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세미나 후기
때: 광주예배 전날인 5월 11일
곳: 전남 화순군 숙소
참고 자료: 소설 3편 <광야>, <그들의 새벽>, <봄날>,
참여: 정혁현 목사님, 이신정 전도사님, 공은주, 박성호, 박연옥, 안태형, 이샛별, 이수정, 정명수
* 다큐멘터리 <오월애>에서 증언했던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눔
(* 수정이나 추가 사항은 답글로 달아주세요)
A: 부마에서는 계엄군의 초등진압이 성공했다. 그런데 광주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B: 남도의 오랜 역사 속에 배인 민도의 차이도 크다.
A: 그것은 광주가 혁명의 도시라는 사후적인 사고 때문이다. 당연히 부마에서도 폭동 진압 원칙에 따라서 과격하게 진압했을 것이다.
C: 박정희가 죽고 독재정권이 사라지고 난 후의 불안정한 정세, 그 틈이 큰 원인이다.
A: 광주가 남도이기 때문이라고 특수주의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떤 변수가 광주 사람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D: 기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인가?
B: 광주에 오랜 차별의 역사가 있었다. 단지 기질이 그랬다기보다는 박정희 통치 시절의 정치적 변수가 함의처럼 담겨있었다.
E: 서울에서 그러한 강경 진압이 있었더라면 동일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F: 서울은 고립시킬 수 없다. 북한 등의 변수가 많아서 서울에선 불가능하다.
A: 서울이 곧 한국인데 뭘.
E: 그렇다면 서울역 회군이 결정적이었고, 그것이 광주를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A: 계엄군이 부마 때와 다른 방식으로 진압했기 때문에 초등진압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강경진압은 공포를 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머리를 때리지는 않는다. 다른 신체를 강하게 때리면 공포에 질리지만 머리를 때리면 약간 돌고, 생각이 바뀐다. ‘나를 짐승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그들은 너무 야비하게 진압을 했다. 이것은 지휘관의 실수일까? 조직적인 의도일까? 세 가지 소설이 모두 놓치는 것은 공수부대의 잔인무도한 행동의 원인이다. 그러니까 강력한 훈련으로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B: 전두환은 여유가 없었고, 혹독한 충정훈련에는 정신교육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A: 실제 전쟁 때에도 제네바 협정 같은 것이 있어서 포로를 그렇게 다루지 않는다. <봄날>에서 칠수가 죽을 때, 그는 완전히 무력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를 자극해서 계엄군에게 대들도록 만든다. 광주도 그런 것이다.
E: 훈련을 통해서 인간적인 이기심을 자극했다.
D: 투우장의 성난 투우처럼 만들었다.
A: 그런 문학적 표현들은 어떻게 공수부대가 광주에서 그럴 수 있는가가 해명되지 않기 때문에 사용되는 것이다.
F: 부마 항쟁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진압하는 사람의 문제인지, 진압 당하는 사람의 문제인지.
B: 베트남전에서 유난히 한국군이 잔인하고 야비했다. 그것은 빨갱이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다. 80년에는 국가적인 위기의식과 함께 그것이 더 심했을 것이다.
F: 군인들은 멸공 교육 다 받지만 20대 젊은이들은 쉽게 의식화 되지 않는다.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한다.
B: 상대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행동이 용인되면, 그런 행동이 점점 더 강화된다.
C: 그들은 6.25를 겪은 부모들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더 강화되지 않았을까?
B: 중학생들의 왕따 현상에서, 어떤 애를 슬쩍 건드렸는데도 아무런 제재가 없을 때 그 행동이 점점 더 심해진다. 그것은 집단의 힘이다. 공수부대 중에서도 모든 군인들이 똑같은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처벌이 있어야 한다.
F: 아우슈비츠는 어땠나?
B: 독일 전범재판은 유명하다. 전두환 노태우 세워놓고 바로 사면하는 이런 식의 쑈가 아니다.
A: 지금까지 잡아들이고 있다. 모사드는 지금도 전범들을 쫓아다닌다. 법이라는 것은 그렇게 무시무시하다.
A: 이 문제(공수부대와 광주)에 대해서 소설 세권에서 충분한 해명을 얻지 못했다. 그것은 광주에 대해서 더욱 섬세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B: 인간 행동에 대한 완전한 해명은 불가능하다. 가정 폭력의 경우를 보면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 있는가 생각할 정도로 끔찍하다. 약하고 저항 불가능한 사람에게 자기 모든 분노와 공격성을 푸는 것이다.
A: 다른 중요한 원인이 있는데도, 그걸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올바른 접근을 할 수 없다. 그러면 동일한 문제가 계속 발생한다. 나는 공수부대의 지나친 행동에 대해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A: 광주가 의도적인 시나리오대로 진행된 것인가? 아니면 어떤 우발적인 변수에 의해, 광주 시민도 계엄군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다가, 결국 12.12세력이 정권을 잡고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것인가?
C: 지역감정을 이용한 시나리오가 있었을 것 같고, 거기에 우연적인 요소가 개입했을 것이다.
D: 서울에서는 학생운동이 중단했는데, 전남대에선 시위를 계속했다.
A: 서울에는 학생 운동조직이 완전히 붕괴한 상태였다.
B: 모두 사전 예비 검속을 당했기 때문에.
G: 저항 세력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한 작전이다.
A: 서울역 회군 때문에 그 의도가 더 수월했다.
C: 서울역에 15만의 대학생이 모였는데, 쿠데타 세력의 독재에 대한 빌미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잠시 쉬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A: 그렇게 많은 대학생이 모인 것이 지도부에게 감당이 안 되었던 것이다.
D: 소설에 등장하는 독침 사건이 의미심장하다.
B: 분단국의 빨갱이 개념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말 너무 잘한다는 이유로 전옥주가 간첩으로 의심 받기도 한다.
A: 우리나라의 진정한 인종주의는 빨갱이다. 너무나 교과서적이다. 우리 사회 내부 적대를 외화시켜 놓는다. 내 생각에는, 광주에 대한 쿠데타 세력의 시나리오가 있었고, 불행하게도 그 시나리오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주는 철저하게 이용당한 것인가라는 심각한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C: 광주 사람의 피해의식과 연관이 된다.
A: 그것은 지식인의 피해의식이다. 민중들은 그런 피해의식이 없었을 것이다. 광주에서는 너무나 혁명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광주가 항쟁인 것은 사람들이 단순히 총 들고 싸웠기 때문이 아니다. 광주는 그 전까지 한국 사회를 지탱해 왔던 정신적 기둥 몇 개를 뽑았다. 미국 뿐 아니라, 빨갱이 문제도 적극적인 사회적 관심사가 된 것이다.
E: 빨갱이 문제는 여전하지 않은가?
A: 그것은 87년 이후의 싸움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80년대 한국 사회 운동은 자칭 빨갱이들이 주도했다.
D: NL 계열
B: 시민들도 엄청 합세하고.
E: 전두환은 유학생 간첩단, KAL기 등 끊임없이 간첩 사건을 조작하여 정권을 유지 했다.
A: 전두환의 생각은 아버지 박정희보다 더 오래 해먹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광주에서 비롯된 한국 사회의 운동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G: 공수부대가 사람들을 잡았을 때 옷을 벗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A: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기가 빠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짐승보다 힘이 세지도 않다. 옷을 벗기는 것은 상징계를 확 벗기는 것이다.
G: 공수부대에 의한 사망자가 얼마나 되는가?
A: 세 소설에서 계엄군의 불법적 화장을 묘사하는데, 그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는 이루지지 않았다. 실종자의 15%는 사망자로 쳐야 한다.
F: 기록에 보면 어떤 할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사라졌다고 신고했는데, 조사하다 보니까 그 아들에게 정신병력이 있었다. 그 당시에 광주에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면 5.18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결국 인정을 받았다.
E: 광주 항쟁과 광주 민주화 운동은 구별되어야 한다. 정부가 각종 기념행사나 상징물을 만들어서 민주화 운동으로 만드는 것이 정부의 태도이며 현실인식이다. 하지만 광주는 민중 항쟁이며, 현실정치적인 권력투쟁으로 봐야 한다.
A: 중요한 것은 광주 시민들을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공동체로 묶어낸 힘이다.
E: 윤상원에 대해서 점점 더 궁금해진다. 어디서 그런 의지와 힘이 나올까?
B: 시민들의 공동체가 며칠 가지 못했는데, 윤상원은 계속 궐기대회를 조직하고 투사회보를 만든다. 그는 결국 도청에 남는 결단을 한다. 살육을 벌이는 정권에 대항하여 일어설 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이 되었는데, 시민군이 총을 들고 도청에 진입하는 순간 시민과 시민군이 분리된다. 통제 시스템이나 새로운 법체계가 없으면 그 감동적인 힘이 며칠 가지 못한다. 시민군 대부분은 수습위원회에 설득당해서 무기를 반납하고 돌아간다. 결국 도청엔 200여명만 남고 금남로, 충장로에 가득하던 십만이 넘는 인파들이 모두 쥐죽은 듯 집안에 숨었다. 혁명이란 극적인 감동의 물결만이 아니라, 끝까지 견지해 내는 힘으로 되는 것이다. 윤상원은 새로운 법체계, 제헌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이 많아야 한다. 기자의 부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증언하기를, 넝마주이나 구두닦이 같은 하층계급이 갑자기 총을 들고 돌아다니자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시민군의 입장을 옹호하지만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분만 가지고 총을 들었을 때, 시민들에게 이중적인 공포가 생겼을 것이다.
C: 그 점은 <봄날>도 묘사한다. 시민군들의 차가 거리를 너무 빨리 달렸는데, 규칙이 생기자 속도를 지켰다고 한다.
B: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괄시받던 사람이 어느 날 총을 들고, 사람들의 환대를 받을 때, 그는 맘대로 해도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싸움의 정당성에 대한 공감, 질서와 지침이 없다면 순식간에 시민군은 오합지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상당수가 순식간에 무기 반납을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두 가지 코뮨이 있다. 19~20일 차량 시위를 기점으로 해서 모든 거리에서 너나없이 가진 것을 내놓고, 먹을 것을 나누고, 다친 사람을 도왔던 10만 인파가 진정한 코뮨인가? 그 이후 순식간에 인파들이 사라지고, 언제 진압군이 다시 쳐들어올지 모르는 며칠 동안 사람들은 점점 전의를 상실하여 집안으로 퇴각하고, 더 이상 생명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무기를 반납하는 상황 속에서 끝까지 도청에 남은, 박남선 윤상원을 비롯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어떻게든 통제하려고 하고 이데올로기 싸움을 하려고 하는 작은 체계가 진정한 코뮨인가? 전자가 굉장한 파토스 감동이라면, 후자는 끊임없는 유혹과 예상되는 패배와 싸우는 고뇌이다. 전자는 분명히 보이는 적과의 싸움이지만 후자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어느 것이 중요한가? 너도 나도 일어날 때 같이 참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너도 나도 다 돌아설 때 끝까지 남는 것은 굉장히 힘들 것이다. 그래서 소설에서 윤상원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누군가는 광주의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는가?
F: 그러면 너무 비관적이다. 3일 동안 에너지를 폭발하고 인간으로서 삶의 정점에 있었지만, 그것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A: 파토스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미치는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된다. 파토스가 활짝 피어나는 꽃과 같다면, 열매는 화려하진 않지만 꽃과 나무가 쌓아 온 모든 것이 집약된 무엇으로 남는 것이다. 열매는 새로운 가능성으로서의 씨를 배태하는 것이다. 하지만 열매는 꽃이 없으면 있을 수 없다. 이 두 개를 어떻게 하나의 과정으로 볼 것인가? 우리가 파토스에만 황홀하게 매달리는 것은 인간의 삶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꽃처럼 아름답지 않더라도 다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F: 광주 항쟁 때 도청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살아남은 사람들보다 더 행복한 것 아닐까? 그들은 행복하게 죽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정점을 느끼지도 못하고 짐승처럼 살다가 가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인간답게 살다가 간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그 사람들에 대해서 미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부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A: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순간을 한 번도 느끼지 못하고 죽는다. 그렇다면 행복이라는 차원에서는 그 사람들이 정말 행복하다. 그런데 인간의 삶의 목표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행복은 삶의 진정한 목적을 위해서 주어지는 격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행복에만 매달린다. 그러니까 오히려 짐승같이 살게 된다.
F: 굳이 신앙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내가 짐승처럼 살기 싫기 때문이다. 이 교회에서는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앞으로 내가 사는 동안 정말로 사람다운 삶을 느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래서 이런 자극을 받기도 하는데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A: 광주 소설을 보면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지젝과 바디우가 말하는 사랑은 정치적인 행동이다. 광주에서 그런 사랑이 존재했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절정의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요한 1서에 보면 여러분이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서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광주는 그런 순간이었던 것 같다. 사랑은 자기애와 같지 않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세 번을 질문한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것은 예수에게 있어서 베드로가 자기 제자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이었다. ‘날 통해서 널 보려고 하느냐?’ 베드로와 예수는 다르지만, 베드로는 예수를 통해서 자기를 보기 시작하는 때부터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강력한 추동력이 생긴다. 자기가 아닌 예수 입장에서 자기를 보는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저 사람의 입장에서 내 삶을 보는 것이다. 그 훌륭한 사람의 그 잣대를 가지고 다른 사람도 판단한다. 그래서 사랑이 혁명적인 것이다.
D: 자아이상이 결국 실패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인가?
A: 아니다. 사랑은 자아이상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B: 사랑의 내용과 형식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요즘 조건부 연애들이 사랑이라고 여겨진다. 우리는 자기 조건을 더 강화시켜줄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학습을 받고 있다. 자기애를 강화할 수 있는 상대와 만나려고 하고, 그러면 내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는다. 연애조차도 상품이 되었다. 그런데 예수가 ‘네가 날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것은 ‘내 안에서 너를 보려고 하느냐? 아니다. 그것(사랑)이 널 부정할 것이다.’라는 뜻이다. 부정 이후에 베드로는 완전히 바뀐다. 자기가 예수를 사랑한 방식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알고 통곡한다. 우리는 극단으로 다른 것을 사랑이라는 같은 말로 명명하는지도 모른다. 연애의 시작은 물론 자기애의 확장이다. 환상을 보는 것이다. 너무 좋아 죽겠고, 저 사람이 내 결여를 채워줄 수 있을 것 같고. 그러나 진정한 사랑, 그리스도가 말하는 사랑은 그 환상이 추악하게 깨지는 환멸의 순간부터 시작된다. 광주에서 그런 사랑이 일어난다. 부당한 권력에 의해 인간에 대한 모든 환상과 존엄이 완전히 깨지고, 자기와 어떤 연관도 없던 남이 고통 받고 죽어갈 때,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거는 일이 일어난다. 그 사람이 날 채워주지 않아도 되는, 조건 없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진정한 사랑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나의 고민은 그것을 견지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확 일어나는 감정은 오래 못 간다. 내 삶을 바꿔내는 과정은 내 생각과 내 기준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므로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그것을 지속하는 의지를 함께 다지는 것이 문제이다. 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두 부류였다. 도청을 나가면 다시 넝마주이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대학생이나 직장인 신분을 되찾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잃을 것 없는 사람과 가진 사람이 도청에 함께 섞여 있었다. 여기서 잃을 것이 있는데도 도청에 남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몫이 없는 자들에게서 혁명적 힘이 나오지만 그것을 견지하는 윤상원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만약 그가 살아남았더라면 명분도 얻고 명망가로 살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이다. 가진 것을 이용해서 더 가지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가진 것으로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것을 계속 견지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인가, 게으르지 않도록 만드는 힘이 어떻게 나오는가? 이것이 광주 공동체가 나에게 준 질문이다. 이 여정이 앞으로도 길게 남아있다. 폐쇄된 우리끼리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증인의 삶으로서의 과정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F: 나는 몸으로 때우는 스타일이라서 자극을 계속 받아야 한다.
D: 연애를 할 때도 그렇지만 이성적으로 계획하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도 모르게 몸이 가고 희열을 느끼면서 진행된다. 헤어지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면서도 감수하는 것이다. 아까 중국집 아저씨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니 더 이상 죽고 사는 것을 넘어선 경지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은 어느 순간 돌아설 수 없게 된다.
C: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어차피 여기서도 죽고 나가서도 죽는다’는 마음으로 도청에 남았더라면 그들은 자살한 것과 같다. 그 사람들도 목숨을 걸고 공포를 대면한 것이다. 잃을 것이 없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A: 광주에서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체험을 하는 것이다. 그 체험은 도청 밖의 삶에서는 퇴색될 것이 너무 뻔하다. 그것을 견지하기 위해서 도청에서의 투쟁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F: 그런데 죽음을 무엇과 바꿀 수 있는가? 공포가 굉장할 것이다. 그 중국집 아저씨가 죽음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할 때 실감이 났다. 좋은 옷을 입어야 좋은 데 간다든가, 주민등록증을 준비한다든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옛말이 있지만, ‘넝마주이나 비루한 삶이 아니라 내가 여기서 뭐든지 할 수 있어. 나가면 아무것도 아냐.’ 그걸 죽음과 맞바꾼다는 것이 가능한가?
B: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술집 아가씨들도 시민군에게 밥을 만들어 준다. 그들은 생전 처음 뜻있는 일,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한다고 느낀다. 이처럼 천대받고 사람대접 못 받던 사람들도 자부심을 가진 삶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과 명예롭게 죽는 것 사이에서 목숨을 건 내기를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책에서 근대 이전과 이후에 죽음에 대한 의식이 바뀐다고 한다. 이전에는 시신과 장례에 익숙했다. 이후에는 산 자와 죽은 자가 격리되어,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강해지고 생명을 집착하게 된다. 광주에서는 며칠 동안 죽음과 삶의 경계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나도 죽을 수 있구나, 죽음이 먼 것이 아니구나.’ 느꼈을 것이다. 시민들과 계엄군과 대치할 때 젊은이들 몇 명이 태극기를 들고 나갔다가 죽는다. 나가면 죽는 것을 아는데 다른 사람이 또 나간다. 그 순간에는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게 되는 맥락이 있다. 광주에서는 이것을 열흘 동안 경험했다.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죽음에 대한 느낌이나 의미가 달랐을 것이다. 만약 우리 교인 절반이 시위하다가 죽는다면, 남은 사람들은 지금 상상하는 것과 다른 상황이 될 것이다. 좋은 예가 아니지만.
C: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가던 이전과 도청 점거 이후의 상황은 좀 다르다. 도청에서는 엄청나게 두려웠을 것이다.
A: 특히 두려운 죽음은 개죽음이다. 아무 명분도 대책도 의식도 없이 죽는 것이다. 도청에서 사람들은 자의식을 가지고 공포 속에서 죽음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었으며, 삶과 죽음을 선택해야 했다. 우리는 상상을 하지 못한다. ‘나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모른다고밖에 얘기할 수밖에 없다. 죽은 정승보다 살아있는 개가 낫다고 하는데, 생명 자체에 대한 집착이 만연한 세상에서 그런 순간에 내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는 대답할 수 없다. 그렇지만 등산하다가 떨어져서 죽는 것과 다르게 도청에서는 인간이 자기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너무나 훌륭한 시간이었다. 누가 그렇게 오랫동안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B: 그래서 10만 인파가 아니라 도청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코뮨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외로웠지만 옆 사람이 굉장한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판단력과 지성과 의지를 가진 윤상원 같은 지도자를 핵심으로, 그들은 꿋꿋하게 잘 버티면서 왜 남는지에 대해 서로 설득하고 설명했을 것이다.
A: 영화 <미션>에서 멘도사는 총을 들고 싸우는데, 자기와 달리 총을 들지 않기로 선택한 가브리엘 신부가 죽는 순간, 멘도사도 같이 눈을 감는다. 그것은 개인의 죽음이 아니다. (B: 죽음의 연대이다.) 죽음의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죽음은 완전히 혼자 짊어지는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
H: 삶과 죽음 둘 중의 선택이 아니라 다른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총을 든다는 것은 이 총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동시에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그 생각을 어떤 고집처럼 지킨 것이다. 무언가를 지키려면 싸워야 하는데, 동료와 함께 하므로 전쟁이 될 수도 있고, 그렇다면 죽음까지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 된다.
A: 중국집 아저씨는 계엄군에게 차마 총을 쏘지 못했다고 했는데, 시민군이라면 쏴야 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휴머니즘으로 칭송하는데, (B: 그것이 소설<광야>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은 광주를 무너뜨리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B: 김창길은 수습위원회에서 희생을 줄이고 생명을 지켜야 하며, 폭력을 쓰는 저들과 같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정환은 권력에 대항하는 폭력, 정당한 폭력까지 모두 같은 폭력이라고 매도해선 안 된다고 한다. 수습위원회는 시민군을 그렇게 매도했다. 상대를 쏘지 못하는 것은 군기가 빠진 것이다. 마키아벨리 같은 입장이라면 용납될 수 없다. 정신교육이 안 돼있던 것이다.
C: 도청에서 그 순간 내가 쟤를 쏴도 우리가 질 것이 뻔했고, 광주 사람들이 군인을 더 많이 죽였다면 그들은 더욱 폭도로 몰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H: 시민군이 처음에 총을 들었을 때, 내가 죽더라도 한 놈이라도 죽이고 죽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것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것이다.
B: 군기가 빠졌다고 하는 것은 승산 없는 싸움임을 알고 도청에 남았기 때문이다. 김창길에겐 승산 없는 싸움이었지만, 윤상원이 본 것은 현실적인 승산이 아니었다. 한 놈 쏜다고 승리의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고, 오히려 폭도로 남을 가능성은 강화되는데, 그건 시민군 입장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A: 승산 없는 싸움은 싸워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왜 싸우는가?
B: 쏘지 못한 것이 잘못이다. 쏘지 못할 것이라면 시민군으로 총을 들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만약 박남선 상황실장이라면 다이너마이트부터 지켰을 것 같다. 협박용이나, 장기전으로 몰고 가기 위해서라도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다.
A: 시민군에겐 처음부터 군기가 없었다.
B: 많은 사람들이 의분으로 일어선 이후,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일정한 다른 상징 질서가 세워지지 않으면 승산 없는 싸움이다. 베트남전의 게릴라는 최첨단으로 무장한 미군에 비하면 오합지졸이고 극소수였다. 그러나 장기전에서 승리했다.
A: 시민군에게 승산이 없긴 왜 없는가? 시민군들이 목숨을 걸고 조직적으로 계엄군을 공격한다면 12.12세력은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완전히 내전이 될 것이다.
D: 광주는 고립되어 있었는데 어떤 승산이 있는가?
C: 목포에서도 달려왔다고 한다.
A: 엄청난 변수가 있었다. 12.12세력은 똥줄이 타고 있었다.
B: 윤상원이 주장하는 것은 전투에서의 승산이 아니었다. 며칠 더 끌었을 때의 전염효과였다. 카빈 총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A: 카빈 총 가지고도 이길 수 있다.
E: 제일 먼저 해야 할 일들은 미국인들을 도청으로 끌고 가는 일이다.
A: 이란은 미국대사관을 인질로 삼았다. 베트남전에서 미군과 베트콩은 전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이겼다. 인간들에 싸움에는 그런 변수가 있는 것이다.
B: 베트남전을 길게 끄니까 자체에서 반전 세력이 나오는 것이다. 화력 싸움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싸움이 된다.
A: 이라크가 무기력한 것은 후세인이 독재를 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이 강한 것은 호치민이 민중을 사랑한 뛰어난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중국 대장정 때 국민군이 장개석 군대에 밀려 중국 전체에 걸쳐 후퇴하는데 농민들이 전부다 공산군이 되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저쪽에서 사람이 맞아 죽었는데, 그것은 나만의 죽음이 아닌 것이다. 도청에서도 나 혼자만 죽는 것이 아니다. 나의 죽음이 개인적인 삶과 관련해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게 공포를 넘어서게 하고 개인이 가진 치졸한 삶의 세계를 순식간에 깨버리는 것이다.
F: 우리한테도 있겠지?
A: 인간이니까 당연히 있다.
첫댓글 내 말이 기록되는 것이 부담스러워, 내가 말한 게 이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말을 글로 옮기니까 뜻이 바뀌네... 등의 의견이 있어서 발언 순서대로 알파벳 표기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 (때로는 중구난방식으로) 이야기했던 거 같은데 그 긴 녹음 자료를 이렇게 풀어 정리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렸겠죠. 수고 많으셨습니다.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