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대방의 예측을 무너뜨려라
웃음은 의외성에서 나온다. 대화 도중에 상대방이 자연스레 갖게되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적절하게 뒤집으면 웃음이 터지는 것은 정한 이치다. 뒤집기의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웃음의 강도 역시 그에 비례하여 높아지기 마련이다.
자선단체의 신임대표가 악명높은 구두쇠를 찾아가서 말했다.
“우리 기록에 의하면 선생님은 아직까지 한번도 자선기금을 낸 일이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이웃들에게도 좀 온정을 베푸시죠.”
그러자 구두쇠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내게는 아버지로부터 한푼의 유산도 못받은 가난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혹시 당신네 기록엔 그런 사실이 나와있습니까?” “……없습니다.” 구두쇠가 계속 묻는다.
“그럼 내게 몸이 불구가 되어 일을 못하는 형님이 있다는 사실은 나와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 기록엔 그런 사실이 전혀 나와있지 않습니다.”
자선단체 대표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께 그런 가슴아픈 사연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난 그런 어려운 가족들에게 지금까지 한푼도 준 일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당신들에게 돈을 준단 말입니까?”
이 얘기를 들을 때 사람들은 대개 그 구두쇠가 남모르게 가난한 가족들을 돌보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마치 소리없이 가난한 선비들을 도왔던 우리나라의 자린고비처럼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구두쇠가 내뱉은 한마디는 사람들의 그같은 지레짐작을 완벽하게 무너뜨린다. 이처럼 한순간에 상대의 예측을 뒤집는 것이야말로 모든 웃음의 첫걸음이라고 할 것이다. 이 방법의 핵심은 상대에게 자연스럽게 선입견을 심어주는 것에 있다. 마지막 결말이 나오는 순간까지 전혀 그 내용을 예측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얘기하는 도중에 상대가 이쪽의 의도를 간파하게 되면 웃음의 효과는 그만큼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때 흔히 쓰이는 방법이 바로 결과를 먼저 이야기하고 원인을 나중에 이야기하는 ‘인과전도’화법이다. 말하자면 ‘…… 때문에……했다’가 아니라 ‘……했다. 왜냐하면 ……때문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일단 나름의 판단에 의해서 이런저런 예상을 하게 만든 다음에 그것을 일거에 무너뜨리면 웃음을 유발할 활률은 훨씬 높아지게 된다.
특정한 표현에 담겨있는 고정관념을 이용하는 것도 예측파괴의 한 방법이다. 어떤 단어나 표현에 대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뒤집어서 상대의 예측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남자는 역시 아내를 잘 만나야돼.”
“왜?”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아내를 잘못 만나는 바람에 백만장자가 됐지 뭐야.”
“그럼 잘 만난 거 아냐?”
“잘 만나긴! 결혼 전까지만 해도 억만장자였는데.”
고정관념이 유머의 적이라는 것은 여러차례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내 고정관념이 유머창조의 장애물인 것과는 반대로 남의 고정관념은 언제나 유머의 좋은 소재가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이런저런 고정관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유머감각은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것이다.
병원 응급실에 여자와 남자가 급히 뛰어들었다. 여자가 컥컥대며 말한다.
“선생님…… 내 목에…… 골프공이…… 걸렸어요…….”
의사가 환자를 안심시키려 손을 잡으며 말했다.
“걱정마세요. 금방 꺼내드리죠. 그런데 같이 오신 분은 보호자십니까?”
“아뇨..난 내 공을 찾으러 왔어요.”
여기에서는 인과전도나 단어의 고정관념 대신 주어진 상황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용했다. 공 찾으러 왔다는 골퍼의 말은 그 상황에서는 전혀 예상하기 힘든 대답이다.
이처럼 어떤 상황을 이용하거나 혹은 표현에 담긴 뉘앙스를 이용해서 상대의 예측을 무너뜨리는 것도 흔히 쓰이는 방법이다. 상대에게 은근히 어떤 암시를 주고나서 갑자기 엉뚱한 결말로 몰고 가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성담(性談)에서 특히 많이 쓰이는데, 효과를 높이려면 표정이나 어투 등을 상황에 맞게끔 최대한 실감나게 구사해야 한다.
갑순이가 새벽에 잠자리에서 남편을 졸랐다.
“자기야, 딱 한번만.”
“싫어! 한번만 한번만 한게 벌써 몇 번째야?”
“정말로 딱 한번만 더. 응?”
“글쎄, 안된다니까. 나도 힘들단 말야.”
“(울먹이며) 제발 한번만 더요.”
“정말 돌아가시겠네. 피곤하다는데 왜 자꾸 조르는 거야.”
“(토라지며) 변했어. 신혼때는 잘만 해주더니.”
그 말에 갑돌이가 할 수 없다는 듯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어휴, 지긋지긋해. 맨날 나보고만 연탄을 갈라니.
이거야 원, 도무지 살 수가 있어야지.” 이런 식의 대화를 들으면서 사람들이 처음에 무엇을 떠올릴지는 자명하다. 부부의 침실이라는 상황설정에 ‘한번만 더’라는 표현이 곁들여지면 누구라도 뭔가 야하고 은밀한 상상을 하기 마련이다. 말하는 사람이 적당히 농염한 표정을 짓거나 나직한 말투를 쓰기라도하면 그런 효과는 훨씬 커지게된다. 하지만 사람들의 그같은 연상은 다음 순간에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이 부부들의 대화는 섹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언뜻 듣기엔 노골적이기조차 한 이 표현들이 막판에 허무하게도(?!) 연탄갈기 같은 자질구레한 일상으로 귀결될때 사람들은 웃는다. 이 때 크게 웃는 사람일수록 야한 상상을 했던 사람이라고 보면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이 얘기를 듣고 터뜨리는 웃음소리의 크기는 남자와 여자가 거의 막상막하였던 것같다.
상대의 예측을 무너뜨리는 일은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은 남들 역시 갖고 있고, 내가 남의 얘기를 들으면서 하는 예측도 남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유머기법을 사용하기 위해서 특별히 심리학이나 독심술 따위를 공부할 필요는 전혀 없는 셈이다. 하지만 누차 강조했듯이 평범한 발상에서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예측을 간파하는것이 아니라 그 예측을 효과적으로 무너뜨리는데 있다. 요컨대, 예측파괴라는 하나의 기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상력과 연상능력, 언어감각, 표현능력 등이 두루 갖춰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일단 예측파괴의 방법과 시점을 터득하고 나면 굳이 꽁트 형식의 우스개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상대의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다. 효과적으로 이어지는 한두마디의 짤막한 말만 가지고도 충분히 상대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자유자재로 뒤흔들 수 있다는 뜻이다. 예측파괴의 포인트는 이야기의 분량이나 길이가 아니라 재치있는 발상에 기초한 뒤집기의 강도에 있음을 분명히 기억해 두자. ◈
2. 곡해와 궤변으로 말문을 막아라
예측파괴는 내가 이야기의 순서나 표현방식을 조절함으로써 상대의 예측을 무너뜨리는 방법이다. 이와 달리 상대가 내게 꺼낸 말을 엉뚱하게 곡해하거나 비약시켜서 웃음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순발력이 좋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이 방법을 쓰려면 일단 상대의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전체를 재빨리 변형시킬 수 있어야 한다.
상대는 A를 전제하고 말을 꺼냈는데 내가 그것을 B로 받아들이고 응수를 하면 누구나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문이 막히기 마련이다. 말귀를 못 알아들은 척 난데없이 대답을 함으로써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 방법의 포인트인 셈이다. 물론 실제로는 말귀를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들어야 비로소 쓸 수 있는 방법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 가 있는 동안 찰스는 늘 주점에 가서 술을 마시곤 했다. 그 행실을 괘씸하게 여긴 목사님이 어느날 찰스를 불러서 점잖게 꾸짖었다.
“찰스, 난 우리가 천국에서 서로 못 만나게 될까봐 몹시 두렵다네.”
그러자 찰스가 정말로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대꾸한다.
“목사님,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그러세요?”
목사님은 찰스가 천국에 못 갈거라는 뜻으로 얘기했지만 찰스는 그것을 정반대로 받아들였다. 앞의 예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 방법의 핵심은 상대의 말 속에서 재빨리 곡해의 여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어차피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철저하게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6하원칙을 지키며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조금만 삐딱하게 생각하면 어떤 말에서건 전혀 다른 해석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하나 더 살펴보자.
박봉에 시달리던 사원 하나가 큰 마음을 먹고 사장실에 들어섰다. “어젯밤에 집사람하고 길게 의논을 했는데요. 지금 월급으로는 도저히 두 식구가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서…….” 사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한다. “그래서 지금 나한테 이혼문제를 상의하러 온 건가?”
이처럼 상대방의 말에서 생략된 부분을 적절히 뒤집으면 그 뜻을 손쉽게 뒤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상대의 말과 나의 대답 사이에는 이해와 곡해라는 두개의 단계가 존재하고 있다. 일단 상대의 말을 원래대로 이해한 다음에 다시 그것을 고의적으로 곡해하는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유머러스한 대꾸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즉, ⑴상대의 말 → ⑵정상적 이해 → ⑶고의적 곡해 → ⑷나의 말이라는 4개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곡해에 능숙해지기 위해서는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말을 듣는 즉시 머리 속에서 그것을 재구성하여 적절한 뒤집기로 연결시켜야 하는 것이다. 주어가 생략되었을 경우엔 거기에 전혀 엉뚱한 대상을 대입시켜보고, 인과관계가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았다면 그것을 적절하게 비틀어 보고…… 이런 식이다.
물론 대화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 순간적으로 그런 발상으로 떠올리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뒤집기의 범위를 압축하는 능력만 있으면 생각처럼 어렵지만도 않다. 어떤 대화에서건 상황과 문맥에 어울리는 곡해의 가능성은 대개 몇 가지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의적인 곡해의 범위는 ‘너 아니면 나’혹은 ‘이것 때문이 아니면 저것 때문’과 같이 대화의 주체나 내용, 혹은 상황 속에 이미 제한적으로 주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순발력만 갖추고 있으면 얼마든지 상대의 전제를 180도로 뒤집어 주객전도나 인과전도에 의한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곡해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것이 바로 궤변이다. 상대의 말에서 생략된 부분이나 복수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이용하는 곡해와 달리, 궤변은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말을 그럴듯하게 꾸며서 내세우는데 묘미가 있다. 상대의 말을 맞받아치는 순발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궤변은 일반적인 곡해에 비해 훨씬 고도의 감각을 필요로 한다. 불합리를 합리로, 혹은 비논리를 논리로 포장하는 능력이 추가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거지 하나가 지나가던 신사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재작년까지 내게 늘 만원씩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작년부터는 오천원으로 줄이더니 올해엔 또 천원으로 줄였습니다. 대체 그 이유가 뭡니까?” “전에야 내가 총각이었으니 여유가 있었지요. 하지만 작년에 결혼을 했고 이제는 애까지 있으니…….” 그러자 거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니, 그럼 내 돈으로 당신 가족을 부양한단 말입니까?”
거지의 논리는 간단하다. 결혼만 안 했으면 자기에게 올 돈이 결혼을 하는 바람에 생활비로 들어가게 됐으니 결과적으로 자기가 신사의 가족을 부양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당치도 않은 어불성설이지만 언뜻 들으면 꽤 그럴싸하게 들린다. 신사는 졸지에 거지의 힘을 빌어 생계를 유지하는 파렴치한이 되어버린 것이다.
곡해와 마찬가지로 궤변에서도 상황과 문맥에 어울리는 경우의 수는 대개 제한되어 있다. A에 대해 말하다가 뜬금없이 Y나 Z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A와 연관된 궤변을 구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상대의 논리를 기계적으로 다른 경우에 적용시킬 줄 알아야 한다. 또 상대의 말이 내포하고 있는 논리를 터무니없이 과장하거나 비약시킬 줄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들었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궤변의 씨앗은 대개 처음의 말 속에 포함되어 있다. 예측파괴에 심리학이나 독심술이 필요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궤변에도 굳이 어려운 논리학이 동원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순간적으로 다른 경우에 대입시키거나 비약시키는 순발력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곡해나 궤변에 특별히 요구되는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의 말에 빠져들지 말고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의 전제나 논리에 똑같이 빠져들어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순간 유머러스한 응수의 가능성은 결정적으로 축소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평범함 관객은 영화를 볼 뿐이지만 평론가는 영화를 읽는다. 또 평범한 독자는 작품에 쉽게 빠져들지만 평론가는 작품을 냉정하게 분석한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은 남의 말에 쉽게 젖어들지만 유머러스트는 말 앞에서 언제나 귀와 머리를 동시에 열어두는 것, 바로 그것이 유머리스트의 미덕이다. ◈
3.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최대한 과장하라
뭔가를 터무니없이 부풀려서 말하는 과장은 다양한 유머기법 중에서도 가장 고전에 속한다. 고의적인 거짓말은 남을 해롭게 하지만 드러내놓고 하는 거짓말은 서로에게 친근감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때로는 유쾌한 웃음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동서고금의 유명한 유머 중에 거짓말장이나 허풍장이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많은 이유도 악의없는 거짓말이 주는 그같은 효과 때문일 것이다.
한 낚시꾼이 숭어를 한마리 잡아서 집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숭어가 너무 예쁘게 생겨서 문득 물 밖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부터 낚시꾼은 하루에 5분씩 숭어를 물에서 꺼냈다가 못견딜만하면 다시 물에 집어넣길 반복했다.
몇 달동안 그렇게 훈련을 시키자 숭어는 이윽고 땅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흐뭇해진 낚시꾼은 숭어를 데리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았고 숭어는 마치 강아지처럼 낚시꾼의 뒤를 쫓아다녔다.
어느날, 큰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던 낚시꾼이 뒤를 돌아보니 숭어가 보이지 않았다. 물비린내를 맡은 숭어가 그만 현기증을 일으켜 다리 아래로 떨어져버린 것이다. 깜짝 놀란 낚시꾼이 물 속으로 들어가 숭어를 구해냈지만 숭어는 이미 익사해버린 다음이었다.
이 얘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고전 중에 고전이다. 숭어가 물 속에서 숨쉬는 법을 잊어버려 익사했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과장인가.
사실 과장이나 허풍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구사할 수 있다. 세상엔 거짓말거리가 그야말로 무한대로 널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은 과장이라도 표현이나 비유가 기발하지 않으면 웃음을 이끌어내기는 힘들다. 과장은 사용하기가쉬운 대신 웃기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과장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숭어가 오랫동안 물 밖에서 살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해보고 가장 그럴싸한 표현방식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 중에는 과장의 발상법을 보여주는 좋은 예들이 많다. 이를테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다’라거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는 표현들이 거기에 해당한다. 또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린다’‘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엎어지면 코 닳을 곳’‘번갯불에 콩 구워먹는다’등도 마찬가지로 과장된 표현들이다. 이런 표현들은 앞에서 설명한 과장의 전제조건들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다.
이런 말들이 널리 쓰이는 것은 그냥 ‘빠르다’거나 ‘급하다’고 하는 것에 비해 전달효과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런 발상과 표현들이 웃음의 도구로 활용된다면 그 소재는 실로 무궁무진하지 않겠는가.
과장의 예는 다양하다. 원인이나 결과를 과장할 수도 있고 사물의 형태를 과장할 수도 있다. 또 이런저런 느낌이나 이미지를 과장할 수도 있다. 때로는 과장이 성담(性談)의 효과를 탁월하게 향상시켜 주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나 상상력은 기본이고 다양한 연상훈련을 쌓는 것도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유머의 기법은 다양하지만 그 뿌리는 결국 동일하다는 것이 여기에서도 다시 한번 증명이 되는 셈이다.
유명한 휴양지에 관광객이 찾아왔다. 안내를 맡은 가이드가 관광객에게 미을 자랑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곳은 워낙 공기가 좋기 때문에 건강에는 최고입니다. 최근 5년 동안 죽은 사람이라고는 한명밖에 없었을 정도니까요.” “그 사람이 누굽니까?” “의사였습니다.” “이상한 일이군요. 남들은 다 건강한데 왜 의사만 병에 걸렸을까요?” “그게 아니라 , 워낙 손님이 없어서 그만 굶어죽었다지 뭡니까.” 이 예는 일상적인 표현들을 응용한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나처럼 건강하면 의사들 다 굶어죽는다’는 표현을 흔하게 쓴다. 이런 것들을 조금만 변형하거나 응용하면 얼마든지 기발한 표현을 창조할 수 있고 잘 정리된 우스개를 엮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혹시 배가 고프다면 ‘배고파 죽겠다’는 상투적인 과장 대신에 뭔가 다른 표현을 찾아보라. 또 깡마르거나 뚱뚱한 사람을 보면 그 모습을 효과적으로 과장할 수 있는 유머러스한 표현을 찾아보라. 무릇 유머리스트란 세상의 사물과 풍경들을 뻥튀기의 재료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이다. ◈
. 때로는 바보인 척 하라
코미디언들에게 가장 어려운 배역이 뭐냐고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바보역할’이라고 대답한다.
내 생각에도 바보가 정상인들 흉내내는 것보다는 정상인이 바보 흉내를 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것 같다. 어떤 대목에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야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릴지 주도면밀한 예측과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건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원래 바보 흉내는 웃음을 이끌어내기엔 상당히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바보짓을 한다고 해서 남들이 반드시 웃으라는 보장은 없다 . 말과 행동이 정말로 바보같않으면, 또 주어진 상황이나 대화내용과 적절하게 어울리지 않으면 정상인의 바보노릇은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코미디에서는 과장된 액션이나 억양이 가능하지만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아무래도 제약이 따른다. 따라서 우스꽝스러운 행동보다는 바보스런 발상과 표현만으로 사람들을 웃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바보스럽지 않은 상상력과 순발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요컨대, 바보 흉내는 절대 바보가 아닌 사람만이 시도할 수 있는 고난도의 유머라고 할 것이다.
바보 흉내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은 어리숙함이다.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듯한 순진함이나 어리숙함으로 사람들의 상식적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는 것이다. 대화 도중에 상대로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보같은 말이 튀어나오면 사람들은 누구나 웃음을 터뜨리기 마련이다.
한 남자가 이제 막 아이를 낳은 아내를 면회하러 병실로 들어갔다. 아내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기쁜 표정으로 말한다.
“여보, 나 딸 쌍둥이를 낳았어요.”
이 말을 들은 남자는 갑자기 얼굴을 잔뜩 찌푸리더니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알았어. 나중에 얘기하자구.”
잠시 후, 간호사가 면회시간 종료를 알렸고 남자는 밖으로 나왔다.
“제기랄!”
그가 우거지상을 하고 병원 복도를 걸어나오면서 중얼거린다.
“또 한 놈의 아기 아빠를 찾아내면 그 놈을 가만두지 않겠어.”
여기서도 웃음의 포인트는 어리숙함이다. 쌍둥이를 낳았다고 아빠가 둘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의 어리석음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뭐라고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이 남자는 바보지만 그래도 생각은 있다. 어떻게 해야 아이가 생기는지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보스런 발상은 상식에서 어긋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는 그럴듯한 근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까닭없는 바보짓은 진짜 바보들의 몫이지 유머리스트의 몫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던지는 질문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는 것도 바보들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곡해에 해당하지만 똑같은 곡해라도 재치있고 번뜩이는 답변이 있는가하면 천하의 바보같은 멍청한 답변도 있다. 바보스러운 곡해는 상대의 말 속에 내포된 뜻을 짐짓 외면하고 질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들 때 흔히 일어난다.
한 청년이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애인의 부모를 찾아갔다, 청년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퍼붓던 노부부가 한참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나눈다.
“여보, 당신 생각은 어때?”
“전 이 청년이 마음에 들어요.”
그러자 청년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더듬거린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따님인데요.”
애인 어머니의 말을 그런식으로 곡해하는 사람은 정말로 바보이거나 아니면 대단히 숙련된 유머리스트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미련함과 고지식함 역시 바보 흉내에 흔히 동원되는 수단이다. 도무지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수없는 극단적 아둔함이 영리함을 미덕으로 삼는 현대인들의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거나 눈에 보이는 사실에만 집착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YS가 외국정상들과의 회의에 참석해서 연설을 했다. 그런데 뭔가 착오가 있었는지 연설문이 우리말이 아닌 영어로 전달되었다.이 쯤이야! YS가 자신만만하게 첫 대목을 읽는다.
“레이디스 앤드 겐틀맨!”(Ladies and gentleman!)
당황한 비서관이 옆에서 나직이 속삭였다.
“각하, 거기에서 g는 기역(ㄱ) 발음이 아니라 지읒(ㅈ) 발음입니다.”
“내도 안다, 알어!”
YS가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잠시 후, 다시 g로 시작되는 단어를 발견한 YS가 여유있게 내뱉은 한마디.
“오, 마이 잣!”(Oh, my god!)
이 예에 나오는 바보들은 모두 아는 척하는 바보들이다. 이처럼 모르는 것을 아는 체 떠벌리는 것도 바보 흉내에서는 ABC 에 속한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반드시 남들이 다 아는 내용을 소재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괜히 아무도 모르는 것을 가지고 웃기려 하다가는 정말로 잘난 척 한다는 핀잔을 받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남들은 그게 맞는지 틀리는지 모를테니까.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은 말하는 사람이 그 내용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일부러 틀린 말을 꺼내서 남들을 웃길 수 있게 때문이다. 제딴에는 웃긴답시고 일부러 오답을 말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정답이더라…… 그렇게 되면 사태가 좀 심각해진다. 어쩌면 정말로 이런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
쟤 바보 아냐?”
평소에 빵점만 맞던 학생에겐 백점이 요원한 꿈이겠지만 평소에 백점을 맞던 학생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빵점을 맞을 수 있다. 답을 다 알면 일부러 틀린 답만 골라서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칠십점이나 팔십점을 맞는 학생은 백점 맞기도 힘들고 빵점 맞기도 힘들다.
그 말은 바보 흉내에 능숙해지려면 실제로는 매우 현명하고 재치가 넘쳐야 한다는 뜻이다. 영리해야 어리숙한 척 할 수 있고, 이해가 빨라야 곡해도 가능하다. 또 융통성이 있어야 고지식한 척 할 수 있고, 제대로 알아야 모르는 척도 할 수 있다. 요컨대, 바보 흉내에 능한 유머리스트는 백점과 빵점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진짜 바보, 가짜 바보, 그리고 바보도 아니면서 바보 흉내도 못내는 사람. 그 중에서 당신은 어느 쪽인가? ◈
5. 세태를 통렬하게 풍자하라
풍자는 어떤 대상을 이리저리 빗대어 재치있게 비판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과장과 더불어 유머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기법 중의 하나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인간들의 세상이 그만큼 모순과 불합리로 채워져있음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풍자의 대상은 주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유명한 인물이 될 수도 있다. 또 특정 계층이 될 수도 있고 특정 집단이나 민족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경우건 인간세상에 존재하는 이런저런 독소들을 유쾌하게 꼬집어 냄으로써 심리적 정화를 꾀하는 것이 풍자의 목적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대상의 두드러진 특징을 유머러스하게 과장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풍자가 지나쳐서 자칫 노골적인 증오나 원한을 담게 되면 그것은 유머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약자(弱者)나 무고한 사람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피해야 할 금기에 속한다. 풍자는 웃음을 통해서 인간의 잘못을 지적하고 교정하는 수단일 뿐, 인간 그 자체를 조롱하거나 멸시하는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랄하되 유쾌한 풍자, 그리고 강자를 응징하되 약자는 감싸주는 풍자라야 비로소 건강한 유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소련인 하나가 크레믈린 앞을 뛰어다니며 외쳤다.
“흐루시초프는 바보다! 흐루시초프는 바보다!”
이 남자는 즉시 체포되어 23년의 금고형에 처해졌다.
판결문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서기장 모독죄 3년, 국가기밀 누설죄 20년’
위 예는 냉전시대에 서방 진영에서 크게 유행했던 우스개이다. 풍자에 대한 공감은 적절한 여과장치가 있을때 훨씬 증폭된다. 소련과 흐루시초프에 대한 적대감을 ‘바보’혹은 ‘국가기밀’ 등으로 익살스럽게 돌려서 표현한 것이 그에 해당한다. 그런 장치들은 소련을 바라보는 서방사람들의 공감대와 결합하여 곧바로 유쾌하고 개운한 웃음으로 바뀌게 된다.
풍자의 주된 대상은 언제나 힘있는 사람들, 혹은 군림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첫번째로 해당하는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이 될 수밖에 없다. 유사 이래 정치는 언제나 힘의 각축장인 동시에 위선의 근원이 아니었던가.
흔히 기자들은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살맛이 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풍자를 즐기는 유머리스트들은 정치가 혼란스러울수록 창조의 욕구가 솟구칠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얄궂은 풍경들이 그들에게 그야말로 무한대의 소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 정치에서 변절자라는게 뭐야?”
“변절자란 우리 당을 버리고 딴 당으로 가는 사람이야.”
“그럼 딴 당에서 우리 당으로 오는 사람도 변절자야?” “
그건 개전의 정이 있는 사람이야.” 정자와 정치인의 공통점은?
→ 둘다 인간이 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난자와 대권의 공통점은?
→ 한 번 잡아보겠다며 벌때같이 그 주변으로 몰려든다.
이것은 모두 PC 통신에 실명으로 등장한 우스개들이다. 첫번째는 그런대로 무난하게 우리의 정치풍토를 꼬집고 있지만, 두번째 퀴즈는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그 강도가 신랄하다.
앞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두번째 퀴즈는 좋은 풍자라기보다는 거의 극단적인 비난에 가깝다.
이런 식의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풍자가 별로 없는 사회일수록 깨끗하고 평화로운 사회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기에.
풍자는 웃음 속에 교훈을 담고 있을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여기 문명의 위선과 전쟁의 참상을 풍자한 외국의 유머를 하나 소개하려 한다.
한 식인종 지도자가 영국에 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호기심 반 혐오감 반으로 이것저것 따지듯이 캐묻기 시작했다.
“사람고기 맛이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두렵지 않습니까?”
“당신들의 야만적 식습관을 페지할 생각은 없습니까?”
일부 성직자와 지식인들은 노골적으로 비난을 퍼부어댔다.
“끔찍한 야만인을 영국에서 당장 추방하라!!”
그로부터 며칠 후,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수천 수만의 인명이 도처에서 살해되는 모습을 본 식인종 지도자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리고는 문명인들을 상대로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군요. 먹지도 않으면서 왜 이렇게 사람을 많이 죽입니까?” ◈
6. 단어를 이리저리 비틀어라
말의 음이나 뜻을 비틀어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흔히 쓰이는 방법이다. 언어연상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미 몇몇 사례들을 소개한 바 있지만 여기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그 발상법을 짚어보기로 한다.
맨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동음이의어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주로 한자어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대체 우리나라 정치가들은 왜 공약(公約)을 안 지키는거야?”
“당연하지, 어차피 공약(空約)인데.”
동음이의어는 한자 뿐 아니라 우리말에도 흔히 발견된다. 이를테면 ‘눈(眼)에 눈(雪)이 들어가니 눈(眼)물이냐 눈(雪)물이냐’같은 식이다. 한자와 한글을 섞어서 재미있는 표현을 만드는 경우도 많다.
‘착한자식(着韓子息), 호로자식(好露子息), 미친자식(美親子息)’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한자 실력이 어느정도 뒷받침이 되어야 가능하다.
어구분해에 의한 압축어 만들기도 좋은예가 될수 있다. 압축어는 크게 3가지로 나눌수 있는데 첫번째는 원래의 뜻과 전혀 상관이 없는 풀이를 하는 경우다. ‘유부남(유난히 부드러운 남자)’이나 ‘전과자(전직 과대표였던 자)’ 등이 그런 예가 될 것이다. 두번째는 원래의 뜻과 거의 비슷한 풀이를 붙이는 압축어들이다. 예를 들어, ‘남존여비(남자가 존재하는 한 여자는 비참하다)’, ‘말단사원(말 잘 듣는 단계의 사원)’등이 있다. 압축어 중에서 가장 재밌고 웃음의 효과가 큰 것은 원래의 뜻과 정반대의 풀이를 붙이는 경우다. 예를 들면 ‘걸작(걸레같은 작품)’, ‘지성인(지랄같은 성격의 인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비슷한 발음을 동원하는 것도 단어 비틀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법이다. 아파트가 늘어날 당시에 유행했던 ‘부자는 맨션에 살고 가난뱅이는 맨손으로 산다’는 말이 그런 예가 될 것이다. 이것은 뜻은 물론 철자나 띄어쓰기까지 깡그리 무시하고 오직 발음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기 때문에 애초의 뜻이 완전히 사라지고 엉뚱한 결과만 남게 된다. 이런 식으로 남들을 웃기는 대표적인 사례는 단연 덩달이 시리즈일 것이다.
시위를 하던 덩달이가 그만 안기부에 잡혀서 취조실로 끌려갔는데 조사관이 냅다 덩달이의 뒤통수를 후려쳤더란다. 덩달이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자 조사관이 눈을 부라리며 묻는다.
“왜, 기분 나쁘냐?”
“안기분 나빠요.”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단어 비틀기의 종류와 기법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중복어, 압축어, 변형어, 그리고 덩달이 류의 글짓기…… 이런 방법들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에 의존하기 때문에 순발력이나 언어감각이 그만큼 많이 요구된다. 물론 한 번 떠오른 아이디어는 상황에 맞게 여러 가지로 응용하거나 변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누차 강조하지만 ‘내가 웃기는 얘기 해줄께’라는 식으로 남에게 들은 얘기를 옮기는 것에 그쳐서는 유능한 유머리스트가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런 예들을 통해서 유머창조에 필요한 발상법을 익히는 일이다. 그래야만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무시로 ‘따끈따끈한’표현들을 창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7. 독특한 표정과 몸짓을 개발하라
희극영화의 대명사인 찰리 채플린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뒤뚱거리는 걸음과 코믹한 표정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가 관객들을 끊임없이 웃겼다 울렸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의 내용이 탁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독특한 표정과 몸짓 때문이기도 하다. 만일 그런 요소가 없었다면 <모던 타임즈>나 <독재자>같은 명작들도 우리에게 그만큼의 재미와 감동은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80년대 초반에 TV를 볼 정도의 나이였던 독자라면 당시에 혜성처럼 나타났던 코미디언 이주일을 기억할 것이다. <수지 큐> 음악에 맞춘 우스꽝스러운 오리 스텝, 그리고 감정상태를 자유자재로 드러내는 다양한 표정은 그의 ‘서민적인(혹은 향토적인?)’외모와 어우러져 온나라 시청자들의 폭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물론 유머의 핵심은 따뜻한 심성과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있는 것이지 표정이나 몸짓에 있는 것은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유머의 전달효과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그렇긴 해도 표정과 몸짓이 갖는 웃음의 효과는 결코 적다고만 할 수는 없다.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사용되기만 하면 때로는 말로만 이루어지는 위트나 유머보다 훨씬 큰 효과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런 요소들이 그 사람의 개성으로 굳어져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나중에는 상황이나 대화내용과 상관없이 표정이나 몸짓 자체만으로도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표정과 몸짓을 통한 웃음의 포인트는 개성에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기쁘면 웃고 아프면 얼굴을 찡그린다. 또 슬프면 우울한 표정을 짓고 졸리면 멍한 표정을 짓는다. 놀라면 눈을 크게 뜨고, 아니라고 할 때는 고개를 가로젓고, 작별을 할 때는 손을 흔든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른데도
우리가 뭉뚱그려서 ‘기쁜 표정’혹은 ‘졸려 보인다’는 식의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단은 그런 상식적인 표정이나 몸짓으로부터 멀찌감치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쁠때 울라거나 아닐때 고개를 끄덕이라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자기만의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기왕이면 그 자체를 우습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처음부터 웃음을 유도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그러다보면 필연적으로 보기에 민망한 오버액션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식의 오버액션으로는 코미디 프로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을 어지간해서는 웃기기 힘들다. 오히려 과장된 표정보다는 약간 썰렁한 표정이, 혹은 큰 동작보다는 작은 동작이 훨씬 더 사람들을 웃기기 쉬운 것이다.
표정이란 누구에게나 감정표현의 수단이다. 도박꾼이나 팩마사지중인 여성이 아닌 이상 사람의 얼굴엔 어떤 식으로건 그 순간의 감정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몸짓 역시 느낌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그것을 잘 활용하면 의사전달의 효과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직장이나 사회에서의 이미지 메이킹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사람의 얼굴엔 이목구비와 피부 외엔 아무것도 없다. 또 사람의 몸에도 팔다리와 몸통 외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들을 사용하여 만들어내는 표정과 몸짓의 수는 순열이나 조합같은 수학적 계산으로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머리로 창조하는 웃음이 무한하듯, 몸으로 개발할 수 있는 웃음 역시 무한하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표정과 몸짓을 가진 사람은 남들에 비해 훌륭한 웃음의 수단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심신을 두루 닦은 문무쌍겸의 유머리스트가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