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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원로의원 동춘 큰스님. 경주 기림사 서장암에 주석하고 있는 선지식이시다. |
이따금씩 행사장에서나 뵙던 한 선지식을 가까이서 뵌 것은 2년 전 기림사를 들렀을 때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지식은 동춘 큰스님을 말한다. 동춘 큰스님은 기림사를 품고 있는 함월산 자락에 토굴처럼 작은 집 한 칸에 머물며 직접 공양을 지어 드시며 정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아마도 스님은 그곳을 당신의 열반지로 삼고 있는 듯 보였다.
당시 동행을 했던 이는 도서출판 선연의 문종남 대표. 그는 큰스님께서 특별히 들르라는 당부를 받은 터였고, 기자 역시 미디어붓다의 창간을 막 준비하던 터라 기림사 주지스님을 찾아뵐 일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원행길을 같이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 동춘 큰스님께서 문 대표에게 말씀하신 것이 바로 불교소설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소설가 정찬주 선생의 ‘관세음보살본행경’ 편역 『관세음보살 이야기』를 다량 출간해 인연있는 이들에게 법보시를 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큰스님이 문 대표에게 책 발간에 드는 비용 등에 대해 자세히 물었고, 문대표는 정성껏 대답을 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스님께서는 이 책을 내기 위해 멀리 전라남도 화순 쌍봉사 옆에 있는 정찬주 소설가의 집필처인 ‘이불재’를 찾아가기도 했고,
또 기림사에서 만남을 갖기도 했다고 말씀하셨다. 저자가 흔쾌히 법 보시 간행을 허락하지 않으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당신의 뜻을 펼 수가 없기에 노구에 원행을 마다하지 않으신 것이다. 물론 정찬주 선생은 큰스님의 원력에 감동했고 그 자리에서 흔쾌히 큰스님의 뜻을 받들었다. 동춘 큰스님이, 이 책을 우연히 구해 읽으면서 그 내용이 너무나 감동스러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말씀하시며, 법 보시에 관한 의지를 밝히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책이 드디어 나왔다. 책이 나오기까지 2년의 세월이 흘렀다. 비용은 큰스님께서 그동안 받은 법문비 등을 쓰지 않고 한 푼 두 푼 모았던 것으로 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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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경전소설『관세음보살 이야기』가 다시금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렇듯 조계종 원로의원이신 동춘 큰스님의 원력에 의해 제작ㆍ배포하는 법보시를 통해서다. 알려진 바와 같이 큰스님은 이미 『부처님이 들려주신 효 이야기』(2000년), 『밤톨이와 얼짱이의 효도 뚝딱』(2003년), 『엄마 아빠 고마워요』(2004년), 등 효사상이 담긴 책을 60만부 발행하여 전국의 어린이 및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배포한 바 있다. 그 때마다 언론에 자신의 법보시행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시며 인터뷰를 사양하곤 하셨다. 물론 이번에도 마찬가지.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출간비용은 기림사 토굴에서 홀로 수행하시며 검소한 생활로 일관해 오신 스님은 약값이나 교통비, 법문비 등을 모아 이번에 다시 『관세음보살 이야기』를 발간하여 배포하게 된 것이다.
기억력이 더 흐려지기 전에 이번 책 보시를 끝으로 당신의 생애를 회향하고자 하신다는 동춘 큰스님은 이 책 『관세음보살 이야기』를 읽고 만 명 중 단 한 명이라도 관세음보살의 인욕바라밀을 본받고 실천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법보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강조하신다.
『관세음보살 이야기』는 중국의 건륭판 『향산보권』을 편역한 책으로 관세음보살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국 흥림국 묘장왕의 세 딸 중 막내인 묘선이 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법을 믿고 수행하다가 마침내 왕궁을 떠나 출가하여 향산에서 관세음보살로 성불한다는 이야기다.
사실 불자라면 한번쯤 관세음보살을 간절하게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자기도 모르는 무의식중에 관세음보살을 애타게 찾은 경험이 있지 않을까.
그러한 관세음보살을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제목과 달리 마치 재미있는 한 편의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부담 없이 읽혀진다. 한 나라의 사랑받는 공주가 부귀영화를 떨치고 부친의 뜻을 거역하면서 온갖 시련을 겪고 마침내 관세음보살로 화현하는 이야기는 언뜻 권선징악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다 읽고 난 후,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떠한지 문득 되돌아보게 한다.
부처님처럼 왕족출신으로 태어난 묘선공주는 유독 어여삐 여긴 부친 묘장왕의 뜻을 꺾고 불제자의 길을 고집한다. 이에 묘장왕은 분노하며 삼보를 훼손하고 모욕한 인과로 치명적인 병마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묘선은 부왕을 위해 자신의 눈과 손을 떼어주는 순교를 감행하고, 묘장왕 역시 묘선공주의 인도를 받고 불도의 길을 가게 되며, 묘선공주는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로 중생 앞에 나투게 된다는 이야기다.
‘자비란 한낱 서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절한 고행과 불구덩이 같은 시련 속에서 깊어진다는 도리가 이 책에 담겨 있다’고 말한 편역자의 말처럼 누구든 진정 성불하려면 기꺼이 자기희생을 감행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보살은 평등한 마음으로 자기가 지닌 물건을 남김없이 모든 중생에게 널리 베푼다. 베풀고 나서 뉘우치거나 아까워하거나 대가를 바라거나 명예를 구하거나 자기 이익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이롭게 할 뿐이다. 몸소 성인들이 쌓은 행을 배우고 생각하고 좋아하며 몸소 실천하고 남에게 말하며, 중생에게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삼보를 인정하지 않던 부친 묘장왕 에게 묘선공주가 한 말과 같이 보살의 진정한 마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출가 후 평생을 수행납자 지원과 어린이 청소년 대상 책 보시 등 인재불사에 힘써 오신 우리시대 진정한 선지식 동춘 큰스님의 소중한 원력이 『관세음보살 이야기』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길 기대한다.
*동춘 스님의 이 책의 서문 '향을 사르며' 전문
평생 동안 소납에게 감동을 준 책 이 세 권 있습니다. 그 세 권을 보고 소납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 권은 갓 출가해서 '부모은중경'을 읽다가 부모에게 불효했다는 생각에 울었고, 또 한 권은 소납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 '우동 한 그릇', 마지막 한 권은 '관세음보살 이야기'입니다. 온갖 고난을 참고 극복하는 인욕바라밀 부분이 특히 감동적인 '관세음보살 이야기'를 읽고 이 정도는 인욕바라밀을 해야만 참다운 불제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관세음보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읽고 만 명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인욕바라밀을 본받아 실천한다면 소납의 법 보시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죽기 전에, 더 기억력이 흐려지기 전에 이 책을 법보시하는 것으로 소납의 생애를 회향하려고 합니다.
끝으로 묻습니다.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물을 아무리 많이 퍼내도 우물물은 그대로입니다. 다른 곳에서 물을 가져다 부어도 양은 같습니다. 자, 어떻게 하면 우물물을 더 많게 할 수 있겠습니까? 수행하여 인과를 보게 되면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물을 더 깊이 파면됩니다. 그릇을 크게 만들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불기2553년 10월 조계종 원로의원 동춘 합장.
나) 누구 없는가?- 종정스님 자서전
글 출처: 미디어 붓다
‘절에 보내지 않으면 스물을 넘기지 못 한다’는 주역가의 말에 따라 아버지 손을 잡고 산에 오른 열 네 살의 어린 소년. 3년간 매일 엄마 품을 생각하며 하루도 눈물 짓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던 그 소년은 엄마가 하도 그리워서 산을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이제 산을 내려가겠노라고, 어머니 곁에서 살겠노라고 하자 은사 스님은 그에게 “니가 절에서 먹고 찐 살을 베어놓고 가라”고 말한다. 정말로 살을 베어내야 산을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한 소년은 그 길로 선방에 들어가 80여년을 하루와 같이 수행정진하며 살아갔다.
아버지 손을 잡고 산을 오를 당시 그 소년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승이 되리라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도, 그를 받아준 스승도, 그 자신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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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법전 스님의 자서전 <누구 없는가>에 나오는 일화이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지만, 사실 몇몇 스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잘 알지 못하는 분이다. 평생을 하루와 같이 수행해온 스님, 차갑다 못해 냉혹하기까지 한 수좌, 성철·청담· 만암 스님 등 기라성 같은 선사들과 함께 한국 근현대 불교의 맥을 이어온 스님, 봉암사 결사의 마지막 멤버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종정 스님의 모습은 매우 피상적이고, 때로는 불분명하기까지 하다.
스님의 불투명한 이미지는 일반 대중들이 선(禪)에 대해 느끼는 막연함과도 비슷한 것이다. 우리와는 동떨어진 세계 속에 막연하고 묘연한 깨달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듯 말이다. 그래서인지 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육성으로 풀어놓은 자서전 <누구 없는가>가 무척이나 반갑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한국의 고승 가운데 살아생전 자서전을 출간한 스님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평생토록 숨은 도인으로 살아왔던 법전 스님이 그 주인공이기에 이번 자서전의 출간에 약간의 놀라운 감도 없지 않다.
이 책의 구술을 정리한 스님의 상좌 원철 스님과 작가 박원자 씨는 “돌아가신 후에 소설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것보다는 살아생전 스님의 육성을 듣고 올바른 가르침과 한국 근현대사의 증언을 남겨놓는 일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자서전을 발간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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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암 불사중 |
책으로 흘러나오는 법전 스님의 육성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선의 세계가 얼마나 고독하고 뼈저린 것인지를 어슴푸레 알게 해준다.
묘적암 에서 홀로 수행할 때의 일이다. 서른 즈음 됐을 무렵 봉암사를 거쳐 묘적암에 올라간 법전 스님은 그곳에서 그렇게 많이 울었다고 한다.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죽으면 법전이란 존재를 태평양 한가운데 어디 가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망망함을 참을 수가 없어 가슴에서 무언가 뭉친 것이 터져 나오듯 통한의 눈물이었다.
절박한 마음으로 좌복 위에 앉아 세수도 하지 않고 양치도 하지 않은 채, 시심마 하면서 지낸지 몇 달이 흘렀을까. 먼지 위로 스님의 발자국이 아침 햇살 속에 선명히 드러나던 어느 날, 겨울이 가고 나무들이 서서히 물오르던 어느 날,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게송을 불렀다.
거울과 거울이 서로 비치니
비치는 것과 그림자가 둘 다 없더라
이것이 또한 무슨 물건이냐
청산이 백운 속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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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자리를 맛본 이후 스님은 어머니의 소식을 들었다. 두 아들을 한국전쟁으로 잃고 난 후 부쩍 가슴앓이 병이 심해진 어머니가 “막내를 보고 눈을 감아야 겠다”고 애원을 한다는 것이다.
그토록 꿈에 사무치던 어머니, 10여 년 간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 어머니, 죽음을 눈앞에 두고 출가한 막내아들을 찾는다는 그 어머니.
하지만 스님은 “저는 집을 나온 출가자입니다. 부모 형제를 위해서는 그쪽으로 한 발도 옮길 수 없습니다” 라는 말만 던지고 부친을 돌려보냈다. 그것이 부친과의 마지막이 되었다.
“출가해서 공부하려면 부모 형제를 원수처럼 알아야 한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설령 부모의 죽음 앞이라 해도 예외는 없다. 출가수행자로서는 그게 부모의 깊은 은혜를 갚는 길이다. 만약 작은 정에 이끌리게 되면 자기는 물론 결국 부모까지 지옥으로 인도하는 결과가 된다.”
역시, 성철 스님의 제자다운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들을 찾으러 온 어머니에게 돌은 던진 성철 스님이나, 죽어가는 어머니를 외면한 법전 스님이나, 속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철벽이나 은산 같은 이들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법전 스님의 책에는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인 조카가 사업이 어려워지자 스님에게 도움을 구하러 왔다가 외면당하고는 돌아가는 길에 죽음을 택했다는 일화도 실려 있다.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라 절에 시주를 한 사람들의 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이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납득되기 힘든 이야기들까지 책 속에 들어간 것은 “더 붙이지도 말고, 그렇다고 빼지도 말라”는 법전 스님의 당부 때문이라고 원철 스님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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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전 스님은 스스로를 ‘표범’에 비유했다. 새끼를 키울 때가 아니고는 늘 홀로 산정 높이 올라가 고독과 싸우는 표범. 평생토록 홀로 수행을 해온, 한줄기 불꽃처럼 타오르고자 하는 자신의 삶이 마치 킬로만자로의 표범처럼 느껴졌나 보다.
스님은 책의 서문을 통해 “허공을 나는 새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선사들의 본래적 삶의 모습인데 (중략)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술하게 되었고 그걸 문자로 옮긴 탓에 세상에 또 한 점의 땟자국을 남기게 되었다”고 밝혔다.
스스로 땟자국이라고 말하는 이 책을 통해 스님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 답은 책 제목에 담겨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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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오른쪽)과 함께 |
이 책의 제목인 ‘누구 없는가’는 성철 스님이 제자들에게 벼락같이 던지던 질문이었다. 경상도 말로 선방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누구 없나’라고 외치던 성철 스님의 호령은, 이제 법전 스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었다.
‘이 시대를 청정하게 이끌 사람 그 누구 없는가, 이 세상의 아픔을 보듬을 사람 누구 없는가, 이 사바세계의 모순을 해결할 놈 누구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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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 법전道林法傳 스님
한번 참선에 들면 미동도 하지 않아 ‘절구통수좌’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한 생을 참선수행으로 일관한 선승 법전 스님. 1925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출생하여, 1938년 백양사 청류암으로 입산, 1941년 영광 불갑사에서 설호 스님을 계사로, 설제 스님을 은사로 수계득도 했다. 1949년 성철·청담·향곡·자운 스님과 함께 봉암사 결사에 동참하여 출가의 전기를 맞았고, 1951년 통영 안정사 천제굴 에서 성철 스님을 은법사로 도림道林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1956년 문경 대승사 묘적암에서 홀로 수행정진 해 득력한 뒤, 서른셋의 나이에 파계사 성전암에서 성철 스님에게 인가를 받았다. 이후 태백산에 들어가 10여 년간 홀로 수행 정진 했으며, 1969년부터 15년간 수도암에서 퇴락한 가람을 중수하고 선원을 열어 후학들을 제접했다. ‘수행자는 바보 소리, 등신 소리 들어야 비로소 공부할 수 있다’, ‘바보처럼 꾸준히 가라. 그래야 자신도 살리고 세상도 살릴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법전 스님은 1996년 가야산 해인사 해인총림 방장으로 추대됐고, 2000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2002년 제11대, 2007년 제12대 종정으로 추대되었다. ‘어느 자리에 있어도 나는 여전히 수행자’라는 마음으로 해인사 퇴설당에 머물며 지금도 후학들의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5) 황룡사 불교대학 종단 인가 확정
작년부터 운영하던 불교대학이 드디어 종단에 정식으로 인가 받았습니다.
체계적이고 바르며 현실적인 불교대학을 목표로 개설한 불교대학입니다.
모르고 짓는 죄가 알고 짓는 죄보다 훨씬 크다고 하듯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여 스스로 잘한다고 행동한 것도 결국은 죄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지무명에서 벗어나 밝은 지혜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불교공부가 황룡사 불교대학의 목적입니다.
비록 도심지 한가운데 건물 안의 포교당이지만 배우는 장소로는 세계최강이 되는 것을 목표로 정진하고 있습니다.
불교대학생들도 정식 인가된 대학이니만큼 좀 더 신경 써서 한사람이라도 더 공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대학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선배 학생들은 후배 양성을 위해 불교대학생 수강생 모집에 적극 홍보바랍니다. 3기 불교 교양과정 개강은 3월 초에 합니다.
3기 교양반: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 저녁 7시
경전반: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 저녁 7시
2010년 경전반 과정은 법화경을 공부합니다.
참고로 조계종인가 불교대학은 어디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에 황룡사도 추가 될 것입니다. 빠진 곳이 있을 수 있습니다.
조계종 등록 신도전문교육기관(불교대학) 중
포교사 자격고시 응시 가능 불교대학
지역 |
불교대학코드 |
지역 |
불교대학코드 |
서울 |
조계사불교대학 |
경북 |
안동대원불교대학 |
봉은불교대학 |
포항불교대학 | ||
불광불교대학 |
부산 |
대광불교대학(부산) | |
화계불교대학 |
부산불교교육대학 | ||
인천 |
인천불교대학 |
범어사 금정불교대학 | |
인천불교전법대학 |
원각불교교육대학 | ||
경기 |
김포불교대학 |
울산 |
울산불교교육대학 |
봉선사불교대학 |
정토불교대학 | ||
충북 |
충북불교대학 |
경남 |
통도사불교대학 |
대전 |
광제사불교대학 |
밀양불교대학 | |
백제불교문화대학 |
영축불교대학 | ||
통도사대전불교대학 |
봉림불교대학 | ||
충남 |
각원사불교대학 |
불지수다라불교대학 | |
강원 |
강릉불교대학 |
경남불교대학 | |
신흥사불교대학 |
대광불교대학(진해) | ||
원주불교대학 |
전북 |
화엄불교대학 | |
동해불교대학 |
이리불교대학 | ||
대구 |
대구불교대학 |
남원불교대학 | |
보리불교대학 |
광주 |
광주불교문화대학 | |
영남불교대학 |
광주불교대학 | ||
경북불교대학 |
전남 |
강진불교대학 | |
경북 |
천룡사불교대학 |
목포불교대학 | |
구미불교대학 |
해남불교대학 | ||
김천불교대학 |
제주 |
제주불교문화대학 | |
문경불교대학 |
서귀포불교대학 | ||
|
미주 |
LA불교대학 |
아래 글은 12월 17일 불교대학 강의 날에 쓴 글입니다.
꿈지럭거리다가 아침 9시 20분에 법당에 들어갔습니다.
천수경을 독송하고 참회정진을 독송하였지요.
목이 아픈 관계로 개미 소리만 하게 독송하니까 보살님들도 개미 소리만 하게 독송합니다.(엄청 불만스러움)
오늘은 불교대학 강의 날이라 사람이 꾸역꾸역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늘자 독송도 활기가 띄면서 약간 크고 빨라집니다.
그러나 시간관계상 3권까지만 독송하고는 108배를 하였습니다.
시간에 쫓겨 정근도 못하고는 바로 불공과 축원에 들어갔습니다.
축원도 동지기도가 100가구가 넘는 관계로 다 읽어드리다 보니 천일기도축원은
통축으로 밖에 못했습니다.
통축이란 낱낱이 읽어드리는 것이 아니고 백일기도 발원재자 천일기도 발원재자, 동지기도발원제자 라고 통털어서 축원해 드리는 것입니다.
축원이 지극한 스님은 그렇게만 축원해드려도 기도하는 신도들이 믿음이 가고 큰 힘을 받는다고 하고 하던데 아직 저는 그렇게까지 내공이 쌓이지 않은것같습니다.
어렸을 적엔 낱낱이 축원하는 것이 오히려 병폐라고 생각했었지요.
우리 큰스님(종정스님) 자서전을 읽어보아도 신도 분 들 의 축원을 한 번 도 해준 적이 없다고 하시고요.
지금도 이런 식의 축원이 우리 불교의 발전을 저해하는 큰 병폐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됐다고 해서 무시할 수 없습니다.
나 혼자 이런 병폐를 고칠 수 없습니다.
고칠 수 없을 바에야 장점을 찾아야지요.
일일이 축원해드리는 것이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도 있다는 것을 봐야하며 그 장점을 충분히 활용해야합니다.
일일이 축원하는 것은 기복신앙으로 흘러 불교 본연의 이치를 망각하여 이기적인 불교로 빠지기 쉽습니다.
장점 이라 하면 불자님들이 부처님과 인연이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부처님 전 에 매일 불려 지건, 인등, 연등, 원불에 쓰여져 있게 되면 불보살님과 인연이 깊어지고 가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라는 책을 보면 물병에 '사랑' 이라고 써놓으면 물의 분자구조가 변한다고 하였죠.
같은 이치로 법당에서 이름을 부르거나 쓰여져 있다면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연이 없는 사람에게 불연을 심어주고 연이 깊은 사람에게는 바른 불자가 될 수 있도록 축원해드리는 것은 그분들에게 커다란 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해 드리면 해드리는 만큼 가피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올린 불자님 이라면 축원에 연연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이름이 부처님 전에 불려지고 안 불려 지고에 집착하게 되면 병원 갔다가 기다리다 진찰도 못 받고 물만 먹고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병을 옮아 올 수도 있습니다.
기도 원력이 있는 곳에서는 따로 일일이 축원을 받지 않는다 해도 엄청난 가피가 생긴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며 그저 그곳에서 기도올린 인연만 으로도 감사드리고 자신의 업을 닦고 스스로의 마음을 관찰하고 공덕을 짓고 법문을 들어 지혜를 닦는 데 열성을 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신중기도도 반야심경 으로만 해드리니 저도 서운합니다.
마침 부산에서 생일 기도하러 올라 오셨는데 불공을 많이 해 드리지 못해 송구하더군요.
보살님께서 성숙한 불자이시니 연연하지는 않겠지만 미안스럽습니다.
11시부터 수월관 에서 불교대학 강의가 있어 법당 불공을 그것으로 마쳤습니다.
이렇게 불교대학 강의가 있는 날이면 기도를 충분히 해 드리지 못하고 강의가 이어집니다.
사실 강의도 기도의 한 가지 방법입니다.
간경, 서사, 수지, 독송, 염불 등이 기도의 방법들 이듯이 경전을 해설하고 듣는 것도 기도입니다.
염려스러운 것은 불자님들이 정근하고 목탁 치는 것만을 기도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평일 날 에도 두 시간 정도 기도하고 30분정도 매일 강의를 하는데(요즘 며칠은 목도 아프고 기도객도 별로 없고 해서 안했지만) 사람들은 강의 하는 것을 기도로 생각치 않고 기도를 적게 한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사실 강의가 기도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기도만 하면 얼마나 편한데요.
불자들 에겐 정근이나 절, 염불보다도 강의를 듣는 것이 더 큰 기도가 되는 것인데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불자들이 기도를 올 때가 불교대학 강의하는 날이면 오히려
제가 그분들께 미안스럽습니다.
이분들도 함께 강의를 들었으면 좋겠는데 수월관 으로 옮겨서 강의해서 그런지 불교대학 강좌 신청한 사람만 듣는 것으로 오해해서 그런지 잘 따라오지 않습니다.
12월 셋째 주 불교대학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매일 30분 이상씩
자신만의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셔요.
스님들에게 기도를 받았든 스스로 정한 것이 있든
매일 어떤 과제를 행하는 사람 손들어보셔요~"
30명이 넘게 모인 사람 중에 2~3사람만 손듭니다.
기도하고 있는 사람도 눈치 보면서 손을 안드는 사람(때려주고 싶은 사람)도있고요.
"죄송 합니다 5개월 동안 강의를 헛한 것 같군요.
너무 당연한 것이라 잊고 지냈나 봅니다.
불자라면 반드시 매일 30분 이상씩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수행을 하여야합니다.
이렇게 강의만 들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 영원한 자유, 여러분이 성취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저 부처님께 빌어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과 지혜를 닦아야만 하는데요.
복과 지혜를 닦으려면 어느 한 가지 만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8정도와 육바라밀을 골고루 원만하게 닦아야 합니다.
매일 30분 이상씩 기도하는 것은 정진에 속하며, 인욕 이기도합니다.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이기도 하며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니 보시 이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해서 기도만 해서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정진보다 우선이지요.
정진만 하는 것은 마치 캄캄한 방에서 물건을 찾는 것이고 지혜를 얻으면 캄캄한 방에서 불을 켜고 물건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불교를 한마디로 지혜의 종교라 할 수 있듯이 지혜는 가장 중요합니다.
지혜는 강의를 듣고, 말씀을 읽고, 들어 스스로 사유하고, 실천하고, 정념을 유지 하여야만 닦여지는 것입니다.
지혜를 닦지 않고 정진만 하는 것의 폐단은 현재 여러분의 선배 보살님 들을 보면 알 것입니다.
그러니 강의 듣는 것 과 함께 늘 기도 수행을 하여야 합니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반드시 저에게 오셔서 기도를 받아 가십시요.
개개인에 맞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2시간동안의 강의가 끝나고 점심공양을 하였습니다.
점심공양 후 양치를 하고 시계를 보니 1시 40분입니다.
알아볼 것이 있어 전화를 한 후 바로 법당으로 직행합니다.
오후 2시에 2시기도가 있거든요.
참회정진을 신도분들 하고 독송하다가 저는 나왔습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병원환자들과 법회가 있거든요.
마더스 병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인데요,
두개의 병동에 가니 환자들은 2주마다 법회를 보는 것입니다.
이번주 부터는 불교대학생들과 같이 가자고 했더니 지원하는 사람이 많지않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청법가를 한 후 자리에 앉아 어제 구치소에서 강의한 것처럼
관세음보살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제가 책을 읽어가며 해드려서 그런지 반응이 신통치 않더라구요
말하는 자신도 축 처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다과를 꺼내 먹었죠.
아마 어제 구치소 재소자들도 지루했겠군요..
1시간여의 법회가 끝나고 절에 돌아와서 몇몇 신도분과 상담을 한 후 7시에 불교대학 저녁반 강의를 했습니다.
요즘은 추워서 그런지 저녁에 공부하러 오는 사람이 몇 명 없어요...
목이 아파 간신히 강의를 마치니 피곤이 몰려옵니다.
사진은 수월관 에서 불교대학 강의 중
6) 경인년 정초기도
또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오고 있습니다. 새해는 불지님들 모두가 지난해에 못다 이룬 소망들을 모두 이루시고 새로운 소원도 모두 이루시기 바랍니다.
절에서는 해마다 정초에 신중기도를 드립니다. 지난 한해를 정리하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 동안 가정의 행복과 가족의 안녕을 위함과 동시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각종 관재구설과 재액(災厄)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드리는 일명 액(厄)막이 기도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각기 저마다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들이 내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은 그렇게만 되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살이입니다. 다 잘될 것 같이 보이던 일이 전혀 예기치 못한 일들로 해서 좌절되는 경우를 우리는 허다하게 보아왔습니다. 이렇게 세상일이란 것은 내 마음과 뜻대로 잘 이루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전에 기도를 올리는데요, 나의 개인적인 목적달성을 위해서 불보살님께 드리는 원을 소원(所願)이라고 하는 것이고, 여러 중생들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를 서원(誓願)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정토구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남북통일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를 서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 법장비구는 마흔 여덟 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 억겁의 수행을 거쳐서 극락세계를 건설하여 그곳의 부처님이 되셨고, 모든 불보살님들은 열 가지 서원을 세워 그 원을 이루어 불보살님이 되신 것이라고 합니다.
부처님 전생(前生) 경에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수도 없는 전생을 사시면서 서원을 세워 수행을 한 끝에 부처를 이루셨다고 합니다.
우리 불자님들이 기도하는 목적은 인류의 영원한 행복을 원하거나, 불국토(佛國土)를 건설 한다던가, 세계평화, 남북통일 되기를 바라는 그런 거창한 서원이 아니고 대개가 자기 자신이나, 가족, 부모 형제들을 위한 소소한 소원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에게는 이런 소박한 소원들마저도 잘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똑같이 기도를 하는데도 어떤 사람은 기도가피를 입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전혀 감응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똑같은 부처님이고 똑같은 신중님들인데 어째서 누구의 소원은 들어주고 누구의 소원은 외면을 하시는가. 이것은 불보살님들이나 신중님들이 사람을 차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잘못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기도 하는 사람들은 바른 마음으로 바른 기도를 해야 합니다. 참된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큰 서원을 세워야 합니다.
작은 그릇엔 적게 담길 수밖에 없고 큰 그릇엔 많이 담겨집니다.
자신이나 가족만의 소원을 성취하기 바란다는 것은 오히려 조그만 간장 그릇으로 전락해서 답답하게 되기 쉽습니다. 자신과 관계된 것만을 추구하니 아상과 인상, 중생상, 수자상은 점점 더 커지기도 쉽습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듯 내것 만 가득 채우려 하는 중생심은 결국 이미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채워질 것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소원을 바라게 되는 것은 자칫 마약을 먹는 것과 같아 하면 할수록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을 위한, 세상을 위한, 중생을 위한 서원을 세우고 실천해야합니다.
나라는 틀을 깨뜨리고 세상과 하나가 되어야 진정으로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쫓아가면 길을 잃습니다. 산 전체를 보고 길을 가야지 숲만 보고 가면 길을 잃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세상을 위한 서원을 거창한 서원이라 겁먹지 마십시오. 우리의 마음은 삼천대천세계를 다 담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은 온 세상을 다 덮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앞에 서게 되면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누구나 큰 서원을 세울 수 있고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만의 소원은 던져 버리고 남을 위한 서원으로 바꿔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저절로 나의 소원들은 이뤄져 갑니다. 한밤중에 전등을 여기저기 수없이 켠다 해도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면 모두 빛을 잃듯 큰 서원에 모든 소원들은 따라 오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확실하게 믿어야 하고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내가 기도를 드리는 불보살님이나 신중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야 합니다
될까 안 될까 하는 불 확신한 마음과 의심을 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확신은 나의 소원이 꼭 이루어진다는 믿음과 불보살님의 대자대비를 믿는 신심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은 대자대비 하시므로 나를 반드시 도와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불보살님과 신중님들은 나를 도와주신다고 하는 믿음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 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빨리 이루고자 하는 불자들은 확신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서 한다든가, 짧은 기도 기간을 통해서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이루려고 하기가 대부분이고, 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기도가 이루어질까 안 이루어질까, 불안해서 이절 저절 전국의 용하다는 절과 기도처라는 곳들은 다 찾아다니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리 해도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믿음과 확신이 없으면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화엄경에 ‘信爲道源功德母’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은, 믿음은 도(道)의 원천(源泉)이고 공덕(功德)의 어머니라는 말입니다. 믿음을 씨앗이라고 보고 도(道)를 열매라고 볼 때, 믿음이 튼튼해야 훌륭한 도가 열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농부가 좋은 씨앗을 좋은 밭에 뿌리고 가꾸면 가을에 거두어들일 것이 많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불보살님과 신중님들이 어떠한 경우라도 나를 절대적으로 도와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를 하셔야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꾸준히 지속적으로 계속되어야 합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수 물에 바위가 파이는 것입니다.
세 번째, 오로지 일념으로 임해야 합니다.
기도 성취를 위해서는 오직 한마음을 가지고 모든 정신과 정성을 한곳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기도나 염불이나 참선이나 모두가 오로지 한마음, 일념으로 하지 않으면 불보살님과 소통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기도 성취라는 것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불보살님과 내가 하나로 일치 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불보살은 세상 어느 곳이나 다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 에도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 깊은 잠재의식 속에 들어있는 부처님을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 마음속의 부처님을 끄집어내야 하는데 이 마음 속 에 있는 부처님은 그냥은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이 마음 속 의 부처님을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부처님은 오직 일념이 되어야만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잡념을 가지고서는 절대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일념으로 기도를 하여야만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여래를 보게 되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옛날, 어떤 할머니가 ‘나무아미타불’을 매일같이 일념으로 부르다가 어느 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서 다시 염불을 하려고 하니 날마다 부르던 ‘나무아미타불’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내가 매일 뭐라고 염불을 했더냐? 도무지 생각이 나지를 않으니 네가 좀 알려 주거라.’하니 심술궂은 며느리가 말하기를,
‘저 건너 김 서방, 저 건너 김 서방,하셨지 않아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이 노파는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대신에 ‘저 건너 김 서방’을 열심히 부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지극한 마음으로 김 서방을 불렀는지 얼마 후에 노파는 자기 마음 가운데에서 극락세계에 계시는 아미타불을 뵙게 되었습니다.
고약한 며느리가 김 서방 이라고 가르쳐 주었건 어찌했던 간에 노파는 오직 일념으로 정진 했던 것입니다. 입으로 무슨 말을 내던 그 노파는 오직 일념으로 정신을 통일 했던 것 입니다. 이렇게 일념이 되다보면 삼매에 들게 되고 三昧에 들게 되면 결국 부처님을 뵙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염불을 하느냐, 또는 무슨 기도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대상이 나와 하나로 일치되느냐 안 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정신을 한곳으로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마음을 편안하게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를 하거나 참선을 하는 불자들 가운데 성공을 한 사람들은 모두가 한 결 같이 마음을 편안하게 내려놓고 하나로 하여 오직 한마음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정진에 임했던 결과입니다.
네째, 진참회(眞懺悔)를 해야 합니다.
진참회(眞懺悔)라는 것은 형식적으로 하는 참회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참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참회는 기도 성취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건입니다.
그것은 참회는 내가 지난날 지은 업장을 녹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살았다고 업장이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업장이라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지난날 일 들입니다. 입으로 남을 업신여기고, 헐뜯고, 욕하고 이간질하고, 몸으로 살생하거나 도둑질 하거나 한 것들, 마음으로 남을 미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 화를 내는 마음과 어리석어서 남에게 휘둘림을 당하는 것, 고정관념이나 부정적인 생각들, 이런 것들을 업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냥 두고는 기도 성취가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업장은 금생(今生)만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을 살아오는 동안 쌓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생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전생(前生)에 지은 업장이 두텁다면 이 또한 커다란 장애(障碍)가 되는 것입니다. 현재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하는 일들이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은 지난생의 업을 현생에서 받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천수경 을 하면서 십악참회를 합니다. 살생중죄 금일 참회, 투도, 사음, 기어, 망어, 양설, 악구, 탐애, 진애, 치암 중죄를 매일 참회합니다.
그런데 이런 악업은 여러 생 동안 지어온 것 들 이기 때문에 좀처럼 소멸되지 않습니다. 악업이라는 것은 건성으로 참회진언을 몇 번 외운다거나 부처님 전에 절 몇 번 한다고 해서 봄눈 녹듯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지극한 마음으로 진정으로 참회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기도를 잘 하기위해서는 네 가지를 갖춰야하는데, 첫째가 큰 서원을 세우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불보살님의 대자대비 한 위신력(威神力)에 대한 확신이고, 세 번째가 오직 한마음으로 일념을 가지는 것이고, 넷째는 참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따로따로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인 것입니다. 불보살님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중생에 대한 자비심으로 원력이 생기며, 한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한마음을 가지게 되면 참회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황룡사에서는 정초기도를 2주간 봉행합니다.
자비도량참법 오전 1권, 오후 1권 2주간 봉행
절에 못 오시는 불자님들은 집에서라도 자비도량참법을 기도기간에 함께 기도합시다. 책은 황룡사에 있고 기도하시는 분께는 무료로 드립니다.
상단기도: 2월 16일(음력 1월 3일)~2월 22일(음력 1월 9일)
신중기도: 2월 22일~ 2월 28일
2월 28일은 연화도 방생
기도동참금: 1가구 5만원(미리미리 접수바람)
7) 오계 포살
매월 보름날은 포살이 있습니다. 지금가지는 오계를 설하기만 했는데 앞으로는 보살계 포살이나 종단에서 권장하는 포살의식을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보름날 에는 포살법회에 꼭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1월에는 양력 29일이 12월 보름이네요. 달력에 박박 동그라미 쳐 놓으십시오
아래 글은 지난 12월 13일 어린이 오계 수계식을 마치고 카페에 올린 글입니다.
매주 일요일 10시 반~ 12시 반은 어린이 법회시간입니다.
1년하고도 반 정도를 지나오면서
'어린이 오계' 수계식을 하지 않은 것이 부끄럽네요.
지금이라도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하고 기쁨니다.
앞으로 최소한 일 년에 한 번 씩 은 어린이 오계 수계식을 봉행 하겠습니다.
요즘 한참 동지기도 기간입니다..
참회정진 책자를 읽고 108배를 매일 하는데요,
요즘은 신도분 들과 매일 108배를 두 번씩 하고 있습니다.
가사 장삼을 수하고 목탁 치며 백 팔배 하려면 밟히고 내려오고, 미끄럽고, 무거워 신도분 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평소보다 마지를 일찍 올리고 수계식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에겐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어린이 수계식 땜에 오신 분은 '혜안 김기정'군의 어머니 밖에 없네요.
어린이 포교가 중요하다면서 왜 스님들은 어린이 포교에 관심이 없냐고 말씀하시던 불자님들은 어디 가신걸까요?
스님들이 어린이 청소년 포교에 관심이 없는 이유 중 큰 이유는 역시 불자님들에게 있습니다.
그래도 일요일이면 사람들이 몇 분 더 오시는데 오늘은 다소 썰렁하네요.
어린이들이 수계식을 하는데 축복해주는 어른들이 많으면 좋을텐데요...
많은 사람들이 축복해주고 선물도 받아가며 장엄한 분위기 가운데 수계를 받으면 아이들도 평생 잊지 못 할텐데요.
지도법사가 인례를 맡고 제가 계사가 되어 계를 설하기 시작했습니다.
향과 꽃으로 맞으오며, 향과 꽃으로 청합니다.
계 받는 저희 어린이들이 한마음으로 청하옵나니 사바교주 석가모니불, 서방교주 아미타불, 당래교주 미륵존불, 온 법계에 두루 하신 모든 부처님께 원하옵나니, 본 서원을 어기지 마시옵고 자비광명 두루 비춰 계 받음을 증명하옵소서. (목탁에 맞춰 큰 절)
향과 꽃으로 맞으오며, 향과 꽃으로 청하옵니다.
계 받는 저희 어린이들이 한마음으로 청하옵니다.
대승 소승 비니율장, 오편 삼취, 해탈계법, 십이분경, 권실교법 욕심 버린 청정법문에 지극한 마음으로 일심정례하옵니다. (목탁에 맞춰 큰 절)
향과 꽃으로 맞으오며, 향과 꽃으로 청하옵니다.
계 받는 저희 어린이들이 한 마음으로 청하옵나니 관음, 세지, 문수, 보현, 청정해중 모든 보살, 율장 회상 우바리 존자, 인도 중국 역대 조사, 남산종의 모든 율사, 한국 율조 자장 진표 양대 율사께 원하옵나니, 본 서원을 버리지 마시옵고 자비 광명 두루 비춰 계 받음을 증명하옵소서. (목탁에 맞춰 큰 절)
향과 꽃으로 맞으오며, 행과 꽃으로 청하옵니다.
계 받는 저희 어린이들이 한 마음으로 청하옵나니 광명회상 모든 천신 범왕 제석 사천왕과 천신 용왕 팔부신중 가람수호 토지신과 호계하는 천신 천왕 금강역사 유명계와 현세간의 신령스런 선신들은 원하오니 본 서원을 버리지 마시고 계단을 호위하고 계 받는 이 지키소서(반배)
(계사가 법상에 올라 좌정하면 어린이들, 계사께 삼배 드리고 장궤 합장한다.)
평소에는 분주한 어린들이 장궤합장을 한 상태로 '향화청' 의식을 한 구절 한 구절 따라 할 때는 어른들보다 더 잘합니다.
참새소리 같은 목소리와 고사리 같은 두 손 모으고 인형같이 절을 하는 아이들을 보자니 눈물이 절로 납니다.
인례의 청하는 말과 계사의 깨우치는 말씀 후에 드디어 참회진언을 하며 참회를 하는 시간입니다.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계사는 향불을 들고 아이들의 팔에 연비하고 아이들은 피하기 바쁩니다.
살에 대기만 하여 아프지 않다는 것을 확인 하고는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른 어린이들 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봅니다.
이제 어린이들이 참회를 해서 업장을 소멸시켰으니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가서 삼귀의계와 오계를 설합니다.
(계사께서 선창 어린이들 따라함)
계를 받는 저희 어린이들이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 하겠습니다. (큰절)
계를 받는 저희 어린이들이 거룩한 가르침께 귀의 하겠습니다. (큰절)
계를 받는 저희 어린이들이 거룩한 스님께 귀의 하겠습니다. (큰절)
계를 받은 저희 어린이들이 이미 부처님께 귀의하였사오니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끝내 다른 종교를 믿지 않겠나이다. 저희들이 의지한 부처님께서는 세상에서 제일 높고, 귀하신 분입니다. (반배)
자비로 어여삐 여기소서.(큰절)
계를 받는 저희 어린이들이 이미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귀의하였사오니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끝내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 의지 않겠나이다. 저희들이 의지한 부처님의 가르치심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가르침으로 존경하옵니다.(반배)
자비로 어여삐 여기소서.(큰절)
계를 받은 저희 어린이들이 이미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하였사오니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다른 종교의 사람들은 의지하지 않겠나이다. 저희들이 귀의한 청정한 복전이신 스님들을 저희들은 존경하는 바입니다. (반배)
자비로 어여삐 여기소서(큰절).
계 사 : 첫째, 모든 생명을 소중히 하고 자비심으로 중생을 사랑하라. 이것이 여러 어린이들의 계이니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잘 지키겠습니까?
어린이들 : 잘 지키겠습니다. (반배)
계 사 : 둘째, 남의 물건을 아끼고, 보시를 행하여 복덕을 지으라. 이것이 여러 어린이들의 계이니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잘 지키겠습니까?
어린이들 : 잘 지키겠습니다. (반배)
계 사 : 셋째, 좋은 말만 하고, 진실한 말을 하여 남에게 믿음을 주라. 이것이 여러 어린이들의 계이니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잘 지키겠습니까?
어린이들 : 지키겠습니다. (반배)
계 사 : 넷째,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서로 돕고 화합하라. 이것이 여러 어린이들의 계이니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잘 지키겠습니까?
어린이들 : 지키겠습니다. (반배)
계 사 : 다섯째, 스님과 부모님의 말씀을 어기지 말지니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라. 이것이 여러 어린이들의 계이니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잘 지키겠습니까?
어린이들 : 잘 지키겠습니다. (반배)
이로써 수계의식이 끝나고 수계증과 선물을 나눠줍니다.
선물은 개구리 목 쿠션 입니다.
선물이 아주 이뻐서 나도 달라 했더니 갯수가 딱 맞아서 없다네요..ㅠㅠ
오늘 수계법회에 동참한 어린이들은 복도 많죠?
어려서부터 부처님 말씀을 가까이하고 법회도 다니는 인연이면
자라면서 똑똑하고 건방지지 않으며, 어른을 공경 할 줄 알고,
사람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것은 물론이고
풀 한 포기, 물고기 한 마리, 곤충 하나하나
살아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삼라만상을 귀중히 여기고 정성스레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해 갈 것입니다.
지혜로운 부모님 이라면 학원 보내는 것보다
법회 다니는 것이 백 천 만 배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텐데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 인지 몰라서 그런 것인지 공부시키는 데는 물불을 안가리면서 법회는 왜 등한시 할까요?
부처님 말씀은 다른 종교와 달라 보편적인 진리이며, 가장 뛰어난 가르침이며, 인본주의이고, 어떻게 어우러져 서로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를 배우는 곳입니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생명을 가장 생명답게우주를 가장 우주답게
세월이 변해도, 환경이 변해도,
지옥이든 천국이든,
언제 어디서든 통하는 진리이며 그것을 초월하는 진리입니다.
언제까지 어둠속에 헤매고 있을 것입니까?
8) 봉사합시다
(11월 초하루 날에 쓴 글 입니다.)
오늘이 초하루네요...
어제 오후기도를 하면서 상단에 과일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는
'내일이 무슨 날이지?' 하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날인지 떠오르지 않아서
'음, 이달 30일이 수계포살을 하는 보름이지...그럼 지금쯤이면?'
그때서야 초하루 인줄 알았습니다.
달력을 보면서 살기보다는 양력과 요일로 살아가고 있어 음력 날짜는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포교를 하는 스님이 나사가 빠져도 단단히 빠졌군요.
한편으로는 음력을 가장 많이 쓰는 스님도 그러할 진데 속세의 사람들은 어떨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초하루나 행사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문자를 안 넣을 수가 없습니다.
절에 오라고 하는 의미보다는 무슨 날인지 알려 주려는 뜻으로 말입니다.
전체 문자 갯수는 700개가 넘는데 실제로 오는 사람은 몇 명 안됩니다.
오늘도 초하루인데도 30명 정도 밖에 안 왔거든요..
문자요금 나가는 것 보다는 어떤 날인지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것은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음력은 세속에선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달력인데다가 절에 가는 날인 초하루나, 관음재일 지장재일은 모두 음력인데다 쉬는 날이 아닌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양력만 쓰는 보통사람들은 잊어버리기 쉽고 잊지 않는다 해도 직장인은 절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초하루 등의 날에 절에 올수 있는 사람은 주부이기 쉽고 그것도 음력을 모르는 젊은 사람은 더 어렵습니다.
다른 종교보다 여성의 비율이 많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법회일이 평일에 집중되어 있고 음력 때문 입니다.
세상이 변하면 변화에 맞게 대처해 나아가야 하는데 시대에 동떨어진 행위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예 음력을 쓰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평일에도 절에 많이 올 수 있도록 한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앞으로 시대는 음력은 더욱 더 잊혀지고, 직장인은 더 많아질 것입니다.
다른 종교를 따라가자는 것은 아니고 다만 좋은 것이 있으면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절에 가는 것, 아니면 저녁에라도 매주 1회 절에 올 수 있도록 강제성을 띄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요?
제도가 완비되어 있지 않으니까 신도들도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초하루 법회를 보고 오후에 구치소 재소자 법회가 있어 구치소엘 갔습니다.
구치소는 한 달에 한 번씩 갑니다.
부랴부랴 점심을 먹고 달려가니 다행히 늦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엔 매우 딱딱하고 낯설었던 창살들을 몇 개 거쳐 법회장소에 이르니 이미 법회준비가 마쳐진 상태입니다. 오늘은 '관세음보살 이야기'라는 책을 소재로 그 줄거리를 말씀해 드렸지요.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재소자들은 매우 산만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옆 사람하고 수다를 떠는 사람도 많고요..
무슨 철벽에 대고 법문하는 것도 아니고....
가섭불 시대에 흥림 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묘장왕이 아들이 없어 고심하다고 딸을 둘 낳고는 상서로운 꿈을 꾸고
묘선이라는 딸을 더 가집니다.
묘선은 조숙하고 음악을 좋아했으며 모르는 게 없을 만큼 총명했다.
달 밝은 밤에 비파 소리를 풀벌레 울음 소리처럼 켜면서 불경을 외면
그 목소리를 듣고
왕궁 사람들은 모두가 걸음을 멈추었다.
"짙푸른 머리는 푸른 소라와 같이 빛나고
원광을 발하는 몸은 보름달과 같이 맑고 밝으시오며
고해의 중생을 구하는 힘을 갖추신 열두 얼굴은
서상을 나투시나니 그 오묘한 모습은 밝고 원만하나이다.
또,중생을 고해에서 건지시는 천수의 장엄은
당신의 위신력을 더욱 빛내시니
온갖 괴로움에 갇힌 중생을 감응케 하시어
중생으로 하여금 한 생각을 일으켜 귀의하게 하고
모든 재앙을 없애주시옵니다.
또, 법의 구름과 비를 삼계에 맑고 시원하게 내려주시어
항상 계를 지킨 공덕의 향이 누리에 가득하게 하시고
선악의 여러 대상에 대하여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게 하시옵니다.
관세음보살님,
자비는 물과 같아
티끌처럼 많은 중생의 번뇌를 깨끗하게 씻어주시며
지혜는 날카로운 칼과 같으사
원한이 맺혀 풀리지 않는 마음을 없애주시옵니다.
관세음보살님,
오늘 저희는 집의 안팎을
아름다운 꽃과 향으로 엄숙히 장엄하여
상서로운 기운이 창성하고
꽃다운 향기가 누리에 가득하오니
범천의 맑은 음악을 드높이 울리고
전단향을 피우고서 지극한 뜻과 정성 다하여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그러던 묘선이 어느덧 열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이때 묘선은 늘 하늘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왕궁을 버리고 출가하여 부처님을 받들게 해주옵소서.
밝은 스승을 모시고 지혜를 얻어 바른 도를 행하리다.
지옥과 같은 불구덩이 멀리 할 마음 버리지 않을 것이며
마침내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게 해주옵소서.'
그러나 묘장왕은 묘선을 결혼 시키려 하였고
결국 부모의 뜻을 어긴 묘선은 후원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왕궁의 생활보다는 후원의 생활을 더 좋아하는 묘선은 가족의 권유에도 왕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결국 백작선사라는 비구니절로 출가하는데요.
성이난 왕은 백작선사를 불사르려고 하지만
묘선의 간절한 기도로 수포로 돌아갑니다.
요괴로 오해받고 형장에서 사형을 당하지만 호랑이가 시신을 가져가
저승세계를 유람한 후 현실로 돌아와 향산으로 은둔하여 9년간 면벽수행을 합니다.
한편 왕은 얼굴에 불치병이 생겨 고생 하는데요
향산의 묘선공주가 화신을 나투어 노익장으로 변장하여
왕에게 성내지 않는 사람의 눈과 팔을 잘라 공양하면 병이 낫는다고 알려줍니다.
결국 신하를 시켜 향산에서 한 쪽 눈과 팔을 잘라오게 하여 병에서 낫습니다만
은혜를 갚기 위해 향산에 갔을때는 죽은 줄 알았던 묘선공주임을 알아보고는 대성통곡을 하지요.
이렇게 재미있는 내용에 흥미를 느끼지 않고 계속 산만했다면 결국 저에게 문제 있는 것이죠?
옛날 큰스님들은 성난 개에게도 법문하시고,
온갖 산짐승들이 둘러 앉아 법문을 들었다는데.....
법력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중에 몇 명은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듣는데 그런 분이라도 있으니 열심히 할 수 밖에요. 나름대로 재미있는 내용인데 역시 아직 내공이 딸려서 그런지 사람들이 집중을 안하네요..
매일 기도하고 강의한다고 목에 무리가 많은데도 큰소리로 안할 수가 없더군요.,
1시간이 넘게 법문을 하고 떡과 과일을 나눠드리고 정명거사님께서 잠시 한 말씀하셨습니다.
병원봉사와 구치소 봉사는 실제로 따라가서 봉사하는 사람은 가만 앉아 있고 할 일이 별로 없지만 가서 보고 느끼는 것 만 해도 큰 공부가 됩니다.
도시락 봉사와 공양간 봉사, 병원배식이나 목욕봉사는 육체적으로 힘이 듭니다만 삶의 가치를 알게 해주고 이상적인 삶을 살도록 해 줍니다.
봉사의 참 맛은 역시 말로만 들었던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면서 세상을 바로 보게 되고 변해가는 자신을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9) 온 가족과 함께하는 108 구법 순례
한 달에 한번 명산 대찰, 큰스님들의 수행의 향기가 베어 있는 곳을 찾아 구법순례를 떠납니다.
그날만은 출가한 사람의 심정으로 진리를 찾아 떠나는 날입니다.
성지에서 업장을 소멸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것 뿐만 아니라 불보살님께 가피까지 받아 올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구도의 열정이 강한 스님들은 목숨을 걸고 사막에서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 공포심과 싸우며 험한 순례의 길을 걸었습니다. 재가 불자또한 재산을 다 팔아 삼보 일배를 하며 부처님 성지에 순례하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수행력과 복력을 쌓아갔습니다. 순례의 길은 참으로 험난하고 외롭고 장애가 많았습니다만 현재는 시절이 좋아 짧은 시간에 편안하게 순례를 다녀올 수 있습니다. 힘들이지 않고 복을 쌓을 수도 있고요. 그저 시간내서 함께 따라가기만 하여도 즐거울 뿐만 아니라 복이 쌓이게 됩니다.
가지가지 행사 때문에 동참 하시기 어렵다지만 신심을 가다듬고 자신을 직시하시고 어떤것이 중요한지 잘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11월 3차 순례 때엔 대승사와 김룡사를 다녀 왔습니다. 대승사는 마침 점안식과 낙성식을 하였고요, 주지스님의 원력이 장대하셔서 수많은 하객들이 몰려왔고 동참한 모든 사람들에게 도자기를 선물하셨습니다.
선방에 스님들과 용맹정진을 하시면서 엄청난 양의 된장과 죽염, 도자기, 경옥고, 뽕잎차 등의 건강식품을 일년 내내 직접 제조하시고 템플스테이를 유치하고 있으며, 도량을 쇄신하는 불사를 직접감독하며, 매월 7일씩 용맹정진도 이끄십니다. 도대체 사람 일까요? 신 일까요? 스님께서는 원력보살님이 틀림이 없습니다. 스님들의 용맹정진과 원력이 장대한 주지스님이 계신 대승사에서 1시간 여 동안 대웅전기도를 마치고 사성암을 참배하고 윤필암엘 갔습니다.
대승사에서 윤필암으로 이어지는 길은 몸과 마음을 맑게 해 주는 영혼 정화조라도 되듯 한걸음 옮길 적마다 업장이 녹아가고 환희로움이 몸을 감쌉니다.
김룡사에서는 도량 곳곳을 참배하면서 문화해설을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김룡사의 정취에 함께한 모이들이 감동에 감동을 하였고 불보살님께서도 축복해 주시는 듯 합니다.
1,2차 순례도 진한 가피를 느꼈듯 3차 순례도 또한 잊지 못할 구법순례 였습니다. 다음순례지인 해인사는 대중공양과 겸하여 갑니다.
수행하는 스님들께 정성스레 공양하는 것은 수천년을 내려온 전통이며 미덕입니다. 정법을 수행하는 스님들과 한 땅, 한 시에 함께 살고 있는 것만 해도 영광일진대 이렇게 직접 찾아 뵙고 대중공양까지 겸한다니 숙세동안 수많은 부처님을 모시면서 공양하고 찬탄하고 수행한 공덕이 아니면 가히 생길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스님들께 대중공양을 하고 가야산 중턱 팔만대장경이 모셔지고 일천년 동안 수 많은 고승 대덕스님께서 수행하였고 지금도 수행자들이 이상적인 수행처인 이곳에서 1시간여 동안 우리 구법순례자들이 기도를 올립니다.
불법 만나기 어려워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더니 무슨 복이 터졌길래 우리는 정법을 만났고 정법을 수행하는 스님들께 공양하고 수천년 동안 수많은 부처님을 배출한 걸출한 도량에서 기도까지 올릴까요?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입니다.
다음달 1월 24일엔 경남의 손꼽히는 수행처인 다솔사와 청곡사를 순례합니다.
정초기도 회향하는 2월 28일엔 통영 연화도 연화사에 갑니다. 방생도하고요.
줄줄이 뜻깊은 순례가 이어지고 있으니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뒤바뀐 생각, 즉 전도몽상(顚倒夢想)에서 벗어난다면 세상에 이것과 바꿀 수 있는 보물은 없을 것입니다. 백천만금과도 바꿀 수 없고,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에서 제일 가치있는 구법순례입니다.
순례의 길에 어서 빨리 동참하길 바랍니다.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순례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사진은 대승사
4차 순례지인 해인사와 도림사를 다녀 왔습니다.
이번에는 차가 한대 늘어 4대가 갔습니다.
울산에서 3대 부산에서 1대요.
경산휴게소까지 2호차를 타고 가고 해인사까지는 1호차를 타고 갔습니다.
올때는 부산차와 3호차를 타고 오면서 계속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순례에 관한 이야기와 북클럽에 관한 이야기등을 하다보니 어느차든 넉넉하게 말씀드리지 못해 아쉽기도합니다.
순례때마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하루 종일 목을 쓰는군요.
제가 늘 목이 약하다고 하였는데 이런것 보면 결코 약한 목이 아닙니다. 건강한 몸을 만들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해인사에 도착해서 법당엘 이르니 지장스님이 먼저 도착해 기다리네요.
법당엘 참배하고 나와 이사람저사람 인사를 나눕니다..
그런데 어떤 낯익은 거사님이 다가오더니 인사를 하는 겁니다.
순간 '아~ 속가 고향 아랫마을에 살았던 분이구나' 라는 생각이 스치며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물으니
"박영규입니다."
동네 형이었는데 출가한 사람이 고향사람을 보니 기분이 묘하네요.
"아~ 네... 반갑습니다. 오랜만 이십니다. 몰라보겠는 걸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장주스님이 오시고 또 은사스님이 오시고, 인사하기 바쁩니다.
속가에서 인연있던 사람이 불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더 인사를 나누고 싶지만 기와불사를 하였는지 '관세음보살이야기' 책을 들고 있길래 주소와 전화번호등을 적어 주고 헤어졌습니다.
선방구참스님인 각송스님을 만났는데 저보고 뜬금없이
"살뺄려면 뜸을 떠야해...잘못하면 머리터져...물구나무 서지말고..."
제가 살이 많이 찌긴 쪘나봅니다.ㅠㅠ.
퇴설당에서 지허스님, 지장스님과 이야기하다 불공시간이 다 되가길래
큰법당으로 가서 은사스님을 친견하고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초점이 빗나가서 사진으로 뺄 수 없을 지경입니다.
공양줄이 길어 공양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네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이 시간절약상으로 좋겠네요. 해인사는 우리 집이니 공양을 제가 낸다고 하니 순례회장이 극구 자기가 공양을 내고 싶다고 하셔서 이번엔 절에서 주는 공양을 하였습니다.
신도분들을 모시고 선방엘 참배합니다.
해인사다니는 신도분이라며 함께 가면 안돼냐는 것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가라하지도 못하고.....
선원에는 일반인이 출입을 금하는 곳입니다.
대중공양을 오는 사람들에겐 특별히 개방하여 참배만 하도록 하는데요, 그것도 공부하는 시간을 피해서 합니다.
선원에 들어가 모두 자리에 앉아서 참선도 하고 은사스님의 법문도 들었습니다.
스님들 전용수행공간을 이렇게 불자님들과 잠시라도 함께 있을 수 있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몇년전만해도 홈그라운드였었는데요...
선방의 문고리만 잡아도 삼악도를 면한다던데 우리 신도분들은 복도 많으십니다.
큰절 보경당으로 내려와 다함께 108배와 독경을 하면서 참회정진을 하고
마당에 법성도를 돌면서 염주를 나눠 줬습니다.
이번 순례는 아이들이 몇 명되던데 좀 더 발전해서 온 가족이 다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4시쯤 대구 도림사에 내려 법당에서 반야심경과 청법가를 하고 잠시 좌선을 하고 큰스님께 귀한 법문을 듣습니다. 법문을 거의 안하시는데 영광입니다.
벅찬가슴을 안고 삼배를 올리고 조용히 앉습니다.
"건강하시죠 스님~ 올해는 감기 안하시는지요?"
"응 올해는 괜찮아"
"스님 날이 갈수록 건간해지시는 것은 아닌가요?
"뭐...."
몇년전에 비해 기력이 많이 쇄해지신 것이 눈에 확 띄일 정도라 안스럽습니다.
"스님~ 이번에 내신 자서전 너무 좋아 150권을 사람들에게 보시했습니다.
100권정도를 더 구입해서 보시할 예정입니다.
저도 스님께서 수행하신 것을 구체적으로 몰랐는데 책을 읽고는 무척 감명 받고 나태하게 살아온게 후회되고 공부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나더라구요. 좀더 일찍 책을 내시지 그러셨어요."
잠시 적막이 흐르더니 스님께서 한말씀 하십니다.
양지스님은 자명선사를 모시고 원주로 살은 40년간 단 하루로 빠지지 않고 아침마다자명선사를 찾아가 문안 인사를 했는데 인사를 한 뒤에는 반드시 도가 무엇인지 물었어요. 양지스님의 한결같은 질문에 자명선사의 대답 역시 똑 같았습니다. “이 사람아, 원주나 잘하게” 이것이 40년간 자명선사의 대답이었어요.
40년이 지난 어느 날 양지스님은 자명선사에게 강하게 항의를 했어요. “스님께 법을 배우고자 40년간 원주를 살았는데 스님은 법문은 안 해주고 원주만 잘 하라고 합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에 자명선사는 이렇게 대답해. “이 사람, 난 자네에게 항상 법문을 해 주었는데 그것이 무슨 말인가?” 이 대목에서 양지스님이 확철대오했다는 거야.
신도님들도 양지스님처럼 법사스님을 모시고 묵묵히 오래오래 공부해요.
신심이 있어야 해요. 조금 공부하고 싫증내는 것은 신심이 아니고 호기심입니다.
작대기를 땅위에 꽂아 놓으면
얼마 안가서 흔들리고 넘어져 버리죠?
이렇게 감로수와 같은 법문을 해주십니다.
목소리가 작으셔서 뒤에 계신 분들은 못들었겠지만 한말씀 한말씀이 금덩어리 같았습니다.
도림사 추모관과 선방을 구경하고는 다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의 순례도 무한한 기피를 입고 온듯합니다..
순례 못간 사람들에겐 미안할 정도입니다.
우리만 이렇게 훌륭한 인연을 갖게 되서 미안 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법을 모르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동참하는 사람에게 100만원준다면 누구나 따라올텐데
100만원의 가치보다 더 큰 것을 선물받아 오는 이치를 모르니 안타까울 수 밖에요..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어리석음이여.
무지에서 벗어나 밝은 지혜 가득하길..
10)신행수기
불자님들께서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이나 글을 써 주신 것을 사보에 싣습니다. 어려워 말고 많은 동참바랍니다.
가) 소록도
글: 선법행
어제 소록도에 다녀 왔습니다.
한센병 환자나 환자였던 분들의 병동이 있는 곳입니다.
얼마전 까지는 섬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섬이 아닌 곳입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다리가 섬을 육지와 이어주고 있습니다.
크기는 서울+여의도의 1.5배라고 합니다.
주민은 600명이 채 되지 않으며, 그저께 3분이 돌아가셔서 더 줄어 들었다고 합니다.
맑은 바다물과 가까이에 보이는 녹동항이 아름다운 곳이었고,
눈에 익거나 혹은 낯선 나무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깨끗이 단장된 주차장과 양 옆에 늘어선 가로수가 바다와 어울려 걷는 길이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바다새들이 머리 위를 바짝 스쳐서 날아 다니고,
보이지 않는 산새들의 노래가 바람과 함께 어우러져 귀를 즐겁게 했고,
싱싱한 숲의 향기가 코와 온몸에 활기를 주어서
첫느낌이 좋은 섬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온 곳이라는 신기함과 다시 올 일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단지 여행자의 자유로움을 느끼며 잘 정돈된 길을 홀가분하게 걸었습니다.
한참을 걸어가니 '애환의 비'가 나왔습니다.
그 섬의 역사를 알려주는 추모비였습니다.
그때부터 제 귀로 들은 그 섬의 역사는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천형의 병이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던 한센병을 앓는 사람들이
이 섬에 격리되어서 겪었을 그 가혹하고 처절한 이야기를 섬주민의 해설로 들으면서,
그분들의 고통이 세포 하나마다 전해지는 듯 하여 몸이 쑤시고 눈물이 났습니다.
수도 없이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과거 속에 묻혀진 그분들의 비극과 고통스런 영혼을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운 공원 집채 만한 바위에 새겨진 한하운님의 '보리피리'를 섬주민이 읽어주는데,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느라 힘들었습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지옥같은 곳에서
영혼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 했겠는지요.
살아서는 갖은 박해와 수모와 중노동에 혹사당했고,
심지어는 '단종' 수술로 거세되는 치욕을 멀쩡한 정신으로 당했으며,
죽어서는 실험실 해부용으로 주검을 난도질 당했던 그분들의 원한과 억울함을 생각하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존재인가를 뼛속까지 진저리치며 느꼈습니다.
빠삐용처럼 눈 앞에 보이는 녹동으로 탈출하다 잡혀 온 분들은
서대문형무소 닮은 붉은 벽돌집에서,
얼려 죽이는 방, 굶겨 죽이는 방, 때려 죽이는 방에서,
그렇게 모질게 죽어 갔다고 합니다.
출구도 없고, 희망도 없는 삶,
언제 고통이 끝날지도 모르고 고통이 일상인 삶.
그때 그분들은 그 처절한 시간을 다 어떻게 견뎌 냈을까요.
그때 그분들은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아무 죄없이 역사의 질곡속에서 오직 당하기만 했던
한없이 가엾고, 약하디 약한 그 분들을 억울한 삶을 생각하면
'업보'라는 말조차 얄밉게 느껴집니다.
내가 그분들이었다면, 난...
부디 힘드셨던 그분들이 이미 모든 고통을 보상받았길 빕니다.
지금쯤은 더 좋은 삶을 사시거나,
아니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났기를 간절히 빕니다.
그리고,
허우적거리며, 질척대며 힘들다고 아우성치며 살아온 제 삶이,
오히려 얼마나 순탄하며 감사한 삶이었나를 감전된 것 처럼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이런 시대, 이런 조건에서 살게된 시절인연에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감히 삶이 고단하다는 말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죽을 때 까지 감히 '고통'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죽을 때 까지 감히 '억울하다'는 말도 하지 못하겠습니다.
죽을 때 까지 어떤 일에도 '분노'나 '원망'을 느껴서는 안 될 것 같은
양심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섬에는 또한
22세의 젊은 나이로 봉사를 와서 70세가 넘도록 모든 것을 바쳐
병든 분들을 위해 헌신했던 3분의 마리아('삼마리'라고 부른답니다.)를 위한 공덕비가 있었습니다.
그 3분의 간호사들과 3분의 외국인 의사분들 덕분에
한센병이 단순한 접촉으로는 전염되는 병이 아니란 걸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3m 이내에는 다가 가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요.
그분들은 지금은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셔서 노후를 보내고 계시는데
꾸준히 소식을 끊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봉사하는 삶이 뭔지를 가르쳐주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삶이 'humanism'이고,
그분들이 'humanist'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천사가 하는 일을 해준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인간애 앞에서
감히 나름 착하게 살았다는 말을 부끄러워서 못하겠습니다.
그 섬에는
3가지 인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병든 사람, 악마같은 사람, 천사같은 사람.
소록도는 제게 좀 더 인내하며 살 것을 가르쳐줍니다.
소록도는 제게 삶을 감사하며 살 것을 가르쳐줍니다.
소록도는 제게 인간이 참지 못 할 고통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거지왕 김춘삼이 그랬던가요?
얻어 먹을 힘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저는 새삼 은혜를 생각합니다.
기도할 수만 있어도 행복한 삶이라고.
소록도.
작은 사슴들의 섬.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 섬이 겪었을
무시무시한 역사에서,
이제는 벗어나
그 깊은 상처로 조그만 상처에도 크게 상심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치유하는 곳이 된 섬.
그 섬에서 큰 공부를 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나) 이런기도...
글: 여래경
요몇일 쨍~~하게 시리도록 추운 날씨탓에
아랫목만 찾으며 책을 끼고 지냈다.
오늘 아침 역시도 새소리에 내 아침이 시작되고
새 모이로 마당 한켠에 좁쌀이랑..보리쌀이랑..한줌 한줌 놓아주고
청솔모가 먹을 과일껍질도 소나무 밑에 갖다놓고
간만에 땔나무를 주으러 산으로 들어갔다.(안방은 군불을 지펴야하는 황토방이기에.)
겨울 답지 않게 바람이 부드럽고 상쾌하다.
지난 6월 구청에서 산불방지 차원으로 내가 사는 이 숲에 벌목을 해놨기에
땔나무가 지천으로 쌓여있다.
겨울이지만 땀을 흘리며 일하는 기쁨을 아실런지..
아니 일하며 주변 의식않고 기도문을 외우는 행복을 아실런지...
내가 아는 기도문이라고는 '신묘장구대다라니경'과 '반야심경'뿐이지만
두시간이 넘도록 산을 돌아다니며 經을 외웠다.
'경'외우기에 신이난건지 일하는 것에 신이난건지..
마당 한켠에 태산?같이 나무를 갖다날랐다.
그러고 땀을 닦으며
이렇게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있음에 합장하고 감사드리며
오늘은
맑고 맑게 녹차를 우린다.
또한 마주하고 얘기할 수 있는 황룡사 카페가 있어 더 좋다.^^
다) 눈시울이 뜨겁고 가슴이 찡~한...
글: 선법행
이야기 하나
장애우체험활동 도우미봉사를 하는 아이들이 봉사대상을 받았습니다.
'보건가족복지부 장관상'입니다.
애들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 상이 주는 의미는 오히려 초라합니다.
얼마나 예쁘고 착한지 모릅니다.
봉사자도 봉사받는 아이들도 다.
그저께 봉사행사가 있어서, 식전 행사로 이 아이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율동을 하였습니다.
사실 장애우들은 한가지 동작을 배우는데도 일년이 걸리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가르치고 배우고를 수도 없이 반복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표정도 예쁘고 율동도 귀엽고 발랄했습니다.
평소에 단어시험 못쳐 머리 쥐어박힌 녀석도 귀엽게 춤추고 있었습니다.
애들이 춤추는 동안 뒤에서 지켜 보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터질 것 처럼,
'찡~'한 감동으로 가슴이 벅찬 게 아니라 아팠습니다.
분명 벅찬 감동이기는 한데,
너무 벅차서 아팠습니다.
지금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똑같은 마음이 됩니다.
이 애들은 아직 어리니 기도도 제대로 해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경전인들 읽은 적이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보살펴주고 보듬어주는 법을 알고 서로 사랑하며 어울리는 아이들
애들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이구나-생각했습니다.
어른들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구나-'확' 깨달았습니다.
착한 것도 훈습이 필요하다는 것이 평소 제 생각입니다.
애들은 착한 연습을 할 기회가 주어지면
이렇게 단박에 보살행을 행합니다.
나이 들수록 '착한' 사람들이 좋습니다.
애들에게도 자주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좋다고.
찡그린 얼굴로 욕심이 가득한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합니다.
그러면서 저 또한 그런 얼굴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기도에 매여 살면서도
늘 버벅거리는 어른인 제가 부끄럽습니다.
애들에게서 '순수와 셈없는 관계'를 배운 하루였습니다.
착하게 살자.
착하게 살자.
착하게 살자.
과거 세상 베풀지 않고 산 죄를 참회합니다.
현재 세상 베풀지 않고 산 죄를 참회합니다.
미래 세상 베풀지 않고 살 죄를 참회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_()()()_
이야기 둘
제게는 천도재 제자가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무슨 기도를 해주면 좋겠느냐고 물어온 아입니다.
이런저런 도움으로 어떤 스님께서 그냥 '천도재'를 지내 주셨고,
황룡사 방생때도 함께 동참했던 아입니다.
지금은 임상병리사가 될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제 퇴근 시간에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뵈러 갑니다.-이러면서.
저 또한 그날이 십년만에 제대로 챙겨주고 싶은 아들의 생일이라
갑자기 온다는 아이가 당황스러웠습니다.
'널 오래 만날 수가 없는데 어쩌냐? 다음에 오면 안 되겠냐?'
'괜찮아요, 그냥 얼굴만 뵙고 갈께요.' 이럽니다.
참 내가 뭐라고 오매불망 보겠다고 오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문득 감격스러우면서도 민망했습니다.
멀리서 달려오는 애는 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헐레벌떡 달려옵니다.
아예 짐에 둘러 싸여 옵니다.
'무슨 짐이 이리 많으냐?' 물으니
'다 선생님 드릴 거예요.' 한다.
'니가 무슨 돈이 있냐, 학생이.' 하니
'알바해서 월급 탔어요.' 한다.
'그 귀한 돈을 왜 이런데 쓰냐?'하니
'꼭 드리고 싶어서요.'한다.
애가 준 귀하고 눈물겨운 선물은 '통닭과 음료수'였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알바해서 번 돈으로 제 은사선생님들께 선물을 사드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기는 커녕 졸업 후에 한 번도 찾아 가 뵌 적도 없습니다.
찾아 가기는 커녕 어디에 사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구도 제가 애들에게 좋은 말은 다 들려주며 생색내고 있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저는 하루동안 그 닭도, 그 음료수도 먹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이의 마음인데, 넙죽 먹을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조그만 감사함도 기억하고 기억했다가,
이미 까맣게 잊고 있는 제게 '보은'하는 마음을 가르쳐주러 온 것입니다.
살면서 제가 떼먹거나 잘라먹은 '빚진 보은'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감사는 커녕 푸념이나 원망만 안 했어도 다행인 일들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 아이 또한 제게 온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습니다.
절마당을 수 없이 밟고, 수 없는 절을 하고, 수 많은 책을 읽어도,
이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가짜 불자'이겠구나.
가짜, 가짜, 가짜...
덜어내도 덜어내도 자꾸만 생기는 탐,진,치.
이만하면 됐는데도 자꾸만 미흡한 마음.
더 많이 비울 것은 비우고 비우고,
채울 것은 채우고 채워서,
애들 앞에라도 당당한 어른되고 싶은 마음 간절한 하루였습니다.
내게 온 관세음보살님의 '화신'들에게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이 하루를 평생 잊지 않을려고 합니다.
과거 세상 은혜 잊고 산 죄를 참회합니다.
현재 세상 은혜 잊고 산 죄를 참회합니다.
미래 세상 은혜 잊고 살 죄를 참회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_()()()_
라) 금강경 기도 회향
글: 자등명 (강릉 거주)
한 달 동안 금강경 독송 및 108참회 기도에 동참하였답니다.
가까운 포교당에서 퇴근해서 저녁 먹고 7시 반부터 한 시간 반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퇴근한 후의 시간이 좀 아깝기도 하고...
혼자 금강경을 읽는 것 보다 도반과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런데 좀 힘이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몸이 좀 피곤 하더라구요.
그래서 며칠 빠지고.... 그래도 참~ 추운 데도
떨치고 동참하여 어제 회향했습니다.
끝나고 철야하면서 3000배도 했는데... 저는 못했답니다.
일요일에 토익시험 감독이 있어서..
좀 아쉬웠지만... 좋은 도반을 만나게 되어..좋은 시간이었고,
내 삶에 대해 또다시 참회하고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더욱 열심히 정진하고 비록 내 전생의 업이 두터워 공부가 잘 안 되더라고 그럴수록 더 열심히 더 열심히.....
나무 대행보현보살 나무 대행보현보살 나무 대행보현보살 마하살
마) 성묘
글: 자등명 (강릉거주)
추석 때 못한 친정 아버지 성묘를 다녀왔습니다.
어머니와 딸 셋, 새벽부터 전 부치고, 나물 무치고, 송편 빚고, 과일이랑
좋아하시던 소주 사고...
김밥까지 해서 출발했습니다.
엄마는 춘천에서, 나는 강릉에서 언니와 동생이 사는 원주에서 만나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차창에 펼쳐진 가을은 그대로 그림이었습니다.
대전 현충원 국립묘지엔 벌써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절하고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금강경을 하라는 겁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영가들을 위해....
우린 주춤 거리다가 엄마가 워낙 강경하게 하라고 해서
차에서 책을 가져다가 언니와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시아문..... 엄마는 옆에서 지장보살 정근하시고.....
근 30분 정말 신나게 했습니다. 신수봉행 하면서....
마지막으로 반야심경 큰 소리로 독송하고
흐ant한 마음으로 절을 했습니다.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아버지를 회상하면서....
.
춘천까지 엄마 모셔드리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성묘하면서 염불을 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11) 2010년 천진불들의 작은 전시회 및 바자회
글: 다보행(어린이 지도법사)
경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가내에 두루 평안하시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두 손 모아 발원합니다.
1월 31일 황룡사 어린이회에서는 작은 전시회 및 바자회를 열고자 합니다.
그동안 어린이회에 나오면서 그리고 만들고 했던 작품들을 수월관에서 전시합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오리고 붙이면서 자신의 생각도 표현하며 화가가 되기도 하고 작가가 되기도 했던...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든 천진불들의 작품입니다.
많이 참석해 주셔서 격려와 응원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어린이는 불교의 미래이며 희망이고 또한 대한민국의 미래며 희망이기도 합니다.
이런 취지에서 주지스님이신 황산스님께서 어린이회를 1년 반동안 지원해주셨고 또 뜻이 있는 보살님께서도 알음알이로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이번 바자회는 어린이회를 위해 후원을 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때까지 아이들은 육바라밀을 행하며 저희 황룡사에서만 쓰는 템플머니를 모았고 이 걸 쓰는 날을 바자회 날로 정해놓았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그동안 육바라밀을 행한 공로로 받은 템플머니를 작은 시장에서 쓸 수 있도록 열리는 것이고 어린이외 신도님들과 부모님들께서는 바자회를 통해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시고 어린이회에 후원을 하시는 겁니다.
이 날 모인 수익금전부는 어린이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참석해 주셔서 작은 정성 보태주시길 바랍니다.
일시: 2010년 1월 31일 (1월 마지막 주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4시까지
장소: 수월관
바자회물품: 목도리, 다포, 차받침, 문구류, 도서, 스타킹, 모자 등
12) 대중공양자 명단
떡 공양 : 서원떡집, 여래향, 진여덕
쌀 공양 : 권순예 꽃 공양 : 권순예, 우진행, 대원행
과일공양 : 권순예, 진여덕 법 공양 : 김수복, 심점숙
어린이 법회 : 거창 파이모 일동, 권지행, 묘심행, 수선행
생일불공 : 이창호, 이영민, 허성원, 유지현, 김순원, 김근숙, 나호원, 조홍석
결혼 감사불공 : 상진행
천도재 : 상진행, 구성모, 문명순
12월 후원회 CMS가입 명단 : 김양애, 박영애, 정관식, 서인숙, 김옥예, 손도익, 이종국
한상준,김영경, 김종국, 한상준, 김영경, 김종숙, 이인숙, 정원근, 김병탁, 전명환, 이죽련
대중공양 : 김영선, 만선행, 문명순
13) 2010년 중 행사 일정
동지기도를 하며 지난 1년을 뒤돌아 봅니다. 2009년 초에는 해인사 대중공양과 성도절기념 철야정진, 그리고 정초기도, 정초기도 회향 후 큰스님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드렸죠, 3월에는 금강경 오가해를 개강 했었습니다. 4월은 개원 1주년, 5월은 초파일, 여름에는 예수재를 지내며 큰스님 초청법회가 있었고, 백중기도 내내 자비도량참법을 했었습니다. 여름부터 도시락 봉사를 시작하였고 가을에는 관음예문과 함께 시험합격 100일기도를 하였으며 그 와중에 108순례를 시작하였고 불교대학 가을 교양과정을 개설하였으며 수월관을 개관했지요. 12월은 동지기도를 하였습니다. 해오던 병원봉사와 어린이 법회는 여전히 계속 되고 있습니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서 새해의 일정을 생각해봅니다.
매월 4째주 일요일 백팔 구법순례
1월 21일 밤에는 성도절 철야정진
2월 16~2월 28일은 정초기도, 신중기도 회향일엔 연화도 방생
4월 13~19일까지는 개원식 2주기 기념 용왕기도와 방생
5월 15~21일까지는 부처님오신날 특별기도
7월 10~8월 27일까지는 백중기도
8월 2~11일 12일까지 시험합격 100일기도
12월 2~22일 동지기도
불교대학은 3월 개강, 9월 개강, 2월과 8월은 방학
불교대학 강의는 기초교리 가을 반은 목요일 오전 11시, 저녁 7시
봄 반 화요일 오전 11시, 저녁 7시
경전반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 저녁 7시
매월 초하루 법회, 관음재일
매월 보름 포살법회
매월 지장재일 합동천도재
14) 불공, 기도, 천도재비 안내
기도에는 천일기도(100만원) 2011년 초에 회향
백일기도(20만원), 특별백일기도(50만원) 일년기도(50만원)
대중이 함께 입재 할 때는 기도비가 다를 수 있음
일년기도(15만원-초하루와 재일 때만 축원)
21일기도(10만원), 7일기도(5만원) 3일기도(3만원) 일일축원(1만원)
초하루,보름,관음,지장재일: 떡, 과일공양(20만원,형편껏)
생일불공 축원만(3만원) 축원+떡공양(5만원) 축원+떡과일(10~30만원)
꽃공양(5~20만원)-불단, 신중단, 용왕단, 문수단, 영가단
49재(400만원이상)-형편에 따라 조정될 수 있음
천도재(100만원이상)
지장재일 합동천도재(1위당 1만원)
원불(1인100만원-분납가능)
인등: 1인 1개월 5000원, 1가구 1개월 1만원
선원대중공양: 형편껏
법보시: 각종경전, 황룡사소식지,
공양간에 필요한 반찬거리(미역, 김, 배추, 무우, 양념, 표고버섯 등등)
어린이 기금, 도시락봉사,
CMS 자동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