. 장 전도사가 군대를 갔다 온 뒤 희망센터로 돌아왔을 땐 수지는 벌써 중학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춘기 무렵이지만 얼굴은 아직도 어렸을 때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수지는 그동안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을 무척 괴롭혔던 모양입니다. 사춘기라 그런지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선생님을 바꿔달라고 하는 등 선생님 여럿을 울린 전력으로 유명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 선생님들도 수지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수지가 반항할수록 더 애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수지는 이제 희망오름센터의 리더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 중 유일하게 대학교에도 들어갔습니다. 경찰이 되어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고,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꿈을 펼치기 위해 요즘은 경찰시험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시험 준비 중에도 틈틈이 이곳을 찾아와 이곳을 찾는 아이들의 언니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다고 합니다.
장 전도사는 수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런 좋은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수지같은 경우는 이곳 센터를 통해 제대로 보호받았던 좋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경우에 힘이 나지요. 하지만 이 희망센터를 통해 우리는 아이들을 만나고 있지만 그것은 표면적이고, 결국 아이들 너머에 있는 그 가정과 만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애정을 주고 서로간의 애착관계가 발전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데, 갑자기 그 가정이 이사를 가버리게 되면 사실 우리들은 허탈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힘도 많이 빠지고요.”
한편 신나는집 문화학교의 아이들은 1년 동안 배우거나 활동한 연극, 풍물, 노래, 율동 등을 공연하는 발표회를 열기도 합니다. 그때는 지역주민들과 그동안 후원해 준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희망오름의 청소년들은 동아리활동을 합니다.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거나, 실무자 선생님들이 제안하기도 합니다. 건물 1층에는 녹음실이 있었는데, 바로 노래를 만드는 동아리가 사용하는 곳입니다. 아이들은 MR을 만들어 서로 편집을 하고 가사를 넣어, 노래를 만들어 냅니다. 건물의 미니어처를 만들며 건축가의 꿈을 꾸기도 하는 동아리도 있습니다. 희망센터 건물의 미니어처를 보았는데, 아주 정교하게 잘 만들었더군요. 또 독거노인 나눔 프로젝트를 통해 받는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직접 반찬을 만들어서 지역의 독거노인을 찾아가 청소해주고 말벗도 되어주는 봉사활동을 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희망센터의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하기 힘들어서 지역의 다른 단체와 연계해서지금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동아리를 만들다보니 여행을 구상하는 동아리도 있습니다. 여행은 이곳 아이들에게 쉽지 않는 접근입니다. 이 동아리는 아이들이 함께 모여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구상하는 동아리인 것입니다. 경비며 일정 등 세세한 내용까지 미리 준비하여 서로 여행에 대한 설계를 해 나갑니다. 물론 구상에만 그친다면 여행동아리가 아니겠죠. 그 결실로 스스로 구상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밴드동아리도 있었는데, 2008년도엔 숭실대의 한 건물을 빌려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악기만 남아 있을 뿐 선생님과 아이들이 없어서 잠시 문을 닫아둔 상태랍니다. 그리고 이곳을 찾는 아이들 중에는 탈학교 아이들(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이 많은데, 그들 중에는 댄스에 일가견을 보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중심으로 댄스동아리를 만들었는데, 지역문화축제에도 초대될 만큼 호응이 좋다고 합니다.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동아리로는 ‘쿡앤 해피’라는 음식 만드는 동아리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먹고 싶고, 만들고 싶어 하는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지역의 이웃들에게도 나누는 동아리입니다.
장 전도사의 말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 있으면 주로 그 지역 사람들이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담배피고 술 마시는 그런 비행이 많으니, 그렇겠지요. 하지만 희망오름의 청소년들은 이처럼 자주 지역주민들과 접촉하고 음식도 갖다 드리면서 교류해 나가다 보니 이곳 주민들이 희망오름을 보는 인식이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그럼으로써 지역사회 자체가 청소년들의 안전망을 담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나쁜 짓을 하려하면 그동안 피하고, 무조건 혼만 내던 주민들이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희망센터의 상근자는 장 전도사를 포함해 3명입니다. 자원봉사자 선생님은 현재 5명인데, 대부분 학습 쪽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문화 쪽을 담당할 자원봉사자가 더 필요합니다.
장 전도사는 이 일을 하면서 느끼게 된 청소년들만의 불안요소의 사례를 전해줍니다. 청소년들의 문제점 중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에 처한 아이들도 있지만 미래에 대해 자포자기하여 무기력에 빠진 아이들이 있습니다. 장 전도사는 그 중 무기력한 아이들의 경우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척도는 주로 학습입니다. 공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로 갈리게 되죠. 제대로 된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 공부를 통해 뭔가를 해 보려 해도 도움이 없이는 쉽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해 보다가 포기하게 되고 결국 은둔해 버리지요. 무기력한 아이들은 주로 고 2,3학년쯤에는 포기하고 좌절하여 자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활패턴을 바꾸어 나갈 힘을 가지질 못합니다. 우리가 진단을 해보면 그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애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매사에 무기력한 아이들은 관계에서도 무기력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관계가 없으니 책임질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희망오름은 이 관계맺기에 특히 주목합니다. 선생님과도, 또래아이들과도 서로 좋아하는 관계로, 유기적인 관계로 맺게 되면 그 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아 책임을 지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점차 무기력한 모습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장 전도사는 무기력한 청소년들이야말로 변방에 서 있다고 합니다. ‘애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그런 어중간한 상태에서 청소년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부정하고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려고 합니다.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 대한 자각은 없는 채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이 아이들을 당연히 거부하지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쯧쯧’ 이런 식인 겁니다.
청소년들이 제대로 된 시기를 잘 보내려면 실질적으로 만나고 관계하고 애정관계를 가져다줄 수 있는 선생님들과 또래집단이 필요합니다. 흔히들 아이들에게 문화체험을 해 주게 하고, 그 성과물을 내 보이게 하면 청소년들을 위한 복지를 다 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장 전도사는 청소년들의 문화적 체험은 적어도 서울에서는 부족하지 않고 충분하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언론에서는 청소년들의 문제가 문화적 소외인 듯 전하면서 그 처방을 문화적인 체험으로 몰아가지만 사실 청소년들은 관계의 소외를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변방에 선 청소년들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건강하게 관계를 맺는 모델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자기들끼리 모여 담배 피고, 술 마시고, 오토바이 하나 때려 부수고 하면 뭔가 같이 한 것 같은 연대감이 생겨나게 됩니다. 아이들끼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관계로부터 소외받아왔던 그들이 나쁜 일이라도 서로 힘을 합치는 연대의 힘을 알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러면서 죄의식을 갖기 보다 그런 것이 재밌다고 느끼게 됩니다. 제대로 된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이러한 왜곡된 연대, 관계를 자꾸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요. 집에서도 지역사회에서도 아이들이 모여 있으면, ‘저거 사고치는 거 아닌가.’하는 식으로 재단해 버리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있을 곳도 없고, 마음 둘 곳도 없게 됩니다.
언젠가부터 기성세대들은 (불량)청소년들에 대해서 기피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불량한 복장과 머리를 한 아이들 몇 명이 뭉쳐있는 것을 저 멀리서 발견하면 왠지 두려워하거나,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합니다.
“요즘 애들은 무섭다.” “요즘 애들은 통제가 안 된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 다르다. 범죄를 저지르는 수준도 청소년 범죄가 아니라 거의 어른 수준이다.” 등 무심코 뱉는 기성세대들의 말투에서도 (불량)청소년들을 대하는 기본인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편 동시에 ‘청소년들은 우리의 미래’라거나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주역’ 등등의 구호도 쉽게 외치기도 합니다. 물론 이 말은 당연한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들이 담당해왔던 일들을 이어받아 하겠지요. 그런데 청소년들에 관한 이중적인 시선을 갖고 있는 어른들의 태도로 인해 아직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아이들은 혼란스러움을 갖게 됩니다. 기성세대와 사회는 어떻게 자라나게 될지 어떤 모습이 될지 모르는 청소년들을 한 줄로 세우고, 어느 정도 선까지 들어오면 우성인자, 그 뒤에 선 자는 열성인자 등으로 쉽게 재단하곤 합니다.
그러한 일반사회의 인식과 어른들의 태도로 인해 가정적으로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데다 일반사회와 기성세대의 견고하고 냉정한 시선 앞에 여린 아이들은 곧잘 무너집니다. 그것이 자포자기로 이어져 무기력으로,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러한 외향적인 모습의 이면에는 자신들을 제대로 보아 달라는 소리 없는 외침이기도 합니다.
희망센터에서는 공간은 비록 작지만 이러한 아이들에게 올바른 관계맺기를 통해 마음 둘 곳을 찾게 하고, 공간을 개방하여 언제라도 있을 곳을 제공합니다. 때문에 아이들이 왜곡된 관계 속에 놓여 있다고 해도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자문하면서 대화를 나눠 줄 사람을 요청하게 합니다. 장 전도사는 청소년 사역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아이들의 숨통을 틔어주는 것이 첫 번째가 아닌가 하고 반문합니다. 당장의 진로나 지식 축적 같은 것은 당장에 필요한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이곳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상당을 요청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나 어려움을 허심탄해하게 풀어내 주면 이곳 선생님들의 첫 마디는 ‘고맙다’입니다.
상담을 할 때는 주로 자신들의 고민을 먼저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에게 해결사노릇을 하게 합니다. 자신들과 좋은 관계를 맺은 선생님이 이러한 고민이 있다하면 아이들은 나름대로 의견을 쏟아냅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자신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임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장 전도사는 이러한 1차적인 관계맺기가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만큼 힘이 많이 든다고 했습니다. 그때그때마다 상황이 다르니, 사건 하나당 대처하는 방법이 모두 다 다릅니다. 스스로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었음을 느낄 때가 있지만 이때 힘을 얻는 것은 역시 아이들입니다. 그는 막 대드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데 무기력한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며 겉으로 조용히 있다고 해서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회에서는 청소년 복지를 이야기할 때 물자가 부족한 아이들에게 물자를 제공하고, 공부가 힘든 아이들에게 공부를 잘하게 지원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주의는 복지자체의 오해이기도 하고 선입견입니다. 청소년들의 내면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장 전도사는 성과 위주의 생각이나 관심이라면 희망센터에서는 거부한다고 합니다. 방송을 보면 선물 사주고 사진 찍고 아이들이 선물에 만족해 하는 그림만 만들어내면 복지가 다 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쉽게 받으면 쉽게 버립니다. 관계조차도 쉽게 만들어지면 쉽게 버립니다. 장 전도사가 우려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청소년 복지가 성과위주의 복지이며, 그곳에 아이들이 내몰려 있다고 하는 점입니다.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 끝낸다면 이것은 또 다르게 아이들이 피해를 입는 지점이라는 겁니다.
아이들이 꼭 갈망하던 책을 한 달 만에 얻게 된 것과 어떤 욕구도 없었는데, 마구 물건이나 책을 갖다 주면 그것으로 딱지나 접어버리면서 버린다는 겁니다. 그런 반면 그것을 준 사람들은 ‘책을 그렇게 갖다 줘도 변화가 없다.’며 쉽게 외면하게 됩니다. 그런 오해와 시선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얘기를 풀어나가던 장 전도사는 이 대목에서 물음을 던집니다.
희망센터를 찾는 아이들 중 희망교회에 나오는 학생들이 있기도 합니다. 장 전도사는 주일에 설교를 할 때 성경구절을 들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곡식을 밟으면서 타작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워서는 안 된다.’(신 25:4)는 구절을 두고 서로 의견을 말하게 하면 이 말이 맞다, 안 맞다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곤 합니다. 장 전도사는 이런 식으로 종교 교육을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다가가는 종교 교육을 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구상중이라고 합니다. 교회 이야기를 하니, 이런 이야기도 나옵니다.
희망센터를 잘 나오곤 하는 아이들 3명이 갑자기 뜸해진 적이 있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교회를 나간다고 합니다. 신림동 어딘가에 있는 교회에서 선배들이랑 먹고 자며 같이 지낸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래서 일단은 관심만 가진 채로 내버려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름쯤에 이 아이들이 나타나 하는 말이 ‘나는 예수님을 영접했다.’였습니다. 교회에 출석한 지 보름 만에 예수님을 영접했다니, 이상하다 싶어서 알아보았는데, 아이들이 간 곳은 ‘다락방’이었습니다. 만약에 ‘다락방’에서 아이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까지라면 이해하겠는데, 포교가 목적인 채로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구실임을 알게 되니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겐 아이들 한명 한명이 귀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이 주장하는 종교를 알리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전춘우 목사가 있을 때인데, 전 목사는 다락방의 목사에게 전화를 하여 설득한 뒤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장 전도사는 이 일을 하면서 『복지요결』이란 책에서 본 “귀하게 관계하면 귀하게 돌아온다”는 말씀이 특히 가슴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청소년들이 미래의 희망이라며 쉽게 얘기하지 말고 정말 일반 사회전체에서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을 귀하게 보는 시선이라는 것입니다. 한 심리학자는 청소년기를 정신병자라고 비유하기도 했다는 군요. 그렇게 힘겨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귀한 눈빛과 귀한 마음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입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미래를 꿈꾸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아이들은 지금 가난한 가정 속에 있지만 그들이 가난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열려진 길들이 많이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무기력에 빠진 아이들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가보려하지도 않습니다. 장 전도사의 얘기처럼 그들을 만날 때는 귀하게 만나고, 그도 안 된다면 시선이나마 따스하고 귀하게 그들을 바라봐 주어야 할 것입니다. 상투적 표현이지만 역시 청소년이야말로 우리의 희망 아닙니까.
글·사진_이영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