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1.daumcdn.net/thumb/R72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liveboard%2Ffullrange%2F226d0f83436743d3ae51e9a564b942a7.jpg)
중학교에 다닐 무렵의 딸아이는 책을 넘기고 있다가도 가끔씩 옆에서 들리는 아빠의 대화에 지적을 하곤 했다. 특히 ‘다르다’를 ‘틀리다’로 잘못 쓰는 경우라면 여지없이 ‘틀렸어, 다르다라고 해야지~’라며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교정을 해주었다. 예를 들어 ‘그 친구 생각은 나랑 좀 틀려’라든가 ‘이번 음악은 지난 번 것과 좀 틀리네?’라는 말들은 얼핏 들으면 뭐가 틀렸는 지 의식할 수도 없는 흔한 완벽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 말들에서 ‘틀리다’는 모두 틀렸다. ‘다르다’가 맞는 말이다.
무심코 대화 중에 ‘틀리다’라고 말하는 메커니즘을 가만 살펴보면, 단순히 단어선택을 잘못했다기보다 정말로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에서 온 게 아닌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와 다른 남의 생각이나 행동은 이미 무의식속에서 ‘잘못된 것’이라는 틀을 만들어내서 다르다와 틀리다가 혼용되어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현상이 그걸 잘 증명해준다. 티비에서 흔히 보는 토론 문화가 그렇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난상토론이 종종 그러하며, 회사에서의 업무회의가 그렇다. 필자가 알고 있는 최악의 경우는 국회에서의 정쟁 상황이다. 개인간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길에서 삿대질을 하며 설전을 하는 고객과 상인들이 그렇고, 눈에 안보이면 죽고 못살 듯 싶던 연인들의 언쟁이 그렇다. 이들의 격전장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나와 다른 생각은 틀리다’이다. 이런 갈등들이 시간이 지나도 서로간의 양상만 달라져 있거나 좀더 심화되고 있어 보이기까지 하는 건 뭔가 필연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리라.
![](https://img1.daumcdn.net/thumb/R72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liveboard%2Ffullrange%2F4849c9e525d1497990212a8825a56f53.jpg)
오디오 커뮤니티들의 종류와 그 크기가 늘어가면서 개인간에 성향이 서로 달라서 생기는 문제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공통적으로 남을 자기와 다른 또 하나의 존재로 인정 못하는 마음이 이면에 흐르고 있다. 요컨대 취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며, 방식도 다른 상대방을 쉽게 동기화시키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그래서 나와 다른 그 사람은 틀렸다는 생각이 어느새 마음속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소신이 분명할 수록 그 정도는 좀더 깊어지곤 한다. 예전에 필자가 흥미차원에서 분류해 본 오디오 사용자층은 대략 서로 다른 7개 그룹 정도가 구분되었다. 마치 태평양에 가보고서야 세상에 서로 다른 푸른 색이 이렇게 많았던가? 깨닫게 되듯 오디오파일 주변에는 조금씩 다른 여러 부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각기 어떻게 다른 지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형적인 오디오파일. 오디오 자체를 좋아하는 애호가기질이 몸에 익은 분들이다. 이미 오랜 경험이 몸속을 흐르고 있어서 감각적으로 하드웨어와 음악적 품질에 반응한다. 반드시 고해상도 음원이 아니라 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다양한 음악을 즐긴다. 이미 까다로운 기준이 자리잡고 있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오디오 브랜드가 분류되어 있으며 고급기들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 성향차이가 조금씩 있기도 하지만 현장의 상황을 그대로 구현하는 하이엔드 성향의 오디오들이 주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미 경제적인 여유가 있기도 하고 열심히 돈을 벌어서 오디오와 음악에 투자하기도 한다.
실제 연주의 느낌 그대로를 구현하는 것 자체보다는 음의 미학적 측면이나 음색 자체의 매력을 추구한다. 물론 오디오로 음악듣기를 즐기며 잘 알려진 브랜드의 새로 나온 기기에 빈번한 관심을 보이는 건 그룹 A와 크게 다를 게 없다. 다만 스테이징, 이미징, 포커싱, 투명도와 같은 대표적인 하이엔드 지표에 고집하지 않고 버라이어티한 성향의 제품들에 관심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이 그룹내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기기가 있다면 사실적 묘사보다는 음색과 양감, 다이나믹스 등을 중시하는 70-80년대의 명기들이나 그 이후에 제작된 음색 중시형 오디오들이 주류가 될 것이다.
오디오로 음악을 즐기는 건 좋아하지만, 기기자체의 명성이나 정보수집에는 크게 열의를 보이지 않는 분들이다. 오디오는 그냥 오디오일 뿐, 하드웨어 자체에 크게 관심을 두거나 크게 투자를 할 의사가 없다. 간혹 이 그룹 중에는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 것보다는 오히려 공연장에 가기를 더 좋아하는 경우가 있다. 클래식 뿐만 아니라 뮤지컬이나 록 공연 등 다양한 콘서트에 가는 건 오디오와 별개의 음악 생활이다. 오디오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딱히 오디오적 성향에 대해 중요하지 않다. 결혼을 하면서 혹은 선물로 받아서 사용하는 시스템이나 일반적인 가전회사에서 나오는 원 브랜드 시스템을 교체없이 오랜 동안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스피커와 앰프가 분리되어 있는 적당한 크기의 오디오가 집안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https://img1.daumcdn.net/thumb/R72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liveboard%2Ffullrange%2F86fbf24ac5134cdb87960233b56c5ce7.jpg)
연령층이 다소 낮은 젊은 음악애호가 그룹이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전용공간이 확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좋은 오디오는 항상 로망의 상태로 있으며 현실은 주로 데스크탑이나 노트북, 모바일기기를 통해 헤드폰과 이어폰으로 음악을 주로 듣는다. 싱싱한 귀를 가진 음악애호가라서 음질에 대해 구분을 할 줄도 알고 어느 정도 장르에 대한 선호도가 정해져 있으며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컴퓨터나 전용 미디어 플레이어 정도를 갖추고 파일재생이나 스트리밍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즐긴다. 조금 열성인 경우는 데스크탑 사이즈의 스피커와 그에 맞는 앰프를 갖추고 최선의 품질로 음악을 듣기도 하며, 성능이 좋은 헤드폰이나 이어폰, 올인원 시스템을 갖추기도 한다.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기보다는 직접 연주를 하거나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을 더 좋아하는 그룹. 클래식 연주나 밴드활동을 하기도 하고 PA 기기나 공연장비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다. 이동을 하는 동안 연주나 녹음을 위한 음악 모니터나 연주를 위해 필요한 정도의 기기들로 음악을 듣는다. 활동파이다 보니 이동 중에, 혹은 다양한 장소에서 음악을 듣게 될 경우가 많다. 음악을 듣는 이유와 기기적 성향이 하이파이 그룹과 조금 다르기도 하고 아직 전문 등급의 소신을 크게 반영하지 않고 그룹 D의 경우와 유사하게 가격에 따라 선택한 이어폰과 콤팩트한 헤드폰 등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음악을 듣기는 하지만 수동적인 패턴을 보이는 그룹. 장르 측면에서도 일정한 규칙성을 갖는 음악보다는 음 자체를 즐기는 부류라서 자극적이거나 풍성한 음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고, 타악기나 전자악기의 패턴만으로 연속된 음악들을 즐기기도 하고, 음악이 아닌 라디오에서 나오는 DJ들의 흥겨운 대화, 혹은 티비의 트롯 열전 등의 흥미위주의 음악을 즐기는 부류이다. 음악 자체가 중요하지 않아서 음질에 대한 가치가 크지 않으며 티비나 간편한 라디오 정도만으로 본인이 듣고자 하는 소리를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다.
음악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거나 귀를 자극하지 않는 조용한 상태 자체를 좋아하는 분들. 오디오가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배경음악으로 잔잔하게 깔리는 음악 정도는 괜찮다. 원래 음악적 흥미를 유발할 만한 환경이 없었던 경우도 많지만 적극적으로 음악을 대면하는 일 자체가 체질에 맞지 않아서 음악이 들리고 않고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 대신 자연계의 소리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기도 해서 실제 음의 어쿠스틱에 대해 귀에 익숙해 있어서 음에 대한 기준이 높을 수도 있다.
물론, 상기와 같은 그룹들은 정답은 없는 주관적인 분류이다. 종종 이런 식의 그룹 분류는 오디오 주변 그룹을 보는 참고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어디에 속하는 지 정체성을 확인해보는 지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수도 있고, 두 개 이상의 그룹에 걸쳐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러 그룹의 성향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는 의욕이 많거나 성취도가 높은 경우라서 자칫 자신을 힘들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겠다. 또한 특정 그룹에 속한다고 해서 이런 성향이 평생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에 따라, 혹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기도 한다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다양한 성향과 음악생활 패턴들이 있는데, 자신과 음악과 오디오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하는 것은 이제 틀린 견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의식 자체가 그렇게 바뀌어야 비로소 자신도 좀더 폭넓은 견해를 가진 음악애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종종 동일한 기기를 두고 누구는 소리가 밝다고 하고 누구는 어둡다고 하며, 누구는 박진감이 넘친다고 하고 누구는 시마리가 없다고 하며, 누구는 예쁘게 생겼다고 하고 누구는 못생겼다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서로 다른 그룹을 의식하고 인정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테지만, 나와 상반된 소견을 가진 사람이 답답하고 미워 죽겠다.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누가 이건 반드시 밝은 소리가 맞다고 강하게 주장하기라도 하면 일대 설전이 벌어질 거라는 건 쉽게 예상될 것이다. 실제로는 이것보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난타전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한자리에 모여서 동일한 환경에서 음악을 들어도 서로 대화를 해보면 다소간의 견해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글로 써보면 좀더 큰 차이가 발견되기도 한다. 사실 귀로 들은 음악과 그 소리를 내는 기기를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그 시점에서의 감흥에 따른 즉흥적인 감상일 경우가 많다. 그건 지극히 정상적인 결과이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 대해 그렇다고 인정하고 있지 않다면 또 나와 다른 남이 틀려있다는 점이다. 참 어렵다.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시청한 경우가 이렇다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잠들기 전에, 잠에서 깨어, 기분이 너무 좋은 채로, 우울해서, 술에 취해서,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들었던 그 다양한 환경에서의 소리들을 과연 그 제품의 소리라고 서로 비교할 수 있을까? 그건 ‘그 상황에서의 소리와 감상’이라고 하는 게 맞지, 그 제품 고유의 소리에 대한 정리는 아닌 것이다. 종종 이 상황을 특정 제품의 소리라고 착각하고 공공연히 얘기를 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그 내용이 특정 제품에 대한 칭찬이든 비난이든 이건 언쟁을 부르는 단서가 된다.
헤드폰이나 이어폰 그룹이 비교적 의견차이가 크지 않은 이유는 장소나 주변기기에 따른 편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핸드폰에서 들었다거나 전문 DAP에서 들었다거나, 그리고 기분이 서로 다르거나 외부 소음 정도가 서로간의 차이가 나는 부분들일 것이다. 물론, 이들 간에도 음질과 음색에 대한 견해 차이는 불가피하겠지만, 하이파이 그룹에 비해서 헤드파이족들간에 논쟁이 비교적 적은 이유는 이런 유사한 시청환경의 조건 때문이다. 하이파이와 헤드파이 이 두 그룹의 필연적 차이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면 오디오에 대한 서로간의 견해차이는 좀더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을 테니까 말이다.
오디오력이 30년이 넘는다고 자부하는 분들이 주변에 몇 있다. 이들의 성향이나 오디오적 깊이는 조금씩 다르다. 정말 전문가라고 할 만한 지식과 자신이 좋아하는 사운드 스타일에 대한 선별력을 쌓은 분도 있지만, 여전히 30년 전과 크게 다를 게 없는 분도 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오디오에 돈도 여전히 많이 쓰고 있다. 종종 오디오 잘못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시쳇말은 후자의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신의 오디오적 음악적 성향에 대한 고찰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새로 나온 정평난 브랜드와 제품에는 레이더를 돌리는 일이 빠르다. 그래서 오디오 시장에 대한 정보는 누구보다도 밝다. 이건 장사를 하기에 좋은 방식일지언정 자신의 음악 생활을 위한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다. 스스로도 만족해하지 않고 내적갈등이 심할 가능성도 높다.
취미로서의 오디오 생활이라는 건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 그 소리를 가장 잘 내는 제품을 하나씩 찾아가는 활동일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즐거워야 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이 좋아하는 제품을 애써 비난할 필요나 시간도, 나와 상관없는 제품을 찾아서 듣느라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도 굳이 필요없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선택의 상황이 있고 오디오와 음악의 조합 또한 그 어느 부문 못지 않는 광대무변의 세계가 있다. 결국 남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하는 오디오의 세계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감성이 동반되었을 때 좀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나와 다른 남은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것이라는 것을 항상 떠올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