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4.04 19:31
-
- ▲ MG42(Maschinengewehr42) 기관총.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사용한 기관총이다. 연사 속도가 높아 독특한 발사음을 내서 ‘히틀러의 전기톱’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1998년 개봉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의 첫 장면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이처럼 전쟁의 잔인성을 실제에 가깝도록 묘사한 영화는 그 당시까지 그리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화제의 장면은 1944년 6월에 있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이 가장 크게 피해를 입었던 오마하 해변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독일군이 여러 수단을 사용하여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하고 있었지만, 영화에서 그린 것처럼 해변에 상륙한 미군들에게 많은 피해를 안겨준 무기가 벙커 속에서 쉴 새 없이 난사되던 독일군의 기관총이었다. 바로 MG42(Maschinengewehr42)였는데, 노르망디 상륙작전뿐만 아니라 2차대전 내내 독일과 마주한 상대에게 가장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 ▲ MG42를 휴대한 무장친위대원의 모습
지난 전쟁의 기억
그전에도 존재하고 실전에서 많이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기관총이 최고의 살상무기로 악명을 날린 것은 제1차대전 당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최초의 중(重)기관총이라 할 수 있는 맥심(Maxim) 기관총은 동맹국이건 연합국이건 상관없이 최전선에서 거점 방어를 위한 화력지원용 병기로 널리 사용되면서 참호전의 꽃으로 그 명성을 길이 남겼다. 특히 상대편 참호를 향하여 달려드는 공격군들이 기관총 세례를 받고 죽어나가는 것이 전선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당시까지만 해도 맥심 기관총은 별도로 편제된 기관총 중대에서 운용하던 중화기였다. 그 이유는 기관총 자체의 무게만도 30Kg가까이 나가는 중량물인데다가 부속장비로 인하여 대개 4~6인이 팀을 이뤄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신속한 이동과 배치가 쉽지 않아 최 일선 부대와 동시에 작전을 펼치는데 제약이 많았고 따라서 중대 이하의 제대에서 보유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웠다.
조약의 틈새를 이용한 개발
이런 이유로 중기관총은 주로 참호에 고정하여 사용하는 방어용 무기였는데, 이것은 참호전이 공격자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돌격소총처럼 연사력과 화력이 좋은 무기를 공격하는 보병들이 휴대할 수 없었으므로 당시에는 당연히 기관총을 난사하는 방어자가 훨씬 유리하였다. 때문에 종전 후 승전국들이 베르사유조약으로 독일의 군비를 제한 할 때 이렇듯 방어전의 맹주인 중기관총의 보유를 금지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다.
비록 조약으로 말미암아 독일은 탄띠급탄식 중기관총의 개발과 보유는 금지 당하였지만 탄창식 경기관총의 개발은 가능하였다. 독일은 이러한 맹점을 파고들어 탄창식 기관총의 개발과 더불어 한편으로 중립국 스위스의 총기회사를 인수하여 현지에서 유사시 탄띠식으로도 개량이 가능한 기관총의 개발에 나서게 되었고 독일의 재무장 선언 전인 1934년 이를 비밀리에 제식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새로운 기관총의 탄생
이렇게 탄생한 기관총이 MG34(Maschinengewehr34)인데, 겉모양만 놓고 보더라도 맥심 같은 중기관총과는 거리가 멀었다. 쉽게 휴대할 수 있어 사수와 부사수 정도의 적은 인원으로도 일선 소부대에서 편리하게 사용이 가능하였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기관단총이나 경기관총이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화력과 연사력을 자랑하였다. 하지만 실전에 투입하자 예기치 못한 불편한 점들이 일선에서 보고되었다.
공랭식이었으므로 MG34는 총열을 자주 교환해 주어야 했는데 구조가 불편하여 야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 먼지나 진흙 등의 가혹환경 하에서 쉽게 오작동을 일으켜 신뢰성이 저하되고는 하였다. 거기에 더불어 복잡한 생산 공정으로 인하여 단가가 높아 대량 보급하기에도 부적합했다. 곧 MG34의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는 사업이 요하네스 그로스푸스(Johannes Grossfuss AG)의 주도로 착수되었다.
-
- ▲ MG42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킨 롤러 잠금장치<출처: (cc) Edmond HUET, DCB Shooting, Quickload>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신개념의 기관총
이때 독일군 당국은 신형 중기관총의 개발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는데 이것은 이후 SAW(분대지원용 자동화기)와 같이 현대의 다목적기관총에도 적용되는 규칙이 되었다. 첫째, 경기관총처럼 휴대하기 편하면서도 중기관총만큼의 화력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 생산단가를 최대한 낮추고 대량생산에 적합하여야 한다. 셋째, 보수 및 총열교환이 편리하고 악조건에서도 쉽게 사용이 가능하여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세워두고 새로운 기관총을 개발 중이던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폴란드 엔지니어인 에드발트 슈테케(Edward Stecke)가 개발하여 기관총의 구조를 단순화하고 연사속도를 증대시킬 수 있는 ‘롤러 잠금장치(Roller Locking System)’ 기술을 확보하게 되었다. 독일은 이를 적용함으로써 화력을 강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처럼 독일의 최신예 기관총은 스위스나 폴란드처럼 외국의 기술을 적용시켜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경이적인 발사속도
1942년 새롭게 탄생한 기관총은 탄창, 탄띠를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MG34의 장점을 그대로 갖추었고, 더불어 총신의 구조를 개선하여 과열된 총열을 30초 이내에 신속히 교환할 수 있었다. 더불어 대량 생산이 가능한 프레스 공법을 이용하여 도입 가격을 대폭 낮추는데 성공하였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역사상 최고의 기관총 중 하나로 명성이 드높은 MG42가 탄생하였다. MG42는 쇼트 리코일(Short Recoil) 방식에 롤러 잠금장치가 결합되면서 보병이 휴대하는 화기로는 경이적인 분당 최대 1500여 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현재 주력 기관총인 M60이나 M249이 분당 1000발 이하인 점을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놀라운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발사 속도로 말미아마 특유의 소음이 발생하였는데, 연합군 장병들은 이를 빗대어 MG42를 '히틀러의 전기톱(Hitler's buzzsaw)'으로도 불렀다.
다목적 기관총의 효시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이 분대 급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휴대가 편리하다는 점인데, 이 때문에 기관총이 방어용뿐만 아니라 공격용 무기로도 사용 될 수 있었다. 전쟁 중반에 등장한 MG42는 항상 병력 부족에 시달리던 독일군이 이와 맞먹는 분대 지원화기나 소대 지원화기가 없었던 다수의 적을 압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진지에 구축된 MG42는 방어용 무기로도 최고의 성가를 자랑하였다. 한마디로 오늘날 다목적 기관총의 효시였다.
비록 상대적으로 늦은 전쟁 중반기에 등장하였지만 현재까지도 최고의 기관총으로 평가될 만큼 그 명성을 날리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고 총 40여만 정이 생산되어 종전까지 최일선에서 독일군 함께 하였다. 현재 독일연방군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주력 기관총으로 사용중인 기관총이 MG3인데, 엄밀히 말해 7.92x57mm 마우저 탄을 사용하던 MG42를 7.62×51mm NATO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다. 그만큼 MG42는 패전국에서 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기를 뛰어넘어 계속 사용되는 무기사의 명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