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디자이너 Frederique Huygen은 1989년에 발간한 그녀의 책 Image and Identity에서
영국의 디자인을 ‘버버리 레인 코트’, ‘꽃 무늬의 인테리어 직물’, ‘재규어’(Jaguars),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쓰는 Shetland 스웨터’, 던힐(Dunhill) 라이터’, Wedgwood사의 도자기’ 등을 꼽고 있으
며, 이들은 ‘전통’, ‘체면 또는 고결’, ‘품질’ 등을 그 특징으로 한다고 묘사한다.
이보다 40년 정도 앞서 John Gloag는 The English Tradition in Design에서 20세기 영국의 디
자인은 잘못된 전통을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진정한 영국의 전통이 가짜와 모조품에 의해 사
라지고 있으며, 거짓 ‘전통 영국’(Olde England)에 의해 더럽혀 졌다고 생각한다. 소위 ‘진정한 전
통 영국’(ye olde England’)은 단지 속빈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거짓 전통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Huygen이 열거한 ‘전통 영국’을 특징짓는 진부한 물건은 사회학적
으로 영국의 디자인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양차 대전 사이에 이러한 전
통 영국으로 장식된 주택이나 가구 등은 수백만 달러에 팔렸으며, 영국 스스로도 국내 뿐만 아니라 국
외에서도 영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가치, 역사, 유산 등으로 여겼다. 1485년부터 1603년까지 영국
을 통치하였던 튜더(Tudor)왕조는 건축물에 나무 골조 스타일(흰 벽에 검은 나무로 틀을 두르는 형
태) 벽을 만이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19세기 후반에는 전원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스타일로서 사용
되었다. 디자이너들, 비평가들은 영국의 본질을 산업혁명이 가져다 준 도시적인 삶은 비 영국적이라
생각하고 보다 시골스러운, 전원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산업혁명 이전의 유산이
각종 국제 전시회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산업 혁명의 리더로서의 영국
이 19세기 후반부터는 다른 나라들에서의 산업 발전에 의해 그 자리를 위협받게 됨에 따라 영국의 제
국적인 힘을 산업 혁명 이전의 ‘전통’에서 찾으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회고주의적 측면은 20세기 초반에 고대 경기장을 재건하는 것에서, 1924년부터 25년까지
Wembley에서 개최된 대영 제국 전시회(British Empire Exhibition)에서도 나타난다. 이 전시회
는 영국 북쪽에 874,152m2 규모에 4백5십만 파운드를 투자하였고 첫 시즌에는 1천 7백 5십만의
방문자가 있고 반면에 1925년 파리에서 개최된 아르데코 전시회에서는 대영 제국 전시회에 비교하
여 3분의 1 정도의 방문자와 4분의 1 크기의 규모와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디자인 역사에 있어서는
후자가 훨씬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영 제국 전시회는 영국의 역사적이며 제국주의적 전
통을 불러 일으키는 힘과 권위의 전형적인 상징을 사용하였으며, 이는 1920년대의 세계 공황이라는
당시의 상황에서 맞추어 다른 나라에게는 ‘대영 제국과 무역하는 것’은 자국의 경제적인 번영을 보장
하는 것으로 보여졌고, 이는 실제로 영국의 재무부인 Marketing Board(1926-33)는 영국의 국제
무역을 촉직시키는 수단으로서 영국의 각 도시에 전시회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포스터를 지속적
으로 전시하도록 하였다.
또한 대영 제국 전시회에서는 왕실 디자인을 사용하여 영국의 소비자의 보수적이며 회고적인 측면을
고무시켰으며 모든 현대 작식 양식은 바로 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보다 구
체적으로 과거 영국의 양식이나 전통을 궁중 아트 분야에서는 1750년, 1820년대, 1852년, 1888
년, 1924년으로 나누어 전시하였으며, 각각 가구와 인테리어 디자인을 포함하고 있다.
영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디자인의 다른 측면은 여가와 오락과 관련된다. 1930년에 Monza 전시
회에서 영국관에서 이러한 특징을 분명히 볼 수 있는데, ‘영국인은 현대 스포츠를 발명하였으며, 그
디자인과 그 기능에 있어 최고로 자리잡았고, 가령, 골프 클럽, 테니스 라켓, 복싱 글러브 등의 가장
정교한 장인 정신에 의해 디자인 된다’고 주장하였다. 다음 해에서 Copenhagen에서 개최된 영국
산업 예술 전시회에서도 스포츠 관련 제품의 전시가 두드러지게 전시되었다.
1937년 보다 규모가 큰 파리 국제 전시회(Paris International Exhibition)에서 영국은 영국의 주
말이라는 테마에 중점을 두어 전시회에서 참여 하였으며, 수백명의 비평가를 동원하여 영국의 본질
적인 정체성이 ‘전원 생활’이라는 것을 강조하게 하였다. 또한 사진, 회화, 포스터, 시 등을 이용하
여 ‘전원주의’의 모습을 사냥하는 모습, 산책하는 모습, 오락을 즐기는 모습(크래킷경기, 승마 등), 교
회와 풍경에 둘러쌓인 주택 등을 전시 하였다. 스포츠중 크래킷, 골프, 테니스, 축구, 다트 등은 영국
의 정신과 유산의 구현으로 여겨졌으며, 제국주의 정책의 일환으로서 스포츠의 ‘페어 플래이’(Fair
play) 정신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영국의 디자인 정체성은 다른 나라들에 대하여 특히 독일과 소비에
트의 과격하고 선전적인 전체주의와는 다르다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에도 그 목적으로 갖고 있었
다.
이러한 영국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한 전통주의와 전원주의 디자인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
서도 국가 차원에서 지속되었는데, 이때에는 산업 디자인 협회의 ‘좋은 디자인’이라는 디자인 윤리
와 과거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 유산’이라는 개념이 추가된다. 가령, 1958년 Brussels에서 개최된
국제 전시회의 영국관의 기념판에는 ‘영국에서는 장미가 찻잔과 벽지에서 자란다’ (in Britian
roses grow on tea cups and wallpapers)라고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다. 이러한 영국성과 전원
주의의 긴밀한 관계성은 많은 디자인 분야에 있어 적용되고 지지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