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명회에서 계획한 일본 도토리현 방문은 사실 내 직장인 학교가 시기적으로 무척 바쁘기도 하지만 올해 내가 회장인 까닭에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참가를 하지만 행선지가 도토리현에서 한신지방으로 바뀐다. 阪神....이른바 오사카, 고베 주변을 말한다. 阪神이라면 자세히는 모르지만 오사카(大阪)+고베(神戶)=阪神 아닌가? 나로서는 오사카에 여러번 가 봤기에 도토리현에 가고 싶었지만 이번 여행은 어떤 의미에서 아내들을 챙기는 여행이라는 성격이 짙어, 배로 오고 가고 배에서 2박해야 하는 도토리현 여행은 여자들에게 많이 불편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행선지를 바꾸게 된 것이다. 어쨌든 여느 때와 다르게 고교 친구들과 같이 떠나는 여행이라 남다른 감흥이 생기는 여행이다.
우리는 부산 김해공항에서 일본으로 떠난다. 저가 비행기인 에어부산을 타지만 아시아나항공이란다. 항공사들의 시장 점유 방법도 가지가지다. 위의 친구는 이번 여행을 기획한 이희열 친구 부부이다.
우리는 1시간 10분만에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한다.
1960년대 일본 긴키지방은 교역에서 교토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어서, 고베와 오사카에 가까운 새 공항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오사카 공항은 이타미와 도요나카의 인구가 밀집한 근교에 있었고, 많은 건물들에 둘러싸여 확장할 수 없었다. 또 주변 주민들의 소음에 대한 민원이 있었다.
신도쿄 국제공항(지금의 나리타 공항)을 둘러싼 반대를 옆에서 본 후 해안가에 새 공항을 만들 것을 계획했다. 처음에는 고베 근처에 만들려고 했는데 고베시가 거절했다. 그래서 오사카만으로 이동되었고 24시간 운행될 수 있었다. 지역 어민들이 유일한 반대자였는데 후한 보상책으로 잠잠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항이 간사이 국제공항이다.
길이 4km, 폭 1km의 인공섬이 제안되었는데, 공학자들은 지진과 태풍의 극도로 높은 위험을 이겨내는 섬을 만들어야 했다. 건설은 1987년에 시작되었다. 바다벽은 1989년에 완공되었는데 바위와 4만8천개의 8각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3개의 산을 파내어 2천1백만 톤을 그곳에 메웠다. 1만명의 노동자가 1천만 노동시간을 3년에 걸쳐 일했으며 80여척의 배가 사용되었다. 30미터의 토양이 바다 밑바닥 위 바다 벽안에 채워 넣어졌다. 1990년에 3킬로미터 길이의 다리가 완성되어 이 인공섬과 육지의 린쿠 타운을 이어주었다. 바다벽 건설에 10억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이 인공섬은 사용된 자재의 무게로 인해 점차 가라앉아 아랫 쪽을 압축시킬 것이라 예견되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보면 이 인공섬은 8미터 가라앉았는데 이는 예상보다 더 가라앉은 것이다. 이 공항의 건설계획은 현대사에서 가장 비싼 토목공사로서 수십 억 달러를 투자하였다.
1991년 터미널 건설이 착공되었다. 섬이 가라앉는 것을 보상하기 위해 터미널을 지탱하는 기둥은 조정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기둥 맨 밑에 두꺼운 금속판을 깔음으로써 조정하는 것이다. 방바닥이 가라앉으면 책상다리 아래에 종이를 괴는 것과 꼭 같은 원리이다. 섬은 불균등하게 침하하고 더 가라앉은 부위의 기둥 밑에 금속판을 더 놓으면 터미널은 수평을 유지하게 된다. 1994년 공항이 개항되었다.
그런 중 1995년 유명한 한신.아와지 대지진이 발생하였다. 진원지는 공항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혼슈로 6,443명의 사망자가 생겼다. 그러나 공항은 손상된 곳이 없었다. 슬라이딩 조인트를 사용한 덕분이었다. 유리창조차 그대로였다. 1998년에 풍속 시속 200km의 태풍에도 견뎠다.
2001년에 세계 10대 구조물에 뽑혀 미국토목공학자회가 주는 ‘토목공학 세기의 기념비’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활주로는 약 5m 정도 떠 있다.
간사이 공항에서 바로 버스로 달려 숙소인 린카이파크 호텔로 왔다. 저가 여행이기에 항공이나 호텔이 모두 수수한 곳이다. 하지만 관계 없다. 우리는 그런 데 신경을 별로 쓰지 않는다.
방도 초라하다. 한국의 모텔 반도 안된다. 하지만 원래 일본의 모든 시설들이 좁다. 동남아 생각하면 오산이다.
저녁밥부터 먹자. 호텔식이다. 크게 화려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훌륭하다.
한식, 일식이 뒤섞인 퓨전이다. 이 호텔에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오는 모양이다.
모두들 여장을 풀고 쉬고 있지만 내가 가만히 있을 놈이냐? 아니 외국에 나와서 밤에 가만 있는 바보들이 어디 있는가? 가장 바보놈들은 돈 쓸까봐 겁나고, 치안이 겁나고, 가이드가 나가지 말라고 해서 가만히 호텔에서 머물면서 가져온 소주 마시고 고스톱 치는 친구들이다. 병신들! 내가 너무 많이 봤기에 하는 소리다.
의견이 분분한 친구들을 데리고 거의 반 강제로 다운타운으로 나온다. 호텔에서 20분 걸으면 오사카의 다운타운이다. 몸이 불편한 몇몇을 택시로 태워 신사이바시 크로스호텔 정문으로 보내고 우리는 걸어서 간다. 가다가 다운타운 골목으로 들어가 밤의 신사이바시를 구경한다. 이른바 서울의 명동거리이다.
오사카부(大阪府)는 혼슈 섬 중앙보다 약간 서쪽에 위치한다. 긴키 지방에서 제일 넓은 오사카 평야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나라 현[奈良縣], 북동쪽으로는 교토부[京都府], 북서쪽으로는 효고현[兵庫縣], 남쪽으로는 와카야마현[和歌山縣]에 인접하고, 서쪽으로는 오사카 만을 바라보면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를 통해 주고쿠, 시고쿠, 규슈와 연결되어 있다. 오사카는 인구가 도쿄 다음으로 많은 일본 제2의 도시인 것이다.
신사이바시(心齊橋)......다. 심제 다리이다. 오사카 최고의 번화가로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에 있는 다리이다.
신사이바시는 지하철 미도스지센의 신사이바시역 주변 지역으로 신사이바시 스시(생선초밥)상가와 젊은이들의 거리로 유명하다. 에바스바시 다리에서 소니 타워빌딩이 우뚝 서 있는 나 가호리도 오리(長堀通)까지 이어지는 아케이트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 직수입의 옷과 잡화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발달해온 아메리카 무라와 부티크와 오래된 레스토랑, 패션빌딩 등으로 유럽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유럽무라등의 거리가 있다. 젊음의 열기와 색색 가지의 화려함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일본젊은이들의 유행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자그마한 카폐을 비롯해서 다양한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과 비슷하지만 거대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어지는 아케이트사이로 작고 세련된 상점들과 오락시설들이 많이 갖춰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특이하고 예쁜 액세서리나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향이나 옷가지들 구제품들도 여기에서 살 수 있으며, 천하의 부엌이라고 불리는 오사카의 명물인 라면이나 우동, 튀김, 다코야키 등의 많은 먹을거리들을 만날 수 있다. 에도시대에 유곽과 요정들이 있던 자리가 지금에 와서는 유행과 패션의 거리로 오사카를 상징하는 거대한 거리로 변모해왔다. 오사카를 상징하는 사진으로 많이 등장했던 큰 게가 간판에 걸려 있던 거리, 광대 옷을 입고 큰 북을 등에 업고 북을 치는 인형이 서 있는 거리, 현란한 네온사인과 더불어 활기가 넘치는 거리이다. 온갖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으며, 극장과 패스트푸드점과 작은 선술집들이 지나가는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반나절이나 하루 코스로 신사인바 시와 연결되는 거리는 여유롭게 돌아다 볼 수 있으며, 일본의 유행처럼 번져 있는 길이가 10cm 되는 신발을 신은 여성들과 일광욕을 해서 까맣게 태운 여고생들, 잡지에서만 보아왔던 일본의 젊은이들은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곳도 여기 신사이바시이다. 오사카에 간다면 꼭 들러봐야 하는 곳이다. 내일 관광 코스에도 들어 있겠지만 할 일 없는 이 밤에 무엇을 할 것인가? 신사이바시에서 놀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신사이바시와 붙어 있는 도톤보리다. 도톤보리는 오사카를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볼 만한 거리이다. 일본의 음식점과 술집과 오락실과 극장 등의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서 있는 거리고, 또한 저렴한 술집과 포장마차식 노점상들이 즐비해 있다. 당연히 도톤보리에서 한잔 빨아야지.
도톤보리에서 주점을 찾는다. 미니츄어를 주장하는 일본에서 18명이나 되는 대군이 들어갈 장소를 찾기란 쉽지 않다. 억지로 찾은 곳이.............
이곳..........사케집이다.
요런 사시미를 시키고.......
'사시미'란 신선한 생선이나 조개류를 날로 먹기 위해 만든 것을 말한다. 생선은 신선도가 높아야 하며, 생선의 특성에 따라 종이처럼 얇게 썰거나 1㎝ 두께로 네모 지게 또는 갸름한 조각으로 썬다. 소화를 돕고 생선 냄새를 제거하며 아름답게 담기 위해 무우,오이를 채 치고 와사비, 간장을 곁들인다. 사시미는 일본 정식에 항상 나오는 메뉴로서, 미묘한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아직 미각이 예민한 식사 초반에 내놓는다. 가장 즐겨 사용하는 생선은 해수어로 참치, 방어, 고등어, 도미, 가자미 등이 이용되며, 농어, 뱀장어, 잉어 같은 담수어나 새우, 대합조개, 바다가재, 전복 등도 날 것으로 먹을 수 있다. 사케[酒]는 사시미에 곁들여지는 전통적인 알코올 음료로 우리나라 정종과 비슷하다.
먹자! 일본에 왔으니 일본식으로 먹자! 한국에서는 아무 것도 가져오지 못하게 했다.
한잔 마시고는 끼리끼리 흩어져 신사이바시로 나온다.
이희열 부부. 친구는 경주시청에 근무하고 아내 유경숙씨는 음식점을 경영한다.
찾다가 들런 SJJ 빠다. 과일이 좋겠다고 해서 선택한 주점이다. 옆에 김동식이가 지글지글 굽는 데 안 간다고 지랄지랄이다.
덴마크 맥주 칼스버그와 감자튀김, 야채샐러드, 피크루스(피클), 그리고 베트남식 생선야채모듬 등을 먹는다.
빠 주인 세이지 야마자키는 영어가 통한다. 영어가 통하니 매우 편할 수 밖에..........술 취해서는 몰랐는데 사진에서 보니 멋쟁이다. 그는 한국에 온 적이 없다고 했는데 내가 기꺼이 초청했다. 그는 너무 좋아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취기가 조금 남아 있는데 오사카의 아침 거리는 눈부시다.
음식이 잘 안들어간다. 술 때문이겠지.
우리는 바로 교토로 와서 청수사를 방문한다. 일본의 명승지들 처럼 절 입구에는 늘어선 상가들이 있다. 김성찬, 유경숙, 김단미다. 아, 참! 친구 김성찬은 서울 성동고 출신이다. 서울의 내 친구들인 전종성, 김형철한테는 한 해 후배이다. 그 옛날 경주중 나와서 서울 명문고로 유학했으니 부르조아 출신이다.
기요미즈데라(청수사)는 교토 히가시야마의 중앙, 오토와산을 배경으로 한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툇마루에서 교토의 절반을 내려다보고 있다. 특히 맑은 날에는 멀리 오사카까지 보이며 넓이 약 13만평에 이르는 절터는 봄에는 사쿠라, 가을에는 단풍 등으로 사계절의 경관이 훌륭하여 관세음보타낙의 극락정토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청수사는 나라 후기인 778년, 한 현인이 꿈속에서 '맑은 샘(淸泉)을 찾아가라'는 계시를 받고 오토와의 폭포 근처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 수행중이선 한 선인을 만나 관세음보살의 영험함을 담은 영목(靈木)을 받았는데 이것으로 천수관음상을 조각하여 선인의 옛 암자에 바친 것이 이 절의 기원이다. 교토에서는 제1의 관광지이다.
근방에 있는 오토와의 폭포는 수천만년동안 오토와의 산중에서 용출하는 샘으로 금색수(金色水) 혹은 연명수(延命水)라고도 불리며 일본 십대명수의 필두로 손꼽힌다. 여기에서 '키요미즈테라'라는 이름이 유래했는데 이 물을 마시려는 순례객들로 오토와의 폭포는 늘 붐비곤 한다.
사찰은 여러 번의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633년 재건된 것이다. 국보인 본당, 중요문화재인 15개의 건물을 중심으로 웅대한 가람을 뽐내고 있다. 본존인 십일면천수천안관세음보살은 영험있는 관세음으로서 유명하며 전국 관음영소 33곳 중 제16번째 예소로서 전국 굴지의 명찰이다. 기요미즈데라에 이르는 산넨자카(三年坂), 니넨자카(二年坂) 등의 길에는 전통적이고 세련된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눈이 즐겁고 또한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곳은 교토의 풍정을 물씬 느끼며 산책을 즐기기에 최고의 장소이다.
청수사 경치
인연을 점지워주는 돌이라나? 웃기지만 재미로...........인연을 누가 돌이 맺어 준다냐? 우린 벌써 인연이 맺어 졌는데....했더니 맺어진 인연들은 이것 안하면 이혼하게 된다나!
친구 박광춘이 모처럼 외국으로 나왔다. 어릴 때부터 다리가 아팠는데 휠체어는 우리가 미리 준비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한게 없다. 박광춘도 예전과 꼭 같다. 머리카락만 좀 하얗게 변했다. 나도 그렇겠지?
도자기 매니아 단미가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참새가 방아간을 지나치랴?
일본식 정원
점심은 우동으로.......低價로 먹지만 요기는 충분히 된다.
일본 우동
대나무 숲의 사무라이와 000 (들었는데 잊어 버렸다.)
우리나라 담양도 이렇던가?
오후에는 교토에서 다시 오사카로 나왔다.
심제교............즉 신사이바시다. 우리는 어젯밤에 미리 예습하러 나왔었지?
신사이바시의 상가거리
저녁식사는 마음대로 고기 구워먹는 집에 갔다. 이런 저런 고기들을 마음껏 가져와 구워 먹는다.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가 피어 오른다. 어젯 밤에 지글지글 타령하던 김동식이는 이제야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곱창도 맛있다. 발랐는 소스가 좋다.
다시 호텔에 가서 잠시 쉬다가, 밤 10시가 되어 3집 부부가 도톤보리로 나온다. 예까지 와서 그냥 잘 수는 없잖아!
우리가 일본에서 먹을 것은 역시 사시미다. 일본은 선어 (죽은 고기지만 잘 관리가 되어 신선한.....) 를 먹는다. 특히 등푸른 생선이 많은 것에 놀란다.
이희열, 나, 박광춘이다. 맥주는 일본산인 산토리의 프레미엄맥주이다.
밤이 깊어가자 얘기도 무르익고.........
일본의 밤..............
주점을 나서면서 주점의 여주인과 기념 촬영
취한 친구들을 호텔로 보내고.................
우리는 3차...............
어제 그 세이지 미야자키의 가게에 왔다. 아는 집이 아무래도 만만하다. 미야자키는 특별히 좋은 자리로 안내한다. 강이 내려다 보이는 테라스에..............
어제 먹어본 베트남씩 생선야채모듬이다. 맛있다기 보다 특이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호텔을 출발하기 전, 오사카 시립 유치원 담벼락에 선다. 벽화는 단미의 전공 아니던가? 얼마전 양남 벽화 그리기 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해 오기도 했다.
오사카성이다. 오사카의 역사와 문화, 관광의 상징이며 시민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한 오사카성은 1931년에 재건되어 1997년 봄 새롭게 정비하여 인기를 끌고 있다. 계절을 대표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로 둘러싸인 공원과 함께 외국인 관광객을 물론이고 많은 시민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5층 8단의 덴슈카쿠(천수각)에는 야츠지모모야마(安土桃山)시대에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목상을 비롯한, 무구, 의상, 병풍 등 귀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이 성은 철근 건물로 높이는 46m이며, 5단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고 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명 풍신수길이 3년의 공사를 걸쳐서 완성한 오사카성은 그 당시의 그의 권력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성의 정문을 들어서면 성인의 키를 넘는 거대한 바위로 성의 벽을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오사카 성의 모습을 찍기 전에 이 바위 앞에서 한 컷 찍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오사카성의 덴슈가쿠는 일본의 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위로 올라가는 동안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애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역사교육으로서도 중요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우체국장인 설규철 부부. 우리 친구들의 자제들은 거의 경주고를 졸업했는데 설국장의 아들도 경주고, 포항공대를 나와 지금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
오사카 성의 단미, 그 뒤에 박광춘과 김성찬이 보인다.
공원에 앉아서..............내 옆에 있는 이가 가이드 김경순씨이다.
맨 최상층인 8층에 올라가면 오사카공원이 한눈에 보이며, 먼 곳을 전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외부와는 다른 현대식 시설들이 조금은 어울리지 않지만, 여기서 또한 일본사람들의 상업적이면서 관광자원을 여러모로 최대한 활용하는 노림수를 엿볼 수가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 성을 쌓는 데에 보통 공을 들인 것이 아닌 것 같다. 돌 하나가 사람 키보다 더 크다. 저런 돌들을 어디에서 가져와 깎았을까?
성을 벗어나면서............뒤에 김동식 부부가 보인다.
오사카 성 해자다. 성 중앙으로 들어가자면 저런 해자가 두겹이나 쌓여 있다. 그러니 난공불락이다. 저기 비하면 한국의 성들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해자(垓子)란 적과 동물의 침입을 방어하기위해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성의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를 말한다. 일본에서는 해자를 호리라고 부른다. 해자에는 물이 있는 것도 있고 물이 없는 것도 있는데 이들 물이 없는 빈 해자의 효과는 해자 안을 타고 넘어야 되기 때문에 적 병사의 체력을 소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통상 해자는 평지에 있는 성(평성)에 많이 있는 물이 채워진 해자이다. 평성에 있는 성의 외측에 있는 해자를 소토보리(外堀)로 부르며, 성 내측에 있는 해자를 우치보리(内堀)라고 부른다. 오사카성은 해자가 두겹으로 되어 있는데 위의 해자는 맨 바깥의 해자이다. 저 성 안에 들어가면 해자가 또 하나 나온다.
이제 우리는 오사카에서 고베로 넘어왔다. 이웃한 오사카와 교토와 함께 고베는 일본 제2의 공업지역인 게이한신 공업지대의 중심지이다. 고베는 오사카 만에 자리잡고 있으며 오사카에서 서쪽으로 32㎞쯤 떨어져 있다. 이 지역은 북쪽의 롯코 산맥[六甲山脈]과 남쪽의 바다 사이에 가로놓인 좁다란 사주(砂洲)로 둘러싸여 있다. 기후는 온화한 편으로 겨울에는 서늘하며 여름에는 고온다습하다. 연평균 강우량은 1,360㎜이며, 9월에는 태풍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고베대학, 효고교육대학 등의 명문들이 있다. 롯코 산맥의
세토나이카이 국립공원은 골프장, 수영장, 아리마[有馬] 온천 등의 위락시설이 있으며 자동차나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갈 수 있다. 1995년 1월 효고 현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적어도 5,000명 이상의 사망·실종자를 냈다. 그것이 유명한 고베대지진이다.
이제 마지막 식사는 한식으로 한다. 무군파.......라? 어쨋든 서울식 식당이란다.
맛있는 한식이다. 허치가 좀 졌으니 한번 넣어보자.
비빔밥도 있다.
그리고 모자이크 상가지구로 나가 구경한다.
옛날 차도 보이고..........
고베항을 배경으로 선 유경숙씨
고베항에 있는 고베탑
Old ship
뭘까?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무너진 고베항 항만 시설들. 지금도 예전 모습을 조금 남겨 놓았다.
한신-아와지 대지진 또는 고베 대지진은 1995.1.17일 화요일 오전 5시 46분 52초, 효고현의 아와지섬 북쪽을 진원으로 발생한 진도 7.2의 도심 직하형 지진이다. 이 지진은 일본의 안전 불감증이 겉으로 드러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에 미진이 있었으나 대지진이 올거라는 예측을 할 수 없었다. 지진의 피해가 컸던 이유로는 지진의 진원지가 지표면으로부터 겨우 15 킬로미터 아래에서 발생하여 지진 가속도가 생성이 되면서 격렬한 지각운동을 만들었다. 그리고, 도시 교외에는 많은 일본의 전통가옥이 있었으며 일본의 전통가옥이 무너지고 화재가 발생하면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일본의 전통가옥은 지붕이 무거운 기와로 되어있는 반면 가느다란 기둥과 벽은 석고나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어서 지진에는 약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일본의 주택 구조는 일본에 자주 있는 태풍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설계되어 있었으나 지진에는 취약한 단점이 있었다. 지진이 발생했을때의 펜케이크 현상으로 일본의 전통가옥은 쉽게 무너졌다. 고베의 사망자 90%, 오사카의 사망자 40%는 이러한 일본의 전통 가옥에서 살았기에 피해가 컸다. 한신 고속도로의 상판이 무너지고 500m 이상이 쓰러졌다. 한신 고속도로의 기둥은 3중 철골로 보강이 되어 있었으나 가장 안쪽의 보강 철골이 짧아 지주의 약한 지점인 안쪽 철골이 끝나는 곳이 끊어지고 쓰러졌다. 그리고 고베의 생명줄인 항만이 파괴되어 복구만 2년이 걸리고 400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
고베 시와 "한신지역"(阪神地域)이라고 불리는 니시노미야 시(西宮市), 아시야 시(芦屋市), 다카라즈카 시(宝塚市) 등 효고 현 남동부의 인구 밀집 지역과 아와지 섬의 일부에서 최대 진도 7도을 기록했고, 오사카에서 진도 6.4를 기록하였다. 인구 약 150만 명의 고베 시에서 피해가 특히 컸다. 일본에서는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최대의 인명 피해를 기록했다. 6,434명이 사망, 3명 실종, 43,792명이 부상당했으며, 주택 전파 104,906채 등 재산피해도 10조엔(당시 일본 GDP의 2.5%에 해당)에 달했다. 한신 고속도로 일부와 산요 신칸센, 특히 신오사카 역~히메지 역 구간이 무너져 엄청난 교통 대란이 있었다. 이처럼 많은 교통 수단이 무너지면서 교통이 마비되었다. 그리고 오사카, 요코하마, 도쿄에서도 진동이 관측되었고, 오사카에서는 놀란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고,지진에 취약한 여러 일본식 집들이 붕괴되었으며 마이니치 방송 사옥이 심하게 흔들리는 등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 지진으로 인한 한국 교포의 인명 피해도 5백여 명에 달했다.
드디어 버스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뜨거운 날에 고베항을 완전히 일주해서 돌아나왔다.
간사이 공항에서 한국으로 떠나기 전 기념 촬영한다. 18명 전원이 처음으로 한군데 모였다. 처음 출발할 때 서먹서먹했던 관계가 이제 서로간에 제법 친근감이 감 돈다.
간사이 국제공항
이제 떠나자.
비행기 탑승하러 트램을 타고 이동한다. Adieu! Osaka!
첫댓글 잘 보고 가네!!
부러워~~~
내도 ,잘 보고 가네...
즐감!!! ㄳ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