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애리조나전에서 나온 슬라이더는 야스마니 그랜달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를 하루 앞둔 5일(한국시간), 클럽하우스 안에서 포수인 야스마니 그랜달이 절 부르더군요. 다음날 등판에 앞서 미팅을 하기 전의 상황입니다. 야스마니가 제게 전한 내용은 애리조나 경기에서의 볼 배합 관련된 부분이었고, 그때 슬라이더 얘기를 꺼냈습니다.
“현진, 내일은 슬라이더를 던져도 될 것 같아.”
“슬라이더? (왜? 라고 물어보려다) 알았어.”
야스마니에게 대답은 했지만 솔직히 슬라이더는 떠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제(6일) 경기 전 몸을 풀 때도 슬라이더 공을 시험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야스마니는 경기 중 유독 슬라이더 사인을 많이 내더라고요. 이전 경기까지 슬라이더를 구사한 비율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볼 배합을 달리 하려는 야스마니의 의중을 읽었기 때문에 그의 사인대로 공을 던졌고,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야스마니가 경기를 앞두고 얼마나 많은 연구를 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죠.
8월 31일 애리조나 경기에서 3개의 피홈런을 포함, 6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된 이력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 마음을 새롭게 다진 계기가 됐습니다. 무조건 ‘두 번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1회 애리조나 1번타자인 네그론을 상대로 92.1마일의 패스트볼을 던진 것이고요.
어제 던진 슬라이더는 원래 던지던 슬라이더였고, 커터가 의외로 잘 들어갔습니다. 슬라이더는 몸 풀 때 던지지 않았지만 커터는 캐치볼하면서 계속 연습했었거든요. 이전에 고속 슬라이더 그립으로 던지다가 폭이 커지면서 그립을 바꿔 던졌던 그 커터였어요. 체인지업도 체이스필드(애리조나 홈구장)에서 던졌을 때보다 더 좋았고요.
경기가 잘 풀릴 때는 볼넷이 나와도 위기를 잘 넘깁니다. 경기가 안 풀리는 날에는 볼넷이 나오는 즉시 안타 아니면 홈런을 맞게 되고요. 어렸을 때부터 볼넷을 주면 아버지한테 많이 혼났어요. 사내 녀석이 당당하게 승부하지 못한다고요. 어제도 5개의 볼넷을 기록하면서 경기 후 아버지로부터 한소리 들었습니다.
어제 경기는 상대 선발이 잭 그레인키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다저스에서 함께 생활하며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 터라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고 만난 그레인키는 색다른 느낌을 주더라고요. 다저스 때도 그랬지만 애리조나의 그레인키는 여전히 최고의 투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레인키보다 못한 결과를 내고 싶지 않았어요. 더 집중했고, 더 최선을 다했습니다. 구속에도 신경을 쓰면서요.
그레인키와 타석과 마운드에서 각각 두 차례씩 만났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4회 2사 2,3루 상황에서 케텔 마르테를 고의사구로 내보내고 그레인키와 대결하던 상황입니다. 이미 1실점을 한 터라 만루 상황에서 맞이한 그레인키는 한때의 동료 선수라는 감상적인 느낌이 아닌 그저 위험한 타자였습니다. 타격감도 뛰어난 투수라 투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내야 땅볼이 나오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죠. 만약 그 상황에서 또 다른 안타가 나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엄청난 대참사가 벌어졌을 겁니다.
요즘 언론이나 주위에서 한 경기, 한 경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조금이라도 못하면 선발 경쟁에서 밀려날 것처럼 보는 시선들로 인해 부담이 큰 게 사실입니다. 등판한 경기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포스트시즌에 못 나갈 수 있다는 시각도 조금은 당황스럽습니다. 선수들과 경쟁을 붙이는 게 보는 재미가 있을지 몰라도 선수들 입장에선 스트레스가 꽤 심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요. 승부의 세계에선 당연한 것이고, 그 또한 이겨내야 한다는 걸 잘 알지만 매 경기마다 마지막 경기처럼 치러야 하는 현실이 야구를 즐기지 못하게 하네요.
수술에서 복귀한 올시즌 제 목표는 포스트시즌보다는 정규시즌을 부상 없이 마무리하는 거였습니다. 성적에 대한 아쉬움은 있어도 지금까진 잘 달려왔다고 믿는데 단 한 순간도 수월하게 흘러간 적이 없었어요. 어느 누구한테도 솔직하게 털어 놓지 못한 마음의 짐을 안고 혼자 끙끙 댔던 기억도 나고, 그런 아픔 속에서 배움을 얻고, 인간적인 성장을 거듭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정규시즌이 얼마 안 남았네요. 최근 우리 팀의 연패로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아요. 8월에 치른 경기들은 아무리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더니, 9월에는 이겨도 이길 것 같지 않은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미리 매를 맞는 거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선수들에게 큰 경험이 되고 있을 테니까요. 우린 곧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겁니다. 선수들 모두 그 믿음만큼은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 일기는 류현진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류현진 MLB일기<9> 매 등판마다 오디션 보는 듯한, 그 긴장감이란6일 애리조나전에서 나온 슬라이더는 야스마니 그랜달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를 하루 앞둔 5일(한국시간), 클럽하우스 안에서 포수인 야스마니 그랜달이 절 부르더군요. 다음날 등판에 앞서 미팅을 하기 전의 상황입니다. 야스마니가 제게 전한 내용은 애리조나 경기에서의 볼 배합 관련된 부분이었고,...sports.news.naver.com
첫댓글 류뚱 화이팅~~~성공하자 너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