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전라북도 온전한 땅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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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31. 18:08조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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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땅 전주
마이산에서 이어진 금남호남정맥이 북쪽으로 가다가 진안과 전주 사이에서 주화산이 되고, 주줄산이라고 알려진 운장산에서 위봉산, 종남산 자락으로 와 소양천을 건너면 전주에 이른다. 그 동편에 위봉산성과 위봉사가 있다.
만덕산에서 슬치재로 이어지기 전 하나의 산줄기가 은내봉 묵방산을 지나 기린봉이 되었다. 여기에서 또 한 맥이 나와 전주시 중심부의 서북쪽으로 가다가 건지산이 되었는데, 이곳에 목조(穆祖,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의 능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 “건지산은 전주부의 북쪽 6리에 있으며, 진산”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규보의 기 「記」에는 “전주에 건지산이 있는데, 수목이 울창하여 전주의 명산”이라고 하였으며, 『대동지지』에도 그와 비슷한 말이 나온다. 그러나 건지산은 전주와 같은 고도(古都)의 진산으로 보기에는 너무 작고 전주부성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지역의 원로들이나 풍수지리학자 최창조 선생은 조선의 개창자인 전주 이씨들의 조상 묘가 건지산에 있으므로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기린봉에서 건지산으로 진산을 옮기지 않았겠느냐고 추정한다.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건지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민간에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전주 이씨의 시조인 사공공(司空公) 이한(李翰)의 무덤이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영조 때 흙을 파내 그 묘역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소득이 없었다. 마침내 부근에 있는 백성의 무덤을 파내고 감관(監官)과 산지기를 두었으며, 표지를 세워 나무나 풀을 베지 못하게 하였다. 감사와 수령들이 각별히 삼가며 수호하여 받들어 모시는 예를 다하게 했다고 한다.
건지산의 한 맥이 서쪽으로 가다가 덕지(德池, 지금의 덕진연못)가 되었는데 매우 깊고 넓다. 전주에 덕진연못이 만들어진 것은 풍수지리설이 활기를 띠던 고려 때부터였다고 한다. 전주의 땅이 서북쪽으로 열려 있기 때문에 땅의 기운이 음지인 서북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이 지역 사람들이 동쪽의 건지산과 서쪽의 가련산 사이에 커다란 못을 팠다고 한다. 지금은 연못의 절반을 뒤덮는 연꽃과 빼어난 조경 때문에 시민공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덕진연못에서 흘러내린 물은 송천동을 지나 전주천의 물과 합쳐진 뒤 만경강으로 들어간다.
덕진공원 연꽃
위봉산 아래쪽 동상면 사봉리에서 발원한 만경강은 대아리를 지나 고산현을 거쳐 봉동에 이르고, 삼례를 지나 목천포 다리를 거치고 청하를 거쳐 망해사 부근에서 서해로 들어간다. 전주에 대한 『택리지』의 기록을 보자.
주줄산 이북의 여러 골짜기 물이 고산현을 지나 전주 경내에 들어와 율담(栗潭), 양전포(良田浦), 오백주(五百洲) 등의 큰 시내가 되어 농사에 이용되기 때문에 땅이 아주 기름지다. 그리고 벼, 생선, 생강, 토란, 대나무, 감 등의 생산이 활발해서 1천 개의 마을, 1만 개의 마을의 삶에 이용할 생활필수품들이 다 갖추어졌고, 서쪽의 사탄(斜灘, 만경강의 옛 이름)에는 생선과 소금을 실은 배가 자주 통한다. 전주 관아가 자리한 곳은 인구가 조밀하고 물자가 쌓여 있어 경성과 다름이 없으니, 하나의 큰 도회지다.
노령 북쪽의 10여 고을은 모두 좋지 못한 기운이 있지만 오직 전주만 맑고 서늘하여 가장 살 만한 곳이다.
모악산, 승암산, 건지산, 서방산 등 크고 작은 산들이 솟아 있는 전주 근교에는 큰 강이 흐르지 않고 현재 소양천, 전주천, 삼천 등이 만경강으로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금강 상류에 용담댐이 건설되기 전까지는 대아저수지, 경천저수지 등의 크고 작은 저수지들이 전주, 익산, 김제 일대의 수원지 역할을 하였는데, 용담댐의 물이 유역 변경을 하게 된 2000년 말부터 금강의 물을 일부분 받아들인 후 물부족 문제가 해결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전주를 두고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곳이 반반이며, 민간풍속이 장사를 좋아한다”라고 기록되었는데, 전주의 당시 호수는 1,564호이고, 인구는 5,829명이며, 군정은 시위군 77명, 진군이 148명, 선군이 826명이었다.
김제평야 지평선 © 유철상
전주한옥마을 전주시 완산구 교동(校洞)ㆍ풍남동(豊南洞) 일대 7만 6,320평에 7백여 채의 전통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마을은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성곽을 헐고 도로를 뚫은 뒤 일본 상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자 이에 대한 반발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현재까지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전주 지도
[네이버 지식백과] 온전한 땅 전주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2 : 전라도, 2012. 10. 5., 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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