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 남성복 세계 1위 업체인 이탈리아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의 대표 모델은 영화배우 애드리언 브로디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 「피아니스트」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브로디가 맡은 役은 실제 인물로, 폴란드의 天才 피아니스트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 「피아니스트」는 스필만의 자전적 실화인 「죽음의 도시」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바르샤바의 유태인 게토에서 가족들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는 기차를 타기 직전, 스필만은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죽음의 줄」에서 극적으로 빠져 나온다. 그 후 그는 숨어 지내다 연합군이 바르샤바에 進駐하기 직전 독일 사령관에게 발각되지만 쇼팽의 피아노曲 연주로 살아 남는다.
이 영화로 브로디는 30세의 나이로 2003년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 최연소 수상의 기록을 건졌고, 골든 글로브의 「베스트 액터」상도 받았다.
「여리고 상처받기 쉬우나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 이는 「피아니스트」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이 영화의 주연 배우를 고르면서 선정한 기준이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양복이 그런 남성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것일까. 브로디는 2002년 가을, 제냐社가 2003년 봄·여름 신상품을 소개할 때 모델로 선정됐다.
「우아한 원단」, 「멋진 재단」,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제냐社의 역사는 創業主 에르메네질도가 20세 때인 1912년, 아버지가 경영하던 작은 원단 공장을 물려받은 것이 공식적인 기록이다. 이탈리아 서북부의 산악 지대(비엘라 알프스)인 피에몬테州의 트리베로에서 출발한 전형적인 이탈리아式 가족 기업이다.
영국제 직조기 도입으로 成長 시작
에르메네질도의 아버지 안젤로는 1859년 농부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이 지역은 외부와 고립되고 가난이 代물림되던 곳이었다. 사내 아이는 학교보다 양치기로 「제 밥벌이」를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안젤로는 철이 들면서 시계공으로 일하다 곧 織工으로 직업을 바꾼다.
비엘라 주변에는 13세기부터 양치기들에 의한 羊毛 생산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후 길드가 형성돼 羊毛의 직조와 염색 공정을 위한 기준도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이 지역은 한마디로 「양치기」 마을이었다.
마침내 산업혁명의 「미풍」이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큰 바람」으로 바뀐다. 이 바람에 몸을 실은 안젤로는 40세 때인 1899년, 15대의 직기를 가진 업자로 성장했다.
이 지역의 풍부한 물로 돌리는 水力 방적기·織機가 소개되고, 양모의 계속적인 공급과 풍부한 女性 인력도 좋은 조건이 됐다. 안젤로의 꿈이 담긴 공장은 1907년 火災로 문을 닫고 인근의 트리베로로 옮겨 공장을 짓는다. 이로써 제냐社의 역사가 그 막을 열게 된다.
1892년, 안젤로의 자녀 10명 중 막내로 태어난 에르메네질도는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그 역시 양치기로 인생을 시작했을 것이다. 여전히 가난과 힘든 일이 마을의 주민들에게 주어진 인생이었다.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 노동력 확보로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시절, 막내는 초등학교를 마치자 바로 다른 형제들처럼 아버지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 參戰 후 돌아온 「제냐 家門의 꽃」 막내는 직물 전문 훈련소에서 교육을 받는다. 1923년 아버지 안젤로가 별세하면서 31세에 그는 후계자로 떠오른다. 이때 제냐社는 주로 羊毛를 받아 이를 가공해 원사나 원단을 만드는 작은 공장이었다.
先進기술이 중요함을 꿰뚫어 보고 있던 막내는 런던으로 간다.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영국 원단의 뛰어난 품질을 보고 배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최신식 영국 직조기를 도입하는 일이었다. 그는 낡은 프랑스製 직조기를 버렸다.
이탈리아 패션 산업의 역사는 산업혁명으로 경제가 급성장한 영국과 프랑스의 신사복 및 여성복 원단의 下請 생산기지 역할에서 시작됐다. 제냐도 그중의 한 개 기업이었다.
에르메네질도는 1930년 원단 가장자리에 자신의 이름인 「에르메네질도 제냐」를 박으면서 본격적인 패션업체로 일어선다.
2003년 매출액 8414억원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이름이 등장한 지 74년, 트리베로에 공장을 설립한 뒤 97년, 가족 중심으로, 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운영되던 소규모 공장은 이제 세계에서 최고로 꼽히는 원단과 男性양복 회사로 자리 잡았다. 원단을 가공해 양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60년부터다. 1960년대는 이탈리아 정부의 섬유산업 육성 정책이 한창 강화돼 1970년대 이탈리아가 「패션 强國」으로 올라서는 기반을 마련할 때였다. 1966년 에르메네질도가 세상을 떠난 뒤 경영권은 그의 큰아들인 2代 알도, 3代 안젤로(알도의 동생)로 이어졌으며, 1998년 4代째인 파올로(알도의 아들)와 안젤로의 아들인 질도가 함께 共同사장으로 취임해 제냐社를 이끌어 가고 있다.
각종 수치를 보면 제냐社의 규모를 알 수 있다. 2002년의 매출액은 6억6000만 유로(한화 9240억원, 1유로=1400원). 이 회사는 200만m의 원단(매출액의 15%)과 35만 벌의 남성복(45%), 100만 벌의 스포츠 웨어(25%), 150만 개에 이르는 각종 액세서리(15%)를 생산해 내고 있다. 2003년에는 다소 매출이 줄어 6억100만 유로(8414억원)를 기록했다.
제냐社의 직원 총수는 全세계적으로 5000명 이상으로, 이탈리아內에 8개의 공장과 1973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첫 공장을 건설한 뒤 스위스·멕시코·터키 등 해외에 5개의 공장을 갖고 있다. 서울 등 해외에 24개 지사와 함께 135개의 직영 매장을 포함해 392개의 점포를 갖고 있다.
제냐社의 확대는 1999년 고급 이탈리아 여성복 브랜드인 「라네리 안요나(Lanerie Agnona)」社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2002년에는 가죽 제품 브랜드인 「롱기(Longhi)」를 인수했고, 페라가모 그룹과 합작 투자로 제냐의 「Ze」와 페라가모의 「Fer」를 합쳐 「ZeFer(제퍼)」 구두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깨끗한 물과 女性인력 필요해 산속에 위치
밀라노 부근에 있는 제냐의 공장(woolmill)을 방문했다. 트리베로에 있는 이 공장은 밀라노에서 서쪽으로 두 시간 정도 차로 가야 되는 곳에 있다. 베네치아로 가는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시골의 단아한 풍경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분을 달리자 차는 산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비가 조금씩 뿌리면서 차는 높은 산악 지대인 비엘라 알프스로 접어들고 있었다. 산은 곳곳이 안개로 덮여 있어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 常識으로는 공장이 교통 좋은 평지에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아니었다. 왕복 2차선의 좁은 길은 계속됐다. 마을도 곳곳에 나타났고 여기저기 공장 간판들도 보였다.
공장은 산속 해발 700m의 고원에 위치하고 있었다. 안내자로 나선 마테오 로로氏는 『각종 원료를 씻어 내는 데는 차고 깨끗한 물이 필요하고, 그 다음 방적과 직조에는 여성들의 섬세한 손도 있어야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곳에 사는 여성들이 할머니·어머니·딸로 代를 이어 고용돼 왔기 때문에 이 산속을 떠날 수 없다고 한다. 지금도 200명 이상의 女종업원들이 모두 공장 근처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에르메네질도는 근로자들과 그 가족을 위해 학교는 물론 각종 운동·오락시설, 병원 등을 지었다.
먼저 안내된 곳은 초창기에 여직원들이 원료를 가공하는 대형 그림들이 붙어 있는 방이었다. 이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들여오는 원료가 모여 드는 곳이다.
제냐社가 사들이는 전체 원료 중 80% 이상이 메리노 울로 호주·남아공·뉴질랜드·아르헨티나 등에서 들여오고 있다. 제냐社는 1963년부터 매년 호주의 업자들이 출품한 양모 중에서 최고급 울을 선정하여 「벨루스 오륨(Vellus Aureum·黃金양모)」賞을 주고 있다. 1980년부터는 남아공·뉴질랜드·아르헨티나의 양모업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올해의 참가자격은 양모의 두께를 13.9마이크로미터(㎛: 1만 분의 1cm)로 제한해, 품질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이 밖에 내몽골産 캐시미어, 아프리카産 모헤어(앙고라염소의 털), 인도産 파시미나 캐시미어(山羊의 목이나 가슴에서 채취한 솜털), 페루産 비쿠냐(라마屬의 야생동물)의 가슴털, 중국産 실크 원사, 麻에서 나오는 리넨 등으로 최고급의 원료만을 사용한다. 이 같은 고급 원자재들이 트리베로 지방 특유의 좋은 물과 만나, 세계 1위의 원단을 만들어 낸다.
제냐社는 원자재에서 판매까지 全과정을 직접 관장하는 「垂直 통합체제」를 구축한 세계 유일의 남성복 기업으로도 이름이 높다.
원단으로는 최고급 메리노 양모로 실을 뽑아내 직조한 「센토벤티밀라」가 유명하다. 구김이 가지 않고 통풍성이 뛰어난 「하이 퍼포먼스」, 탄력성이 높은 캐시미어 원단인 「스트레치 캐시미어」, 출장복으로 적합한 「트래블러」와 「트로페오」 등의 원단도 있다.
맞춤복 대량 제작 시스템
제냐가 가장 자랑하는 원단은 「15밀밀(milmil) 15」급. 최고급 메리노 울(羊毛)에서 15%만이 원사 두께가 19.5㎛(마이크로 미터: 1만분의 1cm) 이하인 울트라파인(極細)에 속한다. 이 중에서도 극소량인 15%가 15.5㎛ 이하로, 수집량에 따라 年間 수백kg에 불과하다. 최우수 양모 중에서 가장 어린 양에게서 나오는 이 울(fleece·플리스)은 처음부터 특별 가공 과정을 거친다. 제냐는 지난해 두께 11.7㎛의 울을 사용한 「벨루스 오륨(황금 양모)」 원단을 개발해 냈다.
제냐社는 「수 미주라(Su Misura)」 방식으로 맞춤복을 만들고 있다. 이탈리아語로 「당신의 치수에 맞춘다」는 뜻으로 고객 만족을 위한 제냐社의 아이디어. 고객들의 착용감을 높여 주기 위해 고객의 체형에 맞춰 양복을 만드는 시스템이다. 파올로 사장은 『고객들은 치수를 재기 전, 원단을 먼저 고르게 된다』며 『제냐 직원들은 양복을 고객의 신체 특성에 맞추면서, 착용 후 원하는 線과 型에 맞춰 원단을 선택하도록 조언도 해준다』고 말했다. 주문이 이뤄지면 고객의 치수는 컴퓨터에 보존된다.
고객이 주문한 옷은 스위스의 스타비오에 있는 콘시텍스 공장에서 장인급 10명 등 130여 명의 재단사에게 보내진다. 재단사들이 만들어 내는 옷은 양복 등 하루 200벌이다. 완벽한 제품을 위해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것도 오랜 전통이다. 「수 미주라」로 만들어지는 제품에는 정장 양복 외에 턱시도, 프록 코트, 와이셔츠, 블레이저, 오버코트 등도 있다.
한 벌의 양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단 조각은 140개다. 상의는 146번, 바지는 70번이나 사람의 손이 가면서 재봉에서 다림질, 품질 검사 등으로 이어진다. 최종 다림질은 진공상태에서 이뤄지고 24시간 동안 공장에서 습기와 온도에 대한 적응력 검사를 거친 뒤 포장된다. 이 옷의 안쪽에 「타글리오 엑스클루시보(독점 裁斷)」라는 라벨을 붙이고 고객의 이름을 새긴 뒤 고객이 사는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매장으로 보내진다. 최종 과정은 고객이 다시 한 번 매장에 나와 옷을 입어 보는 일. 고객에게 전달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30~35일. 세계 어느 매장에서나 주문이 가능하다.
수제품「나폴리 쿠튀르」는 최고 800만원선
「수 미주라」로 생산되는 남성 정장복의 종류는 두 가지가 있다. 최고급 원단으로 완전 수제품인 「나폴리 쿠튀르(Napoli Couture)」, 격조와 품위로 이름을 얻고 있는 「살토리아(Sartoria)」가 있다. 「수 미주라」로 옷을 맞출 경우, 나폴리 쿠튀르는 최저 280만원에서 800만원이 넘는데, 고객이 고르는 원단에 따라 가격차가 수십 가지로 벌어진다. 기성복은 가격이 400만~500만원 선. 살토리아는 최저 230만원에서 시작돼 70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제냐社의 남성 정장 디자인은 클래식한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과장되지 않은 절제된 세련미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 한국 제냐社 홍보 담당 金娜廷씨의 설명이다.
이 밖에 젊음을 강조하는 「Z 제냐」 라인은 올해 초 선을 보였다. 활동성을 강조한 스포츠 웨어로 1999년 11월 시장에 선보인 「제냐 스포츠(Zegna Sport)」 라인과 함께 넥타이·구두·가죽 제품 등을 포함한 「액세서리」 라인도 있다. 캐주얼로 편안함을 강조했던 소프트 라인 대신, 시장에 등장한 「Z 제냐」는 양복에서 와이셔츠·넥타이·지갑·벨트·구두 등까지 토털 패션을 갖췄다.
이탈리아의 패션 산업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문화 유산과 예술적 환경이 그 발전의 단초가 됐다. 이탈리아의 섬유산업 업체수는 7만 개 이상으로 모두 68만6000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다는 것이 밀라노 한국무역관(KOTRA)의 자료다. 이 업체들 중 2만여 개 업체가 소규모 가족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제냐의 한국시장 담당인 브루노 란디氏는 『한국은 떠오르는 시장으로 연간 매출이 계속 10% 이상의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시장의 확대를 위해 계속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한국內 매장은 직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제냐社는 2000년 스위스 로잔느에 본부를 두고 있는 IMD(국제경영발전연구소)가 제정한 「가족기업賞」을 받았다. 수상 이유는 남성 정장복의 세계 1위 기업, 3·4代가 기업 경영에 헌신하고 있다는 점,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 등이다.
공동사장인 파올로와 질도氏는 『가족 기업으로서 後代에 물려줄 중요한 가치는 자존심, 훈련, 근면, 정직, 신뢰에 있다』고 강조한다. ●
◆ 인터뷰 - 파올로 제냐
가족회사의 人和와 최고의 기술을 융합
제냐社의 共同사장(co-CEO)인 파올로 제냐(48)氏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장손이다. 2代 사장인 아버지 알도의 장남으로 태어나 제네바大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스페인 공장과 호주의 羊毛생산 현장에서 수년간 경력을 쌓았다. 1998년 파올로는 사촌인 질도(49)와 함께 나란히 제냐社의 CEO에 합류한다. 질도는 3代 사장인 안젤로(알도의 동생)의 아들.
파올로 사장과의 인터뷰는 인터넷으로 이뤄졌다.
―제냐社의 경영 철학에 대해 말해 달라.
『세계적인 기업에서 나오는 최고의 기술과 가족 기업이라는 특성을 하나로 섞는 것이다. 이는 品質은 물론, 고객 위주 서비스, 시스템, 일하는 방식에서 최고의 기준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바로 수십 년간 내려온 가족회사의 장점이기도 하다. 제냐의 文化는 사람을 아끼는 것이다. 우리는 직원들을 「아소치아토(associato·동료 또는 동지)」라 부를 정도로 사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오랫동안 누려 왔다』
―제냐社에는 몇 명의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는가. 선발의 기준이 무엇이며 어떤 수련과정을 거치는가.
『현재 15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마케팅과 판매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늘 현장에 있는」 감각을 갖도록 요구한다. 우리는 디자이너가 우아한 모양과 패션을 위해 일한 경력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은 물론, 사회와 경제에 대해 지식을 갖춘 사람도 찾는다. 우리 회사의 훈련은 제냐社의 모든 생산 현장을 거치는 것이다. 원사 공장에서 첫 4주 동안을 거쳐야 하는 것을 포함해 모든 제품이 나오는 공장과 판매점에서도 일해 봐야 한다』
全세계 名單 보유 고객 48만 명 넘어
―제냐社의 자랑인 「수 미주라」 고객들은 全세계적으로 몇 명쯤 되는가.
『7000~1만 명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회사의 데이터 베이스에 따르면 수 미주라 고객 외에 全세계 고객은 48만 명이 넘는 것으로 나와 있다. 한국의 유명 지휘자인 鄭明勳도 우리 고객이며 플라시도 도밍고, 영화배우 알렉 볼드윈, 존 트라볼타, 덴젤 워싱턴, 찰리 신, 니콜라스 케이지, 알 파치노 등도 우리 명단에 있다. 우리 회사는 고객들의 개인별 구매 기록을 갖고 있다. 이 자료는 고객들에게 우리의 新제품을 알리는 것은 물론 고객의 체형이나 취향의 변화에 맞춰 이미 고객이 입고 있는 옷도 고쳐 주는 등 품질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全세계 곳곳에 있는 공장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주요 제냐 제품은 주로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 공장들은 100% 제냐社가 소유하고 있다. 공장은 이탈리아 공장장과 노련하고 재능 있는 현지인들로 구성된 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한국시장은 어느 정도로 평가하는가.
『지난 6~7년 사이에 名品 의류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유명 브랜드와 가격보다는 품질과 브랜드 가치에 좀더 민감함을 보여 주고 있다. 한국인들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제품을 찾으면서 개성화되고 재료와 기술에서 남다른 제품을 찾는 경향이 높다. 이는 바로 한국에서 우리 제품이 성장하는 動力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은 우리 매출액의 27%를 차지하고 있다. 27%를 나라별로 보면 일본이 10%, 한국은 4% 정도의 점유율을 보여 주고 있다. 1000명 정도의 한국인 고객들이 우리 제품에 대해 높은 애착을 보여 주고 있다』
―주로 많이 팔리는 제품은 어떤 종류인가.
『전통 양복이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특히 원단이나 섬세한 재단과 스타일에 대해 한국 고객들의 관심이 높다. 최근에는 제냐 스포츠 제품인 캐주얼 복장에 대한 인기가 상승하고 있으며 스포츠 구두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첫댓글 제냐 양복 빨 나더군요.언젠가 저걸 입기 위해선 돈도 있어야지만 똥배 집어 넣는게 더 급한 문제입니다.제겐...
제냐...저같이 키작고 똥배나온 사람은 그림의 떡입니다. 제냐 아니라 제냐 할아버지 입어도![걍](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1.gif)
전원일기 스탈 되어 버립니다 ![ㅠ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9.gif)
저는 항상 대충대충 입고 다닙니다. ㅋㅋㅋ 아직 나이도 젊은데 왜 이렇게 옷입는거에 신경을 안쓸까요? 몸관리도 안하고...^^*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 보죠 .통장이 많다던가 하는쪽으로...
저 모델분은 조금 약한 이미지던데....^^ 얼굴도 저처럼 뺴뺴 마르구....ㅎㅎ
매일 캐주얼만 입고다닌다고 회사에서 사준 양복 브랜드네......3벌....그러고도 한번도 안 입고 지금은 윗도리 한벌만 딸랑....어떤 놈들이 다가지고 가버렸는지....
제냐는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패밀리맨"을 보면 제대로 나오죠. ^^
제냐.. 몸에 착 달라붙는 착용감..음..말로 표현할 수 없죠..
제냐~ 몸에 착~ 달아붙는것이 느낌이 좋답니다. 그리고 구김도 잘가지않고, 몇년을 입어도... 새옷같은 느낌도 좋구요... 요즘은 나이들어서 잘 입지는 않지만...
셔츠와 수트만큼은 제냐를 선택해서 입는편입니다.....비싸다는 것이 흠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값어치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