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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스탤지어 음악 |
글 유희경(시인) |
겨울 끝 무렵 찾아온 감기는 좀처럼 물러나질 않았다. 병원에서는 잘 쉬는 게 왕도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껏 잘 쉬는 법은 물론, 쉬는 법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었다. 하여간 의사의 조언에 따라 되도록 오래 자고 물을 많이 마시고 틈나는 대로 산책에 나섰다. 거리에는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겨울 다음 봄. 이 순서가 어긋난 적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라고 달랐을 리 없을 텐데 매번 봄 앞에서 나는 감탄을 한다. 새삼 경이로움에 사로잡혀서 이 기적에 감사하게 된다. 겨울 다음 봄. 죽음 다음 탄생. 두꺼움 다음 얇음. 메마름 다음 푸름. 병치레 다음 회복. 내가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어떤 '다음'은 뜻밖의 정황에 돌입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만 잊고 지내왔다. 겨울 다음이 추운 봄이나 더운 봄이 될 수 있듯, 나의 몸도 순순히 회복되지 않았다. 기침이나 콧물 등은 차츰 가라앉았다. 문제는 뜻밖에도 귀에 있었다. 왼쪽 귀의 청력이 현저하게 약화되어갔다. 처음에는 이명이 찾아왔다. 금세 나아지겠거니, 더 자려 애를 쓰고 물을 자주 마시고 더 오래 산책을 했다. 그러나 다음에 찾아온 것은 물이 찬 듯한 먹먹함이었다. 이내 나는 왼쪽으로는 잘 듣지 못하게 되었다. '뭐라고?'와 '잘 못 들었어'를 반복하다 결국 다시 병원에 찾아갔다. 뒤집어쓴 헤드폰에서 들리는 크고 작은 소리에 반응한다든가, 검사자의 발음을 따라해 본다든가 하는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의사는 아주 작게 한숨을 쉬었다. 불안해졌다. 무섭기도 했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몇 가지 원인이 있고 약을 처방할 테지만 그리 쉽게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낙담한 채 돌아서는 나를 불러 세워 의사는 말했다. 음악을 들으세요. 음악을 들으면 이명을 잊을 수 있을 거예요. 약국에서 한 바구니 만큼의 약을 받아 나오면서 의사의 조언을 다시 떠올렸다. 음악이라. 좋음으로 나쁨을 잠시 덮는 일인 건가. 그건 그것대로 꽤 시적인 일이다. 음악을 즐기지 않게 된 지 오래다. 물론 어딜 가나 음악이 있다. 내가 일하는 서점에도 하루 종일 음악을 틀어둔다. 그러나 음악에 몰입하기 위해 듣는 것은 아니다.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서, 청각적 무료함을 견디지 못해서 켜두고 그 속 에 있는 것뿐이다. 어쩌면 내게 음악은 나 자신이나 내 상태를 가리기 위해 드리워 놓는 일종의 블라인드인 셈이다. 음악을 켜둔 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길을 걷는다. 여기에 더해, 이제 이명을 지우기 위해 음악을 들어야 한다. 한때 음반을 고르는 것은 기쁨이었다. 시간은 충분했기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망설여 고른 음반은 그 이상의 희열을 주었다. 요즘은 음원이라고 부르는,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음반이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화면 앞에서 나는 아찔함을 느꼈다. 예전 음반 매장에서 느낀 아득함이 일종의 모험이었다면, 스마트폰 액정을 마주하며 느낀 기분은 난감함이었다. 서점의 음악 목록을 고르는 일은 간단하다. 분위기에 적당히 어울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를 위해서는 어 떤 음악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산책 중에 걷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어쩔 줄 몰랐다. 그때 내가 떠올린 것은 중고등학생 시절 나의 워크맨이었다. 손바닥만 한 나의 세계. 나의 전 재산. 그것을 가지고 싶어서 애태우던 시절. 온갖 말썽과 사건들. 우여곡절 끝에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내가 처음으로 샀던 카세트테이프와 CD가 누구의 어떤 앨범이었는지도 생생히 기억한다. 문턱 닳도록 드나들었던 레코드숍들은 또 어떤가. 세상에, 나는 아직도 그곳을 구석구석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이승철 2집이나 토토(Toto)의 킹덤 오브 디 자이어(Kingdom of Desire)가 어디 있는지 지금도 단번에 찾아낼 수 있다. 세상 모든 음악을 알고 싶었다. 밤새 라디오를 듣다가 꾸지람을 들은 적도 있다. 라디오에서 들은 가수의 음반을 찾아 학원을 땡땡이치고 시내에 나갔던 일도 선하다. 그저 음악이 듣고 싶었다. 그 시절엔 위대한 음악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친구와 논쟁이 붙어 주먹다짐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빌리고 돌려주지 못한 나의 보물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갔을까. 실은 알고 있다. 모두 버렸다. 뒤늦은 후회는 언제나 뼈아프다. 심호흡을 하고, 나는 일단 그때의 음악을 검색해 보았다. 없을 리 없지. 반가우면서도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음악이 시작되자 쓸데없는 생각 따위는 사라져 버리고 그저 음악만 있었다. 몹시 더디지만 조금씩 청각은 회복 중이다. 꾸준히 약을 먹고, 검진을 받고, 무리하지 않으려 애를 쓴 덕분이다. 춥든 덥든 하여간 겨울 다음은 봄. 내게 어울리는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한 왼쪽 귀가, 긴 겨울잠을 끝내고 기지개를 켜는 곰처럼 깨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크아앙' 하품하는 왼쪽 귀라니. 물론 농담 이지만 그만한 활력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잊고 있었던 좋음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어 가며 내가 좋아했던, 아니 여전히 좋아하는 뮤지션과 그들의 음반을 찾아 듣고 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부르는 연쇄 작용으로 음악과 음악이 이어진다. 거기에는 그 시절의 두근거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떤 떨림이, 모든 감각을 사로잡는 설렘이 여전히 있다. 나는 사랑과 좋음이 넘치던 '그때'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었다.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나의 노스탤지어. 그곳은 귀 기울이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언제든 플레이 버튼만 누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
More Than I Can Say Saxoph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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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다녀갑니다
다녀가신 고운 걸음
소중한 멘트주셔서
감사합니다 ~
沃溝서길순 님 !
추운 겨울동안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을 활짝펴시고
봄기운 가득 받고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소망합니다
~^^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아침저녁으로 아직 쌀쌀하지만
한낮의 햇살은 제법 따듯합니다 ~
싱그러운 봄 행복하고 희망차고
즐거운 일들만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청력은 나이가 들면 조금씩 떨어진다고 합니다.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에서 그만큼 청력이 혹사 당하고, 노출 많이 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미세한 소리도 잘 들리던 것이
나이가 들면 자꾸 되묻기 '뭐라고 그랬어'
한번씩 놓치는 소리.
아주 산 속에서 자연인으로 살면 그것도 많이 좋아지겠지요.
좋은 글 잘 읽었어요...망실봉님!
아산 현충사 이순신장군 생가에도 아주 예쁜 홍매가 피었어요.
좋은 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바다고동 님 !
귀중한 멘트 감사드리며
진분홍색으로 화사하게 핀
홍매 잘 감상햇습니다 ~
오늘도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좋은 하루지내세요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오늘도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핑크하트 님 !
새봄과 함께 활기찬
기운으로 일취월장하시길
기원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