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호]"저 이제 열 살이에요!" 언니네 채널넷 6월 특집 '퀴어 사이로'中

[진기]

[109호]"저 이제 열 살이에요!" (코린 / 언니네트워크 편집팀 , cool_wom@hanmail.net)

퀴어문화축제가 드디어 10주년을 맞았다!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차별’이라 이름 짓지도 않던 척박한 한국 사회에서 퀴어문화축제는 성 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사회가 성 소수자에게 갖는 편견의 벽을 신명나게 균열내 왔다.

천여 명의 성 소수자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한국 사회에 다양한 문화 담론을 이끌어냈던 것처럼, 퀴어문화축제의 미래도 긍정적이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10년간 빠짐없이 퀴어문화축제 기획단으로 참여했던 한채윤 씨를 만나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10년간 축제 기획단으로 참여했는데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올해 퀴어 퍼레이드 전까지만 해도 걱정만 많았는데, 퍼레이드를 치르고 나니 힘이 좀 난다.(웃음) 이번 축제에 대한 평가도 전반적으로 좋고 퍼레이드 분위기도 좋았기 때문에 기획단들의 기분이 상당히 들뜬 상태다.

올해 축제에서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작년부터 ‘스페셜 이벤트’라는 걸 만들었다. 기획단에서는 2~3년마다 축제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총체적으로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난 2007년이 그 시기였다. 논의 결과 축제 내 무지개영화제를 ‘셀프 영화제’로 독립시켜 축제에서 퍼레이드와 파티, 영화제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꾸려가기로 했다. 전시회와 토론회도 기획단이 진행하는 것에서 참가를 희망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신청을 받아 지원하는 ‘스페셜 이벤트’로 만들었다. 매년 성황리에 축제를 마치지만 축제에 대한 피드백을 들을 통로가 거의 없고, 홈페이지 반응도 거의 없어서 ‘스페셜 이벤트’가 잘 될까 걱정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이 신청하더라. 올해는 전시회, 심리테스트 등 10여 개 신청이 들어왔다. 축제 2~3회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인데, 그만큼 축제가 사람들에게 인지되고 인정받는 뜻인 것 같다.

기획단으로 10년간 참여해오면서 축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걸 느꼈을 것 같다.
그런 관심은 거의 못 느낀 것 같다. 퍼레이드 행렬이 50명에서 천 명으로 늘어나는 걸 보면서 느끼는 정도? 처음에는 그냥 별 치장 없이 나왔던 사람들이 점점 자신을 꾸미며 나오기 시작했다. 언니네트워크 등의 여성단체나 인권단체, 진보적인 기독교 운동을 하는 단체들이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그런 부분은 분명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매년 축제 슬로건이 바뀌는 데, 슬로건의 변화에서도 어떤 변화를 느꼈을 것 같은데.
그 부분에서는 분명 변화가 있다. 초기에는 ‘한걸음만 나와봐’였다면 이제는 ‘지금부터 시작이야, 멈추지마!’로 바뀌었다. 초반에는 퀴어인 자신을 드러내라며 행동을 촉구했는데, 동성애 커뮤니티가 점점 커지면서, 커뮤니티 안에서 안고 있는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2005년 퀴어문화축제 ‘퀴어절정’ 때는 동성애 커뮤니티가 가지고 있는, 동성애자 본인이 가지고 있는 우리 안의 것들을 절정으로 끌어올려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퀴어문화축제가 10년간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균열내고 다양한 문화 담론을 이끌어내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 내부에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6월 말에 이와 관련한 토론회를 하려고 준비 중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기획단은 오랫동안 축제에 참여했기 때문에 축제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어렵다. 하지만 퀴어문화축제가 변화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는 것에는 기획단 모두 동의한다. 지난 행적을 돌이켜보는 것보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퀴어문화축제의 기여도를, 특히 퀴어 퍼레이드의 기여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가시적으로 억눌려있을 것 같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들을 균열내는 데 큰 기여를 하지 않았나.
퀴어퍼레이드를 통해 축제의 구경꾼이었던 사람들이 참여자가 됐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다. 일 년에 딱 한 번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인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잖나. 2001년, 세계 최대의 퀴어 축제인 호주의 ‘시드니 마디그라 퀴어 축제’에 참여한 적이 있다. 퍼레이드가 진행될 때 거리에서 동성애자들이 키스하고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는데, 사람들이 크게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벅찬 감동을 느꼈다. 1회 때는 정신없이 치르느라 감동을 느낄 새가 없었지만, 2회 때는 마디그라 축제에서 느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50명으로 시작한 행렬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는데…정말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람들이 용기를 내 행렬에 나서고 그 안에서 기쁨을 만끽했다. 이런 점이 퀴어 퍼레이드의 미덕인 것 같다. 성 소수자들이 즐겁게 뛰어놀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장과 기회를 마련하는 것.

도심 퍼레이드의 가장 큰 효과는 일반인들이 행렬을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방송이나 책이면 꺼버리거나 덮어버리면 되지만 도심 속 행렬은 그렇지 않다. “난 동성애자다!”라는 깃발을 날리며 행진하는 동성애자들을 수백 명, 천여 명 목격하는 건 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퍼레이드가 영화보다 사회적 파급력이 더 크다고 본다. 대구에서도 6월 20일~21일 퀴어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지역에서 하는 게 더욱 어려울 텐데 정말 대단하다고 본다. 금전적으로는 지원해 줄 수 없었지만, 우리가 썼던 각종 물품들은 지원했다.

이번 축제를 치르면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들었다.
지난 해 축제 지원으로 4500만 원을 받았는데, 이번 해에는 1,500만 원을 받았다. 지원 정책이 바뀌었더라. 예전에는 서울문화재단, 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기금을 따로 받았는데, 올해는 서울문화재단과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중복으로 지원하지 않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서울문화재단에서만 받았는데, 지원 조건에 서울문화재단과 문화예술위원회를 같이 후원 기관으로 올리도록 했다. 한 재단에서 3년 이상 지원을 받을 경우 그 다음 해에는 지원을 못 받는다. 그래서 두 재단에서 후원받는 기간을 조정해서 서울문화재단에서 3년 연속 받으면 그 다음 해에는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받는 식으로 했었는데 두 단체를 모두 후원 목록에 올려야 하니 3년 연속 지원을 받게 되면 그 다음 해에는 어디서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진위는 아직 발표가 안 난 상황이고.

이전까지만 해도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정부 지원금은 계속 늘고 있었다. 정부 지원이 늘어난다는 건 축제를 조금은 더 여유있게 할 수 있다는 것 외에 정부가 동성애자의 존재를 점점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서울문화재단 지원 부분에 소수자 분야가 따로 있었지만, 이젠 그런 정책이 없어졌다. 진보진영의 시민단체들의 정부 지원은 축소하고 있고, 경로당 축제나 보수단체 측 행사에는 5천만 원의 지원이 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축제도 장담하기 어렵다. 10년 동안 축제를 개최한 게 대단하다고 하지만, 당장 11회 축제가 열리지 않는다면 10년간의 영광은 어디로 가겠나. 이런 고민들을 축제에 관심있는 사람들 모두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

혹시 기업 후원은 생각해 본 적 없나?
2회 때부터 매년 다각도의 시도는 했지만 기업들로부터 늘 시기상조라는 답변만 들었다. 기업후원이 아직 들어온 건 아니지만 우리 내부에 기준은 있다. 예를 들어 축제 3회 때 한 음료회사가 약간의 후원금을 줄 테니 퍼레이드 행사장에 음료 홍보부스를 차리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홍보부스가 차려진다면 축제의 의미를 훼손시킬 수 있을 것 같아 거부했다. 퀴어문화축제가 아직 가난하긴 하지만(웃음) 기업 후원에 대해서는 내부의 엄격한 검열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기업들은 후원을 할 생각도 안 하는데….(웃음)

그렇다면 개인 후원 상황은 어떤가?
개인 후원이 전혀 없진 않지만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축제가 힘들 때 뜻하지 않게 큰 후원금을 내는 사람들이 있어서 위기 때마다 도움이 됐다. 축제가 겉보기에 화려해서인지 사람들이 축제에 돈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고, 후원은 불우이웃돕기에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놀고 즐기는 문화 행사에 후원 할 생각을 잘 안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땅에서 퀴어문화축제라는 대의와 축제의 발전이 사회 인식 변화를 가져온다는 차원에서 ‘투자’의 개념으로 퀴어문화축제에 후원해줬으면 하고, 그런 후원자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후원 문제 외에 또 다른 걱정거리가 있다면?
기획단에 새로운 인재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도 큰 문제다. 나를 포함해 기획단 대부분이 5년 이상씩 한 사람들이라 많이 지쳐있다. 내년에도 축제를 하려고 하면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있는 힘을 쥐어짜내며 근근이 유지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야 축제가 활개를 칠 텐데… 걱정이다.

퀴어문화축제가 유명해지고, 매년 참여 인원도 늘어나서 축제 기획단으로 참여하려는 사람이 많을 줄 알았다.
축제 참가자는 매년 늘었고, 축제가 매년 성장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기획단에는 새로운 사람이 안 들어오더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는 (사)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있고, 3‧8 여성축제에는 (사)한국여성단체연합이 있고, 안티 축제에는 (사)문화미래 이프가 있어 동력을 만들어낼 기본적 기반이 있지만, 퀴어문화축제는 하나의 조직이나 단체가 아닌, 축제를 사랑하는 개인이 모여 기획단을 꾸리고 유지하다보니 축제가 끝나면 해산한다. 해산 할 때마다 내년에 또 기획단 할 거냐고 확인하면서. 신기하게도 10년간 그렇게 유지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지 걱정도 되고, 이제 손 놓아버리고 싶지만 축제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러지도 못하겠고 복잡하다.

퀴어문화축제가 한국 사회에 큰 의미와 성과를 낸 만큼 안고가야 했던 어려움들도 많았던 것 같다. 그간의 회한과 감동의 기록들을 엮어 퀴어문화축제 10년의 역사를 담은 책을 출간할 생각은 없는가. 책으로 나온다면 한국 성 소수자와 관련한 굉장한 자료가 될 것 같다.
10년간의 자료들은 잘 축적돼 있다. 하지만 사진이라든지, 노출하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자료들도 상당하기 때문에 책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좀 더 시간이 지난다면 모를까.

마지막으로 축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퀴어문화축제가 열악한 재정 상황 때문에 내년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그럼에도 간과할 수 없는 건 퀴어문화축제가 성 소수자 진영에서 개최하는 가장 큰 축제라는 거다. 그에 따른 역할 의식, 책임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안정된 조직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축제도 아니고, 큰 축제를 치르는 만큼 많은 경비가 들고, 10년을 유지해 오며 새로운 변화의 절감 앞에 퀴어문화축제가 서있지만, 이에 대한 고민을 축제 관계자 외에 축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했으면 한다. 그리고 단 몇 분이라도 축제 기획단 문을 두드려줬으면 좋겠다. 새로운 인재가 기획단에 들어와야 축제에 활기가 더해지고, 퀴어문화축제도 더욱 발전할 수 있을 테니까. 언니네트워크 회원 중 퀴어문화축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기획단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꿈도 꿔본다.(웃음)

<이미지 출처 :
1, 4. 한채윤 씨 개인 소장 사진
2, 3. 퀴어문화축제 홈페이지(www.kqc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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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채널넷(www.unninet.net) 2009년 6월 특집 '퀴어 사이로'中

[석산]

전에 이거 동영상으로 봤는데요, 규모가 크진않아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내년엔 꼭 정부가 많은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