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군위-칠곡-영천 이어주던 군위 동부권 상권의 중심
지명(地名)은 지역 정체성의 상징과도 같다. 어느 곳이든 대충 지은 지명은 없을 것이다. ‘군위’의 내력도 의미심장하다.
이름에서 ‘군(軍)사적 위(威)세’가 뿜어 나오는데 이유에 대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소국(小國) 시절 신라와의 갈등-복속 과정이나, 후삼국 쟁패기에 후백제와 고려의 다툼 과정 중에서 이런 ‘전투적인 이름’을 얻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의흥면도 만만치 않다. ‘의(義)의가 흥(興)하는 곳’이니 이름에서 벌써 기개가 느껴진다. 예로부터 국가 전란 때마다 의병이 일어났다고 하니 적어도 지명이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오늘의 탐방지는 의흥 오일장. 이 지역이 의(義)는 흥했지만 상업이 흥했다는 기록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군위, 의성과 청송, 영천 사이에서 소도시 행정도시로 주로 존재감을 뽐냈다.
그래도 통일신라 때부터 지명이 등장하고 한때 현(縣)과 군(郡)으로도 편재 될 정도로 도시규모를 자랑했다. 현재는 군위군의 네 곳 오일장 중 군위시장과 함께 2강 구도를 형성하며 나름 상권을 뽐내고 있다.
◆위천 양쪽에 넓은 평야 잘 발달, 곡창지대 펼쳐=의흥면은 한때 군청 소재지가 들어설 만큼 세(勢)를 형성했던 곳이다. 주변의 우보, 산성, 고로는 물론 칠곡이나 영천 신녕까지 인적, 물적 교류를 이어갔던 군위 동부권의 중심축이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위천(威川)은 하천 양안(兩岸)에 넓은 평야를 펼쳐 예로부터 효령, 의흥, 소보 등에는 곡창지대가 발달했다. 쌀, 보리, 옥수수, 메밀, 팥, 콩, 감자, 고구마 등 생산이 활발했다고 한다.
잘 발달된 교통 환경도 일제강점기부터 의흥이 경제적 토대를 갖추는데 중요한 물적 기반으로 작용했다. 중앙선 철도가 서쪽으로 통과하고, 서남쪽으로 중앙고속도로, 상주-영천고속도로가 비켜가 이 지역의 물류·상업발전을 이끌었다.
해방 후 급속한 인구 증가와 산업 발달로 군위 지역 오일장은 크게 번성했다. 기록에 의하면 1957년에는 11개의 정기시장이, 1959년에는 13개의 오일장이 성시(盛市)를 이루었다고 한다.
1970년대 이후 교통·통신의 발달, 경제 발전 덕에 정기시장은 위축기로 접어들었지만 그래도 오일장은 당시 지역 상업, 물류의 중심이었다.
1985년만 해도 군위, 소보, 효령, 우보, 의흥, 화본, 학성 등에 오일장이 건재했으나 현재는 소보장(2, 7일), 군위장(3, 8일), 우보장(4, 9일), 의흥장(5, 10일)만 남아 전통을 잇고 있다.
◆한 때 우시장 거느릴 정도로 중형급 시장으로 우뚝=의흥장은 다른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1970~8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우선 당시 의흥면 인구가 7천명 대에 이르러 양적 기반이 튼튼했고, 주변 읍면과 교류도 활발해 시장마다 물자와 인파가 넘칠 때였다.
한때 의흥장은 우시장을 거느릴 정도로 위용을 자랑했다고 한다. 우시장의 입지는 단순한 가축거래 의미를 넘어서는 개념이다. 우선 넓은 공터와 축사, 장옥시설은 물론 중개인, 상인들과 보조원 등 인력까지 뒷받침되어야 장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또 상인들과 농민들을 위한 숙박·음식 등 시설도 함께 들어서기 때문에 전통 사회에서는 지역 경제의 큰 축이었다.
김성훈 교수의 ‘한국의 정기시장’ 자료에 의하면 “1976년 당시 의흥시장 우시장은 3천100평 부지에 고정상인 50명, 이동상인 100명에 일반 이용자가 1천명에 이르고 장날 소·돼지 거래가 100여 두에 이를 정도로 규모를 자랑했다”고 쓰여 있다.
시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30~40년 전만 해도 의흥장에는 주변의 효령, 화본, 학성, 우보시장의 장꾼들까지 몰려들어 큰 인파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또 의흥은 영천-군위, 부계·신녕-의성을 잇는 교통요지여서 이 루트를 통해 복숭아, 사과, 고추, 마늘, 땅콩 등 특산물과 돼지, 소, 염소 등 축산물이 유통되었다.
◆장날이면 70~100여 노점 트럭 시장 안에 난전 펼쳐=이렇게 전성기를 구가하던 의흥장도 1990년대 들어 급속한 쇠락을 맞았다. 인구 감소, 이농 현상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었지만 이런 충격파는 대도시보다는 읍면단위 소규모 시장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1990년대 들어 의흥 경제를 든든하게 받쳐주던 우시장이 폐지되면서 의흥장은 상권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한때 7천명을 웃돌던 면 인구도 2천 명대로 떨어지면서 상가규모도 유동 인구도 비례해서 감소되었다.
그러나 의흥장은 이런 오일장의 침체기 속에서 나름 상권을 유지하며 존재감을 뽐내왔다.
‘전국구급 상권’인 군위시장 만은 못하지만 현재 읍면 단위에서는 가장 큰 상권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의흥장에는 장날이면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70여 명의 노점들이 매대를 펼친다. 명절이나 추수, 관광철에는 100~200여 트럭, 캐노피, 노점이 들어선다고 한다.
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현지 상인들 외 모든 점포는 경북 각지에서 온 노점상들”이라고 말한다.
노점들은 옛 장옥(場屋)자리나 길옆에 좋은 자리를 잡아 각자 난전을 펼친다. 제철 과일, 채소가 가장 많고 생선, 해물, 의류, 신발, 한과, 주방용품 등이 주 상품이다.
◆닭불고기, 중국집, 돼지국밥, 물회 등 맛집들 성업 중=의흥시장의 전통을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시장 구석구석에 포진해 있는 맛집들이다.
면 단위 소시장의 무슨 ‘셀럽’이 있을까 했는데 방문해보니 분위기가 달랐다.
우선 의흥시장 역시 닭갈비가 유명하다. 닭갈비(닭불고기)의 원조는 의성시장이나 군위시장인데 의흥장에도 이런 명성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시장에 들어서면 ‘원조 닭불고기’ 현수막이 제일 먼저 눈에 띌 정도로 식당들이 많다. 주로 택배 영업을 한다. Y닭집과 H닭집이 나름 단골들을 거느리고 있다.
간짜장과 열무냉면, 볶음밥이 일품인 D반점도 나름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노부부가 옛날 방식으로 조리해 자극적이지 않고 맛이 담백하다. ‘추억의 짜장면’을 느껴보고 싶다면 들러볼 만하다. 짜장면 6000원, 짬뽕·볶음밥이 7000원이다.
물회를 단돈 1만원에 즐길 수 있는 Y횟집, 푸짐한 돼지고기와 국물 맛이 일품인 S국밥집도 찾아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