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엘리야의 심령부흥 사역 Date 2015. 9. 27
Text 1Kngs 18,36-40
(36)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1. 명절날인 주일에 여러분을 뵈니 더 반갑고 감사하고 든든하고 그렇습니다. 다른 주일에 뵈어도 반갑습니다만 명절날은 교회당에 가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이 훨씬 더 많은 날인데 그 모든 것을 다 이기고 오신 분들이어서 더 반갑고, 이렇게 힘을 다하여 믿음을 지키는 동지들이 계신 것이 믿음을 지도하는 제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 것입니다. 객지에서 사시다가 먼 길을 달려 고향에 오신 여러분, 오늘 은혜 받고 새 힘을 얻어 삶에 승리하시길 소원합니다. 명절이 돼도 어디 갈 곳도 없어 서럽고 외로운 여러분, 세상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나 서러움보다 오늘 여기 주님의 품안에서 더 큰 위로와 격려를 충만하게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2. 오늘 아침 추모예배를 다 드리셨지요? 명절날에 하는 추모의식은 가정의 돌아가신 직계 선조 모두를 추모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며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최근에 두 성도 가정에 초상이 나서 장례를 치렀지요. 저는 두 분의 권사님 장례를 치르며 새삼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겪는 큰일도 많지만 죽는 것만큼 힘들고 어려우며 무서운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 중에 가장 무섭고 두려운 길이 저승길이요, 가장 불안하고 공포에 떨게 하는 세상이 저승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는 저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저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지만 그것은 딱 죽기 직전까지일 뿐입니다. 죽는 순간 저승으로 가는 길을 걷게 되는데 그 길을 같이 가려고 귀신들이 달려든다고 했습니다. 유1,9에 의하면 모세가 죽자 모세의 시체를 놓고 천사장 미가엘과 사탄이 다투었다고 했습니다.(“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귀신들에게 끌려가는 저승길은 공포와 두려움만 있지만 귀신들에게 끌려가 있게 될 음부라는 저세상은 세상에서 겪는 어떤 아픔이나 두려움으로는 설명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의 세상입니다.
그런데 성경 요14,1-6<“(3)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에 보면 그 무서운 저승길을 가장 희망찬 길로 만들어주고 그 무서운 저승을 세상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행복의 극치가 있는 세상에서 살게 해 주시는 분이 계신 것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인생이 이분을 알게 된 것이 최고의 지식이요 최고의 복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은 엘리야와 바알 신을 섬기는 무당들이 갈멜산에서 영적 전투를 한 이야기입니다. 왕과 고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참 신이 누구인지 대결한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무당 850명과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야 한 명이 각자 자기가 섬기는 신에게 부르짖어 차려놓은 제물에 불이 내리게 하는 대결이었습니다. 850명이 하루종일 자기들 신에게 자기 몸을 피가 나도록 상하게 부르짖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데 비해 엘리야는 저녁 소제, 즉 저녁예배 드리는 시간쯤 되었을 때 기도했더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불사르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최근 이 성경을 읽으며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며 왕과 고관들에게 하나님이 참 하나님을 보여줬는데도 그들 중에 생각을 고쳐먹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크게 감동을 받았지만 박해나 핍박이 두려워 그냥 그 감동을 외면한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혹 어떤 사람들은 크게 감동만 받을 뿐 아니라 회개하고 새 삶을 시작했었는데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 닥치자 돌이키기를 그만두었겠지요. 알면서도 롯의 처처럼 세상의 미련에 붙잡혀 돌아서지 못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전도도 그럴지도 모릅니다. 전도를 아무리 해도 사람들은 들을 생각을 않습니다. 엘리야도 이런 상황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권면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그 엄청난 850:1의 싸움을 싸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을 마13,1-23에서 밭의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추석절에 끔찍하고 무서운 저승길과 사망의 나라에 대하여, 그리고 도무지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목숨을 걸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한 일에 대하여 깊이 헤아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가족들, 나아가 이웃들의 저승길과 저세상의 참담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기회로 삼으시기 요망합니다.
3. 엘리야는 바알추종자들과 850:1의 영적 전쟁을 하였는데 그 이유와 목적을 우리는 그가 한 다섯 가지의 기도항목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①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소서.’ ‘②내가 주의 종인 것을 알게 하소서.’ ‘③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을 알게 하소서.’ ‘④주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소서.’ ‘⑤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소서’ 등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신을 알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거기 와 있는 아합 왕과 고관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에 믿음의 부흥이 일어나게 하는 것에만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심령의 믿음부흥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아시라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 믿음부흥이 일어나면 위로와 격려가 있고 세상의 모든 복잡다단한 문제들도 풀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대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부흥이 꼭 필요한 때입니다.
위로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무능을 통감하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패배감에 젖어 있는 이에게 ‘나는 비록 약한 자이나 나는 가장 강한 분으로부터 아낌없는 후원을 약속받은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큰 실수를 했거나 잘못을 저질러 최악의 자리에 떨어져 있는 이에게 언제라도 잘못을 뼈저리게 각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려는 의지를 보이기만 하면 갱생을 도우실 분이 계심을 알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을 바로, 확실하게 알게 하는 것이 위로입니다.
격려는 무엇입니까? 열심히 하는데 진척이 없어 힘을 잃은 이에게, ‘너는 지금 잘 하고 있어. 지금이 끝이 아니니 조금 더 참고 한 번 더 시도해 봐.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안고 돌아올 날이 있을거야.’라고 말해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일이 너무 힘들어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진 이에게, ‘답이 없는 것이 아니야. 아직 찾아내지 못한 고 있을 뿐이지.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려라 포기하지 않는 한 진 것은 아니야. “여기 하나님의 사람이 간다. 바람은 그치고 문은 열릴지어다.”라고 외치게 하는 것이 격려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자에게 있어 진정한 위로와 격려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확신하여 신뢰하는 믿음의 부흥을 통해 오는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것을 성경본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46,1-7은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려 바다에 빠지며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는 것 때문에 뭇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리는 것도 그 흔들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며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신 하나님을 성중에 계시게 하는 것이 진짜 중요한 문제라고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31)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호와를 성중에 계시게 하는 부흥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부흥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4. 엘리야의 이런 노력은 사실 당대의 사람들에게 큰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특히 심정적으로나마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별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힘 있는 권력자에게는 원수취급을 받으며 도망다니며 살기도 했습니다. 빈한하여 산골짜기에서 까마귀가 물어오는 음식으로 연명해야 했고 가난한 과부의 집에서 먹거리를 신세져야 할 정도로 처량한 신세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선포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가 있어 진리의 빛은 이어질 수 있었고 그가 충성함으로 하나님의 뜻은 시대를 넘어 전파되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교회 창립 64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우리교회는 엘리야가 한 것과 같은 사역을 해야 합니다. 낮예배, 밤예배, 새벽예배 등 모든 예배를 열심히 성심성의를 다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도록 순수 말씀사역을 해야 하며, 깨달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도록 기도하는 일도 계속 강조하여 실제로 기도하게 해야 합니다. 또한 듣든지 아니 듣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아니, 도리어 박해가 오고 훼방이 일어난다 해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복음전파사역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 진리의 길을 걷는다고 언제나 환호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반대의 반응에 부딪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 진액을 또한 충분히 받는 일을 계속 해내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은혜 받는 것 외에는 말할 필요도 없고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도 없습니다. 물이 고이면 넘쳐흘러 가듯 교회가 바로 가는 부흥을 이루기만 하면 크고 많은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선조들을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죽음 이후를 떠올리게 되는 명절이다. 죽음 이후를 제일 잘 준비하는 일은 은혜 받는 일이 아닐까?