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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정말 센세이셔널이라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논산공고 족구단 등장의 선봉은 단연 정석희였다. 고등학생이었지만 이미 기량은 일반부 공격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안축 무회전 서브는 마치 야구 선수들이 던지는 너클볼처럼 움직임이 심해 리시브하기가 까다로웠고, 족구의 가장 기본적인 공격 안축차기는 거의 교과서와도 같았다. 이 뿐 아니라 주특기인 순간적으로 무릎을 돌려서 차는 발등 혹은 안축 비껴차기는 상대를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나이가 의심되는 경기 운영능력과 이러한 공격들을 상대 수비라인의 움직임에 맞춰 적재적소에 해내며 수비라인의 빈 공간에 찔러 넣는 모습에 난 그에게 '악마의 눈'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사실 정석희가 처음으로 일반부에 등장했을 때까지만 해도 대단한 기량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어린 나이에 부족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보이기도 했었다. 때로는 주지 않아도 될 점수를 주기도 했었고, 결정적인 순간 실수하며 한 번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한마디로 조금은 덜 완성된 원석과도 같았다. 하지만 대회에 참가하면 할수록 그러한 단점들이 보완되며 점차 완성형이 되어갔고, 어느덧 논산공고 족구단은 일반부의 강자로 등극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등학교 팀으로서는 2011년 창원공고 이후 두 번째로 전국대회 일반부 정상에 등극하며, 최초의 고등학교 팀 최강부로 승격했다.
운명일 수밖에 없었던 족구
정석희가 족구인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뛰어난 실력도 있었지만 바로 그가 1세대 족구의 전설 정청식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족구는 운명일 수밖에 없었다.
2001년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정청식이 운영하는 태권도장을 다니며 태권도를 배웠고, 거의 매주 족구대회에 참가하는 아버지를 따라 대회장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족구를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족구에 매력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대회에 출전하실 때마다 데리고 다니셔서 따라 다녔는데 처음에는 별로 재미가 없어서 대회장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후 태권도, 축구 등을 즐기며 '운동이 재미있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족구도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족구를 하면 최고의 스승님이 바로 앞에 계시는 것이니 얼마든지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께 족구를 해보고 싶다고 말씀 드려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청식 감독은 아들의 입문을 이렇게 기억했다.
"정식으로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가 맞습니다. 그런데 실제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터였을 것입니다. 제가 태권도장에서 석희에게 태권도 미트를 대주고 족구 공격 연습을 시켰거든요. 제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공격에 재능이 있어 보였습니다. 안축차기 공격을 하는데 체중을 정확하게 실어서 때리더라고요. 사실 제가 발등차기를 주무기로 하는 공격수여서 저와 비슷한 스타일의 공격수로 만들어 보려는 생각도 있었는데, 석희는 안축차기를 상당히 잘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족구를 할 때와는 다르게 족구 공격의 트렌드가 찍어차기 보다는 밀어차기로 바뀌고 있었기 때문에 저와 다른 스타일의 공격수로 만드는데 굳이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들이 족구에 흥미가 없었다고 대답했다고 하자, 정청식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깐 기억이 나네요. 아마 석희가 처음에는 재미가 없다고 느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공만 주고 차라고 시키지는 않았거든요. 우리 태권도장에 계단이 있는데 석희에게 매일같이 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다리 힘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었지만 당시 석희는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당시에 내동초등학교를 지도하고 있었는데 석희는 다른 초등학교에 재학중이어서 내동초등학교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기는 했지만 대회에 출전하면 경기를 뛰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후 5학년 말 정도에 석희가 다니던 연무초등학교에도 족구팀이 생겨 대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튼 제 앞에서는 지금까지 족구가 싫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감독, 선수로
이후 정청식 감독은 기민중학교 교장선생과 합의하여 기민중학교에 족구단을 창단했다. 정석희는 기민중학교로 진학하며 아버지와 감독, 선수의 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청식 감독의 지도를 받은 기민중학교 족구단은 이듬해, 중학부 최강팀으로 올라섰고, 이후 선수들은 논산공고로 진학했다.
논산공고 족구단이 창단하고 처음으로 고등부에 발을 들여 선수들이 전원 1학년으로 구성되었지만 이미 고등부에서는 최정상급 기량을 보여주었다. 상대 2, 3학년 형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으며 대부분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듬 해 2학년이 되면서 고등부에는 아예 적수가 없는 최강자로 군림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반부 삼촌들과의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으며 지역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을 하며 이들은 전국대회 일반부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 최강부에 승격되며 지금에 이르렀다.
사실 이들이 최강부에 승격되었을때까지만 해도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과연 고등학생 선수들이 최강부에 등록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많은 이들이 기대하기는 했지만 최강부 선수들과의 계속된 경쟁이 어린 선수들에게 너무 과중한 부담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에 전혀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경기를 즐기는 것 같은 모습이었고, 대회마다 성장하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응원해 주었다. 정석희를 비롯한 논산공고 족구단의 등장은 단순한 신예 선수들의 탄생이 아닌 족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이들의 탄생이었기 때문이다.
정석희와 1문 1답
Q. 본인 소개?
A. 현재 건양대학교 재활퍼스널트레이닝학과 2학년에 재학중인 정석의 입니다.
Q. 훈련은 어떻게 하는지?
A. 개인 훈련으로는 웨이트와 등산, 런닝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작년에 학교에 생긴 족구전용 실내체육관에서 정규 운동 시간(오후 7시반)이 되기 전 오후 5시부터 혼자 나가 기본기부터 시작해 서브, 공격 그리고 평소 부족했던 부분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논산공고 시절에는 이태빈 선수와 함께 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는 했습니다. 요즘은 팀 훈련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기본 러닝과 스트레칭, 워밍업, 스텝 훈련 등을 꾸준히 하고 있고 그 후엔 1대1로 하는 기본기 훈련, 서브 리시브 훈련 그리고 포지션 별로 부족한 부분을 연습하고 나서 세팅 훈련을 한 이후에 마지막으로 경기를 하면서 마무리 합니다. 운동은 화요일 부터 금요일까지 하고 목요일이나 주말에는 실전 경험을 위해 외부 팀과 교류전을 많이 합니다.
Q. 고등학교 팀으로서는 최초로 최강부에 승격했었는데 소감은?
A. 어린 시절부터 최강부 선수들을 보면서 '언젠가 저 선수들과 같은 코트에서 경기를 해보고 싶다'고며 동경하고 꿈꾸면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최강부에 승격되었던 그 날은 정말 꿈을 이룬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하면서 더욱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Q.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A. 기억에 남는 경기, 정말 많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18년 평택 슈퍼오닝배 대회 16강입니다. 처음으로 전국 일반부에 출전한 대회였는데 16강 상대는 강호 안산 상록 족구단이었습니다. 마지막 3세트 13:9로 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마음 속으로는 이미 '졌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끈질긴 수비로 경기를 듀스까지 끌고가 역전승했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잘 했지만 특히 이태빈 선수와 김은준 선수의 몸을 아끼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토스와 수비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비도 오는 잔디 구장이어서 수비하기가 정말 어려웠지만 그런 상황에서 역전승을 거두어 정말 기뻤던 것 같습니다. 최강부에서는 2019년 원주시장배 8강, 두산인프라코어와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1세트를 패하고 2세트도 지고 있다가 역전하여 3세트까지 갔습니다. 14:13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득점을 해 팀원들 모두 이겼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우리팀 세터 김광현 선수가 공을 받을 때 허벅지에 공이 맞았다는 항의가 받아들여지며 듀스가 되었습니다. 이겼다고 생각했던 경기를 듀스에서 다시 시작하려니 멘탈이 잘 잡히지 않아 실수도 하긴 했지만 결국은 18:16으로 승리를 했습니다. 이 경기가 승리 외에도 여러가지 의미로 정말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이런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통해 우리 선수들이 모두 한 단계 성장했던 것 같았고, 특히 저의 마지막 공격으로 인해 실점하여 패했으니 상대팀 공격수 정우진 선수는 아쉬워 할 법도 했을텐데 박수를 쳐주시며 인정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개인적으로 존경하게 되었고, 선수로서의 마음가짐을 달리해야겠다는 배움을 얻은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전 그 당시 경기가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 바로 누워버려서 정우진 선수가 박수를 쳐주었는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영상을 보고 알게되었습니다.(웃음)
Q.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팀은?
A. 하남호크마 팀입니다. 얼마 전 함께 교류전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어떤 서브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리시브와 전석우 선수를 중심으로 탄탄한 수비 조직력과 포메이션을 갖췄고, 공격수 박서후 선수의 리시브를 흔드는 실수 없는 강서브와 엄청난 득점력을 보며 '역시 우승 후보는 다르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Q.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수비수는?
A. 하남호크마의 전석우 선수와 이천시민의 이준석 선수가 가장 까다롭습니다. 두 선수는 스타일이 다른데 일단 전석우 선수는 서브 리시브가 정말 안정되어 있고, 허슬 플레이가 많지는 않지만 상대 공격수와 수 싸움이 능해 정확한 예측 능력으로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준석 선수는 '정말 저 선수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의 허슬 플레이와 커버 능력이 좋은 선수입니다. 게다가 수비 범위가 상당히 넓어서 '이건 점수다'라고 생각한 공격조차도 받아내니 정말 공격수의 멘탈을 나가게 하는 수비수인 것 같습니다.
Q. 본인의 롤모델이 있다면?
A. 제 롤모델은 누가 뭐래도 '코트위의 신사' 정청식 선수입니다. 저의 아버지여서가 아니라 지금보다도 훨씬 척박했었던 족구 1세대 시절에 모든 공격수들의 로망인 비거리로 사람 키를 훌쩍 넘기는 공격을 하시며 많은 분들에게 환호를 받는 그런 선수이셨습니다. 사실상 뛰어차기 공격의 원조가 아니셨나 싶습니다. 이런 분이 저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고 저 역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도록 정말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Q. 아버지 정청식 감독님! 아버지로서 어떤 분인지? 반대로 감독님으로서는 어떤 분인지?
A. 아버지로서는 정말 완벽한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못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저희 3남매에게 단 한 번도 매를 드신적이 없으셨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말씀으로 교육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3남매가 무엇이든지 알아서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믿어주십니다. 지금은 족구 선수로서의 몸가짐 예를들면 예의와 인사성 그리고 항상 겸손함을 잊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하십니다. 감독님으로서는 우리 족구부를 위해서라면 모든 일을 제쳐 주시고 헌신하며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선수 개인마다 모두 각각의 스타일이 있는데 무조건 자신의 스타일로 이끄려고 하지 않으시고 그 선수의 개성과 특기를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Q. 2021시즌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A. 이번 시즌에는 반드시 한 번 정도는 우승을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대회가 없어서 정말 아쉬웠습니다. 더욱 아쉬운 것은 올해 11월에 입대가 결정되었습니다. 건양대학교에서 그래도 어느 정도는 성적을 내보고 군대를 가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못 해보고 가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습니다. 그래도 남은 족구 인생이 더 많을 것이기에 군대 잘 다녀와서 다시 한 번 달려보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A. 짧게는 군대 잘 다녀와서 정상의 자리에 올라보는 것이고, 길게는 아직 생각을 안 해봐서 훗날 다시 목표를 잡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Q. 논산공고 시절부터 지금까지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반대로 선수들끼리 불화도 있었을 텐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것들을 극복했는지?
A. 초등학생 시절부터 족구를 했기 때문에 정말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이태빈 선수와 에피소드가 좀 많습니다. 중학교 시절 까지는 같은 팀에서 뛰지를 않아서 대회에서 상대 공격수로 만나 맞대결을 많이 했습니다. 맞대결에서는 제가 한 번도 진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논산공고에서 한솥밥을 먹게 되면서 얘기했는데 그때 당시 저를 상당히 싫어했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이후 같은 팀에서 함께 뛰면서는 대회가 끝나면 서로 대화를 안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웃음) 그래도 그러한 일들이 쌓이면서 사이가 더 돈독해진 것 같습니다. 이후에도 때로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했지만 대화로 풀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안면몰수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웃음)
그리고 많은 선수들이 우리 족구부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좋지 않게 마무리될 때마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요즘도 힘든 부분이 모든 선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고등부에서 만큼은 논산공고 족구팀이 명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몇몇 선수들이 아직 예의범절이나 운동할 때의 마음가짐들 예를들면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 보이지 않아서 많이 아쉽습니다. 다른 팀들이 우리를 보았을때 '저 팀은 운동도 잘하고 인성도 좋구나'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팀을 만드는데 주장인 제가 앞장서고 싶습니다.
Q. 족구계에서 정청식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이 자랑스러운 만큼 부담스럽기도 할텐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A. 아버지가 족구계에서는 워낙에 대단하신 분이시기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부담을 자극으로 받아들여 더 열심히 해야하겠다고 생각합니다.
Q. 건양대학교 족구단은 언젠가는 한세대학교 족구단과 어떤 방법으로든 비교는 될텐데 앞으로 한세대학교 팀과 비교해 어떤 팀을 만들어 가고 싶은지?
A. 비교가 된다는 사실 조차도 우리에게는 영광입니다. 한세대학교 족구단은 정말 엄청난 업적을 남긴 팀이고 앞으로 그러한 업적을 넘어설 수 있는 대학팀이 나올수나 있을지 모를 정도로 대단했던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세대는 건양대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선수 한 명 한 명이 대단하다보니 팀 자체가 정말 무게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건양대도 한세대만큼은 아닐지라도 실력도 중요하지만 바른 인성과 예의를 중요시하는 팀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Q. 족구를 하면서 감사한 분들이 계시다면?
A. 감사한 분들 정말 많습니다. 먼저 저희 부모님과 믿고 따라주는 팀원들과 후배들, 어릴 때부터 제가 잘 성장할 수 있게 논산시에서 같이 운동해 주시고 예뻐해 주셨던 논산족구단 회원 분들과 후원해 주시는 논산시 족구인 분들, 저의 성장을 도와주시고 최강부에서 함께 뛰어주신 최고의 토스 김광현 사범님, 교류전이나 대회에 나갈때마다 예뻐해주시고 저를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아시는 선배 족구 선수분들 족구인 분들까지 정말 감사한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Q. 정석희에게 '족구'란?
A. 지금은 '지금의 정석희를 있게 해준 종목' 정도로 정의하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좀 더 깊은 의미로 제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는 또 다른 의미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양대학교에 입학하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욱 성장하는 20대가 된 정석희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이들이 많았지만 아쉽게도 코로나로 인해 대회가 개최되지 못해 건양대학교 유니폼을 입은 정석희의 모습을 많이 볼 수는 없었다. 게다가 2021년 11월 군입대가 결정되었고, 다른 선수들 역시 군 입대하는 선수들이 있어 건양대학교 족구단의 모습은 최강부에서는 당분간 보기 힘들 예정이다. 정말 아쉽기는 하지만 제대 후 더욱 업그레이드 된 정석희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정청식 감독과 1문 1답
정석희의 글을 마무리하고 나는 정청식 감독과 간단한 통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다음은 정청식 감독과의 1문 1답이다.
Q. 아들이 족구 선수를 하겠다고 한다면 보통의 부모라면 말릴텐데, 족구 선수의 길을 가게 한 이유는?
A. 제가 태권도를 한 사람으로서 태권도는 워낙에 경쟁도 치열하고, 그리고 제 아무리 잘해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다고 할지라도 마지막에는 도장을 차려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물론 지금의 족구가 치열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태권도에 비한다면 그래도 조금은 수월하고, 남들이 뭐라고 할 지라도 전 우리 족구의 미래가 밝고 비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태권도가 많은 이들이 없는 길을 만들어 개척해 나가 지금의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것처럼 우리 족구도 누군가의 그 첫 발걸음이 있어야 하기에 저와 석희가 함께 그 길을 개척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석희 역시 기왕에 하는 족구라면 즐족이 아닌 제대로 하고 싶어했기에 함께 나아가 보고자 그 길을 함께 선택했습니다.
Q. 감독 입장에서 선수 정석희를 평가한다면?
A. 팔불출이라고해도 할 수 없지만 석희에게 족구를 처음 시켰을때 정말 공격에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석희를 반드시 공격수로 성장시키고 싶었습니다. 선수 정석희로 평가한다면 신체조건이 좋고 몸도 빠르고 현재 족구 트랜드에 맞게 밀어차기 공격에 능한 선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Q. 아들에게 평소 해주고 싶었지만 못 한 말이 있었다면?
A. 지금까지 운동한 모습들 그리고 고등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대학이라는 어찌보면 자유로운 환경에서 음주, 흡연등을 하며 유흥을 즐기고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운동선수로서 이를 잘 절제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운동선수라면 체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아침에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산악구보를 한다든가 등의 체력단련을 조금 더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 선수들이 수비라인의 빈공간을 보고 찔러넣어 득점을 하는 능력은 뛰어난데 수비수들과 '힘대힘'으로 하는 붙는 공격이 적어 좀 아쉽습니다. 물론 수비수들의 기량이 워낙에 향상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공격수들이 체력이 좀 부족해서 그렇지는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석희 뿐만 아닌 젊은 선수들이 물론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때로는 '받을테면 받아봐'라며 자신있게 공격하는 모습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석희를 이야기할때 먼저 저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석희가 저를 뛰어 넘어 족구인들에게 '정청식의 아들 정석희'가 아니라 '정석희의 아버지 정청식'라는 인식이 먼저 떠오르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아마 모든 부모들이 바라는 그런 심정이겠죠.
취재에 응해 주시고 칼럼 쓰는 것을 허락해 주신 정석희 선수와 칼럼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정청식 감독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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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송환용님 감사합니다 ^^
귀한글올려주셨네요
논산공고~건양대 (솔직히)건양대 어디있는지도몰랐어요 학교홍보확실하게헸네요 얼마전 건양대 관촉사(은진미륵블)투어한번했네요
정석희선수 이제는정청식아들이아닌 최강부공격수입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제 이름은 송환용이 아닌 송한용입니다~ㅋㅋㅋ 답글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긴 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당분간 건양대족구단 경기모습을 볼 수 없다니 아쉽네요....
하루빨리 코로나 물러가서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화이팅 소리와 호각소리가 듣고 싶네요 ㅎㅎ
족구 화이팅!
석희가 벌써 입대날짜가 나가 왔군요..아쉽지만 우리나라 건강한 청년들은 국방의 의무를 지키야하고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것이니 굳굳하게 근무하고 제대후 더 멋진 모습을 기대합니다.석희 파이팅 ^^
아주 과분한 칭찬과 격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족구유일의 자랑스러운 칼럼리스트 송한용님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겸손하고 족구실력을 갖춘 선수로 잘 지도해 나가겠습니다.
군대지원은 1차합격하여 곧 입대날짜 확정될듯합니다~
건양대 선수들이 군대갈 나이가 되었군요.
아마도 군생활 잘할것이고 족구 보급 엄청하고 전역할거 같네요.
둘셋 팟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