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장. 重爲輕根(중위경근)
남회근 : 한쪽 어깨로 고금의 시름을 다 메다
장치청 :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본이 된다
주춘재 :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본이 된다.
톨스토이 :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바닥에 놓인다
오강남 :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 – 무거움의 힘
도올 김용옥 : 대가리가 올바라야 백성이 올바르지
여운 : 백성이 천박한 왕을 다스린다
26. 重爲輕根, 靜爲躁君。是以聖人終日行, 不離輜重。雖有榮觀, 燕處超然。奈何萬乘之主而以身輕天下。輕則失根,躁則失君。
무거움은(重) 천박함을(輕) 다스리는(爲) 근본이요(根), 고요함은(靜) 조급함을(躁) 다스리는(爲) 군주이다(君). 이런 까닭에(是以) 성인은(聖人) 온종일(終日) 행하여도(行) 치중을(輜重) 멀리하지 않는다(不離). 비록(雖) 군주이기에 호화로운 궁궐에(榮觀) 머무르나(有), 주색에 빠져 해이해지지 않도록(燕處) 그러한 유혹을 멀리해야(超然) 한다. 어찌하여(奈) 만승을(萬乘) 통제하는 군주가 됐음에도(之主而), 어찌(何) 자신을(以身) 천하에(天下) 천박하게 처신할 수 있는가(輕)? 천박하면(輕) 곧(則) 그 뿌리를 잃게 될 것이고(失根), 조급하면(躁) 곧(則) 임금의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失君).
Gravity is the root of lightness; stillness, the ruler of movement.
Therefore a wise prince, marching the whole day, does not go far from his baggage waggons.
Although he may have brilliant prospects to look at, he quietly remains (in his proper place), indifferent to them.
How should the lord of a myriad chariots carry himself lightly before the kingdom?
If he do act lightly, he has lost his root (of gravity);
if he proceed to active movement, he will lose his throne.
重爲輕根(중위경근), 靜爲躁君(정위조군)。
남 :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본이고 고요함은 시끄러움의 군주이다.
장 :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본이 되고, 고요함은 움직임의 주인이 된다.
주 :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본이고, 고요함은 성급함의 주재자이다.
톨 :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바닥에 놓인다. 침묵은 움직임을 지배한다.
오 :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입니다. 조용한 것은 조급한 것의 주인입니다.
김 :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가 되고, 안정된 것은 조급한 것의 머리가 된다.
여운 : 무거움은(重) 천박함을(輕) 다스리는(爲) 근본이요(根), 고요함은(靜) 조급함을(躁) 다스리는(爲) 군주이다(君).
重(무거울 중) - 무겁다, 소중하다, 귀중하다, 자주하다, 소중히 하다, 삼가다, 보태다, 많다.
爲(할 위) - 하다, 위하다, 다스리다, 길들이다, 되다, 생각하다, 배우다, 가장하다, 속하다.
輕(가벼울 경) - 가볍다, 가벼이 여기다, 업신여기다, 천하다, 빠르다, 가벼이.
根(뿌리 근) - 뿌리, 근본, 밑동, 능력, 마음, 생식기, 근, 뿌리박다, 근거하다, 뽑아 없애다.
靜(고요할 정) - 고요하다, 깨끗하게 하다, 쉬다, 조용하게 하다.
躁(조급할 조) - 조급하다, 떠들다, 성급하다, 시끄럽다.
君(임금 군) - 임금, 영주, 남편, 부모, 아내, 군자, 어진이, 그대, 봉작.
“무거움은(重) 경박함을(輕) 다스리는(爲) 근본이요(根), 고요함은(靜) 조급함을(躁) 다스리는(爲) 군주이다(君).”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을 다스림은 도(道) 즉, 자연의 근본이다. 우리은하는 은하 중심의 무거운 블랙홀을 돈다. 지구는 무거운 태양을 돈다. 천체물리학자들은 목성이 지금보다 컸다면 태양계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달은 무거운 지구를 돈다. 지구와 같은 암석형 행성은 내부에 무겁고 뜨거운 철과 니켈(6,700~7,000도)이라는 고체 상태의 내핵과 액체 상태의 외핵을 가지고 있다. 외핵의 유체 흐름과 내부의 난류 덕분에 오늘날 지구 자기장이 만들어졌다. 핵 바로 바깥에는 가장 두꺼운 층인 맨틀이 있다. 그 위로 맨틀에서 분출한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지각이 있다. 지각은 행성 두께의 0.5%를 차지한다. 지구가 탄생하고 행성들과 잦은 충돌이 사라지자, 대양이 생성되고 가장 가벼운 기체는 화산활동 중 맨틀에서 빠져나와 이산화탄소(CO₂)가 풍부한 대기의 일부가 되었다. 비록 수소와 헬륨은 태양풍에 실려 날아간 뒤였지만, 지구의 중력이 이산화탄소, 질소, 수증기, 아르곤 등의 기체를 잡아두기에 충분했다. 초기 지구에는 기체 상태의 산소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모든 산소는 암석과 물속에 포함돼 있었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지구는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을 다스렸기에 나타난 결과(根)이다. 화성은 중력이 약하기에 가벼운 물과 대기를 오랜 기간 잡아두지 못해 생명이 유지되지 못했다. 지구의 무거운 철과 니켈이 만들어 낸 핵이 태양풍에서 나오는 생명에 유해 한 입자들이 지구 자기장 덕분에 빗겨 간다. 자기장은 우리를 지켜주는 자연적인 보호막이다. 생명을 키워준 평균 수심 3.7km에 이르는 바닷물이 지구 표면의 2/3를 덮고 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전혀 느끼지 않고 살고 있지만 무거운 지구 핵이 두께가 120km에 이르는 기체층에 21% 산소와 78%의 질소, 1%의 아르곤과 아주 소량의 이산화탄소(CO₂, 0.0042%)가 있는 대기를 잡아두었기에 맘 놓고 숨 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138억 년 우주거대사, 빅히스토리)
억겁(億劫)의 시간!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게 우주에 질서를 잡으면 늘 성실하게 작동한다. 중력과 전자기력, 강력, 약력에 의해서 시공간 SCALE을 다스린다. 무거움은 경박함을 고요함은 조급함을 다스렸기에 사람, 땅, 하늘, 도가 하나를 이룬 것이다. 마땅히 도를 따르는 군주는 하늘의 이치를 따라야만 한다.
是以聖人終日行(시이성인종일행), 不離輜重(불리치중)。
남 : 이런 까닭에 성인은 종일을 가도 짐을 실은 수레를 떠나지 않고,
장 : 이런 까닭에 군자는 종일 다녀도 치중(輜重)을 떠나지 않는다.
주 : 그러므로 성인은 종일토록 길을 걸어도 군대가 장비를 버리지 않듯이 지닌 몸에서 떼어내지 않는다.
톨 : 현자는 하루 종일 바쁘지만, 자신의 일을 신중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처리한다.
오 : 그러므로 성인은 하루 종일 다닐지라도 짐수레를 떠나지 않습니다.
김 : 그러하므로 성인은 종일 걸어 다녀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않고,
여운 : 이런 까닭에(是以) 성인은(聖人) 온종일(終日) 행하여도(行) 치중을(輜重) 멀리하지 않는다(不離).
是(이 시) - 이, 이것, 여기, 무릇, 이에, 옳다, 바르다, 바르게 하다.
以(써 이) - ~써, ~로, ~를 가지고, ~를 근거로.
聖(성인 성) - 성인, 임금.
人(사람 인) - 사람, 타인, 남, 품성.
終(마칠 종) - 마치다, 끝내다, 죽다, 다하다, 완성되다, 채우다, 항상, 결국, 비록.
日(날 일) - 날, 해, 태양, 매일, 날수, 달력.
行(다닐 행) - 다니다, 가다, 행하다, 보다, 유행하다, 늘다, 뻗다.
不(아닐/불,부) - 아니다, 못하다, 없다, 말라, 아니하다.
離(떠날 리/려/치/곡) - 떠나다, 떼어놓다, 갈라지다, 흩어지다, 분산하다.
輜(짐수레 치) - 짐수레, 바퀴살 끝, 고요함.
重(무거울 중) - 무겁다, 소중하다, 자주하다, 삼가다, 보태다.
자연을 닮고 도를 따르는 통치자는 태양처럼 온종일 에너지를 뿜어대도 그 자리를 크게 비켜 감이 없다. 태양을 항성(恒星, STAR)이라 부르는 이유는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끊임없이 에너지를 뿜어내는 항상 그러한 별이라는 뜻이다. 성실하게 항상 그 자리에서 거하고, 항상 그 자리에서 빛난다. 향후 50억 년 동안이다. 그 이후에는 적색거성으로 부풀어 오르다, 중성자별인 백색왜성으로 쪼그라든다. 모든 에너지를 태양계 자손들에게 모두 베풀어 주고 쓸쓸히 전사한다. 태양이 다스리는 세상은 태양이 건재할 때까지 무한한 에너지를 받으며 존재한다. 자기 새끼들을 죽을 때까지 책임지는 사랑의 아버지이다.
노자는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성인, 군자 역시 천지 만물의 도를 따라야 하는 법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배하되 책임지고 다스리되 군림하지 않는 것이다. 항성이 없는 행성들이 최근 발견되는데 시쳇말로 부랑아 행성이다. 춥고 어둡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치중(輜重)에서 멀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전투에 가장 중요한 군대(軍隊)의 여러 가지 군수 물품(物品)을 실은 보급선을 왕 스스로 챙긴다는 뜻이다. 치중에 실린 탄약(彈藥), 식량(食糧), 장막(帳幕), 피복 따위 물건(物件)을 통틀어 이른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보급품을 군주가 스스로 지킨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되는 행위를 한 자가 우리 역사에는 여럿이 있다. 그중 한 명이 임진왜란을 당한 조선시대 왕 중 최대의 모지(侮之)리 선조(14대 임금, 1552~1608)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본인이 앞장서서 1592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파죽지세로 북진해오자 보름 만에 한성을 버리고 서둘러 개성으로 피신했다. 명나라로 도망가기 위해 평양을 거쳐 의주로 도주했다. 의주에 도착하자 선조는 명으로 피신하게 되면 빈자리를 대신할 평양에서 세자로 책봉한 광해군(1575~1641)에게 분조(分朝)를 설치하게 하는 한편, 명나라에 급히 구원병 파견을 요청했다. 명나라는 1592년 12월 4만 5,000명의 군대를 파견했다.
이 상황에 대해 아무런 저항 없이 비어있는 한양을 점령한 고니시 유키나가(1555~1600)는 임금이란 자가 성을 버리고 도망친 행동에 대해 매우 어이없어했다 한다. 센고쿠 시대(戰國時代) 당시의 다이묘(大名, 영주)들은 자신의 성은 무슨 일이 있어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왜놈인 일본인의 사고방식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게 선조였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왕이란 자가 백성을 버리고 피난하기에만 조급하니 임금 일행에게 돌을 던지거나 외면하는 백성들이 나타났다. 개성에 체류 중 한 백성이 선조를 향해 “상감은 그동안 민생은 뒷전이고 수많은 후궁의 배 불리기에만 열중했고, 후궁의 오라비이자 내수사(內需司)의 내수별좌 김공량(金公諒)만 사랑하는 것을 제일 계책으로 삼다가 오늘 이런 일을 당했으니, 어찌 김공량을 시켜 왜적을 토벌하지 않느냐?”고 아우성치기도 했다. 전승(傳乘)에 의하면 선조 일행을 본 어느 지역의 백성은 “너 같은 짐승도 임금이냐?”라며 돌 팔매질을 날렸다 한다.
임금이란 작자가 도망가느라 혼비백산한 그 사이 수군의 이순신(1545~1598)과 권율(1537~1599) 장군 등이 이끄는 관군이 일본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고,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을 격퇴했다. 이때 선조는 공사천무과(公私賤武科)와 참급무과(斬級武科)를 실시하여 천인(賤人)의 신분을 상승시키는 시험을 치러 신분을 상승시켜주고 그 대가로 자신을 위해 전국민적인 전쟁에 나가 싸우도록 하였다. 일본군이 1593년 4월 남쪽으로 퇴각하자 그해 10월 선조는 한성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선조가 한성에 돌아왔으나 무책임한 군주와 깊은 전란의 상처로 민심이 흉흉했다. 또한 1593년에 대기근이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조정과 관청의 징발과 징세로 인해 백성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다.
한술 더 떠 1594년(선조 27년) 8월 선조는 류성룡(1542~1607)과 왜란의 진행 상황을 논의하던 중, 선조 특유의 열등감에 군주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인 “이순신이 혹시 전쟁에 일부러 짐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게을렀던 게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류성룡이 “이때까지 지탱한 것도 이순신의 공이고, 수륙의 모든 장수 중 가장 우수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모지(侮之)리 선조는 류성룡이 “그대는 이순신과 개인적으로 친하지 않은가?”며 그의 답변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역사학자들은 선조가 이후 이순신을 크게 의심하면서 원균을 특출한 용장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선조는 두 사람의 체직(遞職)에 관한 전교를 내리면서 “군율을 범한 것은 이순신도 역시 같고, 오히려 그 죄가 원균보다 심하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위키백과)
이기적, 공격적 털 없는 침팬지, 짐승, 찌질이, 모지리, 소인배는 다 같은 뜻이다.
이타적이고 도덕적인 성인, 군자 또는 대인과는 반대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雖有榮觀(수유영관), 燕處超然(연처초연)。
남 : 비록 영화로운 누각에 거처하더라도 편안히 거처하며 초연하다.
장 : 비록 영화롭게 호사를 누려도 한가로이 초연함을 잃지 않는다.
주 : 좋은 집에 살아도 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지지 않고 유유자적할 수 있다.
톨 : 그가 영광스럽고 외형적으로 위대할지라도, 그는 그것들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들 위에 있기 때문이다.
오 : 화려한 경관이 있을지라도 의연하고 초연할 뿐입니다.
김 : 비록 영화로운 기거 속에 살더라도 한가로이 처하며, 초연히 세속의 영화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여운 : 비록(雖) 군주이기에 호화로운 궁궐에(榮觀) 머무르나(有), 주색에 빠져 해이해지지 않도록(燕處) 그러한 유혹을 멀리해야(超然) 한다.
雖(비록 수) - 비록, 아무리 ~하여도, 그러나, 벌레 이름, 밀다, 추천하다.
有(있을 유) - 있다, 존재하다, 가지다, 낳다, 알다, 소유, 자재, 경역.
榮(영화 영) - 영화, 영예, 영광, 피, 영광스럽다, 영예롭다, 성하다.
觀(볼 관) - 보다, 보이게 하다, 보게 하다, 나태다, 점치다, 모양, 용모, 생각.
燕(제비 연) - 제비, 잔치, 연회, 연나라, 잔치하다, 즐겁게 하다, 편안하다, 예쁘다.
處(곳 처) - 곳, 처소, 때, 시간, 지위, 신분, 부분, 일정한 표준, 살다, 거주하다.
超(뛰어넘을 초) - 뛰어넘다, 뛰다, 빼어나다, 빠르다, 멀다, 서글퍼하다, 지나가다, 넘다.
然(그럴 연) - 그러하다, 틀림이 없다, 명백하다, 분명하다.
왕이 호화로운 궁궐에 머무르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을 대표하고 나라를 대표하니 당연히 그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단이 다른 나라에 원정 경기를 치르면서 동네 여관에서 머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것은 나와 나라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격을 세워주고 격에 맞는 예우를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전 근대시대는 국가 = 왕이었다. 짐이 곧 국가이자 권력이 되는 시대였다. 그래서 역사에는 이를 기준으로 전 근대와 근대를 나누는 기준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나라의 주인이 왕권에서 국민의 주권으로 이동하는 시대를 기준으로 삼았다.
우리나라 2022년 대선 토론 당시 어느 한 후보는 왕(王)자를 손에 새기고 나와 논란이 됐었다. 그리고 실제로 왕에 당선됐다. 그리고 왕이 되자마자 자신이 진짜 왕인 줄 알고 있다. 왕에 당선되자마자 자기가 집무하는 궁부터 옮겨야 한다며 야단법석을 피었다. 그것도 국가의 가장 중요한 군대를 지휘하는 장소를 통째로 빼앗았다. 노자는 이에 대해 “고요함은(靜) 야단법석을(躁) 다스리는(爲) 주인이다(君).”라고 충고한다. 침팬지는 즉흥적이다. 왜냐하면 참을성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왕이라 생각하는 이 사람에게 노자는 또다시 야단친다. “주색에 빠져 해이해지지 않도록(燕處) 그러한 유혹을 멀리해야(超然) 한다.” 가르친다. 노자가 도덕경을 지은 이유는 대한민국의 왕을 위해 쓴 것이 분명하다.
퇴근만 하면 술 마실 생각에 치중(輜重)이 어떻게 되든 백성의 삶이 어찌 되든 말든 관심이 없다. 오로지 왕 놀음에만 빠져있다. “아! 오늘은 뭐에다 한잔 빨지?”
奈何萬乘之主而以身輕天下(내하만승지주이이신경천하)?
남 : 어찌 만승의 천자로서 몸을 천하보다 가볍게 여기겠는가.
장 : 만승(萬乘)을 부리는 주인이 어찌 몸을 천하게 가볍게 처사하는가.
주 : 어찌 대규모 군대를 거느린 대국의 군주자가 제멋대로 몸을 움직여 백성의 이익을 중시하지 않는 것인가?
톨 : 만 대의 마차를 가지고, 자신의 왕국을 돌보기를 경멸하며, 자신의 만족만을 생각하는 황제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오 : 만 대의 전차를 가진 나라의 임금이 어찌 세상에서 가볍게 처신할 수 있겠습니까?
김 : 어찌 일만 수레의 주인으로서 하늘 아래 그 몸을 가벼이 굴릴 수 있으리요?
여운 : 어찌하여(奈) 만승을(萬乘) 통제하는 군주가 됐음에도(之主而), 어찌(何) 자신을(以身) 천하에(天下) 천박하게 처신할 수 있는가(輕)?
奈(어찌 내/나) - 어찌, 능금나무, 대처하다, 대응하다, 견디어 내다. 어찌, 지옥.
何(어찌 하) - 어찌, 어느, 어떤, 언제, 얼마, 약간, 무엇, 왜냐하면, 잠시, 꾸짖다.
萬(일만 만) - 일만, 만무, 대단히, 매우 많은, 여럿, 절대로, 전혀.
乘(탈 승) - 타다, 오르다, 헤아리다, 이기다, 업신여기다, 꾀하다, 다스리다,
之(갈지) - 가다, 끼치다, 쓰다, 사용하다, 이르다, 어조사, ~의, 에, ~ 있어서, 와, 과.
主(주인 주) - 주인, 임자, 소유자, 임금, 우두머리, 여호와, 주체, 당사자, 자신.
而(말 이을 이) - 말을 잇다, 같다, 만약, 뿐, 그리고, ~로서, ~에, ~하면서, 그러나, 능히.
以(써 이) - ~써, ~로, ~를 가지고, ~를 근거로.
身(몸 신) - 몸, 신체, 나, 자기, 자신, 출신, 몸소, 친히, 체험하다.
輕(가벼울 경) - 가볍다, 가벼이 여기다, 업신여기다, 천하다, 빠르다, 가벼이.
天(하늘 천) - 하늘, 천자, 하느님, 자연, 천체, 성질, 운명.
下(아래 하) - 아래, 밑, 하인, 열등, 내리다, 낮추다, 못하다, 없애다, 물리치다, 착수하다.
대한민국은 경제력 세계 10위이자 세계 6위의 군사 대국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왕이라 스스로 칭하는 자는 자리를 가리지 않고, 욕(辱)지거리다. 하는 행동은 더욱 민망하다. 나를 대표하고, 국민을 대표하고, 나라를 대표한다는 것이 정말 수치스럽고 부끄럽다.
노자는 “어찌하여(奈) 만승을(萬乘) 통제하는 군주가 됐음에도(之主而), 어찌(何) 자신을(以身) 천하에(天下) 천박하게 처신할 수 있는가(輕)?”라 꾸짖는다. 만승(萬乘)은 만개의 전차부대를 거느린 대국을 말한다. 60만 대군의 세계 6위의 군사력과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갖춘 대국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란 자가 어찌(何) 자신을(以身) 천하에(天下) 경박하게 처신할 수 있는가(輕)?
輕則失根(경즉실근), 躁則失君(조즉실군)。
남 : 가벼이 여기면 근본을 잃고 시끄럽게 굴면 군주를 잃는다.
장 : 가볍게 처신하면 근본을 잃고, 조급히 굴면 주인의 지위를 잃는다.
주 : 경솔하면 원칙에 어긋나고, 자칫 군주의 지위를 잃을 수 있다.
톨 : 자신의 왕국에 대한 보살핌을 경멸하는 자는 최고의 봉사, 즉 백성의 지지를 잃는다. 백성들이 쉽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곳에 황제가 쉽게 득세할 것이다.
오 : 가볍게 처신하면 그 근본을 잃게 되고, 조급히 행동하면 임금의 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김 : 가벼이 하면 그 뿌리를 잃고, 조급히 하면 그 우두머리 됨을 잃는다.
여운 : 천박하면(輕) 곧(則) 그 뿌리를 잃게 될 것이고(失根), 조급하면(躁) 곧(則) 임금의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失君).
輕(가벼울 경) - 가볍다, 가벼이 여기다, 업신여기다, 천하다, 빠르다, 가벼이.
則(곧 즉/칙) - 곧, 만일~이라면, ~하면, ~때에는, 법칙, 준칙, 이치, 본보기, 본을 받다.
失(잃을 실) - 잃다, 달아나다, 남기다, 빠뜨리다, 잘못 보다, 틀어지다, 가다, 잘 못하다.
根(뿌리 근) - 뿌리, 밑동, 근본, 능력, 생식기.
躁(조급할 조) - 조급하다, 떠들다, 성급하다, 시끄럽다.
君(임금 군) - 임금, 영주, 남편, 부모, 아내, 군자, 어진이, 그대, 봉작.
노자를 읽으면 읽을수록 어찌 하는 말마다 옳고 지금의 시대를 어떻게 정확히 100% 예언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통치 행위가 천박하면(輕) 곧(則) 그 뿌리를 잃게 될 것이고(失根), 정권 유지하려고 조급하고 안달하면(躁) 곧(則) 임금의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失君).” 우리의 위대한 스승인 노자께서 머잖아 윤석열의 왕 놀음이 끝난다고 예언했다. 대한민국의 이타적이고 도덕적인 백성들이여 조금만 더 참고 숭례문 촛불집회에 나가 봅시다.
노자의 예언을 난 절대적으로 믿는다.
한글비교역주 참고 문헌
남회근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 – 번역 설순남
남회근(Nan Huai-Chin, 南懷瑾, 1918~2012) 선생을 소개한다. 본문에는 [남 : ~ ]으로 표기되었다. 부·키 출판사에서 2012년 초판 출판되었다. 1987년 남회근 선생의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본으로 ‘남회근 저작선 5’의 시리즈물이다.
남회근 선생은 중국의 승려, 종교학자, 작가이다. 현대 중국에서 존경받는 영적 스승인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 불교 부흥의 주요 세력으로 여겨졌다. 1918년 절강성 온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당 교육울 받으며 사서오경을 읽었다. 17세에 중국 항주 국술원에 들어가 각 문파 고수들로부터 무예를 배우는 한편 문학, 서예, 의약, 천문 등을 익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사천(四川)으로 내려가 장개석이 교장으로 있던 중앙군관학교에서 교관을 맡으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였다. 교관으로 일하던 시절 선생에게 영향을 준 스승 원환선(袁換仙, 1887~1966)을 만나 삶의 일대 전환을 맞는다.
1942년 25세에 원환선이 만든 ‘유마정사’에 합류하여 수석 제자가 되었고, 스승을 따라 근대 중국 불교계 중흥조로 알려진 허운(虛雲, 1840~1959) 선사(先師)의 가르침을 배웠다. 불법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중국 불교 성지 아미산에서 폐관 수행하면서 대장경을 독파하였고, 이후 티베트로 가서 여러 종파 스승으로부터 밀교의 정수를 전수 받고 수행경지를 인증받았다. 1947년 고향으로 돌아가 절강성 성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문연각 사고전서와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을 열람하고, 이후 여산 천지사 곁에 오두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9년 봄 대만으로 건너가 문화대학, 보인대학 등과 사회단체에서 강의하면서 수련과 저술에 몰두하였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동서학원을 창립하였고, 1988년 홍콩을 거주지를 옮겨 칠 일간 참선을 행하는 선칠 모임을 이끌며 교화사업을 하였다. 1950년대 대만으로 건너간 후부터 일반인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유불도가 경전을 강의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렀고,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4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여 동서양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선생의 강의는 유불도를 비롯한 동양사상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깊은 수행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엄중한 가르침, 철저히 현실에 기초한 삶의 자세,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머를 두루 갖춘 것으로 정평이 있다. 2006년 이후 중국 강소성 오강시에 태호대학당을 만들어 교육사업에 힘을 쏟다가 2012년 9월 29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키 – 2013년 1월 8일 초판
번역 - 설순남
서울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사회과학원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수학했으며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결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다. 저서로 『황준헌 시선』이 있고, 옮긴 책으로 『대학 강의』 『맹자와 공손추』 『노자타설』 『맹자와 양혜왕』 『약사경 강의』 등이 있다.
2. 장치청 『도덕경 완전해석』 - 번역 오수현
두 번째로 소개할 장치청(張其成장기성, Zhang-Qicheng, 1959~) 교수로 본문에는 [장 : ~ ]으로 표기되었다.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이자 역학과 중의학 분야의 석학이자 대중적인 양생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북경중역국학원 원장과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북경대학·청화대학 특별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으며, 중국 관영 방송 CCTV, 북경 TV 등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학문의 대중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국가급 무형문화 유산 명의 ‘북송의 장일첩(張一帖, 1130~1200)’ 가문의 제15대 계승자로, 훈고학의 대가 베이징중의학대학 교수 첸차오천(錢超塵, 1036~2022)과 역학의 대가 베이징대학 철학과 주보쿤(朱伯崑, 1923~) 교수에게 사사했다. 1992년 중국 최초로 『역학대사전』, 『역경응용대백과』 등을 편찬했고, 《역도주간》을 창간하여 유교, 도교, 불교, 의학과의 융합적인 차원에서 ‘역(易)’에 접근하고자 했다. 2003년부터 북경대학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고전 강의를 시작했으며, 멘토제 서원을 세워 ‘중국학의 지혜를 적용한 경영모델’ ‘오행을 통한 인재관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국가급 석사 교재 『중국전통문화개론』을 편찬하는 등 현재까지도 국학 5대 경전 『주역』, 『논어』, 『도덕경』, 『육조단경』,『황제내경』을 강연하는 ‘고전멘토’로 활동 중이다. 2009년에는 “현대 국학의 선두 주자” 중 하나로 선정되어 “국학 연구의 일인자”로 칭송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 완전 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논어 완전 해석』, 『육조단경 완전 해석』, 『황제내경 완전 해석』, 『역경 양생 대도』, 『유가 양생대도』, 『불가 양생대도』, 『도가 양생대도』, 『주역 인생 지혜』 등 다수가 있다. (yes 24 작가소개)
판미동 - 2022년 2월 7일 1판 1쇄 찍음
옮긴이 - 오수현
숙명여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산동과기 직업전문대학 한국어과 교사, ㈜효성, KELLEY ASSOCIATES를 거쳐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출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주역 완전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자치통감: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주역에서 경영을 만나다』, 『나의 최소주의 생활』,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 『시의 격려』, 『세포가 팽팽해지면 병은 저절로 낫습니다』, 『오늘, 뺄셈』, 『중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움직이는가』, 『비즈니스 삼국지』 , 『똑똑한 리더의 공자 지혜』, 『똑똑한 리더의 노자 지혜』 외에도 다수가 있다.
3. 주춘재 『만화 도덕경』 - 번역 박영재
세 번째로 소개할 분은 저우춘차이(周春才 1957- ) 선생이다. 본문에는 [주 : ~]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출생한 화가이자 작가로 오랫동안 중국문화의 연구와 대중화에 전념해왔다. 서양 문화와 비교를 통해 과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새롭고 참신한 해석을 전개해 내외의 주목을 모았다. 만화를 넘어서는 풍부한 내용과 생동감 있는 작품 이미지로 광범위한 전문가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십여 개의 언어로 작품이 번역 출판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예기 : 모두들 알지만 아무도 안 본 사서오경》, 《만화 주역》, 《만화 논어》, 《만화 노자》, 《만화 장자》, 《화설 황제내경》 등이 있다. (yes 24 작가소개)
가갸날 - 2021년 8월 10일 초판
번역 박영재
고려대학교와 타이완 정치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4. 러시아 최초의 완역본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 최재목 역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러시아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영어: Lev Nikolayevitch Tolstoy, 1828~1910)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본문에는 [톨 : ~ ]로 표기.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 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을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 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 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18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농민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yes 24 작가소개)
그러나 그가 『노자, 도덕경』에 관심이 많았고, 또한 최초로 러시아어 완역서『노자, 도덕경』을 남겼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부처와 불교, 노자와 공자에 심취하였다. 특히 그는 『노자, 도덕경』의 ‘도道’와 ‘무위(無爲)’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무위사상은 바로 그의 무저항, 박애, 비폭력 평화주의와 공명하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어로 된 『노자, 도덕경』 완역본을 희망한지라 여러 차례 번역을 시도하였다. 마침 모스코바 대학에 유학 와 있던 일본인 고니시 마스터로를, 그의 지도교수인 그로트(톨스토이 친구)를 통해서 만나, 1892년 11월부터 1893년 3월에 걸쳐서 『노자, 도덕경』의 러시아 역을 완성한다. 이것이 러시아 최초 완역 『노자 도덕경』이다. (본문 중)
21세기문화원 - 2021년 1월 20일 1쇄 인쇄
역주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원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하버드대 · 도쿄대 · 베이징대 · 라이덴대 등에서 연구하였다.
‘한국양명학회장’ 및 ‘한국일본사상사학회장’을 지냈다. 전공은 동아시아 양명학 비교(동아시아사상사비교)이며, 저·역서와 감수한 책으로는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근대 일본의 양명학』,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제8시집), 『풍수 환경학』, 『불교 도상학』 등 50여 권이 있다.
5. 『오강남 풀이 도덕경』
종교학자 오강남(1941~) 교수님이시다. 8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존경하는 스승이시기도 하다. 본문에는 [오 : ~ ]로 표기.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더불어 ‘종교너머, 아하!’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동안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서강대 등에서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종교 너머, 아하!』가 있으며, 최근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펴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현암사 – 개정판 2010년 3월 15일
6. 도올 김용옥 역주 『노자가 옳았다』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선생은 대한민국의 철학자, 종교학자, 사상가, 한의사,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광산. 호는 도올(檮杌)이다. 본문 [김 : ]으로 표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천안 대흥동에서 광제의원을 운영한 집안의 6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초등학교를 천안에서 졸업하고,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72년 9월 중화민국으로 가서 국립 타이완 대학 철학연구소에서 2년간 수학하면서 〈노자 "자연" 철학에서의 "무위" 의 기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일본으로 가서 1977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에 미국으로 가서 펜실베니아 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과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는데, 하버드에서 〈왕부지王夫之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zhi(1616~1692)〉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학사학위도 취득하였다.
대학교수, 철학자, 사상가, 언론인, 한의사,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희곡 작가, 극단의 단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활동하였다. 동, 서양 철학과 종교사상까지 다양한 학문적 탐구와 저작 활동을 벌였다. 1982년 9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가 되고 1985년 9월에는 동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1986년 양심선언(‘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한 후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등을 강의했다. 1988년 무렵부터 방송 강연에 출강하였다.
그는 문화계에서도 몇 가지 활동을 했다.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악을 콘템포러리 뮤직으로 승화시키는 다양한 기초작업을 하였다. (1984년 3월~1987년 12월). 한국의 전통음악을 이끄는 대표적 주자, 백대웅, 김혜숙, 박범훈, 송방송, 이성천, 권오성, 최종민, 이보형, 양승희 등이 참여했다. 이후 한대수와 록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도도회(檮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 교수들과 그 대학 출신 화가들(이종상, 김병종, 김호득, 장상의, 심현희, 장혜용, 이민주 등)과 정기적인 활동을 했다. (1988년 6월~1999년 6월)
영화와 연극 활동도 했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마당극으로 유명한 극단 ‘미추’를 손진책, 김성녀와 함께 창단(1986년 8월)하여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많은 연극 작업을 했다. 《시간의 그림자》, 《그 불》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잠시 영화인 심포지움을 만들어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이장호, 김호선, 하명중, 정지영, 박광수, 이두용, 황기성 등과 활동했다. 이후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개벽》, 《취화선》의 대본을 썼고, 특히 《취화선》은 2002년 55회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획득하였으며 《개벽》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이덕화는 본인(김용옥)이 진행자로 활동 중인 KBS 2TV 《도올학당 수다승철》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취화선》과 《왕의 남자》의 자막은 직접 영역했다.
유기화학자 친형 김용준과 함께 신과학운동 세미나를 주도하고, 대우재단지원 과학사상연구회(科學思想硏究會)를 설립했다. (1984년 3월~1990년 2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 과학사상가들(조순탁, 이성범, 장회익, 김두철, 서정선, 신중섭, 이봉재 등)이 참여했으며 이후 꾸준히 과학과 철학이라는 학술지를 출간했다.
1989년에는 한국사상사연구소(Korean Institute of Classical Studies)를 세워 한국고전 최초의 일자색인인 《삼국유사인득》을 출간했다. 이 작업은 후에 제자 김현 교수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전체 한글번역 프로그램인 CD-ROM작업으로 이어져 한국학의 신기원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류의 원류인 사극 드라마들의 희곡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1993년에는 도올서원을 세워 15기에 걸쳐 3,000여 명의 학생을 배출해 한학의 배경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이 사회에서 활약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고전국역사업을 지원하였고, 그 기관은 이후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는 태권도철학세미나를 개최하여 무술의 본질과 태권도 문화의 세계화를 논하였다. 유병관, 양진방, 김영선, 김용범, 최의정, 임신자, 바비 클레이튼(Bobby Clayton), 스티븐 카프너(Steven D. Capener) 등이 참여했고 이 세미나의 결과물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를 집필, 출간했다. 이 작업의 정신과 성과는 이후 무주 태권도공원으로 이어졌다.
한의대 졸업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여 2년간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중앙일보에는 《도올고함(檮杌孤喊)》이라는 칼럼을, 중앙선데이에는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신발굴 성서자료)를 연재하였다. (위키피아)
통나무 – 2020년 10월 9일 출간
마지막으로 영어 번역본을 실었다. 아마도 그의 번역본을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인 화이트헤드와 그의 제자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읽었다. 러셀은 1920년 북경대학에서 1년간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의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1883~1969),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등이 읽었다. 아마 수많은 서양의 지식인들이 작은 분량의 동양고전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청나라 말에 선교사로 왔다가 중국 고전의 깊은 뜻에 놀라 일부 청나라인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 고전을 영문으로 번역한 제임스 레게의 영문본을 찾아 옮겨 보았다.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언어학자, 선교사, 생물학자, 번역가이다. 그는 중국 고전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한 초기 번역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Legge는 말라카와 홍콩에서 런던 선교사 협회 (1876-1897)의 대표로 봉사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 최초의 중국학과 교수 (1875-1879)였다. Max Müller와 함께 그는 기념비적인 동양의 신성한 책 시리즈를 썼다. (위키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