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 나들이
서화 구도순
난생 처음으로 여객기를 탑승했다. 셋째 딸의 손을 잡고 김해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좌석을 찾아 나란히 앉았다. 평소에 가깝고 멂을 막론하고 혼자 외출하기를 두려워하는 엄마의 마음을 꿰뚫고 있던 딸아이가 이번 나들이에 동행했다. 큰딸과 사위가 몰래 예약해 갑자기 이뤄진 나들이였다. 각자의 일 때문에 가족 모두 함께 못 가는 게 무척 아쉽다. 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답의 땅이기에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꼭 가보고 싶었다.
먼 곳으로 여행을 가면 마음이 설레는 게 정상인데 왜 두렵고 걱정이 되는지 모르겠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안전벨트 매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끝나자 붕붕 뜨는 느낌이 왔다. 딸이 살짝 내 귀에 이어폰을 꽂아준다. 신나는 음악을 감상하면서 가잔다. 이어폰을 몇 초 만에 빼고 창밖이 궁금하여 고개를 돌렸다. 프로펠러와 시선이 마주쳤는데 아찔한 느낌이었다. 크게 용기 내어 눈을 크게 뜨고 구름 속으로 휙휙 지나가는 바깥세상을 유심히 살폈다. 얼마 후 창밖에는 동화 속의 세계가 펼쳐졌다. 푸른 하늘 아래 뭉게뭉게 떠오르는 구름 나라는 하얀 눈의 나라처럼 몽환적인 모습이었다. 그때부터 불안한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바깥 풍경에 정신이 팔렸다. 이런 재미도 있는데 왜 여객기 탑승을 무서워했을까. 한참을 즐기고 있는데 제주공항에 착륙했다.
공항 내 승객 수송용 버스를 타고 터미널까지 갔다. 마중 나온 큰사위와 큰딸을 만났다. 둘은 서울에서 제주도에 미리 가서 몇 박을 했다. 배편으로 탁송한 승용차를 찾아 몰고 공항에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며칠 전에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다 해놓은 큰딸 가족이 고마웠다. 불고기 해산물 과일 등을 직접 요리해 푸짐하게 차려 주었다.
식사 후 사위의 차를 타고 제주 시내를 간단하게 한 바퀴 돌았다. 초가집과 감귤이 주렁주렁 달린 민속촌에서는 옛 고향에 온 듯 정겨움을 느꼈다. 멀리서 보니 감귤이 노란 꽃송이처럼 빛났다. 귤나무 아래에 큰 감귤 한 개가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사진만 찍고 다른 관광객도 운치를 느낄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 돌담 곁에 진홍색 동백꽃이 봄을 알리며 미소 지었다. 민속촌을 구경 후 선선한 이호테우 해변도 둘러봤다. 검은색 화강암이 파도와 부딪히며 인내를 감내하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숭숭 구멍이 난 검은 돌이 뾰족뾰족한 연장 모양과 꽃 모양 등으로 다채로웠다. 쏴한 바람이 볼을 스치는데 어찌나 정신을 맑게 때리는지 봄인데도 초겨울 바람 같았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는 가슴을 뻥 뚫는 것처럼 상쾌하였다. 바닷바람을 쐬고 나서 제주도의 유명한 흑돼지고기 식당으로 갔다.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맛나게 식사했다. 역시 흑돼지고기는 과연 명불허전이 아니었다.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은 우도로 발길을 향했다. 우도로 가는 길 우측에 유명한 성산 일출봉이 아스라이 보였다. 눈으로 슬쩍 보고 스쳐 지나는데 조금 아쉬웠다. 성산여객터미널에서 승용차를 여객선에 싣고 우도로 건너갔다. 출렁출렁 넘나드는 파도가 에메랄드 색으로 변했다가 일순간 무지갯빛으로 변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까마득한 수평선 위로 푸른 하늘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바닷가의 유채꽃밭 또한 노랗게 물들어 환상적이었다. 유채꽃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꽃과 친구 된 내 모습의 사진을 찍었다. 인증 샷을 찍고 난 후 ‘육지사람 안녕’이란 간판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흑돼지 햄버거와 차를 파는 패스트푸드 가게였다. 흑돼지 햄버거와 커피 쑥차를 시켜 제주의 맛을 음미했다. 가게 안쪽 벽에 쓰여 있는 ‘어쩔 수 없는 일, 내겐 당신이 좋은 건’이란 글귀를 마음에 담았다. ‘가족도 늘 좋은 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우도는 처음 와본 신비의 섬이며 생명을 여는 섬으로 오랜 추억 속에 남을 것이다. 물에 뜬 들판에 소가 누워있는 모습이라서 우도(牛島)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우도를 둘러보고 나서 봄에 가장 인기 좋은 여행 장소인 녹산로에 갔다. 비자림로에서 가시리마을까지 약 10km 정도 되는데 꽤 길었다. 유채꽃과 벚꽃이 어우러진 도로 중간마다 정차하여 TV에서만 보던 풍경을 감상하고 포즈를 취할 때 갑자기 날아든 나비랑 함께 사진도 찍으니 꿈만 같았다. 일 때문에 2박 3일간 어렵사리 틈을 내 나섰던 첫 나들이였다. 많은 곳을 일거에 다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사위와 딸 덕분에 가장 가고 싶은 곳을 다녀와서 흐뭇했다. 아이들은 며칠 더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지만 마음만 받기로 했다.
제주도는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또한 한라산은 해발 1950m이고 화구호 백록담과 영실기암 40여 개의 오름, 1,80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는 등 생태계의 보고라고 한다. 천혜의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제주도가 우리 땅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여객기를 타고 하늘 길로 가서 제주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바닷길로 완도까지 여객선을 탔다. 사위가 완도의 특산물인 미역과 다시마와 톳을 지인들과 나누어 드시라고 몇 꾸러미를 선물로 사주었다. 아이들 덕분에 좋은 경험을 쌓고 새 가족인 사위의 배려와 사랑으로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어 참 기쁘고 행복했다. 유채꽃이 하늘하늘 춤추는 꿈결 같은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